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실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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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지 (2007년)/2007년 12월호

(그림) ‘지상좌담회수정’

사회실천연구소 2014. 12. 15. 14:36

사회실천연구소 창립 1주년 기념 지상 좌담회’, <선진노동자와 실천적 지식인의 임무와 과제>

 

 

참석자: 가나다 순

강내희(중앙대 영문학과 교수) 김세균(서울대 정치학과교수) 김수행(서울대 경제학()교수, 사회실천연구소 회원) 양준석(울산 노동자 배움터, 사회실천연구소 회원) 오세철(연세대 명예교수, 사회실천연구소 회원) 최갑수(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정리(사회자): 최규진(사회실천연구소 회원)

 

사회자:

사회주의운동 종합연구소가 될 것을 목표로 삼아 활동 했던 사회실천연구소가 창립 1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그 동안 사회실천연구소는 해외 좌파논문과 세계 사회주의 정치운동 진영의 주요 기관지를 번역하여 달마다 ?실천?지를 내었습니다. 또 거르지 않고 월례 정세토론회를 열어 세계 자본주의 체제와 한국사회 정세, 그리고 노동자 투쟁을 면밀하게 점검하고 나름대로 대안을 모색해보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운동 진영 사이에 조그마한 소통의 통로를 만들기도 했습니다만, 아직 여러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연구소를 창립했던 처음처럼’, 다시 마음을 다잡으려 합니다. 언젠가 노동자에게 희망과 전망을 보여주는 사회주의종합연구소로 발돋움하려면, 다시금 무엇을 연구하고 어떤 실천을 해야 하는가하는 질문을 던져야만 했습니다. 이에 <선진노동자와 실천적 지식인의 임무와 과제>를 주제로 삼아, 연구소 안팎의 좌파 지식인과 활동가의 생각을 듣고 많은 것을 배우려 합니다.

서로 만나 좌담회를 한다면, 좀 더 뜨거운 논쟁을 벌일 수도 있고 따뜻한 정도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설문지 형식으로 진행하는 지상 좌담회는 비록 차갑기는 해도, 차분하게 준비된 글쓰기로 좌담자의 뜻을 더욱 또렷이 드러내는 장점이 있습니다. 설문을 편집하면서 지상 좌담회를 시작하겠습니다.

 

1. 나라 안팎의 정세와 덮쳐오는 신자유주의

 

사회자: 역사 상황이 인간의 삶을 틀 지웁니다. 오늘날 눈앞에 펼쳐진 정세를 살피기에 앞서 자본주의 그 자체가 일으키는 정세 효과를 밑뿌리부터 짚었으면 좋겠습니다. 오세철 선생님께서 먼저 말문을 열어주시기 바랍니다.

 

오세철: 생산관계가 생산력 발전의 족쇄가 되었던 1914년 경 1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자본의 외적시장인 식민지를 통해 자본주의의 모순과 위기를 극복하려는 자본주의 상승기의 마지막 몸부림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전후복구와 정부지출을 통한 25년의 호황을 빼놓고 100년이 지난 지금 값싼 노동력을 기반으로 쇠퇴하는 자본주의의 최후의 위기를 모면하려는 세계자본의 시도가 중국, 인도 등의 시장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직도 불균등한 자본주의의 발전이 진행되지만 더 이상의 자본외적시장도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노동에 대한 억압과 착취만을 통한 길, 전쟁과 생태계 파괴를 통한 야만의 길만이 인류 앞에 놓여있습니다.

인간의 총체적 삶을 가치법적으로 관철시켜 유린하는 자본주의의 막다른 길에서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단결을 통한 자본주의의 폐절과 공산주의사회의 건설만이 인류를 야만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이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노동계급을 성, 민족, 지역, 규모, 직종, 연령 등으로 분열시키는 자본의 전략은 노동계급의 솟구치는 투쟁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실질적으로 노동계급의 단결을 이룩하게 하는 노동자국제주의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사회자: 아무래도 오늘날의 정세를 이야기할 때 신자유주의를 빠뜨릴 수 없을 것입니다. 신자유주의란 무엇이고 그것이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먼저 김수행 선생님과 김세균 선생님께서 경제와 정치 측면에서 신자유주의의 핵심을 짚어주시기 바랍니다.

 

김수행: 자본가계급의 수익성을 올려 경제 전체를 회복시키겠다는 아이디어가 신자유주의의 핵심인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의 모순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복지국가의 제도들을 축소하면, 자본가계급은 세금을 적게 내어 수익성을 올릴 수 있지만, 국내시장이 좁아져서 상품들을 팔기 위해 해외시장을 개척해야만 합니다. 모든 선진국 정부들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구한 결과 세계시장에서는 산업자본가들 사이에 무한 경쟁이 생겨 좀처럼 기대하는 수익성을 얻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산업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고 유휴화폐자본이 투기 이익을 얻기 위해 세계를 무대로 금융활동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대규모의 금융적인 투기활동은 자본의 급속한 유출입을 통해 세계의 금융시장을 불안정하게 하고 세계적인 금융공황을 자주 일으켰습니다.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우량주택담보대출(sub-prime mortgage)의 위기는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사람들의 소득 부족과, 이 대출을 토대로 발행된 증권에 대한 투기적 과잉 투자를 보여줍니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은행이 손실을 본 금융기관을 살리기 위해 금리를 낮추어 자금을 공급하지만, 금리를 낮추면 미국 달러의 가치가 하락할 수밖에 없어 국내외 투자자들이 달러나 달러표시 유가증권을 가지고 있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리하여 달러의 가치는 더욱 떨어지고 뉴욕의 유가증권 가격은 더욱 떨어지는 위기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더욱 진행하면 1930년대의 세계적 대공황이 다시 나타날 가능성이 있고, 세계경제와 국내경제는 새로운 원리에 따라 재편될 가능성이 큽니다.

선진자본주의국들에서는 지난 30년 동안의 신자유주의가 정점을 지나 쇠퇴하는 국면에 들어선 것 같은데, 한국에서는 아직도 더욱 큰 힘을 가지고 전개되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노무현 정부의 정책들(각국과의 FTA 체결, 비정규직관련 법률 등)과 자본가계급의 공세 때문입니다. 지금의 선거기간에 한국의 신자유주의적 경향에 타격을 가해야 할 시의 적절성이 더욱 증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노무현 정부의 정책들에 대해 기존의 정당들이 적극적으로 방어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세균: 1970년대 중반이 지나고 나서, 세계자본주의가 장기적인 구조적 불황에 빠져든 뒤 이 위기의 자본주의적 해결책으로 강구된 것이 앙상 레짐’(구체제)의 최종적 몰락을 재촉한 18세기의 봉건적 반동에 비견할만한 자본주의적 반동으로 규정될 수 있는 신자유주의입니다. 그렇지만, 신자유주의는 위기해결에 기여하기는커녕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성립된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최종적 몰락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세계경제는 갈수록 악화되어 세계적 수준의 파국적 대공황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국면으로 이행하고 있고, 신자유주의의 외길로 달려온 한국 자본주의 역시 이런 발전의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조건 속에 놓여 있습니다. 그간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구조개편으로 구조적 실업층의 증대, 불안정 노동의 확대, 비정규직의 양산, 사회양극화의 심화, 절대 다수 노동대중의 빈곤화 등이 진척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세계경제가 파국적 대공황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것은 전 세계의 노동자대중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1930년대에 겪었던 공황 상태를 훨씬 넘어서는 미증유의 비참한 상태로 내몰리고 있음을 가리킵니다. 이로 인해 앞으로는 세계 각국의 지배층들 간의 대립은 ()론 지배층과 피지배대중간의 대립이 격화되는 새로운 대혼란 상태가 도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배층이 행하는 더 한층 야만적 반동에 맞서 절망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만들기 위한 노동자대중의 투쟁이 거세 질 것입니다.

 

사회자: 아직 한 공장이나 지역에 얽매어 활동한다 하더라도 자본주의 전체의 움직임이 ()장 노동자에게 곧바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생각할 때, 현장 활동가야말로 정세분석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현장 활동가들은 오늘날의 정세를 어떻게 읽고 있는지 양준석 동지께서 전해주시겠습니까?

 

양준석: 현장 활동가 모두가 정세관이 같은 것은 아닙니다. 정세관의 차이에 따라 여러 정파가 생기기도 하고 활동 방식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따라서 제 생각만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세계 자본주의 모순이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매우 깊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전 세계에 걸쳐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에게 거센 공격을 펼치면서 노동자들의 삶이 나날이 후퇴하고 있습니다. 사회복지 시스템 해체하기, 공공부문 사유화하기, 공공 영역에까지 시장·이윤 논리 적용하기 등 그 양상이 세계적으로 놀랄 만큼 비슷합니다. 비정규직이 확대되는 속도도 매우 빠릅니다. 영국의 BBC 기사는 전 세계적으로 정규직 일자리의 비중이 1980년에 80%였다가 1995년에 67%로 줄어들었으며, 2010년에는 45%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자본가들이 거센 공격에 나설 수 있는 힘의 근원은 무엇보다 세계적 수준의 공장이동에 있습니다. 저임금과 무노조를 향한 공장이동이 한 나라 안에서만이 아니라 국경을 넘어 세계적 수준에서 끊임없이 경쟁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생산이 지속되면 필연적으로 자기 무덤을 팔 노동자 계급과 그들의 투쟁을 만들어 냅니다. 국경을 넘나드는 공장이동은 그에 대한 자본가들의 대응력이 보다 높아진 것을 뜻합니다. 노동자 운동의 힘과 전통이 응축된 곳에서 투쟁 경험과 역량이 전혀 없는 곳으로 자본주의 생산기지를 옮기는 것이지요. 자본가들의 공격은 공장폐쇄와 정리해고로 이어지는 공장이동을 내세워 협박하면서 노동자들에게 양보를 강제하여 노동자 운동을 굴복, 해체시키는 방식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물론 자본주의가 숙명을 피해갈 순 없습니다. 세계적 수준에서 볼 때 머지않아 자본가들은 새롭게 만들어진 노동자들이 펼치는 더 호랑이 같은 투쟁 앞에 부딪치게 될 것입니다. 기존의 노동자 운동은 무력화되었는데 새로운 노동자 운동은 아직 올라오지 않으면서 자본가들이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거센 공격을 펼치는 오늘날의 상황은 큰 흐름에서 보자면 일시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세계 자본주의 모순이 깊어지는 또 하나의 측면은 시스템 전반의 작동 불능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를 그나마 작동시키는 힘의 근원은 중국을 비롯한 거대 신흥 공업국의 성장입니다. 중국의 성장은 미국으로 수출하는 것에 달려 있고, 미국은 재정 적자와 무역 적자라는 천문학적인 쌍둥이 적자로 소비 수준을 지탱함으로써 중국의 성장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미국의 쌍둥이 적자를 지금까지는 기술적으로 잘 관리하고 있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가능할 지 정말 의문입니다. 공황을 지연시키는 기술이 매우 발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영원히 회피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현재로서는 미국의 쌍둥이 적자가 마냥 늘어나는 것을 되돌릴 길이 없습니다. 근원적으로 볼 때 세계적인 공장이동 과정에서 해외로 대거 빠져나간 미국의 제조업이 되돌아오지 않는 한 미국은 적자를 면할 방법이 없습니다. 저임금과 무노조를 찾아 나간 개별 초국적 자본들이 그것을 선택할 리가 없습니다. 중국에 기반을 둔 초국적 자본은 미국이 더 많은 빚을 내서라도 당장 소비해 주지 않으면 공장을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중국은 미국의 쌍둥이 적자가 야기하는 불안정이 부담스러우면서도 미국의 소비능력을 유지시키기 위해 수출로 번 돈으로 엄청난 양의 미국 국채를 사들이고 있습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미국의 쌍둥이 적자는 결국 머지않아 세계 자본주의 시스템 전체가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태로 치달아 갈 것이라 봅니다. 그렇게 되면, 또는 그것이 눈앞에 다가오면 결국 누군가 미국의 쌍둥이 적자를 충격적으로 감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차적으로는 미국의 노동자 민중들에게 그 부담이 전가될 것입니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재정 적자가 노동자 민중에게 안길 부담은 미국의 계급투쟁을 촉발할 것이며, 따라서 미국은 그 부담을 중국과 전 세계에 전가시키려고 드러내놓고 공세를 펼 것입니다. 그것은 세계 곳곳에서 계급투쟁을 활성화시키면서, 아울러 제국주의 국가 사이의 긴장과 대립을 매우 높이게 될 것입니다.

 

 

2. 남한 노동자의 처지와 의식

 

사회자: 자본주의 모순이 깊어지고 이른바 신자유주의가 곳곳을 헤집고 다니는 오늘날 남한 노동자의 처지는 어떠합니까? 노동자 처지가 갈수록 나빠지고 따라서 노동자가 더욱더 투쟁 의식을 갖게 될 것이다고 생각할 수만은 없지 않을까요? 오늘날 남한 노동자의 의식에 관련된 것도 함께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강내희: 현실사회주의가 후퇴한 1990년대 초 이후 남한 사회는 1980년대 후반에 고조한 변혁운동의 열기가 급속도로 냉각하고 진보진영에서의 변혁 지향성도 소멸되거나 위축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흐름이 생긴 것은 미국 주도의 신세계질서가 냉전 구도를 대체하며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추동하고, 한국사회 역시 이 새로운 구도 속에 깊숙이 편입됨으로써 대안적 사회에 대한 전망이 소멸된 듯싶은 정세가 형성된 결과일 것입니다. 변혁적 전망의 위축 또는 소멸은 이 시기에 동아시아의 부상이라는 현상이 생겨나고 한국경제가 그 혜택을 보게 된 것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한국은 1997년의 ‘IMF 위기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경제회복을 이루었고 지속적인 성장을 경험하였는바, 이런 사실은 한국의 노동자들에게 자본주의적 교육 효과를 만들어낸 듯싶습니다. 한편으로는 위기가 일자리 박탈의 위협을 가하며 노동자들로 하여금 노동유연화를 수용하게끔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성장이 이루어지며 그 혜택에 대한 기대를 품도록 함으로써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노동자 대중의 지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용인을 유도하여 신자유주의적 질서가 확립되도록 했다는 말입니다.

동아시아의 부상속에 남한 노동자 계급이 자본주의적 성장에 대해 환상을 품게 됨으로써 나타난 결과는 대기업 노동자를 중심으로 일자리를 보전한 정규직과 각종 구조조정을 통해 일자리에서 밀려난 뒤 다시 같은 노동현장으로 복귀하더라도 이전의 지위와 보상을 상실한 비정규직으로의 양분 현상입니다. 노동자계급의 양극화는 노동운동에서의 입장이나 태도의 차이로 나타나며 이로 인해 최근 노동자운동은 신자유주의 정세를 돌파할 어떤 의미 있는 입지점도 확보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재 비정규직은 전체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상황이며, 신자유주의 정세가 지배하는 한 이런 상황의 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관건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의 조직입니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부상은 동아시아에서의 노동자계급과 민중에게 아직도 환상을 만들어내고 있고, 이런 점은 남아메리카나 중동지역 등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해 대대적인 민중적 저항이 형성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이 지역에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이 상대적으로 취약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는 듯합니다.

 

최갑수: 오늘날 국내외의 정세는 진보적인 노동운동에서 보자면, 양면적 성격을 보여줍니다. 먼저 객관적인 여건을 보면 세계적인 차원과 국내적인 수준에서 사회의 양극화를 초래하여 기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광범위하게 유포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해줍니다. 사실 양극화현상이야 자본주의가 하나의 세계질서로 본격적으로 기능하기 시작한 19세기 말 이래로 언제나 항상적인 조건이었지만, 근래에 세계화, 시장근본주의, 인터넷, 다국적기업, 헤지 펀드, FTA, 지역화 등은 그것을 미증유의 수준으로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조직노동이 벅찬 싸움을 벌여야 하지만, 동시에 비정규직이 양산됨으로써 노동의 보편적 이익을 대변한다는 소중한 운동적 가치가 훼손당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주체적 입장에서 본다면, 계급적 관점을 노동자층 전체를 포괄하면서 일관되게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동자들의 내부 구성이 다양화되면서 통일된 전선을 구축하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이 점에서 현실사회주의의 몰락은 심중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것은 대안적 전망의 불투명을 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우리 사회의 특수성도 한 몫을 하고 있다는 판단입니다. 그것은 광범위한 룸펜 층의 존재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예컨대 구미의 여러 나라에는 제한적으로밖에 없는 자영업자 층이 매우 두툼한데, 이들이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추세 속에서 몰락해가면서 대규모의 산업예비군을 형성하여, 그간 우리 사회가 어렵게 이룩해낸 민중적 역량의 근간을 흔들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노동자들의 상대적 빈곤도 문제지만, 우리 사회가 발산해내는 영혼까지 잠식하는 불안감은 조직노동의 연대성마저 동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여건에서 개별 노동자들 앞에 놓인 선택지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대부분 삶이 개별화되고 있으며, 그나마 위안을 주는 것이 있다면 가족주의입니다. ‘사회성의 기반이 축소되면서 시야 역시 제한적이 되고 계급적 의식은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전망만큼이나 저만치 멀리 물러나게 마련인 것입니다. 삶이 즉물화하면서 내일의 기대는 온통 회색빛을 띠고 있는 것이 오늘의 노동자들의 처지가 아닌가 합니다.

 

 

사회자: 강내희· 최갑수 선생님이 남한 노동계급의 환상의식의 취약성을 지적하셨습니다. 오세철 선생님과 양준석 동지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오세철: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의 중심이 비정규노동자, 여성노동자, 중소사업장 노동자, 예비노동자(학생), 연금생활자로 옮겨지면서 계급투쟁의 폭과 깊이를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보편적 흐름과 특징을 한국의 자본주의와 노동계급 모두가 가지고 있지만, 한국은 앞으로의 세계의 계급투쟁의 중요한 거점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의 압축 성장으로 인한 모순의 증폭, 혁명주의와 개량주의 대립갈등,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와 계급의식의 대립갈등, 북한 노동계급의 투쟁의 잠재성 등이 역동적으로 작용하며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투쟁력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21세기 자본주의는 인류의 삶을 총체적으로 공격하고 파괴하여 야만인가 새로운 사회인 공산주의인가라고 선택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계급이 스스로의 자기해방의 길을 찾아 투쟁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역사적 주체임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양준석: IMF 이후 지난 10년 동안 한국 자본주의가 걸어 온 길은 세계 자본주의의 모순이 심화되는 흐름 속에서 바라볼 때 그 의미가 온전히 파악될 수 있다고 봅니다. 지난 10년 동안 정규직 중심의 민주노조 운동이 구조조정 공세 앞에서 패배를 거듭한 끝에 심각하게 무력화되고 이른바 ‘88만원 인생이라고 하는 비정규직이 한국 노동자 계급의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나타난 이 현상을 세계 자본주의의 보편적 흐름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한국 노동자 투쟁의 전망은 세계 자본주의의 모순 심화에 맞선 세계 노동자 투쟁의 큰 흐름 속에서 찾아야 합니다.

세계적인 공장 이동은 남미와 동유럽을 거쳐 최종 기착지로서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향해 집중되어 왔습니다. 중국-일본-한국-동남아시아로 이어지는 동아시아 지역은 바야흐로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세계 자본주의의 모순 심화에 맞선 세계 노동자 투쟁에서 동아시아 지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되리라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세계적 전망과 시야를 갖고 노동자 국제주의의 정신으로 특히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노동자 운동과 강력한 연대를 건설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야말로 앞으로 한국 노동자들의 미래를 여는 데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3. ‘선진노동자는 누구이고 그들의 운동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사회자: 1980년대부터 변혁적 노동운동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언제부터인가 노동자 대중과는 다른 뜻을 지닌 선진노동자라는 말이 널리 쓰였습니다. 그러나 선진노동자라는 모호한 말은 저마다 그 뜻을 달리 쓰면서 혼동도 불러일으켰습니다. ‘선진노동자를 어떻게 규정해야 가장 명확한 것일까요?

 

강내희: 1987노동자 대투쟁‘6월 항쟁직후에 전개되었다는 것은 노동자의 변혁운동은 시민혁명을 뒤따른다는 공식을 한국에서도 입증한 것으로 보입니다. 프랑스에서의 사회주의운동, 특히 맑스와 엥겔스의 코뮌주의 운동이 시민혁명인 프랑스혁명 이후에 일어난 것처럼 말입니다. 1987년 당시 선진노동자의 주된 활동은 민주노조 건설에 집중되었다는 점에서 선진노동자는 주로 노조운동의 지도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세균 : 선진노동자란 자신의 투쟁을 노동자계급 전체의 이익을 위한 투쟁과 자본주의 극복을 위한 투쟁으로 발전시킬 잠재력을 지닌 노동자를 가리킵니다. 노동운동이 이들 선진노동자층에 의해 주도될 때 노동운동은 변혁 지향적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세철: 선진노동자 개념은 모호한 개념입니다. 여기서 선진사회주의 의식(공산주의사상)이 있는이라는 뜻으로 사용할 수도 있고 대자적 계층으로서의 계급정체성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앞의 경우는 활동가또는 사회주의 노동자로 부를 수 있고 뒤의 경우는 계급적대를 인식하고 실천하는 노동자로 넓혀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좌담회에서는 후자의 경우로 한정하여 논지를 펼칠 것입니다.

 

양준석: ‘선진노동자는 비록 초보적이더라도 노동자 계급의식을 갖추고 실천하는 층을 일컫는 개념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선진노동자는 노동조합 운동이 올곧게 나아갈 때에는 사실상 노동조합 간부층과 겹칠 수 있지만, 노동조합 운동이 관료화된 상황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현재 한국 노동자 운동의 상황은 후자에 가깝다고 봐야겠죠.

 

최갑수: ‘선진노동자란 일종의 전위 개념이 아닌가 합니다. 정의상 그는 일반노동자와 다음과 같은 차이를 갖습니다. 1) ‘선진노동자는 삶의 일상성에서 벗어나 계급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2) 뿐만 아니라 그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전망을 갖고 있습니다. 곧 그는 사회주의자입니다. 3) 더욱 중요하게도 그는 삶과 운동을 결합시켜 다른 노동자들의 모범이 되는 혁명적 열정을 가진 존재입니다.

 

 

사회자: 흔히 역사를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고 합니다. 각자의 정치적 태도에 따라 역사 해석은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선진노동자개념을 서로 달리 쓰고 있는 것에서 보듯이, 같은 역사 사건에 대한 평가도 서로 엇갈릴 수 있습니다. 지난날 선진노동자들의 운동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최갑수: 사실 선진노동자에는 치열한 반독재투쟁과 우리 사회의 민주화의 역사적 경험이 함께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신군부독재 시기에 나타나서 1987년 노동자대투쟁기에 구체적인 상을 드러냈습니다. 아마도 1987~1992년은 선진노동자가 현장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면서 우리의 노동운동을 한 단계 끌어올린 시기가 아닌가 합니다. 1990전노협의 결성은 그런 흐름의 절정으로 변혁지향과 연대투쟁의 민주노조운동의 큰 흐름을 만들어냈습니다.

흔히 민주노동의 투쟁적이고 비타협적인 운동방식이 노동운동의 고립을 낳았다고 말합니다. 노동운동의 성격을 규정짓는 요인은 매우 복합적이어서 일의적으로 평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볼 때, ‘선진노동자의 의지주의적 과잉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진노동자는 그 선진성이 강조되어 실생활과 괴리되는 측면이 컸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렇게 되면 운동이 힘들어지고 왜곡되기 쉽지요. 사실 그것은 조직화의 정도가 그만큼 낮았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로서는 다만 계급정당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노동운동은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정치운동으로 연결되어야 자신의 존재성을 남김없이 드러낼 수 있습니다. ‘계급정당은 노동운동의 목표를 하나의 기획으로 모아내는 통로이며, 노동자들의 의지를 곧추세워주는 버팀목입니다. ‘계급정당의 존재는 우리의 정치지형을 바꿀 뿐만 아니라 사회의 기강을 바로 세우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문제는 현재의 민주노동당이 그런 계급정당으로서의 위상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그것을 계급정당으로 이끌어 내는 것은 노동운동의 활성화에도 주요한 계기로 작용할 것입니다.

양준석: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꽤 많은 선진노동자들이 한국 노동자 운동 속에 형성되었습니다. 크게 보자면 자연발생적으로 터져 나온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이 선진노동자들의 형성에서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만큼, 1980년대의 선진노동자들은 일차적으로 한국 자본주의가 스스로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1987년 대투쟁에 앞장섰던 노동자들이 스스로 맞부딪친 격렬한 계급투쟁의 의미를 해석하고 노동해방이라는 방향을 부여잡는 데서 사회주의운동의 적극적 역할이 없었다면, 1987년 대투쟁 이후에 선진노동자들이 그렇게 큰 규모로 형성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한국 자본가들의 강도 높은 착취와 억압 속에서 만들어진 선진노동자들의 역동적인 힘에 비해, 한국전쟁과 분단체제 속에서 제대로 자라날 수 없었던 사회주의운동의 힘은 상대적으로 훨씬 취약한 것이었습니다. 이 불균형은 오늘날까지도 문제가 되고 있지만, 1980년대의 선진노동자 운동이 후퇴하게 된 중요한 원인이기도 했습니다.

1980년대를 거치며 형성된 선진노동자들이 노동해방의 꿈에 부풀어 거대한 전진을 막 시작하려던 무렵에 소련이 무너지자 스탈린주의 한계 속에 갇혀 있던 한국의 사회주의운동은 엄청난 충격을 받고 대다수가 극심한 혼란과 청산의 길로 치닫고 말았습니다. 선진노동자들에게 노동해방의 부푼 꿈을 깨우쳐 주었던 사회주의운동이 이제 더 이상 전망을 제시해 주지 못하게 되자 선진노동자들의 전망 또한 자본주의의 틀 안으로 갇히게 되었습니다.

IMF를 계기로 휘몰아친 자본가들의 구조조정 공세는 노동자들의 대중적 저항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개량주의 단꿈에 젖어 있거나 자본주의를 넘어선 전망을 감히 꿈꾸지 못했던 노동조합 지도부는 자본가들의 공세에 맞선 정면승부를 하지 못했고 결국 노동자 대중의 열망을 거듭해 배신할 따름이었습니다. 그것이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지난 10년 동안 걸어온 과정이었습니다.

 

오세철: 노동계급의 자기정체성은 집단으로 노동자를 형성시키는 자본이 강제합니다. 특히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 중반에 이르는 시기의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은 중화학 공업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의 재편전략과 맞물려 있고 이는 세계자본의 재편전략(3세계 자본주의에서 수출주도형 경공업 중심으로부터 중화학공업중심으로의 전환)이 군사정권을 앞세운 국가주의적 경제계획을 지원한 전략으로 나아갔습니다. 저임금, 열악한 노동조건, 노동조합결성의 자유박탈 등은 대규모작업장을 중심으로 한 투쟁을 촉발시켰고, 군사독재 밑에서의 정치적 억압의 이완과 더불어 생산의 주체로서의 자기정체성을 확립하는 투쟁으로 나아갔습니다. 자본과 권력의 탄압에 맞선 투쟁의 성과는 전노협으로 나타났고 이 투쟁과정 속에서 이른바 선진노동자가 대거 형성되었습니다.

노동자운동은 중화학공업을 기반으로 하면서 전력, 철도, 통신 등을 중심으로 하는 공공부문으로 확장되었고 자본의 경영합리화 전략은 노동계급의 전투성을 개량주의, 노사협조주의로 전환시키는데 총력을 기울였으며 상당부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996~97 총파업은 그 전에 축적한 노동자의 운동의 성과를 정치투쟁으로 끌어올리려한 투쟁이었음에도 결과적으로 실패하면서 한편으로는 개량주의적, 관료주의적 노동자 운동으로 변질되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개량주의적 정치운동으로 변질시켰습니다.

IMF 관리체제 이후의 10년의 역사는 정치의 주체로 서려는 노동계급을 억누르며 개량주의, 관료주의로 대중운동의 혁명성을 압살했으며 의회주의, 선거주의로 역사의 주체로 일어서려는 노동계급을 표 찍는 기계로 전락시켜 버렸습니다. 한축이 민주노총의 역사이고 다른 한축이 민주노동당의 역사입니다.

옛날의 선진노동자는 노동자 운동의 관료가 되거나 각종 부르주아의회의 대리인이 되었습니다. 비정규직 투쟁을 중심으로 한 앞으로의 계급투쟁을 통해 노동계급이 생산, 정치, 역사의 주체가 되는 선진노동자가 대규모로 형성될 것이라고 보며, 이들 계급주체와 함께 투쟁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사회주의노동자가 그 속에서 형성될 것입니다.

 

강내희: 1980년대 노동운동의 역량은 대부분 민주노조를 건설하는 데 바쳐졌고, 이 흐름은 1990년 전노협의 결성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즈음 전노협을 중심으로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주장이 제기됨으로써 노동운동은 정치적 변혁운동으로 전환될 여지가 없지 않았으나, 당시 전노협은 주로 중소기업 노조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들에게 일차적으로 부과된 임무는 조직 수호였기 때문에 노동운동의 변혁운동으로의 전환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1980년대 후반에 진행된 민주노조 결성 운동 자체는 그전까지 한국자본주의를 관리하며 민주노조 건설을 봉쇄해온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의 의미가 컸기 때문에 나름대로 체제 변혁 운동의 성격이 있었습니다. 당시 제기된 우리는 이제부터다는 노동자계급의 자기 정체성 확인은 그래서 사회운동을 주도하던 시민혁명 노선에 대한 문제제기의 의미도 컸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노동운동은 경제투쟁에 매몰된 수세적 모습 이상을 보여준 적이 거의 없습니다. 이런 흐름은 1996년에 대기업노조를 중심으로 한 민주노총이 결성되고 그 주된 활동이 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제투쟁을 중심으로 전개됨으로써 더욱 확고해졌으며,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 역시 민족주의 노선과 민중권리 쟁취 노선의 합작품인 민주노동당이라는 협소한 틀에 갇힘으로써 현실화된 정체세력화 흐름이 노동운동의 변혁운동으로의 상승을 유도하지는 못했습니다. 한국에서 선진노동자들은 노동운동에서 민주노조의 결성과 수호,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경제투쟁의 전개, 그리고 남한 사회의 변혁보다는 개량을 지향하는 정치운동에의 참가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던 것이다. 물론 이런 흐름에서 벗어난 선진노동자들, 다시 말해 한국사회에서의 진보적 사회운동을 변혁운동의 일환으로 전개하려한 주체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동안 이들의 활동이 사회적 주목을 받을 정도로 활발했던 것은 아닙니다.

 

 

4. ‘실천적 지식인은 누구이고 그들의 운동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사회자: 모든 역사에서 지식인은 사회에 여러 영향을 미쳐왔습니다. 지난날 많은 지식인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하고 관료가 되어 통치기구에 복무하기도 했지만, 일부 지식인은 민중과 함께하면서 변혁의 밑바탕을 만들고 새로운 이념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지난날 남한의 실천적 지식인의 운동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오세철: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거의 소멸된 사회주의운동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과 결합하지 못한 채 비공개적인 인텔리 운동으로 침잠하였고 1960년 이승만 독재정권과의 격돌을 계기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외피를 쓰고 표면화 되지만 민족주의의 색채를 강하게 띠었습니다. 1961년 군부 쿠데타로 다시 압살당한 부르주아 자유주의는 부르주아민주주의의 투쟁으로 나아가게 되고 그 역할을 지식인(학생포함)이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1970년대 역시 유신체제 뒤에 더욱 거센 민주화 투쟁으로 나아갔습니다. 실질적 민주주의보다는 형식적 민주주의 쟁취에 초점을 맞추는 자유주의자들의 투쟁은 근본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광주민중항쟁은 지식인 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드러냈습니다. 1960·70년대의 중첩된 모순의 폭발로 일어난 19805월 광주항쟁은 한국사회의 근본문제를 맑스주의적 관점으로 깊이 있게 해석하려는 지식인들의 운동으로 이어졌으며 맑스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사상이론의 학습과 묻혀있던 과거의 사회주의운동의 역사를 복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맑스주의는 스탈린주의의 변형을 통하여 수입되었고 제국주의에 대한 인식은 김일성주의의 왜곡으로 나타나는 한계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한계는 현장과 결합한 이른바 사회주의지식인으로 이어졌습니다. 광주항쟁, 군부독재의 연장, 자본주의 발전에 따른 노동계급의 형성 등은 혁명적 정세로 인식되었고 일국사회주의론과 생산력주의에 의존하면서 적대적 민족주의를 투쟁전선으로 삼는 비맑스주의적 혁명주의가 혁명적지식인의 정서를 지배했습니다. 결국 19876월 항쟁과 7,8,9월의 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면서 스탈린주의는 사회민주주의와 북한추종주의로 전환하였고 혁명적 맑스주의와는 무관하게 되었습니다.

 

강내희: 남한에서 실천적 지식인은 주로 자유주의, 민족주의 성향이었고, 사회주의나 코뮌주의 성향은 매우 적었던 편입니다. 이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간의 대립이 집중되었던 한반도에서는 불가피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조건은 남한의 실천적 지식인 운동을 크게 제약하게 됩니다. 1960년대에 기존의 지배체제에 대한 비판이 산발적으로 조직되기 시작했을 때, 1970년대에 민주화운동이 그 본격적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을 때 한국의 운동이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경향에 지배된 것은 남한의 이데올로기 정세에서는 이 두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안전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반면에 사회주의지식인이 한국사회에 집단적으로 등장한 것은 1980년대 이후의 일입니다. 이 시점에 이르러 비로소 한국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운동의 형태로 이루어지고, 지식인의 운동 참여도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봐서 이들 지식인의 활동은 자유주의, 민족주의 지식인의 그것에 비하면 여전히 취약했던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주의지식인은 기본적으로 노동자계급, 특히 선진노동자들과의 연대를 추구할 수밖에 없었지만, 제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선진노동자들의 활동이 노조 조직의 보위와 경제투쟁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지라 지식인의 노동운동 참여 또한 이 운동의 조건에 의해 제약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결과 사회주의 지식인의 노동운동과의 연대는 노동운동의 변혁운동으로의 상승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고 판단합니다. 하지만 진보적 노동운동을 변혁운동으로 발전시키려는 움직임이 없지 않고, 이 흐름에서 선진노동자들과 실천적 지식인의 결합이 비록 위력적이지는 않아도 면면히 이루어지고 있는 한, 변혁 지향적 지식인과 (선진)노동자의 연대의 의미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이른바 학술운동에 대해서도 말하겠습니다. 지난 시기 진보적 지식인들은 학술운동에도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었습니다. 1980년대 말에 학술단체협의회(학단협)가 결성된 것은 학문운동이 조직된 것으로서 한국의 최근 역사에서 보기 드문 현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운동을 통해 진보적 지식이 생산된 것은 한국의 지식생산 전통에 큰 기여라고 할 수 있겠지만, 지식의 생산 방식에 있어서 학술운동이 가져온 변화의 효과가 컸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결과는 학술운동이 지배적 학술활동, 즉 대학을 중심으로 한 제도권에서의 학문 활동에 대해서는 거의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늘 제도권 외곽에 머물며 활동을 한 한계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진보적 학술운동이 관심을 가진 것은 지배적 지식을 대체하는 것, 즉 지식의 내용에 있어서의 변화였지 지배적 지식생산 방식 자체에 대한 변혁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한국의 진보적 또는 실천적 지식인 대부분이 지식생산의 변혁을 지향한다는 의미에서의 진보성보다는 지식인으로서 비 지식인인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를 지향하거나 후자를 위한 대변자역할을 한다는 의미에서의 진보성만을 주로 추구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 결과 진보적 지식인들은 지식생산의 현장에 개입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학술운동은 한국의 자본주의적 지식생산에 개입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에는 실패했습니다. 이에 따라 학술운동은 이제 겨우 연명하는 수준에 놓여 있고, 대학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신자유주의적 지식 생산에 대한 의미 있는 개입의 모습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실천적, 진보적 지식인들도 신자유주의적 지식 생산의 메커니즘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노동운동을 비롯한 진보운동과 지식인의 결합도 미미한 수준입니다.

 

최갑수: 시대에 따라, 그리고 몸담았던 조직의 성격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그들은 어려운 여건에서 참으로 우리 사회의 현실을 온몸으로 표출시켰던 것 같습니다. 다만 오늘의 지식인운동의 좌표를 새로이 모색하자는 취지에서 그 운동들을 반성해 보면 몇 가지를 지적할 수 있습니다.

가장 근본적으로는 우리 나름의 사상체계를 만들어냈느냐 하는 점입니다. 실천적 지식인의 역할은 실천에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실천을 통해 우리 사회의 나아갈 바를 체계적으로 설득해내는 사상 정립에 있습니다. 그런데 선배들을 돌이켜 볼 때, 대개 비분강개형이지 냉철한 현실분석에 입각한 대안 제시에는 이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1980년대 이후에는 우리 사회의 인식 수준이 상승하고 꽤 조직적인 학술운동이 등장하고 심지어는 사회주의 지식인층도 형성되어 진일보한 측면을 보입니다만, 대안적인 사상의 정립은 아직 미완의 과업입니다. 저는 이것이 진보적 지식인의 불민함 탓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독자적인 학문재생산의 기반을 마련하고 있지 못한 학계 전반의 역량을 반영한 것이기는 합니다만, 진보적인 실천운동의 설득력에 대안적 사회관의 존재가 주요한 관건임을 고려할 때에 진보적인 학술계의 분발이 요구된다고 하겠습니다.

이 점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만, 지식인의 실천성을 확보해주는 계기는 역시 계급정당, 노동운동, 학술운동, 지식인운동과 같은 조직적 기반입니다. 저는 이것들이 대안적 사상체계를 가능케 해주는 일종의 인프라라고 여깁니다. 과거에는 이것이 참으로 미약했기에 지식인들은 쉽게 고립되었고 시대적 상황에 빈번하게 흔들렸습니다. 이 인프라가 과거보다 더 넓어지고 깊어지기는 했지만 실천적인 지식인들을 유기적인 관계망으로 묶어내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지식인의 일상적 삶 - 학문적 작업 - 실천 활동을 조직적으로 묶어내고, , 노동운동, 각종 부분운동과의 연계를 유기적으로 확보해내는 작업이 무엇보다도 긴요하다고 판단됩니다.

 

양준석: 지난날 실천적 지식인들의 여러 운동을 전반적으로 평가하기에는 저의 시야와 능력이 많이 모자라는 것 같습니다. 다만 실천적 지식인들의 다수가 시간이 흐르면서 노동자 민중의 현실과 호흡하지 못하게 되거나 심지어 근본적인 신념마저 저버리게 된 원인을 깊이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1980년대에 사회주의를 들고 현장 노동자들을 찾아간 혁명적 지식인들의 거대한 흐름이 있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압도적 다수가 현장에 남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현장 노동자들의 주체성을 왜곡하는 대리주의에 불과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이 노동자 대중 속에 남겨놓은 흔적은 결코 작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5. ‘진보적 지식인’, 그들은 어떤 사상을 밑바탕 삼았는가.

 

사회자: 조선시대 이 땅 지식인은 거의 모두 유학을 밑바탕으로 하였습니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서구의 여러 사상이 들어오고 3·1 민족해방운동 뒤에는 지식인 사이에 사회주의사상이 큰 흐름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현대사의 분수령1980년 광주민중항쟁을 거치면서 지식인 사회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그 과정에서 한국 사회의 성격을 규명하려는 이른바 사회구성체 논쟁이 있었습니다. 지난날 진보적 지식인의 사상은 무엇이었으며, ‘사회구성체 논쟁에는 어떤 의의와 한계가 있을까요?

 

김수행: ‘진보적 지식인은 두 가지의 아이디어를 가졌던 듯합니다. 하나는 미국세력을 몰아내고 남북을 통일하는 것이 가장 긴급한 당면과제라고 생각했고, 다른 하나는 한국경제도 국가독점자본주의 단계에 이르렀으므로 곧장 사회주의 혁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두 아이디어 모두 최종 목표에만 매달려 현실을 무시하는 매우 환상적인 성격의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미국세력을 몰아낼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사회주의 혁명을 수행할 것인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했더라면, 쓸데없는 소모적인 이론 투쟁, 중요한 인적 자원들의 낭비, 군사독재정부에 의한 탄압 등을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비밀결사에 의한 자본주의 타도라는 슬로건은 실제로 존재했던 사회주의의 몰락이전에도 현실성이 거의 없었습니다. 대중이 자본주의를 타도하면 그 다음 사회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자본주의를 타도하려는 용기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서 지도자나 엘리트가 나타나고 개인숭배와 독재체제가 생기면서 스탈린의 과오를 되풀이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의 한국 사회를 어떤 형태의 새로운 사회로 변혁할 것인가? 온갖 정파들이 온갖 형태의 새로운 사회를 제안할 것이지만, 결국 그런 사회를 만들려는 운동과정에서 새로운 사회의 골격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새로운 사회는 천재가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모든 주민들이 민주적으로공동 결정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다시 말해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과정은 엄청나게 긴 시간과 과정이 걸릴 수밖에 없고, 따라서 부르주아 민주주주의적 과제와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적 과제 모두가 이 혁명과정에서 해결되어야 합니다. 작은 과제라도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와 자본의 가치증식을 억제하는 것이라면 모두가 새로운 사회에 기여한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고, 이렇게 작은 과제라도 해결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능력과 연대감이 생기고 더욱 큰 과제의 해결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민주주의적 복지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은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하나의 이정표가 될 수 있습니다. 학교와 병원을 무료로 운영하고 공공부문을 확대해서 실업자를 고용하며 대기업과 부자에게 세금을 많이 내게 하는 것 등은 우리 사회의 문제를 자본주의의 테두리 안에서해결하는 하나의 과정입니다. 이 정도를 획득하지 못하면서 자본주의를 타도하자고 외치는 것은 공허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최종의 목표를 어디에 두는가는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달성할 수 있는가가 더욱 중요합니다.

 

강내희: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의 사상적 저류는 유감스럽게도 자유주의와 민족주의가 기본을 이루고 있고, 사회주의 또는 맑스주의는 주변화 되어 있습니다. 이는 한국사회가 군부 독재, 즉 권위주의 체제에 의해 오랫동안 지배되었고, 남북 분단으로 인해 민족 통일을 이루지 못한 데 따른 결과이기는 하지만, 이로 인해 남한의 지식인은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로 전환된 자기 사회에 대한 비판적, 과학적 인식의 획득에 엄청난 어려움과 한계를 갖게 되었습니다.

1980년대에 들어와서 사태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변혁운동의 상승과 함께 한국사회의 성격을 두고 진보적 지식인들의 논쟁이 활성화했습니다. 이 사회구성체 논쟁의 한 성과로는 진보적 지식인 대중이 그동안 배타적으로 자유주의에만 입각하여 한국사회를 이해해오던 관행적인 사회적 상상력을 극복할 비판사회과학적 인식의 방향을 잡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사회구성체 논쟁에서 크게 민족해방(NL) 노선과 민중민주(PD) 노선으로 대립 구도가 형성된 가운데 부르주아=자유주의 노선이 틈입할 여지가 거의 없었던 것은 해방 정국 이후 한국의 사상사에서 자유주의가 처음으로 수세에 몰린 국면의 전개를 보여주었습니다. 더구나 당시 논쟁에서 PD 노선이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더 큰 설득력을 갖게 됨으로써 맑스주의가 정당성을 획득하는 성과도 있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PD이론적 승리가 남한 사회에서의 운동에서 그대로 반영된 것은 아닙니다. 이런 점은 어쩌면 당시 PD 이론이 남한이라고 하는 일국적 사회 성격 규명에 관심을 집중하고 남한을 한반도와 동아시아가 포함된 세계체계와의 관계 속에 보는 관점을 갖추지 못함으로써 현실사회주의 붕괴에 전혀 대처하지 못했던 한계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회구성체 논쟁에서 만들어진 이론적 정세와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여 벌인 운동의 정세 사이에는 바로 괴리가 확인되었습니다. NLPD의 이론적 노선 사이에 어느 쪽도 상대방의 입장을 수용하지 않는 가운데 현실운동에서는 NL 노선이 승리함으로써 PD 입장의 소수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1990년대 이후 노동자계급의 진출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계급의 사상마저 NL에 의해 침윤당하여, 오늘은 민주노총, 민주노동당도 NL의 헤게모니 하에 들어있는 상황입니다. 1990년대 초에 현실사회주의가 전면적 몰락은 아니라도 대대적 후퇴를 겪게 되자 PD의 입장은 더욱 어려워졌고, 남한사회에서 진보적 지식인이 혁명적 사회주의로서의 코뮌주의를 지지하는 맑스주의적 입장을 갖기도 어려워졌습니다.

이런 상황을 되돌리기 위한 노력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2002년부터 맑스코뮤날레가 구성되어 진보운동에서 맑스주의 노선의 복원을 꾀하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이 그 한 예입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보면 오늘 남한의 지식인은 맑스주의적 전망을 크게 상실하고, 민족주의, 자유주의에 새롭게 의존하는 모습인 것 같습니다. 다른 한편 맑스주의와 연대를 해야 할 생태주의나 여성주의의 경우 아직도 맑스주의에 대한 회의와 거부의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어서 진보적 이론 진영은 현재 도덕적 지도력을 상실한 상태에 있습니다.

 

김세균: 이승만 정권과 같은 권위주의적 정권과 군부독재체제 하에서 한국의 지식인운동은 일차적으로 민주화를 위한 운동으로 전개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사회운동과 대중운동이 아직 발전하지 못한 사정을 반영하여, 학생운동과 같은, 민주화를 위한 지식인운동이 전체 민주화운동 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았습니다. 그러나 민주화를 위한 이전의 투쟁에서 변혁세력은 대국민적 헤게모니를 차지하는 세력으로까지 성장·발전하지 못했습니다. 이로 인해 한국에서 민주화를 위한 투쟁은 사회변혁을 위한 투쟁과 결합하지 못한 채 자유주의세력 주도하에 이뤄졌습니다.

진보적 지식인은 애초에는 주로 민족문제 해결을 중시하는 입장을 취했지만, 자본주의적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면서 계급문제의 해결을 중시하는 입장도 나타났습니다. 이를 배경으로 이른바 NL노선과 PD노선이 진보적 지식인운동의 양대 노선으로 등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에 이뤄진 사회구성체 논쟁은 기본적으로 한국사회 변혁의 기본적인 성격과 과제가 무엇인가를 파악하기 위한 논쟁으로서 의의를 지닙니다. 그러나 NL파가 주로 북한의 주체사상노선을, PD파가 주로 '스탈린주의로 부를 수 있는 소련의 맑스-레닌주의를 수용한 것은 커다란 한계였습니다. 게다가 민주화의 진전과 현실사회주의 체제의 붕괴 이후 많은 지식인들이 변혁의 전망을 상실하고, 체제내적 개혁세력으로 자신의 노선을 변경했습니다. 이로 인해 오늘날에는 변혁의 전망을 견지하는 사회주의적 지식인은 소수입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체제의 모순이 누적되고 그 모순의 대대적인 폭발이 눈 앞에 닥쳐옴에 따라 지식인의 좌경화시대가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오세철: 1980년대의 사회구성체 논쟁은 맑스주의 논쟁의 미숙한 형태의 한국판 논쟁입니다. 맑스주의에 대한 온전한 학습과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기반위에서 소련교과서나 일본서적을 통해 전수된 서적들, 레닌의 저작과 코민테른자료에 근거한 지식인들의 이러한 논쟁은 변혁론과 조직론에 매몰되면서 한국자본주의에 대한 불철저한 이해에 기반을 둔 사회성격 논쟁으로 비화되었습니다. ‘민족해방민중민주라는 비맑스주의적 용어로 역사유물론을 대체시킨 극히 유아적 논쟁이었습니다. 물론 이 논쟁의 결과로 본격적인 사회주의 논쟁의 실마리를 잡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소련과 동유럽이 무너질 때 유럽의 맑스주의자들은 전혀 놀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미 1920년대부터 러시아혁명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이었지만 국가자본주의로 퇴행한 국가임을 오랜 논쟁과 분석을 통하여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계 맑스주의운동 연구와 단절 된 채 한국에 협소화되면서 불철저하게 이식된 한국의 이른바 사회주의자들에게 소련, 동유럽의 몰락은 그들의 모형의 몰락이었습니다. 대부분의 활동가들은 그들의 불철저한 신념과 깃발을 버렸고, 좌절했으며 개량주의로 노선을 바꾸었습니다. 극히 일부는 스탈린주의와 김일성 주의를 고수하며 여전히 혁명가임을 자처했고 또 한 부류는 맑스주의에 대한 연구에 골몰하게 됩니다.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맑스주의 논쟁이 그 동안의 논쟁을 기반으로 활발하게 벌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최갑수: 저는 사회구성체 논쟁에 대한 평가가 여전히 미진하다고 생각합니다. 논쟁의 내용 자체도 중요하지만, 논쟁의 형식, 방식, 역사성 등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저는 그 논쟁이 우리 학계에서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운동적 실천을 학문적 논구의 대상으로 삼았음에 큰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그 논쟁으로 지식인, 연구자, 학생, 운동가들은 자신의 삶과 학문적 내용의 연결을 고민했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이런 표현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상의 기강을 만들어주는 효과를 냈다고 봅니다. 사실을 돌이켜 볼 때, 논쟁은 내용적인 면에서 충분히 성숙한 것은 아니었다는 판단입니다. 구미 이론의 소개나 도입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활력이지요. 중요한 점은 우리 사회(사회구성)에 대한 풍요로운 접근이 약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존 사회주의의 몰락은 그 논쟁을 싱겁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 논쟁이 논리적 정합성이 아니라 현실적 설득력에 더 큰 강조점이 놓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회구성체 논쟁의 의의를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대안적 사상체계의 가능성을 겨냥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논쟁을 전 지구적 맥락에서 우리 사회를 역사과학적으로 이론화하는 작업의 출발로 인식해야 된다고 봅니다.

 

양준석: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자면 이른바 사회구성체 논쟁은 스탈린주의와 일국적 시야라는 한계 속에 철저히 갇혀 있었지요. 하지만 현실의 모순을 총괄적으로 규명하고 혁명의 전망을 세우려고 했던 치열한 노력은 그 자체로 매우 소중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구성체 논쟁속에 담겨 있던 사상적 한계를 극복하면서 아울러 그 시절의 혁명적 정신을 되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실 한국 사회의 자본주의 모순은 1980년대보다 지금이 더욱 심각한 것 아닌가요? 1980년대보다 지금의 한국 사회가 더 혁명을 요구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물론 사회구성체논쟁속에 담긴 민중주의와 민족주의의 시선으로는 오늘의 한국 사회를 제대로 파악할 수조차 없을 것입니다. 자본주의 모순을 정면으로 직시하고 노동자 계급을 주체로 한 사회주의 혁명의 전망을 뚜렷이 할 때에만 오늘의 현실이 요구하는 혁명을 온전히 이해하고 표현해 낼 수 있다고 봅니다. 그것이 사회구성체논쟁을 올바로 계승하면서 또 극복하는 태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6. 오늘, 남한 사상계는 어디에 서 있는가.

사회자; “갈 길이 멀고 산이 험한데 어디 하나 이정표도 표지판도 없다고 말한 선진노동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노동자는 딱히 읽어야 책이 눈에 띄지 않고, 어렵게 읽어본 책에서도 속 시원한 답을 찾기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남한 사상계의 단면을 꼬집은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날 남한 사상계의 지형을 진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강내희: 오늘 남한의 사상계는 혼돈입니다. 신자유주의적 질서가 구축되어 사회 전반을 지배하게 됨에 따라서 자유주의 일반이 사상적 헤게모니를 행사하고 있는 한편, 비판적 사유의 가능성이 갈수록 축소되는 상황입니다. 현실사회주의가 몰락한 1990년대 이후 사회주의는 더 이상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인식이 진보적 지식인 사회에까지 깊숙이 침투해 들어와서 자본주의 이후를 설계하고자 하는 지식인 대중의 꿈이 크게 무너진 것으로 보이며, 혁명적 사회주의 또는 코뮌주의를 지향하는 맑스주의의 관점을 지지하는 지식인의 수가 많지 않은 것도 그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보면 신자유주의의 전횡이 갈수록 노골적으로 드러나면서 이에 대한 세계민중의 저항도 극렬하게 진행되고, 오늘 이 새로운 자본축적 전략에 대한 저항 전선이 중동과 남아메리카에서 위력을 발휘함에 따라서 세계자본주의의 미국헤게모니가 위기에 처했다는 인식도 커지고 있습니다. 1990년대 초 현실사회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해체되었을 때 거의 절망에 빠졌던 세계의 지식인 사회도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를 대안으로 찾는 움직임이 가동되기 시작했다는 조짐이 보입니다. 1999년 시애틀에서의 WTO 각료회의 저지운동이 세계적 관심을 끈 이후 세계사회포럼이 조직되었고, 반신자유주의 운동, 반전운동이 세계적으로 조직되고 있기도 하다. 한국에서도 최근 몇 년 사이에 문화/과학, 진보평론, 마르크스주의연구와 같은 맑스주의 입장을 견지하는 이론지, 맑스코뮤날레와 같은 단체 활동에서 대안사회의 모습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고, 이밖에 여기저기서 변혁적 진보운동을 조직하려는 노력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아직은 이런 움직임이 남한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자유주의적 지식생산에 타격을 가할 정도는 아니지만, 1990년대 초에 나타난 절망감을 극복하는 단초가 마련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최갑수: 오늘날 세계 사상계는 미국의 헤게모니 하에 놓여 있습니다. 미국은 특이한 양상을 보입니다. 미국의 지성계는 대체로 기업자유주의라는 주류 이데올로기에 편입되어 있는데, 그런 속에서도 꽤 강한 진보적 지식인의 흐름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후자는 원래 미국의 현실운동과 무관하게 (아니 좌파운동의 실질적 부재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지만) 존재해 왔기에 현존 사회주의의 몰락 뒤에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오히려 대학들의 다양한 발전전략 안에서 일정한 영역을 확보하고 있는 셈입니다.

문제는 유럽입니다. 이 지역은 19세기 중반 이래 세계 변혁운동의 이론적 공급처였습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것을 떠받치는 조직적 인프라 - 계급정당, 노동운동 등 - 가 존재하고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960년대 말부터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습니다. 서구사회가 변화의 전망을 상실한 채 조직적 변혁운동의 동력이 고갈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현실운동의 기반이 무너지면서 변혁이론의 생산체계에 비상이 걸리게 되었습니다. 이론적 성찰과 학문적 예지는 넘치지만, 변혁의 의지와 사상적 역동성은 척박해지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3세계’, 특히 중남미의 지성계가 새로운 공급지의 유일한 후보로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학문적 기반이 취약하여 새로운 문제의식과 변혁적 의지가 주로 문학이나 예술을 통해 발산되었습니다. 그 감수성이 이론적 체계화로 연결되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이에 비하면 동아시아의 지식계는 구미에 버금가는 지식 인프라를 갖고 있습니다만, 주로 제1세계나 제2세계의 관점에 함몰되어 그 역량에 걸맞은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즉 남한의 사상계는 단지 냉전의 유산 때문만이 아니라 특히 미국학계에의 종속으로 이렇다 할 자가발전의 계기를 갖지 못했습니다. 남한의 진보적인 지식인들 역시 이 큰 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런 점에서 차라리 최근에 우리 사회에 보수적인 이데올로기의 등장은 그렇게 나쁜 징조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남한의 자본 세력이 이제 그 나름의 이데올로기 장치를 가질 정도의 역량을 확보했음을 뜻합니다. 우리의 전통과의 화해를 통해 한갓 외래사상만이 아닌 토착화된 철학 보듬기가 이제 시도해봄직한 수준에 이르렀는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진보 지식인들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탈근대주의의 문제의식을 과감하게 수용해야 하며, ‘전통과 화해하면서 현실적 상관성을 확보할 수 있는 실천적 이론을 주조해내야 합니다. 특히 진보적인 지식인을 재생산해낼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더 튼실하게 꾸려야 합니다.

 

오세철: 지식인운동은 계급투쟁을 반영합니다. 세계의 이른바 사회주의세력은 세계계급투쟁 역사의 거울입니다. 특히 야만으로 나아가는 21세기 자본주의의 억압과 착취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계급의 투쟁이 2000년 이후 거세어지면서 지식인운동도 변화하고 있으며 그 정체성을 공고히 하고 있습니다.

스탈린주의에 침윤된 서구의 공산당, 사회민주주의당과 그와 연관된 세력은 자본의 좌파를 자임하면서 세계자본주의를 유지하는 세력이며 이와 연관된 지식인은 이들의 이데올로그들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이들 세력은 이미 신자유주의에 포섭되어 있으며 자본의 이중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국가를 자처하는 중국, 북한, 베트남, 쿠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3세계를 중심으로 한 반미제국주의세력과 이에 동조하는 지식인들은 여전히 세계 부르주아지의 가운데 일부임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민중주의와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이용하여 세계자본주의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내세우는 “21세기사회주의는 민족 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합니다.

스탈린주의의 생산력주의와 조직관을 비판하는 비판적 흐름은 1968년 주체적 혁명운동 이후에 꼬뮨운동, 공동체운동, 자율운동 등을 강조하면서 미시적 실천투쟁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들 흐름은 무정부주의와 만나기도 하고 맑스주의와 무관한 공동체운동이 되기도 합니다. 각 영역에서의 발본적인 사회운동의 혁명성이 맑스주의의 전 세계적 공산주의 운동과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입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바다에서 사회주의 섬이 있을 수 없다는 대 명제에 답하는 것이 이들 세력의 책임입니다. 그렇지 못할 때 이들 세력 역시 자본을 반대하지만 자본의 좌파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위에서 말한 세 가지 부류의 세력을 근본적으로 넘어서는 세력은 혁명적 맑스주의자, , 공산주의자들입니다. 이들은 세계혁명을 위한 계급투쟁 속에서 역사의 주체가 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선진된 일부이며 그 투쟁을 혁명으로 이끌고 그 이후 사회를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넘겨주는 세력입니다. 세계적으로 이러한 혁명적 세력이 성장하면서 재편되고 있으며 현장에서 양성되고 있습니다.

 

양준석: 남한 사상계 전반의 흐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지식인들의 전반적인 사상적 경향이 자본주의 틀 안에 훨씬 더 갇혀버린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소련의 몰락과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현실에 압도당하면서 자본주의 불패의 신화가 지식인들의 가슴 깊숙이 내면화되었다고 할까요? 속물화된 지식인의 초라함과 무기력이 어느 때보다 두드러지는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자본주의라는 경계 안에서도 해체와 혼돈이 지배하는 시대라고 봅니다. 물론 20세기에 펼쳐진 사회주의운동이 객관적으로 한계를 드러낸 만큼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도전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그것은 일정한 해체와 혼돈을 불가피하게 요구한다고 봅니다. 국가를 통한 위로부터의 혁명이 아니라 노동자 대중 스스로가 펼치는 자기해방운동으로서 혁명이 되어야 한다는 점, 혁명이 또 다른 억압 질서로 귀결되지 않도록 계급 해방이 다양한 사회적 억압에 대한 해방과 결합되어야 한다는 점 등은 특히 반드시 붙잡아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방향에서 사상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기존의 경직된 사고 틀을 해체하려는 노력은 나름대로 의미를 갖는다고 봅니다.

그러나 사상의 해체는 재구성을 위한 과정이어야 할 것입니다. 20세기의 사회주의운동이 성취했던 빛나는 성과들을 올바로 계승하는 토대 위에 설 때에만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노력도 현실에서 소중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사상의 해체가 재구성을 위한 과정으로 되지 못한다면 현실과 동떨어진 관념의 유희를 결코 넘어서지 못할 것입니다.

 

 

7. 선진노동자가 움켜 쥐어야할 핵심 고리는 무엇인가

 

사회자: 노동자들은 시도 때도 없이 밀려드는 자본의 공세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많은 노동자는 불안한 미래에 공포심을 갖고 더욱 움츠러들고 있습니다. “젊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벌자는 것이 그들이 내건 슬로건처럼 보입니다. 때때로 노동자들은 곳곳에서 이러저러한 싸움을 힘겹게 벌이지만, 바리게이트를 훌쩍 뛰어넘지 못하는 일이 많습니다. 오늘날 선진노동자들의 임무는 무엇이고 눈앞에 닥친 투쟁을 돌파할 핵심 고리는 무엇인가요? 또 선진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이나 민주노동당에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강내희: 오늘 선진노동자는 노동운동을 자본주의 체제의 재생산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변혁운동으로 전환시키는 데 앞장서는 노동자일 것입니다. 노동조합은 노동자계급에 필수적인 조직이지만 노동자계급을 자본주의에 안주하게 만드는 함정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선진노동자는 노동자의 노동에 대한 권리를 일자리 안정화라는 정규직 노동자의 요구 수준에서 벗어나서 노동의 사회적 조직을 노동자가 직접 담당할 수 있도록 노동권을 강화하는 노동자라야 한다고 봅니다. 이를 위해 선진노동자는 노동조합의 활동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사회적 성격을 바꾸는 활동까지 감당해야 합니다. 노동조합은 궁극적으로 노동자계급이 사회적 생산의 관리자가 되었을 때 그것을 자율적으로 떠맡는 단위가 되어야 하며,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을 극복하는 거점으로서의 위상을 획득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현시점에서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라는 요구를 구현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은 변혁운동의 선두 주자가 될 수 없습니다. 민주노동당은 기껏해야 일자리 보전 요구만을 제출하는 케인스주의적, 사민주의적 정당으로서 이 정당은 현 단계 자본주의의 지배적 축적 전략인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는 얼마간 비판적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자본주의 자체를 극복하려는 지향은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진적 노동자들이 변혁운동에 기여하려면 민주노동당과의 고리를 끊고 새로운 변혁적 정당을 건설하는 데 나서야 한다고 봅니다. 확실한 변혁 지향적 정당을 건설한 뒤에 민주노동당과는 사안별 연대를 하면 될 것입니다.

현재 선진노동자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는 독자적 진보정당, 다시 말해 자본주의 이후를 설계하는 변혁적 진보정당을 건설하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서 선진노동자는 두 가지 이론적 진전을 이룰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한편으로 맑스주의적 관점, 다시 말해 코뮌주의 운동 이념에 입각한 확고한 변혁의 입장을 견지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선진노동자들이 자유주의, 민족주의, 사민주의 등과의 확고한 이론적 단절을 이루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선진노동자들은 비-계급적 진보세력과의 연대를 제대로 추진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변혁을 지향하는 사회 세력의 독자적 진보정당은 노동자계급만으로 건설할 수 없으며, 이 정당을 건설하려면 반드시 계급적 좌파와 비 계급적 좌파의 연대를 해야 합니다. 이는 선진노동자들이 페미니즘이나 생태운동, 문화운동 등 비-노동 운동에서의 진보적 좌파들과 연대를 올바로 추진해야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진보정당 건설 운동이 노동자계급 운동 내부에서만 진행될 것이 아니라 복수의 사회적 주체들이 참여하는 민주적 논의 과정을 띤 대중운동의 형태를 띠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김수행: 선진노동자는 작업현장에서 노동자들에 대한 교육과 토론을 통해 노동자들의 협동과 연대와 단결을 강화하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물론 노동조합 사업에도 열심히 참가하면서 노동대중이 되어야 하고 중요한 문제에서는 올바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1980년대 현장에 들어간 대학출신들이 왜 큰 성과를 올리지 못했는가를 반성하는 것도 중요한 연구과제가 될 것입니다. 파업을 하면 기업 활동이 거의 중단되는 분야와 지점에서 파업이 조직되어야 하며, 파업의 성공여부는 노동조합원들 상호간의 유대와 연대 및 책임감에 있습니다. 이런 감정은 학습을 통해 생기기보다는 오랜 시절의 일상적인 동지애에서 비롯됩니다.

선진노동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사항들은 노동계급 전체의 이익을 확보하는 것이어야 할 것인데, 일자리의 창출, 실업자의 축소, 비정규직의 축소, 노동자와 간부 사이의 급여 격차 축소, 노동시간의 단축, 노동 강도의 약화 등이 중요하지만, 우리나라에 만연하는 서민들의 노동조합 비판론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는 학교와 병원의 무료화, 낮은 월세의 장기임대주택의 건설, 노인 복지의 확충, 재벌체제의 해체 등 사회 전체의 문제에도 큰 관심을 쏟아야 합니다.

노동자들의 정치세력화는 필수불가결하며, 민주노동당의 국회의원들이 이룩한 성과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민주노동당의 개혁에 적극 동참하는 태도가 지금과 같은 정치권의 이합집산에 대항하는 하나의 좋은 선례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최갑수: ‘선진노동자란 구체적 일상에서 풍요로운 삶을 구현하는 존재여야 합니다. 과잉의식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건강한 삶을 유지하면서 의지와 현실을 결합시킬 수 있는 존재여야 합니다. 그들이 존재성을 발휘하려면 일상생활-현장운동-노동조합--이데올로기로 이어지는 조직적, 이론적, 실천적 기반이 작동해야 하고, 여기서 실천적 지식인의 역할은 작지 않습니다. 분파주의에서 벗어나 대승적 견지를 확보해야 합니다.

 

김세균: 한국의 노동운동은 1980년대부터 전노협 운동의 시기까지는 선진노동자 중심의 변혁 지향적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건설된 이후 이른바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노선 등이 제창되면서부터 민주노조운동은 지배적 흐름에서는 변혁지향성을 상실했습니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은 그간 민족주의세력과 사민주의세력에 의해 주도되어 왔는데, 이로 인해 민주노동당은 그간 크게 보아 계급노선이 민족주의노선에 의해 왜곡되는 가운데 체제내적 개혁정당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정세 속에서 오늘날 선진노동자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아래와 같은 과제들이 부여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 민주노조운동을 혁신해 그 운동이 변혁 지향적 운동으로 발전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둘째, 진보적 지식인들과 힘을 합쳐 변혁적 계급정당을 건설해야 합니다. 셋째, 신자유주의반대 연대전선의 형성과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신자유주의반대투쟁이 자본주의 극복을 위한 투쟁으로 발전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과거에는 민주화를 위한 투쟁을 사회변혁을 위한 투쟁과 결합시키는 것이 과제였다면, 오늘날에는 신자유주의반대투쟁을 사회변혁을 위한 투쟁과 결합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런데 위의 과제 가운데 어느 하나를 우선시하기보다는 중층적 대응이 요구되며, 정당 건설의 과제와 관련하여서도 이념적 단일성의 확보 보다는, 계급적 좌파들 간의 차이를 넘어선 단결과 당면한 실천적 과제의 해결을 위한 공동 대응을 중시해야 할 것입니다.

 

오세철: 선진노동자를 협의의 사회주의 노동자가 아니라 넓은 의미의 계급정체성을 인식한 계급의식 있는 노동자로 보는 입장에서 말하겠습니다. 이들의 임무는 밑으로부터의 계급투쟁을 진전시키는 것입니다. 자본의 공격은 생산현장에서만 벌어지지 않습니다. 모든 유통과 소비과정 즉 잉여가치가 실현되는 모든 곳에서 벌어집니다. 노동자를 소비자나 시민으로 분리시키는 자본주의사회에서 투쟁의 현장을 삶의 모든 영역으로 넓히고 투쟁을 조직해야 합니다. 따라서 투쟁은 현장, 부문, 지역으로 확대됩니다. 이럴 때의 투쟁의 무기는 조직인데, 전통적 의미의 영구조직인 노동조합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관료화 되고 조합주의에 매몰되는 노동조합 내에서의 투쟁뿐만 아니라, 이를 넘어서는 투쟁위원회, 파업위원회, 총회 등을 통한 대중 투쟁의 활성화 또한 중요합니다.

위와 같은 모든 현장, 부문, 지역에서의 투쟁을 기반으로 혁명적 사회주의자로 스스로 상승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맑스주의 사상과 이론 그리고 실천을 통하여 공산주의자가 될 수 있으며 혁명당 건설의 주체가 되고 세계혁명당 건설을 위한 세계 공산주의자의 단결,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단결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하여 왜 민주노동당이 노동계급의 당이 아닌지, 왜 민주노총이 노동계급의 대중조직이 아닌지를 인식하게 되고 혁명적이고 대중적 투쟁조직에 기반을 둔 혁명적 계급정당을 건설할 수 있습니다.

 

양준석: 초보적이더라도 노동자 계급의식을 갖추고 실천하는 층으로서 선진노동자가 과거보다 축소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결정적으로 해체된 상태는 아니라고 봅니다. 1987년 대투쟁이 만들어낸 선진노동자들의 힘은 비록 그 빛이 많이 바랬다고는 하나 여전히 현장 속에 남아 있습니다. 비정규직 속에서도 느리지만 꾸준히 형성되고 있습니다. 선진노동자들은 여전히 또는 새롭게 노동자 계급의 진정한 연대와 단결, 살아 숨 쉬는 노동자 민주주의, ‘노동해방에 대한 지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선진노동자는 더 이상 노조 간부들을 중심으로 이해될 수 없습니다. 민주노조 역량이 그런대로 남아 있는 사업장에서조차 노조 간부들의 관료화는 심각합니다. 어느덧 한국에서도 노조 관료들이 선진노동자들의 올바른 결집과 분출을 가로막는 암세포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은 그 노조 관료들의 정치적 결집체이자 대표체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선진노동자들을 올바로 결집하고 분출시킬 수 있는 운동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노동해방의 전망을 다시금 당당하게 내세울 수 있도록 사상적 전망을 제시해 주는 것, 관료주의를 뚫고 나아가는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과 노동자 민주주의의 힘을 재건하는 것이 그러한 운동의 핵심 과제일 것입니다. 자본의 공세에 맞서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틀 안으로 얽매이지 않으면서 자신의 투쟁을 발전시켜 나갈 때에만 노동자 운동의 새로운 전진이 가능한 시점입니다. 그 가능성과 필요성은 현실에서 충분히 무르익고 있습니다. 관건은 그러한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 나갈 주체 역량이 어떻게 서는가 하는 것입니다.

 

 

8. ‘유기적 지식인’, 그들은 누구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회자: ‘사회주의 종합연구소를 지향하는 사회실천연구소는 연구자와 활동가가 유기적 지식인으로 활동하면서 노동계급이념 뿐만 아니라 구체적 실천운동에 복무하는 연구소입니다. ‘유기적 지식인의 임무와 과제는 무엇인가요?

 

김수행: 지식인과 활동가는 사실상 분업과 협업의 관계에 있습니다. 레닌이나 그람시와 같이 지식인이면서 활동가가 되는 것은 보기 드문 예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각각의 활동영역이나 관심분야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상호간에 토론을 통해 공동의 광장을 만들어 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회가 점점 더 복잡해지므로 각종의 전문분야에서 전문가가 탄생해야 하며, 각각의 전문가들이 우리 사회 전체의 핵심문제의 해결에 협력할 때 비로소 유기적 지식인이 형성될 것입니다. 지식인 한 사람이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는 없고 공동연구를 통해 우리 사회의 개혁에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지식인이 현장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방식도 지식인과 활동가의 연대를 통해 이룩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사회과학대학원을 통해 유기적 지식인을 양성하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과학대학원의 설립과 운영은 먼저 비판적인 사회과학의 교육과 사회적 확산에 가장 큰 강조점을 두어야 할 것이고, 나아가서는 비판적인 사회과학자들에게 교육활동의 기회를 주면서 그들을 확대재생산하는 데 기여해야 할 것입니다.

 

김세균: 유기적 지식인이란 대중투쟁의 이론적-이데올로기적 전망을 제시하고 그 투쟁을 변혁을 위한 투쟁으로 발전시키는 데에 기여하는 지식인을 가리키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이런 지식인은 제도교육을 통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비제도적인 차원의 학습과 현실투쟁과의 결합을 통해서만 배출될 수 있을 뿐입니다. 현실투쟁과의 연관성을 견지하는 가운데 현재 힘을 모아야 할 절박한 당면투쟁과제들이 무엇이며, 이 투쟁을 어떻게 사회변혁을 위한 투쟁과 결합시킬 것인가를 이론적으로 구명하는 것이 유기적 지식인의 가장 중요한 임무입니다.

 

최갑수: 현재 우리 사회의 여건에서 유기적 지식인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우선 대학이나 일부 연구소를 제외하고 그들이 생존할 수 있는 기반 자체가 부재합니다. 계급정당이 일정한 규모를 지녀 이데올로기 기구를 보듬을 만한 능력을 갖춰야 하는데, 현재의 상황에서는 난망입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고등교육체계가 그것의 재생산을 가능하게 할 정도의 품새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원래 대학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장치이면서 그것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수행하는 이중성을 지닙니다만, 우리 대학은 특히 최근에 세계화의 충격 속에서 신자유주의의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자본의 공세로 비판적 성찰의 거소를 허락하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민교협이나 학단협, 기타 학외 자생적인 연구소의 역할이 돋보입니다만, 전반적으로 역부족인 느낌입니다. 기존 학계의 틀 밖에서 학계의 전문성을 가지면서 시대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고민하고 구체적인 이론적 성과를 내는 이가 유기적 지식인인데, 이런 사치를 현재 누릴만한 곳은 대학 이외에는 부재합니다. 그러니까 대학교수로 충원되는 이 가운데 실천운동과의 접촉을 유지하면서 학문적으로 탁월한 성취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참으로 지난한 일입니다만 이런 이들이 대학사회에서 가능하려면 대학체계의 근본적인 혁신이 요구됩니다.

그리하여 당장에는 개별적인 수준에서나마 성과를 내면서 기존의 학술운동의 틀을 강화시키는 것 이외에 뚜렷한 방안이 보이질 않습니다. 노동운동, 계급정당의 활력이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집니다. 젊고 유능한 지식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이 주어져야 합니다. 이런 모든 일들이 그야말로 변증법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어떤 것이 먼저 변해야 할까요? 저로서는 기존의 조직적 기반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개인적인 차원에서 대안적 세계상의 구축에 몰두할 생각입니다. 물론 진보진영 차원에서 ‘think tank’의 구축은 무엇보다도 시급합니다만, 그 현실적 여건을 치밀하게 탐색해야 할 것입니다.

 

강내희: 오늘 한국의 지식인들은 대부분 구조적으로 한국자본주의의 관리 체제 안에 포섭되어 있습니다. 이 체제는 무엇보다도 대학제도와 학술진흥재단(학진)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 제도의 역할 강화는 한국 지식인들의 생존 기반이 갈수록 제도권에 종속됨을, 지식인의 자유로운 활동 공간이 축소됨을 의미합니다. 특히 학진의 영향력 강화는 진보적 학술운동의 위축을 불러일으킨 중요한 원인인 바, 이로 말미암아 지식인은 사라지고 연구자만 남았다는 상황이 형성되고, 지식인의 비판적 기능은 크게 축소되고 말았습니다.

학진과 대학제도의 영향력 강화는 진보적 지식인을 포함한 오늘의 지식인을 대거 자본주의적 지식인으로, 다시 말해 자본가/부르주아 계급의 유기적 지식인으로 전환시킨 효과를 낳고 있습니다. 모든 계급은 각기 자신의 유기적 지식인을 가지고 있는데, 진보적 지식인마저 연구자로 전환되는 상황에서는 이들도 자본가/부르주아 계급의 유기적 지식인으로 기능할 것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오늘 대부분의 전문적 연구 논문은 지식이 자본 축적의 수단이 되는 경향 속에 생산되고 있고, 이에 따라서 비판적 지식의 형성은 갈수록 어렵기만 합니다. 기존의 학술운동의 경우 이런 경향에 대해 별다른 개입도 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것은 그동안 한국에서 진보적 지식인 운동으로 통하던 흐름이 실패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속 시원한 답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원론적인 답을 구해본다면 지식인들이 자본주의와 비자본주의를 구분하는 전선을 그을 수 있는 능력을 회복하고, 그에 따라서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전망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오늘 자본주의의 작동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와 그것을 지양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일이 중요하고, 자본주의 이후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 비판과 그에 대한 대안의 형성이 진보적 지식인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오늘 지식인 다수는 패배주의에 빠져 있고, 비판과 대안 구성의 노력보다는 생존에 급급한 형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는 진보적 지식인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확보할 수 없으며, 지식인의 이론적 실천을 대중에게 납득시키기 어렵습니다. 진보적 지식인이 오늘처럼 총자본의 유기적 지식인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프롤레타리아트, 즉 피압박 민중의 유기적 지식인이 되려면 자본주의 비판과 자본주의 극복의 발언을 설득력 있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민중의 유기적 지식인으로서의 진보적 지식인이 도덕적 지도력을 갖추고, 그 능력으로 대중과 만나야 함을 의미합니다.

 

양준석: 사회민주주의와 스탈린주의를 철저하게 극복하는 혁명적 사회주의의 전망만이 노동자 계급을 비롯한 모든 인류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혁명적 사회주의의 총체적 전망을 함께 세워 나가고 또 그것을 노동자 대중 운동과 접목시켜 나가는 것이 오늘날 노동자 계급에 속한 유기적 지식인의 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회실천연구소는 그러한 유기적 지식인의 운동을 건설해 가기 위한 하나의 작은 시도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밖에도 여러 다양한 노력들과 올바로 연대하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오세철: 사회실천연구소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맑스주의 연구자와 맑스주의 실천가들이 함께 만들고 실천하는 연구소입니다. 물론 맑스주의 연구자가 이론 생산이라는 실천영역을 가지고 있지만 그 이론 생산도 실천을 기반으로 하지 않을 때 맑스주의 이론이라 볼 수 없습니다. 역사에서 혁명가들은 맑스주의 이론과 원칙에 충실했으며 이론가들은 스스로 혁명가로서의 실천에 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부르주아 지식인은 철저하게 본질과 총체성과 분리된 채 기능인으로 양성됩니다. 그들이 자본의 이해에 종속되는 것도 스스로의 의지에 의한 것으로 착각합니다. 이러한 기능인을 양산하는 부르주아 고등교육체계 내에서 우리는 혁명적(유기적) 지식인을 양성 할 수 없습니다. 유기적 지식인은 맑스연구자가 아니라 맑스주의자입니다.

그러나 맑스주의자도 체계적 학습과 연구 없이 양성되지 않습니다. 레닌은 노동조합이 학교라고 했지만 이는 실천과 분리된 학교는 진정한 학교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맑스주의자 양성기관은 모든 실천현장에서 계획적으로 설립되고 그를 총괄하는 노동자의 학교가 건설되어야 한다. 종합인문사회과학의 목표를 지닌 사회실천연구소는 교육, 선전, 이론 생산, 혁명 전략 생산까지 포괄하는 연구소로 확장되면서 우리사회의 변혁을 일구어갈 유기적 지식인을 키우는 본산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회실천연구소가 미래의 실천을 만들어가는 마당으로 성장하기를 바랍니().

 

 

9. 다하지 못한 말, 꼭 해야 할 말

 

사회자: 그저 몇 개 설문을 통해서 선생님들의 생각을 다 들어볼 수는 없었습니다. 하시고 싶은 말씀이야 많겠지만, 이번 설문과 관련해서 꼭 덧붙이실 말씀이 있다면 해주시기 바랍니다.

 

강내희: 진보적 실천의 새로운 상이 무엇인지 짚어야 합니다. 진보적 실천을 수세적인 모습, 공세적인 모습으로 나눈다면 그동안 진보운동은 자본주의의 공세에 대해 수세적으로만 대응하는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FTA 체결, 구조조정, 노동유연화 등으로 자본이 먼저 공세를 취하면 이를 막기 위해 급급한 것, 이것이 진보운동의 통상적 모습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진보적 실천이 진보적이려면 공세적이기도 해야 하며, 무엇보다 변혁 지향적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구조조정을 막는 일, 노동유연화를 저지하는 일, FTA 체결을 저지하는 일은 모두 진보적 실천임이 분명하지만 자본주의의 현상을 유지하는 데 그친다는 점에서 크게 변혁적이지는 않습니다. 진보적 실천이 변혁적이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체제의 재생산 과정에 개입하여, 그 재생산을 중단시키는 실천을 지향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남한 자본주의의 재생산을 종식시키는 활동은 무엇일까요? 자본주의 재생산 메커니즘은 복잡하며, 그것을 해체하는 작업 또한 다양하겠지만 진보적 실천을 위해 필요한 것은 남한 자본주의 재생산을 종식시킬 전략적 지점을 확보하는 일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남한 자본주의의 재생산이 여러 메커니즘을 통해서 이루어짐을 인정하면서도 이들 메커니즘 가운데 약한 고리가 어디인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자본주의 재생산은 주로 부동산과 소비자본주의, 그리고 교육 부문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이들 영역은 남한 대중이 노동 등의 활동을 통해 획득한 소득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부문으로서 남한 대중은 대체로 이들 영역으로의 포섭에 의해 자본주의적 주체로 재생산됩니다. 그런데 진보적 진영에서 이런 문제에 대한 인식이나 개입 전략이 전무한 것으로 보입니다. 선진노동자, 진보적 지식인은 남한 자본주의의 재생산에 개입할 수 있는 이론적 실천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진보적 지식인, 선진노동자 등 진보적 실천에서 선두에 선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외톨이가 되었습니다. 1980년대 운동의 상승이 꺾인 지 15년 남짓 지난 뒤에도 아직 남아있는 변혁 지향적 실천가들의 이론적 역량은 상당히 커졌다고 판단됩니다. 과거 1980년대에 일천한 지식과다한 신념으로 운동을 하던 때와 비교하면 그렇습니다. 문제는 지금까지 축적된 능력이 소수화, ‘게토화했다는 것이고, 진보적 지식인, 선진노동자, 좌파적 사회운동활동가들이 대중들로부터 유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변혁 지향적 운동은 이제 대중과의 접점을 찾는 데, 자신의 대중을 획득하는 일에 가장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대중운동론이 시급하게 필요합니다.

 

김세균: 오늘날 변혁세력은 내부적 차이들을 넘어 힘을 합치지 못하고 있고, 현실에서 전개되는 제반 투쟁에 적극 결합하지 못하고 있으며, 신자유주의반대투쟁을 명실상부하게 주도하는 세력으로 등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다시 미증유의 위기를 맞이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정세 속에서 이런 상태를 종식시키기 위한 비상한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구됩니다.

 

오세철: 이번 지상 좌담회에서 세계사회주의운동사와 세계노동자 운동사에 대한 맑스주의 원칙을 통한 평가가 이루어졌으면 더욱 뚜렷하게 응답자의 노선과 입장이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혁명적 맑스주의가 무정부주의와 착종되면서 대중의 혁명성을 미시적, 부분적 투쟁으로 발화시켜 소진시키는 주체 편향적 운동이 혁명적 맑스주의 운동을 대체하는 경향을 경계합니다. 당과 계급, 객체와 주체의 변증법적 통일을 가로막는 이분법적 발상과 일면적 실천을 비판하면서 혁명적 맑스주의 원칙으로 통일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여성운동과 환경운동이 맑스주의와의 대립을 넘어서서 진정한 인간해방으로 나아갈 수 있는 관점으로 나아가길 기대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주의(사람이름을 쓰건 아니건 간에)가 맑스주의 사상이론과 실천으로 통일되기를 바랍니다.

 

사회자: 저는 모든 진리는 명료하며, 명료한 것만이 진리이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공부가 짧아서 그렇겠습니다만, 어려운 말은 잘 못 알아듣고 비비꼬인 말은 늘 의심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이번 지상 좌담회에서 어린아이 같은 간단한 질문에 사려 깊은 대답을 아주 분명하게 답변해주신 여러분께 참으로 고맙다는 인사 올립니다. 여러 선생님의 깊은 속내를 잘 알 수 있었으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이글을 읽는 독자도 그러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지상 좌담회에 직접 참여하신 선생님들 말고도 몇 분이 더 참여하시기로 했지만, 바쁜 일정과 원고 마감 시간 때문에 미처 설문에 응답하시지 못했습니다. 무척 아쉽습니다. 모든 분께서 앞으로 더욱 따뜻하게 사회실천연구소를 지켜봐주시고 연대와 소통의 통로로 적극 활용해주시길 바랍니다. 이것으로 지상 좌담회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