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실천연구소

맑스주의대포스트모더니즘PARTI 본문

실천지 (2007년)/2007년 12월호

맑스주의대포스트모더니즘PARTI

사회실천연구소 2014. 12. 15. 14:37

맑스주의 대 포스트모더니즘

 

Trotskist International

 

 

지난 몇 년 동안 이러 저러한 이데올로기, 예술, 사회 계급의 종말, 레닌주의,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의 위기 등등과 같은 것이 파국이나 구원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을 대체하는 전도된 천년왕국설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와 함께, 이 모든 것들이 아마도 차츰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불리는 것을 이루게 될 것이다.”(프레데릭 제임슨)

 

 

만일 20세기 후반의 시대정신-문화, 학문의 사고와 정치를 지배하는 시대의 정신-이 있다면, 그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의 깃발 아래 모인 사상들로 나타날 것이다. 우리는 제임슨의 목록에 후기 산업사회 사조, 과학에서 카오스 이론, 그리고 당연하게도, “역사의 종말을 덧붙일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아직 부르주아 사상을 지배하는 형식은 아니다. 그러나 차츰 그것은 비판적 학문 사조를 지배하는 형식이 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맑스주의적 비평은 그 지적 핵심에 도전하고 그 물질적 기초를 벗겨내야 한다. 이 논문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첫째, 포스트모더니즘을 지지하는 이론을 요약하는 것, 둘째, 그 이론에 맑스주의적 비평을 가하는 것, 셋째, 포스트모더니즘이 지닌 그럴듯함의 물질적 기초를 설명하는 것이다.

사회과학, 문화 이론, 정치, 철학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최악의 적은 맑스주의이다. 여전히 주도성을 지니고 있는 오래된 부르주아 자유주의는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에 위기가 시작되자 그 역동성과 일관성을 잃어버렸다. 1970년대에 비록 여러 가지 형태이기는하지만 맑스주의는 현대 사회에 대한 일관된 비평을 위한 연구를 위해 채택되는 주요한 방법론의 방식이었다.

오늘날, 영어권에서 맑스주의는 사실상 대학에서 버림받고 있다. 전체 학문 세대가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변화했다. 학생들은 맑스주의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하며, 더욱이 맑스주의 반대자들이 제공하는 혼란스러운 요약본의 형태들보다 그것에 대한 연구도 줄어들었다.

그러므로 인류학, 사회학, 심리학, 정치학, 철학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거의 새로운 정통이 되어버렸다. 바로 그 존재가 포스트모더니즘의 방법을 전제로 하는 - 제국주의 세계체제가 파문되어버린 - “포스트 식민 이론과 같은 학문 분야는 말할 나위도 없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대학에서 인기 있지만 계속해서 대학 바깥의 지적 생활에서 도전을 받고 있다면, 특히, 노동자 운동에 의해 활발하게 도전받는다면, 그것과 싸우는 임무는 덜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의 이론적 전제들은 근본적으로 스탈린주의가 무너지고, 노동당이 자살하였으며, 민중주의적 급진주의가 다양한 단일 쟁점 캠페인으로 산산 조각나는 것을 본 전체 세대의 상식과 맞닿아 있다.

그것이 바로 포스트모더니즘 사고와 싸우는 것이 왜 맑스주의자에게 중요한 지에 대한 이유이다.

빌어먹을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슬로건이 찍혀 있는 T셔츠를 입는 것으로는 포스트모더니즘과 싸울 수 없다. 그들의 전성기에 진짜 맑스주의자들이라고 주장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스승들 앞에서 굴종하고 그럭저럭 지내는 것으로도 포스트모더니즘과 싸울 수 없다.

푸코, 데리다, 리오타르, 보들리야르와 같은 프랑스의 포스트구조주의자들의 작업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적 기초이다.

그들과 함께,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했지만 비슷한 결론에 다다른 현대 미국 철학계에서는 콰인, 로티, 드 맨, 스탠리 피쉬 같은 ()회의론자들이 생겨났다. 이 논문이 주로 유럽 포스트모더니즘의 지지자들을 다룬다면, 그것은 그들의 주장들이 명확히 맑스주의 비판을 통해서 만들어진 입장이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옹호자들은 이따금 주장한다. 즉 모든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들을 한 덩어리로 묶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의 포스트모더니즘 이론가의 약점을 다른 사람이 인식하고 극복한다. 게다가 포스트모더니즘 내부에서 중요한 논쟁이 있고, 주요한 사상가들의 작업 안에서 스스로를 비판하는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맑스주의자와 포스트모더니스트가 어떤 토론이라도 단 5분만 하면, 한 묶음의 공통의 주제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과학적 사고가 파악할 수 있는 객관적 실체는 없다. 사전(事前)에 주어진 인간 주체는 없다. 개개의 인간은 그저 외부의 영향과 결정 요소들과 연결된 복합체일 뿐이다. 언어는 실체를 보여줄 수 없다. 그러므로 잘못된 사고가 실체를 가리는 이데올로기의 개념은 무의미하다. 역사 진보와 그것이 필연적이라는 생각은 무의미하다. 역사, 사회학, 인류학에서 사회 형태들은 지도의 형태로 나타나야 한다. 판단되거나 범주화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사회운동이나 과학 지식과 객관적 실체의 가능성에 기초한 사회들은 그 자체를 정당화하는 내부 논리보다는 거대담론들에 의존한다. 메타담론들은 반드시 억압을 정당화하게 된다. 계급투쟁과 사회주의가 바로 그러한 메타담론들의 보기이다. 어떤 경우에도 현대사회의 발전이 그들을 뒤떨어지게 했다. 다른 형태의 억압을 야기하지 않고 억압에 저항하는 유일한 형태는 지역적으로, 단편적으로 저항하는 것뿐이다. 가장 확실하게 저항하는 방법은 궁극적으로는 우리 자신의 삶을 예술품으로 바꾸는 것을 갈망하면서 우리 자신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므로 철학적 포스트모더니즘은 18세기 계몽주의의 일관된 합리주의와 관련된 300년 이상의 진보적 사고를 드러내놓고 거부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자연뿐만 아니라 사회에 대해서도 과학적으로 사고하려는 시도, 그리고 이러한 노력에 기초한 모든 체계적인 사고를 계몽 프로젝트의 일부로 여기며 거부한다. 프랑수아 리오타르가 주장하길 이 프로젝트는,

 

 

……메타담론과 관련하여 그 자체를 합리화한다. 이 담론은 영혼의 변증법, 의미의 해석학, 합리적인 인간 또는 노동주체의 해방 또는 부의 창조를 뜻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의 바로 그 핵심에는 객관적인 실체를 이해하는 인간사고 능력을 부정한다는 것이 놓여 있다. 그들이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그 확신의 정도가 제 각각이기는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요 이론가들은 모두 다양한 철학적 회의주의의 편에 서있다. 즉 우리는 확실히 어느 것도 알 수 없다. 심지어 세계에 대한 잠정적인 이론들조차도 손에 잡히는 객관적인 실체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삼을 뿐이다. 장 보들리야르는 19세기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을 호의적으로 인용한다.

 

 

실제 세계에 대한 믿음을 허락해온 모든 가정을 타도하라.

 

 

이러한 관점은 차례로 실재를 나타내는 언어의 능력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부정을 낳는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구조주의비판을 통해서 이러한 생각으로 가는 방법을 발견했다. 20세기 초반의 저작에서 소쉬르는 언어구조를 단어와 그것이 나타내는 생각(시니피앙과 시니피에) 사이의 관계로 이해하고자 했다.

소쉬르는 연구의 목적을 위해 개념과 개념화된 것의 관계를 무시했다. 그는 구조주의가 논하는 세계로부터 언어구조의 상대적인 자율성에 관심이 있었다.

이러한 특정한 연구 노선으로부터 구조주의라고 하는 전체 방법론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나왔다. 그것은 언어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사회와 문화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적용되었으며, 특히 사회과학에 적용되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한 세대의 급진적 지식인들이 구조주의 언어학을 상징의 과학”, 즉 기호학으로 일반화하는 문제에 몰두하게 되었다. 구조주의는 또한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 가장 영향력 있는 강단 맑스주의자였던 루이 알튀세의 저작들에서 하나의 표명을 발견했다. 반면, 구조주의 언어학 그 자체는 그 지도적인 제안자들의 상당수가 기호와 기호화된 실체 사이의 어떠한 상호관계도 기각하기 시작하면서 위기를 겪었다.

푸코학자인 맥하울과 그레이스에 따르면,

 

 

본질적으로, 언어와 실체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론은 언어학적 요소를 언어학적 요소로 연결시키는 이론을 편들면서 포기되었다. 기호학과 구조주의는, 말하자면, 사물의 시니피에의 측면으로 옮겨갔다. 그러자 담론은 상대적으로 자율적이지만 꽤 물질적인 그 자체 영역의 겉모습을 띠게 되었다. 이러한 입장은 그때에 시니피에의 물질성으로 알려졌다.

 

 

구조주의 언어학의 위기에서부터 포스트구조주의가 태어났고, 그것은 더는 그 견해를 언어학의 영역에 제한하지 않았다.

그 기본적인 교의, 이를테면 상징이 그것이 나타내는 사물보다 더 사실적이라는 하나의 세계관, 하나의 반()철학으로 체계화되었다. 이러한 사고의 가장 급진적인 제안자는 자크 데리다와 장 보들리야르였다.

데리다는 모든 형태의 언어와 대화를 텍스트라는 단어로 요약한다. 그리고 데리다가 말한 잘 알려진 문구로는 텍스트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가 있다. 그러나 데리다에게 언어와 현실 사이의 불일치는 우리가 문화를 비판에 종속시키는 것을 없애주지는 못한다. 이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장 중요한 사고들 가운데 하나를 낳는다. 즉 해체.

데리다에 따르면, 모든 텍스트들은 진짜 의미를 봉인하고 이따금 논리적 구조 안에 있는 결점을 봉인하는 은유와 다른 언어적 장치로 이루어진다. 비판적 사상가의 임무는 텍스트를 해체시켜 그 내면의 의미 또는 의미의 결여를 면밀한 독해를 통해서 드러내는 것이다.

무엇이 진짜 정신병의 원인인지를 밝혀내기 위해 환자에게서 우연한 관찰과 육체적인 경련을 찾는 정신과의사처럼, 데리다는 별로 중요하지 않는 텍스트를 일단의 생각을 비판하기 위한 가장 좋은 출발점으로 본다.

데리다의 작업은 다양한 서구 문화의 측면에 관한 문학 평론의 형태를 취한다. 그는 이른바 언어의 부정직한 형태가 감추고 있는 절대적인 진실을 단정하지 않는다.

비평가의 역할이 분석이 아니라 평론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학적 만담은 마치 분석적 발제만큼이나 유효하다. 데리다의 추종자인 미국의 작가 폴 드 만은 다음과 같이 썼다:

 

 

문학이 철학의 주요한 주제이자 그것이 영감을 주는 종류의 진실의 모델임이 입증되었다.

 

 

장 보들리야르는 갖가지 더 문화적으로 독특한 방법으로 현실 세계에 대한 언어 관계의 문제를 제출한다. 그는 매스컴과 그 원인이 된 대중문화가 무의미한 언어가 현실 세계를 반영하는가라는 질문을 만든다고 주장한다.

보들리야르에 따르면 전통적인 언어는 현실 세계를 표현하려고 시도했다. 철학의 표현의 문제를 불러일으키면서 말이다. (, 표현은 정확한가?) 20세기 후반 지식의 구조는 보들리야르에게는 표현이 흉내에게 양보했다는 것을 뜻한다. 흉내는 무엇이든 간에 현실과 어떤 관계도 낳지 않는다. 즉 그것은 그 자체의 순수한 그림자이다.”

현실 대신에 우리는 초현실을 갖는다. 그곳에서 상징은 그들이 나타내는 것보다 더 현실적이다. 그 탓에 보들리야르도 이데올로기 개념을 기각한다:

 

 

이데올로기는 상징으로서 현실의 배신에 상응한다. 흉내는 상징으로서 짧은 범위의 현실과 반복에 상응한다.

 

보기를 들면, TV는 그것이 표현하는 세계보다 더 현실적이다. 이러한 견해는 보들리야르가 악랄하게 19911월 걸프 전쟁이 일어날 수 없다고 예측하게 했다. 걸프 전쟁이 끝나자, 그는 걸프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

포스트모더니즘 그 자체 안에는 실체를 반영하는 언어의 무능력이 뜻하는 것에 대한 논쟁이 있다.

합리성을 거부하는 보들리야르의 주장이 불러일으킨 명백한 문제는 그 역사적으로 특수하고 따라서 제한된 전제이다. 데리다가 지식에 대한 일반적인 언급을 하는데 반해, 보들리야르는 역사적으로 특수한 언급을 한다. 즉 그에게 실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어 온 것은 다름 아닌 매스컴의 시대이다.

그러나 가장 명백한 경계가 푸코와 데리다 사이에 그어져 있다. 데리다가 텍스트 바깥에는 알 수 있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만, 푸코는 해체에 의해서 밝혀지는 숨겨진 의미에서 인간 사회 안에 있는 권력관계의 반영을 본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어떠한 메타담론 또는 메타 서사도 정치권력과 억압을 합리화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계몽주의 합리성은 많은 그러한 메타담론을 낳았다. 이를테면, 자유주의, 맑스주의, 파시즘, 헤겔주의 철학, 사회다윈주의 등.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자신들의 임무가 그러한 사회 권력의 남용이 다시는 일어날 수 없도록 이성 그 자체를 비평에 종속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미셸 푸코는 나는 그저 니체주의자일뿐이다라고 선언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권력”, 즉 사회적 억압과 억제에 대한 관점은 또한 많은 부분 니체에게 빚져 있다. 니체는 계급투쟁을 그저 인간 사회에서 더 근본적인 투쟁의 한 표현으로 보았다. 즉 그가 힘에 대한 의지라고 불렀던 것이 바로 그것이다. 푸코는 억압과 억압에 저항하는 사회운동이 행사하는 권력사이에서 가치판단 내리는 것을 거부한다.

뿐만 아니라 푸코는 그러한 권력 관계를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또는 도덕적으로 배열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는 즉 진보, 합법칙성 또는 필연을 나타내지 않는 시간의 순서인 계보학을 선호하며 역사를 서술하기를 거부한다.

그의 세 권짜리 성의 역사는 역사적으로 변화하고 결정된 인간 문화의 이 근본적인 면의 본성에 관한 비평을 제공한다. 그러나 그 주제가 자본주의의 발생과 전()자본주의 가족에 대한 자본주의의 영향을 다루는 것이지만, 그는 그의 연구를 그 역사적 사실을 중심으로 구조화하기를 거부한다.

푸코와 데리다 둘 다 사이비 맑스주의 추종자들을 가지고 있다. 데리다는 일단 그 메타서사를 제거하고 유토피아적인 좋은 아이디어를 감소시키면 맑스주의 사회주의 안에 있는 가치를 저항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많은 사람들은 푸코를, 그가 드러내놓고 자신을 반()맑스주의자라고 했지만, 불평등한 권력 구조를 언어의 감추어진 의미를 보강하는 것으로 설명하려는 그의 욕구 때문에, 그리고 그의 주제가 역사적으로 변화하는 형태의 사회 억압이었기 때문에 더 유물론적이라고 본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스트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들은 그저 핵심적인 동의지점, 즉 모두 맑스주의에 대한 비판을 그 출발점으로 삼는다는 것을 강조할 뿐이다. 근본적으로 그들 모두는 객관적인 세계를 파악할 가능성을 기각한다.

사회 세계를 고려할 때, 모두다 역사주의를 기각한다. 그들 모두는 1760년대의 계몽주의부터 맑스주의와 그 너머까지 근대 철학의 사고를 변명할 여지가 없는 합리주의의 근원으로 여긴다. 그들은 문학과 비평에 대한 철학적 사고의 특수한 가치를 기각한다.

결국, 모든 포스트모더니즘 조류들은 인간 주체의 개념을 기각한다. 서구 철학은 사고의 바깥에 있는 세계(객체)에 대응하는 개별 인간 존재(주체)의 개념에서 나왔다. 푸코에 따르면,

 

 

개인은 권력의 행사로 파악되는 사전(事前)에 주어진 실체가 아니다. 개인은 그 정체성과 성격을 가진 몸, 다양성, 운동, 욕망, 힘에 행사된 권력의 관계의 산물이다.

 

 

푸코가 한 많은 작업은 인간 주체성이 어떻게 사회에 의해 형성되는가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체에 대한 공격은 지식이론에서 중요한 점을 암시한다. 우리는 객관적인 진리를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언어가 현실을 그릴 수 없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그 진리에 알맞은 어떠한 독립적으로생각하는 인간이 없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맑스주의 비판은 인식론 상의 문제로 시작해야 한다. , 지식과 우리가 어떻게 우리가 안다는 것을 아는가에 관한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맑스주의자들은 과학, 합리성, 객관적 사고, 인식 가능한 세계와 인간의 주체성을 옹호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비판적으로 수행한다. 우리는 그것들을 변증법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방어한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모든 과학적 사고를 일련의 진리로의 끊임없는 접근들”(레닌)로 본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지식의 주체/객체 모델을 일면적인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그것은 생각하는 정신과 물질 사이에 절대적인 대립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관되게 억압을 정당화하는 메타담론을 비판할 수 있는 것은 혁명적 맑스주의 뿐이다. 그리고 맑스주의가 비판하는 억압에는 스탈린주의와 같이 메타담론이 맑스주의 운동 그 자체에서 기원하는 퇴보도 포함된다.

객관적인 사실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주장으로 시작해 보자. 그런데 그 운동 법칙들은 실재하고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날마다 제트 여객기에 탄다. 기체역학의 법칙에 기초한 기계가 중력을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들은 잠정적으로 과학이 진정한 객관적 법칙을 발견했다고 믿는다. 그들은 제트여객기가 날 것이라는 과학의 예측을 믿는다. 비행기들은 그들의 디자인이 정확하게 관찰되고 이해된 자연 법칙들에 기초하기 때문에 작동된다.

그러나 더 깊은 수준에서는 기체역학이 기초하는 몇몇 물리학, 이를테면 본질적으로 엄청나게 중상비방을 당한 계몽주의의 과학자들이 발견한 물리학의 법칙들은 현대 과학 발견에 의해서 의문시되고 있다. 심지어 20세기 물리 과학의 두 개의 위대한 전진(일반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 이론)조차도 서로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이 때문에 가장 일관된 과학 사상가들은 그들의 이론을 잠정적인 진리의 요약으로 보아야만 한다. 즉 객관 세계의 실제 법칙에 대하여 인간의 정신에 형성되어 있는 접근들.

 

 

과학의 방법

 

과학 이론의 잠정적이고 근사치로서 본성은 궁극적으로 알 수 있는 객관적 세계는 없다는 것을 뜻하는가?

이것에 찬성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의 주장은 유럽 포스트구조주의가 아니라 북아메리카 ()실용주의철학에서 나왔다. W. V. 콰인은 그의 논문 경험주의의 두 개의 교의에서 특정 시기에 진실로 판정된 진술들이 있는 것만큼 하나의 관찰된 사건을 묘사하는 데에는 많은 방법이 있다고 주장했다.

콰인에게 비이론적인 관찰 문장들”, 보기를 들어 점보제트기가 날고 있다는 이미 가치가 주어져 있다. 즉 이미 주어져 있는 믿음의 체계(“그것은 날 것이다”)에 고정되어져 있다. 그러므로 콰인에게 과학적 언급과 초자연적 언급은 같은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은 모두 가설일 뿐이다. 우리는 진리를 표현하기 위해 한 무리의 언급을 선택할 지도 모른다고 콰인은 말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그저 하나의 존재론적 체계인 한 무리의 세계에 대한 은유를 고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콰인이 대서양을 건너고자 할 때, 그는 점보제트기를 탄다. 두 문장, 제트기는 날 것이다나는 팔을 저어서 날 수 있다의 선택에 부닥쳐 콰인은 마치 두 번째 문장이 거짓인 것처럼 행동하기를 선택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그저 자기 보존에 대한 충동을 나타내고 있는 것만이 아니다. 또한 그는 존재론적 체계를 선택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는 이른바 계몽주의의 합리론의 기초를 형성하는 과학적으로 공식화된 법칙과 인간 행동 사이를 연결하는 것과 정확히 똑같은 연결을 하고 있다.

콰인을 높은 빌딩에서 떨어뜨림으로써 그가 날 수 없다는 것은 쉽게 입증될 수 있다. 점보제트기가 날 것이라는 점은 그것들을 관찰하면 입증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 과학적 가정의 증거는 실천 속에 놓여 있다.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수성 공전 궤도에서 작은 운동을 관찰함으로써 고전 뉴턴 물리학에 맞서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이 어떻게 강화되었는지를 이렇게 그리고 있다.

 

 

뉴턴이 하지 못했지만, 아인슈타인의 예측이 보여 준 것과 일치한다는 사실은 새로운 이론의 중요한 확증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모든 실용적 목적을 위해 뉴턴의 이론을 사용한다. 왜냐하면 그것의 예측과 일반 상대성 이론의 예측의 차이가 우리가 보통 다루는 상황에서는 매우 작기 때문이다.

 

 

맑스주의는 모든 일관된 과학적 방법과 합리성, 진리의 구체성에 대한 믿음, 그리고 과학이론의 임시 가설적 본질을 공유한다. 그러나 맑스주의는 한 이론이 부적절하다면 그것을 다른 것으로 대체해야 하며, 그럼에도 심지어 우리 시대와 같은 일반화된 과학의 불확실성의 시대에 조차도 이 모든 것은 과학적 진리의 가능성을 기각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는 점을 과학적 연구를 통해 드러낸다.

20세기 후반에 과학은 거대한 역사적 전환을 겪고 있다. 그 속에서 많은 필연성과 실재성의 모델들은 뒤섞이고 있다. 과학자 절대 다수의 목표는 이 과정의 끝에서 과학적 사고를 다시 세우는 것이다. 보기를 들어 호킹은 현재 부분적으로 갈등하는 이론들의 가능성이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을 설명할 완전하고 통일된 이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소수의 과학자들은 포스트모더니즘에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카오스 이론에 기초하여 포스트모던 과학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거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심지어 이론은 그저 우리의 마음속에만 있고 어떤 다른 현실성도 없다고 믿는 호킹과 같은 과학자들에게서 그것은 지지를 받지 못했다.

자연에 다시 마법 걸기라는 포스트모더니스트의 외침은 거의 어떠한 공명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바로 과학이 물리적 세계에서 진리에 대한 탐구이기 때문이다.

최근 포스트모더니즘을 대중화시킨 사람인 리차드 아피냐네시는 후회하며 지적한다.

 

 

등장하고 있는 카오스와 복잡성 이론들은 과학에서 통제와 확실성에 대한 이해를 완전히 파괴했다 …… 두 이론은 모두 전체론, 상호연관, 카오스로부터의 질서에 대한 이해에 기초하여 과학에서 포스트모던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약속한다. …… 카오스와 복잡성 둘 다 우리가 현명한 질문들을 하고 단순한 가정을 하지 않도록 했지만, 둘 다 그들의 옹호자들에 의해서 모든 것에 대한 새로운 이론들로 나타난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학연구는 많은 억제를 당한다. 과학계는 이따금 그리고 차츰 기업의 하녀가 되고 있다. 과학연구를 일련의 법칙들을 쌓아놓기만 할 뿐 그것을 조화롭게 배열하지 않아 나타나는 파괴는 진리에 대한 탐구를 방해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이 현재 그것을 실행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관계로 방해 당하고 있지만, 그리고 많은 과학의 법칙들이 포스트모던 어휘집에 전문용어들(카오스, 프랙탈,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을 더해주고 있지만, 이 과학 법칙 가운데 어느 것도 절대적인 회의주의나 상대주의로부터 나온 실천으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그것은 과학 사상이 그 성질상 상식, 즉 비행기 승객이 공항에서 그/그녀의 수화물을 확인한다는 일상적인 생각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실천으로부터 나타나고 실천, 말하자면 우리의 지각(知覺)을 통해 다양해진다.

유물 변증법은 모든 회의주의에 반대한다. 인류가 자연을 좀 더 정확하게 알게 됨으로써 자연을 정복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석기 시대에서 인터넷 시대까지 생산력의 진보 는 인간사고, 의식, 그리고 객관 세계 사이의 상호 작용 때문에 일어났다.

만일 객관세계가 우리의 지각을 통해 알 수 없다면, 그때에는 이러한 진보는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언어와 현실

 

포스트모더니즘은 위에서 그것의 언어 이론에 대하여 언급된 것처럼 일반적인 철학적 상대주의를 적용하고 강조했다. 미국의 포스트모더니스트인 리차드 로티는 다음과 같이 쓴다:

 

 

진리가 어디에도 없다고 말하는 것은 그저 어떠한 명제도 없는 곳에는 어떠한 진리도 없고, 명제들은 인간 언어의 구성물이며, 인간언어는 인간의 창조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진리는 어디에도 있을 수 없다거나 또는, 인간 정신과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명제는 그렇게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스트 사상가들은 언어 문제와 관련하여 두 진영으로 쪼개진다. 즉 언어는 현실을 나타낼 수 없다. 언어는 더는 현실을 나타낼 수 없다.

두 관점 모두 지식의 문제는 지각에서 의식으로 이동했다. 우리가 진짜 객관 세계의 사진을 볼 수 있든지 없든지 간에, 우리는 그것을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언어는 정확히 그 세계에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언어는 틀림없이 인간 역사의 산물이다. 실천을 통한 인류의 자연과의 상호작용은 잇달아 언어구조를 만들어냈다. 그린란드에는 눈을 나타내는 20개가 넘는 단어가 있다. 프랜시스 드레이크 경이 살았던 때 영국에는 40개가 넘는 항해선을 나타내는 단어가 있었다.

맑스주의자들에게 언어의 이러한 역사는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변증법적 유물론 주장의 확인이다. 고대 박물관을 한 번 방문하면 자연에 대한 인간 지배 수준의 증가가 세계를 묘사하고 이에 걸맞는 차츰 정확한 언어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즉 상형문자와 조잡한 인간의 표현들에서 알파벳과 탁월한 조각의 사실주의까지.

구조주의 언어학은 언어를 통해 표현되는 인류 대대의 사고방식의 내적 법칙을 이해하려는 시도에서 시작되었다.

그 원래의 관점은 역사상의 언어들과 전 자본주의 문명, 때론 전체 계급 문명에서 살아남은 살아있는 언어들이다. 구조주의 언어학은 의식적인 말 아래에 있는 언어의 무의식적인 기반구조를 살펴보려고 했다. 구조주의 언어학은 언어 그 자체의 일반 법칙을 알아내려는 목적으로 언어의 내적 구조와 체계를 연구했다. 구조주의 언어학은 역사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언어 안에 있는 변화로부터 추상화되었다.

구조주의의 통찰력 가운데 많은 것이 원시 문화를 연구하고 또한 아이들의 언어 능력 발전을 연구하는데 쓸모 있다. 그러나 모든 인간 사회를 분석하는 방법으로 일반화되면서, 가장 중요하게는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작업에서, 구조주의는 기계적 유물론과 관념론의 혼합물이 되어버렸다.

구조주의의 기계적 유물론은 인간 주체성과 행위가 사회 구조에 어떠한 역할도 하지 않는 주장에서 나타난다. 우리는 그저 우리 주변 환경의 산물일 뿐이다.

주어진 사회구조의 분석은 사회를 순간 촬영하는 것과 그 일반 법칙을 다듬어내는 것에 달려있다. 인간 주체는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의 언어법칙 바깥에서 자유롭게 사고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구조주의는 역사발전의 과정을 이해할 수 없다. 가끔 그것에 대해 전혀 흥미조차 가지지 않는다.

또한 구조주의는 실천에 반대하여 의식의 결정 요인으로 다름 아니라 언어를 강조하기 때문에 구조주의는 일종의 관념론이다.

포스트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이 태어난 것은 바로 구조주의 붕괴”, 이를테면 사회 현실의 일반 이론으로서 들어맞는 것에서 구조주의의 실패에서부터이다.

데리다와 푸코는 둘 다 구조주의의 틀 안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그들은 인간 주체(레비스트로스가 철학의 버르장머리 없는 애새끼들이라고 부르는 것)가 그저 그것의 환경의 산물이며 따라서 하나의 개념으로서 유효하지 않는 생각을 구조주의와 공유했다. 또한 그들은 역사가 진보한다는 생각에 대한 반대를 레비스트로스와 공유했다. 그의 인류학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그가 연구한 전()계급 사회보다 진보한 사회형태를 나타낸다는 생각을 유럽 중심적이라고 여기며 기각했다.

구조주의는 또한 언어가 진리를 반영할 가능성을 약화시키는데 도움이 되었다. 구조주의는 사물을 나타내는 기호를 연구하기 위해서 사물을 괄호로 묶었다.”(, 일시적으로 무시했다.) 그 탓에 구조주의는 그 자신의 파괴를 위한 길을 닦았다.

데리다는 단어와 개념 사이의 관계는 이미 자의적이기 때문에 언어는 자유롭게 떠다니는 시니피에들의 집합일 뿐 이라고 주장하며 사물들의 시니피에 측면으로 구조주의의 변화를 이끌었다.

이론 수준에서 이러한 언어 상대주의로의 퇴각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반대는 구조주의가 그 자체의 반박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언어가 물질세계에 어떠한 외연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만일 어떠한 진리도 있을 수 없다면, 어떠한 일관된 이론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언어가 현실을 반영할 수 없다는 이론은 그 자신의 기준으로도 유효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론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비열한 말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유효함은 포스트모더니스트 자신들에 의해서만 인식되어 왔다.

언어 상대주의, 니체의 말에 따르면 진리는 그저 움직이는 은유의 군대일 뿐이라는 사상으로 퇴각과 함께 이론화하려는 시도들로부터 퇴각도 나타난다. 데리다의 작업에서 이론화하려는 시도는 단편적인 일련의 판단을 피하는비평으로 대체되었다. 이것은 또한 장 보들리야르가 극단적으로 취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보들리야르는 1960년대 초반을 그다지 헌신적이지 않은 맑스주의자로서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기본적으로 관념적인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에 대한 설명을 발전시켰다. 그 속에서 맑스주의 경제학의 범주들은 찢겨져서 기호학에 적용되었다.

보들리야르에게 상품은 (맑스의 자본론에 약술된 개요에 나타난 것처럼)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또한 언어 체계 속에서 시니피에를 갖고 있다.

그리고 상품이 나타내는 역할은 그 사용가치나 교환가치보다 더 중요하다. 궁극적으로 보들리야르는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둘 다 그저 기호를 위한 알리바이들일 뿐이라고 결론 내렸다. 맑스주의가 이데올로기라고 부르는 전반적인 상징체계”, 전반적인 대중 소비문화, 광고 등등은 자본주의 생산의 결과가 아니라 그 가장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우리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푸코와 데리다의 일반화된 상대주의와 보들리야르의 역사적으로 특정한 상대주의 사이에는 논리적인 모순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공유하는 것은 언어 의미에서 퇴각이 정당화하는 이론에서부터 퇴각이다.

맑스주의자들은 이에 반대한다: 우리가 언어는 늘 참되고무매개적인 방법으로 현실을 반영한다고 믿기 때문이 아니라, 언어적 표현의 문제가 그저 역사적으로만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저언어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객관적인 현실에 대해 어떠한 관계도 지니고 있지 않다면, 데리다의 포스트구조주의 버전에서 그렇다면 왜 언어는 바뀌는가? 만일 푸코가 이해하는 것처럼 담론이 언어일 뿐만 아니라 권력 체계가 존재하고 그 자신을 합리화하도록 만드는 수단이라면, 그렇다면 하나의 권력 구조를 다른 것이 대체하는 추진력은 무엇인가? 그것은 개별 인간의 주체적인 활동이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인간주체는 가망 없이 결정된언어와 지배적인 그 시대의 담론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들에 대하여 푸코와 데리다의 작업에서는 확실한 답이 없다. 오직 하나의 일관된 답은 맑스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아는 것하는 것사이의 구별을 기각한다.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이 언어학과 인식론의 근거들 때문에 비웃는 진리를 주장하다진리를 선언하다는 언제나 처음부터 인간 행동의 산물이었지 행동과 분리된 사고의 산물이 아니었다. 맑스주의자들에게 지식은 행동을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저 이론이나 그와 엇비슷한 추론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역사상의 지식의 진보에 대한 언급들에서 입증 가능하다. 모든 지식의 진보는 동시에 기술의 진보이다.

매우 최근까지 인간의 지식은 반드시 기술의 뒤를 따랐다. 사냥이 언어를 낳고 석기가 그림을 낳았다. 그 반대는 아니었다.

콰인, 로티, 푸코 또는 데리다 등 어느 유형이든지 간에 모든 회의주의에 대한 답은 이미 1845년 맑스의 포이에르바흐에 관한 테제에서 나타났다.

 

 

객관적인 진리가 인간의 생각에서 나올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는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이다. 실천으로 인간은 진리, 즉 그의 생각의 현실성과 힘, 그 현세성을 입증해야 한다. 실천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생각의 현실성 또는 비현실성에 대한 논쟁은 순수하게 현학적인 문제일 뿐이다.

 

 

이데올로기

 

우리가 보아왔듯이, 프랑스의 포스트구조주의와 미국의 철학적 회의주의는 이데올로기의 가능성을 부정한다.

넓게 보자면 이데올로기는 특정한 형태의 계급사회를 유일하게 자연스럽다거나 불가피한 사회 형태로 합리화하는 사회에 관한 진리를 가리는데 봉사하는 사회조건에서 나오는 사상들의 무리를 뜻한다.

맑스주의가 그 개념을 발명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계몽주의와 프랑스 혁명의 기계적 유물론에서 나타났고 맑스의 관념론적 선임자인 헤겔에 의해 채택되었다. 맑스주의에서도, 이데올로기의 본질과 역할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

그럼에도, 맑스주의는 현실에 대응하는 언어와 논리의 역할을 설명하는데 중요한 개념을 남겨두었다. 왜 인류가 끊임없이 실천하고 있지만 거짓된 생각들에 이르게 되는지를 설명하는 것에서도 중요한 개념을 남겨두었다.

그 개념에 대한 최초의 폭로인 독일이데올로기에서, 맑스와 엥겔스는 생각이 있기 전에 존재가 있고 정신 앞에는 물질이 있다는 사실에서 시작한다. 물질은 그것이 생각하는 동물을 만들어내기 전부터 오랜 세월 동안 존재했다. 생각이 일어나는 인간의 두뇌도 물질이다. 환경과 우리의 상호 관계가 역사적으로 인간의 의식을 만든다. 좀 더 명확하게는 환경을 바꾸기 위한 우리의 시도가 인간의 의식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생물학의 사실은 동시에 사회에서도 사실이다. 즉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성공적으로 우리의 환경과 상호작용하려면, 우리는 사회 안에서 그렇게 해야 한다. 우리의 사회적 존재는 우리의 의식을 만들어내는 데서 중요하다.

자기 주변의 세계를 설명하는 문제들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자마자, 인류는 사회와 물리적 환경이 조건을 이루는 몇 가지 생각들을 만든다. 즉 바닷가를 끼고 모여 있는 사회들은 바다 신을 숭배했다.

그러나 도대체 그들은 왜 신을 숭배했는가?

종교의 힘은 초기 유물론자들에게는 이성의 부재로 보였다. 이데올로기는 자연 세계를 알 수 없고 따라서 그것을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인류의 대용품이다. 맑스와 엥겔스는 진리뿐만 아니라 거짓 사상조차도 어떻게 현실의 물질적 기초를 갖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러한 합리주의의 관점을 넘어 섰다.

 

 

우리는 현실의, 활동하는 인간에서부터 출발했다. 그리고 그들의 진짜 삶의 과정의 기초 위에서 우리는 이러한 삶의 과정에 대한 이데올로기의 그림자와 메아리의 발전을 설명한다.

 

 

그러나,

 

 

만일 모든 이데올로기에서 인간과 그들의 환경이 카메라 옵스큐라[바늘구멍 사진기]에서처럼 뒤집어져서 나타난다면, 이 현상은 망막 위의 사물의 뒤집힘이 그들의 육체적인 삶의 과정에서 나오는 것만큼 그들의 역사적인 삶의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자연을 인간의 통제에 종속시키는 활동은 그저 이데올로기의 경계를 뒤로 밀어내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회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지금까지 모든 사회가 체계적으로 불평등했기 때문에, 즉 계급에 기초했기 때문에, 사회 발전은 이데올로기를 낳고 강화했다.

 

 

옮긴이: 김정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