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실천연구소

빈 무덤가에서의 찬양 : 사회주의의 미래에 대한 성찰 본문

실천지 (2007년)/창간호

빈 무덤가에서의 찬양 : 사회주의의 미래에 대한 성찰

사회실천연구소 2014. 11. 7. 01:26

빈 무덤가에서의 찬양 : 사회주의의 미래에 대한 성찰 1 

리차드 레빈스(Richard Levins) 2



지금 상황을 하나하나 따져보기 전에 우리는 인간적이고 협력적이며, 따뜻한 사회를 위해 싸우고 있는 우리들이 엄청난 패배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동유럽에서 믿음을 잃은 정부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붕괴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아니라, 기껏해야 지난 몇 십 년 동안 진행되었던 과정에 마침표를 찍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는 더욱 뿌리 깊은 여러 가지 패배를 볼 것이다. 


* 우리는 제국주의에 저항하고 제3세계 국가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대안적인 세계체제를 만들지 못했다. 그 일을 이루지 못하자, 불공평한 교환과 채무에서 비롯된 노예상태, 그리고 최대이익을 추구하는 투자의 배치와 형식적이긴 하지만 주권국가 내부에서 경제정책 집행을 특징으로 하는 세계 자본주의체제는 이제 유일한 국제경제체제로 되었다.      

*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보다 훨씬 더 우월한 생활방식, 좀 더 민주적이고 합리적이며, 창조적이고 충족적이며, 훨씬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들지 못했다. 

* 국제운동은 지금 자본주의의 전복이라는 전략이나 관점, 심지어 목적마저도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있다. 1950년대에 “우리가 너희들을 묻어버리겠다”고 큰소리쳤던 투사들은 지금 “제발, 제발 우리를 받아주세요!”라고 남모르게 속삭이고 있다. 50년 전 나의 할머니는 나에게 손자가 생기면, “그 아이는 사회주의 공화국에서 살게 될 꺼야”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제 그런 말도 할 수 없고 그런 믿음도 입 밖에 낼 수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 동양에서 가짜 자유주의가 지배담론이 되면서 가짜 맑스주의를 대체하였다. 가짜 자유주의는 18세기 때 사기업의 자유주의 어휘와 강경노선을 채택한 것이다. 그 결과 사회관계를 바꾸고 새로운 노동관계를 모색하며, 여성을 완전히 해방시키고 인종주의에 당당히 맞서 싸우며, 그리고 과학과 종교를 비판한다는 당찬 목표는 사라져 버렸다. 

* 우리는 수많은 공산주의자의 영웅주의와 희생, 헌신과 재치로 힘들게 얻어낸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몇 년 지나지 않아서 다 써버렸다. 지금은 거의 잊혀 진 사실들이 있다. 잊혀 진 일들이란 공산주의자들이 이끈 저항운동이 유고슬라비아와 알바니아를 소련군의 도움 없이 나치의 지배에서 해방시켰다는 것, 공산주의자들이 1946년에 체코슬로바키아 선거에서 이겼다는 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공산주의자 디미트로프(G. Dimitrov)가 불가리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지도자였다는 점, 농민과 노동자들이 없었다면 중국혁명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위에 나열한 것처럼, 우리는 여러 측면에서 패배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착취를 어쩔 수 없다거나 합리적이라고 믿지 않는다. 우리는 그러한 탐욕이 사회관계의 가장 높은 조직원리라고 믿지도 않는다. 그런 우리는 방어적인 처지에서 지난 150년 동안 벌어진 투쟁으로 얻어낸 진보를 지켜내면서도 패배했다는 현실을 냉철히 깨달아야 한다. 그와 함께 우리는 그러한 패배의 원인들을 꼼꼼하게 평가하면서 두 번째 혁명의 불씨를 당기려고 다시 모여 준비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다.


현 상황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이러한 과제를 여러 가지 다른 배율(倍率)로 볼 수 있어야만 한다. 통 크게 보면, 우리는 수세기에 걸친 세계 역사의 단계를 볼 수 있다. 우리는 낮은 수준에서 좀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는 전통적인 생산양식을 통해 세계역사가 직선형으로 발전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계 역사는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지그재그 걸음으로 나아간다. 우리는 종교개혁 때 타보르파(the Tabrites)가 지배하는 보헤미아, 19세기 무하마드 알리가 통치한 이집트, 영국이 지배하기 전 벵갈처럼 초기 자본주의가 발생하고 몰락하는 것을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16세기 폴란드에서 봉건제가 다시 발생하는 것과 20세기말 폴란드에서 자본주의가 다시 출현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거시적 측면에서, 우리는 사회 체제의 등장과 몰락,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탄생, 산업혁명과 현대과학, 부르주아지가 평범한 계급이 될 때까지 부르주아 법과 의식의 발전, 노예의 부과와 인종주의의 고안, 자본주의에 맞서 밑바닥에서 일어나는 저항 또는 전면에서 일어나는 전복 시도를 볼 수 있다. 이러한 규모에서 볼 때, 제4 인터내셔널(the four internationals)과 노동운동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지난 200년 동안 일어났다 사라지기를 되풀이했던 대중 운동 가운데 하나일 따름이다. 따라서 혁명가들 사이에서 때때로 일어났던 과격한 충돌은 사회를 발전시키려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하나의 측면이고, 엠마 골드만(E. Goldman)과 로자 룩셈부르크(R. Luxemburg)는 자매인 것이다.     


현 시기는 1814년의 유럽과 비슷하다. 프랑스 혁명은 끝내 나폴레옹 제국이라는 기형적인 형태를 낳았지만, 끊임없이 봉건 귀족제를 전복시켰으며 심지어 가라앉히려 했던 하이티 혁명(Haitian Revolution)과 같은 폭동에 영향을 끼쳤다. 우리 시대의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와 견주어 볼 수 있는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Metternich)는 군주정의 유럽을 만들고 혁명이 진압되었다는 것을 기뻐하면서 다시 질서를 세웠다. 그러나 워털루에서 패배한 것은 부르주아 혁명이 아니라, 단지 나폴레옹이었을 뿐이었다. 15년 뒤 귀족정치는 다시 프랑스에서 권력을 상실하였고 34년 뒤 더욱 급진적인 새로운 혁명적 봉기의 물결은 유럽 특권층의 기반을 뒤흔들어 놓았다. 


좀 더 자세히 보면, 우리는 여러 나라에서 변화하는 계급구성과 그들의 정치적 표현, 식민주의의 패배와 이 패배를 만회하려는 신식민주의의 부상(직접적인 식민지배가 지속되고 있는 푸에르토 리코(Puerto Rico), 웨스트 뱅크(the West Bank)와 가자(Gaza)와 같은 중요한 예외와 함께), 특별한 혁명운동의 승리와 패배, 형식적 정치 권리의 광범위한 확대와 지배자의 세련된 권력운용 기술, 가난한 나라와 부유한 나라 사이의 늘어나는 불균등, 혁명 사회 사이의 유사점과 차이점, 그리고 정치 행위 주체로서 새로운 해방 운동이 떠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주 세밀히 본다면, 우리는 운동들과 정당들, 그리고 개인의 프로그램을 평가해야만 한다. 역사의 얼룩진 흐름은 이제 모두 사라졌다. 그들의 표현 속에서 이익과 믿음은 정책으로 여겨지며, 역사 프로젝트에서 동맹이란 매우 다른 관점에 따라 운동을 건설하려는 투쟁에서 새로이 적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원근법들 하나하나는 모두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원근법들 속에서 앞뒤로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하지만, 우리가 어떤 배율에서 작업하고 있는지를 늘 명백히 알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패배가 곳곳에 두루 퍼져 있다는 점을 냉정히 받아들이면서도, 우리는 사회주의 운동과 첫 번째 혁명사회들이 이루었던 많은 승리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혁명사회를 세우려고 북돋우고 도운 사회주의 운동과 노동운동은 노동계급을 위한 최소한의 기본적인 권리를 확보하였고 세계의 대중을 정치 생활에서 행위주체가 되도록 만들었다. 이것은 더할 나위 없는 성과이다. 


사회주의를 세우려는 첫 번째 시도는 몇 가지 점에서 성공적이었다. 부족하지만 공정한 할당, 극도의 빈곤에서 빠른 탈출, 건강․교육․문화생활에서 사회적 소비의 발전, 일부 전통적인 성차별을 없애고 여성들이 많은 직업과 정치생활에 좀 더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한 시도는 지역들 사이에 경제적 격차를 증가시키기보다는 감소시키는 방식으로 자원을 다시 나누었다. 사회주의는 엄청난 문화 창조성을 보였고 대중이 공공생활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주었다. 비록 이 모든 것들이 구조적으로 철저하게 이룩될 수 없는 열망이었다고 해도, 사회주의는 자연보호와 같은 새로이 등장하는 문제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더욱 풍부한 소비재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세계 자본주의를 따라잡고 초월하는데 실패했다. 만약 경쟁의 조건이 대안적인 소비의 모습과 사람들의 삶을 만족스럽고 충족적인 것임을 입증하는 기준에 효과적으로 적용되었다면, 사회주의는 그 자체로 재앙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상대적인 평등(경영자와 지도자들이 특권을 빼앗았다고 해도, 이러한 사회는 자본주의보다 훨씬 더 평등했다.), 교육․건강․문화에서 사회적 소비의 우선, 실업과 주기적 위기의 부재, 전체적인 필요에 맞춘 합리적이고 계획적인 발전은 더 낮은 생산에도 아랑곳없이 일련의 실행가능한 대안적인 열망의 토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의 경제적 잠재력을 성취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볼 수 있는 의식과 노동관계를 다시 조직하는 것은 부분적으로 그리고 간헐적으로 시도되었을 뿐이다. 정부가 노동자들에게 “너희들은 일하고 우리는 소비를 분담할 것이다”라고 말한 곳에서, 노동자들은 자본주의의 규칙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자신들 스스로 패배할 운명이었다. 정부가 약속을 이행하는 한, 그들은 다른 실패에도 동의를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이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모든 정당성을 잃게 된다. 그리고 만약 정부가 장기적으로 미래에 대해 생각한다면, 먼저 투쟁을 자극하는 사회적 변화는 물질적인 풍요 때문에 사람들이 좀 더 적게 일하고 비전문적인 교육을 받게 될 때 발생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될 것이다. 이리하여 사회주의적 민주주의(socialist democracy)의 완전한 발전과 ‘사회주의적 인간(socialist man)’이 물질적 기초를 필요로 한다는 확고한 생각은 경제 성장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추구하기 위한 변명이 되었고, 당시 사람들의 자결권을 냉담하게 무시하게 되었다. 


물론 세계에서 과거의 사고와 감정이 만든 옛 열망과 옛 방식을 새로운 행동 방식으로 바꾸는 것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찬양이나 자화자찬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며, 작업장과 작업장 밖에서 일상적 경험의 변화된 유형이 새로운 방식을 현실적으로 만들고 세계에 대한 좀 더 나은 이해와 행동 방식을 만들 때에 가능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행동방식들은 세계적인 규모에서 자본주의의 문화적 지배에 저항하는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효과적으로 강화될 수 있다. 우리는 아래에서 의식 문제를 논의할 것이다.


옛 자본주의의 기준이 도전받지 않고 유지되는 한, 생산에서 자본주의를 따라잡는데 실패한 것은 커다란 패배가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술적 분업이 점점 더 고도화되었고 여러 종류의 상품이 쏟아졌으며, 그와 함께 자본주의적 열망의 헤게모니가 더욱 강화되었다. 사회주의가 생산 잠재력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자, 마침내 사회주의는 일종의 포기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매우 다양한 정치사를 갖고 있는 국가들에서 이러한 일들이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가난하고 부패하거나 또는 변절한 정치지도력의 이데올로기적 결점이라기보다는 구조적인 원인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무능하고 부패하며, 그리고 변절한 정치지도력은 실패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마찬가지로 실패의 조짐이기도 하다. 이러한 지도자들은 혁명에서 살아남아 과거의 길로 다시 복귀한 오래된 자본주의계급이 아니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 억압당한 사람들을 조직하는데 자신을 바쳤던 진실한 혁명 지도자들이었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도 여전히 자본주의가 그들 시대의 ‘자연스러운’ 체제라는 점이다. 자본주의 교환 체제가 붕괴된 곳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농업과 물물교환이 ‘자연스러운’ 체제인 것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적 착취와 이데올로기, 믿음과 목표는 발생기에 있는 사회주의적 삶의 방식이 취약할 때면 언제나 그 자체를 강화시킨다. 


아주 오래 전에 이러한 첫 번째 시험이 실패하였고 이를 사회주의라고 부르기를 거부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으며, 따라서 그들은 사회주의의 실패가 지금 위기와 맺는 관계를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크게 세계적인 역사의 규모에서 보면, 첫 번째로 중요한 점은 강탈과 압제를 일삼는 세계체제를 전복시키고자 했던 세계적인 노력이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예외들도 있다. 쿠바와 같은 나라가 바로 그 보기이다. 쿠바에서는 사회주의가 소비자들이 금방이라도 부유해질 수 있다기보다는 차라리 모든 사람을 위한 더욱 폭넓게 공유된 집단적인 삶을 약속했고 국민과 지도자 사이의 유대관계가 한층 강하며, 혁신적으로 사회주의적 민주 참여를 이루어내려 했고 부르주아의 해법보다는 혁명적인 해법으로 대부분 위기에 대처해 오고 있었다. 더 나아가 제3세계의 기준을 놓고 볼 때 쿠바의 경제는 대단히 효율적이다. 쿠바 경제는 자본의 지나친 축적에 따른 낭비, 호화로운 소비, 사용되지 않은 노동과 재능으로 고통을 겪고 있지 않았다. 쿠바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기초 생활필수품의 소비와 건강․교육․문화적 삶의 소비를 확보하는데 우선권을 두고 있다. 기업 부문의 비효율성이 있지만, 거시적 수준의 효율성은 쿠바로 하여금 나머지 남미 국가들보다 세계적인 경제침체를 더 잘 극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쿠바의 경험은 사회주의의 잠재력을 암시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쿠바는 다른 길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뿌리 뽑고자 하는 자본주의 공격의 주된 표적이다. 



사회주의 경험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본주의와 화해하는 길로 나아간다.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한 공포감은 여전히 남아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차이는 국가 내부와 국가 사이에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피지배 국민들로 하여금 배고픔, 조기 사망 그리고 절망적인 삶을 살도록 만들고 있다. 대중의 혁명적 저항이 줄어들고, 사회주의를 조롱하는 것만큼이나 경영자의 특권은 커지고 있다. 노동조합을 분쇄하는 일은 전문적인 경력이 되었으며, 건강보험과 같은 권리를 획득하는 것은 우리의 나날이 번영하는 경제 속에서 너무도 비용이 든다는 이유로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국제적으로 그리고 각국 내부에서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과 때때로 같은 노동조합에서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은 중요한 수단이다.


현대 기술은 상품관계를 우리 삶의 모든 면에 더욱 깊숙이 뿌리내리게 하였다. 그 결과 신장(腎臟)도 자궁(子宮)도 사고팔게 되었고, 교육은 최고의 가격으로 양도되며, 환경은 약탈되거나 손익 분석에 따라 유지되고 환경오염을 유발할 수 있는 권리는 양도될 수 있으며, 살아있는 것도 특허 받을 수 있고 개인도 시장에 팔 수 있게 되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그 자체는 자본주의 혁명이 이루어낸 위대한 성과들 가운데 하나로서 또한 내다팔 수 있는 하나의 상품이기도 했다. 형식적 민주주의의 절차가 더욱 널리 퍼지고 투표가 민주주의와 거의 같은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선거를 사소한 것으로 만들고, 그 중요성을 효력 없게 만드는 수단들이 더욱 정교해졌다. 여론은 조작되고 선거 전략과 정치 조작의 기술적인 전문성은 사람들의 이해와 선택을 교란시킨다. 그와 함께 사람들이 현실적 대안들을 조직하고 내놓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오류들’을 교정하려고 일련의 완충장치들도 마련되어 있다.        


독점 자본주의의 시대에 도시 회합(town meeting)보다 조합(corporation)이 사회의 모델이 되고 있고 이익의 ‘최저선’은 윤리를 위한 궁극적인 원리가 되고 있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capitalist democracy)는 법의 지배를 가져왔지만 그럴듯하게 거부할 수 있는 교의와 손해통제의 기술은 정부의 불법성을 관행화시키고 있다. 과학과 문화는 상품이 되고 있고 판매 실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자본주의는 현대 인종주의를 만들어냈고 성차별을 하나의 상품이자 사회 안정을 위한 기둥으로 만들면서 오래된 가부장적인 방식을 고쳐 쓰고 있다.


우리가 자본주의의 기원을 14세기 유럽의 상업 자본이나 16세기 아메리카 대륙의 정복, 또는 산업 혁명이나 영국과 프랑스 혁명에서 부르주아지가 그리고 미국 혁명에서 지역 부르주아지가 권력을 장악한 것에 찾든지 간에, 자본주의의 역사적 경험은 상당히 많은 자랑거리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러시아 혁명과 미국 혁명을 비교역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좀 더 분명히 알 수 있다.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 지 7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소련에서 민족주의가 다시 일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국 혁명이 일어난 지 70년이 지난 그때에도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학살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고 노예제에 대한 반대도 아직 초보적인 형태에 불과하다. 혁명이 일어난 지 100년이 지난 뒤 짐 크로우(Jim Crow) 법이 미국 남부지방에 부과되었다.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 지 70년이 지난 뒤 형태는 갖고 있지만 빈약한 사회주의적 민주주의 구조가 다시 부활하고 있다. 미국 혁명이 일어난 지 70년 뒤에 우리는 아직 여성 참정권을 완전히 확보하지 못했다. 흑인이 참정권을 얻은 지 1세기가 더 지난 뒤, 비로소 여성들은 참정권을 완전히 얻을 수 있었다.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 지 70년 뒤 노동운동은 더욱 직접적인 노동자 통제를 위한 투쟁이 되었고 파업은 사회주의가 이끌어온 정부들을 몰락시키는 위협이 되었다. 미국 혁명이 일어난 지 70년 뒤 노동조합조직은 ‘봉급을 올리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2세기가 지난 지금 노동조합은 점차 그 세력을 잃고 있다.    


혁명에 대한 몇몇 적대세력은 그들이 반대하는 충분한 계급적 이유를 갖고 있고 적대세력이어야만 했다. 혁명에 대한 대부분의 적대세력은 반혁명에 대한 지지자들이어야만 했다. 유럽과 미국의 부르주아 혁명에는 온갖 종류의 부정과 야만이 따랐다. 처음에 혁명에 호의적이었던 많은 사람들은 쫓겨났고 환멸을 느꼈으며, 혁명 과정에서 적이 되었다. 게다가 그들의 일부 비판은 상당부분 타당하고 인간적인 열정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1세기 또는 그 이상의 시간적 거리를 두고 살펴볼 때, 우리는 그들의 비판이 새로운 사회질서를 지키는 이들의 항변보다 때로는 좀 더 정직하고 정확하며, 적절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타당성은 작은 범위와 단기간의 영역에서만 유효성을 갖는 것이며 구체제를 좋아하여 그들이 혁명을 포기하는 것은 좀 더 큰 관점에서 볼 때 반동적인 것이다. 우리는 디킨스에서 솔제니친에 이르는 비판들을 이해하기 위해 이중의 관점이 필요하다. 


맑스주의 이론은 몇 가지 측면에서 첫 번째 혁명 물결의 패배에 응답하였다. 한 가지 접근법은 최근 사건으로 돌발적으로 마련된 개념 틀을 근본적으로 내팽겨쳐야 할 만큼 오류라고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맑스주의가 이론에서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렸는지를 조심스럽게 검토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주장하는 것은 남겨두고 유지해야 할 그 무엇을 포기하는 것이다. 부르주아 지혜를 다시 발견한 것이든 아니면 참신한 것이든, 각각의 견해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된다는 것을 스스로 의식적으로 선언한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낡은 생각이 곳곳에 두루 번져가는 고통을 겪게 만든다. 


두 번째 접근법은 자본주의에 인간의 얼굴을 제공하고 세계역사적 목표를 포기하는 모양새 좋은 사회 계획을 만들려고 맑스주의를 깎아내리려 한 것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착취가 생각 속에만 있거나 제국주의가 불쾌한 담론이 되는 우울한 그림자로 후퇴시키는 소시민적 경험주의 또는 포스트 모던, 포스트 맑스주의, 포스트 계몽주의, 포스트 과학주의, 포스트 유물주의의 이익을 위해 뜻 깊은 일반화의 이론적 가능성조차 거부할 수 있게 한다.


몇몇 경우에, 이론은 범위와 전투성에서 사회 민주주의적 계량경제학, 도그마적인 손가락질 또는 학술적인 영혼 찾기로 축소되었다. 맑스주의자들은 맑스주의를 포기하고 ‘네오’ 또는 ‘포스트’ 등으로 덧붙여지는 사조에 편승하거나, 그들 자신을 ‘비(非)맑스주의자’로 부인하는 것 등을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새로운 사회운동의 도전을 받아들이는 것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 


따라서 자본주의 국가와 사회주의 국가에서 유연한 원칙을 갖춘 맑스주의의 섬(islands)은 맑스주의가 오합지졸이 되어 패배당하는 것과 패배로 인한 절망이 좌절이나 공포감으로 발전하는 것을 방지하는 특별히 중요한 측면을 갖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평가되어야 하고 고양되어야 한다. 


정계와 학계가 우파로 치우쳤던 카터와 레이건 정부 때 미국이 세계 맑스주의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로 떠올랐다는 점은 현대사의 역설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 이론계가 처한 특별한 상황은 세계 맑스주의에 독특한 특성을 부여하고 있다. 대중적이며 단일적인 운동이 없는 상태에서 인류 진보를 위한 투쟁은 때때로 개별적으로 반인종주의, 페미니즘, 생태학적, 노동조합, 연대주의, 동성애자 권리, 건강과 사회 서비스, 교육과 다른 구체적 사안들을 강조하면서 진행되고 있다. 그에 따라 이론 작업은 따로따로 이러한 영역들의 개별적 사항을 고찰했다. 이와 함께 이러한 영역들 사이의 관계, 특히 계급과 인종과 젠더 관계에 대한 분석은 중요한 연구 주제가 되어야만 했다. 한편 우리가 권력에서 배제된 것은 우리가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시급한 현안을 풀어야 한다는 믿을 수없이 무거운 임무, 자본주의를 무너뜨린 나라들에 있는 우리 동지들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문제들에서 자유롭다는 것을 뜻한다. 그 때문에 우리는 쿠바나 니카라과 또는 베트남 맑스주의자들이 그들의 근본적인 지적 의제로 삼은 광범위한 문제들을 자유롭게 탐색할 수 있었다. 비록 우리가 권력에서 배제되었지만, 우리는 미국 제국이 누린 풍족함을 얼마간 공유하였다. 그러한 재산은 우리의 노력을 유지시켜 주는 회합, 출판, 연구와 전문 조직을 위한 자원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빚어낸 한 가지 결과는 우리가 더욱 이 투쟁을 전반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에 도전하는 투쟁으로 간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체제가 우리의 삶을 왜곡시키고 우리의 충족감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의 모든 맑스주의자들이 실제로 우리가 처한 현실에 이처럼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다. 미국의 반지성적 실용주의(anti intellectual pragmatism)는 너무나 강하다. 그렇지만 우리의 존재 조건은 우리가 지혜롭게 처신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우리가 실질적인 책임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우리의 일에 지나치게 추상적인 특성을 부여하고 사회 변환의 과정이 갖는 복잡성을 단순하게 생각하며, (특수성을 간과한 채) 일반적 원칙에서 계획을 이끌어내는 성향을 갖기도 한다. 미국 맑스주의자들은 일반적인 상황에 있는 동지적 전망이 아닌 그들 자신의 성적표에 따라 혁명에 점수를 매기는 판사로서 혁명 사회들을 관찰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가 권력에서 고립된 것은 가끔 다른 곳에서는 부족한 하나의 범위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출판이나 교육 또는 연구를 독점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맑스주의는 반대되는 이념들과 내재적인 대립 속에서 발전했다. 이러한 조건은 또한 역설적인 결과를 낳았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믿음에 영향을 받았다. 우리는 때때로 그들의 의제 가운데 일부를 받아들이고 그들의 언어를 받아들이거나 견고한 독단적 태도로 물러남으로써 이러한 압력에 저항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강건한 맑스주의를 지니고 있다. 그러한 맑스주의는 심각한 도전에 놓였을 때 국가 권력이 보호해주는 유약한 온실들과는 달랐다.


많은 맑스주의자는 다른 방침을 세우고 있다. 맑스주의를 잘라내는 대신, 그들은 맑스주의의 강력한 기반, 즉 복합적이고 다층적이며, 모순적이면서 진화하는 전체로서 변증법적 유물론적 세계관 위에 건설하고 있다. 전체를 보아야 한다는 요구는 이 작업이 영원히 불완전하다는 것, 전체가 단순히 이해하기에는 너무 크고 기이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늘 맥락과 연결점, 과정을 더 포괄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호소이다. 맑스주의의 총체성은 영원한 불완전성에 대한 지속적인 암시이고, 기존의 지배적인 이념에 대한 젠더와 계급, 그리고 인종적 제한에 대한 혁명적 견해의 도전이다. 


자명한 것으로 보인 역사적 우연성에 대한 맑스주의자들의 주장, 실제적인 것이 비합리적이라는 외침, 의심하고 비판하라는 권고는 늘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실제 사회주의 운동과 충돌하고 있다. 따라서 맑스주의는 일반 사람들에서 정기적으로 용감하고 뛰어난 페미니스트를 배출하고 있고 여전히 성차별을 자행하고 있는 현실 사회주의 운동에서 그들을 종종 위협하고 고립시키고 있다. 


맑스주의자들의 지적인 과업은 지금까지 시도되었던 그 어떤 것보다 훨씬 더 퍼져있는 정치적 도전을 위한 기초공사를 하면서, 자본주의와 맞서기 위해서 이론의 영역을 넓히는 것이다.


아주 세세하게 본다면, 오늘날 어떤 운동을 정치적으로 선택할 것이며 시급한 문제에 새로운 대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하는 것 사이의 갈등이 객관적으로 나타난다. 지금 객관적인 과정은 낮은 경제적 수준, 혁명에서 여러 사회적 행위주체의 필요성, 그리고 저발전의 경험에서 성장한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혁명 과정에서 만들어진 정치적 선택을 관찰하는 한 가지 방법을 로자 룩셈부르크가 이렇게 제안했다. 즉 우리는 과거의 도구를 통해 미래를 건설하는데, 과거의 도구는 우리가 극복하고자 하는 사회의 도구라는 것이다. 


혁명에는 보수적인 면과 급진적인 면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한편으로, 혁명은 모든 사람이 아닌 일부 사람들이 진입할 수 있도록 과거에 쌓아두었던 열정에 의존한다. 땅을 가지고 싶고 노동자를 고용하고 싶어 하는 땅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농부들, 그들 자신의 여자들을 멋대로 부릴 수 있도록 완전한 자유를 원하는 노예화된 사람들, 착취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갖길 바라는 억압당한 소수자들 가운데 잠재적인 기업가들, 시장으로부터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임으로부터도 자유롭고 싶어 하는 개별 지식인들, 노동으로부터 자유스럽고 싶어 하는 지나친 노동에 시달리고 소외된 노동자들, 자신들을 위한 궁궐을 바라는 독재자의 하인들, 자신의 아이들이 교육을 받아 노동자 계급이나 농부 계급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는 부모들, 이들 모두는 그들의 욕망이 혁명을 통해 실현될 수 있기를 바랐다. 경제적 안정을 제공함으로써 가정의 유대를 강화하려는 사람들 그리고 삶의 방식으로서 핵가족에 도전하는 사람들, 모든 이에게 자본주의가 제공할 수 있는 모든 상품을 바라는 사람들과 소비자 중심주의의 소외된 의식을 거부하는 사람들, 신식민주의적 제한으로부터 자유로운 생산을 바라는 사람들과 생태학적인 필요에 경제성장을 수렴시키기를 바라는 사람들, 국제주의가 그저 자신들의 해방을 지지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민족주의자들과 겨울 궁전을 습격하거나 산으로 올라가 세계혁명에 전념한다는 국제주의자들이 있다. 이런 보수적이고 급진적인 꿈은 혁명 속에서 나란히 있다. 심지어 이러한 두 얼굴은 동일한 목표를 지향하는 혁명가들 속에도 있다. 


사회 발전에서 모든 위기의 순간에, 혁명은 과거의 꿈과 방법과 재원에 의존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그러한 과거란 민족주의, 부르주아 기업가, 행정적 명령주의, 소비자 중심주의, 여성에 대한 성차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아니면 미래의 사회관계를 예측하는 잠정적인 해결책을 잠시 빌려와 써야 한다. 


각각은 그 나름대로 정당성과 위험성을 갖고 있다. 과거를 활용하는 것은 그 과거를 강화시킬 것이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갉아먹을 수 있다. 이것은 지지를 얻을 수 있고 운동을 확대시킬 뿐만 아니라, 그 운동을 재생산할 수도 있다. 그러한 방식은 혁명적인 헌신 때문에 삶의 방식이 완전히 바뀌는 것을 바라는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때때로 그들을 경멸적인 의미에서 이상주의자로 여기게 하며, 그들의 혁신이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그들에게 너무 멀리 나아가지 말라고 주문한다. 혁명에 헌신적인 사람들이 갖가지 걱정을 하는 것은 “역사의 의제로 아직 오르지 못했다”는 식으로 별로 중요하지 않게 미루어졌다. 혁명 운동 안에서 갑자기 페미니스트가 늘어나는 것은 분열적이고 때이른 것이며, 생산보다 덜 중요한 것으로 간단히 다루어졌다. 혁명의 창조적인 충격의 대부분은 시들해졌고 혁명의 옹호자들은 따돌림을 당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후퇴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 후퇴가 후퇴로 받아들여져야 하며, 미래의 발전을 막는 방식으로 의식을 변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전술적 후퇴라 할지라도, 심지어 과거의 오류를 수정한다 할지라도 사회주의를 손쉽게 포기하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정치를 미래의 열망에 두면서도 과거란 이미 쓸모없다고 무게를 경시하는 것, 그리고 충분한 준비가 갖추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뭔가 좋아보기는 하지만, 내용이 텅 빈 것이고 지지기반을 잃어버릴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요란하고 거짓된 사과, 사람들의 ‘후진성’을 슬퍼하며 자화자찬하기,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 그리고 집중화된 명령통치를 하고픈 강력한 압박을 받는다. 


가장 멀리 내다본 결정들조차도 그것을 강제했을 때에는 후퇴하는 것을 뜻한다. 소련 또는 사회주의 국가들 가운데 부유한 곳에서 가난한 곳으로 순수하게 자본을 옮기는 것은 국가들 사이의 수준을 평등하게 만들려는 목적을 지닌 국제주의와 사회주의 계획의 한 표현이다. 그러나 소련의 발틱 공화국과 같은 부유한 지역의 민족주의에서 본다면, 이것은 착취처럼 느껴진다. 따라서 동방 블록이 부분적으로 만들었던 부유한 지역과 가난한 지역 사이의 공정한 교환은 기부금으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적극적 지지와 적절한 토대 없이 선진적 형식을 강요한다면, 계획은 성공주의와 부패의 온상이 될 것이고, 원칙 고수는 비판을 받게 되며, 그러한 과정에 대한 인식은 냉소주의, 수동주의와 소외로 나갈 것이다.


이것은 좌편향적 선회의 어쩔 수 없는 결과가 아니라 비효율적인 결과이며 모든 강제적인 수단과 과거를 실제로 강제했던 과거에 대한 변명으로 미래와 충돌한다. 


두 가지의 오류는 혁명사에서 중요하면서도 사람들에게는 재앙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현재 첫 번째의 것, 즉 과거와 타협하는 것은 유럽과 아시아 사회주의에서 지배적이다. 


느슨한 노동 규율을 막으려고, 노동자들에 대해 권위를 강화시키는 것도 있을 수 있다. 이것은 종종 좀 더 행정력을 구비하고 직업을 좀 더 협소하게 정의하여, 업무 수행이 더욱 잘 측정될 수 있게 하는 것을 수반한다. 그러나 업무 수행을 평가하기 위해 고안된 측정 수단은 결코 그 자체로 목표가 아니라, 오히려 측정지표가 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은 감독자가 사람들의 운명을 통제하고 더 나은 자를 만족시키는 것이 주된 목표가 되는 곳에서, 늘 업무 수행에 현실성이 없는데도 업무 수행에 대한 좋은 조치를 만드는 방법을 깨닫게 만드는 것을 뜻한다. 만약 획일적인 학교 시험성적이 교사의 능력을 측정하는데 사용된다면, 학생이 부정행위를 하도록 돕는 것은 합리적인 개인의 모습이 될 것이다. 만약 한 공장의 성과가 생산 목표를 맞추는 것으로 측정된다면, 이것은 가장 쉬운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당신의 업무수행을 다른 누군가가 측정하는 방법에 기초한 해학적인 다음과 같은 글들이 있다. 소련의 한 시사 풍자만화는 못을 만드는 회사의 노동자들이 어깨 위에 균형을 잡고 있는 하나의 커다란 못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싱글거리며 “우리는 수천 톤의 못을 생산해야 하는 우리의 계획을 초과 달성하였다!”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철도는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톡 사이를 오가며 그들 화물의 톤/마일 할당을 맞추려고 물통을 실어 날랐다. 산림 서비스는 수백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지만, 거기에 숲은 없었다. 왜냐하면 심은 나무가 살 수 있을 지 아닌 지는 측정의 일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기에 더욱 감독을 강화하였고, 측정과 목표를 좀 더 밀접하게 조화시키도록 더 나은 지표를 고안해 내려했다. 이러한 악순환 속에서 한층 더 필요한 통제를 더욱 강화시키며 소외를 증가시켰다.


또 다른 방향은 확장된 자율성, 상점 수준의 자체 조직화, 그리고 쿠바 용어로 노동과 사회적 목표에 대한 헌신을 의미하는 ‘콘사그라시온’(consagración)이다. 그래서 한 집단은 그 자신의 작업을 평가할 수 있고 국가의 삶을 높이려고 무슨 일을 하였는지를 보고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로는 조심스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작업을 다시 구성하는 일에 이념을 다시 구성하는 것이 따르지 않는다면, 겉만 번지르르한 실속 없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럴 때, 자율성은 집단이 사회를 착취하도록 하는 조직을 만들뿐이다. 그러나 새로운 이념은 그것이 직장, 집, 학교 그리고 행동에서의 일상적인 경험을 통해 강화되었을 때만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의 지배적인 조류로서 성차별주의가 사회주의 발전에 주된 걸림돌이 되고 페미니스트의 요구가 전체 사회과정에서 시급히 필요한 부분이 되었다는 의식은 다시 형성되고 있다.  


가장 최근에 생겨난 혁명들의 가장 큰 실패는 사회주의적 민주주의, 연합된 생산자와 재생산자로 구성된 자율적인 사회를 만드는 영역에 있었다. 여기에서 다시 단순한 풍자를 거부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주의 혁명은 역사의 행위주체로서 많은 사람들을 정치적인 삶에 참여시켰다. 어떤 경우에 진보된 정치적 형식은 자본주의 정치의 민주주의보다 더욱 깊은 수준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려고 만들어졌다. 법률 과정의 탈신비화에 뿌리를 둔 사법체계와 인민법원과 동네법원의 발전은 바로 이와 같은 영역에 속해 있는 것이다. 자원자들이 입법부 운영위원회에 참여하는 체제, 제안된 법안에 대한 국가적으로 광범위한 토론, 대표들이 지지한 요구되는 보고서, 집단 지도체제의 원칙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만들어낸 공식적인 성과들이다. 그러나 형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많은 점에서 이러한 형식들은 쇠퇴하고 실제적인 내용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러한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아주 주의 깊게 연구해야 한다. 이것은 당국이 토론을 억압하고 합법적인 민주적 구조를 업신여길 수 있을 정도의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민주적 참여는 또한 자기확신, 참여를 위한 시간과 정보, 일상생활에서 결정의 실행, 독립적으로 생각하는 것에 대한 격려를 필요로 한다. 그것은 깊게 뿌리박힌 태도와 신념, 당국에 대한 복종, 계급사회에서 사람이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형성되는 소심함을 타파하는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좀 더 깊은 사회적 변화 없이, 민주적 형식은 텅 빈 것이 되고 위협은 오래 지속된다.


의식에 중심을 두고 있는 대중적인 운동의 경험들, 즉 페미니스트 의식고양 그룹, 해방신학의 토대 커뮤니티, 참여적인 행동연구, 프레이리(Paulo Freire)의 의식화, 1920년대 우크라이나에서 전쟁고아와 함께 수행된 마카렌코(Anton Markarenko)의 연구와 그람시와 체 게바라의 이론적 논의들은 우리가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는 몇몇 값진 교훈을 제공하고 있다.


* 의식은 나날의 삶의 경험과 옛 의식에 기초한 그 경험의 해석을 통해 형성된다. 따라서 의식은 찬양으로 날조하거나 훌륭한 주장을 제공함으로써 전환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사람은 정치적이다’라는 페미니스트 슬로건은 사회분석과 비판에 견주어 대개 사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영역을 열어놓았고 자신과 타인에 대한 감정, 세계를 다루는 방법, 철학에 맞선 것으로서 삶의 철학으로 불릴 수 있는 것에 대한 정치적 또는 사회적 신념이라는 의식의 개념을 분명히 넓혀 놓았다. 이는 거시적으로 루카치, 그람시 그리고 브레히트가 생각했던 의식의 사회적 창조, 그리고 성장과 가족 내부라는 맥락에서 의식의 재생산 사이에 하나의 연계점을 제공해준다.

* 모든 사람이 지도하는 법은 물론 따르는 법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은 계발하고 길러야 하며, 그리고 격려해야 한다. 의식의 고양이 없다면, 집단성은 소수에 의한 지배를 정당화하는 것이 되며 원시적인 국수주의와 미사여구로 가득찬 기회주의적 표현이 넘쳐나는 곳이 될 뿐이다.    


의식의 고양과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는 서로 하는 것이고, 약간은 분명하지 않은 공산주의 미래를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사회주의 발전을 위한 강력한 힘이다. 특히 일부 사회주의 형식이 사라져 버려 자본주의적 자유주의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고 있는 이 때에, 혁명가들은 추상적으로, 형용사 없이, 또는 민주주의에 상응하는 것처럼 특별한 민주적 형식을 옹호하면서 민주주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적 이념과 부르주아적 이념 사이의 차이는 다음과 같이 확실하다. 사회주의적 이념은 공동의 기업을 대표하여 전체 인민의 창조적이며 비판적인 지능과 지식의 동원화를 꾀한다. 그러나 부르주아적 이념은 안전한 영역 안에서 반대자에 대한 관리와 공직을 위한 경쟁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부르주아적 민주주의는 아직까지 억압당하는 계급들의 해방을 이끌어내지 못했지만, 때때로 특별한 권력남용을 바르게 고치고 있고 그러한 해방을 위한 투쟁을 덜 고통스럽게 하며, 한쪽에서 거둔 승리들을 때때로 확인할 수 있게 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은 사회주의적 발전으로부터 민주주의적 의제를 도외시하는 것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가장 훌륭한 모습으로 구체화하여 그것을 초월해야 한다.


민족적 국수주의는 확실히 사회주의의 발명품이 아니지만. 사회주의 국가에서 국수주의의 생존은 일정정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국제주의가 역동적으로 높아지고 평등이 제도화되고 있는 곳에서, 집단적 의사결정이 나날의 경험을 단결시키고 있는 곳에서,  인종 정체성은 차츰 잠재적인 인종적대감을 없앨 것이다. 다른 한편, 부패가 널리 퍼진 곳에서, 인종에 따라 누리는 특권은 다를 것이다.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필요’를 희생시키는 정책을 정당화하고 민족적 감수성을 발전에 쓸모없는 장애물로 여기는 곳에서, 국수주의는 특권을 정당화시키는 구실이 된다. 불가리아에서 자국 안에 있는 터키 사람들을 추방한 것, 루마니아가 헝가리 사람들의 인종적 권리를 침해한 것, 크메르 루주의 반-베트남 국수주의와 동유럽의 반유태주의는 모두 사회주의적 이행의 문제에 거슬러 부분적으로는 반동적인 기회주의였다. 


최근 몇 십 년 동안 대부분의 사회주의 정권이 오랫동안 부인했던 문제들을 다루기 위해서 했던 결정들은 과거의 재원과 신념으로 현재를 구하려고 시도한 회고적 특성을 지닌 것이었다. 우리는 이것이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일반적인 규칙을 선언할 수 없지만, 그 모든 유형이 혁명적인 관점을 내팽개치고 있었다. 기껏해야 전술이 전략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하나의 주목할 만한 예외는 쿠바였다. 쿠바에서는 과거를 이용하여 발전시키려고 비효율적으로 시도한 시기가 지난 뒤, 기술 관료제와 경제주의, 부패에 대한 비판은 의식과 집단성을 강조한 재정치화를 불러왔고, 체 게바라의 생각에 대한 관심을 되살렸다.


따라서 이러한 분석에서 나온 한 가지 정치적 결론은 혁명 정권이 자본주의에서 한 참 벗어나 있다는 게 아니라는 것, 그들이 또한 사회주의의 완전한 잠재력을 실현시킬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자본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머나먼 공산주의 미래로 밀쳐둔 쟁점들은 사실은 지금의 의제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쟁점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에는 노동을 위한 동기유발의 문제를 풀고 집단적 지능을 동원하기 위한 의식의 전환이 포함된다. 그러나 우리는 의식이라고 하는 것이 의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촉구하거나 다른 세계관을 구조적으로 가르친다고 해서 단순하게 바뀌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나날의 경험이 새로운 견해를 지지할 수 있도록 실천의 변화를 필요로 한다. 이것은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와 성차별에 맞선 싸움이 사회발전에서 특별한 뜻을 지니게 된 배경이다. 그리고 이 둘은 업무의 재구조화, 노동의 분화, 그리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평가를 요구한다.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혁명적 운동에 적용된 비슷한 주장은 비슷한 결론으로 이끈다. 즉 좌파의 허약성은 그것이 우리의 모든 삶 속에 있는 전체 체제로서 자본주의에 도전하는 것에 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개별적인 악에 맞선 투쟁을 흔히 서로서로에 대한 적대감 속에서 개별적으로 전개되도록 하였고, 우리가 조건 변화로서 우리의 전술에서 강조점을 바꾸는 것을 택하지 못하게 했다.


나는 일의 추진에 필요한 가설로서 다음을 제기한다. 즉 해방을 추구한 운동들이 갈등에 빠질 때, 그러한 운동들이 너무 사소한 것을 갈망하였기 때문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여성의 운동이 대학교에서 새로운 차별철폐 행동을 실행하는 것을 둘러싸고 충돌할 때, 그들은 서로 인색하고 상대방을 따뜻하게 하는 것에 실패하고 있다. 환경보호가 이익을 줄일 수 있다고 산업계가 입증했기 때문에 환경운동이 노동조합의 분노에 직면할 때, 환경보호주의자들의 도전은 이익이라는 신성한 의무 앞에 서 있다. 우리의 가설은 인류해방과 복지를 위한 모든 투쟁이 일반적으로 상호보완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계급분석과 계급정치를 포기하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경제주의적 분석에서 역사적 유물론분석으로 이동하는 것을 뜻한다. 


또한 우리의 가설은 즉각적이고 단기적인 실천과 분리된 아름다운 미래에 대한 유토피아적 옹호를 뜻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다양한 수준에서 투쟁해야 한다. 각각의 수준에서 몇몇 조건들은 주어진 것으로 여겨져야 하고 또 다른 것들은 잠재적 변수로 여겨야 한다. 기회주의와 유토피아주의의 실패는 하나의 수준으로 투쟁을 한정시키고 있는 것이고 따라서 기본적인 변수들을 주어진 것으로 여기거나 모든 주어진 것들을 변수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현 상황에서는 세 가지 중요한 결과가 생길 수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실현 가능성이 낮은 것은 페레스트로이카와 그와 비슷한 것이 퇴각, 합병 그리고 다소 지속적인 지도력을 갖춘 새롭게 다시 태어난 사회주의의 시기이다. 그것이 가능하지 않은 까닭은 경제 문제에서 후퇴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경제문제는 과거의 실패를 확증하기 위해서 필요할 수도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과거의 실패가 경제문제라 느끼고 경제 정책이 사회주의적, 혁명적 원칙에 의하여 논의된다면, 다시 살아난 운동은 우회로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고 부르주아적 대안에 대항할 수 있으며, 그리고 하나의 새로운 혁명적 노선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가능할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경제적 재조직화에는 수사적인 맑스주의에서 순진한 자유주의로의 대대적인 이념적 후퇴가 따르기 때문이다. 글라스노스트는 아직 지금 주된 혜택으로 여겨지는 자유주의와 민족주의들에 대한 생동감 있고 창조적인 맑스주의적 도전을 폭발시키지 못했다. 


두 번째 있을 수 있는 결과는 오늘날 사회주의 국가들 대부분이 그들의 정부를 전복시키거나 또는 전복시키지 않은 채 자본주의로 돌진하거나, 비틀거리거나 또는 약진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음번의 자본주의의 세계적 위기를 지연시킬 수도 있는 자본주의 팽창을 위한 완전히 새로운 지역을 열어줄 수 있을 것이다. 한 차례 당해보았기 때문에, 해당 국가들의 국민들은 사회주의 정치를 잘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국제적으로 반동적인 역할조차 수행할 수도 있다. 최근 쿠바에 대하여 헝가리의 일부 언론이 보여주고 있는 적대감, 그리고 폴란드 학생운동이 전직 바티스타 경찰을 영웅으로 열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은 이러한 가능성을 미리 짐작하게 한다. 그렇게 되면 혁명운동의 초점은 현대 자본주의 세계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세 번째 가능성도 있다. 비록 공산주의자가 이끄는 정부들의 슬로건이 종종 해당 국민들에 의해 허황된 찬양이나 정당화되지 못할 자화자찬으로 거부되기는 하지만, 사회주의적 이념은 정부에 대한 지지보다는 대중적인 의식의 좀 더 깊은 수준으로 침투하였다. 상품에 대한 평등한 접근, 특권에 대한 반대, 노동자의 산업에 대한 지배, 일자리 확보, 주택 확보와 건강보험에 대한 요구는 심지어 사회주의적 개념이 아닌 기본적인 인권으로서 내재화되고 있다. 동유럽 사회주의의 미래는 현재 주체적으로 반공산주의자이며 자본주의를 계속 아주 순진하게 생각한 민족주의 또는 관료주의적 남용을 경험했던 사람들의 손에 놓이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이러한 순진함은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도피하여 실제 살아있는 자본주의에 다가서고자 하는 마음의 상처를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그들 가운데 1/3은 미국이 기본적으로 많은 점에서 당이 선전했던 것과 아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된 뒤, 동유럽의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다. 일부 쿠바의 망명자들은 쿠바 시민으로서 자신들이 주택 소유권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임대료를 줄 것을 요구하려고 유엔의 쿠바 대표에게 접근하였다. 그렇다면 누가 뉴욕의 임금으로 뉴욕 아파트의 임대료를 지불할 수 있겠는가? 


적어도 반대자들의 일부 목표는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자 운동보다 더 큰 힘을 현재 가지고 있고 교과서적인 볼셰비키적 방식으로 농민과 지식인들과 연대할 수 있거나 연대하고 있는 노동자 운동 속에서 나타날 것이다. 소련 또는 폴란드 광부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힘을 버지니아 서부와 켄터키 지역의 광부들이 지니고 있는 정치적 힘과 비교해보면 이는 자명한 일이다. 


이러한 것들은 아주 이질적인 운동들이다. 그들이 내건 슬로건은 그들이 어떤 미래를 지향하고 있는 지를 잘 알려줄 수 있는 길잡이가 되지 못한다. 우리는 실제로 아직까지 우리가 어떤 연대세력을 찾을 수 있을지 또는 먼지가 가라앉을 때 어떤 종류의 사회가 출현하게 될지를 알지 못한다. 


유럽 혁명의 퇴조는 제3세계 혁명을 위한 특별한 문제를 만들어냈다. 제3세계 혁명에 대한 국제주의자들의 지원은 현재 주로 자본주의 국가들에 있는 연대세력으로부터만 가능하게 될 것이다. 직접적인 군사개입 또는 장기화된 ‘저강도 분쟁’이 늘어나는 위험이 따를 것이다. 불평등 교환의 세계에서 재건설의 엄청난 과업은 이전에 제3세계와 동유럽 블록의 관계를 지도했던 좀 더 공평한 무역 유형을 통해서도 쉽게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제3세계 혁명과 연대하는 것이 훨씬 더 긴급해졌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만든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미국의 풍요함과 미국 자본주의의 안정성 때문에 우리가 국제주의의 중심을 형성하는데 필요한 자원과 상대적인 자유 두 가지를 제공받고 있다는 점이다.


혁명가의 과업은 의식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첫 인상으로 볼 때, 이것은 많이 인용되는 체 게바라의 ‘혁명가의 과업은 혁명을 이루는 것이다’라는 말과 견주어 볼 때 아주 소극적인 야망이다. 그러나 이러한 첫 인상은 두 가지 측면에서 잘못된 것이다. 우선 이것은 경제적이고 사회적 변화에 따라 의식을 변화시키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체 게바라의 생각이 가지고 있는 복잡성을 평가절하하고 있으며, 그리고 의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학술 강좌처럼 소극적인 것이라고 잘못 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변화는 의식의 개혁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와 혁명 사회에서 의식형성에 대한 분석을 해야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근본적인 변화에 관련된 모든 운동을 위한 중요한 문제이다.


이론적 수준에서, 우리는 먼저 특히 환경과 페미니즘과 같은, 그동안 부차적인 중요성만을 지녔던 쟁점들로 다루고 있던 맑스주의적 분석의 범위를 확대시켜야만 한다. 지난날 맑스주의는 영국 정치경제학과 프랑스 사회주의, 독일 철학에 뿌리를 두었다. 그러나 조직화된 맑스주의 운동은 모든 현대의 운동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에 완고하게 저항했다. 그들은 그들의 저항이 그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는 맑스에서 환경 파괴에 대한 비판을 찾을 수 있고, 엥겔스에게서 선구적인 페미니즘에 대한 언급 또는 소비에트 아시아(시베리아)에서 여성에 대한 억압에 맞선 격렬한 투쟁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맑스주의자들이 실제로 페미니스트 운동과 환경보호 투쟁에 참가했으며 그러한 운동에 이바지한 중요한 통찰력을 지녔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전체 이야기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혁명운동은 대체로 페미니즘과 환경운동에 이해심이 없으며 그 때문에 전문성이 없다. 누가 실제로 무엇을 먼저 말하였는가에 대한 논쟁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대부분 무시했고 다른 운동들이 강조했던 쟁점들을 다루는 것이며, 자본주의에 대한 투쟁이 덜 확산되는 것보다는 더 확산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맑스주의자가 선뜻 페미니즘과 환경운동 프로그램을 다루지 못하는 객관적 까닭은 맑스주의 지도자들이 주로 특권을 잃을 수 있는 남성들이었고,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노동자 운동의 지도자들에게 필수적인 목표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선뜻 페미니즘과 노동운동을 다루지 못하는 주관적 까닭은 그들이 이러한 쟁점들을 고려하게 되면 계급분석을 희석시키거나 포기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계급분석에 대한 가장 경제주의적인 관점에만 진실이다. 현재에 대한 역사적 유물론적 이해는 자본주의가 수많은 종류의 탄압과 파괴적인 실천을 발명 또는 적용시켰고 우리의 삶 전체에 상품관계와 그것이 부작용을 일으켰던 총체적인 착취 체제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유지와 자본주의의 물적․인적 자원의 재생산, 정치적 과정과 사회관계, 신념과 감정은 자본주의 지도자, 공인된 사상가와 기관들 그리고 국민들이 늘 해야 되는 일이다. 공산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체제가 확산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하고, 자본주의가 불행을 만들고 인간의 창조성을 좌절시키며, 우리의 존재를 위협하고 우리의 세계를 저하시키는 것에 저항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쟁점을 정치 의제로 제기하고 그들의 지적 지형도를 짜고 있는 페미니스트와 환경운동가들의 지도력을 고맙게 받아들여야 한다. 


새로운 잡지 '자본, 자연 그리고 사회주의' (Capitalism, Nature and Socialism)와 그 밖의 다른 지면에 글을 싣는 맑스주의자들은 이러한 과업을 위한 틀을 발전시키고 있다. 그 가운데 핵심적인 개념은 다음과 같다. 


- 인간의 역사는 자연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지속적인 것이다. 

- 신체와 환경 사이에는 상호침투성이 있다. 

- 우리의 환경운동이 갖고 있는 적극적인 성격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Eduardo Galeano)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가 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가 하는 것은 바로 현재의 우리를 바꾸는 것이다.” 

- 단일체이자 생태역사적 구성체로서 사회/자연은 생산양식과 그것이 서로 침투하는 주변 환경을 결합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전체의 통합은 조화나 균형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개연성과 모순성, 그리고 변화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것이다. 

- 다시 쓸 수 있는 자원과 다시 쓸 수 없는 자원을 생산의 결과이기도 한 생산의 조건으로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 생산과 재생산의 통합. 이것은 우리에게 이러한 두 가지 활동들 가운데 여성 노동의 변화하는 몫이 어떻게 사회 속에서 여성들의 상황을 규정할 수 있게 하는지를 설명하도록 한다. 이러한 몫은 가족 안에서 성별과 권력을 조절하는 토대였다. 이것은 결국에는 여성 노동의 몫으로 되돌아가는, 사회가 지닌 동력의 일부를 이루는 노동력의 구조와 인구통계적 변화를 결정하는 요인이 되었다. 이것은 여성의 상황을 사회 발전의 부수현상이 아니라 체제의 동학이 갖는 일부분이 되도록 만들었다. 

- 생산/재생산을 재생과 소비, 그리고 쓰레기와 통합하는 것. 재생과 소비, 쓰레기는 먼저 신체 속에서, 그런 뒤 신체 밖에서 외부화되고 마침내 사회화된 활동으로서 우리의 진화 속에서 일어난다. 소비가 생태적 재순환에서 재생과 쓰레기를 추출했지만, 물리적, 지성적 그리고 감성적 재생의 노동은 너무 자주 여성의 일을 소비와 사적 영역의 일부로서 업신여겼다.


맑스주의자들은 과학과 기술에 대한 비판에 참여하고 있다. 우리는 세계에 대한 유적 인간 지식이 성장하는 일부로서 그리고 그 자체의 우선사항에 따라 특성을 해석하고 사용하고 있는 특정 사회의 사회적으로 결정된 생산물이라고 하는 두 가지의 이중적 특성에 대처하고 있다. 과학은 과학의 소유자가 알고 싶어 하는 것을 찾으려는 직접적인 목적을 위해 경험을 조직하는 것이다. 또 과학은 사람들을 선택하고 제도를 수립했던 노동의 분업에서 하나의 에피소드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탈신화화된 것이다. 


불평등한 건강 서비스에 대한 비판을 뛰어넘어 건강과 질병의 사회적/생태적 특성을 설명하는 역동적인 맑스주의 건강운동이 있다. 여기에 몇몇 기본적인 통찰이 있다. 


- 건강은 각자의 계급, 성별, 인종 그리고 다른 특성에 따라 필요한 것으로 생각되었던 행동들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 인간 생리학은 사회화된 생리학이다. 물질적, 정신적 그리고 사회적 차원의 전체적 통합은 개체의 피부를 뛰어 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일반적인 생리학적 네트워크를 공유하지만, 이것은 세계의 그녀/그의 위치에 따라 각자에게 독특한 좀 더 큰 사회적으로 형성된 네트워크와 맞닿아 있다. 이러한 좀 더 큰 네트워크에서 건강과 질병의 과정은 전개된다.

- 전염병은 영속적인 상호진화에서 우리 자신과 기생충 사이의 관계이다. 우리의 의료기술과 우리의 변화하는 사회와 환경은 이러한 상호진화를 위한 조건을 붙인다.


나는 내가 그것들에 연루되었고 그러한 쟁점들에 친숙했기 때문에 이러한 분야를 말했다. 맑스주의자들이 자본주의적 세계관에 대한 우리의 도전을 넓히고 있거나 그러한 도전이 필요한 다른 영역이 있다. 


먼저 우리에게 제기되는 영역은 민주주의이다. 여기에서 민주주의를 부르주아적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구별함이 없이, 또는 다당제 선거제도와 민주주의를 동일시하면서 다원주의라는 그럴듯한 말에 빠져버리면 결코 민주주의를 논의할 수 없다는 것은 특히 중요하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는 그 어디에서도 억압당한 사람들에게 실제 권력을 준 적이 없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는 탄압을 완화시키거나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에 대한 투쟁을 좀 더 고통스럽게 만들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부르주아적 민주주의는 반대자의 조직화를 부추기고 있다. 사회주의적 맥락에서 민주주의의 구실은 문제를 해결하고 오류를 수정하는 데 모든 사람들의 창조적인 지성을 동원하는 수단이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은 대중 그 자신의 정부라는 독자적인 형태를 발명하면서 동시에 부르주아적 민주주의의 성과를 흡수해야 한다. 


또 다른 중요한 영역은 반세기의 퇴조기 이후 노동운동을 다시 건설하기 위한 이론적 토대를 세우는데 있다. 이것은 인종주의에 맞선 투쟁과 지역적이고 국제적 연대를 중요한 의제로 자리잡게 할 것이다. 북미와 일본 노동자들은 제너럴 모터스와 닛산 또는 포드와 토요타처럼 효과적으로 함께 모일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혁명적 낙관주의가 잔인한 조롱처럼 보일 때인 어려운 시기를 살고 있으며, 상승의 시기 사이에 놓인 밑바닥에 있다. 빠른 승리의 약속도 그 승리가 어떤 모습일 것인가에 대한 청사진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거시적 역사과정과 자본주의의 구조를 분석하는 데 뛰어난 강점을 지니고 있는 우리의 이론들은 특수한 것들을 이해하는데 곤란을 겪어 왔다. 우리의 이론들은 특별한 미래에 대한 예상뿐만 아니라 사건이 발생한 뒤에 만족할만한 설명을 제공해 주지 못했다. 혁명 사회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게 하였으며, 그리고 때때로 무지몽매함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되곤 했다. 


그렇다면 맑스주의 이론은 왜 지속되고 있는가? 첫째, 자본주의의 500년 역사가 인간적이며 정의로운 세계를 스스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기술이 권력을 제공함에 따라, 우리와 모든 생명체에 대한 위험이 차츰 커지고 있다. 상품관계가 모든 존재 양태를 이익을 위한 투자로 탈바꿈시키도록 만들고 있다. 동방 블록에서 일어나고 있는 권력의 위기는 의기양양한 체제 속의 깊은 구조적 위기를 결코 은폐할 수 없다. 


둘째, 자본주의는 그것이 지닌 특수한 악습을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을 통해 수정될 수 있는 하나의 통합 체제이기 때문이다. 


셋째, 과거의 접근법이 사라짐에 따라 인간해방과 관련된 쟁점들을 좀 더 확대된 형태로 제기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들이 제안되기도 하는 흥미로운 시대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엄청난 세뇌로부터 벗어나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의 해방을 향해 나아가는 흥겨운 첫 번째 발걸음이기 때문이다. 우리들 자신을 통째로 집중하여 이루어야할 무언가를 위해 무언가에 맞서 투쟁하는 것은 오늘의 세계에서 우리에게 가능한 범위 안에서 가장 많은 자유를 제공해 준다.

  1. 출처 : Richard Levins, “Eulogy beside an Empty Grave: Reflections on the Future of Socialism,” The Socialist Register, 1990, pp. 328-345. 이 글은 1989년 9월 뉴욕 맑스주의 학교(the New York Marxist School)에서 한 강연 원고를 기초로 하였고, 1989년 12월 애머스트에서 열린 현대 맑스주의 회의에서 발표된 원고를 수정하여 작성하였다. [본문으로]
  2. 리차드 레빈스는 미국 하버드 대학 인구/국제보건학과 교수이다. 현재 레빈스는 <생태계 보건 국제학회>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전미 예술/과학 아카데미>의 회원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변증법적 생물학자』(1987), 『인류와 자연 : 생태학, 과학 그리고 사회』(1992) 등이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