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실천연구소

루카치-레닌[1] 본문

실천지 (2007년)/2007년 6월호

루카치-레닌[1]

사회실천연구소 2014. 12. 15. 13:42

레닌

 

차례

 

서문

1 장 혁명의 현실성

2 장 지도적 계급으로서 노동자계급

3 장 노동자계급의 전위정당

4 장 제국주의 : 세계대전과 내전

5 장 무기로서 국가

6 장 혁명의 현실정치

1967년의 후기

 

 

 

 

 

 

 

 

 

 

 

 

 

 

 

 

 

 

 

 

 

 

 

 

 

서문

 

 

이 소책자로 레닌의 이론과 실천을 망라해서 완벽하게 기술하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 책은 그저 일부 공산주의자들조차 뚜렷이 깨닫지 못하는 레닌의 이론과 실천의 상호관계를 보여주려는 하나의 개략적인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 문제들을 모두 빠짐없이 다루려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지면이 필요하다. 더구나 레닌이 인생 전체에 걸쳐 한 작업을 완전히 설명하는데 필요한 이용할 수 있는 자료마저 충분하지 않다. 번역되어 있는 것 말고, 러시아어 문헌들을 읽을 수 없는 사람들에겐 특히 그렇다. 레닌의 일대기는 적어도 지난 30~40년의 역사적 틀 안에 놓여야 한다. 이 작업을 할 수 있는 연구가 곧 나오기를 기대해 보자.

 

이 서문을 쓴 필자 자신은 개별적인 문제를 부분으로서 포함하고 있는 전체가 풀리기 전에 개별적인 문제들에 대해 쓰는 것, 즉 일반에 보급해야 할 것을 논의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학문적으로 확립하기 전에 일반에 보급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깊이 깨닫고 있다. 이런 까닭으로 레닌의 일생을 사로잡았던 문제들을 전부 제시하거나 정확한 발생 순서대로 제시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 문제들의 선택, 순서, 발전은 오로지 문제들의 상관관계를 할 수 있는 한 뚜렷이 드러내겠다는 단 한 가지 생각에 따른 것일 뿐이다. 인용문도 이에 따라 선택한 것이지 정확한 연대순에 따른 것은 아니다.

 

 

19242월 비엔나

 

 

 

 

 

 

 

 

 

 

 

 

 

 

 

 

 

1 장 혁명의 현실성

 

역사 유물론은 노동자혁명의 이론이다. 왜냐하면 본질적으로 역사 유물론은 노동자계급을 낳고 근본적으로 결정하는 사회적 존재의 지적(知的) 종합이며,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계급은 역사 유물론 속에서 뚜렷한 자의식(self-consciousness)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 유물론을 대표하는 노동자계급 사상가의 능력은 이러한 사실과 역사 유물론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그가 얼마나 깊고 폭넓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헤아릴 수 있다. 즉 그러한 능력은 부르주아사회의 겉모습(外樣) 아래에서 노동자혁명을 불러오는 경향들을 얼마나 정확하게 꿰뚫어보느냐에 따라 측정될 수 있다.

이러한 기준으로 판단할 때, 레닌은 혁명적 노동자계급운동에서 맑스 이래 가장 탁월한 사상가이다. 기회주의자들은 감히 레닌의 중요성을 부인하거나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에 허황되게도 레닌이 러시아에서는 위대한 정치적 인물일지 몰라도 러시아와 전 세계 노동자계급의 지도자가 될 선진국 사이의 차이를 꿰뚫어 보지는 못했다고 말한다. 이들은 레닌이 지닌 역사적 한계가 러시아 현실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무비판적으로 일반화하고 이를 보편적으로 적용한 데에 있다고 주장한다. 기회주의자들은 오늘날 유감스럽게도 잊혀 진 것, 즉 맑스도 그 시절에는 그와 똑같은 비난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그때 사람들은 맑스가 영국의 경제생활과 공장체계를 관찰하고, 이를 무비판적으로 모든 사회발전의 보편적 법칙으로 공식화했다고 말했다. 또한 맑스의 관찰이 그 자체로는 아주 정확할 수도 있으나, 그것이 보편적 법칙으로 왜곡되었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게 되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이 같은 그릇된 인식을 자세히 논박할 필요도 없을 뿐만 아니라 맑스가 시공간적으로 제한된 특수한 경험들을 결코 일반화한 적이 없음을 새삼스럽게 보여줄 필요도 없다. 이러한 주장과는 반대로, 역사정치에 밝은 진짜 천재가 쓴 방법처럼, 맑스는 영국 공장체계의 소우주(microcosm)에서, 그 사회적 전제와 조건과 결과에서, 그리고 그것을 발전시키고 마침내 거꾸로 그 발전을 위협하는 역사적 경향에서, 자본주의발전 전체의 대우주(macrocosm)를 이론적이고 역사적으로 정확히 알아냈다.

과학이나 정치에서 이러한 방법이야말로 천재와 평범한 학자를 갈라놓는 차이이다. 평범한 학자는 사회발전 과정에서 직접적으로 주어진 고립된 계기만을 이해하거나, 그 계기들 사이에 있는 차이를 구별할 수 있을 뿐이다. 평범한 학자들이 일반적 결론을 끌어내려고 할 때에도, 실제로는 시공간적으로 제한된 현상의 어떤 측면을 매우 추상적으로 보편적 법칙으로 해석하고, 이를 적당히 적용할 뿐이다. 반면에, 천재에게는 한 시대의 진정한 본질과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주요 경향들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기 시대에 일어난 모든 사건의 배후에 흐르고 있는 주요 경향들을 꿰뚫어본다. 심지어 천재가 스스로는 일상사건을 다루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할 때에도, 그는 여전히 시대 전체의 결정적인 기본문제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것이 맑스가 지닌 빼어난 능력임을 잘 알고 있다. 맑스는 영국 공장체계에서부터 현대자본주의가 지닌 모든 주요 경향을 밝혀내고 설명했다. 그는 늘 자본주의 발전을 전체적으로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본주의의 어떤 하나의 현상 속에서도 자본주의의 총체성과 그 구조의 역동성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맑스가 자본주의 발전 전체를 대상으로 삼아 해냈던 작업을 레닌이 우리 시대를 대상으로 삼아 해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현대 러시아의 발전이라는 문제, 다시 말해 반()봉건적 절대주의국가에서 자본주의의 기원이라는 문제에서부터 후진농업국가에서 사회주의국가의 건설이라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레닌은 늘 당대의 문제를 전체적으로 보았다. 이를 테면, 그는 자본주의의 마지막 단계가 시작되고 그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전개될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사이에 벌어질 마지막 투쟁을 노동자계급에게 이롭게 만들 수 있다는 점, 즉 인간해방의 가능성을 보았다.

맑스와 마찬가지로 레닌은 결코 시공간적으로 제한된 지엽적인 러시아의 경험을 일반화하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우리 시대의 근본문제, 즉 곧 닥쳐올 혁명 을 처음 나타난 바로 그때, 바로 그곳에서 꿰뚫어보았고, 그때부터 줄곧 국제적인 사건뿐만 아니라 러시아에서 일어난 사건 모두를 이러한 관점, 즉 혁명의 현실성(the actuality of revolution)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하고 설명했다.

혁명의 현실성, 이것이야말로 레닌사상의 요체이며, 그가 맑스와 연결되는 핵심이다. 왜냐하면 혁명이 하나의 실제 현실로서 역사의 일정에 이미 올라 있을 때에만, 맑스의 표현대로라면, 노동자계급의 고통 속에서 고통 그 자체뿐만 아니라 구질서를 무너뜨릴혁명적 요소까지도 발견될 때에만, 노동자해방투쟁의 개념적 표현으로서 역사 유물론은 이론적으로 이해되고 정식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에도 노동자혁명의 현실성을 알아내려면 천재의 대담무쌍한 예지가 필요하다. 보통 사람은 노동자대중이 이미 바리케이드를 치고 싸우고 있을 때에야 비로소 노동자혁명을 이해하며, 이때에도 속류 맑스주의 교육을 받은 사람은 혁명을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속류 맑스주의자는 부르주아사회의 기초가 너무나 단단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기초가 눈에 보일 정도로 흔들리고 있을 때에도 그저 정상상태로 돌아가기를 바라고 기도하며, 부르주아 사회의 위기를 일시적인 사건 정도로 보고, 위기 때 일어난 투쟁도 난공불락의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터무니없고 무책임한 반란으로 생각해버린다. 속류 맑스주의자에게, 바리케이드를 치고 싸우는 사람들은 모두다 정신병자들이고, 패배한 혁명은 하나의 과오이며, 성공적인 혁명을 수행하는 사회주의 건설자도 명백한 범죄자로 보인다.

그러므로 역사 유물론은 노동자혁명의 보편적 현실성을 전제로 한다. 이런 뜻에서 노동자혁명은 시대 전체의 객관적 토대이자 이를 이해하는 열쇠인 맑스주의의 생생한 핵심이 된다. 이렇게 한계를 정해놓았지만, 근거 없는 모든 환상을 딱 잘라 물리치고 모든 폭동주의(putschism)를 호되게 비난하는 것으로 표현되는 맑스주의에 대한 기회주의 해석은 이른바 맑스의 개별적 예언에 나타난 몇몇 오류를 붙잡고 늘어져서 맑스주의 전체에서 혁명을 뿌리째 뽑아버리려고 한다. 게다가 맑스가 분석한 사상의 핵심정통적으로 이어갔다고 하는 사람들은 맑스를 비판하는 사람들과 서로 타협한다. 보기를 들면, 카우츠키(Kautsky)는 베른슈타인(Bernstein)에게 노동계급독재는 미래의 문제, 그것도 아주 먼 미래의 문제로 남겨둘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레닌은 노동계급독재에 대한 맑스주의 이론의 순수성을 다시 곧추세웠다. 레닌이 맑스주의 이론을 훨씬 더 뚜렷하고 구체적으로 이해한 것은 바로 이 문제이다. 그는 맑스의 사상을 개혁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맑스가 죽은 뒤 역사발전의 새로운 전개과정을 맑스주의 이론에 통합시켰던 것이다. 이것은 노동자혁명의 현실성이 더 이상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노동자계급 위에 아득히 펼쳐져 있는 세계사적 지평선만은 아니며, 혁명이 이미 역사의 일정에 올라 있음을 뜻한다. 레닌은 이런 태도 때문에 블랑키주의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레닌이 이러한 비판을 쉽게 견뎌 낸 것은 그가 잘 알려진 친구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즉 맑스(맑스의 어떤 측면’)와 함께 이 비판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이 친구 옆에 나란히 자신의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맑스나 레닌 모두 노동자혁명의 현실성과 혁명의 목적이 아무 때나 손쉽게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두 사람 모두가 당대의 모든 문제를 평가할 확실한 시금석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혁명의 현실성을 통해서였다. 혁명의 현실성은 전()시대의 기본방침(key-note)을 제공한다. 각각의 행동은 사회적역사적 전체를 정확히 분석함으로써만 발견할 수 있는 혁명의 중심문제와 관련해서만 혁명적인지 반()혁명적인지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혁명의 현실성은 각각의 일상문제를 사회적역사적 전체와 구체적인 관련 속에서 노동자해방의 계기로서 연구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맑스주의가 레닌을 통해 발전한 것은 그저(!) 개별 행동과 일반적 운명, 즉 전체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운명 사이에 놓인 긴밀하고 가시적인 중대한 연관성을 훨씬 더 많이 알아냈다는 데에 있다. 이를테면, 이것은 그때의 모든 문제가 바로 그 당시의 문제이자 아울러 혁명의 근본문제가 되었음을 뜻할 뿐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노동자혁명은 일상적인 문제가 되었다. 레닌 혼자서만 이 혁명이 닥쳐올 것이라고 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희생의 용기와 헌신과 역량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론상으로는 노동자혁명의 기운이 감돈다고 떠들다가도 혁명이 하나의 현실로 나타났을 때에는 비겁하게 도망간 다른 사람들과 뚜렷이 구별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론적으로도 철저했던 점에서 그 시대의 가장 훌륭하고 헌신적이며 선견지명을 가진 사람들과도 구별된다. 왜냐하면 이들은 혁명의 현실성을 맑스가 그의 시대에 해석할 수 있었던 것처럼, 시대 전체의 근본문제로 해석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관점에서만 본다면, 이들의 해석은 옳았다. 그러나 이들은 그 해석을 적용하거나 이용해 모든 일상적 문제에 대한 확고한 지침 - 그것이 정치적이건 경제적이건, 이론과 관련되건 전술과 관련되건, 선동과 관련되건 조직과 관련되건 간에 - 을 수립할 수는 없었다. 이렇게 레닌 혼자만이 지금은 아주 실천 세력이 된 맑스주의를 구체화하는 발걸음을 내딛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레닌은 세계사적 뜻에서 노동자해방투쟁사상에서 맑스에 버금가는 단 한 명의 이론가인 것이다.

 

 

2 장 지도적 계급으로서 노동자계급

 

러시아에서 자본주의가 실제로 발전하기 전에, 즉 산업노동자계급이 나타나기 오래 전에 이미 러시아에서 일어난 국내 상황은 눈에 띌 만큼 동요했다. 농업적 봉건주의가 무너지고 있었고 관료적 절대주의가 쇠퇴하고 있다는 점은 이미 훨씬 전부터 러시아 현실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이에 따라 아직까지는 분명하지 않고 혼란스러우며, 기껏해야 본능적일 뿐이긴 했지만 때때로 차르 체제(Tsarism)에 맞서 봉기하는 계층이 형성되자, 농민층이 동요했고 이른바 탈 계급화된 인텔리겐치아(declassed intelligentsia)가 급진화되었다. 분명히 러시아에서 자본주의 발전은 아무리 그 뜻뿐만 아니라 예리한 관찰자에게조차 실재(實在)가 희미한 상태였을지라도, 객관적 혼란을 가중시켰으며, 따라서 혁명적 이데올로기도 강화시켰다. 1848년까지만 해도 유럽 반동세력의 안전한 피신처였던 러시아가 19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점점 혁명의 전운이 감돌고 있음은 더욱더 분명해졌다. 이제 문제는 단지 이 혁명의 성격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고, 이와 밀접히 관계있는 것으로 어떤 계급이 혁명에서 지도적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1세대 혁명가들이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에서 아주 분명하지 못했던 이유는 쉽게 알 수 있다. 이들은 차르에 맞서 봉기한 집단들 가운데 맨 먼저 하나의 동질적인 요소를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인민이었다. 이 단계에서도 인텔리겐치아와 육체노동자의 구분은 뚜렷했지만, 이 구분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인민들 사이의 계급적 윤곽이 아주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인텔리겐치아 가운데 정말로 정직한 혁명가들, 인민과 자신을 일치시키고, 인민들의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것만을 자신의 절대적인 의무로 여긴 혁명가들만이 이 운동에 가담했다.

그러나 이 단계의 혁명운동에서도 유럽의 발전은 러시아에서 일어난 사건들과 관계없지 않았고, 혁명가들이 사건을 평가하는 역사적 관점에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자동적으로 생겨난다. 유럽의 발전경로, 즉 자본주의발전이 러시아에서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인가? 러시아도 사회주의를 통해 구원받기 전에 자본주의라는 지옥을 거쳐야 하는가? 아니면, 러시아에는 아직까지 촌락공동체가 남아있기 때문에, 러시아가 독특하게도 자본주의단계를 건너뛰고 원시공산주의로부터 바로 발전된 공산주의로 나아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은 그때만 해도 오늘날과 같이 뚜렷하지 않았다. 1882년까지만 해도 엥겔스는 러시아의 혁명이 동시에 유럽의 노동자혁명을 일으킨다면, “오늘날 러시아에 있는 공동소유제가 공산주의의 발전을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이 문제에 답하지 않았던가?

이 문제를 놓고 벌어진 논쟁은 이 글에서 설명하지 않겠다. 다만 이 문제로부터 우리의 출발점이 정해진다. 이를테면, 다가오는 러시아혁명을 이끌 계급은 누구인가라는 문제가 그것이다. 왜냐하면 촌락공산주의를 혁명의 근원이자 경제적 토대로 본다면, 농민층이 사회변혁의 지도적 계급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처럼 러시아에서 혁명의 경제적사회적 바탕이 유럽과 다르다면, 러시아에서 혁명을 알려면 역사 유물론과는 다른 이론적 근거가 발견되어야 할 것이다. 역사 유물론은 노동자계급의 지도 아래 사회가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필연적으로 이행하는 것을 개념적으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러시아가 자본주의의 길을 따라 발전하고 있는가, 러시아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 더 나아가 역사 유물론이 일반적으로 효과 있는 사회발전이론인가 아닌가에 대한 이론적방법론적 논쟁, 마지막으로, 사회의 어떤 계급이 러시아혁명을 이끌 진정한 원동력이 되도록 부름 받을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 이 모든 것은 같은 문제로 귀결된다. 이것들은 모두 러시아 노동자계급 성장의 이데올로기적 반영, 즉 노동자계급이 다른 사회계급에서 이데올로기적으로(그리고 이에 따라 전술적으로나 조직적으로도) 독립해 가는 발전과정의 계기들이다.

이것은 모든 노동운동이 거쳐야 하는 길고도 험난한 과정이다. 계급상황의 특수성과 노동자 계급이해의 자율성이 나타나는 개별문제들만이 러시아에 특수한 노동운동의 요소를 형성한다(독일 노동자계급은 라쌀레-베벨-슈바이쩌(Lassalle-Bebel-Schweitzer) 시기에 비슷한 단계에 있었고, 독일의 통일은 노동운동에서 참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하나의 계급으로서 노동자계급이 행동의 계급적 독자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러한 지엽적인 문제들 자체에 대한 올바른 해결책이 마련되어야만 한다. 아무리 훌륭한 이론적 훈련도 일반적 문제에만 국한된다면 전혀 쓸모없는 것이다. 이론적 훈련이 실천적으로 효과를 거두려면 바로 이러한 특수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보기를 들어, 빌헬름 리프크네히트(Wilhelm Liebknecht)는 정열적인 국제주의자이자 맑스의 직계 제자이지만, 순수이론의 수준에서는 훨씬 더 혼돈스러웠던 라쌀레 추종자들보다 더 자주 또는 더 확실하게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이 점에서 러시아가 특이한 점은 다가올 혁명에서 노동자계급의 지도적 역할을 인식하기 위한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에 대한 이와 같은 이론적 투쟁이 러시아에서만큼 뚜렷하고 명백한 해결책을 찾은 곳은 아무데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러시아 노동자계급은 모든 선진국들이 예외 없이 경험한 우유부단과 퇴보, 즉 성공적인 계급투쟁 과정에서는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이론적 명확성과 전술적조직적 확신에서 보인 우유부단과 퇴보를 거의 겪지 않아도 되었다. 적어도 러시아 노동자계급의 가장 의식 있는 층은 러시아 노동자계급의 객관적 계급상황이 러시아 자본주의의 경제력으로부터 전개되었던 것처럼 직접적이고 뚜렷하게 이론적, 조직적으로 형성될 수 있었다.

레닌이 이러한 이론투쟁을 해나간 최초의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문제를 근본적으로 철저하게 생각하고, 자신의 이론적 통찰력을 철저하게 실천에 옮긴 사람은 레닌뿐이었다.

레닌은 원시적러시아 사회주의, 즉 나로드니키(Narodniks)에 맞서 싸운 이론적 대변인 가운데 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이것은 이해할만하다. 그의 이론적 투쟁은 러시아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에 노동자계급의 독자적이고 지도적인 역할을 세우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의 과정과 내용이 맑스가 개관한 것과 같은 자본주의발전의 전형적인 길(, 원시적 축적)이 러시아에서도 타당한가, 다시 말해 러시아에서도 생존력 있는 자본주의가 있을 수 있으며, 또 있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증명하는데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논쟁은 반드시 노동자 계급투쟁의 대변자와 신생 러시아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그들을 한 진영으로 몰아넣었다. 왜냐하면 인민이라는 형태 없는 대중에서부터 노동자계급을 이론적으로 구별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노동자계급의 독자성과 지도적 역할을 알거나 깨닫게 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러시아 경제가 자본주의의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단순하고, 기계론적이며, 비변증법적인 증명논리는 자본주의의 접근을 무조건 받아들이고 촉진하는 것 같았다. 이것은 진보적 자본가계급에게 사실로 보였을 뿐만 아니라 맑스를 변증법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기계론적으로 해석한 모든 노동자계급의 맑스주의자들에게는 더욱더 필연적인 것으로 보였음에 틀림없다. 진보적 자본가계급의 일시적인 맑스주의적이데올로기는 맑스주의야말로 전()자본주의 세계의 붕괴에서부터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증명한 단 하나의 경제이론이라는 점을 염두에 둘 때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이들은 맑스가 모든 신화와 관념론에서 탈피해 헤겔에게서 배운 것을 자신의 이론에 어떻게 통합시켰는지를 알지 못한다. 다시 말해, 하나의 사실이나 경향을 정말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 자신의 행동규범을 이루는 하나의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환상을 버리고 사실을 똑바로 마주하는 것이 모든 진정한 맑스주의자가 지녀야 할 신성한 의무이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고립된 사실이나 경향보다 더 현실적인, 따라서 더 중요한 하나의 현실이 언제나 있다. 그 현실이란 바로 총체적 발전과정으로서 현실, 즉 사회발전의 총체성이다. 따라서 레닌은 이렇게 말했다. “자본가계급이 하는 일은 트러스트(trust)를 촉진하고, 여성들과 어린이들을 공장으로 내몰고, 이들을 타락과 고통 속에 가두고, 극도의 가난에 빠뜨리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발전을 요구하지도, ‘저지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이것과 싸운다. 그러나 어떻게 싸울 것인가? 우리는 트러스트와 여성의 산업체 고용이 진보적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수공업체제나 전()독점자본주의체제로 또는 여성을 하찮은 가사 일을 일삼아 하게 하는 체제로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트러스트 등을 통해 앞으로, 그리고 이를 뛰어넘어 사회주의로!”

이것이 모든 영역에서 제기된 문제들에 대한 레닌적 해결책의 출발점이다. 여기에서 러시아의 자본주의발전과 이러한 발전 속에 들어있는 역사적 진보가 필연적임을 인식한다고 하더라도 노동자계급이 무조건 이를 지지해야 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자본주의발전만이 노동자계급이 결정적 세력으로 나타나는 바탕을 마련해주기 때문에,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 발전을 환영해야 한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의 진짜 주역, 즉 자본가계급에 대한 자신의 격렬한 투쟁의 전제조건으로서 환영해야 한다.

오직 역사적 경향들의 필연성에 대한 이와 같은 변증법적 이해를 통해서만 계급전쟁에서 노동자계급이 자주적으로 출현할 수 있는 이론적 여지가 마련된다. 만약 러시아에서 자본주의발전의 필연성을 단순히 러시아 자본가계급의 이데올로기적 선구자들과 그 다음에 나타나는 멘셰비키의 방식대로 받아들인다면, 러시아는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자본주의발전을 완수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올 것이며, 이 발전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자본가계급이다. 이런 도식에 따르면, 자본주의가 한참 발전한 다음에, 즉 자본가계급이 봉건주의의 경제적정치적 찌꺼기를 모두 청산하고, 이를 대신하여 근대적자본주의적민주적 국가를 수립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노동자계급의 독자적인 계급투쟁이 시작될 수 있다. 자본가계급과 차르 체제 사이에서 벌어진 투쟁에서 노동자계급이 독자적 세력으로 생각되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계급이 독자적인 계급목적으로 가지고 때 이르게 (역사의 무대에) 떠오르는 것은 쓸모없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계급 자신에게도 치명적이다. 이는 자본가계급을 놀라게 하고, 자본가계급이 차르 체제에 가할 파괴력을 크게 줄여놓으며, 자본가계급이 공장 노동자계급에 대항해 무장하도록 한다. 이런 해석에 따르면, 현대적 러시아를 건설하려는 투쟁에서 얼마동안 노동자계급은 진보적인 자본가계급의 보조세력일 뿐이다.

그 시대에는 문제의 성격이 뚜렷하지 않았더라도 요즘에는 이 모든 논쟁의 뿌리가 혁명의 현실성이라는 문제에 있었음이 틀림없다. 어느 정도 의식 있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을 빼고 난 다른 사람들에게는 혁명을 노동운동의 일정에 올라있는 현안으로 보느냐, 아니면 그것에 대한 현재의 결정이 뚜렷한 영향력을 행사하기에는 적당하지 못한 먼 미래의 최종목적으로 보느냐에 따라 노선이 갈라졌다. 만약 멘셰비키의 역사관이 옳은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노동자계급이 이들의 견해를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인지는 의심스럽다. 그리고 이런 자본가계급의 충실한 가신들이 노동자 계급의식을 아주 모호하게 만들어서, 심지어는 멘셰비키 자신의 이론상으로도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역사적 순간에도 노동자계급이 자본가계급에서부터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이데올로기적으로 불가능하거나, 적어도 꽤 어렵지 않을까 의심스럽다(이 문제는 영국의 노동자계급을 생각하기만 하면 알 수 있다). 이것은 정말 부질없는 생각임에 틀림없다. 기회주의자들은 맑스주의에서 역사변증법을 제거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쓴다. 그렇지만 역사변증법은 이들의 의지와는 반대로 작동하기 때문에 기회주의자들을 부르주아 진영으로 몰아넣는다. 그 결과, 이들에게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출현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아득히 먼 미래로 미루어진다.

역사는 레닌과 혁명의 현실성을 주장했던 몇 안 되는 사람들이 옳았다고 증명해주었다. 이미 독일통일을 위한 투쟁시기에 환상으로 밝혀진 진보적 자본가계급과 동맹은 계급으로서 노동자계급이 자본가계급을, 따라서 차르 체제와 동맹할 수 있을 경우에만 유지될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혁명의 현실성은 자본가계급이 더 이상 혁명적 계급이 될 수 없음을 뜻했기 때문이다. 자본가계급이 주역이고, 수익자인 경제체제는 절대주의와 봉건주의와 견주어 진보를 뜻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자본가계급의 이러한 진보적 성격 또한 변증법적이다. 자본가계급의 경제적 전제와 이들이 요구하는 정치적 민주주의 또는 법의 통치 사이의 필연적 관계는 점점 더 느슨해졌다. 한편으로, 노동자혁명이 점점 더 빨리 다가 옴에 따라 자본가계급과 봉건적 절대주의가 동맹할 수 있었고, 여기에서 자본가계급의 경제적 존재와 성장에 필요한 조건들은 구 지배세력의 정치적 헤게모니에 의해 보장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동맹으로 자본가계급이 이데올로기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이전에 자본가계급이 내걸었던 혁명적 요구는 오직 노동자혁명을 통해 실현될 수 있었다.

물론 자본가계급과 구 지배세력이 맺은 이러한 동맹은 더 큰 악에 대한 공통의 두려움에서 일어난 타협이지 공통의 이해관계에 따른 계급동맹이 아니다. 그 점에서 문제가 있다하더라도, 이것은 중요한 새로운 사실로 남으며, 이것을 염두에 둔다면 자본주의발전과 민주주의의 필연적 관계라는 도식적이고 기계론적인 증명은 완전히 허구임이 드러난다. 레닌은 어쨌든 정치적 민주주의 - 아무리 이론상으로는 이른바 순수자본주의의 전형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 가 자본주의 위에 놓인 상부구조의 있을 수 있는 형태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둘 다 어떠한 정치형태 하에서도 발전하고 거꾸로 그것을 종속시킨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라고 했다. 특히 러시아에서는 자본가계급이 차르 체제에 대해 분명히 급진적 반대 태도를 갖다가 재빨리 돌아서 차르 체제를 지지한 까닭은 본질적으로 러시아에 이식된 초기부터 현저하게 독점적 성격, 즉 대규모산업의 지배, 금융자본의 역할 등을 띠었던 자본주의의 비유기적발전에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러시아에서 자본가계급은 결과적으로 좀 더 유기적인 자본주의발전을 겪은 다른 나라들보다 많지도 않고 허약한 계층이었다. 그러나 그와 함께 혁명적 노동자계급이 발전하는데 필요한 물질적 기반은 러시아 자본주의의 발전 속도를 순전히 통계적으로 계산함으로써 추측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 대규모공장들 안에서 구축되었다.

그러나 진보적 자본가계급과 맺은 동맹이 환상임이 밝혀지고, 노동자계급이 독립해가는 과정에서 이미 인민이라는 혼돈된 개념과 완전히 결별했다면, 바로 이 힘들여 얻은 독립 때문에 노동자계급은 완전히 고립되고, 어쩔 수 없이 가망 없는 투쟁에 말려드는 것은 아닐까? 레닌의 역사관에 대한 이와 같은 빈번하고 매우 분명한 반대는 만일 나로드니키의 농업이론에 대한 부정, 즉 촌락공산주의의 잔재와 필연적 붕괴에 대한 인식이 또한 변증법적이지 않다면 타당할지도 모른다. 변증법적 이해란 늘 실제의 변증법적 사실의 개념적 형태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이 분해과정의 변증법은 이러한 낡은 형태가 명확히 하나의 방향으로 무너지는 필연성에 있다. , 그 방향이 붕괴의 과정이며, 바꿔 말하면 부정적인 경우에 한해서 그렇다. 붕괴의 긍정적 방향은 결코 그 안에 들어있지 않고, 사회적 환경의 발달과정, 즉 전체적인 역사적 상황의 발전 속도에 달려 있다.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구 농업형태(소토지 뿐만 아니라 대토지까지도)의 피할 수 없는 경제적 분해는 두 가지 서로 다른 길로 나아갈 수 있다. 레닌에 따르면, “두 가지 해결책 모두 각각 다른 방식으로 좀 더 높은 기술단계로 변화하는 것을 쉽게 해주고, 농업의 진보를 지향한다.” 하나는, 농민층의 삶에서 중세의 모든 잔재와 그 이전의 관행 모두를 쓸어버리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레닌이 프러시아적 이행이라고 했던 것으로서 중세적 토지소유제가 한 번에 완전히 제거되지 않고 점진적으로 자본주의에 적응해가는 데 그 특징이 있다.” 두 가지 모두 있을 수 있다. 이전에 있었던 것과 견주어 볼 때, 두 가지 모두 경제적으로 진보적이다. 그러나 이것들이 모두 똑같이 가능하고, 어떤 뜻에서 똑같이 진보적이라면, 두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가 현실태가 되도록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문제에 대한 레닌의 답은 다른 문제들에서처럼 분명하고, 모호한 구석이 전혀 없다. 바로 계급투쟁이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이 스스로 지도적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이 더욱더 선명해지고 구체화된다. 왜냐하면 이 계급투쟁에서 노동자계급만이 결정적 세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문화적으로 아주 뒤떨어져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이들의 객관적 계급위치 때문에, 참아낼 수 없을 정도로 점점 더 나빠지는 상황에 본능적으로 반항할 수 있을 뿐이다. 이들의 객관적 계급위치 때문에 농민들은 정치적으로 우유부단한 계층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들의 운명은 궁극적으로 도시의 계급투쟁 즉, 도시, 대규모사업, 국가기구의 운명에 의해 결정된다.

오직 이런 맥락에서만 노동자계급이 결정권을 손아귀에 장악하게 된다. 만일 러시아의 농업적 봉건주의를 자본가계급이 자신의 방식대로 제거했다면, 자본가계급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어떤 역사적 시점에서는 덜 유망했을 수도 있다. 차르 체제가 이것을 어렵게 만든 것은 자본가계급이 일시적이나마 혁명적 또는 적어도 반항적 태도를 갖게 된 이유이다. 그러나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노예화되고 빈곤해진 몇 백만 농민의 본능적 폭발은 영원한 가능태로 남게 된다. 오직 노동자계급만이 이 본능적 폭발에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노동자계급만이 이 대중운동을 농민층에게 진정으로 쓸모 있게 이끌 수 있고, 또 그래야만 노동자계급이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차르 체제와 투쟁할 수 있는 조건이 창출된다.

따라서 러시아의 사회적경제적 구조는 노동자계급과 농민층의 동맹을 위한 객관적 바탕을 마련했다. 두 계급의 목적은 달랐다. 그렇기 때문에 인민과 같이 모호하고 민중주의적인 개념으로 두 세력을 조잡하게 결합하려는 시도는 결국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그러나 오직 연대투쟁을 통해서만 이들의 각기 다른 목적은 실현될 수 있다. 따라서 러시아혁명에 대한 레닌의 성격 규정에서 낡은 나로드니키의 개념이 변증법적으로 변형되어 다시 나타난다. 모호하고 추상적인 인민개념은 배격되어야 했지만, 이것은 노동자혁명의 조건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를 통해 혁명적이고 명확한 인민개념, 이를 테면 모든 피억압자들의 혁명적 동맹을 수립하려는 것이었다. 바로 그 점에서 레닌의 당이 스스로를 진정한 나로드니키의 혁명 전통을 이어간 것이라고 자처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 이유이다. 그러나 이 투쟁을 지도할 의식과 능력은 객관적 계급관점에서 볼 때 오직 노동자계급의 계급의식 속에서만 존재하므로, 노동자계급만이 곧 닥쳐올 혁명에서 사회변혁을 지도하는 계급이 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3장 노동자계급의 전위정당

 

우리는 앞에서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과제가 다른 계급들과 모든 이데올로기적 연관관계를 끊고, 자기 특유의 계급입장과 그에 따른 계급이해의 독자성을 바탕으로 삼아 자신의 계급의식을 세우는 것임을 살펴보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은 경제적정치적 억압자에 대한 공동투쟁에서 부르주아 사회의 모든 피억압피착취 계급을 지도할 수 있다. 노동자계급이 지닐 지도적 역할에 대한 객관적 토대는 자본주의 생산과정 내에서 노동자계급이 차지하는 위치이다. 그러나 그런 지도적 역할을 해내는데 알맞은 올바른 노동자 계급의식이 마찰이나 장애 없이, 마치 노동자계급이 자기 계급에 부과된 혁명적 소명으로 점진적으로 이데올로기적 진화를 할 수 있는 것처럼 저절로 점진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결론짓는 것은 맑스주의의 기계론적 적용이며, 따라서 완전히 비역사적인 환상이다.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경제적 진화를 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베른슈타인 논쟁(Bernstein debates)을 통해 뚜렷이 드러났다. 그렇지만 베른슈타인 논쟁의 이데올로기적 측면(, 이데올로기적 진화의 문제)은 유럽의 수많은 정직한 혁명가들의 마음속에 부정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게다가 문제나 위험으로 여기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훌륭한 혁명가들이 이 문제의 존재와 중요성을 완전히 무시했다거나, 노동자계급이 궁극적으로 승리하기까지 먼 길을 가야하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계급이 수많은 실패를 경험해야 하며, 도중에 물질적 장애물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퇴행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의 말을 인용하자면, 이들은 노동자혁명이 그 사회의 전제조건 때문에 아주 빨리일어날 수는 없지만, (이데올로기적 힘)의 유지에 관한 한 아주 빨리일어나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노동자해방의 길에 대한 이와 같은 역사적 관점에도, 집단행동과 여타 경험들을 통한 대중의 자생적인 혁명적 자기교육이 이것이 확고한 이론에 따른 당의 선동선전을 통해 보충된다고는 하지만 그 필연적 발전을 확실히 보장하기에 충분하다고 여전히 주장한다면, 노동자계급이 혁명적 소명으로 이데올로기적으로 진화할 것이라는 관념을 진실로 극복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레닌은 이 문제를 이론적 근원으로까지 파고들어 결정적인 실천적 측면, 즉 조직적 측면에서 해결하려고 한 최초의 그리고 오랫동안 단 하나의 중요한 지도자이자 이론가였다.

1903년 브뤼셀/런던당대회(Brussels/London Congress)에서 당 규약 제1조에 대한 논쟁은 지금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이 논쟁은 (멘셰비키가 원했던 것처럼) 당원이 되려면 당을 지지하고 당의 통제 하에 활동하기만 하면 되는가, 아니면 본질적으로 당원은 비합법행위에 참여하고, 당의 사업에 전심전력을 다해 헌신하며 아무리 엄격한 당 규율에도 복종해야만 하는가라는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조직에 관한 다른 문제들, 보기로 들면 중앙 집중주의의 문제는 후자의 입장(, 레닌주의적 관점)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기술적 문제에 지나지 않았다.

또한 이 논쟁은 혁명적 가능성(가능한 경로와 성격)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기본태도 사이에 놓인 갈등과 관련해서 이해될 수 있다. 비록 그때 이 관계를 모두 꿰뚫었던 인물은 레닌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볼셰비키 당조직 개념에는 계급 전체의 다소 무질서한 대중으로부터, 어떤 희생이라도 치를 각오가 되어 있는 외곬의 혁명가 그룹을 선발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 직업적 혁명가들이 실제 계급 환경에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키고 구별함으로써 하나의 분파로 전락할 위험은 존재하지 않는가? 이러한 당 개념은 총명한수정주의자들이 맑스에게서도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블랑키주의의 실질적 결과 바로 그것은 아닌가? 이 글에서 이런 비판이 블랑키 자신에 대해서도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일일이 검토할 수는 없다. 이런 비판은 레닌의 당조직 개념의 핵심을 놓치고 있다. 왜냐하면 레닌이 말했던 것처럼, 직업적 혁명가 그룹은 혁명을 불러일으키거나,” 자신의 독자적이고 대담한 행동으로 소극적인 대중을 선동하여 혁명적 기정사실에 몰아넣는 것을 단 한 순간도 자신의 임무로 삼지 않기 때문이다. 레닌의 당조직 개념은 혁명의 사실, 현실성을 전제로 한다. 만일 멘셰비키의 역사적 예측이 옳았다면, 즉 비교적 조용한 번영기와 민주주의의 완만한 보급기가 계속되어서 그 동안에, 적어도 후진국에서 진보적계급이 인민의 봉건적 잔재를 일소해 버렸다면, 직업적 혁명가들은 필연적으로 분파주의에 빠졌거나 단지 선전클럽으로 전락해버렸을 것이다. 당은 노동자계급 가운데 가장 의식적인 분자들의 엄격하게 중앙집중화된 조직으로서, 그리고 이러한 조직으로서만 혁명적 시기에 계급투쟁의 도구로 간주된다. 레닌은 이렇게 말했다. “조직의 문제에서부터 정치적 문제를 기계적으로 분리할 수 없으며, 우리가 노동자혁명의 시기에 살고 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볼셰비키 당조직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사람은 모두 당을 완전히 잘못 이해한 것이다.”

한편 이와는 정반대의 관점에서, 바로 혁명의 현실성 때문에 이 같은 조직이 불필요하다는 반론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 혁명운동이 정체상태에 있을 때는 직업적 혁명가들을 조직하고 결합하는 것이 쓸모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혁명의 시기에 대중들이 한꺼번에 떨쳐 일어난다면, 그래서 이들이 몇 주 심지어는 며칠 안에 몇 십 년 전보다 훨씬 더 혁명적인 경험들을 쌓고 훨씬 더 성숙해진다면, 또한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이익이 되는 문제에 대해서조차 운동에 가담하기를 거부해왔던 사람들마저 혁명적으로 된다면, 볼셰비키 당조직은 불필요하고 무의미할 것이다. 다시 말해, 볼셰비키 당조직은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이자 영향력을 갖게 된다면 대중의 자생적인 혁명적 창의성을 제약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러한 반론은 분명히 사회주의로 진화적인 이데올로기의 발전이라는 문제로 되돌아가게 한다. 공산주의자 선언(Communist Manifesto)은 노동자혁명정당과 전체로서 노동자계급과의 관계를 아주 또렷이 정의하고 있다. “공산주의자는 오직 다음과 같은 점에서만 다른 노동자계급정당들과 구별된다. 1. 다양한 일국적 투쟁에서 노동자들은 국적에 상관없이 전체 노동자계급의 공동이해를 지적하고 전면에 내세운다. 2. 자본가계급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거쳐야 할 여러 발전단계에서 언제 어디서나 운동 전체의 이해를 대변한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들은 실천적으로는 모든 나라의 노동자계급정당들 가운데 가장 선진적이며 단호한 분자로서 다른 정당들을 앞으로 이끌어준다. 또 이론적으로는 노동자운동의 진행 방향과 조건과 궁극적인 전반적 결과들을 대다수의 노동자대중과 견주어 볼 때 명확히 이해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들은 노동자 계급의식의 현실적 구현체이다. 이들의 조직 문제는 이들이 노동자계급으로 하여금 진실로 자신의 계급의식을 갖게 하고, 스스로 계급의식을 체득케 해, 계급의식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통해 결정된다. 당의 혁명적 역할을 무조건 비판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이러한 과정이 자본주의의 경제력이 기계적으로 진화해서든 아니면 단순히 대중의 자생성이 유기적으로 성장해서든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한다. 레닌이 지닌 당 개념과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당 개념과의 차이는 한편으로는, 노동자계급 안의 상이한 경제적 변화(노동귀족의 성장 등)를 레닌이 좀 더 깊고 철저하게 인식한 데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이미 살펴본 것처럼, 새로운 역사적 관점에서 노동자계급과 다른 계급들과 혁명적 협력에 대한 레닌의 뛰어난 통찰력에 있다. 여기에서 노동자 계급이 혁명의 준비와 지도력에서 지닌 중요성이 커지며, 또한 이 점에서 노동자계급에 대한 당의 지도력이 중요해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노동귀족의 등장과 점점 더 커지는 중요성이 뜻하는 것은 특정 노동자계급 집단의 일상적 이해관계와 노동자계급 전체의 진정한 이해관계 사이에 늘 존재하는 상대적 괴리가 더욱 넓어지고 화석화된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지방, 길드 등으로 나뉘어 있던 노동자계급을 강제적으로 평준화해 하나로 묶은 자본주의 발전은 이제는 새로운 형태의 분열을 조장한다. 이것은 노동자계급이 더 이상 일치된 적대감으로 자본가계급에 대항할 수 없게 되었음을 뜻한다. 뿐만 아니라 바로 이 집단들(보기를 들면, 노동귀족)은 계급 전체에 대해 반동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들이 점점 더 부르주아적 시각을 갖게 됨에 따라 성숙한 노동자 계급의식을 갖고 있지 않게 되었지만, 또는 오히려 바로 그 때문에 이들은 소부르주아 생활수준에 접근하고, 당이나 노동조합의 관료직과 시정직(市政職)을 차지함으로써 공식적 교육을 더 받을 수 있게 되며, 나머지 노동자계급보다 행정 경험도 더 갖게 된다. 다시 말해, 노동자 조직에 대한 이들의 영향은 모든 노동자의 계급의식을 둔화시키는 경향이 있고, 노동자들을 자본가계급과 암묵적으로 동맹하게 만든다.

이론적 선명성과 그에 따른 의식 있는 혁명집단의 선동과 선전만으로는 위와 같은 위협에 충분히 대처하기 어렵다. 이러한 이해관계의 갈등은 노동자들에게는 오랫동안 은폐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이데올로기적 대변자들도 자기가 이미 계급 전체의 이해를 저버렸음을 간혹 깨닫지 못할 정도이다. 따라서 이러한 이해관계의 차이는 이론적 의견 차이전략상의 차이일 뿐이라는 미명 아래 쉽게 노동자들에게 은폐된다. 그러므로 때로는 대규모 자생적 대중운동에서 폭발하는 노동자들의 혁명적 본능은 계급 전체의 지속적인 소유물과 같은 적극적 계급의식의 본능적 수준을 보존하지 못한다.

이 점만으로도 노동자계급 가운데 충분히 의식 있는 분자들의 조직적 독자성은 필요불가결하게 된다. 바로 이 점은 레닌주의의 조직 형태가 곧 닥쳐올 혁명을 내다볼 수 있는 능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오직 이 맥락에서만 올바른 길로부터 모든 이탈이 노동자계급에게 치명적이고 파국적인 것이며, 겉보기에 사소한 일상적 문제에 대한 결정이 노동자계급에게 참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오직 이 맥락에서만 노동자계급이 자신이 부딪힌 계급상황에 진실로 맞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이 자신들에게는 생사가 걸린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혁명의 현실성은 또한 사회의 동요, 즉 구질서의 붕괴가 노동자계급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계급과 관련되는 문제라는 것을 뜻한다. 레닌은 결국 혁명적 상황의 진정한 지표는 하층계급이 구질서를 원하지 않을 때, 그리고 상층계급이 기존의 방식으로 더 이상 구질서를 유지할 수 없을 때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혁명은 (피착취자와 착취자 모두에게 영향을 주는) 완전한 국가적 위기 없이는 불가능하다.” 위기가 심하면 심할수록, 혁명의 전망은 더욱 밝다. 그러나 위기가 심하면 심할수록, 더 많은 사회계층이 위기에 관련될 것이며, 그 속에서 엇갈리는 본능적 운동 또한 더욱 다양해질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투쟁이 전체 결과를 좌우하는 두 계급, 즉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세력관계도 더욱 복잡해지고 가변적으로 될 것이다. 노동자계급이 이 투쟁에서 승리하기를 원한다면, 이들은 부르주아사회를 분쇄하는데 도움이 되는 모든 경향들을 고무하고 지지해야 하며, 전력을 다해 모든 봉기 아무리 본능적이고 혼란스러운 봉기라 할지라도 를 전체로서 혁명과정에 끌어들여야 한다. 노동자계급과 합류하려 하거나, 적어도 접촉하려고 하는 구사회의 모든 불평불만자들이 생겨나는 것에서도 혁명의 시기가 도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또 다른 위험을 낳을 수도 있다. 만일 노동자당이 올바르고 적합한 계급정책을 보증할 수 있도록 잘 조직되어 있지 않다면, 혁명적 상황에서 언제나 늘어나는 이 동맹자들은 지지 대신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회의 다른 피억압계층들(농민, 소부르주아 계급, 지식인 등)이 노동자계급과 같은 목표를 이루려고 애쓰지는 않을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의 계급이해가 무엇인지만 안다면, 노동자계급은 자기 자신과 이들 다른 집단을 사회적 예속에서 해방시킬 수 있다. 그러나 만일 노동자 계급의식의 전투적 대표자인 당이 계급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확신하지 못한다면, 게다가 당의 노동자적 성격이 제도적으로도 보장되어 있지 않다면, 이들 다른 집단은 당에 침투해서 당이 당의 노선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다. 그럴 경우 이들과 동맹 이것은 노동자당이 자신의 계급조직을 확실하게 했다면 혁명에 도움이 될 수 있었을 것이지만 은 오히려 혁명에 가장 큰 위험이 될 수도 있다.

요컨대, 레닌의 당 조직 개념은 다음의 사항을 두 개의 지주로 포함한다. , 당원을 이들의 노동자 계급의식을 기준으로 엄선하는 것과 자본주의 사회 내의 모든 피억압자, 피착취자와 전적인 연대관계를 맺고 이들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렇게 레닌은 목적의 배타적 단일성과 보편성, 즉 엄밀한 노동자 관점에 선 혁명의 지도력과 혁명의 일반적인 국내적 (그리고 국제적) 성격을 변증법적으로 결합시켰다. 멘셰비키가 지닌 당 조직 개념은 이러한 두 지주를 약화시켰고 혼란스럽게 만들었으며, 타협으로 환원시켜, 이것들을 당 자체 내에서 결합시켜버렸다. 멘셰비키는 스스로를 피착취대중의 광범위한 계층에서부터(보기를 들면, 농민으로부터) 차단시키는 한편, 다양한 이해집단을 당내에 결합시킴으로써 사고와 행동의 동질성 확보에 실패했다. 이렇게 조직된 당은 계급투쟁의 무질서한 혼전기간 모든 혁명적 시기에는 사회 전체가 몹시 혼란스럽고 무질서해지기 때문에 가운데 승리하는데 꼭 필요한, 자본가계급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단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주저하는 다른 피억압집단들을 노동자계급에게로 규합하기보다는 상이한 이해집단들의 혼란스런 잡동사니가 되고 만다. 멘셰비키식의 당은 오직 내부의 타협을 통해서만 가까스로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고, 이때에도 당내에서 가장 의지가 뚜렷하고 더 본능적인 집단들을 뒤따라가거나, 아니면 사태의 추이를 단지 숙명론적으로 방관할 뿐이다.

그러므로 레닌의 조직개념은 기계적 숙명론과 이중적 결별을 뜻한다. 첫째로, 노동자 계급의식을 계급상황의 기계적 산물로 보는 견해와 결별하는 것이고, 둘째로, 숙명적으로 폭발할, 객관적 혁명조건이 충분히 성숙된다면 노동자계급의 승리를 자동적으로가져올 경제력이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과 결별하는 것이다. 만일 노동자계급이 단결하여 선명한 목적을 가지고 결정적 투쟁을 시작할 때까지 사태가 늦춰져야만 한다면, 혁명적 상황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한편으로, 자신이 속한 계급이 해내는 해방투쟁을 수동적으로 방관하고 지켜보기만 하거나, 심지어 상대편으로 넘어가는 노동자계층은 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자본주의는 더 발전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계급 자신의 태도, 결의, 계급의식의 정도는 결코 이들이 처한 경제적 상황으로부터 숙명적으로 어쩔 수 없이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상상할 수 있는 최대의, 그리고 최고의 당이라고 하더라도 혁명을 야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이 주어진 상황에 대응하는 방식은 주로 당이 계급의 목표에 부여할 수 있는 선명성과 에너지에 달려있다. 따라서 혁명이 하나의 현실태일 때, 혁명이 야기될 수 있는가 없는가의 오랜 문제는 완전히 새로운 뜻을 갖는다. 또한 이 변화된 뜻에 따라 당과 계급의 관계도 달라지며, 조직문제가 당과 노동자계급 전체에 대해 갖는 뜻도 바뀐다. 혁명의 야기라는 문제에 대한 낡은 공식은 융통성 없이 비변증법적으로 역사적 필연성과 혁명과 관련이 있는 당의 행동을 구분하는 것에 따른다. 이 수준, 즉 혁명의 야기가 무()에서 그것을 끄집어내는 것을 뜻하는 수준에서 혁명은 전적으로 거부되어야 한다. 그러나 혁명적 시기에서 당의 활동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을 뜻한다. 만일 그 시대에 기본성격이 혁명적이라면, 첨예한 혁명적 상황은 어느 순간에서든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혁명이 일어나는 시간과 상황을 정확하게 결정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혁명을 유발하는 경향과 혁명이 시작될 때 취해야할 올바른 노선은 훨씬 더 결정하기 쉽다. 당의 활동은 이러한 역사인식에 따른다. 당은 혁명을 준비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당은 한편으로 (노동자계급과 다른 피억압집단들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해서) 적극 활동하여 혁명적 경향들을 촉진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당은 첨예한 혁명적 상황에서 일어나는 이데올로기적전술적물질적조직적 임무에 대해 노동자계급을 준비시켜야 한다.

이것은 새로운 시각에서 당 조직의 내부 문제를 보게 한다. 특히 카우츠키가 주장했던 조직은 혁명적 실천의 전제조건이라는 낡은 생각과 조직은 혁명적 대중운동의 산물이라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낡은 생각은 모두 일면적이고 비변증법적이다. 혁명을 준비하는 것이 당의 기능이기 때문에 당은 동시에, 그리고 똑같이 혁명적 대중운동의 생산자이자 생산물이며, 그것의 전제 조건이자 결과이다. 왜냐하면 당의 의식적 활동은 경제발전 과정의 객관적 필연성에 대한 뚜렷한 인식에 따르고, 당의 엄격한 조직적 배타성은 대중의 본능적 투쟁, 고통과 끊임없이 효율적으로 상호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때론 이러한 상호작용의 요소를 인지한 듯하나, 그 안에 있는 의식적이고 적극적인 요소를 지나쳤다. 이것이 바로 그녀가 레닌주의 당 개념의 요체, 즉 당의 준비역할을 이해할 수 없었던 이유이며, 또한 이것에서부터 파생되는 모든 조직 원리를 잘못 해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혁명적 상황 자체는 당연히 당 활동의 산물일 수가 없다. 당의 역할을 객관적 경제력의 진행궤도를 예측하고, 그렇게 창출된 상황에서 무엇이 노동자계급에게 적합한 행동인지를 예견하는 것이다. 이러한 통찰력을 견지하면서 당은 노동자대중 앞에 무엇이 놓여있는지, 그리고 노동자대중의 이해가 그것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 노동자대중을 지적, 물질적, 조직적으로 준비시키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 사태와 여기에서 파생되는 상황들은 기계적 숙명론을 따르지는 않을지라도, 그 자신의 자연법칙에 따라서 맹목적으로 작동하는 자본주의 생산의 경제력의 결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러시아에서 농업적 봉건주의가 경제적으로 무너져 내리는 사례에서 이러한 붕괴과정이 본질적으로는 자본주의발전의 불가피한 결과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적 붕괴가 계급적 측면에 미친 결과, 즉 이로 인한 새로운 계급구조의 재편은 결코 이러한 고립적 발전에만 달려 있거나 이것으로부터 결정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 결과들은 환경에 의해서 결정되며, 궁극적으로는 각 부분이 자본주의발전을 이루는 전체사회의 운명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러나 이 총체성 속에서 자생적이고 폭발적인 계급행동과 의식적으로 지도된 계급행동 모두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특히 한 사회가 혼란하면 할수록, 사회의 정상적구조는 점점 더 완전하게 기능할 수 없게 되고, 사회경제적 균형은 더욱 흔들리게 되어, 다시 말해 더욱 혁명적인 상황이 된다. 그런 상황에서 이와 같은 계급행동은 더욱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것은 자본주의 시대의 총체적 사회발전이 결코 하나의 단순한 일직선을 그리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사회 전체 안에 있는 여러 세력들의 조합에서부터 훨씬 더 자주 다양한 상황들이 벌어진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이러한 상황이 올바로 인지되고 평가되기만 한다면, 어떤 특정 경향이 작동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가능성을 놓친다면, 즉 올바른 결론이 도출되지 않는다면, 특정 경로 위에 놓인 것처럼 보이는 경제력의 발전은 결코 그 위에서 계속 나아가기만 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정반대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러시아에서 1917년에 볼셰비키가 집권하지 못하고 농업혁명을 완수하지 못했을 경우를 상상해보라. 자본주의체제 하에서 반()혁명적인, 그러나 혁명 이전의 짜르 체제에 비해 근대적인 일종의 프러시아적방식에 의한 농업문제 해결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노동자당 자체가 어떤 역사적 맥락에서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아야만 당 조직의 문제를 진실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문제는 자본주의가 몰락해 가는 시기에 노동자계급에게 제기된 거대한 세계사적 과제들, 즉 이 과제들이 그들의 의식 있는 지도자들의 어깨 위에 부과한 거대한 세계사적 책임에 달려있다. 당은 사회에 대한 총체적 지식을 바탕으로 전체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대변하기 때문에 그리고 이 속에서 모든 피억압자들의 이해, 곧 인류의 미래를 매개하기 때문에, 사회적 총체의 심장부에서 제기되는 과제들이 표현된 모순들을 당 내부에 결합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계급의식의 선명도에 따라, 그리고 혁명의 대의에 헌신하는 정도에 따라 당원을 엄격히 선발하는 것이 투쟁중인, 그리고 고통 받고 있는 대중의 삶에 스스로를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이들의 능력과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 조건들 가운데 첫 번째 것만 충족시키려는 노력은 모두 뛰어난 혁명가그룹들이 관련된 곳에서조차 종파주의에 의해 마비되게끔 되어있다(이것이 레닌이 소환주의(Otzovism)에서 공산주의노동자당(KAP)까지, 그리고 그 밖의 좌익에 대항해 투쟁했던 근거이다). 왜냐하면 당원 조건을 엄격히 하는 것만이 전체 노동자계급 그리고 자본주의에 의해 착취 받는 모든 계층에게 자신들의 진정한 이해가 어디에 있는지를 명확하게 밝혀 주는 길이며, 이들로 하여금 지금까지 자신들의 무의식적인 행동, 막연한 이데올로기, 혼란스러운 감정 등의 진정한 근거를 의식하게끔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은 행동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대중은 투쟁, 이를테면 투쟁의 사회경제적 토대가 끊임없이 변하고, 그 속에서 투쟁의 조건과 무기들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투쟁을 통해서만 자신들의 이해를 깨달을 수 있다. 노동자계급의 전위정당은 투쟁하는 대중보다 늘 한 걸음 앞서 이들에게 길을 제시해주어야만 이 투쟁 속에서 자신의 소명을 완수할 수 있다. 그러나 당은 오직 한 걸음 앞서 있어야만 늘 이들의 투쟁의 지도자가 된다. 따라서 당의 이론적 선명성이 가치 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일반적인, 그저 이론적인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늘 구체적 상황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다시 말해, 당의 이론적 정확성은 늘 구체적인 상황감각을 표현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따라서 당은 한편으로 일시적인 고립을 무릅쓰면서까지, 대중의 모든 망설임에도 올바른 노선을 견지할 수 있도록 충분한 이론적 선명성과 확고함을 견지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당은 대중의 의사표현이 아무리 혼란스러울지라도 대중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혁명적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는 유연성이 있어야 하며, 대중으로부터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이 정도로 대중의 삶에 적응하는 것은 엄격한 당 규율 없이는 불가능하다. 당이 늘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자신의 판단을 즉각 조정할 수 없다면, 당은 뒤처지게 되고, 대중을 지도하는 대신 뒤쫓아 가게 되어 대중과 접촉을 잃고 결국에는 분해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당 조직이 필요하다면 즉각 자신의 적응능력을 실천할 수 있도록 최대로 엄격해야 한다. 그러나 아울러 이것은 당 조직 자체에도 끊임없이 유연성이 요구되어야 함을 뜻한다. 특수한 상황에서 특수한 목적에 쓸모 있는 특정 형태의 조직은 투쟁조건이 변할 때에는 현실적인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역사의 본질이란 늘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며, 아무리 훌륭한 이론일지라도 그것을 예측할 수는 없는 것이다. 새로운 요소가 처음 나타날 때부터 인지되고 의식적으로 밝혀지는 것은 바로 투쟁을 통해서이다. 당은 어떤 종류든지 간에 교묘하게 고안된 추상적 전략을 대중에게 부과하는 역할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오히려 당은 대중의 투쟁과 이들의 투쟁행위에서부터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그러나 당은 배우면서도 능동적이어야 하며, 다음의 혁명과업을 준비해야 한다. 당은 대중의 올바른 계급적 본능에서 비롯된 이들의 자생적인 발견들을 혁명투쟁의 총체성에다 결합시켜야 하며, 이것들을 대중이 의식하게끔 만들어야 한다. 맑스의 말을 빌자면, 당은 대중의 행동을 그들 자신에게 설명해 주어서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경험들이 계속되도록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들이 더욱 발전하도록 의식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 당 조직은 이러한 총체성과 여기에서 나오는 행동들을 위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해서 완전히 정통하지 못한 발전들에 방해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론상의 모든 교조주의와 조직상의 모든 경직화야말로 당에게는 치명적이다. 왜냐하면 레닌이 말했던 것처럼, “모든 새로운 형태의 투쟁은 새로운 위험과 희생을 불러오며, 새로운 형태의 투쟁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한 조직을 반드시 분해시킨다. 당의 과제는 무엇보다도 자신과의 관련 속에서 투쟁의 필연적인 길을 편견 없이 의식적으로 추구하고, 분해의 위험이 심각해지기 전에 당 자체를 변화시키며, 이러한 변화를 통해 대중의 변화와 전진을 촉진하는 것이다.”

전략과 조직은 분리될 수 없는 전체의 양면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현실적 결과는 동시에 양자(兩者)내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이렇게 되려면 당은 자신의 원칙을 완강히 고수하고 아울러 일상의 새로운 발전을 받아들이는 데서도 일관되고 유연해야 한다. 전략적으로든 조직적으로든 간에 본래부터 좋거나 나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전체와의 관련, 즉 노동자혁명의 운명과의 관련 속에서만 어떤 사상과 정책결정의 가부(可否)가 결정된다. 이것이 1905년 제1차 러시아혁명이 지난 뒤 이른바 쓸모없고 종파적인 비합법 활동을 그만두고자 했던 사람들과 합법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배격하면서 비합법 활동만을 고집한 사람들 모두에 맞서 레닌이 가차 없이 싸웠던 이유이며, 의회민주주의에 굴복하는 것과 교조적 반()의회주의 모두를 똑같이 경멸했던 이유이다.

레닌은 결코 정치적 몽상가가 된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주위 사람들에 대해서도 어떤 환상을 갖지 않았다. 그는 노동자혁명의 첫 영웅적인 시기에 말하기를, “우리는 자본주의 하에서 성장한 그대로 왜곡되고 타락한 인민들, 그러나 또한 바로 자본주의 때문에 투쟁으로 단련된 인민들과 함께 사회주의를 건설하고자 한다.” 레닌의 당 조직 개념이 직업적 혁명가들에게 부과한 방대한 조건들은 그 자체로는 유토피아적이지 않았고, 피상적인 일상생활과도 깊은 관련을 갖지 않았다. 그것들은 직접적 사실들과 관계가 없었으며, 단순한 경험주의를 넘어서 있었다. 레닌의 조직 개념은 그 자체가 변증법적이다. 조직은 그 자체로 생산자이자 생산물인 한, 역사발전의 산물이자 의식적인 공헌자이다. 인간 스스로가 당을 건설한다. 당 조직 안에서 활동하기를 원하고, 또 그럴 수 있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계급의식과 헌신이 요구된다. 한편 오직 이렇게 조직화되고 당을 통해 활동함으로써만 인간은 진정한 혁명가가 된다. 혁명적 계급에 합류한 개개인의 자코뱅(Jacobin)은 그의 결단력, 전투성, 지식, 열정을 통해서 자신의 행동을 구체화하고 분명히 할 수 있다. 그러나 혁명적 계급의 사회적 존재와 여기에서 비롯되는 계급의식이 개개 자코뱅의 활동의 내용과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노동자혁명을 지도하도록 소명을 부여받은 당은 탄생할 때부터 지도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당도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당과 계급의 결실 있는 상호작용의 과정은 당과 당원의 관계 속에서, 물론 다른 형태를 띨 수도 있겠지만, 되풀이된다. 포이에르바흐에 관한 테제(Theses on Fuerbach)에서 맑스가 말했던 것처럼, “환경의 변화와 교육에 대한 유물론적 교의는 환경이 인간들에 의해 변화되며, 교육자 자신도 교육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고 있다.” 레닌주의 당 개념은 기계론적이고 숙명론적인 속류 맑스주의와 근본적인 단절을 뜻한다. 요컨대, 레닌의 당 개념은 철학자들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만 해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시키는 것이다.”라는 맑스주의의 진정한 본질과 심오한 취지를 실천적으로 실현한 것이다.

 

 

4장 제국주의 : 세계대전과 내전

 

그렇다면 우리는 결정적인 혁명투쟁의 시기에 들어섰는가?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파멸을 무릅쓰고서라도 세계를 변혁시키는 자신의 과업을 수행해야 할 시기가 이미 도래했는가? 분명한 것은 아무리 성숙한 노동자 이데올로기 또는 조직일지라도 그 성숙성과 전투성이 어떤 해결을 강요하는 객관적인 사회경제적 세계상황의 결과가 아니라면 이러한 위기를 발생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승리와 패배를 막론하고 하나의 고립된 사건만으로 이러한 위기의 도래 여부를 판단해서도 안 된다. 뿐만 아니라 사회역사적 발전의 총체성과 관련시키지 않고는 그 사건이 지닌 세계사적 뜻에서 승패 여부조차도 말할 수 없다.

1905년의 제1차 러시아혁명이 1847(결정적 혁명 이전)의 상황과 비슷한지 또는 1848(결정적 혁명이 좌절된 뒤)의 상황과 비슷한지를 두고 러시아사회민주당의 멘셰비키와 볼셰비키 분파 모두에서 일어났던 논쟁, 1905년 제1차 혁명의 와중에 시작되어 그 실패 뒤에 절정에 이른 논쟁이 좁은 뜻에서 러시아적 맥락을 벗어날 수밖에 없는 것은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 논쟁은 우리 시대의 근본적인 성격이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풀릴 때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 , 1905년 혁명이 노동자 혁명이었는가 부르주아혁명이었는가, 또는 노동자들이 취한 노동자 혁명적 입장이 옳았는가 잘못이었는가 하는, 러시아에 특수한 제한된 물음은 현 세계의 근본성격이라는 맥락 속에서만 답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문제가 그렇게 활발히 제기되었다는 사실 자체에서 해답이 어디에 있는지를 시사 받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러시아 밖에서도 노동운동 내의 좌우 분열이 점점 시대의 일반적 성격에 관한 논쟁의 형태를 띠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를 간단히 정리해보면, 첫째 차츰 뚜렷해지는 특정 경제현상들(자본의 집중, 대은행의 중요성 증대, 식민주의 등)정상적인자본주의발전 속에서 일어나는 양적 변화를 표시하는데 지나지 않는가, 아니면 새로운 자본주의시대, 즉 제국주의시대의 임박을 예고하는 것인가라는 논쟁, 둘째 차츰 빈발하는 전쟁들(보어전쟁, 미서전쟁, 러일전쟁 등)을 비교적 평화로운 시기 뒤에 일어났기 때문에 우발적 사건또는 삽화적 사건들로 여겨야 하는가 아니면 더욱 중대한 대결의 시기가 올 첫 징후로 보아야 하는가라는 논쟁,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이 자본주의발전이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노동자계급의 지난 투쟁방식이 새로운 상황 하에서도 노동자계급의 계급이해를 표현하기에 충분한가, 따라서 제1차 러시아혁명 이전과 그 과정에서 개발된 노동자계급의 새로운 투쟁방식들(대중파업, 무장봉기 등)은 국지적인 뜻밖에 지니지 못한 현상으로 심지어 실수탈선인 것인가, 아니면 그것들은 대중이 자신의 올바른 계급본능에 따라 세계정세의 변화에 자신의 행동을 대응시키려는 첫 자발적인 시도인가 하는 논쟁이다.

이렇게 서로 얽히고설킨 복잡한 문제들에 대한 레닌의 실천적 대답은 잘 알려져 있다. 그것은 제1차 혁명이 좌절된 뒤, 즉 러시아 노동자들이 너무 성급했던것에 대한 멘셰비키의 탄식이 채 꺼지기도 전에 극명하게 표현되었다. 레닌은 슈투트가르트 대회에서 제2 인터내셔널이 곧 닥쳐올 제국주의 세계대전의 위협에 대해 분명하고도 확고한 반대 입장을 취하도록 투쟁하면서, “제국주의전쟁을 막으려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레닌-룩셈부르크 수정안은 슈투트가르트 대회에서 채택되고 나중에 코펜하겐 대회와 바젤 대회에서 비준되었다. 이렇게 닥쳐올 세계대전의 위험과 이것에 대해 노동자계급이 혁명적 투쟁을 벌여야 할 필요성이 제2 인터내셔널을 통해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따라서 외견상으로는 레닌만이 이 문제를 제기했던 것은 아니며, 레닌만이 제국주의를 경제적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로 인식한 것도 아니었다. 2 인터내셔널의 좌파 전부, 그리고 중도파와 우파의 일부까지도 제국주의의 경제적 근원을 인식하고 있었다. 힐퍼딩은 이 새로운 현상을 경제적으로 이론화하려고 시도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더 나아가, 제국주의의 전체 경제체제를 자본의 재생산과정의 불가피한 결과로 설명하는 데에 성공함으로써, 즉 제국주의를 역사 유물론에 유기적으로 통합하는 데에 성공함으로써 자본주의 붕괴론에 구체적인 경제적 근거를 제공했다. 그러나 19148월에, 그리고 그 뒤 오랫동안 세계대전에 대한 레닌의 입장이 여타 사회주의자들과 달랐던 것은 단지 우연이 아니었다. 또 이를 제국주의에 대해 처음에는 레닌과 똑같이 옳은평가를 했던 다른 많은 사람들이 아마 겁이 나서머뭇거리게 되었을 것이라고 심리학적 또는 도덕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더욱 타당성이 없다. 이와는 반대로 1914년에 여러 사회주의 경향들이 지녔던 서로 다른 태도들은 그들이 그때까지 취해왔던 상이한 이론적전술적, 그리고 그 밖의 입장의 직접적이고 논리적인 결과였다.

역설처럼 들릴지 모르나, 레닌주의의 제국주의 개념은 중요한 이론적 업적이면서, 경제이론으로서는 별로 새로운 내용이 없다. , 레닌의 일부 이론은 힐퍼딩에 근거하고 있으며, 순수하게 경제학적 관점에서는 그 깊이와 폭에서는 맑스의 자본주의적 재생산이론을 훌륭하게 발전시킨 로자 룩셈부르크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레닌의 우월성이자 비할 바 없는 이론적 업적은 제국주의 경제이론을 당대의 모든 정치적 문제와 구체적으로 접합시킴으로써 새로운 단계의 경제학을 결정적 국면의 모든 구체적 행동을 위한 지침으로 만들었다는 데에 있다. 이에 따라 그는 예컨대, 전쟁이 벌어지고 있을 때 폴란드 공산주의자들의 일부 극좌적 견해를 제국주의적 경제주의’(imperialist economism)라고 거부하는 한편, 카우츠키의 초제국주의’(Ultra-Imperialism) 개념 이 개념에는 평화로운 국제 트러스트(international trust)에 대한 희망이 표명되어 있다. 세계대전은 이 트러스트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우발적사건이지 옳은길은 아니라고 한다 에 반대하면서 카우츠키에 대해 제국주의 경제학을 제국주의 정치학으로부터 유리시키고 있다고 비난하기에 이른 것이다. 사실 로자 룩셈부르크, 판네쿡(Anton Pannekoek), 기타 좌익들의 제국주의이론이 실제로 좁은 뜻에서 경제주의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 모두, 특히 로자 룩셈부르크는 제국주의 경제학이 필연적으로 제국주의 정치학으로 바뀌는 계기를 강조한다. 문제는 이 연결이 구체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 있다. , 로자 룩셈부르크는 식민지, 원자재, 자본수출 등을 위한 투쟁의 시대로서 제국주의로의 이행이 자본축적 과정의 결과 때문에 일어난 어쩔 수 없는 과정, 그리고 자본주의의 마지막 단계인 이 시대에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게 된 이유를 극명하게 설명해주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녀는 이로써 이 시대 전체의 이론, 총괄적현대제국주의이론을 수립하고 있을 뿐이다. 그녀는 또한 이 이론에서부터 그 시대가 요구한 구체적 문제로 옮아갈 수도 없다. 다시 말해, 자본축적론(The Accumulation of Capital)유니우스 팜플렛(Juniusbrochure)의 구체적 문장 사이에는 필연적인 연계성이 없다. 그녀는 이론적으로 시대 전반에 대해 올바른 평가를 하고 있지만 그러한 평가가 개개의 동인들(moving forces)에 대한 뚜렷한 인식으로 구체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동인들을 평가하여 혁명적으로 이용해야 하는 맑스주의 이론의 실천적 과제를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레닌의 우월성을 정치의 천재또는 실천의 재능등의 상투어들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그의 우월성은 무엇보다도 전체과정을 평가하는 데에서 순수하게 이론적인 탁월성이다. 왜냐하면 레닌은 전 생애를 통하여 자신의 이론적 견지에서 보아 불합리하거나 비논리적인 실천적 결정은 한 번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변증법적으로 사고하지 않은 자들만이 구체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분석이라는 레닌이 지닌 관점의 근본원칙을 단순히 현실정치’(realpolitik)의 문제로만 인식한다. 맑스주의자들에게 구체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분석이란 순수이론의 반대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모든 진정한 이론의 정점이자 극치이며, 따라서 이론이 비로소 실천으로 돌입하는 지점이다.

레닌이 지닌 이론적 우월성의 토대는 모든 맑스의 추종자들 가운데 레닌의 통찰력이 자본주의적 환경의 물신숭배적 범주에 의해 가장 적게 왜곡되었다는 데에 있다. 사실 맑스주의 경제학이 그 전후의 모든 경제학에 대하여 누리는 결정적 우월성은 어느 모로 보나 가장 순수하게 경제적인, 그러므로 가장 순수하게 물신숭배적인 범주들로 다루어야 할 것 같은 가장 복잡한 문제도, 각 계급의 사회적 존재를 표현하는 그 범주들의 이면으로부터 계급들의 진화과정이 드러나도록 해석하는 방법론적 우수성에 있다(이를테면, 맑스의 불변자본과 가변자본 개념, 고전적인 고정자본과 유동자본 개념 사이의 차이를 비교해보라. 전자의 구분을 통해서만 부르주아사회의 계급구조가 확연히 드러날 수 있었다. , 잉여가치에 대한 맑스주의의 해석에 의해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계급분화가 이미 밝혀졌다. 또한 불변자본 개념은 이러한 양 계급의 관계가 사회전체의 발전과 역동적으로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를 보여주었고 아울러 상이한 자본주의의 이해집단들이 잉여가치의 분할을 위해 벌이는 투쟁을 드러내주었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제국주의이론과 달리 레닌의 제국주의이론은 경제적으로 필연적인 제국주의의 발생과 한계의 이론이라기보다는 제국주의에 의해 고삐가 풀려 이제 그 내부에서 움직이고 있는 구체적인 계급세력(class forces)들의 이론, 즉 제국주의에 의해 창출된 구체적인 세계상황에 관한 이론이다. 독점자본주의의 본질에 대해 연구할 때 레닌의 주된 관심사는 이 구체적 세계상황과 독점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계급관계를 규명하는 데 있었다. 요컨대, 레닌은 식민종주국들에 의한 사실상의 세계분할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자본의 집중은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계급구조 내부에 어떤 변화, 이를테면 순수하게 기생적인 금리생활자와 노동귀족의 출현을 초래했는가, 특히 독점자본주의의 발전 자체가 상이한 나라의 상이한 발전단계 때문에 어떻게 이해영역의 잠정적인 평화로운 분할과 기타 타협들을 무효화시키고 오직 무력에 의해서만, 곧 전쟁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는 갈등으로 돌입하게 되는가 하는 문제를 규명하려고 한다.

제국주의의 본질은 독점자본주의이고, 제국주의전쟁이란 더욱 고도의 자본집중 경향과 절대적 독점 경향의 필연적인 결과이자 표현이기 때문에 자본주의사회 내부의 각 사회집단의 전쟁에 대한 관계는 아주 명백해진다. 따라서 제국주의에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을뿐만 아니라 그것에 기만당한자본가계급 안의 일부가 제국주의에 대한 투쟁을 위해 동원될 수 있다는 카우츠키류의 생각은 순진한 자기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독점이 진전됨에 따라 자본가계급 전체는 독점에 휩쓸려버린다. 더욱이 본래 유동적인 소부르주아 계급뿐만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일부마저도 비록 일시적이긴 하지만 이를 지지한다. 그러나 혁명적 노동자계급이 제국주의를 반대함으로써 무조건 고립된다는 심약한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자본주의사회의 발전은 언제나 조화롭지 못하며 늘 모순적이다. 독점자본주의는 역사상 처음으로 진정한 세계경제를 창출한다. 따라서 독점자본주의의 전쟁, 즉 제국주의 전쟁이야말로 가장 엄격한 뜻에서 첫 세계대전이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무엇보다도, 자본주의에 의해 억압받고 착취당한 민족들이 역사상 처음으로 이제 더 이상 압제자들에 대해 고립된 항전을 하지 않고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한꺼번에 휩쓸리게 된다는 것이다. 발전된 형태의 자본주의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식민지 인민들을 악질적으로 착취할 뿐만 아니라, 아울러 이들의 전 사회구조를 변형시켜 이들을 자본주의체제에 편입시켜버린다. 이러한 일은 당연히 자본수출 등과 같이 더욱 고도의 착취를 추구할 때 일어난다. 그 결과, 식민지에서는 제국주의가 못마땅해 하는 토착자본가계급의 발전을 위한 토대가 확립되고, 그 필연적인 이데올로기적 결과로서 민족독립투쟁이 시작된다. 이러한 전 과정은 제국주의전쟁이 제국주의국가들의 모든 가용 인적자원을 총동원하는 동시에 식민지 인민들을 활발히 이 전쟁에 끌어들이고 이들의 산업발전을 가속화시키는 것을 통해 더욱 강화된다. 다시 말해서, 제국주의 전쟁은 경제적으로, 그리고 이데올로기적으로 민족해방투쟁의 과정을 가속화시킨다.

그러나 식민지 인민들의 지위는 독점자본주의와 이것에 의하여 전형적으로 착취당하는 인민들 사이의 관계의 한 극단적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역사적 이행은 결코 기계적이지 않다. 다시 말해, 특정 생산양식은 이전의 생산양식이 그것에 적합한 사회적 변화를 모두 완성한 뒤에만 비로소 그 역사적 역할을 전개하고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보자면, 서로 계승대체하는 생산양식과 이에 대응하는 사회형태와 계급분화는 오히려 서로 교차대립하는 힘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요컨대, 추상적으로는 불변적인 것처럼 보이는 발전들, 보기를 들면 봉건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도 발전이 일어나는 역사적 환경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에 사회적역사적 전체와 전혀 다른 관계를 맺으며, 따라서 당연히 완전히 새로운 기능과 뜻을 지니게 된다.

자본주의는 국가형성의 한 중요한 요인으로 떠올랐다. , 중세유럽의 봉건적 소()왕조들은 자본주의 발전을 가장 잘 이룬 지방에서 커다란 여러 혁명투쟁을 거친 뒤 대()국가들로 바뀌었다. 독일과 이탈리아의 통일운동이 이러한 객관적 혁명투쟁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그러나 이러한 신생국가들에서 자본주의가 제국주의적 독점자본주의 단계로 발전했다고 해서, 또 러시아나 일본과 같이 몇몇 후진국들의 자본주의가 독점자본주의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고 해서 세계의 다른 지역 모두에서도 자본주의가 국가건설의 요인으로서 뜻을 상실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계속되는 자본주의 발전은 지금까지 역사에서 제외된 (unhistoric) 모든 유럽 국가들에서 민족운동을 창출했다. 차이점이라면 세계열강들의 제국주의적 각축전에 휩쓸리게 된 이들의 민족해방투쟁은 이제 단순히 자기 내부의 봉건주의와 봉건적 절대주의에 대한 투쟁, 즉 단지 잠재적 진보성만을 가진 투쟁만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러한 민족해방투쟁의 뜻과 그 평가는 이것이 그 구체적 전체에서 어떤 구체적 역할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맑스는 이미 민족해방투쟁의 뜻을 분명하게 깨닫고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맑스 시대엔 주로 영국과 아일랜드의 관계가 문제시되었다. 그 한 보기로, 맑스는 국제정의(國際正義)의 문제와는 별도로 현재 강요된 아일랜드의 병합상태, 즉 아일랜드의 노예상태를 가능하면 동등하고 자유로운 동맹관계로, 필요하다면 완전한 분리 상태로 바꾸는 것이 영국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위한 한 전제조건이다.”라고 역설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한편으로는 아일랜드에 대한 착취가 그 때 보기 드물게 이미 독점주의적 성격을 띠었던 영국 자본주의의 중요한 보루가 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문제에 대한 영국 노동자계급의 모호한 태도 때문에 피억압자가 분열되어 착취자에 대한 피착취자의 단결투쟁 대신에 피착취자에 대한 피착취자의 투쟁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맑스는 아일랜드 민족해방투쟁에 의해서만 영국의 노동자계급이 자국의 자본가계급에 맞서 벌이는 투쟁을 위해 진실로 효과적인 전선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뚜렷이 인식했다.

이러한 맑스의 생각은 그때 영국 노동운동 내부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제2 인터내셔널의 이론과 실천에도 반영되지 않았다. 이 문제에서도 이론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일은 레닌에게 맡겨졌다. 그리고 이 생명은 맑스 자신의 것보다 더욱 활기 있고 더욱 구체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 이론은 단순히 보편적인 사실로부터 이미 구체적인 현안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상응하여 레닌은 이를 이미 이론으로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실천의 문제로 인식했다. 또한 이와 관련하여 분명히 지적해야 할 점은 여기서 우리가 부딪힌 심각한 문제, 즉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피억압자들의 전 세계적 규모의 반란은 레닌이 나로드니키, 합법적 맑스주의자들, 경제주의자들과 투쟁하면서 러시아 농업문제의 핵심이라고 늘 주장해왔던 문제와 같은 것이라는 점이다. 문제의 핵심은 로자 룩셈부르크가 국경 안팎을 불문하고 자본주의의 외부시장(‘external’ market)이라고 한 것에 있다. 한편으로 이것이 없으면 자본주의는 팽창할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 팽창하는 자본주의는 이 시장의 원래 구조를 파괴하여 자본주의적으로 만들고, 마침내는 자본주의의 내부시장(‘internal’ market)으로 변모시킨다. 이와 함께 이 시장 자체의 독립적 경향들을 활성화시킨다. 따라서 여기에도 변증법적인 관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로자 룩셈부르크는 올바르고 보편적인 이러한 역사적 관점에서부터 세계대전에 의해 제기된 구체적 문제의 구체적 해결책을 찾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이것은 그녀에게는 역사적 관점, 즉 시대 전체에 대한 정확하고 보편적인 성격규정으로, 그러나 단지 시대 전체에 대한 성격규정으로만 남아있었다. 이론으로부터 실천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은 레닌에게 맡겨졌다. 여기서 잊어서는 안 될 것은 그것이 이론의 발전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추상적인 것으로부터 구체적인 것으로의 발전이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시대 전반의 보편적인 혁명적 성격이 입증되었다는 사실에 따른다면, 실제 역사 현실에 대한(정확하기는 하지만) 추상적인 평가로부터 구체적인 평가로의 이행의 문제는 결국 혁명의 성격 문제로 귀착된다. 맑스의 가장 위대한 이론적 업적 가운데 하나는 부르주아혁명과 노동자혁명을 분명하게 구별한 것이다. 그 시대에 사람들의 미숙한 자기망상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구별은 가장 실천적전술적 중요성을 지닌다. 왜냐하면 이러한 구별을 통해서 당시의 전반적인 혁명운동 내부에 존재했던 진정한 노동자혁명의 요소를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론적 도구를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속류 맑스주의는 이러한 구별을 화석화시킴으로써, 두 혁명을 기계론적으로 분리시켜버린다. 그 결과, 기회주의자들은 현대의 모든 혁명은 각기 그 내부에 노동자계급의 행동과 요구를 아무리 많이 내포하고 있더라도 실질적으로는 부르주아혁명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경험적으로 올바른 관찰을 도식적으로 일반화시켜버린다. 이들은 또 이 일반화로부터 혁명은 오직 부르주아혁명일 뿐이며, 따라서 이 혁명을 지지하는 것이 노동자계급의 과제라는 결론을 도출해낸다. 부르주아혁명과 노동자혁명을 이렇게 분리하는 것은 노동자로 하여금 자신의 혁명적 계급목표를 포기하게 만든다.

반대로 급진좌파의 분석은 기회주의 이론이 지니고 있는 기계론적인 오류를 쉽게 간파하고, 노동자혁명의 시대적 성격을 인식하기는 한다. 그러나 기회주의에 못지않게 위험스러운 기계론적 해석을 따른다. , 제국주의시대를 맞아 자본가계급의 보편적혁명적 역할은 끝났다는 인식에서부터, 즉 기회주의 이론과 같이 부르주아혁명과 노동자혁명의 기계론적 분리에 근거하여 우리는 마침내 순수한 노동자혁명의 시대에 들어섰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제국주의 하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붕괴와 동요의 경향들, 곧 농업문제, 식민지문제, 민족문제 따위가 노동자혁명의 맥락에서 객관적으로 혁명적 성격을 띠고 있음에도 이를 지나쳐버리거나 심지어는 경멸, 일축해버리는 극히 위험한 실천적 결과를 초래한다. 이들 순수 노동자혁명 이론가들은 가장 효과적이고 가장 중요한 자신의 동맹자를 스스로 거부하는 셈이다. 따라서 이들은 노동자혁명을 구체적으로 현실성 있게 만드는 바로 그 혁명적 환경을 묵살한 채, 다만 진공상태에서 순수노동자혁명을 준비하고 있다고 스스로 만족한다. 레닌의 말을 빌리자면, “‘순수한사회혁명을 바라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생전에 그것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혁명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혁명에 아첨한다.”

진정한 혁명은 부르주아혁명을 변증법적으로 노동자혁명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과거의 위대한 부르주아혁명들을 주도했거나 그 수혜자였던 계급이 객관적으로 반()혁명적으로 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부르주아혁명이 부딪힌 객관적 문제들이 사회적으로 완전히 해결되었다는 것, 다시 말해 이 문제들의 혁명적 해결에 절대적 이해관계를 가졌던 사회계층이 만족하게 되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와는 반대로 자본가계급의 반()혁명화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적개심을 뜻할 뿐만 아니라 아울러 자본가계급 자신의 혁명전통의 포기를 뜻한다. 자본가계급은 자신의 과거의 혁명유산을 포기하고, 이를 노동자계급에게 물려준다. 이제부터 노동자계급이 부르주아혁명을 끝까지 완수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계급이 된다. 아직 해결되지 못한 부르주아혁명의 과제는 오직 노동자혁명의 틀 내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 이 과제의 실현과정은 필연적으로 노동자혁명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이제 노동자혁명은 부르주아혁명의 실현과 폐기를 동시에 뜻한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 의해 노동자혁명의 기회와 가능성의 무한한 전망이 열린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혁명적 노동자계급과 그 전위정당에게 아주 중요한 임무를 부과하는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변증법적 이행을 달성하려고 노동자계급은 올바른 상황에 대한 올바른 통찰력을 가져야 할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이를 방해해왔던 자신의 소부르주아적 경향과 사고방식, 보기를 들면 민족적 편견 모두를 실천적으로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동자계급은 자기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여 모든 피억압자들의 지도부가 되어야 한다.

피억압민족의 민족해방투쟁은 다른 나라 인민들의 완전한 민족독립을 위해 싸움으로써 자신의 민족주의를 극복하게 되는 억압민족의 노동자계급과 함께 이에 준하는 연방주의(federalism), 즉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단결이라는 기치를 높이 치켜듦으로써 자기 자신의 민족주의를 초월하게 되는 피억압민족의 노동자계급 모두에게 가장 훌륭한 혁명적 자기교육이다. 레닌이 말했던 것처럼, “노동자계급은 사회주의를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투쟁한다.” 혁명을 위한 투쟁, 세계정세에 존재하는 객관적 기회의 이용, 그리고 자기 자신의 혁명적 계급의식의 성숙을 위한 내적 투쟁, 이 세 가지는 동일한 변증법적 과정의 불가분한 요소들이다.

따라서 제국주의전쟁은 노동자계급이 자본가계급에 대해 혁명투쟁을 전개하기만 하면 어디서나 노동자계급의 동맹세력을 낳는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처지와 임무를 깨닫지 못하고 있을 경우, 노동자계급은 제국주의전쟁으로 인해 파멸적인 자기거세(self-emasculation)라는 자본가계급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제국주의전쟁으로 말미암아 노동자계급이 모든 피억압자와 피착취자들의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있으며, 자신의 해방투쟁이 자본주의의 질곡(桎梏)에서 신음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해방을 알리는 징후이자 길잡이가 될 수 있는 세계적 상황이 발생한다. 그러나 동시에 제국주의전쟁은 수천만의 노동자계급이 자신들의 착취자의 독점권을 강화확대시켜 주기 위해 매우 잔인하게 서로를 죽여야 하는 세계적 상황도 만들어낸다. 노동자계급이 이 둘 가운데 어느 운명의 길을 걸을 것인가는 자기 자신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통찰력, 즉 그 계급의식에 달려 있다. 비록 환경은 인간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직접 부딪치고 주어진, 그리고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긴 하지만 인간은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의 역사를 만든다.” 그래서 선택해야 하는 것은 노동자계급이 투쟁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누구의 이해 - 자기 자신의 이해인가 또는 자본가계급의 이해인가 - 를 위해 투쟁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역사가 노동자계급 앞에 던진 전쟁과 평화 사이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제국주의전쟁과 이 전쟁을 반대하는 전쟁, 즉 내전(civil war) 사이의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다른 모든 노동자 투쟁방식들처럼 제국주의전쟁에서 노동자계급을 보호하기 위한 내전의 필연성은 부르주아사회의 자본주의 생산 발전이 노동자계급에게 강요한 투쟁 상황에서 비롯된다. 당의 활동과 올바른 이론적 통찰력이 노동자계급에게 저항과 공격의 힘을 부여하는 것은 틀림없는데, 기존의 계급관계로 말미암아 노동자계급이 이미 이러한 힘을 객관적으로 보유하고 있으나 다만 이론상의 또는 조직상의 미숙함 때문에 이러한 힘을 가능태의 수준으로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리하여 자본주의의 제국주의단계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자생적 반응인 대중파업이 제국주의전쟁 이전에 이미 출현했으며, 2 인터내셔널의 우파와 중도파가 그렇게도 은폐하려고 했던 이 양자, 즉 자본주의의 제국주의 단계와 대중파업의 관계는 점차 급진파의 공통된 이론적 자산이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도 레닌만이 홀로 일찍이 1905년에 대중파업이 결정적 투쟁을 위해서는 충분하지 못한 무기임을 깨달았다. “무장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한 플레하노프와는 반대로, 레닌은 모스크바 봉기를 비록 실패하기는 했지만 투쟁의 결정적 단계로 평가하고, 그 구체적 요소들을 확증하려고 시도함으로써 이미 세계대전에서 노동자계급에게 필요한 전술을 이론화했다. 왜냐하면 특히 세계대전으로 그 절정을 이루는 자본주의의 제국주의단계는 자본주의가 그 존속마저 의심스럽게 되는 결정적 국면에 들어섰음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가계급은 자신의 지배범위가 넓어질수록, 그리고 권력기구가 비대해질수록, 자신의 권위를 뒷받침할 현실적 사회기반이 점점 좁아지는 것을 지배계급의 본능으로 감지한다. 따라서 이를 테면 중간계급을 흡수하거나 노동귀족을 매수함으로써, 이 기반을 확장시키려고, 그와 함께 자신의 주요 적들이 조직되어 실질적인 저항을 하기 전에 이들을 결정적으로 분쇄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따라서 평화적인계급투쟁의 수단(수정주의이론 전체를 지탱해주는 것이 바로 이 평화적 수단의 매우 문제성 있는 일시적 기능이다)을 폐기하고 더욱 강력한무기를 선호하는 것은 어디에서나 자본가계급이다. 이는 미국의 상황만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자본가계급은 차츰 국가기구를 장악하게 되고, 그 결과 마침내 노동자계급의 단순한 경제적 요구마저도 봉쇄하기에 이른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조건의 악화와 기득권의 상실을 막기 위해서라도 국가권력에 맞서, 즉 비록 무의식적이나마 국가권력을 장악하려고 싸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를 위해 노동자계급은 대중파업이라는 전술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기회주의자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혁명적 결과를 만들어내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혁명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이미 획득한 지위마저 포기하려고 한다. 그러나 대중파업은 그 성격상 객관적인 혁명의 무기이므로 혁명적 상황을 창출한다. 자본가계급은 자신이 장악하고 있는 국가기구의 지원을 받아 가능한 모든 곳에서 이것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한다. 노동자계급은 이러한 조치들 앞에서 무력하다. 자본가계급의 이러한 조치에 직면해서 노동자계급 역시 무장하지 않는 한 대중파업이라는 무기도 이것들에 대적할 수는 없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은 스스로 무장하는 동시에 자본가계급의 군대조직 - 물론 이것은 주로 노동자와 농민들로 구성되어 있다 - 을 와해시켜 자본가계급의 총부리를 자본가계급에게로 돌려야 한다(이 점에서 1905년 혁명은 올바른 계급본능의 사례를 풍부하게 제공하기는 하지만 단지 본능이 발휘된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제국주의전쟁은 이러한 상황이 극도로 첨예화됨을 뜻한다. , 자본가계급은 노동자계급에게 자본가계급의 독점적 이해를 위하여 타국의 동료 노동자계급을 죽이거나 자신이 죽는 것, 아니면 자본가계급의 지배를 무력으로 타도하는 것,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한다. 이 대공세 앞에서 다른 투쟁방식은 모두 무력하며, 제국주의국가들의 군사기구 앞에서 예외 없이 산산이 부서진다. 노동자계급이 이 최후의 자본가계급의 맹공을 피하려면 노동자계급 자신이 제국주의국가들의 군대에 대항하여 무장봉기하고, 이 군대를 내부로부터 잠식하고, 자본가계급에게서 받은 무기들을 자본가계급에게 겨누고, 이 무기들을 제국주의를 파괴하려고 사용해야 한다.

따라서 이 점에서도 이론적으로는 새로운 내용이 없다. 오히려 이러한 상황의 핵심은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사이의 계급관계에 있다. 클라우제비츠(Clausewitz)의 정의대로, 전쟁은 단지 정치의 연속이다. 그런데 이는 모든 점에서 그러하다. , 전쟁이 한 나라가 그때까지 평화적으로추구해왔던 어떤 정책의 궁극적이고 가장 적극적인 정점에 지나지 않는 것은 외교정책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전쟁은 한 나라(그리고 전 세계) 내부의 계급관계에 대해서도 평화시의 사회 내부에서 이미 움직이고 있던 경향들의 강화와 궁극적 절정을 표시할 뿐이다. 그러므로 절대로 전쟁 때문에 한 나라에게 또는 한 나라 안의 한 계급에게 완전히 새로운 상황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전쟁에 새로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문제가 보기 드물게 양적으로 강화됨으로써 질적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 그리고 그 이유 - 오직 이 이유 - 때문에 새로운 상황이 창출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 전쟁은 자본주의의 제국주의적 발전의 한 단계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전쟁은 필연적으로 자본가계급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의 한 단계에 불과하다. 레닌주의의 제국주의이론이 중요한 이유는 레닌만이 세계대전과 역사발전 전체 사이의 이러한 관계를 이론적으로 일관성 있게 확립하고, 이것을 전쟁으로 제기된 구체적 문제들에 의해 분명하게 증명했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사적 유물론은 노동자 계급투쟁이론이므로, 만약 제국주의이론이 동시에 제국주의시대의 노동자계급운동 내부에 존재하는 상이한 경향들에 대한 이론이 되지 못했다면, 이러한 관계의 확립은 불완전했을 것이다. 이 관계를 확립하는 문제는 전쟁에 의해 형성된 새로운 세계적 상황에서 어떠한 행동이 노동자계급의 이해에 부합하는가를 분명하게 밝히는 문제였을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와 제국주의전쟁에 대해 상이한 태도를 가진 다른 노동자이론들의 기반을 이론적으로 설명해주는 문제이기도 했다. , 노동자계급 내부에 어떠한 사회적 변화가 일어났기에 이들 이론이 제각기 정치적 경향을 형성할 만큼 지지자를 끌어 모을 수 있었는가를 이론적으로 설명해주는 문제이기도 했다.

먼저 필요했던 것은 이들 상이한 경향들이 그 자체로서 존재했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었다. ,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사회민주주의자들의 태도가 한때의 탈선이나 비겁의 소치가 아니라 바로 인접한 이들의 과거의 필연적 결과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또한 이것은 노동운동사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사회민주당 내부에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견해의 차이’(수정주의 등)와 관련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인식은 맑스주의 방법론에 당연한 것이지만(공산주의자 선언에서 당시의 경향들에 대해 논한 것을 보라) 좌파들조차 이것을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 로자 룩셈부르크와 프란츠 메링(Franz Mehring)의 인터내셔널(Internationale)지 그룹마저 이것을 일관성 있게 적용할 만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기회주의를 노동운동사에서 역사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하나의 경향으로 해석하지 못하고, 기회주의의 현존재를 과거로부터 유기적으로 발전된 결과로 인식하지 못하면서 기회주의에 대하여, 그리고 제국주의전쟁에 대한 기회주의의 태도에 대하여 비판한다면, 그 비판은 진정 맑스주의에 충실한 논의가 아닐 뿐만 아니라 행동의 시기가 도래해도 그것에 필요한 실천적-구체적, 전술적-조직적 결론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레닌은(그리고 레닌만이) 세계대전에 대한 샤이데만, 플레하노프 또는 반더벨더의 태도가 수정주의 원칙이 새로운 상황에 그대로 다시 적용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깨달았다.

요컨대, 수정주의의 본질은 무엇인가? 첫째, 수정주의는 역사 유물론의 일면성’, 즉 모든 사회역사적 현상들을 오로지 노동자계급의 계급관점에서만 해석하는 것을 극복하고자 한다. 수정주의는 사회 전체의 이해를 자신의 관점으로 택한다. 그러나 이런 집합적 이해는 구체적 존재를 가지지 않으므로 - 이러한 이해처럼 보이는 것도 서로 경쟁하는 상이한 계급세력들의 상호작용이 만드는 일시적 결과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 수정주의자는 끊임없이 변하는 역사과정의 산물을 고정된 이론적 출발점으로 취하는 셈이다. 따라서 수정주의 이론은 사물을 전도시킨다. 실천적인 면에서 보면 수정주의는 언제나 본질적으로 타협의 명수이다. 이는 수정주의 이론의 출발점에서 비롯되는 필연적인 귀결이다. 수정주의는 늘 절충주의적이다. 수정주의는 이론에서조차 계급갈등을 얼버무리고, 계급조화(수정주의자의 머리 속에만 존재하는 전도된 조화)를 사건 판단의 기준으로 삼으려고 애쓴다.

둘째, 따라서 수정주의는 변증법을 비난한다. 왜냐하면 변증법은 사회가 실제로 모순을 통해 발전하며, 이 모순들(계급 사이의 모순, 계급의 경제적 존재의 적대적 성격 등)이 모든 사건의 기반이자 핵심이라는 사실에 대한 개념적 표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가 계급분화에 기초하고 있는 한, 수정주의의 조화개념은 공허한 것, 즉 이 모순들의 상호작용이 빚어내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일시적 결과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법으로서 변증법은 사회가 모순의 전개과정에 의해, 즉 하나의 모순으로부터 또 다른 하나의 모순으로 변화하는 방식으로, 다시 말해 혁명적 방식으로 발전한다는 사실을 이론화한 것이기 때문에, 변증법에 대한 이론적 거부는 필연적으로 혁명적 입장 전체와의 본질적 단절을 뜻한다.

셋째, 수정주의자들은 위와 같이 모순적이며, 따라서 영원히 창조적인 운동인 변증법의 실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의 사고는 언제나 비역사적이고 구체적이지 못하며 창조적이지 못하다. 이들의 현실은 도식적이고 기계론적인 영구불변의 법칙들에 지배받고 있으며, 이 법칙들은 각각의 특징에 따라 끊임없이 같은 현상들을 만들어내며, 인간은 자연법칙에 종속되듯이, 이 법칙들에 운명적으로 복종해야 한다. 결국 수정주의자들의 견해로는 노동자계급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이 법칙들을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들은 이 법칙들이 설명하지 못하는 새로운 상황이 존재하며, 아니 노동자계급의 의지가 그 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비과학적이라고 여긴다.(사실상 위인이나 윤리에 대한 과도한 강조는 이러한 태도의 이면에 지나지 않는다.)

넷째, 그러나 수정주의자들은 이 법칙들은 자본주의발전의 법칙들로 생각한다. 그래서 이 법칙들의 초역사적초시간적 타당성을 강조하는 것은 곧 이들도 자본가계급과 똑같이 사회를 본질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실체로 본다는 것을 뜻한다. 이들은 더 이상 부르주아사회를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따라서 역사적으로 멸망하게끔 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에게 있어서 지식이란 이 멸망의 시기를 인식하고 그것을 가속화하는 수단이 아니라, 기껏해야 부르주아사회 내에서 노동자계급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수단일 뿐이다. 수정주의에 따르면, 부르주아사회를 실천적으로 지양하고자 하는 생각은 모두 환상이자 유토피아이다.

다섯째, 따라서 수정주의는 현실정치에 얽매여 있다. 수정주의는 늘 계급 전체의 진정한 이해를 희생시키는 대신에 특정 집단의 눈앞의 이해만을 대표한다. 왜냐하면 계급 전체의 이해를 대표하는 것은 수정주의자들에겐 유토피아이기 때문이다.

이상의 설명만으로도 다음과 같은 사실이 분명해진다. , 자본주의의 새로운 발전으로 말미암아 비록 일시적이지만 일부 노동자집단들이 그로부터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노동자계급정당들의 조직구조상, 비록 혼란한 상태에 있지만 본능적으로 혁명적인 광범한 노동자계급 대중보다 일부 집단과 이 집단의 지적 대표자들이 더 큰 영향력을 가졌었기 때문에, 수정주의가 노동운동 내부의 현실적 경향이 될 수 있었다.

모든 기회주의적 경향들의 공통된 특성은 절대로 노동자계급의 계급관점에서 사건들을 보지 않으며, 그 결과 비역사적, 비변증법적, 절충주의적 현실정치의 함정에 빠진다는 점이다. 이것이 세계대전에 대한 기회주의자들의 제각기 다른 해석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이며, 이것에 의해 이 해석들이 예외 없이 이전의 기회주의의 불가피한 결과임이 여실히 폭로된다. 우익이 자기 조국의 제국주의세력들을 무조건적 지원하는 것은 자본가계급을 미래 역사발전의 주도계급으로 여기고, 노동자계급에겐 자본가계급의 진보적 역할을 지원하는 임무를 맡겨야 한다는 견해 - 처음엔 아무리 조건부적인 견해일지라도 - 로부터 나온 결과이다. 인터내셔널이 전쟁에는 부적합한 평화의 도구라고 하는 카우츠키의 태도, 1차 러시아혁명 뒤에 혁명의 목표가 막 성취되려고 할 때, 현명한 멘셰비키의 전술이 혁명적 행동의 와중에 자리 잡기는 실로 어렵구나!”라고 탄식한 멘셰비키 체라바닌(Cheravanin)의 태도와 다를 바 없다.

기회주의는 자본가계급 가운데 어느 계층과 연합하면서 이것의 지원세력으로 노동자계급을 규합하려고 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우파는 중공업과 금융자본과 결탁할 수 있는데, 이 경우 무조건 제국주의를 필요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은 제국주의전쟁에서, 그리고 조국의 위대한 승리에서 자기 자신의 이해가 현실적으로 실현되는 것을 볼 것이라고 상정된다. 기회주의는 또한 비록 마지못해 제국주의에 협력하기는 하지만 자신들이 부차적인 지위로 밀려났다고 생각하는 부르주아들과 연합할 수 있다. 이들은 실제로는 제국주의를 지지하지 않을 수 없으나, 제국주의가 가하는 압박에 불만을 품고, 사태가 다르게 바뀌기를 바란다.’ 따라서 이들은 평화, 자유무역, 그리고 가능한 한 빨리 정상적상태로 복귀를 갈망한다. 물론 이들은 절대로 제국주의의 적극적 반대자가 될 수 없다. 이들이 하는 일이란 기껏해야 제국주의의 전리품에서 자기 몫을 챙기려는 것이지만, 이는 헛수고일 뿐이다. (일부 경공업 부문의 몇몇 분파와 소부르주아 계급이 이 범주에 포함된다.) 이들에게 제국주의는 우연한 사태이다. 이들은 우연한 사태의 평화주의적 해결과 그 모순의 완화를 지향한다. 사회민주당의 중도파가 이 부르주아계층의 지원세력으로 만들고자 하는 노동자계급 역시 제국주의전쟁에 반대하여 적극적으로 싸워서는 안 되고, 싸우지 않는다는 것이 실제로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뜻하지는 않지만 다만 정의로운평화 따위의 필요성을 선전하도록 상정되어 있다.

인터내셔널은 전 세계 노동자계급의 공통이해의 조직적인 표현이다. 자본가계급을 위하여 노동자들이 노동자들과 싸울 수 있다는 이론이 인정되는 순간, 인터내셔널은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게 된다. 서로 경쟁하는 제국주의 열강을 위해 노동자와 노동자가 벌이는 이 유혈투쟁이 인터내셔널 지도부의 과거 태도에서 생겨난 어쩔 수 없는 결과임이 더 이상 은폐될 수 없는 순간, 인터내셔널의 재건, 올바른 궤도수정, 복구 따위의 말은 더 이상 운위될 수 없다. 인터내셔널 내부의 기회주의적 경향을 인지하는 것은 곧 기회주의가 노동자계급 진영 안에 있는 노동자계급의 적임을 뜻한다. 따라서 노동운동에서 기회주의자를 제거하는 것이야말로 자본가계급에 대한 투쟁의 성공적인 출발을 위한 제1, 필수적인 선행조건이다. 요컨대, 노동자혁명의 준비를 위한 급선무는 이 파괴적인 영향에서부터 노동자들을 지적으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해방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투쟁은 바로 세계 자본가계급에 대한 노동자계급 전체의 투쟁이므로, 기회주의에 대한 투쟁은 어쩔 수 없이 새로운 혁명적 노동자 인터내셔널의 창설로 귀착된다.

과거의 인터내셔널이 기회주의의 늪에 빠져버린 것은 아직 혁명적 성격이 표면에 드러나지 않았던 시기의 결과이다. 기회주의적 인터내셔널의 붕괴와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필요성은 내전의 도래가 이제 불가피해졌다는 징후이다. 그렇다고 지금부터 날마다 바리케이드를 치고 전투를 벌여야 한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그렇게 해야 할 필요성이 지금 당장이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 즉 역사는 내전을 역사의 일정에 올려놓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터내셔널은 물론 노동자당이 존속하기 위해서는 이 내전의 필연성을 분명히 깨닫고, 이를 위해 노동자들을 지적으로, 물질적으로, 이론적으로, 조직적으로 준비시켜야 한다.

이를 준비하려면 시대의 성격을 먼저 알아야 한다. 노동자계급이 세계대전을 제국주의 발전의 논리적 결과로 인식할 때, 내전이야말로 제국주의에 봉사함으로써 노동자계급 자신의 파괴를 막을 수 있는 오직 하나의 저항임을 분명히 깨달을 때, 이러한 저항의 구체적이고 조직적인 준비가 시작될 수 있다. 이러한 저항이 효과적일 때, 모든 피억압자들의 억눌렸던 몸부림이 자기 자신의 해방을 위해 싸우고 있는 노동자계급과 연결될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은 해방을 위한 진정한 투쟁, 즉 진정한 세계혁명의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무엇보다도 먼저 명백하고 올바른 계급의식을 갖추어야 한다. 명료한 이론과 투쟁성을 갖추고 이 투쟁으로부터, 그리고 이 투쟁을 위해 성장하는 인터내셔널은, 요컨대 노동자계급 내의 진정한 혁명적 요소들의 통일체가 된다. 아울러 그것은 전 세계 피억압인민들의 해방투쟁을 위한 기구이자 중심이다. 인터내셔널은 세계적 규모의 볼셰비키 당, 즉 레닌의 당 개념이다. 세계대전이 전 세계의 거대한 파괴라는 대우주에서 자본주의 세력들의 쇠퇴를, 따라서 그것들에 대항하는 가능성을 드러냈다면, 레닌은 신생 러시아 자본주의라는 소우주에서 러시아혁명의 가능성을 분명하게 꿰뚫어보았다.

 

 

옮긴이: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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