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실천연구소

오직 하나의 길 - 4. 텔만의 21가지 오류 본문

실천지 (2008년)/2008년 9월호

오직 하나의 길 - 4. 텔만의 21가지 오류

사회실천연구소 2014. 12. 16. 09:17

오직 하나의 길

 

레온 트로츠키(Leon Trotsky)

 

 

4. 텔만의 21가지 오류

 

7월 중순에 적색 공동전선은 어떻게 수립되어야 하는가에 관해서 사민당 노동자가 제기한 21가지 질문에 대한 텔만의 대답이 실린 팸플릿이 발행되었다. 팸플릿은 이런 말로 시작한다. “()파시스트 공동전선이 힘차게 돌진하다!” 720, 공산당은 노동자에게 정치파업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이 호소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렇게 겨우 5일 만에 관료적 수사와 정치적 현실 사이의 비극적 심연이 드러났다.

731일 선거에서 공산당은 530만 표를 얻었다. 이 결과를 거대한 승리로 떠들어댐에 따라 공산당은 이 패배가 자신의 주장이나 바람을 얼마나 크게 실추시켰는지 보여주었다. 313일의 대통령선거 제1차 투표에서 공산당은 거의 500만 표를 얻었다. 결과적으로 4개월 반 동안에 뭘 한 기간인가! 겨우 30만 표를 늘린 것이다. 3월에 공산당 신문은 이것이 제국의회 선거였다면, 득표수는 훨씬 더 컸을 것이라고 몇 백번이나 되풀이했다. , 대통령선거에서 몇 십만의 지지자가 비실천적인시위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3월의 논평을 고려하더라도 그리고 고려될 만하다 공산당은 지난 4개월 반 동안에 거의 성장하지 않았음이 틀림없다.

4월에 사민당은 힌덴부르크를 대통령에 선출했다. 그러자 곧 힌덴부르크는 사민당을 직접 겨냥한 쿠데타를 실행했다. 이 사실만으로도 개량주의 기구의 토대 자체를 뒤흔들기에 충분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그 무시무시한 결과에도 위기가 한층 더 악화되었다. 결국 국회선거 11일 전인 720, 사민당은 자신이 선출한 연방대통령의 쿠데타에 비참하게 꽁무니를 뺐다. 이러한 시기에 혁명정당은 열병처럼 성장한다. 어쩔 수 없이 강철 바이스에 꽉 조이게 된 사민당이 어떠한 일을 하겠다고 약속할지라도, 사민당은 노동자를 자기 왼쪽으로 쫓아버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한 걸음에 7리그(21마일) 가는 마법의 신(seven league boots)을 신고 앞으로 성큼 내딛는 대신에 제자리걸음하고, 망설인 공산주의는 움츠러들고 있다. 한 걸음 전진하고 나서는 반보 뒷걸음친다. 731일에 공산당이 표를 잃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승리에 기뻐 날뛰는 것은 현실 감각을 완전히 상실한 것이다.

예외적으로 유리한 정치적 조건 아래에서 혁명정당이 왜, 어떻게 퇴보적인 무능력에 빠지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민당 노동자에 대한 텔만의 대답을 반드시 읽어보아야 한다. 따분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지만 스탈린주의 지도자들의 정신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명백히 해야 한다.

공산주의자는 파펜 정부의 성격을 어떻게 평가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텔만은 각각 서로 모순되는 대답을 제시한다. 그는 파시스트 독재가 즉시 수립될 위험성을 언급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렇다면 파시스트 독재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그는 정부 구성원에 대해서 트러스트 자본, 장군, 융커의 대표들이라고 아주 정확하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곧바로 그는 같은 정부에 대해서 이 파시스트 내각이라고 말하고, 자신의 대답을 파펜 정부는 …… 파시스트 독재의 즉각적 수립을 목표로 잡고 있다.”는 주장으로 끝맺고 있다.

보나파르트 체제, 즉 군사 경찰 독재에 의지하는 국내 평화의 체제와 파시즘, 즉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공연한 내전의 체제 사이의 사회적정치적 차이를 무시함으로써 텔만은 바로 자기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이해할 가능성을 미리 자신에게서 빼앗고 있다. 만약 파펜 내각이 파시스트 내각이라면, 텔만은 도대체 어떤 파시스트의 위험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인가? 노동자가 텔만을 따라 파펜이 파시스트 독재의 수립을 목표(!)로 잡고 있다고 믿는다면, 히틀러와 파펜-슐라이허 사이에 예상되는 충돌은 일찍이 파펜과 오토 브라운 사이에서 일어난 충돌과 꼭 마찬가지로 당이 방심한 틈을 탈 것이다.

독일공산당은 공동전선에 대해 진지한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텔만은 당연히 긍정적으로 대답하고, 그 증거로 공산당은 힌덴부르크나 파펜과 연관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그렇다, 우리는 투쟁의 문제, 특히 시스템 전체, 즉 자본주의에 대한 투쟁의 문제를 제기한다. 그리고 여기에 우리 공동전선의 진정성의 핵심이 있다.”

텔만은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를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사민당 노동자가 여전히 사회민주주의자인 이유는 바로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점진적개량주의적 전화의 길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자가 자본주의의 혁명적 전복을 지지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민당 노동자는 이렇게 질문한다. “여러분은 우리에게 진정으로 공동전선을 제안하는 것인가?” 이에 대해서 텔만은 이렇게 대답한다. “물론 진정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자본주의 체제 전체를 전복하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사민당 노동자에게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다. 그런 것은 꿈꿔 본 적도 없다. 그러나 사태를 평가하고, 정치적 균형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 숙달된 선전가라면,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대답했을 것이다. “여러분은 민주주의에 여러분을 걸고 있다. 우리는 혁명에 유일한 출구가 있다고 믿는다. 게다가 우리는 여러분 없이 혁명을 이룰 수 없고, 그러길 바라지도 않는다. 이제 히틀러는 공통의 적이다. 그를 누르고 나서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대차대조표를 작성하고, 이 길이 실제로 어디로 통하는지를 확인할 것이다.”

텔만 팸플릿의 독자는 언뜻 화자(텔만)의 말을 관대하게 들어줄 뿐만 아니라 자주 그에게 동의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를 만큼 별나다. 그렇지만 이 관용의 비밀은 텔만의 대화 상대가 ()파시스트 행동대에 속해 있을 뿐만 아니라, 공산당에 투표할 것을 요구한다는 사실에 있다. , 이들은 공산주의로 전향한 구 사민당원이다. 이러한 신입당원은 환영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기만적인 것은 사민당과 결별한 노동자와의 대화를 사민당 대중과의 대화인 것처럼 속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치사한 가면무도회는 텔만 일당의 현재 정책 전체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어쨌든 구 사민당원은 실제로 사민당 대중을 동요하게 하는 질문을 제기한다. 이들은 ()파시스트 행동대는 공산당의 공동전선(front) 조직인가?’라고 묻는다. 텔만은 아니다!’라고 대답한다. 그 증거는? ()파시스트 행동대는 조직이 아니라 대중운동이다.’ 마치 대중운동을 조직하는 것이 공산당의 임무가 아닌 것 같다. 두 번째 논거는 한층 더 훌륭하다. , ()파시스트 행동대는 무당파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국가를 직접 겨냥하기 때문이다. “파리코뮌의 교훈을 다루면서 칼 맑스는 이미 노동자계급의 임무로 부르주아 국가기구를 분쇄하는 문제를 가장 날카롭게 제기했다.” , 이 얼마나 불운한 인용인가! 왜냐하면 맑스에 관계없이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바라는 것은 부르주아 국가를 분쇄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개량주의자이다. 텔만은 그 의도에 반해 바로 자신이 반박하고 싶어 하는 것, ()파시스트 행동대의 당적 성격을 증명하고 있다.

공산당의 공식 지도자(텔만)는 분명히 사민당 노동자가 처한 상황이나, 그 정치적 사고도 이해하지 못한다. 텔만은 공동전선이 어떤 목적에 봉사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문장 하나하나마다 그는 개량주의 지도자에게 무기를 넘겨주고, 이들에게 사민당 노동자를 넘겨주고 있다.

사민당과의 어떤 공동행동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텔만은 다음과 같은 식으로 증명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오늘날 엉터리 저항을 흉내 내고 있을 때조차도 사민당은 파시스트 자본가계급과의 실제적 협약이나 연합 의향을 한순간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비록 이것이 옳더라도 경험을 통해 이를 사민당 노동자에게 증명하는 임무가 남아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본질적으로도 틀렸다. 사민당 지도자들이 자본가계급과의 협정을 포기하고 싶지 않더라도 파시스트 자본가계급은 사민당과의 협정을 포기한다. 그리고 이 사실은 사민당의 운명에 결정적인 것이 될지도 모른다. 파펜에서 히틀러로의 권력 이동에서 자본가계급은 결코 사민당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내전에는 내전의 법칙이 있다. 파시스트의 공포정치는 사회민주주의의 폐기를 의미할 것이고, 그럴 수밖에 없다. 무솔리니가 바로 이것으로부터 시작한 것은 혁명적 노동자를 그만큼 더 거리낌 없이 분쇄할 수 있기 위해서였다. 아무튼 사회 파시스트는 자신의 목숨을 소중히 생각한다. 현재 공산주의자의 공동전선 정책은 사민당이 자기 목숨에 대해서 안고 있는 근심에서 출발해야 한다. 공동전선 정책은 가장 현실적인 정책이며, 동시에 그 결과에서 가장 혁명적인 정책일 것이다.

그러나 사민당이 파시스트 자본가계급과 한순간도떨어지지 않는다면(마테오티는 무솔리니와 관계를 끊었지만), ()파시스트 행동대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사민당 노동자는 자기 당을 버려야 하는가? 한 질문은 이런 식으로 쓰여 있다. 이에 대해서 텔만은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 공산주의자에게 사민당이나 국기단(Reichsbanner(國旗團);사민당의 준()군사조직) 노동자가 소속 정당을 버리지 않고 반()파시스트 행동대에 참가할 수도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자신이 모든 종파주의에서 벗어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텔만은 이렇게 덧붙인다. 여러분이 한꺼번에 몇 백만씩 몰려든다면, 우리는 기쁨으로 맞이할 것이다. 독일사민당의 평가라는 특정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보기에는 여러분의 생각 속에 여전히 모호한 부분이 있더라도 말이다.” 금언이다! 우리는 여러분의 당을 파시스트적이라고 여기고, 여러분은 그것을 민주주의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소한 문제로 논쟁하지 말자. 여러분이 여러분의 파시스트당을 버리지 않고 몇 백만씩우리에게 오는 것으로 충분하다. ‘특정 문제에 대한 모호함은 장애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전능한 관료주의자 수뇌부의 모호함이 사사건건 장애가 되고 있다.

문제에 깊이를 더하려고 텔만은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우리는 당 사이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계급에 근거하여 문제를 제기한다.” 자이데비츠처럼, 텔만은 계급을 위하여 당의 이해를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에게 이러한 대비는 성립될 수 없다는 점에 불행이 있다. 왜냐하면 당의 강령이 노동자계급의 이해의 과학적 정식화가 아니라면, 그런 당에는 한 푼의 가치도 없을 것이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조야한 오류를 제외하고도 텔만의 말에는 실천상의 모순이 포함되어 있다. 문제의 본질이 바로 그 점에 있지만 왜 당 사이의 관계라는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것인가? 수백만 노동자가 사민당을 따르고 있다. 다른 수백만은 공산당을 따르고 있다. 어떻게 지금, 여러분의 당과 우리 당의 반()파시즘 공동행동을 이룰 것인가라고 묻는 사민당 노동자에 대해 텔만은 이렇게 대답한다. 당이 아니라 계급에 근거하여몇 백만씩 우리에게 몰려들라. 이것이야말로 가장 초라한 허풍 아닌가? 

텔만은 이렇게 계속한다. “우리 공산주의자는 통합을 결코 바라지 않는다.” 우리는 사민당과의 통합을 위하여 우리 정책의 계급적 내용을 부인하고 …… 파업, 실업자 투쟁, 소작인의 행동, 대중의 혁명적 방어를 포기할 수 없다.” 일정한 실천 행동에 대한 협정은 사민당과의 어리석은 통합으로 곡해된다. 내일, 결정적인 혁명적 공격이 불가결하다는 점에서 오늘, 공동 파업이나 자기방어 행동이 용납될 수 없다는 추론이 나온다. 텔만의 사고에서 이유나 까닭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표창 받을 만하다.

텔만의 청중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파펜 정부와 파시즘에 대한 투쟁에서 공산당과 사민당이 동맹을 체결할 수 있는가?” 텔만은 사민당이 파시즘에 맞서 싸우지 않는다는 증거로 두세 가지 사실을 들어 이렇게 결론짓는다. “우리가 이런 사실에 근거하고, 또 원칙적인 이유로(!) 공산당과 사민당의 동맹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면, 사민당의 모든 동지들도 우리가 올바르다고 말할 것이다.” 다시 한 번 관료주의자는 증명되어야 하는 것을 이미 증명된 것으로 생각한다. 수백만 노동자를 포용하는 조직과의 공동전선 문제에 대해서 텔만이 사민당원은 자신의 당과 공산당의 동맹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민당은 파시스트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자마자, 최후통첩주의는 특히 우스꽝스러운 특성을 갖게 된다. 벨스와 라이파르트가 이보다 더 나은 도움을 받을 수 있겠는가? 

사민당 지도자들과의 어떠한 협정에도 반대하는 우리 공산주의자는 …… 전투적인 사민당원이나 국기단 동지들, 그리고 전투적인 하부(?)조직과 함께 언제라도 반()파시스트 투쟁을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거듭 선언한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하부조직인가? 그리고 만일 하부조직이 상부조직의 규율에 따르고, 교섭은 상부조직에서부터 시작될 것을 제안한다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마지막으로, 하부조직과 상부조직 사이에는 중간층이 있다. 그렇다면 싸우기를 바라는 사람과 투쟁을 회피하는 사람 사이의 경계선이 어디에 있는지를 누가 예측할 수 있는가? 이것은 예측에 따른 평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행동에 의해서만 결정될 수 있다. 스스로 손발을 묶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729일자 붉은 깃발(Die Rote Fahne)지는 국기단 집회에 대한 보도에서 사민당 출신 중대장의 주목할 만한 발언을 언급했다. “대중 사이에 반()파시스트 공동전선에 대한 의지가 존재한다. 지도자들이 이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나는 이들에게 의논하지 않고 공동전선으로 나아갈 것이다.” 공산당 신문은 논평 없이 이 발언을 전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발언에 공동전선이라는 전술 전체의 열쇠가 있다. 이 사민당원은 공산주의자와 마찬가지로 파시스트에 맞서 싸우기를 바란다. 그는 이미 자기 당 지도자들의 선의를 의심하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분명히 말한다. 즉 지도자들이 거부하면 나는 이들에게 의논하지 않고 나아갈 것이다. 같은 마음을 가진 사민당원은 수십, 수백, 수천, 수백만을 헤아릴 것이다. 사민당의 지도자들이 싸우기를 바라건 바라지 않건 이를 사민당원에게 실제로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공산당의 임무이다. 이것은 경험을 통해서만, 새로운 상황에서 새로운, 생생한 경험을 통해서만 증명될 수 있다. 이 경험은 단번에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사민당 지도자들은 공장과 작업장에서, 도시와 농촌에서, 전국에서, 오늘과 내일 검증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새로운 상황에 맞춘 우리의 제안을 새로운 형태로, 새로운 각도에서 거듭 제기해야 한다.

그러나 텔만은 이 모든 것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공산당과 사민당 사이에 존재하는 원칙상의 견해 차이에 근거하여 우리는 사민당과 위로부터의 교섭을 거부한다.” 텔만은 이런 충격적인 주장을 여러 번 되풀이한다. 그러나 원칙상의 대립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두 정당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두 정당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공동전선의 문제도 제기되지 않았을 것이다. 텔만은 너무나 많은 것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적은 것이 차라리 낫다.

노동자는 묻는다. 즉 혁명적 노동조합 반대파(RGO, Revolutionäre Gewerkschafts Opposition)의 결성은 조직된 노동자계급의 분열을 뜻하는 것 아닌가? 텔만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그 증거로 미적감상적 박애주의자에 반대하는 엥겔스의 1895년 편지를 인용한다. 누가 이런 인용문을 요사스럽게 텔만에게 전한 것인가? 텔만은 말한다. 혁명적 노동조합 반대파는 분열이 아니라 통합의 정신에 입각하여 결성된 것이다. 게다가 노동자는 어떤 경우에도 혁명적 노동조합 반대파에 합류하기 위해 자신의 노동조합 조직을 버리지 않아도 된다. 거꾸로 혁명적 노동조합 반대파의 구성원은 노동조합 내부에서 반대파 활동을 수행하기 위해 그 안에 머무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텔만의 이 말은 사민당 지도부에 맞서 싸우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설정한 공산주의자에게 설득력 있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통합에 관심이 있는 사민당 노동자에 대한 대답으로서 텔만의 말은 조롱처럼 들린다.

사민당 노동자는 왜 여러분은 우리 노동조합을 버리고 독립하여 여러분들의 조직을 만든 것인가?”라고 묻는다.

여러분이 사민당 지도부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 독립한 우리 조직에 가입하기를 바라더라도, 우리는 여러분의 노동조합을 버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고 텔만은 대답한다. 적절한 대답이다. 손톱만큼 올바르지만!

다른 주제로 넘어가 노동자는 공산당 안에 민주주의가 있는가?’라고 묻는다. 텔만은 긍정적으로 대답한다. 물론 그렇다! 그러나 돌연 그는 곧바로 이렇게 덧붙인다. 비합법적으로나 합법적으로도, 특히 후자의 경우, 당은 스파이, 선동가, 경찰첩자를 경계해야 한다.” 이 삽입구는 뜻하지 않게 들어간 것이 아니다. 수수께끼 같은 뷔히너(Büchner)의 팸플릿을 통해 전 세계에 선언된 최신의 교의는 스파이에 대한 투쟁을 위하여 민주주의에 대한 압살을 정당화하고 있다.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의 전제정치에 항의하는 사람은 모두 적어도 의심스러운 인물로 선언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모든 나라의 경찰첩자나 선동가는 이 이론을 열광적으로 환영할 것이다. 이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요란하게 반대파를 쫓을 것이다. 즉 이 이론은 주의를 딴 데로 돌려 이들이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게 할지도 모른다.

텔만에 따르면, 민주주의의 융성은 문제가 코민테른 세계대회와 집행위원회 회의에서 다뤄지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도 증명된다고 한다. 화자(텔만)는 마지막 세계대회가 언제 개최되었는지 보고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것을 상기시켜 주자. 4년도 전인 19287월이다! 그때 이후, 주목할 만한 문제는 아무래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다. 말이 난 김에 물어보자. 왜 텔만 자신은 독일 노동자계급의 운명이 달려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독일공산당 임시대회를 소집하지 않는가? 그 원인이 당내 민주주의의 과잉에 있는 것이 아님은 확실하다.

이렇게 여러 쪽에 걸쳐 텔만은 21가지 질문에 답하고 있다. 모든 대답이 오류다. 요컨대, 변변찮고 부차적인 것을 포함하지 않아도 오류가 21가지나 된다. 따라서 변변찮고 부차적인 오류는 셀 수 없이 많다.

텔만은 볼셰비키가 1903년에 멘셰비키와 결별했다고 말한다. 실제로 개별 정당으로의 분열은 1912년에 처음 일어났다. 그러나 19172월 혁명 이후에도 전국 대부분에 걸쳐서 볼셰비키와 멘셰비키 통합조직을 볼 수 있었다. 4월 초까지도 스탈린은 볼셰비키와 체레텔리 당(멘셰비키)의 통일을 지지했다. 공동전선이 아니라 양당의 통합이었다. 이는 레닌이 도착하고 나서야 겨우 막아냈다.

텔만은 볼셰비키가 1917년에 제헌의회를 해산시켰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 일은 1918년 초에 일어났다. 텔만은 러시아혁명과 볼셰비키당의 역사에 결코 밝지 않다.

그렇지만 훨씬 나쁜 것은 그가 볼셰비키 전술의 근거를 이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이론적기사에서 그는 정말로 볼셰비키가 코르닐로프에 대항하여 멘셰비키, 사회혁명당과 협정을 체결한 사실을 대담하게 논박한다. 그가 증거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누군가가 그의 방문 밑으로 밀어 넣은 인용문인데, 이것들은 사태와 전혀 관계가 없다. 그러나 그는 이런 질문에 답하는 것을 잊고 있다. 코르닐로프 반란 중에 전국에 인민방어위원회가 존재했는가? 이 위원회가 코르닐로프에 맞선 투쟁을 지도했는가? 볼셰비키, 멘셰비키, 사회혁명당의 대표자들은 이 위원회에 속해 있었는가? 그렇다, 그렇다, 그렇다. 그때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은 권력을 쥐고 있었는가? 이들은 볼셰비키를 독일 총사령부의 첩자라고 박해했는가? 수천 명의 볼셰비키가 감옥에 갇혔는가? 레닌은 지하로 몸을 숨겼는가? 그렇다, 그렇다, 그렇다. 어떤 인용문이 이런 역사적 사실을 반박할 수 있는가?

텔만이 마누일스키, 로조프스키, 그리고 스탈린(그가 앞으로 입을 연다면)에게도 마음껏 항의하게 해주자. 그러나 그가 레닌주의와 러시아혁명의 역사를 가만히 놔두게 하자. 그에게 이것은 기밀문서(books sealed with seven seals: 요한계시록 52절에 나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전혀 다른 또 하나의 문제 즉, 베르사유 조약 문제를 부각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사민당 노동자는 공산당이 국가사회주의(나치즘)에 정치적 양보를 하지 않을 것인지 묻는다. 그 대답에서 계속해서 민족해방슬로건을 옹호하는 텔만은 이를 사회해방 슬로건과 같은 지평에 둔다. 배상금 현재, 남아있는 부분 은 텔만에게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꼭 같은 정도로 중요하다. 이 정책은 기본적 문제로부터 노동자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고, 자본주의에 대한 타격을 약화시키고, 주요한 적과 궁핍의 원인을 국경 반대편에서 찾지 않을 수 없게 하기 위해서 독특한 형태로 의도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지난 어느 때보다도 주요한 적은 국내에 있다!” 슐라이허는 이 생각을 훨씬 더 조악하게 표명했다. 그는 맨 먼저 726일의 라디오 방송에서 우리는 국내의 비열한 놈들을 끝장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선언했다. 이 군인의 정식은 아주 훌륭하다. 우리는 이 정식을 기꺼이 채택한다. 모든 공산주의자는 이 정식을 확고히 자신의 것으로 채택해야 한다. 나치가 베르사유로 주의를 돌리는 동안, 공산주의 노동자는 슐라이허의 말로 이들에게 응수해야 한다. 그렇다, 맨 먼저 우리는 국내의 비열한 놈들을 끝장내지 않으면 안 된다!

 

 

5. 스탈린-텔만 정책을 이들 자신의 경험에 대조하다

 

전술은 가장 위험하고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검증된다. 볼셰비즘의 강점은 사태의 추이가 대담한 결정을 요구하자마자, 최고로 확인된 볼셰비키의 슬로건과 방법에 기초를 두었다. 정세가 심각성을 띠자마자 포기되어야 하는 원칙이 무슨 가치가 있는가?

현실적인 정책은 계급투쟁의 자연스러운 발전에 따른다. 종파적인 정책은 계급투쟁에 대해 인위적인 규칙을 정하려고 한다. 혁명 정세는 계급투쟁이 최고로 고조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혁명 정세에서 마르크스주의의 현실적인 정책이 대중에 대해 강력한 흡인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서 종파적인 정책은 사태의 압력이 강력할수록 그만큼 더 설득력이 없어진다. 파리코뮌 사태에 허를 찔린 블랑키주의자와 프루동주의자는 자신들이 늘 설교했던 것과 정반대로 행동했다. 러시아혁명 중에 무정부주의자는 소비에트, 즉 권력기관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밖에도 이런 사례를 들자면 끝이 없다.

코민테른 자신은 과거에 마르크스주의에 획득되었으며, 10월 혁명의 권위에 융합된 대중에 의지하고 있다. 그러나 스탈린 분파가 지도하는 현재 정책은 계급투쟁에 정치적 표현을 부여하는 대신에 명령을 하려고 한다. 이는 관료주의의 본질적 특징이고, 이 점에서는 그 밖의 특징에서 뚜렷하게 구별되는 종파주의와 일치한다. 강력한 기구, 소비에트 국가의 물질적 수단, 10월 혁명의 권위 덕분에 각국의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상대적으로 평온한 시기에 한동안 노동자전위에 인위적 제한을 강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계급투쟁이 내전으로 압축되는 정도에 따라 관료주의적 처방은 가차 없는 현실과 더욱 더 격렬하게 충돌한다. 오만하고 우쭐한 관료집단은 정세의 급격한 전환에 직면하여 혼란 상태에 빠진다. 명령할 수 없으면 항복한다. 최근 몇 개월 동안의 텔만 중앙위원회의 정책은 머지않아 가장 비참하고 끔찍한 어리석음의 견본으로 검토될 것이다.

3이후, 사민당과의 협정에 대해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불가침의 원칙으로 간주되었다. , 코민테른 제3, 4차 세계대회가 가르쳤던 것처럼, 공동전선에서 주도권을 쥐는 것이 용납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민당에서 나오는 공동행동 제안도 거부되어야 했다. 개량주의 지도자는 충분히 폭로되었다.’ 과거의 경험은 충분하다. 정치활동에 종사하는 대신에, 대중에게 역사를 들려주어야 한다. 개량주의자에게 무엇인가를 제안하는 것은 이들에게 투쟁 능력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사회파시즘만이 이럴 것이다 등등. 이상이 최근 3~4년 사이에 초좌익주의의 휴대용 오르간에서 귀청이 터질 듯이 요란하게 내뿜은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프로이센 주()의회의 공산당 의원단이 622, 누구도 예상치 못한, 그리고 자신을 위하여 사민당뿐만 아니라 중앙당에 대해서도 협정을 제안했다. 헤센에서도 같은 일이 되풀이 되었다. 프로이센 주()의회의 의장 자리가 나치의 손아귀에 떨어질지도 모르는 위험에 부닥쳐 신성화된 모든 원칙은 성가신 것이 되었다. 놀랍지 않은가? 그리고 구차하지 않은가? 

그렇지만 이런 결사적 도약(goat-leaps)을 설명하는 것은 그만큼 어렵지는 않다. 알다시피, 많은 피상적인 자유주의자나 급진주의자는 평생을 종교나 신의 힘에 대해 농담을 지껄이지만, 죽음이나 중병에 맞닥트리면 어쩔 수 없이 사제를 부른다.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중도주의의 특징은 기회주의다. 외부적 사정(전통, 대중의 압력, 정치적 경쟁)의 영향력 아래에서 중도주의는 어느 특정한 시기에 급진주의를 과시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자신의 정치적 본성을 거슬러 스스로를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 힘껏 스스로를 격려함으로써 가끔 형식적 급진주의의 극한에 이르기도 한다. 그러나 심각한 위험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마자, 중도주의의 본성이 갑자기 표면화한다.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소비에트 연방의 방어와 같은 미묘한 문제에서 늘 노동자계급의 혁명운동보다 부르주아 평화주의자, 영국의 노동조합 관료, 프랑스의 급진주의자들에게 훨씬 더 의지했다. 외부적 위험이 다가옴과 동시에 스탈린주의자는 곧 자신의 초좌익적 공문구뿐만 아니라 변호사, 작가, 그리고 하찮은 응접실의 영웅 부류의 변덕스럽고 불성실한 친구들과의 우호를 위하여 국제혁명의 사활적 이해관계도 희생시켰다. 이것이 위로부터의 공동전선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뮌젠베르크라는 이름의 불분명한 사건 조사를 위한 인민위원은 소련 방어를 위해서온갖 종류의 자유주의적 수다쟁이와 급진주의적 잡문가의 윗도리 뒷자락을 힘껏 당겼다.

다른 모든 나라(소비에트 연방은 제외하고)의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처럼, 독일의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반전(反戰)대회 문제에서 타협적인 바르뷔스의 지도력에 대단히 불만스러워 한다. 이런 영역에서 텔만, 포스터 등은 오히려 급진적인 것을 선호한다. 그러나 자기 나라의 국내 문제에서 이들은 모두 모스크바 당국과 같은 방식에 따라 처리한다. , 심각한 위험이 다가옴에 따라 이들은 자신의 본질 즉, 그 기회주의적 특성을 드러내기 위해 부풀려진, 변조된 급진주의를 포기한다.

()의회의 공산당 의원단이 사민당과의 협정에서 주도권을 쥐는 것이 그 자체로 잘못되고, 용납할 수 없는 일인가?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볼셰비키는 1917년에 여러 차례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에게 이렇게 제의했다. “권력을 잡아라, 자본가계급이 저항한다면, 우리는 자본가계급에 대항하여 여러분을 지지할 것이다.” 타협은 용인될 수 있으며, 일정한 조건에서는 의무적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타협이 어떤 목적에 도움이 될 것인지, 대중이 어떤 기대를 하는지, 그 한계는 무엇인지 하는 것에 있다. 타협을 주()의회나 제국의회로 한정하거나, 파시스트 대신에 사민당 의원이나 가톨릭중앙당 의원이 의장이 될지 어떨지를 별개의 목적으로 여기는 것은 완전히 의회 백치병에 빠지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당이 공동전선 정책에 근거하여 사민당 노동자를 획득하기 위한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투쟁을 자기의 임무로 한다면, 사정이 전혀 달라진다. 이 경우에 상임집행위원회에서 파시스트의 우세에 반대하는 의회주의적 협정은 파시즘에 반대하는 의회 밖의 투쟁 협정의 한 가지 구성요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마땅히 공산당은 의회 밖에서 한꺼번에 문제 전체를 해결하는 것을 더 좋아할 것이다. 그러나 힘이 모자랄 때 선호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민당 노동자는 731일의 투표의 마력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이 사실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공산당의 이전 오류(프로이센의 인민투표 등)는 개량주의 지도자들에 의해 수행된 공동전선의 사보타지를 터무니없이 용이하게 했다. 기술적인 의회주의적 협정은 또는 이러한 협정을 위한 제안까지도 틀림없이 사민당에 반대하여 파시스트와 협력하고 있다는 비난으로부터 공산당을 자유롭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것은 결코 독자적인 행동이 아니라 그저 투쟁 협정, 더 정확히 말하면, 대중조직의 투쟁 협정을 위한 투쟁 방법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두 노선의 차이는 완전히 명백하다. 사민당 조직과의 공동투쟁은 혁명적 성격을 띨 수 있고, 공동투쟁이 전개되면서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이다. 사민당 대중에 대해 접근할 가능성을 얻기 위해서 일정한 조건에서는 상부의 의회주의적 협정까지도 대가로 치를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볼셰비키에게 입장료에 지나지 않는다.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정반대로 행동한다. 이들은 투쟁 협정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더욱 나쁜 것은 아래로부터 일어나는 협정을 고의적으로 파괴한다. 동시에 이들은 사민당 의원들에게 의회 내 협정을 제의한다. 이것은 위기의 순간에 자신의 초좌익주의 이론과 실천이 무가치하다고 선언하는 것을 뜻한다. 게다가 이들은 이를 혁명적 맑스주의의 정책이 아니라 차악의 심정으로 줏대 없는 의회 내 연합으로 대체해버린다.

우리는 정말로 프로이센과 헤센의 에피소드가 의원들의 오류였으며, 중앙위원회에 의해 다시 수습되었다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그러나 첫째로, 원칙적으로 매우 중요한 결정이 중앙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내려졌을 리 없다. 게다가 중앙위원회는 전적으로 이 오류에 의지한다. 둘째로, 고함치며 말하고 꽥꽥 소리 지르는 논쟁, 비방, 제명으로 몇 개월을 보내고 나서 강철같이 단단한’ ‘일관된’ ‘볼셰비키정책이 결정적 순간에 즉시 기회주의적 오류에 굴복한 것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러나 문제는 주()의회로 한정되지 않는다. 텔만-레멜레는 훨씬 더 중요하고 결정적인 문제에서 자신과 자기 일파를 철저히 부정했다. 720일 직전에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결정을 채택했다.

 

 

공산당은 노동자 대중 앞에서 사민당, 독일노동조합총동맹(ADGB), 자유종업원총동맹(AfABund)에게 공산당과 함께 노동자의 요구를 위한 총파업을 실행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질문을 제기한다.”

 

 

매우 중요하고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이 결정은 아무런 논평도 없이 중앙위원회에 의해 726일자 회람장에 발표되었다. 공산당의 이전 정책 전체에 대해서 이보다 더 무력한 평가를 할 수 있는가? 공동행동 제안으로 개량주의 수뇌부에 접근하는 것은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사회 파시스트이자, ()혁명적이라고 선언되었다. 이 문제 때문에 많은 공산당원이 제명되었다. 이런 이유에 따라 트로츠키주의에 대한 투쟁이 수행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중앙위원회가 단숨에, 720일 직전에, 전날까지 단호히 배격하고 있던 것에 갑자기 굴복할 수 있었는가? 그리고 중앙위원회가 어떤 설명이나 정당화도 없이 이 놀랄 만한 결정을 가지고 감히 당 앞에 나섰지만, 관료집단은 당을 비극적인 상황으로 이끈 것이다! 

정책은 이러한 전환에 따라 검증된다. 독일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실제로 720일 직전에 전 세계에 이렇게 설명했다. “이 순간까지 우리의 방침은 조금도 쓸모가 없었다.” 이 고백은 본의가 아니었다고 해도 완전히 올바르다. 유감스럽게도 이전 정책을 뒤엎은 720일의 제안도 결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없었다. 개량주의 수뇌부에 대한 호소는 이들의 현재 대답과는 무관하게 사전에 그것이 아래로부터 준비되어 있는 경우에만, 즉 모든 정책이 전체적으로 근거하고 있는 경우에만 혁명적 의의를 가질 수가 있다. 그러나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날이면 날마다 사민당 노동자에게 이렇게 되풀이했다. “우리 공산주의자는 사민당 지도자들과 연관되는 것을 일체 거부한다.”(앞장의 텔만의 대답을 보라) 720일의 느닷없는, 예상치 못한, 동기가 없는 제안은 공산당 지도부의 모순, 진지함 결여, 공포와 모험주의적 비약 성향을 드러냄으로써 공산당 지도부의 정체를 폭로하는 것에만 적합할 뿐이다.

중도주의 관료집단의 정책은 사사건건 적을 돕고 있다. 사태의 거센 압력이 수많은 새로운 노동자를 공산주의의 기치 아래로 밀어낼 때에도 이는 스탈린-텔만의 정책에도 그런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당의 미래는 결코 약속되어 있지 않다.

 

 

6. 공동전선에 대해서 프라하에서는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체코슬로바키아공산당의 중앙기관지 루데 프라보(Rudé právo, 붉은 정의 : 체코슬로바키아공산당의 기관지) 1932227일자는 이른바 작업대로부터라는 노동자 통신원의 명의로 이렇게 말했다. “1926년에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이 사민당 지도자와 공동전선을 체결했을 때, 이것은 지지 대중 앞에서 이들을 폭로하기 위해서였으며, 이때 트로츠키는 몹시 반대했다. 사민당이 노동자의 투쟁에 대한 무수한 배신행위 때문에 자신의 신용을 까먹고 있는 지금, 트로츠키는 사민당 지도자와의 공동전선을 제안하고 있다. …… 트로츠키는 오늘날, 1926년의 영-러 위원회에는 반대하지만, 1932년의 일종의 영-러 위원회에는 찬성한다.”

이 문장은 우리를 직접 문제의 핵심으로 이끈다. 1926년에 코민테른은 공동전선 정책으로 개량주의 지도자를 폭로하려고 했으며, 또 그것은 옳았다. 그러나 이때 이래로 사민당은 스스로 신용을 까먹었다.’ 누구 앞에서? 그러나 공산당을 따르기보다는 사민당을 따르는 노동자가 여전히 많다. 유감스럽지만 이는 사실이다. 따라서 개량주의 지도자를 폭로하는 과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공동전선이라는 방식이 1926년에는 만족할만한 것이었다면, 1932년에는 부적당한 것이 되었는가? 

트로츠키는 1932년의 영-러 위원회에 찬성하고, 1926년의 영-러 위원회에 반대한다.” 1926년의 공동전선은 국경과 사회적 조건에 의해 서로 분리된 대중의 일정한 실천적 행동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호적-외교적, 평화주의적-회피적 강령에 근거하여 소비에트 노동조합과 영국의 노동조합주의 지도자 사이에 위에서 체결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광부 파업과 그 뒤의 총파업 중에 영-러 위원회는 모일 수조차 없었다. 왜냐하면 동맹자들이 서로 정반대 방향으로 잡아당겼기 때문이다. , 러시아의 노동조합 지도부는 파업 노동자를 지원하려고 애썼으며, 영국의 노동조합주의자는 파업을 파괴하려고 했다. 러시아 노동자가 모은 꽤 많은 기부금은 총평의회에 의해 저주받은 돈이라고 거부되었다. -러 위원회가 잡담을 나누기 위해서 다시 정례회의를 갖기로 한 것은 파업이 결정적으로 배신당하고 분쇄되고 난 뒤였다. 이렇게 영-러 위원회의 정책은 노동자 대중 앞에서 개량주의 파업파괴자를 은폐하는 구실을 했던 것이다.

현재, 우리는 아주 다른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독일에서 사민당 노동자와 공산당 노동자는 똑같은 위험을 앞에 두고 같은 지반 위에 서 있다. 이들은 공장, 노동조합, 실업자등록소 등에서 서로 뒤섞여 있다. 여기서 문제는 지도자들의 구두 강령이 아니라 대중조직을 직접 투쟁에 끌어들이기에 알맞은 완전히 구체적인 임무이다.

전국적 규모의 공동전선 정책은 지역적 규모의 공동전선 정책보다 10배나 힘들다. 국제적 규모의 공동전선 정책은 일국적 규모의 공동전선 정책보다 100배나 힘들다. ‘소련 방어중국혁명의 옹호와 같은 일반적인 슬로건을 중심으로 영국의 개량주의자와 결합하는 것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말이다. 이에 반해서 독일에서는 사민당을 포함한 노동자 조직의 파괴가 직접적인 위험이 되고 있다. 사민당에게 소비에트 연방 방어를 위해 독일 자본가계급에 맞서 싸울 것을 기대하는 것은 환상이다. 그러나 사민당이 자신의 권한, 집회, 정기간행물, 기금, 마지막으로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싸울 것이라는 점은 확실히 기대할 수 있다.

그렇지만 독일에서도 우리는 결코 공동전선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협정은 계획적인 행위를 합의하는 것이다. 협정은 협정이 체결된 실천적 목적에 이바지하는 한에서 실질적으로 유지된다. 개량주의 지도자가 운동을 차츰 억제하거나 사보타지하면, 공산주의자는 언제나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 즉 협정을 파기하고, 앞으로 우리의 기치 아래 대중을 이끌 때가 아닌가? 이러한 정책은 용이하지 않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을 승리로 이끄는 것이 용이하다고 도대체 누가 말했는지? 1926년을 1932년에 대치시킴으로써 루데 프라보지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6년 전에 일어난 것에 대한 이해 부족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가공의 작업대로부터라는 노동자 통신원도 내가 제시한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과 볼셰비키의 협정 사례에 주의를 돌리고 있다. “그 시기 내내 케렌스키는 실제로 일정한 시간 동안 코르닐로프에 맞서 싸웠으며, 동시에 노동자계급이 코르닐로프를 격파하도록 도왔다. 오늘날 독일사민당이 파시즘에 맞서 싸우지 않는 것은 어린 아이도 알 수 있다.”

어린 아이를 전혀 닮지 않은 텔만은 코르닐로프에 대항하기 위한 러시아 볼셰비키와 멘셰비키, 사회혁명당과의 협정은 결코 존재한 적도 없다고 주장한다. 지금 살펴보는 것처럼, 루데 프라보지는 다른 방침을 따른다. 루데 프라보지는 협정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생각에 따르면, 파시즘의 권력으로 가는 길을 준비하고 있는 사민당에 비해 케렌스키는 실제로 코르닐로프에 맞서 싸웠기 때문에 협정은 정당했다고 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케렌스키의 이상화는 거의 아연실색할 일이다. 케렌스키가 언제 코르닐로프에 맞서 싸우기 시작했는가? 코르닐로프가 케렌스키를 앞질러 코사크 기병을 뒤흔든 때는 바로 1917826일 직전이었다. 전날, 케렌스키는 페테르부르크의 노동자와 병사를 함께 분쇄할 것을 목표로 코르닐로프와 직접 공모하고 있었다. 케렌스키가 코르닐로프에 맞서 싸우기시작했다면, 더 정확하게는 그것은 오직 볼셰비키가 그에게 달리 취할 방법을 남겨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르닐로프와 케렌스키라는 2명의 음모가가 결별하여 공공연하게 충돌한 것은 다소 의외였다. 그러나 독일 파시즘과 사민당 사이에 충돌이 일어날 것이라는 점은 이탈리아나 폴란드의 경험에 근거하기만 하면 미리 예측할 수 있었고, 또 예측해야 했다. 왜 코르닐로프에 대항하여 케렌스키와는 협정을 맺을 수 있는데, 왜 파시즘에 대항하여 사민당 대중조직과의 협정을 설명하고, 분투하고, 옹호하고, 준비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 것인가? 이러한 협정이 성립하는 경우에는 왜 반드시 파괴되어야 하는가? 그렇지만 이것이야말로 텔만 일당이 어떻게 나아갈지를 보여준다.

물론 루데 프라보지는 악당, 악당의 할미, 심지어 노스케나 그르제진스키와도 군사행동을 위한 협정을 맺을 수 있다는 나의 말에 게걸스럽게 달려들었다. 루데 프라보지는 이렇게 말한다. “공산주의 노동자여, 보라. 이렇게 여러분은 이미 여러분의 많은 전우를 사살한 그르제진스키와 협정을 맺어야 한다. 그와의 협정이 성립되려면 연회와 공장이나 은행의 이사회에서 그와 친하게 지내는 파시스트에 대항하여 그가 여러분과 함께 투쟁해야 한다.” 여기서는 문제 전체가 그럴싸한 감상주의의 수준으로 옮겨져 있다. 이러한 반론은 무정부주의자, 구 러시아의 사회혁명당 좌파, ‘혁명적 평화주의자’, 또는 뮌젠베르크에게나 어울린다. 여기에는 맑스주의의 어렴풋한 것도 없다.

먼저 그르제진스키가 노동자의 사형집행인이라는 것이 맞는가? 전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러나 케렌스키는 그르제진스키에 비하면 노동자 농민의 사형집행인과는 대단히 멀지 않은가? 그러나 루데 프라보지는 케렌스키와의 실무협정을 사후 승인한다.

노동자를 겨냥한 모든 행위에서 사형집행인을 지지하는 것은 배신은 아니더라도 범인 것이다. 스탈린과 장개석이 맺은 동맹이 바로 이러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중국의 사형집행인이 내일이라도 일본 제국주의자와의 전쟁에 돌입하겠다고 한다면, 중국 노동자와 사형집행인 장개석과의 실제적 투쟁 협정은 전적으로 허용될 수 있고, 의무이기도 하다.

그르제진스키는 연회에서 파시스트의 지도자와 환담했는가? 나는 모르지만 그런 것으로 인정할 용의가 있다. 그렇지만 그 뒤에 그르제진스키는 사회주의를 대표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자리를 보나파르트주의자나 파시스트에게 양보하는 것을 꺼렸다는 이유만으로 하릴없이 수감되었다. 적어도 1년 전에 공산당이 파시스트 학살자들에 대항하여 우리는 그르제진스키와도 함께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고 공공연하게 선언했다면, 그리고 이 정식에 투쟁성을 부여하고, 연설이나 기사에서 이를 발전시키고, 대중에게 깊숙이 끌어들였다면, 그르제진스키는 7월에 대중 앞에서 공산당의 사보타지를 언급하는 것으로 자신의 항복을 변호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이런저런 적극적 조치에 찬성하거나, 아니면 자기 당 소속 노동자의 면전에서 절망적인 꼴을 보였을 것이다. 이는 분명하지 않은가? 

물론 비록 그르제진스키가 자신이 처한 상황의 논리나 대중의 압력 때문에 투쟁으로 견인되었더라도, 그는 대단히 믿을 수 없는, 철저히 배신적인 동맹자였을 것이다. 그의 주요한 생각은 가능한 한 신속하게 투쟁이나 반()투쟁에서 자본가와의 협정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발동이 걸린 대중, 심지어 사회민주당계 대중조차도 격분한 경찰총장(그르제진스키) 같이 쉽게 멈추지 않는다. 투쟁 중에 일어나는 사민당 노동자와 공산당 노동자의 화해는 공산당 지도자들에게 특히 공통된 위험에 맞닥트려 사민당 노동자에게 훨씬 더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할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공동전선의 궁극적 목적이다.

노동자계급의 모든 정책을 개량주의 조직과의 협정이나, 더욱 나쁜 것은 통일이라는 추상적 슬로건으로 분해시키는 것은 사회주의노동자당(SAP) 형의 줏대 없는 중도주의자만이 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자에게 공동전선 정책은 계급투쟁의 과정에서 구사하는 하나의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일정한 조건 아래에서 이 방법은 전혀 쓸모가 없게 된다. 즉 사회주의혁명을 이루기 위해 개량주의자와 협정을 맺을 필요가 있다는 것은 당찮은 수작이다. 그러나 공동전선의 거부가 몇 십 년에 걸쳐 혁명정당을 파멸시킬 수도 있는 상황이 있다. 이것이 현재 독일의 상황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국제적 규모로 공동전선 정책을 제기하는 것은 한층 더한 어려움과 위험에 직면한다. 왜냐하면 국제적 규모로 실천적 임무를 정식화하고, 대중에 의한 통제를 조직하는 것이 그만큼 더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반전(反戰)투쟁의 문제에서 그렇다. 여기에서 공동행동의 가능성은 훨씬 더 적고, 개량주의자나 평화주의자가 발뺌하거나 사기 칠 가능성은 훨씬 더 크다. 물론 우리는 지금까지 이 영역에서 공동전선은 엄두도 못 낼 일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반대로 우리는 코민테른이 직접, 그리고 즉시 제2 인터내셔널과 암스테르담 인터내셔널에 합동 반전대회를 제안하도록 요구했다. 이때, 코민테른의 임무는 다양한 나라와 다양한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매우 구체적인, 실행할 수 있는 협정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만약 국제 사회민주주의가 이러한 대회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면, 전쟁 문제에 대해 우리 측의 올바른 정책이 있었다면, 날카로운 쐐기처럼 이들의 대오에 박혔을 것이다.

이를 위한 첫 번째 전제는 조직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최대한의 투명함이다. 이는 현재 원칙상의 심각한 대립에 의해 분열되어 있는 몇 백만 명을 가진 노동자 조직의 협정에도 필요한 것이다. 모호한 중개자, 외교적 가장, 공허한 평화주의적 상투어는 일체 필요 없다! 

그렇지만 코민테른은 이번에도 맑스주의의 기초에 역행하는 행위를 했다. 즉 코민테른은 개량주의 인터내셔널과 공개적인 교섭에 들어가기를 거부했지만, 막후에서는 평화주의 문필가 양반이자 지독한 바보인 앙리 바르뷔스를 통해 프리드리히 아들러와 교섭을 개시했다. 이 정책으로 바르뷔스는 각국의 프리랜서 평화주의자와 함께 불명료한 공산주의자나 관계가 있는’ ‘동조적인조직과 그룹을 암스테르담에 끌어 모았다. 이 프리랜서 평화주의자들 중에서 가장 정직하고 진지한 사람들 이들은 소수이다 은 각자 이렇게 해명할 것이다. ‘이런 빌어먹을!’ 도대체 누가 이런 가면무도회, 이런 지식인적 허영심의 바자회, 노골적인 정치적 야바위로 변한 이런 뮌젠베르크적 제전을 필요로 했는가?

그러나 프라하 이야기로 되돌아가자. 위에서 검토된 기사가 발표되고 5개월이 지나 루데 프라보지는 당 지도자 가운데 한사람인 클레멘트 고트발트의 기사를 게재했다. 이 글은 다양한 경향을 가진 체코 노동자에게 투쟁 협정을 맺자고 호소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파시스트의 위험은 중부유럽 전체를 위협하고 있다. 노동자계급의 단결만이 반동의 공세를 격퇴시킬 수 있다.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 벌써 125분 전이다. 이 호소는 매우 열렬하게 작성되어 있다. 고트발트는 경솔하게 자이데비츠나 텔만을 따라 자신은 당의 이해가 아니라 계급의 이해를 추구하겠다고 맹세한다. 이러한 대비는 맑스주의자의 발언으로는 전적으로 부적격하다. 고트발트는 사민당 지도자들의 사보타지를 비난한다. 이 점에서의 진실은 완전히 그의 편이다. 이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고트발트는 독일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정책에 대해서 직접적으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그는 그것을 옹호할 결심이 서지는 않지만 당장은 그것을 비판할 용기도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고트발트 자신은 결연하지는 않지만 꽤 정확하게 고통스러운 문제를 언급한다. 고트발트는 다양한 경향의 노동자에게 공장에서 합의를 볼 것을 요구한 뒤,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여러분의 상당수는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상부에서단결하면, 우리는 하부에서꽤 쉽게 의견이 일치할 것이다.” 필자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자가 하부에서동의에 이르는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지도자들에 관해서는 이미 말한 것처럼, 지배계급에 대항하고 노동자를 위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악당과도 손잡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러분을 향해 공공연하게 말한다. 만일 여러분의 지도자가 한순간이라도 자본가계급과의 동맹을 포기한다면, 한 가지 문제에서라도 정말로 지배계급에 공세를 취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환영하고, 그 속에서 그들을 지지할 것이다.”

여기에는 필요한 것이 거의 모두 언급되어 있으며, 대체로 언급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다. 고트발트는 악당을 언급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악당은 5개월 전에 루데 프라보지 편집부에 경건한 분노를 아로새겼다. 고트발트는 정말로 악당의 할미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신이 함께 할 것이다. 공동전선을 위해서 우리는 그녀를 희생시킬 각오가 되어 있다. 아마 고트발트로서는 잉크병 속에나 있는 노동자 통신원과 함께 227일자 루데 프라보의 기사를 그녀의 처분에 맡기는 것으로 화가 난 노파를 위로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고트발트의 정치적 고려는 틀림없이 체코슬로바키아뿐만 아니라 독일에도 적용될 수 있다. 언급되어야 하는 것도 바로 이 점이다. 이에 반해서, 베를린도 프라하도 당 지도부는 사민당과 공동전선을 펼 준비가 되어 있음을 무미건조하게 선언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이런 준비를 아주 명확한 실천적 제안과 행동을 통해 실제로 적극적으로 볼셰비키적 방식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요구하는 것이다.

고트발트의 기사는 비타협적인 것이 아니라 사실적인 어조로 들린다는 사실 덕분에, 즉시 사민당 노동자 사이에 반향을 얻었다. 731일자 루데 프라보지에는 최근 독일을 방문하고 돌아온 사람들 가운데서 특히 실직한 인쇄공의 편지가 게재되었다. 이 편지는 확실히 개량주의의 편견에 물든 사민당 노동자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편지는 독일공산당의 정책이 그의 의식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기에 그만큼 더 중요하다. 인쇄공은 이렇게 말한다. “지난 봄, 브라이트샤이트 동지가 공산당을 겨냥하여 사민당과의 공동행동에 착수할 것을 호소하자, 붉은 깃발지는 진짜 빗발치는 분노를 쏟아냈다. 그래서 사민당 노동자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즉 이제 공동전선에 대한 공산당의 의도가 얼마나 진지한 것인지 알았다.”

이것이 노동자의 진짜 의견이다. 이러한 의견 하나가 부도덕한 문필가의 몇 십 편의 글보다 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 실제로 브라이트샤이트는 어떠한 공동전선도 제안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공산당과 공동행동이 가능하다는 것으로 자본가계급을 위협한 것일 뿐이다. 만일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즉시 이 문제에 올바르게 칼날을 세웠다면, 사민당 지도부는 곤란한 처지에 몰렸을 것이다. 그러나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여느 때처럼 서둘러 스스로를 곤란한 처지로 내몰았다.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팸플릿에서 나는 브라이트샤이트의 발언에 대해서 말한 바 있다. 브라이트샤이트의 외교적이며 모호한 제안을 즉시 있는 힘껏 잡아채고, 이쪽에서는 반()파시즘 공동투쟁을 위한 구체적이고 꼼꼼하게 작성된 실천적 강령을 제출하고, 자유노동조합의 집행부가 참여하는 양당 지도부의 합동회의 개최를 요구해야 했다는 것이 자명하지 않은가? 동시에, 이 강령을 양당의 각급 조직과 대중에게 힘차게, 정력적으로 관철시켜야 했다.”

개량주의 지도자들의 의사 타진을 일축함으로써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노동자의 의식 속에서 브라이트샤이트의 모호한 주장을 직접적인 공동전선 제안으로 바꿔버리고, 사민당 노동자가 이렇게 결론내리도록 재촉했다. “우리의 지도자는 공동행동을 바라지만, 공산당은 사보타지하고 있다.” 이보다 더 어리석고 부적절한 정책을 상상할 수 있는가? 브라이트샤이트의 술책을 이보다 더 잘 받쳐줄 수 있는가? 프라하 인쇄공의 편지는 브라이트샤이트가 텔만의 도움으로 자신의 목표를 충분히 이뤘음을 대단히 명백하게 증명하고 있다.

루데 프라보지는 우리가 어느 경우에는 협정을 거부하고, 다른 경우에는 승인한다는 사실, 그리고 구체적인 정세에 따라 협정의 범위, 슬로건, 방식을 매번 새로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에서 모순과 혼란을 간파하려고 애쓴다. 루데 프라보지는 다른 모든 중요한 분야에서처럼, 정치에서도 무엇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했는가를 잘 알아야만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또한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해도 곤란을 겪지 않는다.

4년 전에 쓴 레닌 사후의 제3 인터내셔널에서 우리는 공동전선 정책의 몇 가지 기본적 원칙을 세웠다. 그것을 여기서 상기시켜보는 것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량주의는 늘 배신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개량주의와 배신이 어떠한 경우에도 같은 것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개량주의자가 일보 전진할 경우에는 언제든지 그들과 일시적인 협정을 맺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운동의 발전에 겁을 집어먹고 배신을 저지를 경우, 이들과의 블록을 유지하는 것은 배신자를 묵인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배신을 은폐시켜주는 것과 같다.”

 

 

모든 술책에 적용되는 가장 중요하고, 가장 정평이 있는, 그리고 부동의 규칙은 비록 현재 다른 조직이 매우 호의적이더라도 자기 당 조직을 이것과 동화시키거나, 혼동하거나, 연합하려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공공연하거나 은폐된 형태로나 자신의 당을 다른 당이나 다른 계급의 조직에 종속시키거나, 자신의 선동의 자유를 속박하거나 비록 부분적일 뿐일지라도 다른 당의 정치노선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과 같은 조치를 취하지 말아야 한다. 다른 기치에 무릎 꿇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의 기치를 뒤섞지 말아야 한다.”

 

 

바르뷔스 대회를 경험한 지금, 우리는 또 하나의 규칙을 덧붙여야 한다. “협정은 오직 대중의 눈앞에서 당과 당, 조직과 조직 사이에서 공개적으로 체결되어야 한다. 모호한 중개인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부르주아 평화주의자와의 외교상의 문제를 노동자 공동전선이라고 속여서는 안 된다.”

 

 

옮긴이: 김 정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