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실천연구소

실천 2012년 2월호 본문

실천지 (2007년)/창간호

실천 2012년 2월호

사회실천연구소 2014. 11. 4. 20:13



떠난다는 것. 

따뜻한 남쪽 바다, 남해. 참 풍광 좋은 곳이다. 그곳에 가면 ‘독일인 마을’이 있다. 방송에서 독일인 마을이 소개되자, 그곳은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왜 그들은 그곳에 갈까. 한국 속에서라도 ‘낯선’ 것을 찾고 싶은 욕망을 채우려는 것인가. ‘독일인 마을’이라고는 하지만, 독일 사람은 그곳에 없다. ‘독일식’ 집에 한국 사람이 살고 있을 뿐이다. 아니면 이왕 휴식을 할 것이라면, 풍광 좋은 곳이어서 그곳을 찾는 것일까. 어떻든, 그곳을 가더라도 우리 현대사의 이면과 우리의 현실을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독일인 마을은 남해 시의 작품이다. ‘조국근대화’와 ‘경제발전’의 일꾼이 된 간호사와 광부들이 고향에서 자리 잡고 살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래서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이 그곳에 살게 되었다.

우리는 많은 노동자를 ‘수출’했다. 멀리는 ‘애니깽’에서 가까이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까지. 1960년대 중반에서 1970년대 초까지, 독일로 간호사와 광부들이 많이 갔다. 그들은 어려운 살림살이에 보탬이 되려고 낯선 땅으로 떠났다. 그들의 ‘이주노동’은 살림에 보탬이 되었을 것이다. ‘조국근대화’에도 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독일 쪽에서 보면, 한국인은 ‘제2세대 이주노동자’ 쯤 된다. ‘1세대’는 주로 터키 노동자였다. ‘라인강의 기적’을 일어나게 했던 또 다른 자원이 이들 이주노동자였다. 그들은 대체로 독일 사람들이 꺼리는 이른바 ‘3D 업종’에서 일했다. 일이 힘든 것은 참을 수 있었겠지만, 인종차별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쨌든 독일 사람이 아니라고 발뺌을 해도, 그들은 마셜플랜과 더불어 독일을 경제대국으로 우뚝 서게 한 주역이었다.


2012년 지금. 남해에는 파독 노동자가 살고 있다면, 이 땅 곳곳에는 많은 이주노동자가 살고 있다. 그들도 우리의 ‘파독 노동자’처럼 3D 업종에서 일하고 있다. 그들도 우리의 ‘파독 노동자’처럼 어려운 살림살이에 보탬이 되었고, 나라의 경제 발전에 이바지했을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그들은 한국의 경제발전의 ‘역꾼’이다. 

우리는 그들 ‘이주노동자’를 어떻게 바라볼까. ‘피부색이 짙을수록 열등하다’는 말을 믿고 그들을 ‘열등인종’으로 대접하고 있을까. 아니면 ‘차이’를 인정하면서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대접하고 있을까. 누군가가 말했다. 사람은 앞만 보고 내달릴 수 없다. 사람은 뒤를 돌아보며 앞을 살피는 존재다. 자본의 탐욕이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지금, 우리의 ‘이주 노동자’는 곧 내 미래일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할까. 시 한 편을 싣겠다. 미국에서 노동운동이 활기를 띠었을 때, 어떤 사람이 쓴 시다. 

<죽은 사람을 애도하지 마라> 랄프 채플린(1917) 

차가운 대지에 누워 있는 죽은 사람을 애도하지 말라 
썩어 흙이 되고 그 위에 또 흙이 쌓이면 
고요하고 달콤한 대지가 어머니 품처럼 감싸줄 것을 
또한 모든 인간은 죽게 마련이거늘 


잡혀가 고통스런 삶을 이어가야 하는 동지를 애도하지 말라 
차가운 철창에 산채로 매장되었다고 


그보다는 무심하고 냉담한 군중을 애도하라 
겁먹고 굴종적이며 
극악무도한 고통이 눈앞에 벌어지는 것을 보면서 
감히 입을 닫고 있는 군중이여! 

이번 호에는 이런 글이 실렸다.

【특집】자본주의와 삶 그리고 이주 
이번 호 특집은 ‘이주’ 문제이다. 미국 역사는 이주의 역사다. 미국 노동자는 거의 ‘이주 노동자’다. 지난 월스트리트 점거운동 뒤, 점거운동은 미국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모토가 된 듯하다. 미국에서는 2012년 메이데이를 미국 전체를 점거하자는 취지로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 제안서를 싣는다. 또 미국노동운동의 역사를 간단히 되짚어 보는 글도 실었다. 미국 노동자가 대부분 이주노동자라면, 미국노동운동의 역사는 이주노동자가 주축이 된 운동이야기일 것이다. 마지막에는 ‘이주’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글을 실었다. 

●봄이 오고 있다.-미국 점령운동은 5월 1일 총파업을 제안한다: M1GS 
미국 각 도시의 점령운동 진영이 오는 2012년 5월 1일을 전 세계 총파업의 날로 선포하고 집행하자는 제안을 내놓고 있다. “Occupy May Day(노동절을 점령하라)”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점점 각 도시 점령운동 진영의 지지를 얻어가고 있다. 특히 이들의 요구 첫 번째는, 이주노동자와 이주민의 권리를 내걸고 있다는 점이 매우 특징적이다. 사실 미국에서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내세우는 것은, 마치 한국에서 ‘비정규직 철폐’를 운동의 맨 앞 슬로건으로 내거는 것과 마찬가지의 전통과 의미를 갖고 있다. 수천만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를 바탕으로 해서 운영되고 있는 미국 자본주의에서, 그만큼 노동운동·사회운동·시민운동은 이주노동자의 권리 쟁취 없이는 어떤 민주주의도 쟁취될 수 없다는 점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롱뷰 투쟁에서도 실제로 투쟁에 나선 현장 노동자들의 70~80%는 이주노동자들이다. 그러나 외신이나 미국 언론에서 이 사실을 보도하는 사례가 거의 없음에 깜짝 놀라곤 한다. 그 이유를 물어보면 “너무 당연하기 때문”이라는 답이 나온다. 실제로 미국 노조운동에서 이 정도의 전투성과 견결한 저항이 벌어지고 있다면, 십중팔구 이주노동자가 중심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상식, 아울러 대부분의 열악한 작업장 노동력은 대다수가 이주노동자들이라는 상식이 지배한다. 그래서 롱뷰 투쟁 소식을 듣는 미국인들은, 대부분 굳이 언론에서 떠들지 않아도 그 구성원의 대부분이 이주노동자라는 것을 상식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 글은 5월 1일 총파업을 제안하는 LA 점령운동 진영의 글이다. 글 대부분에서 마찬가지로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루는 부분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맨 마지막 파업의 요구 첫줄에는 어김없이 이주민/이주노동자의 권리(IM/MIGRANT RIGHTS)가 들어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마치 우리가 한국에서 자본의 독재에 맞선 노동자 투쟁을 설명하면서 굳이 비정규직 사례를 밝히지 않더라도 전체 노동자의 요구 맨 첫 줄을 ‘비정규직 철폐’로 장식하는 것처럼. 이 글은 http://takethesquare.net이라는 사이트에 2월 1일 게시된 글이다. 미국에서 제안된 2012 메이데이 총파업을 한국에도 알릴 목적으로 번역하였다. 본래 메이데이라고 하는 것이 “전 세계 노동계급이 (비록 시위나 행사는 자신의 나라, 자신의 도시에서 벌일지라도) 모두 하나가 되어 단결하고 연대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날”이라는 의미라면, 메이데이 전 세계 총파업이야말로 그 의미에 가장 충실한 실천 방법이 아니겠는가. 

●패터슨 파업에서 지금까지 세계산업노동자동맹 이야기: 존 불 
국제산업노동자동맹은 대부분 이주노동자로 구성된 조직이다. 미국 역사에서 이주노동자는 근본적으로 미국의 경제를 뒷받침한 없어서는 안 될 자원이었다. 그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야기한 것이다. 그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21세기 자본주의 아래서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 이주이론의 패러다임들: 통합이론에서 초국적주의 이론까지: 크리스티앙 조르다노 
이 글은 유럽과 다른 곳에서 이주에 대한 논쟁에 영향을 미친 다양한 이론적 접근법을 사회인류학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분석해보려는 것이다. 우리는 통합이론과 마르크스주의적 성찰을 토론하기 위해 1960년부터 개발되었고 대중화되었던 모델들을 추적하면서 시작할 것이다. 그 다음에는 1990년대에 일어났던 패러다임 전환을 설명할 것이다. 이러한 이론 모델은 이주 현상의 초국적 양상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 글에서, 우리는 디아스포라와 사회적 네트워크라는 두 가지 근본적인 집합 유형에서 시작한 초국적주의의 사회적 조직화를 분석할 것이다. 한 세기 전 말레이시아에 중국인의 이주는 디아스포라와 사회적 네트워크가 사회적 조직화의 형식에 반대되지 않지만, 공존하고 상호영향을 주는 형식이라는 것을 증명해준다. 역사적 전망을 통해, 우리는 말레이시아에서 중국인의 사회적 네트워크가 차츰 경제적으로만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강력한 후견적인 사회적 네트워크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던 곳에서 민족의 디아스포라로 되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기획】욕망과 혁명 
●동성애 욕망: 기 오껭겜 
이번 호부터는 기 오껭겜의 '동성애 욕망'을 번역하여 싣겠다. 욕망과 혁명의 관련 문제를 구체적으로 적용한 이론적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영문판 서문은 Guy Hocquenghem, tr., Dniella Dangoor, Homosexual Desire, Duke University Press, Durham and London, 1993, pp. 9-47에 있다. 원문은 Guy Hocquenghem, Le d?sir homosexuel, ?ditions Universitaires, 1972이다 이 텍스트는 입문, 1장 반동성애 편집증, 2장 증오·도착·광기, 3장 가족·자본주의·항문, 4장 ‘대상선택’과 동성애 ‘행동’, 5장 동성애 투쟁, 그리고 결론으로 되어 있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앙티-오이디푸스??에 이론적으로 준거하여 동성애와 혁명의 문제를 욕망혁명의 틀에서 분석해 내고 있다. 

【기획】계급의식, 계급무의식, 혁명 
●계급의식과 파시즘의 계급무의식의 대립구조: 오세철 
나는 '실천' 2012년 1월호에 실린 ?계급의식, 계급무의식 그리고 혁명?이라는 이론적 도입 글에서 계급의식에 대한 긍정적 확신을 통한 혁명의 필연성을 일방적으로 주장하거나 자본주의의 가치법칙에 종속되어 그 형식을 뛰어넘는 혁명의 불가능성을 말하는 비관론적 접근 모두의 한계를 지적하였다. 그리고 맑스가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서 정치경제와 의식의 통합을 말했음을 상기시키면서 맑스 이후의 조야한 경제결정론과 그에 대한 왜곡된 반작용으로서의 자발성주의는 맑스주의에 대한 잘못된 해석임을 지적했다. 또한 글을 마무리하면서 “맑스, 트로츠키, 라이히 등 계급 조건화된 계급무의식에 대한 이해를 통해 맑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의 올바른 관계를 정립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욕망과 그 억압, 그 구체적 형태에 대한 인식이 자본주의 철폐뿐만 아니라 공산주의사회 건설 계획의 일부임을 확인해야 함을” 제안하였다. 두 번째 글에서는 라이히를 통해 맑스주의 심리학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파시즘 분석을 통해 노동자대중의 계급무의식의 억압구조와 혁명의 반혁명화의 위험성을 경고하고자 한다. 

【기획】칼 코르쉬의 혁명이론 
●코르쉬와 코뮤니즘: 더글라스 캘너 

【기획】레프트 119 
●경찰과 공격자들의 도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1): Activist Trauma Support 
동료 활동가가 경찰의 폭력적 도발로 몸을 다쳤을 때, 활동가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상황별로 정리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