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실천연구소

전후 미국 경제의 이윤율 하락 본문

실천지 (2008년)/2008년 1월호

전후 미국 경제의 이윤율 하락

사회실천연구소 2014. 12. 15. 14:52

전후 미국 경제에서 이윤율 하락: 경쟁의 증가 때문인가 아니면 비생산적 노동의 증가 때문인가?

 

Fred Moseley

 

 

Moseley는 이윤압박설에 대한 Brenner의 비판 및 전후 제조업 부문 경쟁의 격화로 인한 제조업 부문 이윤율 저하에 대한 Brenner의 설명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Brenner가 제조업에서의 이윤율 저하와 전체 경제의 일반 이윤율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윤과 이윤율에 대해 Brenner가 암묵적으로 가정하고 있는 이론이 일반 이윤율은 개별적 가격들과 함께 동시적으로 결정되며 양쪽 모두는 투입물과 산출물의 주어진 물질적 양으로부터 도출된다는스라파 이론 또는 선형 생산 이론이며 Brenner의 설명은 스라파의 일반 이윤율 결정 구조에서 봤을 때 잘못된 것이라는 Duménil, GlickLévy, 그리고 Zacharias의 비판과는 또 다른 관점에서, MoseleyBrenner가 암묵적으로 가정하고 있는 이론은 일반 이윤율은 개별 산업들의 가중 평균 비율로서 결정된다라고 보며 이를 이윤 및 이윤율에 대한 맑스의 이론에 입각해서 비판하고 있다(기본적으로 MoseleyBrenner가 이윤과 이윤율에 대한 명백하고 뚜렷한 이론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하며, 이러한 이유로 자신은 Brenner가 이윤과 이윤율에 대해 갖고 있는 이론을 암묵적으로 유추할 수밖에 없다고 밝히고 있다). Moseley에 따르면 Marx일반 이윤율은 개별 산업 이윤율이 결정되기 전에 먼저 결정되며, 개별 산업 부문에 있어 경쟁(또는 독점)의 정도는 전체 경제의 잉여가치 총량에 있어서 분배에 영향을 미칠 뿐 결코 일반 이윤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는 점에서, 일반 이윤율에 대한 Marx의 이론은 Brenner의 암묵적 이론과는 확연히 다름을 드러내고 있다. 끝으로 Moseley는 장래 미국 및 세계 경제의 이윤율 회복 여부는 Brenner의 설명과 같이 제조업 부문의 경쟁 정도 변화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의 비율 변화에 달려 있으며, 이러한 점에서 유통 부문 비생산적 노동을 감소시킬 수 있는 컴퓨터 기술의 발달이라는 새로운 요인에 주목하고 있다.

 

 

로버트 브레너(Robert Brenner)가 쓴 세계적 동요의 경제학출판은 중요하고 매우 반가운 일이다. 브레너의 이 에세이는 다시 한 번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일어났던 경제 위기 분석에 세상의 주목을 끌게 만들었다. 브레너는 그때 일어난 경제 위기가 아직까지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여전히 계속되는 이러한 위기의 근본 원인을 더 잘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으며, 또한 이러한 원인들의 특성에 대해서 공개적인 토론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위기의 원인들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필수 조건과 앞으로 몇 년 뒤에 완전하고 영구적인 회복의 가능성을 결정한다. 브레너의 이 에세이는 다시 한 번 이러한 질문들을 좌파 아젠다에 정면으로 올려놓았으며, 이는 중요한 공헌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물론 브레너가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경제의 동학들을, 특히 지난 25년 동안의 경제 위기의 원인들을 이해하는데서 중심이 되는 설명 변수로서, 이윤율을 강조하는 것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를 포함한 많은 급진적인 경제학자들은 최근의 위기를 설명하는 중요한 변수로서 이윤율에 대해서 비슷하게 강조해왔다. 이러한 관점에서,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모든 주요한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이윤율의 상당한 저하는 1970년대 이래로 이러한 국가들을 괴롭혀온 쌍둥이 재난이라 불리는 더 높은 실업과 더 높은 인플레이션의 근본 원인이었다. 지난 경기 순환(business cycles)에서처럼, 이윤율의 저하는 사업 투자의 저하와 높은 실업률을 낳았다. 전후 기간에 하나의 새로운 요인은 1970년대 많은 정부들이 이러한 실업을 줄이려고 노력하면서 케인즈 경제학의 팽창 정책들(더 많은 정부 지출, 더 낮은 이자율, 등등)을 채택함으로써 더 높은 실업률에 대응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업률을 줄이기 위한 정부의 시도들은 자본주의 기업들이 그들의 이윤율 저하를 역전시키기 위해 가격을 더 빠른 비율로 올림으로써 수요에 대한 정부의 자극에 대응함에 따라서, 일반적으로 더 높은 인플레이션을 초래했다. 1980년대에, 금융 자본가들은 이러한 인플레이션의 증가에 반감을 가졌고, 일반적으로 정부가 제한적인 정책들(더 적은 정부 지출, 더 높은 이자율, 등등)을 채택하도록 강요해왔다. 그 결과 인플레이션은 더 낮아졌지만, 더 급속하게 실업률이 늘어났고 아울러 삶의 질도 떨어졌다. 그러므로 정부 정책들은 발생되어온 실업과 인플레이션의 특정한 결합에 영향을 주어왔다, 하지만 이러한 쌍둥이 재난둘 모두의 근본 원인은 이윤율의 저하였다. 대부분의 주류 경제학자들이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일어난 경제 위기를 설명하는 데서 이윤율의 저하를 거의 전적으로 무시해왔다는 것은 특이할 만하다.

나는 1970년대 이래 세계 자본주의 경제의 주된 추진력이 이전의 높은 수준으로 이윤율을 회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자본주의 기업들에 의한 잔인한 시도들이었다고 주장한 브레너에 동의한다. 이윤율을 증가시키기 위해 쓴 이러한 전략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 방식으로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려는 시도였다. 즉 그러한 시도는 직접 임금의 삭감, 임금보다 더 높은 물가 상승, 사업체들을 세계의 저임금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 등등이다. 이러한 전략이 성공한 것은 최근 수십 년 동안 높은 실업률에 의해 촉진되어왔다. 이러한 임금 삭감이 노동자의 생활수준에 미친 부정적인 영향은 잘 알려져 있다. 미국 경제에서 평균 실질 임금은 지난 20년 동안에 약 20퍼센트 정도 줄어들었다.

그러나 정말 놀랍고 심상치 않은 사실은 실질 임금이 전반적으로 줄어들었지만 미국 경제에서 이윤율은 지난 하락분 가운데 약 40퍼센트 정도만이 지금까지 회복되었으며, 따라서 현재 이윤율은 여전히 예전 전후 최고점보다 못한 25~30퍼센트에 머물러있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 조건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진행된 이윤율을 증가시키기 위한 자본주의 기업들의 광범위한 시도들이, 지금까지 이윤율 회복에서 부분적인 성공만을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윤율이 충분히 회복되지 못한 것은 1990년대에 왜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경기 침체 하의 인플레이션)이 계속되었는지, 그리고 왜 침체(stagnation)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은지에 대한 주요한 원인이다.

급진적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이윤율 저하에 대한 가장 공통적인 설명은 일반적으로 이윤압박설로 일컬어지는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이윤율의 저하는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의 노동자의 투쟁에서 비롯된 임금상승 때문이었다. 이 기간의 낮은 실업률이 노동자의 구매력을 늘렸고 노동자가 자본가의 이윤에 손실을 끼쳐 높은 임금을 얻는 것을 가능케 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현재 위기는 주요하게는, 임금을 상승시키고 이윤율을 저하시킨 노동자의 힘과 투쟁성의 결과이다.

나는 이윤율 저하를 설명하는 것으로서 이윤압박설에 대한 브레너의 비판에 동의한다. 이윤압박설이 지닌 중대한 결점은 왜 이윤율이 오랫동안 낮은 상태로 유지되어왔는지, 왜 경제위기가 오랫동안 지속되어왔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일 이윤율 저하의 원인이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 낮은 실업률 때문에 더 강력해진 노동자의 힘이라고 한다면, 1970년대 이래 압도적인 실업률의 상승은 틀림없이 노동자의 힘을 아주 약화시켜서, 이윤율이 그 이전의 높은 수준으로 회복해야만 했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비판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나 자신이 이전에 몇 개의 출판물들에서 그것을 수행해왔다. 이윤압박설은 명백히 불충분하다. 그것은 이윤율의 저하를 설명할 수 있지만, 그것은 왜 20년 동안 높은 실업과 낮은 임금이 유지되었는데도, 이윤율이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 우리는 왜 이윤율이 오랫동안 아주 낮은 상태로 유지되었는지를 밝힐 수 있는 이윤율 저하의 다른 더 나은 설명들을 찾아내야만 한다.

그러므로 내가 브레너에 동의하고 그를 칭찬하는 많은 중요한 지점들이 있다. 그러나 나와 브레너는 이윤율이 왜 낮았는지 하는 원인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에서 다른 생각을 지녔다. 다음 부분에서는 브레너가 이윤율 저하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 지를 간단히 요약하고 비판할 것이다.

 

 

브레너의 이론

 

먼저 이윤율 저하에 대한 브레너의 설명에는 총체적인 문제가 있다. 어디에도 전후 이윤율 저하에 대한 그의 설명이 기반하고 있는 이윤과 이윤율에 대한 명백하고 뚜렷한 이론이 제시되어있지 않다. 전후 경제에서 이윤율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들과 이윤율 저하를 초래했던 요인들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지만, 명백하고 뚜렷하게 제시되고 요약된 일반 이론은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명쾌함을 위하여) 수학 용어들은 발견되는데도 말이다. 그러므로 독자는 브레너가 염두에 두고 있는 이윤에 관한 암묵적인 일반 이론이 무엇인지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은 쉽지 않다, 어떠한 구절들은 상호 모순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브레너의 이윤 이론은 맑스의 이윤 이론이 아니라는 점이다. 브레너는 이윤이 노동자의 잉여노동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는 맑스의 이윤 이론을 전혀 말하지 않았다. 맑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은 오키시오 정리(Okishio Theorem)에 의해 논박되었던 것처럼 내쫓아졌다(p. 12).

더욱 구체적으로, 브레너는 전후 미국 경제에서 이윤율 저하를 주로 제조업 분야에 집중해서 설명하고 있다. 브레너는 제조업에서 이윤율이 떨어진 까닭을 서독과 일본에서부터 새로운 낮은 비용 생산자의 진입과 함께 196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해외 경쟁의 증가로 설명하고 있다. 이는 미국과 세계 경제에서 제조업 상품들의 과잉 설비와 초과 공급이라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제조업 상품의 초과 공급은 가격 하락의 압력을 가져왔고 제조업에서 이윤율을 떨어트렸다.

브레너는 또한 제조업에서 과잉공급과 과잉설비가 25년 동안이나 계속된 이유, 제조업에서 이윤율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한다. 주요 원인들은 다음과 같다. (1) 고비용 기업들은 제조업에서 많이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a) 그 기업들은 매몰 비용인 높은 고정자본 비용을 가지고 있으며, 여전히 유동자본으로 이윤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b) 그들의 산업들에서 만들어오면서 그 기업들은 무형자산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2) 미국에서 거대 제조업 기업들은 해외의 저비용 생산자들로부터 증가된 경쟁에 대응했다. 이러한 경쟁은 그 산업으로부터 존재하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훨씬 더 싼 비용으로 훨씬 더 새로운 기술들을 집중적으로 개발하는 것에 의해서 이루어졌으며, 이는 과잉설비의 문제를 격화시켰다. (3) 1980년대 초반 아시아의 신흥 공업국들(남한, 대만, 등등)에서 주요 제조업 산업들(철강, 자동차, 등등)로의 진입은 과잉설비의 문제를 더욱 격화시켰다. 브레너는 자신의 이론이 이윤압박설보다 뛰어나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이윤율이 왜 저하했는지 뿐만 아니라, 왜 이윤율이 20년이 지나도록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나는 일반적으로 제조업에서 이윤율 저하에 대한 브레너의 설명에 동의한다. 나는 이러한 저하의 중요한 원인은 1960년대 중반 이래 독일과 일본 제조업으로부터 증가된 경쟁에 의해 초래된 과잉설비였다는 점에 동의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문제가 남아있다. 제조업에서 이윤율 저하와 전체 경제의 일반 이윤율 사이의 관계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는 일반 이윤율이 우리가 설명하고자 하는 결정적인 변수이기 때문이다. 제조업에서 이윤율의 저하가 필연적으로 일반 이윤율의 저하를 초래하는가? 더 넓혀서, 일반 이윤율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불행히도, 브레너는 이러한 중대한 문제에 대해 충분하게 다루지 않는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일반 이윤율에 대한 명시적인 이론은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제조업에서 이윤율 저하가 비제조업의 이윤율과 일반 이윤율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초기 브레너의 에세이에서(그의 이론에 대한 처음 초고에서, pp. 28-29) 그저 매우 간략한 이론적 논의가 있을 뿐이다. 이러한 간략한 이론적 논의는 다음과 같이 소개되고 있다. “[a] 제조업에서 이윤율 저하가 전체 경제의 이윤율 저하에 미치는 영향이라고 하는, 최종적인 주요한 논쟁점은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 브레너는 이러한 질문에 답하면서 제조업의 이윤율 저하는 적어도 비제조업에서 어느 정도의 이윤율 증가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후자의 투입물들을 값싸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전체 경제의 일반 이윤율에서 이러한 두 가지 상반된 경향들의 순 효과는 그것들의 상대적 크기에 달려있을 것이다. 브레너는 더 나아가, 만일 비제조업에서 실질 임금이 동일하다면, 일반 이윤율에서 순 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비제조업에서 이윤율의 증가는 정확히 비제조업에서 이윤율의 저하를 상쇄할 것이기 때문이고, 따라서 일반 이윤율이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브레너의 주장은 비제조업의 총 소득 수익(임금 + 이윤)이 제조업에서 소득 감소(이는 전적으로 이윤의 감소이다.)와 같을 것이라는 가정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른 말로 하자면, 전체 경제에서 총 소득(제조업 + 비제조업)은 제조업에서 이윤율의 감소에 의해 영향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가정은 어떠한 일반 이론에 기초하여 만들어졌는가?

이 가정은 또한 비제조업에서 산출물의 가격은 비제조업을 위한 투입물들의 가격 저하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내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그 비용들이 줄어드는 반면에, 비제조업 상품들의 가격은 동일하게 남아있는 것이다. 이윤은 가격에서 비용을 뺀 나머지이므로, 비제조업에서 이윤의 증가는 절대적인 양에서는 비용 감소와 동일하다. 여기서 비제조업 상품들의 가격 결정에서 어떠한 가격 이론이 가정되었는가? 그것은 제조업 분야에서 가정된 가격 결정의 이론과 일치하는가? 왜 비제조업에서 투입물 비용의 감소에 따라서 비제조업 산출물이 떨어지지 못하는 것인가? 일반 이윤율에 대한 완벽하고, 만족스러운 이론이 제시되기 위해 필요한 몇 가지 문제들이 있다.

재커리어스(Zacharias)와 뒤메닐(Duménil), 글릭(Glick)과 레비(Lévy)는 브레너의 일반 이윤율에 대한 암묵적인 이론은 스라파(스라파 학파)의 이론 또는 선형 생산 이론 이 이론에 따르면, 일반 이윤율은 개별적 가격들과 함께 동시적으로 결정되며 양쪽 모두는 투입물과 산출물의 주어진 물질적 양으로부터 도출된다. 이라고 해석해왔다. 이러한 저자들은 스라파(스라파 학파)의 일반 이윤율 결정 구조에서 볼 때, 브레너의 일반 이윤율 저하에 대한 설명은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브레너는 기술 변화는 대체로 노동생산성과 자본생산성 모두를 증가시킨다고 가정한다(보기를 들면, 1960년대 독일과 일본 제조업에서의 새로운 기술). 스라파(스라파 학파)의 이론에 따르면, 이러한 종류의 기술 변화는 늘 이윤율을 상승시키지, 그것을 절대로 감소시킬 수 없다. 뒤메닐과 글릭과 레비는 이러한 점을 간략하게 언급하고 재커리어스는 엄밀한 증명을 제공한다. 이 증명은 본질적으로 오키시오 정리와 같으며, 각각의 산업 사이에 서로 다른 기업들에서 다양한 기술적 조건들을 고려하면서 확장시킨 것이다. 브레너는 오키시오 정리를 이윤율 저하에 대한 맑스의 이론의 논박으로서 수용한다. 이러한 저자들은 오키시오 정리를 브레너 자신에게로 집중시키고, 그것이 이윤율 저하에 대한 그 자신의 이론을 논박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나는 스라파(스라파 학파)의 이론이 브레너가 간직하고 있는 이윤율 저하에 대한 암묵적 이론이라는 것에 대해 확실치 않다. 나에게 있어서 브레너는 이윤과 가격에 대한 다른 이론을 암묵적으로 가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에게 있어 브레너는 먼저 각각의 개별 부문(보기를 들면, 제조업과 비제조업 부문들)에서 이윤율을 결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각각의 부문에서 상품들의 가격은 이 부문에서 공급과 수요에 달려있다. 그 때, 이윤은 가격에서 비용을 뺀 나머지로서 결정된다. 최종적으로, 일반 이윤율은 개별 산업들의 가중 평균 비율로서 결정된다(보기를 들면, 제조업 이윤율과 비제조업 이윤율의 가중 평균. 이는 추측컨대 각각의 산업 또는 부문에서 총 자본의 비율로서 그 비중이 결정된다.). 이는 스라파(스라파 학파)의 이론과 매우 다르다. 스라파(스라파 학파)의 이론에서는, 개별 부문의 이윤율이라는 것은 없다. 일반 이윤율만이 있을 뿐이다. 모든 부문의 이윤율은 이러한 일반 이윤율과 같은 것으로 가정된다. 비슷하게 스라파(스라파 학파)의 이론은 브레너의 암묵적 이론처럼 일반 이윤율은 서로 다른, 동등하지 않은 부문 이윤율의 가중 평균으로서 결정되지 않는다. 그 대신에, 스라파(스라파 학파)의 일반 이윤율은 생산의 기술 조건들과 실질 임금으로부터 도출된다.

내가 브레너를 잘못 해석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의 이론은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브레너는 그의 기본적인 이론틀로서 스라파(스라파 학파)의 이론을 받아들였는지의 여부와, 또는 그가 암묵적으로 가정한 일반 이윤율에 대한 이론이 정확하게 무엇인지에 대해서 명백하게 설명해야만 한다. 현재 상태로는, 일반 이윤율의 결정과 제조업에서 이윤율과 일반 이윤율 사이의 관계에 대한 브레너의 이론적 설명은 매우 설득력이 없고 불완전하며 불충분하다. 요컨대, 일반 이윤율에 대한 어떠한 이론도 없는 것이다.

게다가, 에세이 후반에서 미국 경제의 이윤율 저하에 대한 브레너의 구체적인 설명(pp. 95-111)은 제조업에서 이윤율과 일반 이윤율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전에 그가 했던 간략한 이론적 논의를 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 이 구체적인 설명에서, 제조업에서 이윤율과 비제조업에서 이윤율은 개별적으로 그리고 독립적으로 논의된다. 여기에는 이전의 이론적 논의에서처럼, 제조업 이윤율의 저하가 비제조업 이윤율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어떠한 논의도 없다. 일반 이윤율에서 이러한 두 부문 이윤율의 상호 영향에 대한 어떠한 논의도 없는 것이다. 보기를 들면, 이 구체적인 설명에서 중간에 위치하는 표 9(p. 108)는 제조업 이윤율과 비제조업 이윤율의 추정치를 보여주지만, 여기에는 일반 이윤율에 대한 어떠한 측정치도 나타나있지 않다. 뒤메닐과 글릭과 레비는 우리는 일본과 독일 때문에 비롯된 국제적 경쟁이 미국 제조업에 손실을 주었다는 단순한 견해를 가질 뿐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한 가지 놀라운 결과는 브레너가 이전 이론적 논의에서 기초로서 예상했던 것과 같이(제조업에서 이윤율의 감소와 비제조업을 위한 투입물의 가격 하락 때문에) 비제조업에서 이윤율 또한 증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소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놀라운 결과는 얼마간의 설명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앞서, 브레너에 따르면, 비제조업에서 실질 임금이 상승된다면, 비제조업에서 이윤율 증가(제조업에서 이윤율의 감소로 인한)는 실질 임금이 동일할 때보다 더 작게 될 것이라는 점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주장은 제조업에서 이윤율 감소의 긍정적 효과들을 상쇄할 뿐 아니라, 비제조업 이윤율의 실제적 저하를 초래하기 위해서, 비제조업에서 실질 임금은 이 기간 동안 매우 두드러지게 상승했음에 틀림없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이러한 점에서는 브레너가 이윤압박설을 비판하고 있지만, 그의 이론은 또 다른 종류의 이윤압박설로 보인다. 어쨌든, 왜 제조업에서 이윤율의 저하가 브레너가 이론적 논의의 기초로서 예상했던 것처럼 비제조업 이윤율을 증가시키는데 실패했는지에 대한 얼마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맑스의 이론

우리는 앞서, 브레너의 이론은 일반 이윤율이 개별 부문(제조업과 비제조업) 이윤율의 가중 평균으로서 결정된다는 암묵적인 가정에 기초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과, 이러한 개별 부문들의 이윤율은 일반 이윤율에 앞서서 독립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와 달리, 맑스의 이론은 일반 이윤율과 개별 부문 이윤율 사이의 결정 순서에 관한 본질적으로 상반된 가정에 기초해있다. 맑스의 이론은 일반 이윤율이 부문 이윤율에 앞서 독립적으로 결정되며, 일반 이윤율은 전체 경제의 총계적인 특징들(주요하게 전체 경제에서 잉여 노동의 총합)에 의해 결정된다고 가정한다. 일반 이윤율에서부터 개별 이윤율의 편차들(보기를 들면, 제조업 이윤율)은 맑스 이론에 따르면 공급과 수요의 상대적 비율들에 의해서 나중에 결정된다는 것이다.

맑스는 그의 이론에서 이러한 기본적인 전제를 자본일반과 경쟁 사이의 구분에 의하여 표현했다. 자본일반에 대한 분석은 잉여가치의 총량과 전체 경제의 일반 이윤율의 결정을 포함한다. 반면에, 경쟁에 대한 분석은 경제의 서로 다른 부문들 사이에서(또한 잉여가치의 서로 다른 형태들 산업 이윤, 상업 이윤, 이자, 그리고 지대 사이에서) 미리 결정되어진 잉여가치 총량의 분배를 포함한다. 경제의 개별 부문들에서 공급과 수요의 상대적 비율은 서로 다른 부문들을 가로질러 잉여가치 분배와, 일반 이윤율 주위의 개별 이윤율의 편차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이러한 개별 편차들은 전체 경제에서 잉여가치의 총량, 또는 일반 이윤율의 결정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맑스 이론의 관점으로부터, 미국 경제의 제조업 부문에서 이윤율 저하는 전체 미국 경제에서 일반 이윤율 저하를 초래하지 않는다. 일반 이윤율은 개별 부문 이윤율의 가중 평균으로서 결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일반 이윤율의 저하가 경제 전체의 특징들(아래에 설명되는)에 의해 초래되었다. 일반 이윤율의 저하는 이번에는 제조업 이윤율과 비제조업 이윤율 모두를 떨어트린다. 가격 하락 압박을 가져온 1960년대 중반 이래 제조업에서 증가된 경쟁과 초과 공급이라고 하는 브레너가 강조한 원인들에 의해서, 제조업에서 이윤율의 저하는 비제조업의 이윤률 저하에 견주어 볼 때 훨씬 크다. 전후 초기 동안 미국 경제에서 제조업 부문은 대략 일반 이윤율에 두 배 정도 되는 독점 이윤율을 누렸는데, 왜냐하면 높은 진입 비용과 효율적인 해외 경쟁의 부재 때문이었다. 하지만 새롭게 출현한 해외 경쟁은 점차적으로 제조업에서 이러한 독점 이윤과 더 높은 이윤율을 불가능하게 했다. 그러므로 맑스 이론의 관점으로부터 우리는, 브레너가 주장해온 것이 경제의 제조업 부문에서 독점 이윤의 감소이지, 일반 이윤율의 저하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조업 부문에서 독점의 이러한 손실은 브레너의 그림 8(p. 103)에서 명료하게 나타난다.

비슷하게 맑스 이론의 관점에서부터 우리는, 제조업에서 계속된 과잉설비와 격렬한 경쟁이 왜 일반 이윤율의 회복을 제한했는가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오직 전후 초기에서와 같이, 독점 이윤을 다시 얻고 일반 이윤율보다 높은 이윤율로 상승시키기 위한 제조업 부문의 실패만을 설명해주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브레너의 이론은 비록 표면상으로는 상반된 이론들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독점 자본에서 바란과 스위지의 이론과 기본적으로 같다. 양쪽 이론들에서 기본 가정은 이윤율은 경제에서 경쟁의 정도(반비례로) 또는 독점의 정도(정비례로)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바란과 스위지에게는 전후 초기에 독점의 정도는 높았고, 그러므로 이윤율은 높았고 증가했다. 브레너에게는, 1960년대 중반 이래 경쟁의 정도는 증가했고 그리하여 이윤율은 저하했다. 이러한 두 이론들은 상호 모순적이지 않다. 그것들은 경쟁 또는 독점의 서로 다른 정도를 가지고, 두 개의 서로 다른 기간들에 적용된 본질적으로 똑같은 이론이다. 양쪽 이론 모두에서, 이윤율은 경쟁 또는 독점의 정도에 의존한다.

반면에 맑스에게는, 일반 이윤율은 경쟁 또는 독점의 정도에 독립적이다. 개별 부문들에서 경쟁 또는 독점의 정도는 그저 부문들 사이에 이윤 총량의 분배에 영향을 줄 뿐이며, 그것은 잉여가치 총량 또는 일반 이윤율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맑스는 일반 이윤율이 자본의 구성과 잉여가치율,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투하된 총자본으로 잉여가치 총량의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았다. 그는 일반 이윤율이 경쟁 또는 독점의 정도에 독립적이라는, 내가 브레너를 비판하고 있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근거에서, 폴 매틱(Paul Mattick)은 바란과 스위지를 비판했다.

 

 

일반 이윤율의 저하에 대한 맑스주의적 설명

 

여기서는 맑스의 이윤에 대한 이론과 내가 이전 연구들에서 표현해왔던 것에 기초하여 전후 미국 경제에서 이윤율의 저하에 대한 설명을 간략하게 요약할 것이다. 이러한 맑스주의적 설명은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에 대한 맑스의 구별을 강조하며, 그러므로 나는 맑스 이론에서 이러한 중요한 구별을 처음으로 매우 간략하게 검토할 것이다.

맑스의 노동가치론에 의하면, 자본주의 기업들에 고용된 모든 노동이 가치와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기업들 안에 얼마간의 노동은 맑스 이론에 의하면, 그들 혼자 힘으로는 부가 가치와 잉여 가치의 생산을 낳지 않는 기능들을 수행한다. 이러한 비생산적 기능들은 자본주의 경제 내에서 전적으로 필요하지만, 그럼에도 맑스 이론에 의하면 다음 단락에서 논의될 이유들 때문에 부가 가치 또는 잉여가치를 낳지 않는 것이다.

맑스 이론에 따르면, 자본주의 기업들 내에는 비생산적 노동의 두 가지 주요한 유형들이 있다. 유통노동(circulation labour)과 감독 노동(supervisory labour)이 바로 그것이다. 유통 노동은 구매와 판매, 회계, 수표, 화폐 교환, 광고, 채무-신용 관계들, 보험, 법률적 조언, 증권 거래, 등등과 같이, 상품들과 화폐의 교환과 관련된 노동이다. 교환은 본질적으로 동등한 가치들의 교환이기 때문에, 맑스는 유통 노동이 가치와 잉여가치를 낳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유통 노동은 그저 상품들로부터 화폐로, 또는 그 반대로 주어진 가치의 양을 바꿀 뿐이다. 감독 노동은 경영, 직접 감독, 기록 관리, 등등과 같은 기능들을 포함하는 생산 노동자들의 노동을 통제하는 것과 관련된 노동이다. 감독 노동이 생산을 위해 기술적으로 필요하지는 않지만, 노동자들의 노동 강도를 둘러싼 자본가들과 노동자들 사이의 적대적 관계 때문에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맑스는 이러한 노동은 상품의 가치를 증가시키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물론 맑스 이론에 따르면, 자본주의 기업들은 이러한 기능들이 가치와 잉여가치를 생산하지 않음에도, 이렇게 필요한 기능들을 수행하는 비생산적 노동자에게 지불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비생산적 노동의 비용들은 그것이 생산하는 가치로부터 벌충될 수 없다. 대신에, 이러한 비생산적 비용들은 오직 생산적 노동에서 생산된 잉여가치로부터 벌충되어야만 한다. 만일 이러한 비생산적 비용들이 생산적 노동에 의해 생산된 잉여가치보다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한다면, 자본가들을 위해 남겨진 이윤은 상대적으로 적게 될 것이다. 앞으로 살펴볼 바와 같이, 이러한 맑스주의 이론에 따르면, 비생산적 노동의 비용 증가가 미친 이러한 부정적인 영향은 전후 미국 경제 이윤율 저하의 주요한 원인이었다.

여기서 분석되는 이윤율은 이른바 전통적 이윤율이라고 불리는 정의상, 이윤량(P)과 총투하자본(K) 사이의 비율을 말한다.

 

(1) RP = P / K

 

맑스의 이론에 따르면, 이윤(전통적 이윤율에서 분자)은 연간 잉여가치 유량(S)에서 연간 비생산적 비용들의 유량(Uf)(주요하게 비생산적 노동 임금(Uw)과 비생산적 원료의 비용(Um)으로 구성되어 있다.)을 뺀 것과 같다.

 

(2) P = S - Uf

 

비슷하게, 맑스 이론에 따르면, 이윤율에서 분모인 자본 저량은 두 개의 요소들로 나누어진다. 불변 자본(C)(생산수단에 투하된 자본)과 비생산 기능들에 투하된 자본 저량(Us)이 바로 그것이다.

 

(3) K = C + Us

 

방정식 (2)(3)을 연립하면, 우리는 전통적 이윤율에 대한 다음과 같은 맑스주의적 방정식을 얻는다.

 

(4) RP = P / K = (S - Uf) / (C + Us)

 

최종적으로 우리는 위의 방정식 우변에 있는 모든 항들에, 노동력에 투하된 자본이며 맑스 이론에 따를 때 잉여가치의 원천이기도 한, 연간 가변자본 유량(V)를 나누면, 우리는 다음의 방정식을 얻게 된다.

 

(5) RP = (S/V - Uf/V) / (C/V + Us/V) = (RS - UF) / (CC + US)

 

방정식 (5)로부터, 우리는 이러한 맑스주의적 이론에 의하면, 이윤율은 잉여가치율(RS) (잉여가치와 가변자본의 비율)에 정비례하여 변하며, 자본의 구성(CC)(불변자본과 가변자본의 비율)과 비생산적 자본과 가변자본 간의 두 비율들(UFUS)에 반비례하여 변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나의 추정치에 의하면, 1947년부터 1977년까지 이윤율은 45% 저하했다(0.22에서 0.12). 같은 기간에 걸쳐, 잉여가치율은 17퍼센트 증가했고(1.40에서 1.63으로), 자본의 구성은 41퍼센트 증가했으며(3.58에서 5.03으로), UF 비율은 74퍼센트 증가했고(0.54에서 0.94), US의 비율은 117퍼센트(0.30에서 0.66으로) 증가했다. 그러므로 맑스주의적 이론에 의하면, 전후 미국 경제에서 이윤율이 하락한 까닭은 자본의 구성과, 비생산적 자본과 가변자본 사이의 두 가지 비율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Moseley1992년에 쓴 글에서, 나는 이윤율의 전체적 하락에서 이러한 결정요소들 각각의 개별적 기여들을 추정했다. 이러한 추정치에 의하면, UF의 비율은 전체적 저하의 대략 2/3정도를 차지하는, 이윤율 저하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결정요소이다. 이 기간 말까지, 연간 비생산적 노동의 비용(Uf)은 생산적 노동에 의해 생산된 총 잉여가치의 절반을 넘었다(대략 55퍼센트). 자본의 구성은 전체적 저하의 나머지 부분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UF 비율의 증가는 차례로 거의 전적으로 비생산적 노동과 생산적 노동 간의 비율(비생산적 노동과 생산적 노동의 상대적 평균 임금은 이 기간 동안에 다소간 불변인 채로 남아있었다)에서 대략적으로 상대적인 증가에 기인하였다. 비생산적 노동과 생산적 노동 사이의 비율은 83퍼센트 증가했다(19470.35에서 19770.64). 맑스주의적 이론에 의하면, 비생산적 노동과 생산적 노동 사이의 비율에서 이러한 매우 엄청난 증가는 전후 미국 경제에서 이윤율 저하의 주요한 원인이었다.

Moseley 1992에서, 나는 전후 미국 경제에서 비생산적 노동과 생산적 노동 간의 비율에서 이러한 매우 엄청난 증가의 원인들에 대한 예비적인 분석을 나타내었다. 비생산적 노동에 있어 두 가지 주요한 유형들 중에서, 지금까지 가장 중요한 것은 유통노동이었는데, 이것은 전후 기간 동안에 총 비생산적 노동에서 대략 80퍼센트 정도 차지하였다. 유통노동의 상대적 증가의 원인들은 많고 복잡하지만(부분적으로는, 매우 다양한 유형의 유통노동이 있기 때문이다.), 주요한 원인은 생산적 노동의 생산성에 비해 더 느린 속도로 증가된 유통 노동의 생산성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광범위한 개인 간 거래들로 남겨져야만 하는 판매와 구매 기능들의 메커니즘이라는 고유의 문제들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상업 노동에서의 더 느린 생산성증가는, 점점 더 많은 상업 노동량이, 생산적 노동의 훨씬 급속하게 증가하는 산출물들을 위한 다른 유통 업무들을 수행하고 팔기 위해서 고용되어져야만 했다는 점을, 요구했다.

우리가 앞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1970년대 이래로 이윤율은 이전 기간의 50퍼센트 가까운 저하로부터 단지 부분적으로만 회복되었다. 나의 추정치에 의하면, 지난 이윤율 저하의 단지 약 40퍼센트만이 회복되었다. 그러므로 이윤율은 이전 최고점보다 25~30퍼센트 정도 밑에 머물러있다(초기 전후 시기 0.22라는 최고점과 비교했을 때 0.16 주위에 머묾.) 게다가 자본 저량에 대한 이러한 개정된 추정치들의 신뢰성을 고려한 더 나은 연구가 여기서 명백하게 요청되는 것이다. 단지 이윤율 저하가 얼마인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회복되었는지 가능한 한 정확히 측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러한 실증적인 문제들에 대한 대답들은 우리에게 앞으로 미국 경제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려줄 것이다. 1970년대 중반 이래 이러한 이윤율의 제한적인 증가는 왜 저성장과 스태그플레이션이 이 기간 동안 계속되었는지에 대한 주요한 이유이다.

이윤율에서 이러한 제한적인 증가의 주요한 근원적인 이유는 이윤율에서 이전 저하의 주요한 원인과 동일하다. 비생산적 노동 비용의 계속된 증가가 바로 그것이다. 나의 추정치에 따르면, UF의 비율은 이러한 최근 기간에 걸쳐 55퍼센트 증가했다(19770.98에서 19941.46으로). 1994년 비생산적 노동의 총 비용은 생산적 노동에 의해 생산된 총 잉여가치의 62퍼센트였다. UF 비율의 이러하나 계속된 엄청난 증가는, 잉여가치율의 43퍼센트 증가(1.66에서 2.33으로의 증가)와 자본의 구성에서 8퍼센트 감소(5.03에서 4.61로의 감소)가 이윤율에 미친 엄청난 정도의 긍정적인 영향들을 상쇄했다.

이러한 더 최근 기간에서 UF 비율에 있어 주요한 증가의 원인은 다시, 비생산적 노동과 생산적 노동 간의 비율에서의 계속된 증가였는데, 이것은 19770.64로부터 19940.78로의 22퍼센트 증가한 것을 뜻한다. 하지만 이러한 비율의 증가율은 초기 전후 기간에 1년에 약 2퍼센트 정도였던 것에 비교했을 때, 1년에 대략 1퍼센트 정도로 다소간 더 느려졌다. 게다가, 이러한 더 최근의 기간에서 UF 비율의 증가의 또 다른 원인이 있다. 그것은 바로 생산적 노동에서의 평균 임금과 비교했을 때, 비생산적 노동의 평균 임금의 비율이 증가했다는 것이다(19771.38에서 19941.7829퍼센트가 증가했는데, 이것은 그 이전 기간에는 이러한 상대 임금의 비율이 다소간 불변으로 남아있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전후 미국 경제에서 이윤율 저하에 대한 맑스주의적 설명은 브레너의 설명보다 한 가지 중요한 장점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명백하고 뚜렷하며 광범위하게 개발된 이윤과 일반 이윤율에 대한 일반적인 이론(, 자본에서 표현되고 그 이래로 개발된 것과 같은 맑스의 이론)에 기초해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브레너의 설명은 어떠한 뚜렷한 일반 이론에 기초해있지 않으며 특별히 그것이 나타나지도 않는다.

다음 부분에서는 브레너가 이윤율 저하를 설명한 방식과 이윤율 하락에 대한 맑스주의적 분석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를 서로 견주어 볼 것이다.

 

 

브레너 분석과 맑스주의적 분석이 앞으로 이윤율 하락에 가지는 함의

 

나는 최근 경제적 스태그플레이션으로부터 완전하고 영원한 회복은 무엇보다도 이윤율 추세에 달려있다고 한다는 점에서 브레너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만약 이윤율이 앞으로 증가하고 이전 저하의 모두 또는 대부분이 회복된다면, 미국과 세계 경제가 얼마간 최근의 스태그플레이션에서부터 회복하고 더욱 활발한 팽창과 전후 초기보다 더욱 번영하는 시기가 돌아올 가능성은 높다. 반면에 만일 이윤율 회복이 제한적이고 불완전하게 계속된다면, 최근의 스태그플레이션은 새로운 세기에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브레너는 자신의 이론을 통해 앞으로 미국 경제에서 이윤율 저하 추세를 어떻게 전망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윤율 저하에 대한 맑스주의 설명은 앞으로 이윤율 저하 추세가 어떻게 될 것으로 보는가?

이윤율 저하에 대한 브레너의 설명은 이윤율의 장래 추세는 경제의 제조업 부문 내에서의 경쟁(또는 독점)의 정도에 크게 달려 있다. 만일 제조업에서 경쟁의 정도가 최근 수 십 년과 같이 높은 상태로 머문다면, 제조업 이윤율은 현저하게 증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만일 경쟁의 정도가 감소한다면, 제조업 이윤율은 현저하게 증가할 수 있게 되고, 브레너에 따르면, 아울러 일반 이윤율도 증가하게 될 것이다. 브레너가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처럼, “이 텍스트의 견지로부터, 장기 침체를 끝내기 위한 근본 조건은 제조업의 과잉 설비와 과잉 생산이라는 오랜 세월에 걸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수익성의 전-조직에 걸친 회복으로 명백히 했던 것처럼”(p. 251).

그와 달리, 여기서 제시된 이윤율 저하에 대한 맑스주의적 설명은 이윤율의 장래 추세는 제조업 내에서 경쟁의 정도에 전혀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을 내포한다. 이러한 맑스주의적 설명에 따르면, 경쟁의 정도는 그저 개별 부문들과 개별 기업들 사이에 잉여가치 총량에 대한 분배에만 영향을 미칠 뿐이다. 경쟁의 정도는 경제 전체의 잉여가치 총량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러한 설명에 따르면, 제조업에서 경쟁의 감소는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것은 일반 이윤율을 증가시키지 못할 것이며, 대신에 그것은 그저 제조업 부문이 이전에 몇 십 년 동안 잃어버렸던 독점이윤의 일부를 되찾게 할 뿐이다.

맑스주의 설명에 따르면, 이윤율의 장래 추세는 주요하게는 비생산적 노동과 생산적 노동 사이의 비율이 앞으로 어떻게 달라지느냐에 크게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만일 이 비율이 1970년대 이래와 같은 느린 비율로(대충 1년에 1퍼센트) 계속해서 증가한다면, 이러한 증가는 이윤율에 아래쪽으로 압력을 계속해서 가할 것이다. 이것은 이윤율이 두드러지게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을 아주 가망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반면에, 얼마간의 이유 때문에 만일 이 비율이 앞으로 몇 년 뒤 더는 늘어나지 않는다면, 이윤율의 완전한 회복과 그로 인한 미국 경제의 완전한 회복은 훨씬 더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비생산적 노동과 생산적 노동 사이의 비율에서 이러한 두 가지 가능한 추세 가운데 어느 쪽이 더 가능할지를 예측하기 힘든 것이다.

비록 최근 수 십 년 동안 얼마간 줄어들긴 했지만, 전후 기간 내내 이 비율의 엄청난 증가는 어쩐지 이 비율이 앞으로 몇 년 뒤에도 계속해서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듯하다. 내가 위에서 지적해왔던 것과 같이, 나의 초기 분석을 통해 확인되었던 비생산적 노동이 상대적으로 증가하는 주요 원인은, 생산적 노동과 견주었을 때 유통 노동의 생산성이 훨씬 더 느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런 느린 생산성 증가는 구매와 판매의 기능을 기계화하는데서 나오는 근원적인 어려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려해야할 한 가지 중요한 새로운 요인이 있다. 그것은 바로 컴퓨터 기술이다. 새로운 컴퓨터 기술은 특히 유통 부문에서 많은 비생산적 기능들(회계, 광고, 수표 처리, 출납, 화폐 교환, 등등)에 적용되어왔다. 하지만 컴퓨터 기술 도입의 속도는 최근 몇 년에 가속화되어왔고 앞으로 몇 년 뒤에도 계속해서 증가할 듯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윤율 감소에 대한 맑스주의 이론이 요즈음 컴퓨터 기술의 급속한 발전이라고 하는 아주 독특한 설명을 제공한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설명에 따르면, 새로운 컴퓨터 기술은 비생산적 노동의 필요를 감소시킴으로써(그리고 또한 기계류 가격을 감소시킴으로써도 이루어졌는데, 이것은 자본의 구성을 감소시켰다.), 전체 자본주의 경제의 이윤율을 증가시키기 위해 개발되어왔다. 이러한 컴퓨터 기술의 발전이 이윤율을 회복시키는 데 얼마나 강하게 영향을 줄 것인지의 여부는 우리가 새천년에 부딪친 것처럼 현재에 미국(그리고 세계) 경제에 가장 결정적인 문제이다.

어쨌든, 맑스주의 이론은 장래의 이윤율과 향후 미국과 세계 경제의 이윤율은, 브레너가 주장한 것과 같이 제조업에서 경쟁 정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비생산적 노동의 상대적 증가가 컴퓨터 기술 또는 다른 것들에 의해 멈추어질 수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다고 주장한다. 완전한 이윤율 회복을 위한 이러한 두 가지 매우 다른 전제조건들 가운데 어떤 것이 앞으로 더 가능성이 클지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나는 비생산적 노동의 상대적 증가의 정지가 제조업에서 경쟁의 감소보다 더 낮게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맑스주의 이론은 브레너의 설명에서 나타난 전망들과 견주어 보았을 때 이윤율의 완전한 회복, 즉 향후 경제의 완전한 회복이 일어날 가능성을 더 낮게 보고 있는 듯 보인다.

아마 앞으로 추세는 전후 미국 경제에서 이윤율 저하를 분석한 이러한 두 가지 경쟁하는 이론을 아주 명확하고 실증적으로 시험하게 하는 것이 될 것이다. 만일 경쟁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아울러 비생산적 노동과 생산적 노동 사이의 비율이 최근 몇 년처럼 계속해서 늘어난다면, 이윤율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브레너의 설명에 따르면, 이윤율은 크게 증가할 것이다. 그와 달리 맑스주의 설명은 이윤율이 조금 늘어나거나 아니면 전혀 늘어나지 않을 것이고, 이윤율에서 변화가 있다 하더라도 잉여가치율과 자본의 구성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브레너의 이론은 제조업 안에서 경쟁의 충분한 감소는 불충분한 수익성이라는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맑스의 이론은 그러하지 않으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실증적인 조사는 그저 학문 활동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21세기의 첫 십년 또는 그쯤에서 미국과 세계 경제의 운명을 예측하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브레너와 나의 견해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나는 최근 몇 십 년 동안 경제적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원인을 둘러싼 논의에서 브레너가 한 아주 중요한 이바지에 대해 매우 높게 평가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그의 에세이는 이러한 모든 중요한 문제, 특히 이러한 스태그플레이션의 주요한 원인으로서 이윤율 저하에 커다란 관심을 기울여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나는 미국 경제에서 이윤율 저하의 원인들에 대한 브레너의 설명을 부적절하다고 여긴다. 왜냐하면 브레너가 이윤과 일반 이윤율에 대한 일반 이론에 기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브레너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러한 중요한 문제를 두고 더 진전된 논의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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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이 건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