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실천연구소

오바마가 그랜드 캐니언을 볼 수 있을까? 본문

실천지 (2008년)/2008년 11월호

오바마가 그랜드 캐니언을 볼 수 있을까?

사회실천연구소 2014. 12. 16. 09:24

오바마가 그랜드 캐니언을 볼 수 있을까?

: 대통령의 무지와 경제 재앙에 대해서

 

 

Mike Davis (2008. 10.15)

 

 

그랜드 캐니언으로, 그리고 문화적 또는 역사적 선례를 뛰어 넘는 역설로 시작해보자.

그랜드 캐니언을 탐사한 첫 유럽인은 1540년에 정복자 가르시아 로페즈(Garcia Lopez de Cardenas)였다. 그는 그 광경을 보고 겁에 질려 남쪽 골짜기에서 재빨리 도망쳤다. 그로부터 3세기가 지나 미군의 지형도 제작기사단의 조셉 크리스마스 이브스(Joseph Christmas Ives) 중위가 두 번째 중요한 탐험대를 이끌어 그 골짜기를 탐사했다. 가르시아 로페즈처럼, 그는 바라보는 것도 고통스러울 만큼 놀라움 그 자체였다.”고 기록했다. 유명한 독일 미술가도 이브스의 탐험대를 따라 그랜드 캐니언으로 갔다. 그러나 그가 그린 캐니언은 사물의 실체를 전달하기는커녕 아주 뒤틀리게 만들었고 심지어 희화화해버렸다.

정복자도 군기사도 그들이 보았던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즉 그들은 그저 예기치 못한 광경에 압도당했을 뿐이다. 기본적으로 그들은 그들이 접한 전혀 새로운 풍경에 대한 일관된 상상력을 짜내는 데 필요한 개념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장님이었다.

캐니언을 있는 그대로 정확히 묘사한 것은 오직 후세대의 몫이었다. 외팔의 내전 영웅 존 웨슬리 파웰(John Wesley Powell)과 그의 지질학자와 예술가 팀은 이를 위해 콜로라도 강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탐사준비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 다른 행성을 답사하는 빅토리아의 우주비행사와 같은 심정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그들은 캐니언에 착륙하기위한 개념적 틀을 짜려고 수년 동안 현지 조사를 했다. “심층적 시간”(deep time)이 결정적인 차원으로 더해지면서, 마침내 일차적인 지각이 일관된 비전으로 전환되는 것이 가능해졌다.

1882년 그들의 작업은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그 결실은 그랜드 캐니언 구역의 제3의 역사(The Tertiary History of the Grand Canyon District)였다. 이 책은 파웰의 전기 작가 월리스 스티그너(Wallace Stegner)그 어떤 사진보다 훨씬 더 정확하다고 지적했듯이 제도공의 걸작을 통해 실증되었다. 그것은 그들이 카메라 이미지에서는 늘 분명하지 않은 세세한 층위를 재현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잘 알려진 관찰지점의 한 곳을 방문했을 때, 우리 대부분은 우리가 얼마나 깊이 이러한 도상적 이미지를 통해 훈련되었는지를 또는 우리가 얼마나 파웰이 대중화시킨 지질 연대의 박물관으로서 그랜드 캐니언에 대한 생각에 영향을 받았는지를 잊어버린다.

그런데 왜 나는 지질학에 대해 이야기하는가? 그랜드 캐니언의 첫 탐험자처럼, 우리는 우리가 예전에 가졌던 역사적 위험에 대한 인식을 혼란스럽게 만든 예기치 못한 경제사회적 혼란의 심연을 탐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느끼는 혼란은 위기의 깊이나 또는 우리가 얼마나 멀리까지 추락할 것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커진다.

 

 

바이마르가 림보랜드’(Limbaughland)로 되돌아가다.

 

나이 든 사회주의자인 나는 불연 듯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을 보기 위해 창문을 연 여호와의 증인과 같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비록 내가 수십 년 동안 맑스주의 위기 이론을 연구하고 있었을지라도, 나는 금융자본주의가 자살할 것이라고는 결코 믿지 않았다. 나는 또 국제통화관리기금이 구조적 붕괴가 곧 닥쳐올 것이라는 경고를 하게 되리라고 믿지 않았다.

따라서 몇 주 전에 월스트리트의 유명한 777.7 포인트에 대한 나의 첫 반응은 60년 전으로 회귀였다. “맞았어, !” 나는 소리쳤다. “너의 파생상품을 먹고 죽어라, 월스트리트 돼지여!” 그랜드 캐니언처럼, 은행의 몰락은 무시무시한 것이지만 장엄한 광경일 수 있다.

그러나 실제 범죄자는 물론 길로틴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황금 낙하산을 타고 지구 위를 서서히 떠돌 것이다. 우리의 나머지는 비행사 없이 불타는 지구의 덫에 걸려들어 타버릴 수도 있지만, 리먼브라더스의 경영자인 사기꾼 리처드 펄드(Richard Fuld)는 그의 요트를 타고 뚱해 있을 것이다.

게다가 림보랜드의 척박한 사막에서 나온 공포 때문에, 이미 파산한 독일 쁘띠부르주아지를 나치당으로 모이게 했던 배후의 일격론이 미국 촌놈(Good ol' boy)의 버전으로 옷을 갈아입고 다시 나타났다. 만일 당신이 아침 출근길에 라디오에서 분노의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을 듣는다면, ‘사회주의가 이미 미국에서 선취특권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버락 후세인 오바마는 테러리즘의 <꼭두각시:Manchurian Candidate>, 페니 매이 대출금을 받은 나이든 흑인에 의해 유발되었던 월스트리트의 붕괴, 선거 명부를 불법 이주민인 히스패닉계로 조작했던 유권자 선거등록 운동의 ACORN(Association of Community Organizations for Reform Now)이다.

이전에 사라 페일린(Sarah Palin)이 남장을 하고 1930년대에 미국 제국을 옹호했던 목사인 찰스 카플린(Charles Coughlin)을 흉내 낸 것은 신나는 놀이일 수도 있지만, 미국적 생활양식의 붕괴와 함께, 미국다운 파시즘의 유령이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것 같지 않았다. 우파는 선거에서 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파는 이미 빠른 회복을 위한 진지하고 역사적으로 입증된 청사진을 갖고 있다.

혁신주의자들은 낭비할 시간이 없다. 알래스카의 워실라(Wasilla)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팀북투(Timbuktu)까지 새로운 불황에 맞닥트려서, 우리는 어떻게 지구화된 경제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다시 세울 수 있을 것인가? 어느 정도까지 우리는 위기를 분석하고 그것을 효율적으로 풀 수 있는 행동에 도움을 얻으려고 오바마나 민주당의 다른 사람에게 기대할 수 있는가?

 

 

오바마가 프랭클린 루스벨트인가?

    

내슈빌 타운 미팅논쟁이 하나의 길라잡이가 된다면, 우리는 곧 또 다른 눈 먼 대통령을 갖게 될 것이다. 그 어떤 후보도 불안에 찌든 청중이 던진 다음과 같은 단순한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결단력이나 정보를 지니지 못했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얼마나 더 나빠질 것인가? 어떠한 긴급 조치가 처방되어야 하는가?”

그러한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후보들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물고 늘어졌다. 매케인이 유일하게 한 뜻밖의 일은 기만에 있어서의 또 다른 혁신이었다. 즉 매케인은 저축 소유자가 아니라 은행과 투자자들에게 보상해줄 모기지 구제 계획을 내놓았을 뿐이다.

오바마는 부자에 우선권을 둔 그의 경쟁자보다 원칙적으로 더 나은 것이긴 하지만 추상적이고 구체성이 결여된 4가지 강령을 읊조렸다. 그 강령은 실질적인 개혁 기구를 위한 청사진보다 훨씬 더 수사적인 약속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70년 동안 없었던 실물경제의 불황과 대량 실업이 기다리고 있다고 위기의 다음 단계를 살짝 언급했을 뿐이었다.

부시 행정부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호의와 더불어, 그는 리먼브라더스의 몰락으로 남겨진 신용부도스와프 채권, JP 모간 체이스와 아메리카 은행의 지불능력을 위협할 수도 있는 1조 달러에 이르는 소비자 신용카드 부채, 제너럴 모터스와 미국자동차공업의 처참한 몰락, 무너지고 있는 시와 주 정부 재정의 토대, 실리콘 밸리의 기술 주와 벤처 자본의 붕괴, 그리고 제너럴 일렉트릭의 금융경색 붕괴 등 경제체제에서 다른 취약한 고리를 강조하는데 실패했다.

게다가 미 재무장관 헨리 폴슨의 계획을 지지한 오바마와 그의 부통령 조 바이든은 요동치는 구조조정과 정부의 긴급 융자가 가져온 불가피한 결과를 토론하는 것조차 피했다. “사회주의가 아니라, 주로 소버린 웰스 펀드(최고의 재산기금)가 통제하지만 여러 해에 걸친 공채와 국내 긴축 경제를 통해 해결할 몇몇 거대 은행의 신용에 대한 통제를 집중할 것 같은 초자본주의(ultra-capitalism).

많은 보통 미국사람은 황금의 십자가’(또는 파생상품) 때문에 꼼짝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오바마는 가장 태도가 부드러운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이다. ‘노동계급이란 문구를 거만하게 씹어버린 사라 페일린(Sarah Palin)과 달리, 오바마는 메인 스트리트”(Main Street)에 살고 있는 무정형의 중간계급의 욕구만을 인정했던 당 노선을 따랐다.

만일 우리가 특히 빈민과 실업자의 운명을 걱정한다면, 우리는 청정석탄이용기술(clean coal technology)과 원자력 발전, 좀 더 큰 군대를 지지했지만 존 에드워드(John Edwards)가 그의 자멸적인 예비 선거에서 옹호했던 것처럼 빈곤에 대한 새로운 전쟁의 시급성을 생략했던 오바마의 이야기로부터의 아무런 도움 없이 행간을 읽어야 한다. 그러나 아마 세심한 후보의 내면에는 그 자신의 근시안적인 중앙주의적 캠페인을 초월한 인간적 열정을 지닌 한 남성이 있을 것이다. 나의 냉소적인 염세관으로 짜증이 난 절친한 친구가 어느 날 나를 너무 가혹하게 하지 마라. FDR1933년에 세밀한 계획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그 누구도 그렇게 하지 못했어.”라고 꾸짖었다.

내 친구에 따르면, 식료품을 무료 배급받으려고 실업자·빈민들이 길게 줄을 섰고 은행이 잇달아 파산했던 때에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지녔던 것은 부유한 계급이 한 통속이 되어서 적대감을 드러냈지만 일반 사람들에 대한 커다란 공감과 정부의 간섭을 통해 실험하려는 자세였다. 이러한 점에서, 오바마는 무브온이 만들어낸 상상력의 산물이다. 즉 무브온은 미국의 32번째 대통령(루스벨트)이 지닌 특성, 즉 조용하고 강하며, 일반 사람들의 필요를 깊이 공감하고, 기꺼이 나라의 가장 멋지고 가장 현명한 사람들의 충고를 받아들이려고 한 자세를 다시 생각해낸 것이다.

 

 

케인즈주의의 죽음

 

그러나 우리가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에게 루즈벨트의 특성, 또는 더 좋게 링컨의 특성을 부여한다면, 이러한 희망적인 유추는 적어도 3가지 기본적인 방식에서 잘못된 것이다.

첫째, 우리는 현재의 위기에 대한 유추로서 대공황에 의지할 수 없다. 또 우리는 현재의 위기의 해결책을 위한 본보기로서 뉴딜에 의지할 수 없다. 확실히, 공황을 잠재우고 가장 나쁜 시기가 지나갔다는 것을 대중에게 확신시키기 위한 대단한 노력에는 많은 진부한 것이 있다.

실제로 폴슨의 많은 성명은 허버트 후버 대통령 시기의 재무장관 앤드류 멜론에게서 직접적으로 도용한 것일 수 있다. 두 대통령 진영의 캠페인은 뉴딜 초기에서 영웅적인 수사를 꽤 많이 표절한 것이었다. 그러나 경영 신문이 몇 년 동안 주장하고 있었던 것처럼, 이것은 옛 미국 경제가 아니라, 완전히 최신의 고안물이다. 그것은 제조업이 해외로 이전되었고 세계시장이 지나치게 달러에 의존하게 된 새로운 경제였다.

우리는 지금 로널드 레이건의 임기로 시작된 구조조정의 결과를 보고 있다. 도착된 구조조정을 통해 국가 수입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980년대에 21%에서 2005년에 12%로 떨어졌고, 금융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1980년에 15%에서 2005년에 21%로 증가했다. 1930년에 공장은 폐쇄되었을지 모르지만, 기계는 그대로 있었다. 그 기계는 중국에 헐값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다른 한편, 카지노 자본주의는 지구에 있는 모든 금융 센터에 예기치 못한 속도로 월스트리트의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전달함으로써 자신의 기질을 입증했다. 1930년대 초반 3년 동안 일어났던 것, 즉 위기의 완전한 글로벌라이제이션은 오늘날에서 단 3주 만에 세계를 강타했다. 비록 현재의 위기가 하나의 해프닝에 지나지 않는 듯, 신이 우리를 도왔을지라도, 실업은 예기치 못한 속도로 높아지고 있다.

둘째, 오바마는 세계에서 가장 생산성 있는 공장에서 일어난 공업 노동자의 획기적인 봉기가 원동력이 된 루스벨트가 지닌 상황의 이점, 즉 국가간섭과 경제 수요 관리정책이라는 새로이 등장한 도구(나중에 케인즈주의라고 불렸다)를 물려받지 못했다.

만일 당신이 McNeil-Lehrer에서 경제전문가의 슬픈 행진을 지켜보고 있다면, 당신은 워싱턴의 서고가 이제 거의 텅 비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중요 정당도 무역과 민영화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합의와 다른 정책 전통의 파편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가식적인 유사 포퓰리스트는 제쳐 놓더라도, 오바마의 경제 고문을 포함한 정치권 안에 있는 그 어떤 사람도 지난 몇 십 년 동안 재무장관에 영향을 미쳤던 골드만삭스가 주입한 사고방식을 넘어 명확하게 생각할 수 있는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다.

이제 갑자기 칭송받게 된 케인즈는 사실상 죽었다. 좀 더 중요하게, 뉴딜은 백악관의 선의 또는 상상력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와 반대로 1935년 뒤 제2 뉴딜을 위한 사회적 협약은 미국 역사에서 가장 커다란 노동계급운동에 대한 복잡하고 순응적인 대응이었다. 그 때는 강력한 제3의 정당이 정치의 전경을 배회하고 있었고 맑스주의가 미국의 지적 생활에 아주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또 미국노동운동이 1934~1937년에 강력했던 것처럼, 지금 다시 극적으로 패배를 딛고 회복될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도 힘들다. 결정적인 차이는 이데올로기적이라기보다는 구조적인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의 노동운동은 1930년의 미국 노동총연맹보다 훨씬 더 진보적이다. ‘월마트화된서비스 경제 안에서 노동의 힘은 거대한 도시공업 중심지와 공장 도시가 곳곳에 퍼졌던 시대보다 훨씬 흩어져 있고 동원하기 힘들다.

 

 

전쟁이 해답인가?

 

뉴딜적 유추가 지닌 세 번째 문제는 아마도 가장 중요할 것이다. 군사적 케인즈주의는 더는 다이어스-엑스-마키너(deus ex machina: 위급함을 해결하는 판에 박힌 결말)가 아니다.

1933년에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취임식을 거행했을 때, 미국은 외국의 전쟁에서 완전히 물러나 있었고 아이티와 니카라구아의 점령지에서 수백만 해군이 철수하는 것에 대한 논쟁도 없었다. 2차 세계대전이 2년째 접어들 때, 즉 프랑스가 패배하고 영국이 거의 무너지고 있을 때, 미국 의회에서 재무장 법안이 다수결로 통과되었다. 그러나 1940년 말에 비로소 시작된 군수물자 생산은 미국 노동력의 재고용을 위한 엄청난 동력이 되었다. 그 탓에 1930년대에 악화된 고용 시장은 군수물자 생산을 통해 실질적으로 해결되었다.

물론 오늘날, 상황은 아주 다르다. 거대한 펜타곤 예산은 무기 생산의 많은 부문이 아웃소싱되었기 때문에 수십만 명의 항구적인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아울러 거의 끊어진 고임금 고용과 국가 간섭 사이의 연결, 즉 좋은 일자리와 외국에서 펄럭이는 성조기(Old Glory) 사이의 이데올로기적 연결이 1940년대 초 이래 그 어느 때보다 구조적으로 훨씬 약해졌다. 심지어 새로운 군대(주로 가난한 백인과 흑인, 라티노의 대물림되는 신분)에서 민주화는 현실적 불만의 무대가 되고 있고 대안적 이상을 찾기 위한 새로운 공간을 열어놓고 있다.

비록 두 후보가 군산복합체를 확장하게 될 육군과 해군 전투력의 힘을 늘리고(“별들의 전쟁”) 아프가니스탄에서 격화된 전쟁을 포함한 계획을 지지한다고 할지라도, 이들 가운데 그 누구도 새롭게 일자리를 많이 만들거나 손상된 국가의 펌프를 가득 채우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깊은 침체의 한 가운데서, 막대한 군비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바마가 내걸었던 의료보험, 대체에너지, 교육 등 소박하긴 하지만 꼭 필요한 개혁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루즈벨트 식의 총과 버터는 오바마 캠페인이 국가안보우위와 국내정책목표 사이의 재앙적 충돌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는 점에서 모순이 될 것이다.

 

 

오바마-이즘의 운명

 

  

 왜 그런 참신한 사람이 그랜드 캐니언을 보지 못하는가?

아마도 그들은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한 사례에서 기만은 진실로 미국정치의 원천이다. 또는 아마 오바마는 지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클린턴이즘(Clintonism)의 달갑지 않은 포로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해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의 정치 정신을 가린 뉴딜적 수사를 지닌 문화적으로 자유로운 신자유주의의 포로가 될 것이다.

보기를 들면, 그의 외교정치적 의제의 실질적인 내용에서 민주당 후보를 부시 독트린의 방사성의 유산과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묻는 것은 가치 있다. 그렇다, 그는 관타나모를 폐쇄할 것이고 이란과 대화를 할 것이며, 유럽의 심장부를 감동시킬 것이다. 그는 또한 테러에 대한 지구적 전쟁을 새롭게 할 것을 약속하고 있다. (조지 부시와 클린턴이 좀 더 인간의 얼굴을 하긴 했지만 레이건이즘의 핵심 정책을 유지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어쨌든 그 누구도 논쟁에 실패했다. 민주당 후보가 어떠한 장애가 있더라도 중동(그리고 중앙아시아)에서 승리가 전지구의 안정화에 대한 현실주의적믿음으로 다시 포장되었던 딕 체니(Dick Cheney)와 폴 올포위츠(Paul Wolfowitz)의 이라크스타일의 국가건설적 오만을 통해 외교정책의 주된 공약이었던 지구적 전략에 스스로 매어있었다는 것을 잊지 마시오.

그렇다, 엄청난 경제위기는 대통령 오바마에게 비상식적인 방어체제를 지지하거나 그루지아와 우크라이나의 도발적인 나토 가입을 지지하기 위한 후보 오바마의 단호한 공약의 일부를 어기게 강요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가 거의 모든 연설과 토론에서 강조했듯이, 이스라엘에 대한 확고한 방어와 함께 탈레반과 알카에다를 패배시키는 것은 그의 국가안보 의제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예산의 줄이고 국가 빚의 급격한 증가를 줄이기 위한 공화당과 중도파 민주당원(Blue Dog Democrats)의 엄청난 압력을 받아, 대통령 오바마가 그의 행정부 초기에 어떠한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종합 의료보험이 말뿐인 계획으로 축소될 것이고, “대체 에너지는 그저 청정석탄의 기만을 뜻할 것이고, 월스트리트가 부정이득의 소동을 끝낸 뒤, 재정부에 여전히 남아 있는 모든 것은 격화된 무자헤딘과 지하드의 세대를 확보한 파슈툰족(Pashtun) 마을을 더 분쇄하기 위해 폭탄을 사들이는 것이다.

내가 지나치게 냉소적인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존슨 대통령 시절 내내 살았고 베트남에서 일어난 학살의 대가로 파괴되었던 빈곤에 대한 전쟁과 마지막 진실된 뉴딜 프로그램을 지켜보았다.

나는 다음과 같이 추정해본다. 대통령 선거전에서 이라크 전쟁을 끝낸다는 공약을 지지했던 수백만 유권자가 이제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변경에서 희망 없는 갈등을 매케인의 단계적 확대보다 훨씬 단호한 태도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실은 아주 역설적이지만 역사적으로 예견된 것이다. 최상으로, 민주당은 단순히 하나의 잔인하고 실패한 전쟁을 다른 전쟁과 교환할 것이다. 최악의 경우, 그들의 실패한 정치는 체니와 로브의 귀환을 위한 무대 또는 그들과 꼭 닮은 분신을 위한 무대를 놓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