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실천연구소

메이드 인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 노동자를 다시 발명하기 위한 투쟁 본문

실천지 (2008년)/2008년 8월호

메이드 인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 노동자를 다시 발명하기 위한 투쟁

사회실천연구소 2014. 12. 16. 09:12

메이드 인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 노동자를 다시 발명하기 위한 투쟁1

 

Jonah Gindin2


지난 달, 베네수엘라 전국 노동조합(the National Union of Venezuelan Workers: UNT)은 두 번 열렸다. 20035월에 처음 열린 뒤에, UNT는 노동 부문에서 베네수엘라 혁명의 진전을 놓고 벌어진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본질적으로, 이러한 논쟁은 노동자 통제의 쟁점, 즉 그들의 공장과 노동조합에 대한 노동자의 통제로 시작되었다. 민주주의는 베네수엘라 노동자가 그동안 부패와 계급협조로 특징 지워졌던 노동운동을 재발명하기 위한 시도의 중심에 있다.

베네수엘라 대통령 후고 차베스(Hugo Chávez)1998년에 당선되어 급진적 정치, 사회 변화의 새 시대가 막을 열렸다. 그때 마치 노동이 뒤쳐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중요한 노동연맹, 즉 베네수엘라 노동자 연합(CTV)은 차베스를 가장 신랄하게 비판하는 세력 가운데 하나였다. 차베스도 정규적으로 CTV에 맹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주요 미디어가 끊임없이 되풀이했던 차베스 대 노동의 이미지는 정확히 오해시킬 계획을 지닌 것이다. 진실은 CTV1970년대 이래 베네수엘라 노동자를 거의 대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차베스 대 CTV의 실재는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 지도자인 시몬 볼리바르(Simón Bolívar)의 이름을 딴 차베스의 볼리바리안 혁명에 베네수엘라 노동자의 많은 부분의 적극적이고 열광적인 참여를 차단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구화가 가속화한 시기에, 차베스가 신자유주의 모델을 큰소리고 거부한 것은 특히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런 거부는 단순한 수사 이상이었음이 입증되었다. 2002~03년에 쿠데타와 석유산업 경영자 주도의 조업중단을 모두 견디고 살아나고, 극적인 국민투표의 승리와 지역 선거에서 완승을 통해 자신의 합법성을 굳힌 뒤, 차베스의 운동은 말 그대로 실행되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 계획과 정반대로, 베네수엘라는 사회복지를 최우선으로 하는 대안적인 발전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근본적으로 베네수엘라 혁명은 민주주의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그 민주주의는 흔히 북미에서 생각하는 형식적 민주주의(thin democracy)”가 아니다. 베네수엘라에서 그 말은 정치적지리적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차원으로 통합되었다. 대중의 참여는 공동체의 예산을 토의하는 지역 계획 위원회의 힘겨운 발전을 뜻한다. 그러나 그것은 몇몇 분야에서 세계시장을 위한 생산에서 베네수엘라 국민을 위한 생산으로 전환을 뜻한다. 따라서 식량의 70%를 수입하고 있는 베네수엘라가 가져야 할 방향은 식량 주권을 위하여 천천히 비축하는 것이다. 차례로 식량 주권은 토지의 민주화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는 상위 5%의 지주가 사적 농지의 75%를 차지하고 있고 하위 75%가 겨우 사적 농지의 6%만을 차지하고 있는 베네수엘라 농촌의 토지 분배를 뒤집는 것이다.

볼리바르는 그 지역 전체에서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차베스는 남아메리카 국가 사이에서 연대를 고무하기 위해 이 인물을 이용했다. 지역의 단결, 실제로는 -의 단결이라는 그의 수사는 라틴 아메리카를 통일하기 위한 볼리바르 일생의 계획에 바탕을 둔 것이다. 차베스는 지구적 자본의 폭력에 반대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될 지역 연합을 추진하는 그러한 사명을 착수했다.

알로 프레지덴트(Aló Presidente) 1월 말 방영분에서, 차베스 대통령은 경제발전을 위한 새로운 방향을 알렸고, “메이드 인 베네수엘라라는 슬로건에 집중했다. 차베스는 350명의 제지 공장 노동자와 대판 싸운 뒤 정부가 최근에 몰수해버린 커다란 제지 공장(Invepal)에서 공표했다. 성명서는 2년 된 UNT의 투쟁 슬로건을 반영하고 있다. 노동자 참여가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와 그 밖의 다른 곳에서 이전의 노동자 참여 경험이 낳은 뜻하지 않는 위험에 조심한, 현재 베네수엘라 실험은 순수한 노동자 통제를 필요로 하고 재산 소유자 또는 기술 노동자 관리자 계급으로서 노동자의 창조를 거부한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정치적 변화의 과정은 1998년 이래 계속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더 진행되어야 한다. 토지 개혁은 농장 노동자 사이의 조직화 결여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고, 비공식부문은 아직도 비조직적이고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노동자 관리와 새로운 노동조합주의를 향한 전환은 더디며 어려움과 장애가 따랐다. 혁명에 맞서 공동전선을 짠 세력의 분명한 생각과 정확한 그림을 통해 베네수엘라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물론 마찬가지로 혁명이 모든 구습에 맞서 얼마나 진행되었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음은 베네수엘라 노동의 상태, 베네수엘라의 진보와 장애, 그리고 무엇보다 베네수엘라의 가능성을 간략히 토론할 것이다.

 

 

새로운 베네수엘라

 

1998년에 휴고 차베스 선거 이전 40년 동안, 두 개의 전통적인 정당이 권력을 공유했고 국가의 가장 중요한 제도에 대한 통제권을 놓고 겨루었다. 1958년에 독재자 Perez Jiménez로부터 석유 경제를 물려받은, 사회민주주의 Acción Democraticathe Christian democratic Comité de Organización Política Electoral Independente (COPEI)는 석유 재산을 엘리트 집단에서 유통되도록 했다. 그리고 그들은 국가에 석유를 뿌리기라는 강력한 민족주의적 수사를 공급했다.

Jiménez 독재에 맞선 투쟁에 종사했던 진보적 조직으로서 시작했지만, CTV는 급속히 당의 이익에 종속되고 말았다. 게다가, CTV는 미국의 자유노동 발전 연구소(the American Institute for Free Labor Development, AIFLD)에서 큰 기금을 받았고, 남미 지역에서 미국이 지도한 반공산주의 활동에 오랫동안 협력했다. 1980년대에 신자유주의 정부가 들어서자, 이것은 노동자에게 매우 비싼 대가를 치르게 했다. 이 시기에 CTV는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노동자 관리의 토대를 놓았다. 그때 CTV는 상공회의소 위원과 노동부 장관과 함께 삼각의 공동 경영(노동자참여)” 위원회에 결합했었다. 1990년대 중반에, CTV 지도자는 대통령 칼데라(Rafael Caldera)와 개혁과 사유화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협정을 맺었다. 그 협정으로 노동자는 더욱 파괴했고 CTV는 한층 더 권위를 잃게 되었다. 베네수엘라 노동자는 이제 경영에 실질적인 노동자 참여를 창조하기 위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차베스가 1998년에 권력을 잡게 만들었던 변화에 대한 전국적 요구는 노동운동도 빗겨가지 않았다. 존재하는 비판은 다면적이었고 새로운 비판은 그들의 지도자로 추정된 사람의 부패에 점점 더 환멸을 느끼게 되었던 노동자에 의해 분명히 표현되었다. 중요한 사회적 변화에 대한 좀 더 큰 약속은 빈곤선 이하에서 살고 있는 베네수엘라 주민의 80%의 생활수준을 올리고, 의제에 노동개혁을 넣는 것을 목표로 삼은 것이었다.

순수한 결과는 CTV와 관계있는 노동조합과 연맹의 큰 부분과 함께 노동운동 내의 극적인 분열이었다. 2003년에 이들 노동조합은 UNT를 만들었고 임시 지도부를 세웠다. 그것은 제안된 새로운 노동조합주의의 전국적 목소리가 될 것이었다. UNT는 아직 완전히 발달하지 않았고 2005년 가을로 예정된 공식선거가 있기 전까지 불안정한 조직을 완비해야 했다. 그러나 지난 6년에 걸쳐 베네수엘라 사회에서 일어났던 좀 더 폭넓은 전환은 노동자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UNT가 정부와 맺은 긴밀한 유대는 자신을 국가 선수가 되게 하는 것을 확보했을 수도 있다.

어느 조직이 어떻게 대표적이 될 것인지 아직 정확히 말할 수 없다. 그러나 UNT는 생긴 지 2년 만에 놀랍게도 빠르게 성장했다. 이러한 여세를 평가하는 한 방법은 각각의 연합과 체결했던 단체 협약의 비율을 계산하는 것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2003~04년에 체결된 단체 협약의 76.5 퍼센트는 UNT에 가입했던 노동조합의 것이었고, 20.2 퍼센트는 CTV와 체결했던 것이었다. 이것은 주로 UNT가 공공부문에서 헤게모니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적 부문에서 UNT2003~04년에 체결했던 모든 단체 협약의 50.3 퍼센트였고, CTV45.2 퍼센트였다.

그럼에도, 사회는 새로운 단계, 새로운 정부, 또는 새로운 노동조합의 선언에도 하룻밤 새에 전환되지 않았다. 노동조합은 베네수엘라의 지난 정권, 즉 제4 공화국(1958~99)에 대한 결정적인 토대였다. 그것을 대체하는 것은 구체적이고 폭넓은 경제사회정치적 전략의 명료화를 요구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 가운데, 민주주의에 대한 강조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노동권, 인권: 코카콜라 펨사(Coca-Cola Femsa)

 

베네수엘라 노동조합은 역사적으로 산업보다는 공장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심지어 같은 회사 안에, 모든 공장에는 그 자신의 노동조합이 있었다. 따라서 베네수엘라에 있는 코카콜라 펨사의 8개 음료 제조공장의 경우에도, 서로 다른 노동조합이 있다. 적어도 하나의 공장에는 두 개의 노동조합이 있다. CTV에 친화적인 낡은 노동조합의 비효율성에 싫증난, 발렌치아 지점에 있는 여러 활동가는 그들이 기존 노동조합에 맞설 때까지 지지를 꾸준히 얻고 있는 비슷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코카콜라 펨사는 멕시코와 중남미의 공장과 함께 라틴 아메리카에서 코카콜라 생산물(맥주, , 그리고 다른 음료를 포함)을 병에 담고 분배하며, 팔고 있다. 베네수엘라가 겨우 전체 수입의 7.1 퍼센트(멕시코: 66.7 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콜럼비아의 6.5 퍼센트보다 약간 더 많다. 스톱 킬러 코크(Stop Killer Coke; http://www.killercoke.org/)의 국제 캠페인에 따르면, 콜럼비아에서 회사로서는 노동조합 활동가에 대한 협박과 고문, 살해에 책임을 진 준군사조직과 협력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베네수엘라 지점인, 코카콜라 펨사의 발렌치아에서 새로운 노동조합의 사무국장인 호세 카르데날(José Cardenal)은 베네수엘라에서, “그들은 콜럼비아에서처럼 노동조합 지도자를 죽이지는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들은 합법적으로 정당하게 노동권을 위해 정말로 싸우고 있는 노동조합 지도자를 끌어낼 것을 주장했다. 그들은 노동자가 조직하려고 애썼을 때 또는 노동자가 그들의 법적 권리를 주장하려고 애썼을 때 노동자를 합법적으로 협박하고 위협하며, 억압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20045월에, 몇 달에 걸친 꾸준한 조직화 뒤에, 카르데날과 다른 활동가는 공장 전체의 투표에서 존재하고 있는 노동조합에 맞서 동등한 노동조합을 만드는데 착수했다. 투표는 발렌치아의 노동 검사국의 관리 하에 노동조합과 회사 모두의 대표자가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그 결과 새로운 노동조합은 301표 대 234표로 승리했다. 노동자 참여는 80 퍼센트가 넘었다.

새로운 노동조합의 문화국장인 프레디 콘트레라스(Freddy Contreras)코카콜라 펨사의 노동자는 결코 합당한 급료를 받지 못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콘드레라스는 코카콜라 펨사의 노동자가 그들의 권리를 얻어내기 위해 옛 노동조합에 의지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화가 나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옛 노동조합 지도부는 회사와 동맹을 맺었고, 그들은 회사에 의해 매수당했다. 노동자는 노동조합에 맞서 올바른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노동조합이 자신들을 해고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회사는 이러한 노동조합 지도자의 봉급을 지불했고, 회사는 그들에게 공장에서 직위를 주었으며, 회사는 이들 지도자를 노동자에게서 떼어내어 자신들 편으로 만들었다.”

20045월에 새로운 노동조합이 승리한 이래, 그들은 작지만 중요한 진전을 이루어냈다. “전에는 회사가 우리에게 식권을 주었고 우리가 그것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새로운 노동조합이 생긴 이래 우리가 그렇게 했다.” 켄베이어 라인의 탄산음료제조공 훌리오 르레뻬스(Julio Llepes)가 지적했다. 그는 또한 새로운 노동조합에서 늘어나는 개방성을 지적했고 만일 앞으로 그가 그들의 지도부와 갈등에 빠진다면, 그는 처형의 두려움 없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7년 동안 공장에서 일했던 루이스 페레로는 새로운 노동조합이 지난 4년 동안 생산 라인에서 억지로 점심을 먹었던 노동자에게 그에 해당하는 임금을 소급 지불할 것을 확보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하나의 중요한 정치적 승리에서, 새로운 노동조합은 또한 코카콜라 펨사가 200212~20032월 총파업 동안 직장을 폐쇄했던 두 달 동안 받지 못한 임금을 지불하도록 회사에 압력을 넣었다. 노동자는 그들이 직장폐쇄 동안 밀린 임금을 지불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지금까지도 그 임금을 받지는 못했다.

코카콜라 펨사는 노동자가 고용주와 지나치게 우호적으로 교섭했던 부패한 지도자에게서 그들의 노동조합을 도로 찾으려고 투쟁했던 공장 가운데 하나이다. 2000년에 포드는 그 지역에서 노동조합 투표를 했던 최초의 공장이 된 전례를 세웠다. 새로운 노동조합은 2004년에 폭발했던 지역 노동조합을 민주화하려는 늘어나는 운동의 도움을 받아 쉽게 이겼다. 지난해에, 나라의 수공업 기반인 베네수엘라의 쌍둥이 도시인 발렌시아와 마라카이에서 8개의 노동조합 투표가 있었고, 모두 새로운 노동조합이 이겼다.

2004년에 노동조합 투표와 비슷한 노동조합의 조직에서 급격한 증가는 상당부분 국가의 역할 덕택이다. 노동부가 이러한 쟁의에서 편들기를 피했던 것으로 보인다. 20034월에 선언되었던 저임금 노동자의 해고 중지는 노동조합 투표에서 표 차를 더욱 나게 만들었다. “회사는 새로운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그들의 권리를 위한 투쟁을 시작하기 위해 노동자를 조직하는 노동자를 해고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해고의 일시 중지가 있기 때문이다.”고 카라보보 주의 UNT의 지역 감독관인 호아퀸 바레토가 지적했다. “정부 덕택에, 이들 노동자는 그들이 새로운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일반 투표를 열며, 투쟁을 협상 테이블로 옮겨 놓기 위해 필요한 몇몇 수단을 지니고 구체적인 이득을 얻는 데 필요했던 숨 쉴 공간을 지녔다.”

해고의 일시 중지는 베네수엘라에서 뒤늦게 투자를 확대했던 초국적 기업에게는 하나의 급진적인 반전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 내내, 베네수엘라 정부는 국영기업의 역사에서 나라의 철강과 전기통신 부문, 국영 항공사, 그리고 나라의 모든 항만 시설을 민영화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이러한 공장에서 노동자에게 변화는 새로운 관리를 훨씬 넘어선 것이었다. 효율성과 생산성의 숭배는 계약직 노동자의 비율을 급격히 떨어트렸다. 이제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계약직 노동자가 대부분의 경우에 노동조합에 가입한 고용인을 능가하게 되었다.

그런 전술은 물론 최근에 민영화된 기업에만 독특한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신자유주의 경향의 일부였다.

 

 

베네수엘라의 노동자 참여

 

지역 노동조합 민주주의의 수준에서, UNT는 노동자를 조직하고, 새로운 노동조합에 합법적이고 전략적인 장치를 제공하며, 국가와 교섭하는 데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 지도자는 또한 생산에 대한 노동자 통제의 촉진에 중심을 둔 작업장에서 민주주의를 조장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에 생기고 있는 새로운 노동조합주의는 볼리바리안 혁명 그 자체처럼 근본적으로 이론적 조류의 잡탕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 가운데 으뜸인 것은 노동자-국가 공동 경영이다.

노동자 참여가 무엇인가?” 카라보보 주, 발렌치아에 있는 올림픽 빌라에서 열린 회의에서 오소리오가 회의에 참가한 노동자에게 소리쳤다. 오소리오는 페트라엘렉(Fetraelec) 전력 노동조합의 징계위원회 의장이고 노동조합의 중요한 이데올로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볼리바리안 혁명과 연대하는 제3차 국제모임의 일부인 노동자 참여에 관한 워크샵에서 연설하고 있다. 그 모임에는 베네수엘라에서 온 노동자와 대표자, 캐나다 벤쿠버 노동위원회와 미국의 밥슨 칼리지 경제학 교수 등 국제초청집단이 참여했다. “우리에게, 노동자 참여는 노동자의 손에 있는 권력이다. 그것은 노동자에게는 회사를 경영하는 데 참여할 수 있는 권리이자 필요이다. 그것은 국가와 노동자, 그리고 (우리의 경우) 사용자가 똑같은 비율로 포함된 관리와 행정의 하나의 체제이다. 노동자 참여는 낡은 실패한 수직적, 부패한, 그리고 관료적인 체제에 대한 대안이다.”

베네수엘라 전기의 60 퍼센트를 공급하는 국영 전력 회사인 카다페(Cadafe)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차베스가 1998년에 대통령에 당선된 두 곧 노동자 참여를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2002년에, 4월 쿠데타 직후, 카다페는 공식적으로 노동자 참여로 이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3년 뒤, 의사결정 과정에서 노동자의 역할은 5명으로 이루어진 합병위원회에서 두 번째 지위로 제한되었다. 실질적인 노동자 참여를 이행할 수 있는 기회를 국가관리에게 준 뒤, 페트라엘렉 노동연맹이 이끈 카다페 노동자는 그들의 고통을 분명히 밝히는 일련의 저항을 시작했다. 그것은 교묘한 전력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노동자의 다수가 차베스 대통령의 열렬지지자였지만, 그들의 저항이 어쩔 수 없이 에너지 성을 직접 겨냥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3년에서 파업과 직장폐쇄, 쿠데타, 폭력적인 거리 시위(guarimbas)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페트라엘렉의 의장인 나바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러한 행동 형태가 정부에게서 권력을 탈취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강력한 특성을 지닌 국가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문구는 이제 지나버린 것이고, 이제 국가를 민주화할 수 있는 순간이 왔다. 왜냐하면 노동자와 주민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훨씬 더 커다란 역할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바스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혁명적 과정의 공고화와 적용에 대한 저항도 있다. 우리가 카다페에서 노동자 참여의 구제적인 계획을 밀어붙이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노동자와 권력을 나누길 거부했던 국가의 소문이 난대리인에 대한 거부를 일으켰다.”

하나의 예외는 노동자 참여의 이행에서 개척자였던 카델라이다. 카델라는 카다페의 안데스 지부이다. 노동자와 관리인이 효율적으로 공생한 카델라의 사례는 미래의 모델로서 연맹의 다른 노동조합이 지지했던 것이다. 카다페는 베네수엘라에서 밑으로부터 노동자 참여를 가장 잘 조직했고 가장 오래 지속했던 사례이다.

 

 

차비스타(Chavista) 노동조합주의 대 자치

 

하나의 논쟁이 UNT 안에서 일어난 분열을 특징 지웠다. 차베스에 대한 지지를 역사적으로 베네수엘라 노동조합을 벗어났던 정부로부터 자치와 어떻게 균형을 맞출 것인가? 그리고 이러한 논쟁은 또 다른 것, UNT의 민주적 구조에 대한 다른 견해에 관련된 것과 뒤섞였다. 차베스에 맞선 야당이 불법적이고 합법적인 공격을 시작하고 있는 맥락에서, 이런 논쟁에는 정서적인 효력이 덧붙여졌다. UNT 안팎에는 많은 경향이 있다. 가장 명백한 논쟁은 일반적으로 UNT 의장직을 놓고 붙은 두 명의 가장 뛰어난 후보, 즉 라몬 마추카(Ramón Machuca)와 오를란도 치리노스(Orlando Chirinos)로 인격화되어 둘로 축소되었다.

차비스타 노동조합주의흐름은 볼리바리안 노동자 힘(the Bolívarian Workers Force: FBT)과 친 차베스적 노동조합의 이전 UNT 연맹이 대표하고 있다. FBT의 조합원을 평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지금 그런 통계를 수집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UNT(전체 20)의 가장 활동적인 조정자 7명 가운데, 오를란도 치리노스를 포함한 4명은 FBT 출신이었다.

자율적 노동조합주의그룹은 위에 말한 7명의 UNT 조정자 가운데 남은 3명을 지지했던 라몬 마추카가 이끌고 있다. 거의 4천명의 조합원을 지닌 마추카의 철강노동조합 수티스(Sutiss)는 베네수엘라에서 가장 크고, 특히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 급진적 노동조합주의의 전통 때문에 가장 잘 알려진 노동조합 가운데 하나다.

이러한 논쟁을 복잡했던 것은 양측이 노동조합 자치를 표면적으로는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FBT는 노동부와 긴밀한 관계에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다른 한편으로 마추카 파는 가장 큰 공공부문 노동조합 가운데 한 곳의 의장인 프랭클린 론돈을 통해 정부에 연줄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비난당했다. 논쟁은 민주주의에 대한 좀 더 폭넓고, 쉽게 규정될 수 없는 논쟁으로 퍼졌다. 현재의 세력 관계를 고려하면, 이것이 새로운 조직의 민주주의적 본질을 축소할지라도, 새로운 연맹은 CTV를 대체하기 위해 세워져야만 했다는 것이다. 이와 반대되는 입장은 새로운 연합이 낡은 노동조합주의와 종합적으로 단절해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연합이 완전히 민주주의적 토대를 세우는 데 강조점을 둘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중요한 보기는 UNT의 다가올 선거에서 누가 투표를 하게 될 것인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마추카와 여러 UNT 조정자는 UNT 안 또는 밖에서 모든 노동자가 투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UNT의 첫 선거가 모든 노동자에게 영향을 미치기 쉽기 때문이다. 치리노스와 그의 동맹자는 그들이 이러한 전략의 취지에 공감하고 있지만, 그것은 CTV의 조합원이 UNT 선거에서 투표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사보타지에 문을 열어주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CTV 지도자들은 이론적으로 노동자의 이익보다는 CTV의 이익을 좀 더 긴밀하게 반영하고 있는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 그들의 조합원을 동원할 수 있다. 베네수엘라 노동자의 50 퍼센트가 자영업 노동자이거나 비공식 부문에 고용되어 있다는 사실에도, 이러한 주장 가운데 그 어느 것도 UNT의 선거에 일반 노동자의 참여를 제기하지 않았다.

 

 

UNT에서 단결?

 

지역 노동조합과 UNT 안에서 내부 투쟁이 지역적으로나 전국적으로 끓게 한 악감정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을 오래 끌게 되자, 양측은 일반 조합원이 단결의 부족 때문에 조바심을 내고 있다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되었다.

11월 중순에, 브라질에서 열린 라틴아메리카 노동자 총연맹(Central Latinoamericana de Trabajadores)12차 대회를 위해, 라몬 마추카와 마르세라 마스페로(UNT의 조정자이자 FBT의 구성원)는 개인적으로 만났다. 이런 만남은 경쟁적인 UNT 분파 사이의 화해에서 중요한 발걸음을 놓게 되었다. 마스페로와 마추카는 둘 다 브라질에서 열린 특별 회담을 개척적인 것으로 말했다. “양측은 지난날의 잘못, 우리 모두가 [UNT 안에서] 창조를 위한 책임을 똑같이 갖고 있다는 분위기에 대해 숙고할 수 있었다.”고 마스페로가 말했다. 마 추카는 양측이 이전에 몰두했던 인신공격적 전략이 거부되었고, 만남이 UNT의 필요에 대한 일종의 건설적인 이데올로기 논쟁을 촉진했다고 덧붙였다. 브라질에서, “ [양측 사이의] 관계를 크게 개선시키기 위해” 12월 초로 예정된 회담을 위해 카라카스로 UNT 조정자를 불러 모으기로 결정이 내려졌다.

그런 협력은 다가올 선거가 경쟁적인 노동연맹 각각에 다리를 걸친 베네수엘라 노동조합이 남긴 커다란 흔적을 극복하는 것이지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아직 결정되지 않은 부문으로서 이것은 새로운 연맹의 가능성을 잘 알고 있었지만, 지난날 베네수엘라 노동계를 상하게 했던 거센 분파주의 뿌리에 대해서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마추카와 치리노스가 단결할 수 있겠지만 정치적 불일치가 확실히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UNT는 베네수엘라에서 진보 정치를 위한 동적이고 다양한 기둥이 될 것이다. 그들의 시간 조절은 상황을 더 나아지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경쟁자 CTV가 다음 달에 선거를 열 것이고, 그렇게 되면 두 개의 노동 연맹을 그들의 가장 중요한 대결로 이끌게 될 것이다.

 

결론

 

진보적인 베네수엘라 정부의 지지를 통해 베네수엘라 노동계의 협력주의적 과거와 단절하는 것은 노동조합 지도자와 일반 조합원에 대한 의식적인 재교육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노동자와 노조 대표가 다른 종류의 노동조합주의와 다른 종류의 노동조합을 상상할 수 있다는 요점을 말하는 것은 오랜 과정이다. 그 가운데 하나는 공개적인 논쟁, 갈등, 그리고 무엇보다 역사에 대한 인식을 필요로 한 것이다. 노동자는 CTV의 무능력이 만들어낸 파괴의 잔해에서부터 투쟁의 문화를 구해내야만 한다. 그와 함께 그들은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새로운 것을 발전시켜야 한다.

UNT가 세워진 2년 동안, 몇몇 논쟁은 갈등으로 비화되었다. 이데올로기만이 아니라 여러 요소가 노동조합 지도자의 유익한 결정을 이끌어냈다. CTV의 낡은 노동조합주의에서처럼, 힘과 이기심은 자주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구 베네수엘라 좌파처럼, 잘못된 종파주의는 단결에 대한 실질적인 장애였다. 그러나 UNT의 매력은 이러한 갈등이 심각한 이데올로기 논쟁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새로운 연맹이 정부와 노동조합 자율성과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 어떻게 그들이 국가의 자비보다는 노동자의 행위에 뿌리를 둔 노동자 통제를 달성할 수 있을까? 어떻게 지역 지도자가 노동자의 이익을 공동체의 이익 그리고 지역과 국가의 쟁점과 적절히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 이러한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UNT는 결코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 그 자체는 베네수엘라에서 노동조합이 지닌 권위주의적 과거를 극복한 UNT의 구체적 진보를 나타낸 것이다.

이러한 시대의 쓰레기에서 베네수엘라 노동조합을 끄집어내는 것은 단순히 청소만이 아니다. UNT는 고통도 겪었고 아주 힘 있는 승리도 거두었다. 진보와 역전의 외관을 제거하는 것은 노동조합을 그러쥐고 있는 다시 생각하고 다시 상상하는 결정적 과정을 드러내는 것이다. 지역적 수준과 전국적 수준에서 UNT 안의 심각한 균열, 그들 사이의 유대, 그리고 노동운동에 이러한 분열이 미칠 파괴적 영향과 건설적 영향은 하나의 상상된 전체로서 낡은 잡석더미에서부터 새로운 연맹을 들어 올리는 과정에서 생긴 자잘한 모래를 비추는 것이다. 정치와 정책에 대한 논쟁은 토론을 위한 공개적 포럼을 UNT의 기본 구조로 세우게 하고 있다.

 

  1. Monthly Review, vol. 57, no. 2. [본문으로]
  2. 요나 긴딘은 캐나다 저널리스트로 베네수엘라에서 살며 활동하고 있다. 그는 정규적으로 Venezuelanalysis.com.에 글을 쓰고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