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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복간호/실천 복간 7호

『실천』 복간 7호 발간사

사회실천연구소 2024. 12. 3. 12:56

권두언

어떻게 할 것인가

 

나라가 엉망진창이다. 이재명이 다섯 건의 재판 가운데 가장 어렵다는 위증교사 사건에서 재판에서 무죄 판결이 났다. 그 많은 재판이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이제 시작이다. 윤석열과 김건희를 규탄하고 퇴진을 원하는 전국의 교수연구자들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과 이재명,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뒤엉켜서 끝도 없이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다.

 

윤석열은 김건희를 야당이 악마화한다면서 억울하단다. 그리고 지지율과 무관하게 묵묵히 개혁을 추진하겠단다. 국정기조를 바꿔야 한다고 했더니 부부의 휴대전화를 바꿨다. 공정과 상식이 실종됐다고 하니까 김건희에 대한 사랑과 거부권이 공정과 상식이란다. 트럼프의 당선으로 향후 한미관계 방식을 물었더니 골프로 해결한단다. 정말 기괴한 인물이다.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고, 후안무치의 뻔뻔함이 온 누리를 뒤덮고 있다. 거짓말이 일상이고 남을 탓하기만 하는 무능함, 변명만 늘어놓는 무책임함 그리고 아는 거 하나 없는 무지함. 차고 넘쳐나는 부정과 비리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용서하기 힘든 정권이다.

 

이재명은 정부 여당의 징치보복으로 인해 너무 분하고 억울하단다. 이를 촛불로 풀어달란다. 정말 염치가 없다. 이재명은 그냥 포퓰리스트다. 노동자 민중에 대한 책임감은 없고, 단지 표만 생각하고 자신의 권력만 생각한다. 위성정당에 참여했던 정당, 무늬만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민주노총 현 집행부조차 윤석열 퇴진만 외치면서 다들 민주당 줄서기에 바쁘다.

 

물론 윤석열은 퇴진해야 한다. 그런데 노동자 민중 대부분이 윤석열에 분노하고 있는데도 박근혜를 퇴진시킨 촛불처럼 대중적인 힘이 모이지 않는 이유를 민주당만 모르나 보다. 바로 이재명과 민주당이 집권하는 것도 싫기 때문이다. 비민주적인 민주당이 집권한들 세상이 조금이라도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야당 지지자가 윤석열과 이재명은 그래도 다르니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하지 말았으면 좋겠단다. 도토리 키재기는 키가 본질이 아니라 도토리가 본질이다.

 

그보다 이들은 한국의 빈곤율이 38.1%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지 모르겠다. OECD에서 압도적인 1위다. 비수급 빈곤층이 많고 기초연금 인상이나 국민연금 개혁도 지지부진하다. 노조 조직률도 낮다. 조세 정책은 친자본적이다. 청년들의 고통은 오래된 얘기다. 자영업자들의 고통도 오래된 얘기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단 며칠이라도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다. 2023년 교제 폭력에 의해 살해당한 여성이 192명이다. 보수양당이 입버릇처럼 떠들던 민생은 바로 이런 거다.

 

지금의 한국은 헤겔이 우려했던 국가가 해체된 상황이다. 입법부를 장악한 다수 야당과 집권 여당이 쉴 새 없이 충돌하고 있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권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탄핵발의권을 남용하고 있고, 반대로 윤석열 정권은 거부권을 남발하며 입법부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국가 그 자체는 이미 행정부와 입법부의 상호대립 속에서 해체돼 기능부전 상태에 빠져 버렸다.

 

그래서 비전과 전망이 불투명해 보인다. 하지만 꼭 그렇지 않다. 윤석열의 파행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진보의 가능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통령의 무능, 무책임, 무지가 역사를 퇴행시키고 있지만 노동자 민중은 새로운 체제 전환을 향한 여정을 시작했다. 반윤석열 뿐만 아니라 탈자본의 새로운 역사를 더 크게, 더 오래 만들 것이다. 윤석열 때문이 아니라 그 덕분에 그를 짓밟고, 계속 전진할 것이다.

 

2024년 올해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트럼프의 귀환이다. 트럼프가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막는다고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재등장은 국제 질서에 더 큰 혼란을 예고할 가능성이 크다.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무너지는 경향이 있는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에 비해, 미국인들은 트럼프를 선택함으로써 더 이상 세계 패권의 부담에서 벗어나기를 스스로 결정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적 의미는 물론 상당할 것이며, 특히 국제무역 시스템에서 가장 세계화된 부분인 아시아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

 

트럼프의 재집권이 미국 예외주의 종말을 가져오며, 미 제국이 끝났음을 의미한다는 미국 내 분석에 대해서 공감하는 바가 크다. 이는 미국을 종주국으로 삼고 미 패권에 의존하여 조작된 자유질서 가치를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한국으로서는 매우 의미가 있다. 트럼프가 원하는 것은 한국에 대한 보호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무기 수출 등으로 생기는 이익만을 최대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는 더 이상 한국의 지배계급을 만족시켜주지 못할 것이다. 이윤만 축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의 자본은 점점 복잡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며 트럼프의 전략에 대한 예측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한국의 노동자 민중이 떠안게 될 것이다. 그나마 미국의 청년들이 몇 년 전부터 사회주의에 대한 선호도가 점점 상승하고 있다는 소식이 아주 소박한 위안이 될 것이다.

 

이번 실천복간 7호에는 매월 정세토론회 발제문을 실었다. 먼저 4월 토론회 발표한 글은 배성인의 <22대 총선과 진보정치의 연결된 위기>이다. 이번 총선의 특징은 정의당이 원내 정당에서 탈락했다는 것, 반면 진보당이 위성정당에 참여해서 원내 정당으로 진입했다는 것, 진보당의 위성정당 참여는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을 위배하는 행위라서 징계를 해야 하는데, 하지 않았다는 것 등이다. 결국 습관적인 진보정치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그것은 기존의 진보정당을 대체하는 좌파정당의 건설을 통해서 나타나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5월에 발표한 두 번째 글은 이형로의 <제국주의 전쟁의 본질과 국제주의>이다. 제국주의 전쟁에서 한쪽 편을 들어 노동계급 운동이 발전한다거나 혁명적 국제주의의 부활에 이바지한다는 것은 명백한 거짓이다. 국제주의자는 모든 형태의 민족주의와 전쟁을 거부하고 자본주의 체제 전복을 위한 혁명적 대안을 옹호해야 한다. 특히 노동계급은 민족주의를 비롯한 모든 지배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노동계급 공동의 이익을 위해 민족과 국경을 넘어 연대하여 자본주의 체제 전복을 향해 투쟁하는 것이다.

세 번째 글은 홍수천 <레닌: 제국주의와 세계프롤레타리아혁명>이다. 금년은 레닌 서거 100년이 되는 해이다. 레닌은 제국주의 시대를 프롤레타리아 사회혁명의 전야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사회혁명은 한 나라에서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아니라 세계적 프롤레타리아혁명을 말한다. 제국주의가 세계적 자본주의 체제이므로 사멸해가는 자본주의를 타도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세계적 프롤레타리아혁명 이외에 다른 것일 수가 없다.

7월에는 오세철이 <국가자본주의,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주제로 발표를 했다. 그는 러시아 혁명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이었음에도 국가자본주의로 역이행하는 역사로 나타났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는 북한, 즉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나 중국도 예외가 아니다. 현재 동아시아의 북중러와 한미일 대립구도는 핵을 포함 살상 무기로 무장한 제국주의 사이 대립과 갈등이다. 이들이 벌이는 전쟁을 차단하는 방법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스스로 계급전쟁을 통해 서로 연대해서 자본주의를 전복하고 자유로운 개인이 진정으로 연합하는 인류의 미래인 코뮤니스트 사회를 건설하는 길이다.

정세토론회 마지막 글은 이상윤의 <윤석열 정부하의 의정 갈등은 허구적 갈등과 대립이다>이다. 9월에 발표했다. 현재의 의정 갈등은 허구적 대립에 기초한 가상적 권력 투쟁이라는 것이다. 실제적 대립은 의료 비용을 통제하려는 총자본과 의사 집단 간의 갈등, 의료 공급의 주도권을 둘러싼 국가/관료와 의사 집단 간의 갈등,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착취당하는 전공의와 의료자본 간의 갈등이다. 의사 수 증원 문제, 지역 의료 문제, 필수 의료 문제 등 의료 공급의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여 국민의 의료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한다. 문제는 방식인데, 다른 시스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역시 계급투쟁이다.

 

이번 호에는 두 편의 번역 글을 실었다. 하나는 정인의 <레닌 시기의 코민테른, 1919-1923>이다. 레닌 시기의 코민테른은 원칙과 모순의 충돌로 늘 긴장상태였다. 대중적인 공산당을 강화하는 과업은 교의적 논쟁과 엄격한 규율이 부과되면서 훼손되었고, 이는 대중 정당의 창설을 방해했다. 1921년에는 세계혁명에 대한 코민테른의 공약이 소비에트 국가이익과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볼셰비즘의 반민주주의적 인식과 태도는 독재적 본질을 드러냈다. 처음부터 코민테른이 지나치게 러시아 색을 띠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다른 하나는 김충석의 <3인터내셔널 그리고 역사에서 제3인터내셔널의 위치>이다. 레닌에 의해서 19194월에 작성한 이 글은 코민테른 설립의 원칙과 의미를 이전의 인터내셔널을 평가와 함께 잘 드러내고 있다. 본문 내용 중 레닌은 마르크스를 읽고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첨예한 순간에, 모든 심각한 계급 갈등에서, 양자택일은 부르주아지의 독재가 아니면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마르크스의 경제적 또는 정치적 원칙들에 대해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라고 했다.

 

이번 호 이미지에 담긴 작은 역사는 다섯 번째다. 최규진은 지난 호에 이어 <일본식민주의와 군사문화의 장면들(2) - 국방체육, 교련의 체육화: 운동회>를 주제로 했다. 전시체제기의 국방체육인 운동회를 다루고 있다. 국방체육의 논리 속에서 학교체육에서는 군사교육과 체육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일반인에게도 체육의 군사화를 적용했다. 교련의 스포츠화 또는 체육의 군사화라고 부를 수 있는 현상이 만연했다. 여기에는 일제의 지배정책과 일상생활 통제 메커니즘이 포함되어 있다. 권력은 어떻게 개인을 훈육하고 통제하는가. 또 어떻게 애국의 논리로 사람들을 포섭하여 국민으로 만들어가는가. 그 국민을 어떻게 인적 자원으로 동원하여 전쟁으로 몰아가는가. 매우 길지만 흥미진진하다.

 

사회실천연구소에는 세 개의 지상강좌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번 호에는 필자의 사정으로 김진업의 과학으로 읽는 자본론(7)’만 싣게 되었다. 주제는 <소련은 왜 무너졌을까>이다. 소련은 왜 무너졌느냐고? 필자는 한 문장으로 축약하고 있다. 현실의 자본주의는 세계체계로 존재하므로, 개별국가의 변혁이 세계체계의 변혁으로 이어지지 않는 한, 그 변혁은 지속될 수 없거나 또는 지속을 대가로 변혁의 왜곡이 일어난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복간 7호를 발간하는데 무려 1년이 걸렸다. 이유는 간단하다. 연구소의 나태함이다. 송구함의 극치다. 21세기 들어와 자본주의 체제는 늘 위기다. 우리는 지금 불평등의 극대화만이 아니라 기후위기와 환경위기, 패권의 변화와 전쟁의 위기, 인공지능을 포함한 4차 산업혁명과 노동과 인류문명의 위기, 공론장의 붕괴와 민주주의의 위기 등 복합적 위기를 겪고 있다. 대안은 항상 같지만 같지 않다. 우리의 일상은 매일 다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를 넘어 새로운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이다.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202411

사회실천연구소를 대신하여 배성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