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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의 물결을 조직하기: 새로운 이주노동자 운동에 대한 대안들 본문

실천지 (2008년)/2008년 10월호

파업의 물결을 조직하기: 새로운 이주노동자 운동에 대한 대안들

사회실천연구소 2014. 12. 16. 09:18

파업의 물결을 조직하기: 새로운 이주노동자 운동에 대한 대안들    

제니트 가브리엘

 

노동절에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가?

 

200651, 미국 역사에서 가장 큰 규모의 파업이 일어났다. 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강력한 가두시위를 벌였다. 노동절 파업은 미국 전역에서 일어난 가두행진의 물결이 최고에 이른 것이었다. 가두행진에 참여한 사람들은 불법체류 이주민을 위한 완전하고도 즉각적인 입법과 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했으며, 정부가 불법체류 이주민의 구금과 국외추방을 그만둘 것을 요구하였다. 510일에 25천명의 사람들이 거리에 모였던 시카고에서 시작된 이러한 지역적인 행동들은 수백만의 이주민 권리 활동가들을 결집시켰다. 51일의 대중파업은 이주민 권리 운동의 역사적인 전환점을 보여주는 동시에 정치적인 요구와 경제적인 요구를 묶어낼 수 있는 기회도 보여주었다.

대중파업은 전체 산업을 멈추었고 지역 경제에 충격을 미쳤기 때문에 이전의 거리행진들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 근교 지역의 대부분의 농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로스엔젤리스 항구, 의류산업, 택시, 그리고 공항 모두가 멈추었다. 플로리다에서는 주의 거의 모든 지역에 걸쳐 건설 산업과 농장이 휴점 상태가 되었다. 사업주들이 노동자의 힘을 인정하고 파업으로 인해 멈춘 공장을 자발적으로 폐쇄했기 때문에, 자영 트럭운송업 대부분과 육류포장산업 전체가 마비되었다. 노동자는 거리로 뛰쳐나와 새롭게 발견한 자신들의 권리를 선언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들과 동등한 중요성을 갖는 행동들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불법체류 이주민들이 아무런 두려움 없이 거리 위를 활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중파업은 정말로 강력한 새로운 노동운동이며, 지금까지 미국 노동조합이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을 훨씬 더 넘어선 것이다.

진보진영의 많은 사람들은 이 파업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모든 거리 행진들을 지원했던 전국 이주민권리운동 조직과 노동조합들은 파업이 의회를 소외시키고 격렬한 반발만을 불러일으킬 뿐이라고 말하면서 파업에 반대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들과 암울한 예상들 가운데 어느 것도 적중하지 않았다. 오히려 결과는 이주민들과 이주민권리를 옹호하며 활동하는 활동가들을 범죄자로 만들려고 했던 센센브레너 법안의 완전한 폐지였다. 더 중요하게는, 이주민들에 대한 여론이 이주민에 대한 적대적인 분위기에서 이주민이 [미국사회에] 이바지한 것을 좋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자기 자신의 힘에 대한 인식 수준의 면에서뿐만 아니라 동등한 권리와 더 나은 삶을 요구할 수 있는 능력 수준의 면에서도 이주민 공동체는 파업 때문에 변하게 되었다.

대중파업은 중요했고 강력했지만 완전하지는 않았다. 노동절 대중파업의 중요한 한계는 짧은 파업 기간이었다. 이 파업은 하루 동안만 지속되었을 뿐이다. 이것보다 더 길게 파업을 지속하려는 시도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보기를 들자면, 몇몇 이주항만노동자들(troqueros)과 로스엔젤리스 항구의 트럭운전사들은 노동절에 파업회의를 열어 항구에서의 파업 기간을 5일로 연장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만 그 회의에 참석했으며, 후속 회의는 며칠 뒤로 미루어졌다. 게다가 거리에 모였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노동절 전에는 정치적으로 적극적이지 않았으며, 노동절 이후에도 지역 또는 공장 조직에서 적극적이지 못했다. 노동절은 이주노동자의 의식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파업은 조직화로 이어지지 못한 또는 이후의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한 갑작스러운 에너지의 분출일 뿐이었다.

이러한 최초의 파업을 넘어서 조직과 행동을 발전시키기 위한 전략은 이주민권리 운동의 탄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운동은 대중파업몇 년간이라도 지속될 수 있는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발전시켜야만 한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것은 우리의 기운을 꺾는 것 같지만, 시민권운동과 같은 다른 대중운동이 승리하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를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주민권리 운동은 미국과 또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대중파업의 역사에서 배울 수 있으며, 대중파업운동을 검토하고 있는 이론들과 대중파업운동에서 나온 조직모델로부터도 배울 수 있다.

 

 

대중파업운동이란 무엇인가?

 

대중파업은 특정한 사업장 또는 특정한 산업에 기반해 있고, 그 사업장의 또는 산업의 노동자만이 참여하는 보통의 파업과는 다르다. 이와 반대로 대중파업은 다양한 산업의 노동자가 참여하고 파업을 무기한 지속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대중파업은 도시 전체 인구를 포괄할 수 있을 때까지 규모가 커질 수 있으며, 따라서 총파업으로 전환될 수 있다. 노동자가 대중파업에 들어갔을 때, 노동자는 보통의 파업에서 성취할 수 있는 것을 훨씬 넘어서는 요구를, 즉 전체 산업과 정부에게 경제적인 요구와 정치적인 요구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대중파업은 점점 더 많은 수의 노동자를 단결시킴으로써 기존의 정치권력을 다른 정치권력으로 전환할 수 있다.

그러한 단 한 번의 대중파업으로 또는 단 한 번의 강력한 총파업으로 승리를 얻어낼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 한 번의 대중파업은 파업참여자에게 자신들이 사회를 멈출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을 가져다 줄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파업참여자들은 다른 노동자와의 연대에 대한 의식과 국가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신들의 능력에 대한 의식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지역에서 지방으로 그 다음으로 전국적인 수준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대중파업들을 통해서만 노동자는 자신들의 강력한 힘에 대한 의식을 발전시킬 수 있고 사업주들과 국가에 대해서 급진적인 요구를 할 수 있다.

과거의 대중파업을 검토해 보는 것은 오늘날 대중파업을 조직하는 방법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2006년 노동절 파업과 견줄 수 있는 가장 비슷한 파업은 1877년의 철도파업과 1886년에 정점에 다다랐던 8시간 노동일운동이다. 이 파업들은 노동조합에 속박되어 있지 않았고 대신 더 광범위한 공동체를 대표했던, 다시 말해서, 1877년 철도노동자와 연대해서 일어났던 운동과 8시간 노동을 쟁취했던 1886년의 전국적인 운동에 기반했던 대중적인 분출이었다. 이 운동들은 자발적인 운동이 아니었다. 이 운동들은 좌파 조직들에 의해서 조직되었지만, 전공동체의 반응은 예상할 수 없었다. 보기를 들자면, 1877년의 전국철도파업 기간 동안에, 각 공동체들은 철도로 몰려가 노동자계급의 분노를 쏟아내면서 기차를 부수고 창고에 불을 질렀다. 이러한 초기의 대중파업은 1930년대 대불황 기간 동안에 발생한 급진성의 분출로 나아가는 길을 닦아 놓았다.

 

 

노동자를 조직하는 또 다른 방법

 

대중파업은 자발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대중파업은 이주노동자와 본국노동자로 이루어진 폭넓은 노동자계급 세력을 단결시킬 수 있는 조직들에 의해서 조직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뜻하는 것은 지난 60여 년 동안 노동운동과 좌파가 빠졌던 함정을 피할 수 있는 조직화의 새로운 유형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대불황 기간에 전개되었던 실업자 운동은 새로운 조직적인 모델, 즉 사업주들과 국가가 자신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도록 만들기 위해 정치적 힘과 경제적 힘을 결합할 수 있는 방법을 오늘날 우리에게 제공해 주고 있다. 이러한 전국적인 실업자운동과 미국노동자연맹(WAA)은 거의 백만에 가까운 실업자와 이주노동자와 본국노동자를 단일한 조직으로 모아냈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실업자들은 권력도 정치적인 자원도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실업자를 위한 음식과 현금지원을 요구했고 얻어냈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사회기반시설을 건설하는 공공직업 프로그램을 대불황 시기 내내 지켜냈다.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정부는 도로, 학교, 병원, 그리고 댐과 같은 사회기반시설을 건설하면서 사적인 영역과 직접적으로 맞섰으며 사적인 영역을 대체하였다. 사적인 기업과 전통적인 노동조합의 사업장 중심주의와 대조되게도, 미국노동자연맹은 전체 공동체와 사업장 운동과의 연대를 통해서 국가를 상대로 자신들의 요구들을 관철시켰다.

미국노동자연맹이 이러한 것들을 얻어낼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미국노동자연맹의 조직구조였다. 이 운동은 이후에 시 전체의 규모로, 전국적인 규모로, 그리고 지역 실업자조직으로 성장한 인근의 실업자회의와 함께 시작되었다. 이와 동시에 미국노동자연맹은 정부의 직업 프로그램들(공공사업계획국 또는 공공산업진흥국)에 참여한 노동자를 지역 프로젝트 수준에서 조직된 노동조합으로 조직하였다.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거나 또는 직업을 바꾼다할지라도 여전히 자신들의 공동체들에 뿌리를 둔 동일한 조직의 구성원이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공동체에서의 행동과 사업장에서의 행동은 융합되었다.

미국노동자연맹은 전통적인 노동조합운동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미국노동자연맹과 같이 1930년대의 노동조합운동은 공동체와 사업장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존재해야만 한다는 견해를 채택하였다. 1930년대 중반에 일어난 대중파업의 물결은 사업주들과 국가가 노동자를 인정하게 만들었다. 도시 전체를 멈추게 했던 일련의 전투적이었던 총파업과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의 마지막 총파업에서 노동자운동은 특정 사업장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노동자를 조직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능력에 대한 완벽한 보기는 1934년에 일어난 털리도 오토­라이트 파업이었다. 이 파업에는 부품공장에서 일하는 폴란드 여성들이 대거 참여했었다. 노동자에게 피켓팅을 멈추라는 법원의 금지명령이 내려졌을 때, 노동조합은 이 금지명령에 따르기로 하였다. 실업자운동은 이 피켓팅을 넘겨받았고 수 만 명의 거주민들을 피켓시위로 조직함으로써 파업을 대중적인 투쟁으로 바꾸어 내었다. 조직된 실업자들은, 오늘날의 많은 실업자들이 그렇게 하듯이, 파업참여자의 일을 차지하기 위해서 피켓라인을 넘어서는 대신에 피켓팅에 결합하였다. 왜냐하면 이들은 계급의식을 발전시키고 있었으며 따라서 자신들이 일을 해 본적이 없는 공장에 맞서서 파업에 참여하는 것이 전체 노동자계급의 조건을 보다 더 낫게 만든다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털리도 파업은 수 만 개의 대중피켓이 참여한 총파업으로 도시 전체를 멈추게 만들고 파업을 사업장을 넘어서 전체 도시로까지 확장시킬 수 있는 노동운동의 힘을 보여줄 수 있을 때까지 규모가 점점 커졌다.

대중파업은 대불황이 끝났어도 멈추지 않았다. 도시 전체로 확장된 총파업의 또 다른 물결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북동부에서 일어났다. 이러한 총파업 속에서 모든 공동체들은 더 나은 경제적인 안정, 더 높은 임금, 그리고 더 나은 노동조건에 대한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대중적인 피켓시위를 하고 도시를 마비시키면서 파업을 벌여나갔다. 이러한 파업의 물결은 국민들을 (그들이 경험했던) 대불황 시절의 궁핍한 상태로 되돌리려는 사업주들의 시도에 대한 응답이었다. 총파업은 지역에서 지역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듯이 일어났다. 랭커스터, 펜실베이니아, 또는 스탠포드, 코네티컷과 같은 지역에서 일어난 총파업 소식에 고무되어 다른 지역에서도 중대한 승리를 얻어내기 위해서 대중파업이 일어났다.

운동이 더 커지지 않고 요구가 더 과격해지지 않도록 고투하고 있었던 사업주들과 정부에서 양보를 얻어냈던 것은 바로 대중파업의 정치적인 위협, 즉 점점 규모가 커지는 노동자계급의 단결이 발휘했던 위협이었다. 노동자의 새로운 집단들을 조직함으로써 생기는 끝 모를 성장은 대중파업의 힘이다. 이와 동시에 파업의 이러한 과정은 공동의 이익을 중심으로 노동자의 단결을 견고하게 만든다. 모든 대중파업의 과정을 독일의 혁명가인 로자 룩셈부르크가 자신의 팸플릿에서 처음으로 묘사하였다. 대중파업론: 정치정당과 노동조합이라는 그녀의 팸플릿은 여전히 읽을 가치가 있다.

 

 

어째서 이주노동자운동은 파업을 할 수 있는가?

 

1946년의 점증하는 총파업의 물결은 사장들을 공포에 떨게 했으며, 의회로 하여금 대응책을 고심하도록 만들었다. 전투적인 파업 전술에 대한 결정은 1947년의 태프트­하틀리 법안 속에서 내려졌다. 이 법안은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가 대중피켓팅, 운송보이콧(노동자가 파업 중인 회사의 제품을 취급하지 않는 것), 정치파업(노동자가 사업장의 문제가 아닌 정치적 요구를 하는 것), 총파업에 참여하는 것을 불법화하였다. 태프트­하틀리 법안에 맞서기 위한 총파업을 일으키자는 광범위한 호소가 있었지만, 미국노동자연합(AFL)과 산업별조직회의(CIO)는 이 법안의 통과를 저지하기 위한 아무런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태프트­하틀리 법안은 그때의 강력한 노동운동을 쓸어버렸으며 무능력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계속해서 오늘날의 노동운동 또한 무능력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태프트­하틀리 법안은 노동조합에만 적용되지 다른 형태의 노동자계급 활동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통적인 노동조합운동 외부의 노동운동은 대중피켓시위와 정치파업과 총파업을 조직할 수 있으며 파업 중인 회사 제품의 운송을 멈추게 할 수도 있다. 조합 외부의 노동자는 대중운동의 강력함과 헌법상의 집회결사의 자유에 의해 보호받는다. 즉 지난 60여 년 동안 노동조합운동을 옭아매던 제약들은 요즘 출현하고 있는 이주노동자운동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대신 새로운 운동은 전투적인 전술 속에서 시행되었던 실험들에서 자유롭다.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의 단결을 통해서 우리가 오늘날 알게 되었듯이, 이주민권리운동은 노동운동이 지금까지 가지 못했고 발전시키지 못했던 곳으로, 즉 정치적 풍경을 완전하게 바꿀 수 있는 지속적인 파업전략의 영역으로 들어설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다. 이주민과 토착민 간의 재앙적인 분열뿐만 아니라 아프리카계 미국인 공동체와 이주민 공동체 간의 재앙적인 분열은 전계급적인 운동, 즉 서로가 연대해야만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운동 속에서 극복될 수 있다.

 

 

전계급적인 운동은 무엇을 얻어냈었는가?

 

1930년대에 전개되었던 전계급적인 운동은 몇몇 중요한 요구들을 관철시켰고, 이 요구들은 그저 실업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계급을 위한 것이었다. 미국노동자연맹이 계급연합을 구축했던 방식은 더 나아진 삶의 수준을 국가에 직접적으로 요구하기 위해서 여러 노동자 집단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것이었다. 정치적으로 노동자연맹은 실업수당과 사회보장을 경유해서 복지국가의 주춧돌인 중요한 승리를 얻어내기 위한 도구였다. 사회복지청에서 지역적인 저항, 주도(州都)에서 거리행진, 그리고 워싱턴 D. C.에서 대중적인 거리행진을 통해서 실업자운동은 의회가 실업자들에게 더 많은 지원을 하도록 커다란 압력을 넣었다. 미국노동자연맹은 [노동자와 실업자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던 후보자들을 밀어내고 호의적인 후보자들이 선거를 통해 선출될 만큼 충분히 공동체를 조직할 수 있을 때까지 강력해졌다.

노동자연맹은 이러한 더 광범위한 정치적 요구 말고도 뉴저지 주, 오하이오 주, 그리고 위스콘신 주에 더 많은 정부의 일자리와 실업자 지원을 요구하였다. 주 의회가 망설이자, 미국노동자연맹은 주행정부 건물들을 점거했다. 전국적인 언론의 관심을 받았던 이러한 극적인 점거는 사회보장 프로그램을 방어하고 연방정부의 직업프로그램을 1930년대 내내 그리고 1940년대 초까지 지켜냈던 노동자연합을 조직했던 공동체와 사업장의 혹독하기만 했던 일상적인 노력의 정점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3월과 4, 그리고 5월의 대중적인 행진은 이주민권리 운동이 운동을 지속하고 확립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하는 때를 맞이하게 되었다. 새롭게 출현한 운동은 단기적인 승리를 얻고 지역적인 수준에서 전 계급적인 단결을 구축할 수 있는 구체적인 캠페인이 필요하며, 토착노동자와 이주노동자를 몇 년에 걸친 일련의 조직된 행동을 통해서 단결시키고 그럼으로써 연대를 강화하고 자신들의 이익은 상대방의 이익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새로운 의식을 발전시킬 수 있는 지속적인 지역적인 파업과 캠페인을 계획해야 한다. 이러한 캠페인은 조직을 건설하고 조직으로 성장하고 조직으로 강화되어야 하기 때문에 운동을 통해서 실천되어야만 한다. 게다가 전 계급적인 운동은 이주민 공동체나 조합에만 근거할 수 없기 때문에, 노동자계급의 모든 분파가 단결할 수 있을 정도로 유연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캠페인은 어떠한 형식을 취해야만 할까? 몇 가지 제안이 있다.

전 계급적인 단결을 이룩하고 운동의 요구들을 추진하는데 도움이 되는 첫째 유형의 캠페인은 이민관세사무소(ICE)에 대한 캠페인이다. 왜냐하면 이민관세사무소는 9/11 이후로 경찰특공대(SWAT)가 이주민 공동체를 불시에 단속하도록 명령하고 수 만 명의 이주민들을 구금하고 국외 추방하는 등 국가 테러의 무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뉴저지 주에서는 뉴욕시의 국외 추방자 대부분이 주의 감옥에 수감되어있었다. 뉴저지 시민권 방어위원회(NJCRDC)는 지역이민법 폐지를 요구함으로써 이민관세사무소에 대한 캠페인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이주민 집단과 토착민 집단은 함께 4년이 넘게 퍼세이익(Passaic) 주 감옥에서 이민법 폐지를 요구하면서 집회와 피켓시위와 저항을 했다. NJCRDC는 퍼세이익 감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유린, 이를테면 전투견이 억류자를 공격하게 하는 것, 간수들이 억류자에게 언어적육체적 모욕을 하는 것, 억류자에게 적절한 의학적 조치를 조직적으로 취하지 않는 것 등을 주로 폭로하였다. 모든 억류자들이 이민법 폐지를 요구하는 청원서에 서명한 뒤에 NJCRDC는 결국 2005년 말 퍼세이익 주 감옥의 폐쇄와 함께 이민법 폐지를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이주억류자와 그들의 가족, 지역 공동체들, 그리고 이주민권리 활동가들 모두 묶어내었던 지역운동은 전국에 산재해 있는 억류시설을 폐지하는 활동의 모델이 될 수 있다.

단기적인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고 그럼으로써 운동을 고무시키고 전 계급적인 연대를 발전시킬 수 있는 또 다른 지역 캠페인은 모든 이주민들에게 투표할 권리를 부여하는 지방법을 통과시키는 것이다. 메릴랜드 주의 몇몇 지역에서는 이러한 입법과정을 시작하였다. 이러한 입법과정은 비슷한 법이 진보적인 지역에 도입되기만 한다면 쉽게 전국적인 운동으로 전환될 수 있다. 이러한 캠페인은 토착민들에게 정치적인 권리를 시민권이 없는 이주민에게도 확대할 필요성과 이주민을 정치과정으로 통합했던 역사적인 전통을 교육시킬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두 가지 기획은 이주민권리운동을 고무하고 구축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정치적 권리를 위한 활동 말고도 운동은 더 높은 임금, 더 나은 노동조건, 연금, 그리고 국민보험에 대한 요구들을 통합해야만 한다. 노동절의 로스엔젤리스 항구 파업을 통해서 일반 대중은 가난에 찌든 이주항만노동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주항만노동자는 임금인상에 대한 구체적인 요구를 하지 않았다. 노동절에 다른 산업에서 일어난 파업에 대해서 같은 비판을 할 수가 있다. 더 넓은 관점에서 보자면, 이주민권리운동은 경제적인 요구를 지역적이고 전국적인 저항에 통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만 한다. 이주민과 다른 노동자를 단결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이주민과 토착민에게 더 나은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지역의 수준, 주의 수준, 그리고 전국적인 수준에서 대규모 공공직업프로그램을, 즉 정부의 직접적인 고용과 국가의 사회기반시설을 재건축하는 프로그램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전개해야만 한다. 이러한 재건축프로그램의 재원은 부유층과 기업의 세금을 통해서 그리고 미국의 군사개입의 중단과 무기 생산의 중단을 통해서 충당될 수 있다.

재건계획에 대한 가장 분명한 요구는 뉴올리언스에서 있었다. 이주노동자와 토착노동자를 착취하는 탐욕스러운 토건업자에게 공적자금을 분배하는 대신에, 대안적인 재건축프로그램은 시의 기반시설을 재건하고 지방 노동자를 고용하는데 필요한 정부의 예산을 요구할 수 있었다. 정부의 직접고용을 통해서 토착노동자와 연대한 지역적전국적 이주노동자운동은 임금체계, 노동조건, 그리고 재건축 과정의 범위에 대한 기준을 세울 수 있었다. 뉴올리언스 거주민과의 연대한 운동을 조직함으로써 강력한 전 계급적인 세력은 주정부가 이주노동자의 이바지를 인정하고, 꽤 높은 수준의 생활을 보장하고, 지역사회의 요구에 따라 도시의 기반시설을 재건축할 것을 요구할 수 있었다.

 

 

오늘날의 전 계급적 운동을 건설하기

 

오늘날 새로운 이주노동자운동을 조직하는 데에는 두 가지 중요한 목적이 있다. 첫째는 노동자의 다양한 집단들을 한 데 묶어냄으로써 운동의 범위를 넓히기 위한 계급의식의 발전이다. 둘째 대중파업을 조직할 수 있는 전 계급적인 조직을 구축하는 것이다.

대중파업운동을 조직하기 위해서 새로운 운동은 노동조합보다 더 범위가 넓고 현존하는 노동자의 조직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갖는 조직들을 건설할 필요가 있다. 한 지역의 모든 사람을 포괄할 수 있었던 1930년대의 미국노동자연맹과 같은 전 계급적인 조직은 노동자를 지역사회와 사업장에서 동시에 조직할 수 있는 최선의 조직형태이다.

이러한 조직은 일련의 대중적인 회합을 통해서 건설될 수 있으며, 바로 그곳에서 사람들이 생활이 더 나빠지지 않게 하는 방어적인 요구가 아니라 자신들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요구들을 명확하고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다. 전국적인 시위를 준비하면서 왜 지역적인 집회와 대중적인 회합을 열지 않았을까? 즉 왜 노동절 파업과 같은 대중적인 거리행진 뒤에 대표자를 선출해서 전도시적인 대중회합을 열지 않았을까? 이러한 회합은 저항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러한 회합은 운동이 민주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근본적인 주춧돌이다. 이러한 회합은 운동이 거리위의 대중을 결정을 내리는 과정으로 한 데 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러한 과정은 일시적인 행동들이 지속될 수 있고 진행 중인 대중파업운동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대중회합이 구체적인 다음 단계를 정식화시킬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운동을 건설하기 위한 이러한 전략들은 지역조직, 지역적인 거리행진, 거리행진 뒤의 정치적인 회합, 그리고 대중파업 간의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다. 바라건대, 거리행진은 거리행진에 참여한 사람들을 대담하게 만들 것이고, 거리행진 뒤 곧바로 열린 회합은 자신의 권능감을 반영해 줄 것이고, 참여자들이 새롭고 창조적인 요구들을 제안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지역적인 캠페인은 공동의 목적을 중심으로 지역사회와 사업장을 묶어낼 수 있다. 지역적인 승리를 얻을 수 있고 노동자의 의식을 발전시킬 수 있는 확장된 운동은 이러한 통합적인 조직구조에서 나올 수 있다.

이러한 대중파업운동은 모든 이주민과 완전한 노동권을 위한 입법화에 대한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는 힘과 이주민의 억류와 국외추방을 끝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와 함께 대중파업운동은 이러한 이주민의 문제를 넘어서서 토착민들을 결집하고, 지난 세대에 우리가 잃어버렸던 것을 되찾고 우리의 아이들에게 좋은 일자리의 안정성과 포괄적인 의료보험과 견실한 연금을 포함한 강화된 사회보험을 제공하기 시작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다. 무엇보다도 모든 지역과 모든 경제 계급들을 포괄할 수 있는 민주적인 노동자조직을 발전시킴으로써 우리는 노동자가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들을 스스로 내릴 수 있는 새로운 사회의 기반을 닦아 나아기 시작할 수 있다.

 

 

옮긴이: 이병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