사회실천연구소

2015년 6월 24일 오후 01:57 본문

연구원들의 이야기/연구원 컬럼

2015년 6월 24일 오후 01:57

사회실천연구소 2015. 6. 24. 14:01


[신간소개] 아시아의 알려지지 않은 민중봉기 세트 - 전2권: 한국의 민중봉기 + 아시아의 민중봉기 / 조지 카치아피카스 (지은이) | 원영수 (옮긴이) | 오월의봄 | 2015-05-11

미국의 진보적 학자 조지 카치아피카스가 잘 알려지지 않은 아시아 민중봉기 역사에 관해 썼다. 그는 1968년의 프랑스와 1970년의 미국 등 전지구적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에로스 효과’를 제시했는데, 이는 수백만 명의 보통 사람들이 역사의 무대에 갑자기 등장해 통일된 방식으로 행동하고, 스스로 사회의 방향을 변화시키려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광주항쟁에 매료된 그는 10년 이상 역사적 봉기에 관해 연구해왔다.

1권은 20세기 한국의 사회운동, 특히 광주민주화항쟁을 다루고 있으며, 2권은 남아시아와 동아시아 10개국의 20세기 후반 봉기를 다룬다. 이 두 권의 책은 봉기, 반란, 폭동 등의 ‘불온한’ 개념을 민중 주체의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다룬다. 이를테면 1980년 광주가 다양한 정치적 뉘앙스에 따라 ‘광주사태’ ‘광주민주화운동’ ‘광주민주항쟁’ ‘광주민중항쟁’ 등의 어휘로 표현되는 한국 현실과 달리, 저자는 광주를 일관되게 ‘민중봉기’로 규정하고 있다.(알라딘 펌)

출판사 제공 책소개
“우리는 이름 없는 사람들, 민중이다!
아무도 우리를 기억하지 않지만, 우리의 세계는 광활하다.”


“봉기는 끔찍하고도 아름다운 사건이다. 봉기는 아주 예상치 못하게 발생해서 그 적들을 당황시키는 만큼, 봉기에 참여하는 사람들 스스로를 놀라게 한다. 우리가 깨닫는 것 이상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은 혁명적 봉기에 의해 만들어져왔다. 미국독립혁명에서 러시아혁명까지, 광주봉기에서 아랍의 봄까지, 봉기는 놀라울 정도로 규칙성 있게 일어난다.”
2권 1장 ‘봉기하는 세계’에서

한국과 아시아의 민중봉기를 재조명한 조지 카치아피카스의 역작 2부작

‘68혁명’과 ‘신좌파운동’ 연구로 잘 알려진 미국의 좌파 정치학자 조지 카치아피카스(George Katsiaficas)의 《아시아의 알려지지 않은 민중봉기Asia’s Unknown Uprisings》 2부작이 한국어판으로 출간됐다. 1권 《한국의 민중봉기》는 1894년 농민전쟁부터 2008년 촛불시위까지, 역사가 요구할 때마다 어느 권력층이나 엘리트보다 먼저 들고일어나 세계를 변혁해온 한국 풀뿌리 민중의 운동사를 담아냈다. 2권 《아시아의 민중봉기》는 아시아 9개국―필리핀, 버마, 티베트, 중국, 타이완, 네팔, 방글라데시, 타이, 인도네시아―을 1947년부터 2009년까지 휩쓸고 간 혁명의 물결을, 그 세계사적 중요성에 걸맞은 차원으로 생생히 복원해냈다. 또 그러한 분석적 연구를 바탕으로 전 지구적 ‘봉기’의 역학과 오늘날 문제적인 세계 체제 전복의 과제를 집대성했다.


국가의 틀을 넘어서는 전 지구적 ‘사랑의’ 투쟁 공동체
조지 카치아피카스는 1968년 5월 프랑스와 1970년 5월 미국 등 전 지구적 운동에서, 혁명에 대한 열망과 투쟁이 매우 빠르게 퍼져나가는 모습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 수백만 명의 보통 사람들이 역사의 무대에 갑자기 등장해서 통일된 방식으로 행동했고, 자신들이 사회의 방향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이러한 현상을 ‘에로스 효과’라는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에로스 효과는 단순히 정신의 작용이 아니고, 목적의식이나 특정한 정당의 지도에 따라 작동하는 것도 아니라고 그는 설명한다. 오히려 그것은 수십만 명의 보통 사람들이 역사를 ‘자기 자신의 손에’ 가져갈 때 독자적 세력으로 나타나는 민중운동에 더 가깝다. 민중들이 대대적으로 들고일어날 때, 정부의 권위, 노동분업 등 기존 사회의 틀은 하룻밤 사이에 사라질 수도 있다. 그 순간에 민중은 전혀 새로운 현실과 생활방식을 상상하며, 수십만 또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변화된 규범, 가치, 믿음에 따라 살아가게 된다.
카치아피카스는 이러한 에로스 효과와 ‘사랑의 투쟁 공동체’의 모습을, 이미 충분히 연구된 프랑스, 미국, 동유럽 등의 서구 세계를 넘어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발견한다. 1980년 5·18광주민중봉기의 ‘절대공동체’, 1980년에서 1992년까지 아시아 여러 나라를 뜨겁게 달군 민중권력 등, 봉기는 전 지구적으로 동시에 커다란 물결을 일으키며 확산됐다. 어떠한 사적 관계나 문화권, 일국(一國)의 틀로도 묶여 있지 않은 각지의 민중들이 서로에게 커다란 동질감을 느꼈고, 서로의 저항에 찬사를 보내고 서로 모방하며 자기 삶을 투신했다.
한국의 광주를 출발로 해서 1986~1992년 아시아의 민중권력은 6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9개국 가운데 8개국에서 독재의 종식을 이루어내는 등 그 궤적이 뚜렷한데도 대개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이 점에 주목한 카치아피카스는 장장 10년간의 애정 어린 연구와 취재, 역사의 중요한 증인들과 했던 100여 회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국과 아시아의 민중이 자생적으로 들고일어나 세계를 뒤엎은 ‘봉기’와 ‘민중권력’의 경험적 역사를 풍부하게 탐구한다. 또한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문제적 세계에 시사하는 바를 분석한다.

봉기uprising, 미래 정치 해법의 열쇠
이 두 권의 책은 봉기, 반란, 폭동 등의 ‘불온한’ 개념을 민중 주체의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다룬다. 이를테면 1980년 광주가 다양한 정치적 뉘앙스에 따라 ‘광주사태’ ‘광주민주화운동’ ‘광주민주항쟁’ ‘광주민중항쟁’ 등의 어휘로 표현되는 한국 현실과 달리, 저자는 광주를 일관되게 ‘민중봉기’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그와 같은 관점에서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한 사건들과 투쟁들을 다룬다.
봉기(蜂起)의 사전적 의미는 말 그대로 ‘벌 떼처럼 떼 지어 세차게 일어남’이다. 주류 학계와 언론매체는 대부분 이러한 봉기를 긍정적으로 다루지 않으며, (주로 서구가 정의하는) ‘합리적 개인’과 대치되는 우매한 군중, 제어되지 않는 혼돈 상태, 무차별 폭력 시위 등의 이미지를 퍼뜨리려고 노력한다. 그에 따라 오늘날 충분히 ‘문명화된’ 현대인의 머릿속에서 ‘봉기’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낡은 역사, 또는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인 대응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편견들은 실제 역사적 사실이 증명하고 있는 봉기의 성과와 가치들을 축소시키거나 의도적으로 외면한 결과일 뿐이다.
저자는 “한 세기 넘게 연구가 이루어졌는데도, 근대 사회과학은 정치적 격변을 예측하는 데 전적으로 무능력하다”고 일갈한다. 시모어 마틴 립셋, 새뮤얼 헌틴텅 등 민주화를 말하는 이론가들은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의 긍정적 상관관계에 대해서 주장했을 뿐이고, 그 이후로도 제대로 된 분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저자는 그러한 민주 정치의 설명 변수에 ‘봉기’의 정밀한 성격이 추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위대의 상호관계, 봉기 주체와 상대 세력의 상호작용, 정점에 이른 투쟁의 강도, 거기 동원된 특정 사회계층 등을 분석하면 다가올 정치적 관계, 민주화 규범과 심도, 정치 여론 등을 폭넓고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아무리 오늘날 대다수의 개인들이 체제에 안주하고 있는 듯 보이고 대중매체의 영향력이 엄청나더라도, 그들의 마음속에는 분명히 다른 사고의 흐름이 있으며 통제되지 않는 직관과 통찰이 계속해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다름 아닌 ‘봉기’만이 그것을 드러내주는 지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저자는 민중봉기의 사상과 내용, 행동 구조 등을 밝힘으로써 민중봉기의 ‘합리성’을 추적하고자 한다.

봉기는 무엇을 해왔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민중들이 자생적으로 들고일어나는 봉기가 없었다면, 지금의 사회 주류는 물론이고 평범한 사람들의 안락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불완전하나마 현재 누리고 있는 민주화의 열매는 거의 전적으로 ‘민중봉기’에 빚지고 있는 셈이며, 저자는 이 두 권의 책에서 그 경험적 역사를 치열하게 파헤친다.
흔히 봉기는 커다란 희생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체제를 변혁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 가치가 폄하되곤 한다. 그러나 저자는 봉기의 가치에 대해서 단순히 ‘엘리트 권력의 교체’가 아니라 무엇보다 “민중의 삶의 질과 행복의 폭넓은 지표, 기층 집단이 쟁취한 새로운 권리, 확대된 자유를 평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배 이데올로기에 속박되지 않은 더 정확한 이해는 ‘주변부에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1848년, 1905년, 1968년의 혁명은 세계의 가치를 뿌리부터 바꿔놓으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1848년 이후 노동자들은 더 많은 고용권을 쟁취하고 시민들의 투표권이 확대됐다. 1905년 이후로 민족해방을 위한 투쟁은 더 큰 정당성을 얻었다. 1968년 이후에는 여성의 권리, 하층 집단을 위한 정의, 환경이 화두로 떠올랐다. 뒤이은 아시아의 봉기들은 권력을 장악하지 않고도 자유를 확대했다. 타이완의 38년간 계엄 체제가 종식됐고, 타이인, 네팔인, 필리핀인, 한국인들은 더 진보적인 새 헌법을 쟁취했다. 남한에서는 1987년 이후 몇 년간 노동자들이 매해 연간 두 자릿수에 달하는 임금 인상률을 쟁취했고, 타이, 네팔, 남한, 중국의 노동자들은 더 폭넓은 노조 활동의 권리를 확보했다. 이렇듯 봉기는 엘리트 구성이 일시적으로 바뀌거나 새로운 투표 제도가 시행되는 것보다 훨씬 더 지속적이고 커다란 효과를 불러왔다.
저자는 곪아터진 오늘날 사회의 재조직화가 “이제껏 이어온 경제·정치 구조의 점진적 진화를 통해 이루어질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못 박는다. 민중봉기의 형태로 나타나는 전 지구적 혁명적 변화만이 “군사화된 국민국가, 권력에 굶주린 정치인, 부를 움켜쥔 억만장자라는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 그는 인간이 아무리 습관과 일상의 동물이라고 하더라도 ‘혁명’은 인간 고유 활동의 중요한 차원, 유적 구성species-constitutive 행위의 한 형태로 발현될 것이며, 그리하여 봉기는 가장 깊숙하게 뿌리박힌 사회관계마저 하룻밤 사이에 변혁할 수 있다고 믿는다.

엘리트 중심의 역사 서술을 뒤집어
민중의 힘과 지혜를 조명하다
민중의 혁명운동을 역사의 기관차로 인정하는 경우조차도, 그것이 ‘정확히 묘사’되는 일은 드물다. 거의 언제나 ‘위대한 사람들’의 삶에 초점을 맞춰 역사가 쓰여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김일성, 딘 러스크, 더글러스 맥아더, 박정희 같은 개인들 위주로 세계적 사건들이 구성되며, 봉기의 성과를 묘사할 때도 공산당이든 NGO든 직업적 조직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사실상 봉기를 창조하고 키워낸 이름 없는 보통 사람들, 풀뿌리운동은 숨겨지게 마련이다. 한국의 1894년 농민전쟁은 흔히 ‘동학농민혁명’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당시 봉기에서 가장 유명했던 지도자의 조직 이름을 따온 것일 뿐이다. 실제로 투쟁하다 죽어간 수천 명의 조선 농민들은 동학교의 신자가 아니었다. 베트남이 미국을 패배시킬 때 남베트남 민중들이 한 중심 역할과 희생은 역사 속에 묻혀진 반면, 북베트남 공산주의 조직과 지도부의 역할은 강조됐다. 시민권운동에 관한 진보적인 설명조차도, 서굿 마셜, 로자 파크스, 마틴 루서 킹 2세, 맬컴 X 등의 전기나 전미흑인지위향상협회의 활동사에 가깝지, 흑인차별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해방시키기 위해 투쟁하고 희생한 수백만 명의 보통 사람들 이야기는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역사가들은 흔히 세계적 지도자들의 결정에 주의를 기울이고 보통 사람들의 행동은 무시하는 오류를 범한다. 이 책은 그 뿌리깊은 역사 서술의 역학을 뒤집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 뒤집기는 위기의 순간에 수천 명의 민중이 참여하는 ‘봉기’를 통해서 비로소 가능했다. 저자에게 봉기는 “이해의 프리즘”이며, “사회의 핵심적 본질을 들여다보는 커다란 창문”이었고, 그는 봉기자들의 실천이 어느 철학자와 전문가들의 이론보다 더 뛰어난 이론적 가치를 담고 있다고 믿는다.
이 책에서 다뤄지는 20세기 말의 봉기들은 보통 사람들의 집단적 지혜가 엘리트들의 지혜보다 더 훌륭하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증명한다. 거리로 나서 폭력과 체포에 노출되고 자신의 목숨까지도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시민들은 궁극적으로 자유의 가능성을 확대했다. 부자 감세, 국민 주권의 확대, 기업 이윤 보호에 노심초사하는 엘리트들과 달리, 수백만의 보통 사람들이 가슴 깊숙한 열망으로 평화, 더 많은 민주적 권리, 평등, 진정한 진보를 원한다는 것이 충분히 증명됐다.

한국, 풍부하고 고통스런 풀뿌리 봉기의 역사
1권 《한국의 민중봉기》에서는 자유와 존엄을 위해 싸워온 한국 풀뿌리 민중권력의 실체를 만날 수 있다. 한국 민중 투쟁의 역사, 특히 광주민중봉기에 각별한 열의와 애정을 갖고 연구해온 조지 카치아피카스는 한국의 “풍부하고 고통스런 봉기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한국학 연구에서 봉기들이 거의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가장 널리 알려진 영어판 역사서라고 할 수 있는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현대사Korea’s Place in the Sun》조차도 광주에 대해서 겨우 1쪽, 6월항쟁에 대해서는 한 단락을 할애하고 있을 정도다. 반면 카치아피카스는 이 두 사건으로 “한국의 5,000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군부독재를 제압하고 민주주의를 쟁취”했다고 평가한다. 그는 이를 비롯해 한국의 장기 20세기를 관통한 민중봉기들을 합당한 지위에 올려놓으며, 치열하고 사려 깊은 사례 연구와 분석을 펼쳐놓는다.
저자는 한국을 “내가 경험한 곳 가운데 가장 예의바른 사회임과 동시에, 가장 미국화된 나라”라고 표현한다. 그가 보기에 한국은 전통적인 불교-유교적 사회구조 위에 ‘보호자’ 미국의 영향으로 고도로 발달된 정치적 경제가 결합돼 있으며, 분단의 상처와 군사비 낭비를 지속하는 냉전의 벽이 여전히 남아 있는 나라이다. 분단이 단순히 상징이 아니라 삶에 대한 실질적 위협으로 남아 있는 이 상황에 책임이 있는 진보적 미국인들이, 지난 50년간 자기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고 저자는 자조 어린 평가를 서슴지 않는다.
그 역할의 하나로 카치아피카스는 끔찍한 상황 속에서도 이어져온 한국 민중들의 꿈과 열망의 전개 과정을 묘사하는 데 열중한다. 그는 20세기 시작과 함께 반도를 장악한 일본 식민주의, 1950~1953년까지 500만 명에 이르는 생명이 꺼진 한국전쟁, 미국을 비롯한 세계 지도자들의 결정으로 인한 분단의 비극과 이후 독재 정권의 폭압으로 이어진 한국의 비극적 역사에서 ‘한 줄기 희망을 빛’을 민중봉기의 풍부한 전통에서 찾는다. 일본 식민 지배에 맞선 1919년 3·1봉기, 미군정에 맞선 1946년 10월봉기, 민족 분단에 맞선 1948년 제주와 여순봉기, 이승만 독재에 맞선 1960년 봉기, 박정희 유신 체제에 맞선 1979년 부마봉기, 전두환 독재에 맞선 1980년 광주봉기, 1987년 6월봉기와 노동자대투쟁, 신자유주의에 맞선 1997년 총파업, 그리고 2008년 촛불시위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세계를 뒤흔든 민중 투쟁의 역량과 한국 시민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능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될 것이다.

해방광주의 아름다운 공동체와 직접민주주의
저자는 《한국의 민중봉기》를 통해 20세기 말 아시아를 휩쓴 정치 격변의 중심에 ‘광주’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한다. 1968년 혁명 이후 봉기의 물결이 동아시아 독재를 쓸어내고 동유럽 소비에트 체제를 타도했다. 흔히 간과되곤 하지만 아시아 봉기의 물결은 동유럽의 사건들보다 앞서 일어났으며, 냉전을 종식시키려는 세계 지도자들의 결정으로 이뤄진 것도 아니었다. 이 ‘보편적 해방’을 향한 ‘신좌파적 추진력’은 무엇보다 남한의 광주에서 찬란한 빛을 발했다. 광주민중봉기는 동아시아 전역에서 봉기의 연쇄 반응을 촉발한 시작점과도 같았다. 저자는 정치학자 최정운이 《오월의 사회과학》에서 ‘절대공동체’라고 이름 붙이기도 한 해방광주의 아름다운 공동체에 특히 주목했다.
6장 ‘광주민중봉기’에서는 1980년 5월 18일 전남대 학생들과 공수부대의 전투를 시작으로, 광주 시민들과 택시·버스 기사들, 노동자들이 궐기하고 21일 시민군을 결성해 싸우면서 군대를 도청에서 몰아내기까지, 그 뒤 시위가 전남 지역 전역으로 확산되고 날마다 민주광장에서 대규모 집회가 이루어진 해방광주의 시절을 생생히 되살려낸다. 저자는 해방된 광주가 “군부의 잔학성의 악몽과 사랑의 꿈이 동시에 공존”한 시기였으며, 그 속에서 민중들은 “우리가 보통 꿈만 꾸는 방식으로” 서로 자유롭게 협력했다고 이야기한다. 광주 시민들은 군대를 몰아내고, 도시를 스스로 방어하고 통치하며, 시민군과 시민학생투쟁위원회를 조직하고, 범죄와 경쟁 없이 생활을 유지하는 자생 능력을 발휘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수십만 명이 참여한 일일 집회였다. ‘민주광장’이라고 불린 도청 앞 분수대는 금남로 끝에서 전남도청으로 이어졌으며, 여러 대로와 작은 도로의 교차점에 있는 원형의 공간이었다. 그곳에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생각을 발언하고, 마음을 나누고, 현재 정치 상황과 분석을 공유했으며, 무엇보다 총 7회의 집회를 통해 투쟁의 방향에 실제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결정을 내렸다.
저자는 이러한 해방광주의 민주광장에서 진정한 의미의 직접민주주의가 체현되었다고 보며, 그 힘을 1871년 전설적인 파리코뮌에 비견한다. 오히려 국민방위군의 개입, 수동적인 대표 선출 등의 한계가 있었던 파리코뮌을 넘어서는 자기통치 역량과 독자성을 광주가 보여줬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해방광주의 일일 집회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것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는 현 선거 체제와 대비되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뿌리 깊은 비극의 배후
《한국의 민중봉기》는 한국 현대사에서 ‘반미주의’가 합당하고 뿌리 깊은 역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특히 광주봉기 진압에서 미국 정부는 전두환을 적극적으로 사주했으며, 이후 그의 정부를 안정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미국이 그렇게 한 이유는 보통 국가 안보 측면으로 설명되지만, 저자는 수천 쪽에 이르는 미국의 공식 문서를 읽어보면 당시 미국 정부가 두려워한 것은 무엇보다 대한민국 정부의 불안정으로 미국 투자가들의 자본이 이탈하는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렇듯 궁극적으로 신자유주의가 추동한 미국의 광주학살 개입에 대해 7장 ‘신자유주의와 광주봉기’에서 속속들이 파헤친다.
그 밖에도 4장 ‘분단에 맞서: 제주4·3봉기와 여순봉기’에서 미국이 조선을 해방했다는 주류 견해에 가려진 슬픈 전후의 현실―미군정이 거대한 물리력으로 제국의 의지를 관철시켰다―을 지적하며, 한국전쟁에서 미국이 벌인 잔인한 생물학전과 무차별 민간인 살상에 대해 상세히 증언한다. 또한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 주한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 사건, 한미 FTA 반대 시위 등을 거치며 지속적으로 이어져온 미 제국에 대한 거부와 저항의 역사를 고스란히 만날 수 있다.

아시아를 휩쓴 ‘민중권력’의 물결을 가로질러
2권 《아시아의 민중봉기》에서는 1968년 신좌파 혁명이 아시아 9개국 봉기의 물결로 이어진 커다란 흐름을 체험할 수 있다. 2장 필리핀, 3장 버마, 4장 티베트, 5장 중국, 6장 타이완, 7장 네팔, 8장 방글라데시, 9장 타이, 10장 인도네시아에 이르기까지, 나라마다 큰 공통성과 특수성을 띠는 민중권력 봉기의 전개 과정을 생생하고 박진감 넘치게 서술했다.
1986년 2월 수십만 필리핀 시민들은 18일간의 봉기를 통해 마르코스 독재 정권을 타도했다. 마르코스 타도는 남한의 1987년 6월봉기를 자극했다. 19일간 이어진 6월봉기 중 사흘은 각각 100만 명 이상이 동원됐다. 한국 군부가 굴복한 지 한 달도 채 안 돼서 1987년 타이완에서도 38년 계엄 통치가 막을 내렸다. 타이베이 거리에서 한국의 민주화운동 당시 노래가 불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어진 3년간의 투쟁으로 이들은 총통과 의회의 민주 선거를 쟁취해냈다.
버마에서는 1988년 3월 중앙 통제에 맞서 민중들이 들고일어났고 1980년 광주에서 그랬듯이 랑군의 학생들은 민중을 거리로 이끌었다. 군대의 학살과 끔찍한 탄압에도 민중은 저항을 계속했고, 결국 네 윈 대통령의 26년간 집권은 막을 내렸다. 1989년 3월, 중국 점령에 맞선 봉기가 실패한 지 30년 만에 티베트인들이 다시 일어섰다. 중국 경찰이 한족의 이주 정책과 식민주의에 반대하는 소규모 시위대를 공격하자, 시위대는 반격에 나섰다. 당 지도부는 군대를 보내 3월 8일 라싸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두 달 후 톈안먼 광장에서 학생운동가들의 민주주의 요구를 시작으로 수십만 노동자와 시민이 동참하면서 운동이 거의 모든 도시로 확산됐다. 필리핀의 전술을 따라 베이징 시민들은 며칠 동안 인민해방군을 저지하며 계엄령 집행을 방해했다. 결국 톈안먼 광장 일대에서 수백 명이 살해당한 이후에야 질서는 회복됐다.
1990년 방글라데시에서는 학생들이 서로 다투던 야당들을 압박해 군부 독재자 모하마드 에르샤드를 사임시켰다. 네팔에서도 1990년 4월에 시작된 53일간의 시위로 국왕이 입헌군주제를 받아들여야만 했다(2006년 새 국왕이 통치권을 장악하자 19일간 민중봉기가 일어났고 군주제가 폐지됐다). 이러한 여파로 타이도 1992년 유혈 봉기를 경험했고 민주화 세력이 성장했다. 군대가 가두시위를 진압하려고 총탄을 사용하면서 5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쿠데타 지도자 수찐다 크라쁘라윤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으며, 여러 해에 걸친 풀뿌리운동으로 1997년 아시아 헌법 가운데 진일보한 새 헌법이 발효됐다. 1998년 인도네시아에서는 학생들이 민중권력 혁명을 호소했고, 수만 명이 국회의사당에 집결해 수하르토 대통령의 30년 집권을 끝장냈다. 시위대는 채팅과 웹페이지, 이메일 등 인터넷 기술을 활용하여 운동을 조직하고 사람들을 모았다.
이렇듯 비록 당시에 패배하더라도 민중봉기는 민중을 변혁하며, 이후 예상치 못한 형태로 다시 등장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1986년에서 1992년까지 6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갑자기 여덟 번의 민중권력 봉기가 일어난 것은 그들이 전 지구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았음을 증명한다.

봉기의 한계를 단정하는 이들에게
아시아를 휩쓴 민중권력 봉기를 검토하다보면 분명한 한계 또한 발견된다. 정확히 말하면 봉기 자체의 한계라기보다 그 봉기를 이용하는 세력의 불의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기존 체제의 정부와 엘리트들, 부자들과 권력자들은 민중의 삶과 자원을 더 공고하게 장악하기 위해서 봉기를 이용한다. 봉기는 독재를 타도하는 중요한 수단인 동시에, 국가를 초월하는 이해관계로 엮인 전 지구적 엘리트들에게도 매우 유용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봉기로 인한 에로스 효과가 기존 정권을 정복하더라도, 체제는 그 봉기의 물결을 올라타고 스스로를 안정화시킨다.
무엇보다 민중권력 봉기의 물결은 결과적으로 세계의 더 많은 지역을 일본과 미국 은행의 궤도로 통합시키는 데 도움을 줬다. 노동조합의 권리를 위한 남한 노동계급의 투쟁이 결과적으로 신자유주의 경제 침투를 용이하게 했듯이, 또 봉기 이후 남한과 필리핀, 타이완처럼 새로 선출된 ‘민주적’ 행정부가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을 가속화해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시장 침투와 이윤 증대를 돕도록 수백만 명의 노동력에 규율을 강제했듯이 말이다.
오랜 세월 동안 억압으로 고통받았던 민중은 어느 정도는 자유에 익숙하지 않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바로 이 점에서 봉기는 부자와 권력자에게 쓸모가 있는데, 민중들이 봉기로 자유를 쟁취한 뒤에도 그것을 어떻게 누려야 할지 모르는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흔히 치부하는 대로 민중의 우매함 때문이 아니며, 또 아시아에 국한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도 할 수 없다. 프랑스혁명과 미국독립혁명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혁명에 이르기까지, 과거의 혁명들 또한 자본주의를 효율적으로 강화했을 뿐 변혁하지는 못했다. 저자는 이에 대해 섣불리 한계나 좌절을 말하기보다, 사회운동이 견고한 경제·정치적 엘리트들에게 자신의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으면서 사회를 지속적으로 앞으로 밀고 나갈 방법을 찾는다.

진정한 세계 체제 변혁을 위하여
저자는 진정으로 세계 체제를 변혁하기 위해서는 “가장 강력한 고리”를 깨야 하며 “정치의 전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에 따라 11~16장에서는 위계적이고 중앙집중적인 정당을 대체할 대안적인 전위 조직, 전통적 노동계급의 범주를 넘어 점점 확대되는 중산층과 룸펜프롤레타리아트 등 봉기 주체의 문제, 단순히 경제 상황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봉기 촉발의 공식들, 변혁이 필연적인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구조적 요청―전쟁과 무기, 거품과 붕괴, 억만장자와 거지, 이윤과 공해―등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한편 저자는 우리가 이 방대한 민중봉기의 역사를 좇아가는 동안, ‘자유’와 ‘민주주의’의 이름이 강제해온 인류의 야만과 비극, 진 샤프 등이 설파하는 ‘비폭력’투쟁의 딜레마, NGO의 두 얼굴 등에 대해 다시 사유하도록 이끈다. 그간 의심하지 않았던 역사의 정답들―미국과 서구 열강이 독재와 전체주의를 타도하고 민주주의를 전파해왔다는 논리, 폭력 투쟁의 방식으로는 궁극적으로 독재를 타도할 수 없으며 비폭력적인 전술을 바탕으로 희생을 최소화화고 자유를 쟁취할 수 있다는 논리, NGO의 활성화가 한 사회의 민주주의와 복지 수준을 향상시킨다는 논리 등―을 전복적으로 뒤집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