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실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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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지 (2007년)/2007년 11월호

레닌의당

사회실천연구소 2014. 12. 15. 14:35

레닌 당 개념의 신화: ?무엇을 할 것인가?는 어떻게 왜곡되었는가?

할 드래퍼

 

 

들어가는 말

 

오늘날 신화는 레닌학(Leninology)으로 불릴 수도 있는 하나의 원칙이다. 러시아 여러 대학의 연구소, 학위과정, 정치 저널리스트 등은 레닌학을 크레믈린학(Kremlinology)의 한 유파로 널리 퍼트렸다. 레닌학이 만들어낸 신화는 이와 같다.

 

 

레닌이 1902년에 쓴 ?무엇을 할 것인가??는 레닌의 당 개념또는 실천 지침의 핵심을 보여 준다. 볼셰비즘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스탈린이즘의 모든 요소가 이 책 속에 잠복해 있다. 이 책은 당 조직에 대한 레닌이즘의 교과서로서 궁극적으로는 전체주의의 원죄를 잉태하고 있다. 이 책이 정립하고 있는 레닌주의 형태의 당은 프롤레타리아 계급 위에 군림하는 상위계급 출신의 직업적 혁명가들에 의해서 위로부터 통제되는 권위주의 구조를 갖는다.

 

 

이 글에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그 자체와 이 책을 쓸 때에서부터 러시아혁명 사이의 기간에 레닌이 갖고 있던 생각과 실천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많은 질문으로 잘게 쪼개지는 쟁점 모두는 똑같이 자세하게 다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 글에서 토론하게 될 레닌학이 만들어낸 원칙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방향에서 강화되었다. 잘 알려진 레닌주의자 우테친(특별부록을 참고할 것)이 지적했듯이, ?무엇을 할 것인가?는 스탈린정부의 당 학파에서 찬양된 것과 비슷한 견해를 제시한다. 사실, ?무엇을 할 것인가?가 지닌 기본적인 중요성을 드러낸 우테친의 방식은 이 점에 대해 크렘린이 내놓은 공식적인 ?소련 공산당사?를 따온 것이다. 다른 레닌주의자들과 똑같이 우테친은 이 책이 조직과 전술과 전략의 문제에서 레닌의 추종자들에게 지침서가 되었으며 …… 소련공산주의자들이 줄곧 믿었던 것이다. 레닌 자신이 이러한 의견을 일관되게 적용했는데 ……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 레닌의 주장은 일반적인 타당성을 갖고 있으며, 실제로 소련공산주의자들이 폭넓게 적용해왔다.”고 말한다. 간단히 말해서, 스탈린주의자들과 서방의 레닌주의자들은 레닌의 책이 전체주의를 위한 성경이었다는 점에서 서로 동의하고 있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레닌 자신이 이러한 의견을 일관되게 적용했다.” 우리는 이것이 진실과 얼마나 거리가 먼 주장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이 논문에서 나의 주제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내 자신의 해석이 아니다. 나는 제기된 문제에 대해서 여러 차례 기록되어 있는 레닌 자신의 의견, 다시 말해서 그의 사상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조사할 것이다. 신화에 따르면, 레닌의 모든 책에서 되풀이 되고 있는 레닌의 당 개념은 아래와 같다.

 

 

(1) 노동자 스스로가 사회주의 의식을 발전시킬 수 없다는 이론을 바탕으로 삼아 당이 주로 지식인계층으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언제나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부르주아 지식인은 사회주의 이념을 운동에 들여온다.

(2) 당을 포괄적인 노동자계급의 정당이 아니라 단순히 직업적 혁명가들의 조직이라고 단정했다.

(3) 계획된 혁명만을 선호함으로써 자연발생성이나 자연발생적 운동을 일체 거부했다.

(4) 당이 민주적으로 조직되기보다는 관료적 또는 군사적 서열체계로 조직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레닌이 여러 차례 되풀이 해서 설명했던 그 자신의 견해와 정반대라는 것이 드러나게 될 것이며, 이를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자체를 검토하는 일에서 시작할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검토함으로써 우리는 신화와 다른 어떤 내용을 실제로 찾아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할 것인가?가 레닌의 마지막 주장이 아니었다는 점이 이해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것은 그의 초기 주장에 속했다. ?무엇을 할 것인가?를 당 문제에 대한 레닌 저술의 전부로 취급하는 사람들은 오로지 레닌학자들 뿐인 것이다.

예컨대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처음으로 정식화된 내용들이 그의 반대자들에 의해서 왜곡되거나 잘못 해석되고 있다는 점을 레닌이 여러 차례 항의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자신의 서술을 해명하거나 수정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레닌의 당 개념을 알고자 한다면 그러한 토론과 공격이 있고난 뒤에 이루어진 레닌의 정식화를 살펴봐야 마땅할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의 원죄를 폭로하고 있는 잘 알려진 레닌학자들은 그 어느 누구도 이러한 기록들에 대해 말하지 않고 있다.

 

 

사회주의 의식과 지식인

 

노동자가 자신들의 힘만으로 사회주의 이념을 지닐 수 없으며 부르주아 지식인들만이 사회주의 이념을 전달해줄 수 있다는 주장은 레닌이 1902년 뒤 죽을 때까지 견지했던 태도라는 신화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하자.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실제로 쓰여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아볼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미리 지적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1) 얄궂게도 위에서 주장된 이론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만 나타났을 뿐이며, 레닌의 방대한 저작의 다른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것은 레닌의 저작에서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어떤 레닌학자도 그 이론이 레닌의 다른 저작에 나와 있다고 한 적이 없다.

이러한 사실은 아무래도 연구자들을 망설이게 만든다. 통상적인 연구에서라면, 레닌이 1902년에는 그러한 이론을 유지했지만 곧바로 포기했다고 결론짓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적어도 이 흥미로운 사실에 대해서 서술할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 사실을 설명하려고 애쓸 것이다. 그러나 레닌학자들은 이런 방식으로 연구하지 않는다. 정반대로 그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말고 다른 어떤 문헌도 인용하지 않으면서, 실제 있지도 않는 이론, ?무엇을 할 것인가? 가 나온 뒤에는 있지도 않는 이론이 레닌주의의 영원한 핵심이라고 끝없이 되풀이하고 있다. (기묘한 사실 그 자체에 대한 설명은 아래의 논점들에 의해서 분명해지게 될 것이다.)

(2) 레닌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이러한 이론을 주장했는가?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레닌은 그저 전체 국제사회주의운동에서 가장 권위 있는 맑스주의 기관지인 ?새로운 시대?(Neue Zeit)에 실린 이 이론을 따왔을 뿐이다. 이것은 국제사회주의운동에서 선도적 맑스주의 학자로 인정받은 칼 카우츠키가 그의 중요한 논문에서 주장한 것이었다. 왜 그리고 어떻게 해서 이 이론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 포함되었는가를 설명해주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레닌은 카우츠키의 주장을 해설한 뒤에, 카우츠키의 논문에 있는 거의 한 페이지에 해당하는 긴 문장을 인용하였다. 레닌이 사회주의 이론의 대가로 존경했던 (어떤 사람들은 교황이라고 불렀던) 카우츠키의 그 문장은 바로 이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하나의 이론체계로서 사회주의는 현대의 경제관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 그러나 사회주의와 계급투쟁은 나란히 일어나는 것이지, 하나가 다른 하나에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각각은 서로 다른 조건에서 생긴다. 현대의 사회주의 의식은 심오한 과학적 지식에 바탕을 둘 때에만 나타날 수 있다. 사회주의 생산을 하는 데서 현대의 경제학은 예컨대 현대의 기술만큼이나 확실히 중요한 조건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들이 아무리 바란다고 하더라도 이 두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두 가지 모두 현대의 사회과정에서 나오는 것이다. 과학을 발전시킨 수레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라 바로 부르주아 지식인 [카우츠키의 강조]이다. 즉 이 계층의 개별 구성원의 마음속에서 현대 사회주의가 시작되었고, 그것을 지적으로 성숙한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선별적으로 알려준 것도 그들이었다. …… 그러므로 사회주의 의식은 외부에서부터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에 주입된 것이지, 그 안에서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 이론의 전체 모습, 레닌주의의 무시무시한 핵심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것은 카우츠키의 펜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몇 페이지 앞에서 이 내용을 서술할 때 레닌은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해왔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즉 그는 그 내용을 운동진영에서 이미 받아들이고 있는 또는 레닌이 그렇게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는 견해로 여기면서 그냥 넘어간다. 그러나 이 내용에 대한 레닌의 요약은 카우츠키의 정식화와 달리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우리는 나중에 레닌의 이 요약을 다시 다루게 될 것이다.

왜 카우츠키는 하필이면 바로 그때에 사회주의 역사에 대한 이러한 견해를 강조했는가? 그 까닭은 아주 또렷하다. 새로운 수정주의분파, 즉 베른슈타인 류의 수정주의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이론이 아니라 노동자의 지속적인 운동이라고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동조합운동처럼 자발적인 계급 활동과 그 밖의 계급운동만으로 충분하다고 주장되었다. 베른슈타인이 내건 슬로건은 운동이 전부이며, 운동의 목표는 아무 것도 아니다.”였다. 그들은 일상적인 문제들에 직접적으로 집중하려고 이론적인 고민을 방기해버리려 했다. 개혁은 오늘(운동)의 관심사였지만, 혁명은 내일(이론)과 관련되는 일이었다. 카우츠키가 미숙한 계급운동에 사회주의 이념을 제공하는 부르주아 지식인의 역할을 일반화했던 까닭은 그렇게 함으로써 수정주의자들의 주장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레닌처럼 새로운 우파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설득력 있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된 논의에서 카우츠키가 왜 오류를 범하게 되었고, 그의 이론이 왜 역사적으로 절반의 진실만을 담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내 주제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이 이론을 정립함으로써 (내가 아는 한, 카우츠키는 결코 이 이론을 부정한 적이 없었다) 카우츠키가 전체주의라는 악마의 기초를 정립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증명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은 어찌되었든지 이상한 일이다.

(3) 이로써 결정적인 레닌주의이론이 실제로는 카우츠키의 이론이었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나게 된다. 이것은 레닌학의 요약에만 의존하는 대신에 ?무엇을 할 것인가? 그 자체를 실제로 읽은 사람에게는 아주 명확하다. 레닌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카우츠키의 이론을 받아들였는가?

다시 말하지만 분명히 아니다. 확실히 레닌은 우파에 맞서서 그 이론을 최대한 이용하려고 애썼다. 이것은 레닌이 그 이론을 인용한 핵심이다. 만일 그 이론이 카우츠키의 논증에 도움을 주었다면, 레닌은 틀림없이 그 이론이 자신을 위해서도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확실히 이때 청년 레닌은 그의 교황을 공격하거나 드러내놓고 수정할 만큼 (아직) 단호하지 못했다. 그러나 비록 조심성 있게 표현하면서 비판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피하고자 애쓰고 있지만, 레닌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역할에 대한 카우츠키 이론에서 가장 잘못된 점을 정확히 거부하면서 (또는 수정이라고 해도 좋겠다) 두 개의 긴 각주를 넣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첫 번째 각주는 위에 인용한 카우츠키의 문장 바로 뒤에 붙여졌다. 그 각주는 카우츠키가 지닌 태도의 이론적 내용을 약화하고 무너뜨리려고 상세하게 쓴 것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물론 이것은 노동자가 그러한 이념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것이 바로 정확하게 카우츠키가 뜻한 것이고 말한 것이었다. 조심할 것을 당부하는 형식을 취하면서 레닌은 수정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레닌은 이렇게 썼다. “그들은 [노동자는] 그러나 노동자로서가 아니라, 프루동이나 웨이틀링과 같은 사회주의 이론가들로서 참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노동자는 그들에게 그런 능력이 있을 때에만 참여하는 것이다. …… 간단히 말해서 레닌은 독자들에게 카우츠키의 포괄적인 진술이 역사적으로 볼 때 100퍼센트 꼭 맞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떠올려 주고 있다. 그는 예외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레닌은 좀 더 중대한 문제로 나아간다. 만일 우리가 사회주의 이념을 처음으로 생각해내는 것을 넘어서서 더 발전시킨다면, 그 때 지식인과 노동자의 역할은 무엇이겠는가? (이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더 다룬다.)

레닌의 두 번째 주석은 카우츠키의 논문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지 않지만 사회주의 이념의 자연발생성을 다루고 있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노동자계급이 자연발생적으로 사회주의로 이끌려간다고 이따금 주장되곤 한다. 이것은 틀림없이 맞는 말이다. 왜냐하면 사회주의 이론은 노동자계급이 비참하게 사는 까닭을 폭로하고 있고 …… 또 그런 까닭에서 노동자는 사회주의 이론을 매우 쉽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닌은 이러한 과정 자체가 단순히 자연발생성에만 종속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노동자계급은 자연발생적으로 사회주의에 이끌린다. 그렇지만 …… 부르주아 이데올로기가 노동자계급에게 미치는 자연발생적인 영향력은 훨씬 더 강력하다.”

카우츠키가 틀렸다고 대놓고 말하고 있지 않지만, 이 두 번째 주석은 레닌이 분명히 카우츠키의 이론을 수정하고 재구성하려고 쓴 것이었다.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는 일은 여러 가지이기 때문에 어느 것이 승리하느냐는 자연발생성에 의해서만 결정될 수 없다! 이렇게 수정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자연발생성에 대한 레닌의 견해가 어떻게 발전되었는가를 분석하려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나온 이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발전하고 있던 그의 견해가 나중에 어떤 모습을 띠게 되는지를 정확히 분석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어쨌든 여기서 또렷해진 것은 카우츠키의 이론이 베른슈타인을 공격하는 데에는 매우 편리하다고 생각했지만, 레닌은 카우츠키 이론의 진술내용에 대해서 정당한 근거를 제시하며 불만족을 표현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레닌의 불만족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볼 것이다.

(4) ?무엇을 할 것인가?에 인용하고 있듯이 심지어 카우츠키의 이론도 (또렷이 하려고 말해두자면 그들은 그것을 레닌의 이론이라고 부른다) 레닌학자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조악하지는 않다. 레닌학자들은 두 가지 서로 다른 질문을 뒤섞어 놓고 있다. (a) 역사적으로 볼 때 사회주의 운동 초기에 지식인들이 떠맡았던 역할은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b) 오늘날 노동계급의 당에서 부르주아 지식인이 맡고 있는 그리고 특히 맡아야 하는 역할은 무엇인가?

많은 레닌학 학자들이 믿는 것과 달리 카우츠키는 무지하지도 우둔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지식인들이 역사적으로 초기에 특정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이 증명될 수 있다고 해서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똑같은 역할을 계속 맡아야 한다는 주장을 믿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이를테면 노동자계급이 성숙함에 따라 그들은 자신들을 이끌어 온 지식인들을 내팽개치는 경향이 있다. 레닌학 학자들은 이 문제를 논의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1902년의 국제운동에서는 운동초기에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서 그 누구도 진정으로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뒤 그러한 사실에서부터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하나의 보기로 맑스는 (또는 두 사람을 보기로 들자면 맑스와 엥겔스는) 똑같은 사실과 그 뒤를 잇는 똑같은 경험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냈다. 그것은 바로 당 안의 부르주아 지식인들의 영향력을 엄격하게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맑스와 엥겔스는 이렇게 힘주어 말했다. “이들은[부르주아 지식인] 틀림없이 독일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들이다.” 위험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지식인들이 운동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도록 투쟁해야 할 많은 이유를 역사적 사실들은 보여주었던 것이다.

(5) 지식인의 영향력이 국제운동에서 늘어나는 것을 드러내놓고 비판하고 이에 맞서 투쟁하는 일에 레닌보다 더 열심이었던 사람은 없었다. 이것을 증명하는 일은 쉬운 일이지만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하겠다. 어쨌든 잘 선택된 몇 가지 사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강력하게 반대 사례를 입증해주는 문장들로도 책 한권을 채울 수 있는 법이다. 이처럼 확실한 사실에 대비하려고 다음과 같이 질문하기로 하자. 어느 누구든지 레닌이 당에서 지식인의 영향력이 증가하거나 지배적이 되는 것을 뒷받침한 문장을 찾아내어 인용할 수 있는가?

실제로 그런 문장은 없다. 레닌학 학자들은 아무 것도 인용하지 않았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제시된 오직 하나의 근거는 그들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나와 있는 이론에서 연역한 것이다. 위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그 이론은 본래 카우츠키의 이론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부르주아 출신의 지식인 계층은 전형적인 사민주의 수정주의 당의 상층부를 지배했다. 이 당의 지도자들이 이러한 상황을 드러내놓고 비판하는 일은 일반적으로 찾아보기 어렵다. 이와 달리 레닌 선집은 지식인계층의 영향력 증대에 대한 비판으로 아주 가득 차 있다. 물론 이 사실로써 문제가 풀리지는 않지만, 이 주제와 관련된 레닌에 대한 비판 전체가 1902년의 책에 나와 있지도 않는 내용에 실질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비합리적이다.

러시아 운동에서 지식인들에 대한 맑스주의 좌파의 비판은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전당대회(?무엇을 할 것인가?는 이 전당대회를 겨냥한 것이었다.)의 창설 자체와 함께 시작되었다. 볼셰비키와 멘셰비키를 갈라놓은 악명 높은 당원자격 규정(누가 당원이 될 수 있는가)은 사실상 당원이 아닌 지식인들을 좀 더 쉽게 당원으로 만들고자 했던 멘셰비키의 열망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레닌은 지식인들이 당원이 되는 것을 좀 더 엄격하게 하려고 싸웠다. (이것은 거의 논의되지 않고 있다.) 조직이 오직, 또는 주로, 또는 대부분 부르주아 지식인들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은 레닌의 당 개념에 의존하고 있다는 레닌학 학자들이 만든 신화이다.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6) 마지막으로, “당 개념의 문제가 특별히 레닌과 레닌주의와 관련되어 있다고 주장되어 왔기 때문에 다른 러시아 사회주의당들, 즉 멘셰비키와 사회주의혁명당은 이 문제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다. 사회주의혁명당이 아주 분명한 사례를 제공한다. 왜냐하면 이 당은 농민의 이해와 정서를 열정적으로 대표했지만 전혀 농민들의 당이라고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 당은 압도적으로 많은 부르주아 지식인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사실은 사회주의혁명당에 대한 주요 학술연구인 라드키(O. H. Radkey)가 쓴 책에 잘 나와 있다.) 멘셰비키 또는 멘셰비키 지지자 가운데서 부르주아 지식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볼셰비키보다 훨씬 더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지는 않았다.

 

 

직업적 혁명가와 자연발생성

 

이제 두 번째 주장, 즉 레닌주의자의 당 개념에 따르면 당은 오직 이른바 직업적 혁명가들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으로 넘어가자. 이 주장은 반대자들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연역했다. 그렇지만 레닌은 이러한 연역과 주장이 나타나자마자 (자주) 당이 직업적 혁명가로만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은 아니라고 부인했다. 레닌학 학자들은 끝도 없이 연역을 되풀이하고 있지만, 레닌이 그것을 일관되게 확실히 부인했다는 사실을 전혀 말하지 않고 있다.

이 주장과 관련된 난점(레닌의 난점이 아니라) 가운데 하나는 대개의 문제가 그렇듯이 여러 가지 질문들이 서로 뒤섞여 있다는 점이다. 먼저 가장 중요한 배경이 되는 사실은 러시아의 모든 혁명 정당들이 비합법 상황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모든 나라의 모든 시기에 적용될 수 있는 일반적 또는 초역사적 당 개념의 문제가 아니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는 이와 같은 전제주의적 차르체제1902년에 무엇을 할 것인지 묻고 있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를 어떻게 해석하든지간에, 그것을 어느 시공간에서나 다 적합한 일반화된 조직프로그램으로 여기는 것은 잘못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레닌은 조직의 효율성을 위해서 당에 직업적 혁명가라는 핵심이 필요하다는 점을 논의하고 있다. 이것은 일단의 혁명가들이 시베리아로 유배되고 나면 새로운 일단의 혁명가들에 의해 재편되어야 하는 당의 역사를 이겨내려는 것이었다. 많은 레닌학적 신화는 직업적 혁명가의 뜻을 혼동하고 있다. 레닌학 학자들은 레닌이 직업적 혁명가를 전일제 당 노동자 또는 전일제 당료, 즉 그의 모든 시간을 당 활동에 쓰는 사람으로 이해했다고 가정하는 듯하다. 그러나 레닌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이것은 레닌학 학자들이 추론하듯이 사실상 노동자를 배제하게 될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를 쓰고 난 뒤 몇 년 동안 레닌은 직업적 혁명가에 대해 많은 논의를 했다. 이러한 논의를 살펴보면 레닌에게 이 말이 뜻하는 것이 다음과 같다는 것은 쉽게 증명될 수 있다. 당 활동가로서 그의 여유시간의 대부분을 (기꺼이) 혁명과업에 바치는 사람. 직업적 혁명가는 혁명 활동을 그의 삶(또는 삶의 방식이라고 해도 좋겠다)의 중심으로 삼는 사람이다. 물론 그도 먹고살기 위해 일해야 하지만, 이것은 그의 삶의 중심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직업적 혁명가의 형태다.

위와 같은 혼동은 직업적이라는 말의 뜻이 영어와 대부분의 대륙언어에서 중요한 차이를 나타내는 데에서 부분적으로 기인한다고 나는 믿게 되었다. 프랑스어로 professionnel (독일어 등은 직접적으로 프랑스어에서 파생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단순히 직업을 지시한다. 영어에서는 법률가, 의사 등 인정받는 직업에 종사할 때만 직업적활동을 하는 것으로 여기는 반면에, 프랑스어에서는 어떤 직업에 종사하느냐와 상관이 없는 것이다. 여기서는 그저 직업적 활동이 중요한 것이다. 영어라는 언어적 특성에 따르면 직업적혁명가는 반드시 의사나 변호사처럼 전일제이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비영어권 레닌학자들에게는 이것이 해당되지 않는다. 이것은 혼동을 일으키는 이유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레닌의 견해에 따르면, 심지어 직업적 혁명가의 핵심조차도 반드시 전일제 당 활동가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전일제 당 활동가는 일반적으로 당의 관료를 뜻한다.(혁명가 집단 가운데서 당료가 몇 명이었는가의 문제는 그 자체의 역사를 갖는 문제인데, 여기서는 다루지 않는다.) 직업적 혁명가를 전일제 당원, 즉 당료로 정의하는 것은 결론 또는 추론을 감추고 있다. 즉 노동자가 아닌 사람만이 당의 엘리트가 될 수 있으며, 따라서 지식인만이 가능하다. 이러한 결론은 레닌과 전혀 상관없이 레닌학 학자들이 만들어 낸 발명품일 뿐이다.

레닌의 처지에서 보면, 직업-혁명가적 노동자는 두 가지 이유에서 운동에 매우 중요하다. 한 가지는 명백하다. 즉 그들이 운동이라는 작업에 헌신할 수 있는 시간과 활동의 양이 엄청나다는 점이다. 직업적 혁명가는 심지어 일자리에서 쓰는 시간까지도 사회주의와 노동조합의 선전과 조직을 위한 기회로 활용한다. 레닌이 무척 강조했던 두 번째 까닭은 그러한 노동자가 혁명 작업에서 좀 더 의미 있는 방법으로 훈련될 수 있다는 점이다. , 혁명가는 어떻게 활동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자기개발을 위해서 의식화 교육과 프로그램이 주어질 수 있는 것이다. 직업적 혁명가인 노동자는 훈련된 혁명적 노동자이거나 그렇게 될 수 있는 노동자였다.

레닌은 당의 핵심만이 이러한 요소들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이를 인정했다. 그가 주장한 것은 당이 그러한 사람을 많이 가질수록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것뿐이었다. 이것은 레닌학이 만들어낸 신화와 전혀 다른 것이다.

이른바 자연발생성 이론의식적 조직화를 견주고 있는 신화에 대해서: 이것의 많은 부분은 그저 문제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한 데서 나온 것이다. 운동가 가운데 어느 누구도 자연발생성, 즉 자연발생적인 반란, 투쟁 등의 중요하고도 긍정적인 역할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다. 확실히 레닌도 그러했다. (우리가 어떤 반란을 자연발생적이라고 말할 때 우리가 뜻하는 것은 대체로 어떻게 또는 누구에 의해서 그것이 조직되었는지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레닌이 ?무엇을 할 것인가?와 그 밖의 곳에서 문제 삼았던 것은 자연발생성 그 자체에 대한 찬양이었다. 왜냐하면 이러한 찬양은 사실상 의식적 조직 활동에 대한 비방 또는 당의 작업이나 리더십에 대한 비방을 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견해는 무정부주의자에게만 의미 있는 것이었지만, 극단적인 수정주의자들도 이를 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독립적인 노동자계급 조직에 반대하기 위한 구실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러시아 경제주의자들”(이들은 경제적활동만을 옹호하였다)의 방침은 어떠한 혁명정당도 필요하지 않으므로 러시아당은 청산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연발생성에 대한 찬양은 노동자계급이 조직화한 정치활동을 배격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었다. 레닌이 자연발생적인 투쟁에 대해 적대적이었다는 주장은 거의 터무니없는 것이다. 레닌학 학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레닌을 인용했다고 주장할 때마다 그들이 실제로 인용하고 있는 것은 천년 뒤에나 사회주의로 이끌게 될 자연발생성에만 의존하는 것에 반대하는 레닌의 논증들뿐이다. 레닌은 대중의 자연발생적인 행위가 훈련받은 사회주의 노동자가 이끄는 정치적 지도력에 의해서 통합되어야 하며, 그러한 훈련의 중요 요소는 대중봉기가 일어났을 때 자연발생적인 투쟁의 장점들을 활용할 수 있는 바로 그 능력이라고 주장하였다. 국제운동의 압도적 다수가 진심으로 동의하는 주장이었다. 수정주의자들이 이따금 모호하게 생각하는 것과 달리, 레닌은 이 문제에 대해 보통 때와 마찬가지로 분명하게 쓰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에 대한 특별히 레닌주의적인 해석은 없다.

 

 

레닌의 당 개념

우리는 레닌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어떻게 평가했는지를 좀 더 다뤄야 한다. 그러나 먼저 여기서 역사적인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의 독자들은 이 책이 설사 특별히 레닌주의적인 당 개념을 서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때에 레닌은 그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는 당과 운동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국제적으로 가장 좋은 당들, 특히 아우구스트 베벨이 이끌던 독일의 당의 견해와 똑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저 러시아 운동이 전제주의 때문에 비합법성이라는 특별한 문제에 맞닥뜨리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리석은 레닌학 학자들은 중앙집권화중앙집권주의에 대한 레닌의 언급이 두말할 것도 없이 중앙집권적 조직형태에 대한 이야기라고 추정한다. 그러나 실제로 러시아인들은 그리고 다른 나라 사람들도 독일인들이 “Germany”를 서로 흩어져 있는 30여개의 군소 국가들이 위치해 있던 지역을 뜻하는 말로 사용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이 단어를 썼다. 중앙이 아예 없는 곳에서 중앙집권화에 대한 요구는 중앙을 세워야 한다는 요청이었다. 1902년에 러시아 전체를 포괄하는 러시아당은 없었다.

1898년에 첫 전당대회가 열렸지만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러시아운동은 고립된 집단, 별개의 지역적 연대, 연계되지 않은 공장 안의 집단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중앙은 없었다. 미래의 구상을 제외한다면 실제로는 이 없었다. 1903년으로 예정된 제2차 전당대회에서나 처음으로 러시아 전체를 포괄하는 러시아 당의 건설이 기대되고 있었다. 이것이 1902년에 레닌이 그의 작은 책에서 부닥쳤던 상황이었다.

전당대회의 의제는 결국 하나의 중앙을 건설하는 일이었다. 어떤 중앙조직도 아직 없었던 것이다. 전당대회를 기대하는 모든 사람들이 러시아 안에서 활동하고 있으면서 지금 흩어져 있는 집단들의 중앙집권화를 지지했다. 이것이 바로 그때 상황에서 중앙집권화가 뜻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때에도 모호했다.

독일의 당도 1878년에서 1890년까지 비합법 기간을 지나왔다. 이 기간 동안 당은 결코 이상에 맞을 만큼 민주적으로 운영되지 않았다. 주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당이 실질적으로 활동할 수 있을 때에도, 당이 선출되었지만 망명 중이었던 전국 집행위원회가 아니라, 합법적으로 남아 있던 제국의회의 당 소속 의원들에 의해 지배되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 의원들은 결코 당에서 선출된 적이 없었다. 의원들은 지역 유권자들에 의해 선출되었던 것이다. 맑스와 엥겔스는 제국의회의 당 소속 의원들이 당을 독재적으로 운영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러한 운영관행은 현실적인 유용성 때문에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1902년에서 1914년까지 러시아의 상황이 전개됨에 따라 레닌의 당 개념이 무엇인가 다르다는 점이 뒤늦게 판명되었다. 그렇지만 레닌이 이를 특별히 잘 인식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 주제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문제가 나와야 하는데 이 가운데 두 번째 것이 더 중요하다.

 

(1) 종파주의 또는 대중정당

 

사회주의 운동사를 통해서 볼 때 사회주의의 흐름에는 자신들을 종파로 조직하려는 특별한 생각을 가진 흐름도 있었고, 이와 달리 계급운동 안에서 활동하려는 흐름도 있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조직형태를 또렷이 구분해야 한다. 계급운동은 계급투쟁에서 자신들이 맡고 있는 역할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 역할에 의해서 결합된다. 종파는 그것이 갖고 있는 특별한 이념이나 프로그램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것에 의해서 결합된다. 사회주의 운동사는 대체로 종파들에서부터 시작되었다(종교운동의 전통에 이어서). 대중정당이 세워져 운동 속에 있는 전체 계급이 대표되고 반영될 수 있게 된 것은 오로지 노동계급의 지속적인 발전에 힘입은 것이었다.

종파와 대비되는 계급운동의 뚜렷한 사례는 종파들을 해체해버린 제1인터내셔널이었다.(1인터내셔널은 심지어 사회주의를 시작할 계획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 맑스의 지도에 따라 그것은 모든 형태의 전체 노동계급운동을 조직하려고 했다. 노동조합을 배제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이러한 특징만큼은 제2인터내셔널에서도 지속되었다. 프랑스에서는 통일 사회주의당이 만들어진 1905년에서야 비로소 사회주의 운동이 종파들로 분열되는 일을 막을 수 있었다. 독일에서는 라살레주의 종파들이 1875년에 이미 벌써 흡수되었다. 종파들은 많은 나라에서 계속 활동했는데, 예컨대 영국의 사회 민주 연방은 혁명적사회주의의 대표를 자임하였다.

1902년 레닌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썼을 당시에,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이 차이는 물론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논의되었다) 독일에서는 혁명적 분파 또는 레닌 등이 그렇게 여긴 분파가 당을 장악했던 반면에, 러시아에서는 우파가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여 레닌은 일반운동 외부에서 좌익종파를 맡게 될 혁명적 분파를 조직하지 않았다. 1914년 이전의 전체 기간을 살펴볼 때, 실제로 레닌은 레닌주의종파를 조직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조직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혁명적종파화 이론은 코민테른이 쇠퇴함에 따라 나타나게 된 것으로서 레닌주의의 원리가 되었다. 1917년 이전까지 종파 이론은 제2인터내셔널의 급진 분파들과 무정부주의운동에서 활성화되어 있었다.)

그때 젊은 레닌이 선택한 것은 인터내셔널의 일반적인 진로였다. 그는 혁명적인 흐름을 대중정당 안에 있는 일종의 정치적 중심으로 조직하려고 했다. (또는 제2차 전당대회가 성공할 경우 만들어지게 될 대중정당). 종파를 제외한다면, 사회주의 운동에서 대부분의 정치적 중심은 정기적으로 발행되는 기관지 주변에서 만들어졌다. 예컨대 독일의 당에서도 그러했다. 러시아를 떠나 망명했을 때, 레닌은 레닌주의종파를 만들지 않았다. 그는 아무나 들어갈 수 있었던 이스크라의 편집위원이 되었다. 볼셰비키와 멘셰비키가 분열되고 난 몇 년 뒤까지도(적어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까지), “볼셰비키멘셰비키라는 용어는 대중정당인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내부에 있는 정치적 중심을 뜻했을 뿐이며, 배타적인 종파를 뜻하지 않았다.

 

 

(2) 분열과 통합

 

이것은 레닌의 당 개념의 두 번째 특징과 관련되어 있다. 이 문제에는 아래와 같은 세 가지 접근방법이 있다.

 

a. 어떤 사람들은 무슨 비용을 치루더라도 분열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예컨대 수정주의 당에서 혁명적 분파는 가장 적절한 순간에 분열되어 독자적인 종파를 조직해야 한다. 이것이 종파주의의 전형적인 이론이다.

 

b. 다수를 차지하는 어떤 사람들은 무슨 비용을 치루더라도 통합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사회민주주의적 대중정당의 통합이 결코 와해되어서는 안 된다. 와해는 궁극적인 재앙이다. 이것은 첫 번째 접근방법의 정반대 이미지, 즉 통합물신주의이다.

이것은 독일 당을 포함한 인터내셔널의 지배적인 접근방법이었다. 이것이 실제에서 뜻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좌파가 다수를 이루고 있을 때에도 우파를 허용하는 것. 무슨 비용을 치루더라도 분열되지 않도록 우파를 설득해야 한다면, 다수 좌파는 우파가 당에 남아 있을 수 있도록 충분히 양보해야 한다.

이러한 유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 가운데 하나가 1903년 전당대회가 끝난 뒤 러시아 당에서 나타났다. 전당대회에서 레닌파는 플레하노프의 지원을 받아 과반수의 지배력을 획득했다. 소수파인 멘셰비키는 깨고 나갔다. 압력을 느낀 플레하노프는 그 즉시 의견을 바꿨고, “통합을 위해서 이스크라편집위원자리의 대다수를 멘셰비키에게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멘셰비키가 다수파의 지위를 획득했다고 하더라도 레닌은 틀림없이 소수파로서 통합을 유지하며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좌파가 승리하면 우파는 포기하고 그만둬버린다. 그렇게 되면 좌파는 통합을 위해서 우파에게 지배력을 돌려주지 않을 수 없다.……

 

c. 레닌의 독특한 접근방법은 다음과 같다. 그는 좌파가 다수파가 되어 당의 지배력을 갖게 되면 좌파 고유의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권리이자 의무라고 주장했고, 이것은 우파들이 언제나 해왔던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전당대회 결과에 역행하는 플레하노프의 요구를 레닌이 거부하자 볼셰비키와 멘셰비키의 적대감이 심화되었다. 이 독특한 접근방법은 이와 같다. 통합은 좋지만, 다수의 승리를 좌절시키면서까지 통합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통합은 좋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민주적인 토대에서 유지되어야 한다. 우파는 다음 전당대회에서 승리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지만 분열되지 않는 것을 대가로 정치적 양보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레닌의 일생 가운데 레닌학 학자들이 가장 열심히 해설을 한 기간 가운데 하나는 제2차 전당대회와 플레하노프의 방향전환 바로 뒤에 이어진 기간이었다. 우리는 레닌선집6권과 7권에서 레닌이 분열로부터 얼마나 큰 정신적 고통을 받았는지, 그리고 완전히 민주적인 원칙의 토대 위에서 멘셰비키와 분열을 극복하려고 얼마나 끊임없이 노력했는지를 읽어내야 한다. 수차례의 검증에서 드러난 것은 이러한 민주적 토대 위에서 통합, 또는 제2차 전당대회의 결과와 상관없이 그들에게 당에 대한 지배력을 부여하지 못하는 모든 토대 위에서 통합을 거부한 것은 바로 멘셰비키였다는 사실이었다. 사실상 첫 번째 검증은 두말할 것도 없이 전당대회 자체에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극우파들이 자신들 고유의 우파 정치를 핑계로 퇴장하고 나서 레닌이 투표에서 다수를 얻자 통합을 깨트리고 나간 것은 바로 멘셰비키였기 때문이다. 분열을 책동한 것이 볼셰비키라는 상식은 레닌학이 만들어낸 신화 가운데 하나이다.

이 모든 것은 1905년 혁명이 일어난 뒤에 러시아의 정치가 잠시 활기를 띠었던 시기에 또다시 검증되었다. 이 시기에 합법 조직이 일시적으로 가능해졌고, 공개적인 선거 등이 가능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볼셰비키와 멘셰비키의 통합문제가 다시 거론되었다. 그렇지만 이 문제는 5장에서 다시 다루기로 하자.

 

 

?무엇을 할 것인가? 를 쓰고 난 뒤 레닌

 

1장과 2장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쓰여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논의했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이것만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레닌의 태도를 해석하는 문제가 모두 풀린 것은 결코 아니다. 몇몇 레닌학 신화에 따르면, ?무엇을 할 것인가?(이것이 실제로 무엇이든지간에)에서 발견되는 당 개념은 레닌이 그 때부터 일관되게 적용했던영구적이고 지속적인 레닌의 견해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가 나온 뒤 몇 년 동안 레닌이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먼저 우리는 다음을 알아낼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가 나온 뒤부터 적어도 1917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레닌은 1902년에 나온 이 책이 당 조직형태에 대한 표준적인 설명이 아니라, 그때의 시공간적 상황에 맞춘 조직 계획일 뿐이라고 역설했다. 그것은 (a) 전제주의의 조건아래 비밀리에 작동하는 지하운동을 위해서, 그리고 (b) 유럽 대부분의 다른 사회민주주의 정당들과 달리 자기 나라의 전국적인 중앙조직을 아직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운동을 위해서 고안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1902년의 이 계획은 다른 상황들에, 즉 유럽의 다른 나라들, 또는 정치적 자유의 여지가 더 많았던 러시아의 다른 시기에, 곧바로 적용될 수 없었다. 이 계획은 시간에 묶여 있었고 공간에 종속되어 있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가 출판된 뒤 몇 달이 지난 19029, 우리의 조직적 과제에 대해 동지에게 쓰는편지에서 레닌은 필요한 조직형태는 보안 요구에 따라 결정되고 전제주의 때문에 제한된다고 거듭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때에는 마르토프와 플레하노프와 같은 그의 미래의 적대자들도 레닌에 동의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에 제출된 의견을 진지한 혁명적 지하운동의 투쟁에서 이끌어낸 어쩔 수 없는 결론으로 여기고 있었다. 이들 적대자들과 그들의 후계자들이 레닌의 노선에서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되는 모든 것 - 여기에는 전당대회의 지배적인 권력을 전당대회에서 소수파가 된 사람들에게 양보하는 것을 거부했던 레닌의 이해할 수 없는 행위도 포함된다 -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읽어내기 시작한 것은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레닌과 다투게 된 뒤의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분열되기 전인 제2차 전당대회에서 이미 레닌은 비판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무엇을 할 것인가?의 문장들을 읽지 말라고 논박한다. 이 과정에서 레닌이 제기한 첫 번째 요점은 앞에서 논의되었던 것, ?무엇을 할 것인가?는 처음부터 당 조직의 원리를 겨냥해 쓰려고 한 게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이 모든 문제들을 풀어버렸다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낙관적으로 말하고 있다. “‘경제주의에 반대하는 투쟁과정에서 일화로 논의한 것이 중요한 이론적 문제(이념의 정립)의 원리들에 대한 토론과 혼동되었다는 것은 틀림없다. 게다가 이 일화를 완전히 잘못된 맥락에서 왜곡하고 있다.”

레닌은 노동계급운동이 부르주아 지식인에게 종속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직접 맞서고 있다.

 

 

레닌은 어떤 서로 다투는 경향에 대해 직접 말하지 않고 그저 노동계급운동이 언제나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굴복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원칙적으로 확인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되어 왔다. 정말 그런가? 내가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았던가? 노동계급운동이 슐째와 델리쯔쉐스와 그들과 비슷한 다른 사람들의 친절한 도움 덕분에 부르주아의 사고방식으로 빠져버리고 있다고? 여기서 그들과 비슷한 다른 사람들이 누구이겠는가? “경제주의자들이 아니면 도대체 누구인가? ……

 

 

이것이 바로 카우츠키와 관계를 끊지 않으면서 카우츠키 이론이 지닌 문제점을 고치는 과정에서 레닌이 내딛은 또 하나의 단계였다. 이에 덧붙여 레닌은 다음과 같은 더욱 중요한 수정을 하고 있다.

 

 

[이런 주장이 퍼져 있다고 레닌은 말하고 있다.] 레닌은 이념의 정립과정에 노동자도 참여한다는 사실에 아무런 관심조차 갖지 않는다고들 한다. 정말 그런가? 계급의식이 충만한, 노동자, 노동자-지도자, 노동자-혁명가가 부족한 것이야말로 우리 운동의 가장 중대한 약점이라고 내가 거듭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면서 그러한 노동자-혁명가를 훈련시키는 것이 우리의 당장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면서 노동조합운동을 발전시키는 일과 특별한 노동조합 안내책자를 만들어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 말하지 않았던가? ……

 

 

위의 글의 맨 뒤에 레닌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해야 할 요점을 지적하고 있다. 결론을 맺기로 하자. 우리 모두는 경제주의자들이 한쪽의 극단에 치우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균형을 잡으려면 누군가가 그 반대쪽으로 당겨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내가 한 일이다.

이것은 바로 레닌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 쓴 것을 아는 데 필요한 핵심 열쇠이다. 레닌은 직접적으로 위험한 압력에 대항하려고 그 반대방향으로 활을 당기는방식을 평생 동안 성실하게 유지했다. 이러한 경우를 레닌은 이따금 위험한 압력을 상쇄하려고 키를 반대방향으로 돌리는 것에 비유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내 처지에서 말하면 나는 이러한 성향에 개인적으로 동감하지 않는다. 나는 이리저리 뒤틀린 활이 찌그러진 모양이 되기 쉽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정치적 색깔과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아주 공통적인 것이며, 따라서 이해되어야 할 뿐이다. 레닌의 경우에도 그것은 이해가 요구되는 사실이다. 그가 아주 자주 많은 말을 동원하여 명확하게 그 방식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특히 그렇다. 당연한 얘기지만 레닌학 학자들이 이것을 이해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엄청난 헛소리를 써댈 수밖에 없는 것이다.

2차 전당대회에 대해서 좀 더 얘기해보자. 815일에 열린 당규에 대한 토론에서 레닌이 첫 연설을 했는데 이것은 의사록에 9줄로 요약되어 있다. 연설의 대부분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당 조직을 직업적 혁명가들로만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는, 아주 특별한 비밀 조직에서부터 매우 포괄적이고 개방적이며 느슨한 조직까지 아우르는, 모든 유형, 모든 등급, 모든 색깔을 포함하는 아주 다양한 조직들이 필요하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 나온 -당기기가 자칫 불러올 수 있는 잘못된 인상은 레닌의 이 글을 통해서 더할 나위 없을 만큼 명확하게 교정되고 있다. 그 날 두 번째 연설에서도 레닌은 거듭 밝히고 있다.

 

 

트로츠키 동지는 나의 책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비밀조직이 아닌 당 조직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를 제기했다.) 내가 나의 책에서 아주 은밀하고 폐쇄적인 조직에서부터 상대적으로 포괄적이고 느슨한조직에 이르기까지, 많은 조직유형을 제안하고 있다는 것을 트로츠키는 잊어 버렸다.

 

 

이 문제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또렷하게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면, 그렇다면 토론의 기능은 해명하고 명확하게 만드는 것이다. 레닌은 나중이 아니라 즉각적으로 전당대회의 토론장에서 해명하고 분명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오해했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확실히 그렇다. 하나 이상의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 이유에 대해서는 언급되었다. 레닌의 활-당기기. 또 다른 이유는 오해하려는의지가 있었다는 것인데, 그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그렇지만 오늘날 더 넓은 전망과 더 완전한 자료라는 유리한 조건을 갖고 서술하고 있는 객관적인 학자들에게 레닌이 몇 차례에 걸쳐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명확하게 만들려고 시도했다는 사실을 고찰하여 밝혀줄 것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현재의 레닌학에서 전형적인 것은 순전히 악마론적인 해석을 위해서 레닌의 해명을 무시하는 일이다.

레닌이 일반적인 당 조직 개념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우리는 말했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새로운 시대? 에 쓴 1904년의 글에서 제2차 전당대회를 다루고 있는 레닌의 소책자 ?한 걸음 앞으로 두 걸음 뒤로?에서 드러난 레닌의 생각을 공격했을 때, 레닌은 꽤 부드럽게 항의하는 답변을 내놓았다. 그것은 바로 그가 옳다는 게 아니라 룩셈부르크가 레닌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말한 그 주장을 레닌은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레닌이 쓴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예컨대 룩셈부르크 동지는 내 책이 비타협적 중앙집권주의에 대한 분명하고도 구체적인 표현이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룩셈부르크 동지는 내가 어떤 조직체계에는 반대하고 다른 어떤 조직체계는 지지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당 조직의 기초 원리를 옹호하고 있다.

 

 

말하자면 레닌은 자기 자신이 한 일이 러시아의 주어진 조건에서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 모든 당 조직 형태를 찾아낸 것일 뿐이라고 믿었다.

또한 로자 룩셈부르크는 레닌의 개념에 따르면 중앙위원회는 당의 모든 지역위원회를 조직할 권한을 갖는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 룩셈부르크 동지는 중앙위원회가 당에서 오직 하나의 실질적 핵심이라는 것이 나의 견해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나는 그러한 견해를 결코 옹호한 적이 없다. …… 로자 룩셈부르크 동지는 모든 논쟁이 어느 정도까지 중앙집권화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 원칙적으로 우리의 논쟁은 중앙위원회와 중앙조직이 전당대회 다수파의 노선을 따라야 하느냐, 또는 따르지 말아야 하느냐에 대한 것이다. 존경하는 동지는 이러한 -중앙집권주의자순수 블랑키주의자의 요구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 그녀는 부분이 전체에 기계적으로 종속되는 것을 비난하거나, 노예와 같은 굴종, 맹목적인 복종, 기타 여러 가지 그러한 악령들을 비난하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 …… 룩셈부르크 동지는 대규모의 극도로 중앙집권화된 노동자 당을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조건들이 러시아에 이미 있다는 생각이 나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것도 사실이 아니다. ……

기타 등등. 어쨌든, 당에서 내부 논란이 벌어졌을 때 로자 룩셈부르크가 성스러운 천사처럼 행동했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너무 순진한 것이다. 위의 사례에서 그녀는 폴란드운동에서 매우 익숙해진 방식대로 악의적인 비방을 퍼뜨렸다. 만약 그녀가 아니었다면 다른 누군가가 나서서 그녀가 레닌의 책임이라고 비난했던 그 견해를 레닌이 옹호했다고 선전했을 텐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당의 민주화를 향하여

 

유령에 대한 연구는 치워버리기로 하자. 1905년 봉기로 시작한 기간 동안에 러시아의 상황은 달라졌고 전제주의의 압제는 줄어들었다. 이때 레닌의 당 개념이 새로운 상황에 걸맞게 급변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레닌의 해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면 누구나 기대할 수 있었던 바와 똑같이.

19052월에 벌써 레닌은 제3차 전당대회를 위한 결의안 초고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정치적 자유가 주어질 경우에는 완전히 선출원리에 의해서 당이 만들어질 수 있고 또한 그렇게 될 것이다. 당을 이루는 수 천 명의 집단을 그런 방식으로 만드는 것은 전제주의 아래에서는 실행할 수 없는 일이다.” 19059월에 쓴 글에서 레닌은 독일의 당을 조직, 통합, 응집 등의 측면에서 최고라고 찬양하면서, 그들의 조직적 의사결정이 우리들 러시아인들에게 대단히 교훈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겨우 얼마 전까지도 조직문제는 당의 일상적인 현안 가운데서 비교적 큰 몫을 차지했고, 이것은 오늘날에도 어느 정도까지 사실이다. 3차 전당대회가 끝나고 나서 당내에서 조직에 대한 두 가지 목표가 완전하게 규정되었다. 하나는 안정적인 중앙집권주의를 지향하고 당 조직에 민주적 원리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선전용으로 또는 그저 듣기 좋은 말로서가 아니라 실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러시아에서 사회-민주주의의 자유로운 활동공간이 넓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하나의 목표는 조직의 확산, “조직의 모호성을 지향하는 것 ……

 

 

190511월에 쓴 논설에서 레닌은 사회주의 노동자가 민주주의와 정치적 자유를 통하는 길을 빼고는 사회주의로 가는 길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궁극적 목표, 즉 사회주의를 이룩하려고 민주주의를 완전하고 견실하게 이루는데 애쓰는 것이다.” 같은 달에 그는 당의 재조직이라는 제목의 중요한 논문을 출판했다. 이 글에서 그는 전체 조직을 새로운 토대 위에놓기 위한 새로운 전당대회를 요청했다.

이 논문은 곧바로 논점을 다루고 있다. 우리 당의 활동을 둘러싼 조건들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집회, 결사, 언론의 자유가 획득되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나? 레닌은 이렇게 대답한다. “새로운 방식으로 조직……새로운 방법……새로운 노선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의 대표인 우리는 다수파”[볼셰비키]의 지지자로서 당의 완전한 민주화가 비밀리에 활동해야하는 조건에서는 불가능하며 그러한 조건에서는 선출원칙도 말뿐이라고 거듭 말해왔다. 그리고 경험은 우리의 주장을 확인해주었다. …… 그러나 새로운 상황, 즉 정치적 자유가 획득될 경우에는 선출원칙이 반드시 채택되어야 할 것이라는 것을 우리 볼셰비키는 언제나 인식하고 있었다.

 

 

비밀을 지켜야 하는 조건에서 지역의 선도적인 위원회를 공개적으로 뽑을 수 없다는 것은 볼셰비키만의 특수한 주장이 아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비밀경찰 때문에 멘셰비키 또는 사회주의-혁명당에게도 똑같이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 당은 [레닌은 쓰고 있다] 지하에서 일하는 동안에 정체되었다.…… 지하시대는 해체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전위들이 …… 우리의 토대를 확대하고, 여러분을 둘러싼 모든 노동자 사회-민주주의자들을 불러 모을 것이며, 수백 수천을 단위로 그들을 당 조직의 구성원으로 만들게 될 것이다.

 

 

이것들은 말할 것도 없이 러시아에서만 새로운 방법이었다. 이 방법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권이 서유럽에서 러시아보다 먼저 실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레닌은 언제나 독일의 사회-민주주의를 조직의 본보기로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그것을 따라할 수 있게 되었다. 중앙위원회의 결정은 …… 당 조직에 민주적 원칙을 완전하게 적용하기 위한 결정적 단계다.

레닌은 모여드는 많은 노동자를 받아들이려는 모든 동지들이 예전보다 훨씬 더 포괄적이고, “덜 엄격하고, 자유롭고, 느슨”, “새로운 조직형태를 고안해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물론 우리는 완전한 결사의 자유와 시민적 자유를 토대로 사회-민주주의적인 노동조합을 세워야 한다.……각각의 노동조합, 조직, 단체들은 사무국, 평의회, 감독위원회 등을 직접 뽑게 될 것이다. …… 이제 새로운 조건에서 민주적 투표가 조직될 수 있기 때문에, 일반 당원의 폭넓은 민주적 투표를 바탕으로 삼아 이제 당의 통합, 즉 볼셰비키와 멘셰비키의 통합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레닌은 제시했다.

우리는 모든 이러한 현저한 변화를 이전에 그러한 조건을 전혀 겪어보지 못한 러시아 노동자에게 낱낱이 설명해야 한다. 레닌은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는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당에 갑자기 몰려드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내친 김에 덧붙여졌다고 할 수 있는 다음의 설명에 주목하자. 본능적으로 그리고 자연발생적으로 노동계급은 사회-민주적이다. 이러한 자연발생성을 의식성으로 변환하려고 사회-민주주의는 10년 넘게 꽤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레닌은 여기서 자신이 1902년에 통째로 베껴 인용했던 카우츠키이론의 존재 자체를 아예 잊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이제 오늘날의 노동자는 어제의 비합법적 소집단노동자인 우리들로서는 꿈조차 꿀 수 없는 규모로 자신들의 진취성을 드러낼 것이다.

노동자를 대대적으로 동원함으로써(처음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당의 활동에서 지식인들의 영향력을 줄여야 한다는 것을 특별히 더 두둔하려고 레닌은 아래와 같이 새로운 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3차 전당대회에서 나는 당의 각종 위원회에 지식인 2명에 노동자 약 8명을 배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제안이 얼마나 진부한가? 이제 우리는 새로운 당 조직을 위해서 사회-민주적 지식인 1명에 수 백 명의 사회-민주적 노동자가 배치되기를 희망해야 한다.

논문은 전형적인 레닌방식으로 대응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고 있다. “우리는 매우 오랫동안 (때때로 왜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가? 아무 소용없이) 정치적 망명이라는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다음과 같이 이론화했다.’ 즉 이제부터 우리가 가볍게, 약간만, 그저 조금 활 당기기를 해서 반대 방향을 제시하고, 최전선에서 조금만 더 실행에 옮긴다면, 그것이 정말로 잘못되지 않을 것이라고.”

그렇게 해서 이제 활은 반대 방향으로 당겨졌다. “가볍게

?무엇을 할 것인가?가 또다시 언급되지 않더라도 이제 상황은 아주 또렷해졌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정말로 레닌이 주목했던 부분으로 되돌아가도 좋을 것이다. 여기에서 레닌은 새로운 조건과 당 조직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바탕으로(러시아로서는 새로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다시 생각하고 있다.

190711, 레닌은 예전에 썼던 논문들을 묶어서 ?12?이라는 제목으로 펴냈다. 그 논문집은 지난 12년에 걸쳐 운동을 이끌어 온 사상과 활동을 되돌아보려는 역사적 목적을 지닌 것이다. 이 논문집의 서문은 명백히 1905년 이래 계속되고 있는 혁명적 봉기를 통해 태어난 새로운 독자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들에게 옛 논쟁은 이제 지나간 역사로 되었다. 여기서 레닌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이 책에 포함시킨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먼저 이처럼 설명이 필요했다는 점에 주목하라.

레닌은 이 논문집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포함시킨 까닭을 부르주아-자유주의 학자들과 멘셰비키가 언급되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레닌은 무엇을 할 것인가본질적인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 새로운 독자가 관심을 갖길바랐다. 그의 설명은 오늘날의 레닌학 학자들을 함께 청중으로 삼고 있는 듯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오늘날 ?무엇을 할 것인가?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저지르고 있는 근본적인 실수는 그 책과 연계되어 있는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 즉 지금은 오랜 과거가 되어버린 당 발전과정의 특정기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 책을 다룬다는 점이다.” “그 책이 나온 뒤 수년 동안, 직업적 혁명가의 조직이라는 과제는 틀렸거나 또는 과장된 생각이라고 썼던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레닌은 말한다. 그와 같은 비판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오래 전에 획득되어 그 목적을 실현하고 있는 성과물이지만, 그것이 그때에는 싸워서 쟁취해야만 하는 대상이었다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자백에는 잘못을 용서 받을 수 있다는 뜻이 함께 담겨 있는 법이지만, 레닌이 과장된 생각을 언급하는 것을 보면 자신에게도 틀린 부분이 없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활 당기기주석에 이미 포함되어 있던 판단이다. 그것은 사실상 새로울 것도 없다.

?무엇을 할 것인가?1902년의 시대적 임무를 다했기 때문에 더는 그것을 마치 오늘날을 염두에 둔 제안인 것처럼 다루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지나갔다. 레닌은 그것을 두둔하지도 거부하지도 않았다. 이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레닌은 오직 역사적 필요에 따라 그것을 다루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제1 인터내셔널을 거부하지 않은 사회주의자들이라고 하더라도 제1 인터내셔널이 부활되길 꿈꾸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영구불변의 당 개념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결론

 

?무엇을 할 것인가?과장, 비록 그 과장 자체가 올바른 주장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때로서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고 레닌은 줄곧 주장했다.

 

 

오늘날에 와서 이스크라(1901년과 1902년에!) 직업적 혁명가조직이라는 개념을 과장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러일전쟁이 끝난 뒤에, 러시아의 군사력을 과장했다는 이유로, 전쟁 전에 러시아에 대비할 군사력의 필요성을 과장했다는 이유로, 일본을 비판하는 것과 같다. 승리를 쟁취하려고 일본은 할 수 있는 한 러시아 군사력을 최강으로 부풀려 대비하여 자신들의 군사력을 동원해야 했다. …… 오늘날 직업적 혁명가조직의 개념은 이미 완전한 승리를 획득했다. 만일 그때에 이 개념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았더라면, 만일 우리가 이 개념의 실현을 방해하려는 사람들을 납득시키려고 과장하지않았더라면, 그 승리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직업적 혁명가의 개념이 이미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다는 여기서의 주장은 이 개념에 대한 레닌의 해석과 일반적인 레닌학 학자들의 해석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승리는 당의 개방을 포함하는 것이었는데, 이를 통해 순수한노동자가 유입되면 당의 지식인들뿐만 아니라 경험 많은 당료, 즉 훈련된 활동가(직업적 혁명가)까지도 이들에게 압도될 것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 능력이 입증된 (“완전한 승리를 거둔”) 생각은 훈련된 활동가라는 핵심이 조직에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이것은 주로 또는 완전히 전일제 당료로만 이루어지는 괴물 같은 당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이 괴물은 특히 레닌의 주장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레닌은 당에 대중을 충원하자고 호소했기 때문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1901년부터 1902년까지 이스크라 그룹이 추구했던 조직정책을 있는 그대로단순하게 요약해 놓은 것이라고 레닌은 덧붙이고 있다. 말하자면 그것은 나중에 여러 가지 다른 이유로 멘셰비키와 볼셰비키로 갈라서게 되는 사람들(이스크라 그룹)이 함께 추구했던 정책이었다. 다시 말해서 레닌은 그때에 자기 자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담겨있는 생각들을 자신의 고유한 생각 또는 성향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또 다시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합법성이라는 새로운 조건에서 이제 레닌은 다음과 같이 자랑스럽게 말한다:

 

 

분열되기는 했지만, 다른 어떤 당보다 먼저 사회민주당은 잠시 동안 찾아왔던 자유의 장점을 활용하여, 이상적으로 민주적인 구조를 갖춘 합법조직과 선거제도, 그리고 정규 당원 규모에 걸맞는 당 대표단 등을 만들 수 있었다. 이런 것들은 심지어 오늘날에도 사회주의-혁명당이나 카데트당들에서는 찾아 볼 수 없으며……

 

 

여기서 레닌은 볼셰비키 분파가 아니라 당(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전체에 대해 말하고 있다. 5월에 통합전당대회가 있었던 것이다. 누구에 의해서 당이 지금과 같은 훌륭한 민주적 구조를 갖게 되었는가? “그것은 직업적 혁명가조직에 의해서 성취되었다.…… 이것을 확인하고 싶다면, 런던에서 열린 전당대회에 참가한 모든 그룹의 대표자명단을 살펴보라.…… 레닌이 대표자명단”, 또는 같은 문장에서 서술되고 있는 당을 건설하고 당을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려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던 중앙의 핵심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자. 레닌의 합리적 설명에 아무리 충실하더라도, 레닌이 당원(이것은 대표자명단이나 핵심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다)을 직업적 혁명가만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한 것으로 믿는 것은 도저히 사리에 맞지 않는다.

이때가 되면 카우츠키의 1902년 이론은 레닌의 시야에서 멀리 사라져버렸다. 레닌이 그 이론의 존재나마 기억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흔적도 없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레닌은 자부심을 가지고 부지런히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즉 당의 조직적 성공은 노동자계급의 타고난 조직적 능력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이 없었다면 직업적 혁명가조직은 그저 하나의 장난감, 모험, 광고간판 등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투쟁하려고 자연발생적으로 떠오르고 있는 진짜 혁명계급과 연계 없이는 ?무엇을 할 것인가?가 두둔하는 조직이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이것을 거듭 강조한다. …… 직업적 혁명가는 러시아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의 역사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이제 세상의 어떤 권력도 이 작업을 되돌릴 수 없다.……

 

이 몇 페이지에서 레닌은 지나치리만큼 자주 ?무엇을 할 것인가?의 시대는 과거가 되었다는 주장을 되풀이한다. “1900년부터 1905년까지 러시아를 휩쓴 역사적 조건에서는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회민주노동당 말고는 다른 어떤 조직을 이스크라가 만들어 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 문장 다음에는 직업적 혁명가가 그의 역할을 다했다. ……는 진술이 뒤따른다. 망명자 그룹 안에서 벌어졌던 치열한 논쟁은 노동자운동의 젊은 미숙성을 보여준다. “프롤레타리아트를 받아들임으로써 당을 확장해야만 패거리의식이 제거될 수 있을 것이다.” 볼셰비키가 …… 190511월에 선언한 민주적으로 조직된 노동자당으로 이행, 다시 말해서 합법적 활동을 위한 조건들이 마련되자마자, 이 이행은 수명을 다한 낡은 패거리 방식들과 관계를 끊는 것이었다.

그렇다. ‘수명을 다한 것이다.’”고 레닌은 되풀이한다. “왜냐하면 낡은 패거리의식을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시기의 특수한 환경에서 그것이 갖는 뜻이 꼭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등등. “그룹들 사이의 차이는 어떤 방향으로 활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 그룹들은 자신들의 역할을 다했고, 이제는 물론 진부한 것이 되었다.”

뒤이어 레닌은 플레하노프의 글을 논평하면서 그는 자연발생성과 정치적 의식성의 문제에서 원칙적으로 나와 다르다고 말한다. 레닌은 그때에는 실질적인 차이가 없었다는 것을 한 번 더 강조한다. 레닌은 플레하노프의 비판꼼꼼하지도 않고, 정확하지도 않으며, 내가 서술한 특정 표현들이나 맥락에서 벗어난 글귀에 기초하고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레닌이 말하고 있는 플레하노프의 비판은 레닌이 쓴 작은 책 ?한 걸음 앞으로 두 걸음 뒤로?를 겨냥한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레닌은 그 비판에 대한 반론을 위해 나의 책 ?무엇을 할 것인가?의 일반적인 내용과 전체를 관통하는 정신에 호소하고 있다. 레닌은 계속해서, 우리 모두는 이스크라 그룹이 만든 당 프로그램 초안에 나오는 자연발생성과 정치적 의식성 사이의 관계형성에 동의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서 레닌은 문제 전체를 매듭짓는 말을 했다.

 

 

2차 전당대회에서도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나와 있는 내 자신의 서술을 특정의 원리를 이루는 프로그램수준으로 발전시킬 의도를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그와 반대로, 나중에 자주 인용되었던 내가 쓴 표현은 경제주의자들이 한쪽의 극단으로 가버렸다는 것이었다.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가 경제주의자들이 왜곡한 것을 바로잡고 있다고 말했다. ……

 

 

이 문단이 나타내고 있는 뜻은 아주 또렷하다. ?무엇을 할 것인가?는 경제주의자들의 왜곡에 대한 논쟁적인 정정이며, 그 밖의 다른 시각에서 이 책을 해석한다면 잘못이라는 것이다.

레닌이 ?무엇을 할 것인가?의 남아 있던 모든 판본을 불에 태워버릴 수 있었다면 혹시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의 전설에 대해서 이보다 더 효과적으로 반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레닌은 ?무엇을 할 것인가?와 관련하여 위에서 인용된 문단을 두 번 다시 언급하지 않는다. 실제로 레닌은 이것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 적도 없는 것이다.

이제 어느 쪽이 레닌주의의 당조직 개념인지 물어보자. 방금 서술한 1905년부터 1907년 사이의 레닌의 주장인가, 아니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나오는 1902년의 서술인가? 레닌이 살아 있다면 그 대답은 명백하게 둘 다 아니다이다. 어떠한 당 개념도 시공간을 초월한 원리로 여길 수 없는 것이다. 당 조직에 관한 레닌의 개념은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조건에 따라 달라지고 있으며, 전제주의 시기의 비합법적 조건과 1905년부터 1907년까지 시기에 러시아에 다소간의 정치적 자유와 개방조직의 기회를 부여했던 조건처럼, 엄청나게 다른 조건에서는 특히 그러했다.

레닌학 학자 가운데서도 이러한 기초적인 문제를 깨달은 사람이 없지 않았다. 그 탓에 그는 레닌학 권위자들의 불같은 분노를 자신의 머리에 뒤집어썼다. 일반적인 정설과 다르게 존 플라메나츠는 이렇게 쓰고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 생생하게 표현된 의견들에는 특별히 반민주적인 것이 없다. …… ?무엇을 할 것인가?를 쓸 때 그는 프롤레타리아의 당이 노동자를 강제하고 위협해야 한다거나, 또는 심지어 프롤레타리아트를 위해서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을 수행하고 나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이름으로,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수고를 아끼면서, 러시아를 통치해야 한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볼셰비키 혁명 뒤에 아무 일도 없었다면, “우리는 그것을 [?무엇을 할 것인가?에 표현된 생각] 감히 반민주적이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며, 오히려 20세기가 시작된 10년 동안 러시아에서 활동했던 혁명적인 당의 요구에 매우 적합했을지도 모를 충고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1902년에 그때 러시아운동을 위해서 레닌이 내놓은 제안은 좋은 또는 나쁜 제안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한 토론은 레닌학이 만든 신화 때문에 일찌감치 제거되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가 반민주적인 어떤 것을 의도하지 않았다는 것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보기를 들어 플라메나츠가 지닌 레닌주의볼셰비키 혁명 뒤에 일어난 일을 통해서 반민주적인 전환에 이바지했다는 믿음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중요한 점은 레닌학이 만든 신화가 이러한 문제를 토론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즉 유령에 대한 연구가 정치적역사적 분석을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특별부록]

 

놀라운 이야기: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우테친의 평가

 

앞의 논문의 일부분은 어떤 책에 관해서 1963년에 쓴 서평을 초고로 삼고 있다. 1963년은 레닌학자들에게 위대한 한 해였는데, 왜냐하면 이 해에 레닌에 대한 세 가지 전기와 중요한 회고록이 안젤리카 발라바노프에 의해 출판되었기 때문이다. 이 해에는 또한 ?무엇을 할 것인가?의 새로운 영역본이 출판되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 Translated by S. V. and P. Utechin. Edited, with an introduction and notes, by S. V. Utechin. Oxford: Clarendon Press. 213p. 이 번역본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 왜냐하면 내 생각에 이것은 주요한 서유럽 출판사로서는 최초로 레닌의 저작이 사회정치사상의 역사에서 락탄티우스, 라이프니츠, 리번 또는 루터 등의 저작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한 사례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학술논문의 체계와 주석 등을 갖추고 학계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중요한 판본이었다.

그것이 출판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획기적인 일이었다. 어떤 성격의 편집인가도 대단히 중요했다. 러시아 정치사상러시아 소백과사전을 쓴 우테친이 그 작업을 담당했다. 지금 여기에서는 우테친의 소개글에 표현되고 있는 태도들에 대해서 토론하지 않을 것이다. 이 태도들은 그저 모든 볼셰비키 악령의 원천인 ?무엇을 할 것인가?의 원죄에 대한 레닌학적 정설의 표준적인 사례일 뿐이다. 우리는 편집자인 우테친이 레닌의 원문에 무슨 짓을 했는지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다.

첫째로, 우테친의 편집은 원문 전체를 싣지 않았다. 이것은 이중으로 어리둥절한 일인데, 왜냐하면 (1) 레닌의 책은 우선 분량이 매우 작은 책이기 때문이고, (2) 우테친이 생략해버린 내용이 전체로 보면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옥스퍼드 클라렌던 출판사가 경제성 때문에 요구한 결과라고 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출판사로서는 차르 시대의 조건이 레닌이 이해했던 것보다는 더 좋았다고 주장하는 우테친의 주석을 빼버리는 것이 지면을 더 아끼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중요한 책들을 축약본으로 만드는 데에는 물론 이유가 있는데, 대개는 두툼하더라도 한 권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더 작게 만들어진 작은 책이다.

이처럼 불완전한 판본의 출판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우테친은 레닌 자신이 1907년에 ?12?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한 논문집에 포함되어 있는 약간 축약된판본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1902년 원본에 비교하면 여기서 레닌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약 12줄을 삭제하고 있으며, 5장의 A절을 뺀 것이 제일 큰 삭제이다.(1907년에 이 판본이 나왔을 때, 레닌은 이 판본의 독자들에게 ?무엇을 할 것인가?가 이제는 주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우테친은 그의 서문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1907년 판본[다시 말해서 축약본]은 지금까지 오직 영어번역본에만 사용되었는데, 그것은 J. 파인버그가 번역한 것으로서, 모스크바와 소련 외부의 공산당 출판사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여러 가지의 레닌선집에 포함되어 출판되기도 했고, 또는 별도의 소책자로 출판되기도 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파인버그의 번역은 1902년의 원문을 대본으로 삼고 있다. 그것은 예전에 나온 (미완성의) 선집의 42호에 있는 것으로 1929년에 뉴욕의 인터내셔널 출판사에 의해 출판되었다; 또한 보급판으로, 말하자면 The Little Lenin Library의 제4호로, 출판되어 많이 읽혔다. 게다가 곧 이어서 1902년 원문에 대한 또 다른 번역이 모스크바의 Foreign Languages Publishing House 출판사에서 영어보급판으로 출판되었다. 마지막으로 (우테친이 약간 나중에 언급하듯이) 새로운 영어판 선집이 FLPH 출판사에서 나왔는데, 이것의 5권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원문의 또 다른 번역본이 들어 있다. 이 번역본들은 똑같지 않다; 따라서 우테친 이전에 우리는 축약되지 않은 원문에 대한 3개의 서로 다른 영어번역본을 갖고 있는 것이다. 1907년의 축약본은 선집이라는 제목의 여러 판본에만 영어로 번역되어 있다.

어쨌든, 공산당 출판사들의 축약판을 레닌 저작에 대한 최초의 서유럽 학술판의 모델로 삼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우테친의 편집에서 두 번째로 이상한 점은 그가 1907년의 축약판을 소개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그의 외과적 수술은 오직 1907년 축약판을 대상으로 시작되고 있는데, 왜냐하면 그는 두 가지만 빼고 그 판본의 축약을 모두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그는 원문의 32곳을 추가적으로 삭제하는데, 짧은 곳은 한 줄이고 긴 곳은 한 페이지가 넘는다. 그리고 나서 그는 남은 원문에서 레닌의 24개의 주석을 잘라내 버린다. 이중에서 일부는 제법 긴 주석이고, 몇 가지는 매우 중요하고 흥미로운 것이다.

레닌에 대한 최초의 서유럽 학술판의 편집자가 저작물에 왜 이런 가위질을 해대는지 독자들은 의아할 것이다. 물론 그는 삭제한 모든 부분이 중요하지 않은 문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몇 가지 경우에는, 특히 여기저기의 기이한 문장을 잘라낸 경우에는, 이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것은 기이하지만, 이제 흥미진진한 곳으로 가보자. 우테친이 삭제해버린 것 가운데서 많은 것들이 대단히 중요한 문장들이다. 몇 가지는 극단적인 축약판에서조차도 삭제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고, 두 가지는 책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에 속한다.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가장 많이 토론된 단락 가운데 하나는 사회주의 운동에서 부르주아 지식인의 역할에 관한 것과 노동자계급 단독으로는 노동조합주의의 의식에 이르게 될 뿐이라는 이론에 관한 것이다. 내가 지적했듯이, 실제에 있어서 레닌은 이 이론을 카우츠키로부터 인용하여 소개하고 있으며, 그 자신의 부연설명은 카우츠키에 기초하고 있다. 내가 언급했듯이, 레닌학자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논의할 때 악마 같은 이 이론이 실제로는 카우츠키의 이론이라는 불편한 사실을 거의 또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이 문제를 우테친은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쉽다: 그는 간단하게 편집가위를 활용해서, 카우츠키로부터 인용 전체를 책의 원문에서 잘라내 버린다.

기밀자료가 삭제된 이 판본의 독자들은 레닌주의 악령의 그 핵심이 실제로는 레닌이 아니라 카우츠키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없을 것이며 당혹하지도 않을 것이다.

네 번째로: 이 중요한 문장을 삭제한 것이 기이하겠지만, 오히려 더 기이한 일단의 삭제도 있다. 확실한 사례 한 가지를 살펴보자.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한 연구에서 논란이 되는 문제 중의 하나는 레닌의 생각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냐의 문제이다: 유럽의 맑스주의 전통에서 주로 나오는가? 아니면 러시아의 과거 혁명가들로부터? 우테친은 꽤 철저하게 후자를 지지한다. 즉 소개글에서 그는 레닌의 정신적 선구자가 특히 트카체프와 오가레프였다고 주장한다. 매우 통속적인 트카체프 악령이 독자 앞에 매달리게 되는데, 왜냐하면 트카체프는 19세기 블랑키주의 유형의 혁명가로서 매우 통속적인 부류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계에 대해서 서술하면서 우테친은 ?무엇을 할 것인가?의 원문이 이 문제를 특별히 분명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고 쓰고 있다. 그에게는 원문을 언급하는 것이 권할만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자신의 주장을 확인해주지 않는 모든 문장들, 그리고 일관성을 해치지 않고 끄집어 낼 수 있는 모든 문장들을 이 원문에서 조심스럽게 삭제해버렸기 때문이다.

우테친과 레닌학이 레닌의 진짜선구자라고 주장하는 악령 트카체프에 관해서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레닌이 트카체프에 열광하는 몇 가지의 참고문헌을 그의 저작에 끌어들였더라면, 그것은 우테친에게 좋은 일이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그러한 문헌은 레닌이 빈번하게 참고하는 서유럽 맑스주의 모델에 관한 문헌의 약 1%였다. 레닌이 그의 진짜 선구자에 대해서 단 한 단어라도 출판했더라면, 그것은 레닌학자들에게 커다란 혜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45권짜리 레닌 선집에서 트카체프의 이름은 전부 합해서 약 다섯 번 언급되고 있으며, 의견이 담겨 있는 의미있는 문장은 이 중에서 단 한 번이다. 트카체프에 대한 레닌의 평가를 담고 있는 이 문장은 우연히도 ?무엇을 할 것인가?에 들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도발적 테러를 주창하는 트카체프에 대해서 명백하게 반대하고 있다.

원문이 레닌학의 정설을 확증해주지 못할 경우 학술적인 편집자는 이제 어떻게 할까? 우테친은 트카체프에 관한 전체 문장을 원문에서 지워버린다.

레닌이 그의 진짜 선구자에 대해서 실제로 의견을 표현하고 있는 유일한 문장을 내버려두면 안 된다. 왜냐하면 순진한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할 테니까. 그 뿐만이 아니다: 원문의 다른 두 곳에서 우테친은 테러리즘과 테러리스트의 주장을 공격하고 있는 레닌의 중요한 문장들을 삭제하고 있다.

이것은 레닌의 선구자와 관련하여 제기된 문제의 한 측면일 뿐이다. 위에서 언급되었듯이, 우테친은 레닌이 유럽 맑스주의 전통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을 축소하고 싶어 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의 원문(레닌에 의해서 쓰인 대로의 원문)은 유럽 맑스주의라는 창고에서 끄집어낸 주장들로 넘쳐난다. 실제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는 레닌이 유럽의 맑스주의 당들을 당 조직의 모델로 삼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몇 가지 자료가 들어 있는데, 이것은 레닌의 전체 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다. 우테친이 지워버리고 싶어 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자료들이었는데, 그렇지만 그 자료들은 너무 방대해서 모두 지울 수는 없었다.

우테친의 서문은 이러한 그의 작업에 관해서 매우 의식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생략된 것은 …… 주로 논쟁의 구체적인 부분들, 즉 논쟁의 줄기에 특별히 중요하지 않은 부분들, 그리고 레닌이 그가 다루고 있는 문제를 해설하기 위해서 독일 사회민주주의의 경험으로부터 끌어오는 사례들, 즉 이제는 레닌의 논리를 명료하게 만들어주기 보다 오히려 불분명하게 만들어주는 경향이 있는 사례들이다.” 이러한 문장들은 레닌의 논리불분명하게만들 뿐만 아니라, 우테친의 태도를 파괴한다: 밖으로 빠져 나가야 한다 원문으로부터.

보기를 들어 우테친은 3장의 F항에서 문장 하나를 삭제해버리는데, 그것은 독일 사회민주당의 운영방식을 찬양하는 문장이다. 우테친이 주장하듯이 이것이 단순한 해설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게다가 그는 왜 효과적인 해설들이 그의 원문에서 삭제되어야 하는지를 결코 설명하지 않는다. 이 문장은 레닌이 자신의 제안을 옹호하기 위해서 내세우고 있는 주장이다. 레닌은 최고로 평가되는 사회주의 정당을 자신의 모델로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훌륭한 독일의 당이 어떻게 운영되는가를 다루면서, 레닌은 러시아가 아직 획득하지 못한 합법성이라는 토대 위에서 당이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자기 자신의 견해를 암묵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레닌의 조직 개념을 알아내고자 한다면, 선진적인 유럽 사회주의 정당의 조직개념과 경험에 대한 레닌의 평가를 (부드럽게 말하자면)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우테친은 유럽 운동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한 묶음의 참고문헌들을 지워버렸는데, 그것들은 모두 다 중요한 것들이다. 그러나 중대한 범죄들을 차곡차곡 모아두기 위해 지면을 할당하는 것은 정말로 필요한 일이 아니다.

주요한 출판사에서 나온 레닌에 대한 이 최초의 학술적판본은 그런 것이었다. 그 판본은 볼셰비즘의 통탄할 원죄를 드러내기 위하여 유럽의 저명한 학습기관의 후원을 받고 있었다. 이러한 난도질이 계속 되었다면, 예컨대 모스크바의 출판사가 존 스튜어트 밀을 그렇게 했다면, 우리 모두는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정확하게 알 것이다. 그리고 우테친은 이런 일에 아마도 뒤처지지 않을 것이다. 반증작업이 요구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꼭 무례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해석에 맞도록 원문을 잘라냄으로서 작품에 대한 자신들의 해석을 증명할 수 있을 만큼 운이 좋은 레닌학자들은 결국 거의 없는 것이다. 이것이 꼭 우테친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의적으로 부정직하게 수술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레닌을 한 쪽으로만 읽을 줄 안다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그럴 듯하다: 서유럽의 학술기관에 있는 레닌학의 선진적 권위자들도 스탈린주의 교수단에서 일하는 그들의 의형제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참고문헌

 

Draper, Hal 1978, Karl Marx's Theory of Revolution, Vol. 2,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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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nin, Vladimir Illich 1961b [1902-3], Collected Works, Vol. 6, Moscow: Foreign Languages Publishing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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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nin, Vladimir Illich 1962c [1905-6], Collected Works, Vol. 10, Moscow: Foreign Languages Publishing House.

Lenin, Vladimir Illich 1962d [1907-8], Collected Works, Vol. 13, Moscow: Foreign Languages Publishing House.

Plamenatz, John 1954, German Marxism and Russian Communism, London: Longmans.

Shachtman, Max 1938, “Lenin and Rosa Luxemburg,” The New International.

 

 

옮긴이: 김진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