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실천연구소

1930년대 미국사회주의 운동과 노동자 투쟁 본문

실천지 (2008년)/2008년 3월호

1930년대 미국사회주의 운동과 노동자 투쟁

사회실천연구소 2014. 12. 15. 14:57

미국 예외론?”

 

100여 년 전, 독일 사회학자 베르너 좀바르트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왜 미국에는 사회주의가 없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좀바르트 스스로가 내놓은 대답은 이와 같다.

 

자본주의의 성공이 미국 노동자를 이상 따위를 품는 일 없이 냉정하게 계산을 굴리는 사업가로 만들어버렸다. 구운 쇠고기와 사과파이라는 암초에 걸리면 어떤 종류의 사회주의 유토피아도 좌초해 버린다.”

 

이를 테면 자본주의의 성공이 미국 노동계급을 비판의식 없이 현실에 만족하는 집단으로 만들고 미국 정치에서 사회주의가 발붙일 틈을 없애버린 요인이라는 것이다.

네이션지 편집장이었던 E. L. 고드킨은 좀 다르게 문제를 설정했다. 1867년 왜 미국에서는 파업이 꼬리를 물고 있는데도 영국에서는 너무나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치열한 계급의식이 존재할 수 없는 지를 설명해 보려고 했다.

 

그곳(유럽)에서,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는 그저 더 많은 임금만을 바라는 일꾼이 아니다. 그는 특정한 사회적 신분에 속한 사람으로 다른 신분들을 상대로 한 정당한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 그의 고용인도 이윤에서 더 많은 몫을 챙기려고 하는 단순한 자본가는 아니다. 그는 노동자가 편입을 꿈꿀 때 …… 비겁하다거나 배신자로 낙인이 찍히는 적대계급의 일원인 것이다. 새삼 말할 필요도 없지만 미국에는 이런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사회적 경계는 여기서는 아주 희미할 뿐이다. 지금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크게 성공한 자본가도 노동자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노동자는 …… 고용주가 되고 싶어 한다. 더욱이 노동자와, 노동자가 일을 해주는 사람들 사이에 …… 관례나 풍습, 전통 같은 장벽은 거의 없다. 이 때문에 노동자는 자기가 한 신분의 구성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파업이 유럽에서보다 감정적인 성격을 덜 지니고 있고 거래적인 성격은 더 강하다. …… 또 최악의 상황이 닥쳐도 (미국 노동자의 뒤에는)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고 …… 이 때문에 어느 노동자든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며 미래를 불안해하지 않지만 이는 유럽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것 말고도 미국 노동계급은 정치권력까지 누리고 있다.”

 

고드킨은 이 문제를 놓고 지금까지도 제시되고 있는 대답들을 짜낼 때 들어간 요소들을 거의 건드렸다. 이를 테면 미국 이데올로기에서 사회적 유동성, 노동조합운동의 성격, 정치구조에 이르기까지. 그런데도 명쾌한 답변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사회적 유동성이 강하다거나, 미국 국민성 자체(자유주의 전통) 또는 봉건주의 부재 등 여러 요소를 내놓긴 했지만, 저마다 경험적 검증을 거치지 않았다. 토크빌이 말했듯이, 사회적 유동성은 정치적 안정성을 높이기보다는 해치는 교란 요인이다. 실제로 충족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빨리 기대치를 높여놓는 바람에 더 많은 사회적 변화를 요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자본주의의 성공은 대공황 중에 사회주의가 상대적으로 취약해 대중적인 사회주의 운동을 촉발시키지 못했던 일이나 유례없는 활황기였던 1960년대에 급진주의운동이 불붙었던 일을 거의 설명할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문제를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왜 미국에는 사회주의가 없을까?”라는 질문에서 사회주의는 무엇을 뜻하는 것이고, 어떤 사회주의의 부재를 풀어야 한다는 걸까. 사회주의가 태어났을 때부터 좀바르트가 문제를 내놓았을 때, 그리고 최근까지 개념상의 변화 없이 통일성을 유지했는가. 다른 말로 사회주의 자체에도 분명히 역사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 문제를 접근하려면 사회주의를 탈역사적인 추상 개념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 특수성 또는 예외성을 내세우지 말고 미국 사회주의의 문제를 역사화해야 한다. 미국의 역사는 중요한 여러 측면에서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 그리고 다른 모든 나라의 역사들만큼 독특하다. 그러나 미국 역사의 예외적 요소들에만 집착하다 보면 국경을 초월해 나타난 공통적 양상과 과정들, 가장 중요한 보기를 들면 자본주의가 19세기와 20세기에 전 세계로 확대되고 정치와 이데올로기 영역으로까지 스며드는 과정 같은 것들은 시야에 들어오지 않게 된다.

 

왜 사회주의가 없을까라는 질문은 사회주의가 자본주의 발전의 내적 논리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또 광범위하고 철저한 사회 변화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에 여러 급진주의운동들 가운데서도 사회주의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는 역사 해석에서 출발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질문은 서유럽에는 대중적인 노동자 정당, 사회주의 정당, 공산주의 정당이 있지만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경험적 증거를 근거로 삼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중요하게 설명해야 할 것은 사회의 혁명적 변화를 뜻하는사회주의의 부재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해명해야 할 것은 사회의 혁명적 변화를 목표로 하지 않는 사회민주주의 경향을 띠고 있는 정당들, 즉 서유럽 좌파 정당의 존재이다. 물론 서유럽 좌파 정당은 유권자의 생활 조건을 나아지게 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지닌 꽤 많은 정치 역량을 사회를 근본에서부터 재조직하는 데 쓸 수 없었다는 것을 또렷이 보여주었다. 그 점에서 왜 미국에는 사회주의가 없을까.”라는 질문은 왜 유럽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회주의적 전환이 일어나지 않았을까.”로 바뀌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아울러 미국이 걸었던 길이 하나의 예외가 아니라, 서유럽 좌파 정당이 걸어갈 길을 앞질러 보여주었던 것은 아닐까.

어쨌든 우리는 1890년대에서 1930년대까지 미국에서 거센 노동운동이 일어났음을 알고 있다. 그런 급진주의는 왜 노동계급에게 계급의식을 갖게 하지 못하고 그들의 정당을 세우는 것으로 이어지지 못했을까. 거듭해서 역사에 물어본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에 관한 것이 아니다. 아니 과거와는 거의 상관이 없다. 사실 역사가 강력한 힘을 갖는 까닭은 우리 안에 역사가 있기 때문이고,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를 지배하기 때문이며, 그리하여 말 그대로 우리가 하는 모든 일 안에 현존하기때문이다.”(제임스 볼드윈)

 

이번 호에는 이런 글을 담아냈다.

 

[특집] 1930년대 미국 사회주의 운동과 노동자 투쟁

1900-45년 미국에서 노동계급 정당의 미형성에 관하여(L. Goldner)

미국에서 노동계급 운동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마르크스주의 확산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는 글이다. 저자는 그 이유를 지도부의 오류나 배반 같은 것에서 찾지 않고, 자본주의 발전 단계에서 찾으려고 한다. 세계 자본주의가 외연적 축적 국면에서 내포적 축적 국면으로 이행하는 과정에 주목하고, 그 과정에서 국가가 수행한 역할과 노동 계급의 운동을 분석한다.

유럽 국가들과 비교하여 미국 역사가 지니는 특수성을 밝히는 것이 주된 작업이다. 그 특수성을 요약하면 이렇다. 미국은 유럽의 다른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과는 달리 절대주의 국가에 의지하지 않고 자본 축적의 외연적 국면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미국은 절대주의 국가도 국가 교회도 없었고, 그래서 대체 부르주아 혁명의 필요성도 없었다. 이것이 노동계급 운동의 허약성을 낳았다. 또한 1873-1945년 기간에 미국은 노동계급 정당의 국가 참여에 의지하지 않고도 내포적 축적 국면을 위해 국내의 사회·정치 제도를 재편성할 수 있었다.

 

 

백인과 계급투쟁(N. Ignatiev)

왜 미국에서 노동계급이 단결하지 못하는가?” 이런 류의 질문은 왜 미국에는 사회주의가 없는가?”와 짝을 이루어 미국 예외론을 주장하는 논자들이 흔히 제기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질문에는 인종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역사에서 처음부터 인종문제가 자연스러운 것이었는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백인이 주도권을 잡고 나라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분명히 발명된 것이다. 그리고 그 발명의 이면에는 철저한 경제적 이해관계가 자리하고 있으며 그러한 이해관계는 백인 우월주의라는 이데올로기나 백인특권이라는 제도화를 통해 확보되었다. 미국 역사에서 노동계급이 단결하지 못했던 까닭은 바로 이 백인특권체계때문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당연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것은 과정 속에서 만들어졌을 뿐이다.

 

 

[기획1] 욕망과 혁명

그리스도의 살해(Wilhelm Reich)

 

가장 황당한 일은 그리스도의 살해는 그 살해로부터 가장 많이 고통당하는 인민들 자신에 의해서 보호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리스도 주위에 몰려들지만 그의 방식으로 살아가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리스도의 진정한 살해자는 살아있는 삶의 좌절과 시기와 편협함의 혼합물인 인민의 기본적인 성격구조이며, 그 전염병의 은신처를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한 것에 대해서 자연철학 형식으로 해법을 제기한 것이 조르다노 브루노이다.

이처럼 신을 아는 길로 인도하는 브루노는 신에게로 인도한다는 이유로 살해된다. 예수의 진정한 살인자는 우연히 살인자가 된 모세니고가 아니라 두드러지지 않은 정직한 시민들이다. 살인자는 좌절되고 도착된 성기적 욕망에서 악을 빚어낸다.

그리스도는 자연적인 위엄과 직접적이고 매력적인 신랄함을 지니고 있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 주위에 모여들지만 그처럼 살아가지는 않는다. 그리스도는 무장된 사람들 속에서는 어울리지 않고 부적합하다. 자연스런 성기적 사랑을 발하는 갈릴리에서의 그리스도는 예루살렘에 들어가서는 일변한다. 무장된 사람은 실존하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살해할 수 밖에 없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죄 때문에 죽는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모든 창조물들의 사랑은 그들의 육체 속에 있다. 그러한 사랑을 실현할 수 없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죽인 것이다.

 

[기획2] 신자유주의 시대 자본주의의 얼굴

경쟁, 자본주의 위기, 그리고 계급에 관한 초고(W. Bonefeld)

 

Bonefeld1970년대 이후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Brenner의 설명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그는 Brenner가 자본주의 재생산을 자본과 노동 사이의 계급투쟁이 아니라, 자본 사이의 계급투쟁, 즉 자본주의 경쟁 때문에 형성된 것으로 잘못 파악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Bonefeld는 노동계급 투쟁이 없는데도 자본주의의 위기가 지속되었다고 해서, 자본주의가 자본과 노동 간 투쟁의 사회적 관계를 뜻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정세분석]

노동당좌파에서 사회주의노동당으로: 급진개량주의의 한계(ICU)

 

 

[사료읽기]

4인터내셔널(朝鮮總督府 高等法院 檢査局 思想部)

이 글은 식민시기 일본 경찰이 펴낸 <4인터내셔널>에 대한 하나의 동향 보고서다. 본래 國民思想, 第三卷. 第八號에 실린 것을 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가 펴낸 思想彙報12(1937)에 다시 실은 글이다.

1930년대 일제가 <4인터내셔널>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그 때 분위기를 전할 수 있는 사료라 생각되어 실어본다. 글 중간 중간에 번역하지 않은 부분이 있는 데, 이는 글자가 손상되었기 때문이다.

[여성, 그들의 반역]

마더 존스: “광부들의 천사

여성해방은 혁명 속에서 이루어진다: 온 몸을 불태운 여성 혁명가 상경여(向警予)

 

 

편집장 정인 씀 2008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