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실천연구소

연이의 삐딱하게 영화 보기: 기생충 본문

실천복간호/실천 복간 3호

연이의 삐딱하게 영화 보기: 기생충

사회실천연구소 2022. 9. 7. 20:24

연이의 삐딱하게 영화 보기: 기생충

1. 영화 ‘기생충’ 1,000만 관객의 비밀

 

난 영화평론가가 아니기에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에서 보여준 연출력, 영상미학, 배우들의 연기력 등에 대해서는 평가할 능력도 의도도 없다. 따라서 이 글은 평범한 관람객의 한 사람으로 쓴 감상 후기로 읽히길 바란다. 그리고 이 글에는 ‘영화헤살꾼’이 있음을 미리 밝힌다.

 

마침내 ‘기생충’이 개봉 52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넘었다고 한다,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데 이어서 1,000만 관객 돌파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잡은 봉준호 감독에게 한국영화사의 신기원을 개척했다는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칸 프리미엄을 고려하더라도 많아야 500만 정도를 예상했기에 1,000만 관객은 놀랍다. 그동안 국내에서 개봉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의 흥행성적을 고려할 때 내 예상이 아주 근거 없는 것은 아니었다.

 

현명한 독자라면 영화 ‘기생충’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이유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으로 ‘입증’된 작품성과 대중성에 더하여 무언가가 더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가질 것이다. 물론, 간단히 사람들이 ‘국뽕’에 취해서라고 하면 그만이겠지만, ‘국뽕’도 자본의 도움이 없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짧은 시간에 취하게 하기는 힘들다.

( 출처 :  영화진흥위원회 )

 

<영화진흥위원회>의 자료는 ‘기생충’의 5월 30일 개봉일부터 6월 16일까지 약 2주 동안의 상영점유율, 누적 매출액, 누적 관객 수를 보여준다. ‘기생충’의 상영점유율은 41.2%로 2위 ‘알라딘’의 21.6%와 비교해 두 배다. 한 마디로, 10개의 상영관이 있는 복합상영관에서 4개 상영관에서 ‘기생충’을 틀었다는 의미다. 개봉 2주 차를 약간 지나 누적 관객 수는 이미 834만 명을 넘어섰으며, 누적 매출액도 약 716억 원에 이른다. 참고로, 2019년 7월 30일 현재 ‘기생충’의 누적 매출액은 약 856억 원이며, ‘기생충’의 총제작비는 150억~160억 원으로 알려져 있다.

 

CJ ENM이 투자·배급한 영화 ‘기생충’은 올해 5월 한국 영화 최초로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1,000만 관객이 본 기생충은 한국 영화 중 최대 해외 판매(203개국), 프랑스 박스오피스 1위 등 다양한 기록을 세우고 있다. (출처: 조선비즈, 2019.07.24.)

 

대한민국 언론의 과장이 심한 것은 너무 잘 알기에, 영화 ‘기생충’이 실제로 프랑스에서 박스오피스 1위를 했는지 구글링으로 ‘팩트 확인’을 하였다.

( 출처 : Box office Mojo,&nbsp; https://www.boxofficemojo.com)

 

엥? 1위가 아니다. 개봉 후 3주 차까지는 3위를 유지하다가 4주 차에는 5위로 하락했다.

 

우리 모두가 ‘국뽕’에 취하기 위해서는 영화 ‘기생충’의 투자·배급사인 CJ ENM이라는 국내에서 가장 강력한 영화 자본이 처방하는 ‘약’이 필요했다. 물론 이 ‘약’에는 언론의 극성스러운 호들갑도 필수조제 성분으로 포함되어 있다.

 

‘기생충’에 대한 국내 영화계 내부의 반응도 찬사 일색이다. 네이버의 영화평론가 16명의 평점은 10점 만점의 9.06이다.

( 출처 :&nbsp; 네이버 .&nbsp;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61967)

 

평점 9.06은 평론가 수 대비 네이버 영화 평점 사상 최고의 영화 평점이라고 한다. 특히, 박평식 평론가는 짠 평점과 한 줄 평으로 소문난 영화평론가인데 ‘기생충’에 8점을 주었다는 것은 ‘기생충’이 대단한 영화라는 것을 증명한다고 것이 일부 영화 기생충 ‘덕후’들의 주장이다.

‘기생충’에 대한 영화평론가의 영화평 가운데 압도적인 것은 장안의 화제가 된 이동진 평론가의 한 줄 평이 아닐까 싶다.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 낸 신랄하면서도 처연한 계급 우화”

 

뭔 말인지 이해가 되시는가? 이해가 안 되어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당신이 대한민국 국민의 평균 수준의 문해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뿐이니. 이 한 줄의 ‘잘난 체’하는 영화평 때문에 어느 신문사에서는 ‘한국의 문해력’에 대한 기사까지 실렸다는 웃픈 이야기는 덤이다.

 

정치권도 영화 ‘기생충’ 때문에 뜨거웠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상당히 성공을 거두고 좋은 상도 받았는데, 다른 무엇보다 표준계약을 철저히 이행하면서 좋은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미담으로 많이 들리는 것 같다"고 하였다. (출처: 미디어스. 2019.06.21)

 

좋은 말씀이다. 90년대 초반에 월 30만 원 받고 새벽·야간촬영을 밥 먹듯이 하며 1년 동안 영화제작부서의 스태프로 일했던 내 기억 속에서 당시 ‘영화판’은 전근대적인 노동 탄압이 이루어지던 전쟁터였다. 그때를 떠 올리면 항상 생각나는 얼굴이 있다. 영하 11도의 강원도 정선 현장에서 손만 갖다 대도 쩍쩍 달라붙는 무게 20kg의 조명 장비를 나르던,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영화판’에 들어 온 조명팀 막내의 거친 숨소리와 벌겋게 상기된 얼굴이다.

 

지금은 다를까? 이한빛 PD를 생각하면 별반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이한빛 PD는 2016년 1월 CJ ENM PD로 입사해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조연출로 일하다가 2016년 10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촬영장에서 스탭들이 농담 반 진담 반 건네는 '노동 착취'라는 단어가 가슴을 후벼팠어요.
물론 나도 노동자에 불과하지만,적어도 그네들 앞에선 노동자를 쥐어짜는 관리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요.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두세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떠밀고제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어요.
(이한빛 PD의 유서에서)
 

 

이한빛 PD가 겪어야 했던 방송 현장에서의 살인적 노동강도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대책위에 CJ ENM은 “업계 관행”이라고 항변했다고 한다.

 

이해찬 대표는 알았을까?

이한빛 PD가 근무했던 회사가 CJ ENM이었다는 것을. 최근에도 ‘스태프 혹사’ 논란이 있었던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의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의 최대 주주가 CJ ENM이라는 것을. CJ ENM이 영화 ‘기생충’을 투자·배급한 회사라는 것을.

 

정의당 심상정 대표도 ‘기생충’과 관련해서 한 말 보탰다.

 

“국회의원이 처음 됐을 때도 반지하에 살아서 난 반지하 냄새가 너무 익숙하다. 이 영화를 특별하게 보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영화 속 현실이 너무 익숙했다”란 감상평을 하였다. (출처: 머니투데이. 2019.07.29)

 

심상정 대표의 논평에는 별로 덧붙일 말이 없다. 다만, 요즘 청년 세대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하나만 알려주고 싶다. “when I was...”. 번역하면, “내가 예전에는...”이다.

 

심상정 대표가 인터뷰에서 “정의당은 2020년 4월 총선을 (예전에 살았던 (반)지하방으로부터 나와서 부르주아 의회정치의 지상으로) 도약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읽히는 건 나의 ‘옹졸한 상상력’ 때문일까?

 

자유한국당의 영화 ‘기생충’에 대한 논평은 찾기 힘들었다. 나경원 원내대표의 논평이 하나 있긴 한데, 이게 영화 ‘기생충’에 대한 논평인지는 잘 모르겠다. 자세한 내용을 전하기에는 지면이 아깝다. 관련 기사 주소를 아래에 실으니 관심 있는 독자는 찾아보시길.

 

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7757
(경향신문. 봉준호→알랭 드롱→리플리증후군→문정부 비판... 나경원의 ‘무리수’. 2019.05.28

 

지금까지 영화 ‘기생충’에 대한 국내외 반응, 영화평론가들의 평론, 국내 정치집단의 논평을 살펴봤다. 이제 슬슬 독자들도 지루해할 것 같지만 ‘기생충’에 대한 가장 중요한 평가가 남아있다. 바로 ‘기생충’의 투자·배급사인 CJ ENM을 계열사로 둔 CJ그룹의 이재현 회장의 평가다. 이재현 회장은 지난 7월 23일에 있었던 CJ ENM의 업무보고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영화 ‘기생충’으로 국격을 높였다”

 

이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오해하지 마시라. 이회장의 ‘명징하게 직조한’ 한 줄 평 때문이 아니다. 그가 계열사 업무보고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해졌기 때문이다. 이분이 누구신가? 2013년 500억대 탈세와 700억대 회삿돈 횡령으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후, 감옥에서는 딱 4개월만 살고 내내 서울대병원 특실에서 지내다 ‘샤르코마리쿠스’라는 희귀유전 질병으로 생명이 위독하다고 하여 지난 정부에서 특별사면이 된 사람이 아닌가?

 

그분이 마침내 해낸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인 일을. 그야말로 영화가 따로 없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지난해 11월 10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응급차량에 실려 법원에 들어서고 있는 모습. 유전질환인 근위축증과 신장 이상 등으로 이 회장은 최근 '살고 싶다'고 주위에 토로할 정도로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다고 한다. 이새론 기자
(출처: BizFact. 2016.07.22. http://news.tf.co.kr/read/economy/1648131.htm)

 

2. 영화 ‘기생충’을 통해 봉준호 감독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영화가 끝나고 든 최초의 의문은 ‘기생충’은 누구냐는 것이었다. 박사장 가족인가?, 아니면 기택 가족과 문광 부부인가?

 

영화에서 기택 가족은 “박사장이 갑자기 집에 오면 재빨리 몸을 숨겨야 하는 바퀴벌레” 같은 존재로, 박사장 집 지하 방공호에서 사는 근세 역시 “박사장님 리스펙!”을 외치며 살아가는 노예 같은 존재로 묘사된다. 따라서 봉준호 감독에게 기택 가족과 문광부부는 ‘기생충’이다.

 

봉준호 감독이 기택 가족과 문광 부부를 ‘기생충’으로 묘사한 이유는 단지 박사장의 물질적 부 일부를 이들이 허가 없이 훔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애초 이들이 불법적 방법(학력 위조, 사기, 거짓말, 모함 등)으로 박사장 집에 들어오는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부는 기택 가족이 박사장 집에 어떻게 들어올 수 있는지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의 결말은 그들이 저지른 ‘죄’에 대하여 기택 딸의 죽음, 문광부부의 죽음 그리고 기택의 지하 방공호 유배라는 ‘벌’로 마무리된다. 박사장도 기택의 칼에 찔리지만, 박사장이 죽었는지 살았는지에 대해서 영화는 침묵한다.

 

물론, 봉준호 감독이 기택 가족과 문광 부부는 ‘죄’ 많은 기생충이고 그래서 ‘벌’을 받은 것으로 각본을 만들었다면 영화는 진부해지고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영리하게 박사장 가족을 통해서 영화를 비튼다. 영화에서 박사장은 근세가 자기 집 지하에서 수년째 기생한다는 것도 전혀 눈치 못 채며, 기택 가족의 뻔한 거짓말과 사기 행각에도 어리숙하게 넘어가는 순진한 존재다. 아니, 순진하다 못해 멍청하다. 더군다나 박사장 부부는 기택 가족의 도움 없이는 자녀교육, 집안 살림, 운전 심지어 ‘짜파구리’ 하나도 스스로 만들어 먹지 못하는 무능력한 존재다. 따라서 봉준호 감독의 시선에는 박사장 부부도 ‘기생충’이다. 그들이 ‘기생충’이지만 끝내 ‘벌’을 받지 않는 이유는 그들의 존재는 합법이기 때문이다. ‘선 넘는 것’을 경계하고, 지하철 타는 사람의 특유한 ‘냄새’에 진저리 치는 것은 ‘취향’의 문제이지 ‘죄’를 지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은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서처럼,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찰나의 순간이나마 ‘역전’될 수 있다고 암시한다. 박사장 가족이 외출한 사이에 박사장 집 거실에서 행복한 한때를 보냈던 문광 부부의 과거 회상 장면이 그러한 암시이며, 박사장 가족이 캠프에 간 사이에 제집인 양 즐기던 기택 가족의 장면도 그러하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은 현실에서는 주인과 노예의 역전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박사장이 갑자기 집에 들어오면 기택은 바퀴벌레가 되어 서둘러 몸을 숨겨야 하고 문광 부부는 지하 방공호에 내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 ‘기생충’에서 봉준호 감독은 ‘주인과 노예의 역전’인 ‘계급혁명’이 현실에서는 왜 불가능한지를 이야기한다.

 

우선, 기택 가족과 문광 부부는 불법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기택 가족과 문광부부는 ‘박사장 집’으로 상징되는 자본의 세계에 들어오기 위하여 불법적 수단을 사용했다. 따라서 그들은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존재, 즉 ‘기생충’이다.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에게 자신의 ‘죄’에 대해서 합당한 대가인 ‘벌’을 죽음으로 내린다. 다음으로, 기택 가족과 문광 부부의 낮은 계급의식이다. 문광의 남편 근세는 죽는 순간까지도 “박 사장님 리스펙!”을 외치며 죽었다. 기택은 “자신의 아들과 박사장 딸이 결혼하면 이 집은 사돈집”이 되는 것 아니냐는 계급상승욕구를 드러내며 자신의 존재에 대한 성찰을 보이지 않는다. 이런 낮은 계급의식으로 계급혁명은 힘들다. 마지막으로, 기택 가족과 문광 부부의 연대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조마조마했던 장면은 문광이 기택 가족의 사진을 찍어 박사장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할 때 기택 아내가 문광에게 ‘동생’이라고 부르며 달래는 장면이었다. 만약 기택 가족과 문광 부부가 서로의 비밀을 눈감아주고 협조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러나 봉준호 감독은 문광의 “아가리 닥쳐! 개 쌍년아!”라는 대사를 통해, 노동자연대를 통한 ‘계급혁명’이 힘들다고 생각한다. 문광 부부와 기택 가족의 갈등은 ‘노노투쟁’으로 보이며, 결국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비극적 파국으로 끝난다.

 

영화 ‘기생충’을 보고 나서 기분이 씁쓸해졌다. 특히, 영화의 끝 장면에서 아들 기우가 박사장 집 지하 방공호에 갇힌 아버지 기택에게 “돈을 벌겠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그 집을 사겠습니다.”라는 대사는 씁쓸함을 넘어 더러운 기분까지 느끼게 했다. 영화를 보고 기분이 안 좋았던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유명 유튜버도 영화 ‘기생충’에 대해 “분명히 실컷 웃었는데, 혀에 쓴맛이 감기는 이유, 기우의 꿈이 얼마나 허황된지를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평했으니(유튜브, 라이너의 컬쳐쇼크).

 

영화 ‘기생충’에 대한 일반 관객의 감상평을 검색하다가 찾아보다가 가장 격하게 공감 가는 질문과 답변을 ‘네이버 지식인’에서 발견했다.

 

Q : 영화 기생충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뭔가요? 기생충을 보고 생각해보면서 영화가 어떤 걸 이야기하고 있는지는 알겠는데 이게 세상에 전하려는 메시지를 모르겠어요. 결말에서 제일 부와 어울리고 상황을 꿰뚫어 보던 기정(기택 딸)이 죽고 기택은 기생충으로 평생 살게 생겼고 충숙(기택 아내)은 거의 존재가 지워졌고 기우는 또 헛된 계획을 세우잖아요. 근데 봉준호 감독이 계급은 변하지 않는다는 소리를 하고 있는 건 아닐 테고. 블랙코미디로 비꼰다고 할 수 있겠는데,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하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 건가요? 그렇다면 지식인분들의 개인적인 의견이라도 좋으니 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 "자신의 좋지 않은 처지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옳지 않은 곳에서 찾지 말라." 이 경고적인 메시지는 영화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전달하는 것 같습니다. ​"계급 간의 역전이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잔인한 메시지는 기우가 "훗날 돈을 많이 벌어서 그 집을 살 것이다"라는 엔딩이 전달하려는 메시지 같구요. ​참고로 이 영화의 궁극적인 메시지는 최대한 그럴듯하게 해석할 수는 있겠으나 사실상 없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애칭이 ‘봉테일’이라고 한다. 이 말은 봉주호 감독이 영화에서 리얼리티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는 감독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지독한 현실주의자 봉준호 감독이 보기에 노동자의 계급의식의 발전과 노동자연대를 통한 계급혁명은 기우의 “돈을 벌어 박사장 집을 사겠다는 다짐”처럼 현실적이지 못하다. 따라서 현실주의자 봉준호 감독의 변명은 “그래, 인정하기 싫겠지만, 이게 바로 우리가 사는 현실이고, 난 그걸 그대로 보여주었을 뿐이야”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종로에서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박근혜 탄핵!’을 위하여 광장에서 매일 촛불을 들었던 친구며, 근본적 사회혁명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공감하는 친구였다. 그 친구와 술 한잔하며 여러 사회·정치적 쟁점들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그런데 이야기하면 할수록 그 친구의 생각이 예전과 다르게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야기 막판에 그 친구가 툭 던진 말. “문빠가 어때서. 나도 문빠야”였다. 그 친구는 오히려 내게 반문했다. 좌파에게는 혁명을 위한 구체적 방안이 있냐고. 무능한 좌파보다는 유능한 문빠가 낫지 않겠냐고. 이것이 현실이라고.

 

봉준호 감독이 바라보는 현실이 내 친구가 바라보는 현실과 많이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봉준호 감독이 바라보는 현실에서는 4,644일의 투쟁을 통해서 복직을 이끌어 낸 콜텍 노동자들도, 425일 굴뚝 고공농성의 파인텍 노동자들도, 삼성에서 노조 만들려다가 해고돼 58일째 고공농성 중인 김용희씨도, 한국도로공사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20여 일째 경부고속도로 상행선에서 투쟁하는 1,500명의 톨게이트 노동자들도 ‘유령’일지 모른다.

 

현실은 봉준호 감독 같은 자칭 ‘진보주의자’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이들이 노동자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도덕’적으로 살아야 하며, ‘혁명’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박근혜를 탄핵해야만 하는 이유는 자본가 정부의 대표이기 때문이 아니라 비도덕적이기 때문이다. ‘문빠’로 변한 이유는 현 정부가 노동자 정부여서가 아니라 문재인이 박근혜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봉준호 감독이 현실을 해석하고 영화 ‘기생충’을 통해서 들려주는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영화 ‘기생충’에 대해 한 줄 평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자본의 힘을 빌려 이야기하다. 계급혁명은 꿈도 꾸지 말라고.”

 

우연이 ㅣ 사실연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