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실천연구소

레닌주의 조직론(The Leninist Theory of Organization) 본문

실천지 (2007년)/2007년 2월호

레닌주의 조직론(The Leninist Theory of Organization)

사회실천연구소 2014. 11. 7. 04:22

에른스트 만델(Ernest Mandel)


서문


레닌주의 조직론이 지닌 역사적 중요성과 현재적 적합성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맑스주의의 역사 속에서, 더 정확하게는 맑스주의의 역사적 발전과 전개과정 속에서 정확한 위치가 결정될 때에만 가능하다. 이러한 논의과정은 이론의 발전과 실제 노동자 계급투쟁의 발전 사이의 밀접한 상호관계를 통해서 나타나는 내적 모순으로 환원되어야 한다.


이렇게 접근할 때, 레닌주의 조직론은 세 가지 요소의 변증법적 통일로 나타난다. 즉, 그것은 제국주의 시대 후진국 혁명의 현재적 적합성에 대한 이론(이는 나중에 자본주의의 일반적 위기 시대에 전 세계로 확대 적용되었다), 서로 구별될 수밖에 없는 노동자 계급의식의 불연속적이고 모순적인 발전과 그 가장 높은 단계에 대한 이론, 그리고 맑스주의 이론의 본질과 맑스주의 이론이 한편으로 과학과,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 계급투쟁과 맺는 특정한 관계에 대한 이론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러한 세 가지 이론은 레닌주의 조직 개념의 말하자면, ‘사회적 토대’를 이룬다. 이러한 사회적 토대가 없다면, 레닌주의 조직 개념은 자의적이고 비(非)유물론적이며, 비(非)과학적인 것이 되었을 것이다. 레닌주의의 당 개념은 단 하나만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레닌주의의 당 개념은 중장기적 뜻에서 볼 때, 피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혁명을 지도할 역사적 임무를 전위정당에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일한 것이다. 레닌주의의 당 개념은 노동자 계급의식에 대한 명확한 분석과 분리될 수 없다. 즉, 단순한 ‘노동조합’이나 ‘동업조합’ 의식과 대립되는 정치적 계급의식은 노동자 계급투쟁의 객관적 발전에서 자생적이거나 기계적으로 자라나는 게 아님을 아는 게 꼭 필요하다. 또한 레닌주의의 당 개념은 과학적 분석이 갖는 어느 정도의 자율성이라는 전제, 특히 맑스주의 이론의 전제에 입각해 있다. 이 이론은 노동자 계급투쟁의 전개와 노동계급혁명의 첫 맹아적 기원을 통해 결정되기는 하겠지만 이것을 기계적으로 계급투쟁의 불가피한 산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이 이론은 오직 장기적인 투쟁을 통해서만 계급투쟁과 연결되고 결합될 수 있었던 이론적 실천(또는 ‘이론적 생산’)의 결과로 보아야 한다. 20세기의 세계사회주의혁명의 역사는 이와 같은 장기적인 과정의 역사이다.


이러한 세 가지 명제는 실제로 맑스주의를 깊어지게 한다. 즉,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정교하게 만들지 않은 채로 제시만 했던 주제를 깊어지게 하거나, 1880년에서 1905년 사이에 마르크스 저작의 출판이 지연되고 중단된 관계로 거의 주목받지 못했던 맑스주의 이론의 원리가 깊어진 것이다. 따라서 이는 마르크스의 분석 자체에 나타나는 부분적인 모순이나, 적어도 그가 죽은 뒤 첫 4반세기 동안에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해석의 차이 때문에 불거졌던 맑스주의 이론을 한층 더 깊고 풍부하게 만드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맑스주의 이론의 심화에서 독특한 것은 다른 입장에서 출발하더라도 같은 중심점, 즉 노동자 또는 사회주의혁명의 특수한 성격을 확정하는 데로 나아간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처음으로 그 운동법칙을 매우 자세하게 연구했던 부르주아혁명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체계적이고 일반적인 분석이 거의 이루어진 바 없었던 (봉건주의에 맞선 도시 소부르주아 계급의 혁명과 농민혁명, 노예제사회에 대항한 씨족사회의 반란과 노예들의 봉기, 고대의 아시아적 생산양식이 주기적으로 붕괴되면서 나타났던 농민혁명 등) 혁명들에 이르기까지 이전의 모든 혁명과는 달리 20세기 노동계급혁명은 다음의 네 가지 특징을 통해 구별된다. 이 특징들은 노동계급혁명에 특수한 성격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가 예견했던 것처럼, 노동계급혁명이 한결 어려운 과업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1) 노동계급혁명은 가장 낮은 위치의 사회계급이 이끄는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성공한 혁명이다. 이 계급은 잠재적으로는 거대한 경제력의 처분을 결정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매우 제한되어 있으며, 대체로 계속 소모되어 버리는 소비재의 단순한 소유와 대립되는 것으로서 사회적 부의 분배에서 배제되어 있다. 이 계급의 처지는 이미 사회의 경제력을 손아귀에 넣은 뒤 곧 정치권력을 획득했던 자본가계급이나 봉건귀족은 물론 성공적인 혁명을 이끌 수 없었던 노예와도 아주 다르다.


(2) 노동계급혁명은 현존 사회의 전복을 의식적으로 계획한 인류역사상 첫 혁명이다. 즉, 이 혁명은 과거의 노예혁명이나 농민혁명이 그랬던 것처럼, 이전 상태로 되돌아간다거나 단순히 경제적 영역에서 이미 획득한 권력의 이전을 합법화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반대로 이제껏 결코 존재한 적이 없고, 단지 ‘이론’이나 ‘계획’으로서만 예상되어왔던 완전히 새로운 변화를 낳는다.


(3) 역사에서 다른 모든 사회혁명들과 마찬가지로 노동계급혁명도 기존사회 안에서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내부적인 계급적대와 계급투쟁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과거의 혁명들이 대체로 계급투쟁을 최고조에 이를 때까지 끌어올리는 것에 만족했던(이 경우에는 완전히 새롭고, 또한 의식적으로 계획된 사회관계를 창출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노동계급혁명은 몇 십 년에 걸친 노동자 계급투쟁이 최고조에 달해 거대한 흐름이 되는 경우에만 현실화될 수 있다. 이 과정은 모든 인간관계를 체계적이고 의식적으로 전복시키는 과정이며, 처음에는 노동자계급, 나중에는(무계급사회가 시작될 때) 모든 사회구성원들의 자주적인 활동을 일반화시키는 과정이다. 부르주아혁명의 승리가 자본가계급을 보수적인 계급으로 만드는(이들은 여전히 기술과 산업분야에서 혁명적 변화를 이룰 수 있으며, 꽤 오랜 기간 동안 역사에서 객관적으로 진보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이러한 분야에서 착취하는 노동자계급과 충돌이 늘어나면서 점점 더 반동으로 돌아서기 때문에 사회생활의 적극적인 변화를 꺼리게 된다) 반면에, 노동자계급이 권력을 장악하는 것은 사회를 혁명적으로 바꾸는 행동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 행동은 다른 계급들과 더불어 노동자계급이 계급 자체로서 일소될 때에만 비로소 끝날 수 있다.


(4) 대체로 한 나라 안에서나 매우 제한적인 지역적 틀 안에서 일어났던 이전의 모든 혁명들과 달리 노동계급혁명은 본래 국제적이고, 전 세계에 계급 없는 사회를 세울 때에 비로소 끝날 수 있다. 물론 처음에는 일국적 틀 안에서만 승리할 수 있겠지만 국제적 규모의 계급투쟁이 자본을 결정적으로 패배시키지 못할 때, 이 승리는 늘 위태롭고 잠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와 함께 노동계급혁명은 세계혁명 과정이다. 이 혁명은 단선적으로나 획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제국주의의 고리는 먼저 가장 약한 연결고리에서 끊어지며, 불균등결합 발전법칙에 따라 혁명의 불연속적인 파동이 일어난다. (이것은 경제는 물론이거니와 계급들의 역관계에도 마찬가지이다. 이 두 가지 사실은 결코 기계적으로 일치하지 않는다.) 


레닌주의 조직론은 노동계급혁명이 지닌 이러한 특성들을 모두 고려한다. 이 이론은 특히 노동자 계급의식의 발달에서 특수성과 모순을 고려하여 혁명의 특수성을 고찰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레닌주의 조직론은 마르크스가 암시했을 뿐이며, 그의 아류들이 전혀 알지 못했던 점, 즉 자본주의 사회질서의 ‘자동적’ 폐지나 사회주의 사회질서의 수립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질서가 ‘자연적’으로 또는 ‘체계적’으로 붕괴될 수 없다는 점을 숨김없이 밝히고 있다. 바로 노동계급혁명이 지닌 독특한 의식성 때문에 혁명은 ‘객관적’ 요인의 성숙(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이미 그 역사적 임무를 다했음을 나타내는 사회적 위기의 심화)뿐만 아니라 이른바 주관적 요인의 성숙(노동자 계급의식과 그 지도력의 성숙)을 필요로 한다. 만일 이러한 ‘주관적’ 요인이 있지 않다거나 있더라도 충분치 못하다면, 노동계급혁명은 그 시점에서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패배 때문에 자본주의가 일시적으로 공고하게 될 경제적․사회적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따라서 대체로, 레닌주의 조직론은 사회적 상부구조의 기본적 문제(국가, 계급의식, 이데올로기, 정당)에 적용된 맑스주의가 깊어짐을 뜻한다. 로자 룩셈부르크와 트로츠키(그리고 좀 더 제한적 의미에서는 루카치와 그람시를 포함시킬 수 있다)가 이바지한 것과 더불어 레닌주의 조직론은 주관적 요인에 대한 맑스주의 과학의 일부를 이룬다.


1.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 노동자 계급의식


“모든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라는 맑스주의의 명제는 얼핏보면 노동자계급에 의한 사회의 의식적 전복, 임금노동자들의 의식적․독자적 행동의 결과인 노동계급혁명의 성격과 대립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 명제를 피상적으로 해석한다면, 자본주의 하에서 조작되고, 부르주아와 소부르주아 사상의 지속적인 공격에 노출되어 있는 대중이 사회혁명은 말할 것도 없고 자본주의 사회에 맞서 혁명적 계급투쟁을 수행하는 것조차 기대하기 힘들다는 결론에 이를지도 모른다. 이 같은 결론을 내린 마르쿠제는 (지금으로서는) 맑스주의의 지배계급 정의에서 출발하여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잠재력에 대한 이의 제기로 마무리한 길게 늘어선 이론가 가운데 맨 마지막에 선 사람이다.


이 문제는 형식주의적이고 정태적인 관점을 변증법적인 것으로 대체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 맑스주의의 명제는 정말로 더욱 ‘동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모든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라는 말은 지배계급이 사회가 임의로 쓸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생산수단(교회, 학교, 대중매체 등)을 통제하고, 이 수단을 자신의 계급이해에 입각해서 사용한다는 뜻이다. 계급지배가 한층 더 강화되고 안정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마찬가지로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는 피억압계급의 의식을 계속 지배할 것이다. 게다가 착취당하는 자들은 대체로 착취자들의 신조, 관념, 이데올로기에 바탕을 둔 계급투쟁의 첫 번째 단계를 결정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기존사회의 안정성이 의문시될수록, 계급투쟁은 그만큼 더 강렬해진다. 착취자들의 계급지배 자체가 실제로 동요되기 시작할수록, 피억압계급들은 적어도 권력을 쥐고 있는 계급의 이념적 통제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다. 사회혁명을 위한 투쟁보다 앞서기도 하고 함께 전개되기도 하는 이 투쟁은 지배자의 이데올로기와 혁명적 계급의 새로운 이상 사이에서 벌어진다. 이 투쟁은 이번에는 투쟁의 당면 목표와 역사적 임무를 인식하도록 혁명적 계급을 고양시킴으로써 구체적인 계급투쟁을 강화하고 가속화시킨다. 따라서 혁명적 계급의 계급의식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가 있어도 이에 맞서는 계급투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피억압계급의 대다수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혁명뿐이다. 왜냐하면 이데올로기 통제가 주(主)는 아니더라도 순수한 이데올로기 조작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생산에 대한 대중적 동화를 통해서뿐만 아니라, 특히 기존 경제 사회의 실제적인 일상적 작용과 이것이 피억압계급의 의식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모든 계급사회에서 비슷한 현상이 발견될 수 있지만 부르주아사회에서 특히 그렇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이러한 통제는 상품관계의 내재화를 통해 힘을 드러낸다. 이 내재화는 인간관계의 물화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고, 상품생산의 일반적 확대 때문에 노동력의 상품으로 전화와 상품생산이라는 조건 하에서 사회적 분업이 일반적으로 확대된 결과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착취와 노동력의 소외, 질적․양적인 여가시간의 부족 등으로 생산자를 지치고 무감각하게 만듦으로써 통제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강제적 구속(imprisonment) 작용이 혁명, 즉 소외된 노동의 경계를 넘어서는 대중행동의 급격하고 격렬한 증대에 의해서 결딴날 때에만 비로소 이 강제적 구속 자체가 대중의식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영향력이 급격히 사그라질 수 있다.


따라서 레닌주의 조직론은 혁명 이전에 이미 발전을 시작한 조건 위에서만, 오직 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만 충분히 발전할 수 있는 정치적 계급의식 형성의 내적인 변증법을 파악하고자 한다. 여기에는 세 개의 효과적인 범주가 사용된다. 첫 번째는 즉자적 노동자계급(노동자대중)이고, 두 번째는 이미 산발적인 수준을 넘어 투쟁에 참여하고 있으며, 조직화의 첫 수준에 이른 일부 노동자계급(폭넓은 뜻에서 말하자면, 노동자전위)이며, 세 번째는 혁명 활동에 참여하고, 적어도 부분적으로나마 맑스주의를 교육받은 노동자와 지식인들로 이루어지는 혁명조직이 그것이다.


‘즉자적 계급’ 범주는 맑스주의 사회학의 객관적 계급 개념과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서 사회계층은 의식 상태와는 관계없이 생산과정의 객관적인 위치에 따라 결정된다. (젊은 시절의 마르크스가 이를테면, [공산당선언]이나 1850~1852년의 정치저작 속에서 노동자계급은 투쟁을 통해서만 최소한의 계급의식에 도달함으로써 계급이 된다고 하는 주관적 계급 개념을 제시했음은 잘 알려져 있다. 부하린은 [철학의 빈곤]에 나온 정식과 관련시켜 이를 ‘즉자적 계급’ 개념과 대비되는 ‘대자적 계급’(class for itself)이라 부르고 있다.) 이 객관적 계급 개념은 엥겔스, 베벨, 카우츠키의 영향을 받은 엥겔스와 독일사민당의 경우처럼, 레닌의 조직관에도 근본적인 것으로 남아있다.


직업적 혁명가들을 포함하여 혁명적 전위정당 개념이 조금이나마 과학적 의미가 있다면, 혁명적 전위정당은 레닌 자신이 명쾌하게 말했던 것처럼, 실제적인 혁명적 계급투쟁을 해낼 수 있다. 그런 계급투쟁도 이러한 실제 계급투쟁과 관련해서만 주기적으로 해내지 않을 수 없는 혁명계급이 객관적으로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계급투쟁과 관련되지 않은 모든 혁명 활동은 당이 아니라 잘 해야 당의 중핵을 이끌 뿐이다. 이것은 종파적이고 주관적인 아마추어의 취미(dilettantism)로 퇴화될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다. 레닌의 조직 개념에 따르면, 자칭 전위란 없다. 반대로 전위는 계급의 선진부위, 실제 투쟁과 혁명적 관계를 맺으려는 시도를 통하여 전위로서 인식, 즉 전위로서 행동할 수 있는 역사적 권리를 얻어야만 한다.


‘선진 노동자’ 범주는 객관적으로 노동자계급의 불가피한 계층화에서 비롯된다. 이 범주는 생산의 사회적 과정에서 차지하는 노동자계급의 다른 위치, 다른 계급의식, 다른 역사적 기원과 관계가 있다.


객관적 범주로서 노동자계급의 형성은 그 자체가 역사적인 과정이다. 노동자계급 가운데는 도시 임금노동자의 자식, 손자, 증손자도 있으며, 농업노동자와 소작농의 후손도 있다. 그런가 하면 얼마간 생산수단을 소유했던 소부르주아 계급(자작농, 기능공 등)의 1-2대 후손도 있다. 한편, 일부 노동자계급은 대규모 공장에서 일한다. 이 공장에서는 경제적․사회적 관계가 모두 적어도 초보적인 계급의식, 즉 집단적 행동과 조직을 통해서만 ‘사회적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의식을 낳게 한다. 다른 한편, 일부 노동자계급은 소규모나 중간 정도 규모의 공장이나 이른바 서비스부문에서 일한다. 여기서는 경제적 자신감은 물론 객관적 상황으로부터 광범위한 대중행동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것도 대규모 공장보다 훨씬 어렵다. 대도시에서 오랫동안 살고 있는 일부 노동자계급은 오래 전부터 글을 읽고 쓸 줄 알았고, 오랜 전통의 노동조합 조직을 가지고 있으며, 청년조직․노동자신문․노동교육 등을 통해 정치적․문화적 교육도 받아왔다. 그러나 여전히 소도시나 심지어 농촌에 살고 있는 노동자계급이 있었다. 이를테면, 많은 유럽 광부들이 1930년대 말까지 이렇게 살았다. 이들은 집단적 사회생활이나 노동조합 경험이 거의 없으며, 조직적인 노동자운동을 통한 정치적․문화적 교육을 받아본 적이 전혀 없다. 또한 오랫동안 독립 국가였던 나라에서 태어난 노동자계급도 있으며, 지배계급이 오랜 동안 다른 나라를 억압했던 나라에서 태어난 노동자계급도 있다. 반면에, 독립을 싸워 얻어내려고 몇 십, 몇 백 년 동안 싸웠던 나라에서 태어났거나, 기껏해야 백 년 전만해도 노예나 농노로 살았던 노동자계급도 있다.


만일 이 같은 모든 역사적․구조적 차이에 임금노동자 개개인의 다양한 개인적 능력의 차이, 즉 단지 직접 경험에서 일반화할 수 있는 능력이나 지능의 차이가 아니라 에너지의 총량, 성격의 강인함, 투쟁력, 자신감 등의 차이를 더한다면, 노동자계급이 계급의식의 정도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누어지는 것은 노동자계급 자체의 역사에서 볼 때, 피할 수 없는 현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특정 시점에서 한 계급이 형성되는 이러한 역사적 과정은 계급 안에서 의식의 편차가 크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다.


혁명정당 범주는 맑스주의 사회주의가 결국 집단적으로가 아니라 개별적인 방식으로만 완벽하게 어울릴 수 있는 하나의 과학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맑스주의는 적어도 세 가지 고전적 사회과학의 완성이자 부분적으로는 그 해체이다. 다시 말해, 고전적인 독일철학, 정치경제학, 프랑스 정치학(프랑스 사회주의와 역사학)의 완성인 것이다. 맑스주의를 받아들이려면 적어도 유물변증법, 역사적 유물론, 맑스주의 경제이론, 근대 노동운동과 근대 혁명의 비판적 역사에 대한 이해가 전제된다. 맑스주의를 사회적 현실을 분석하는 도구, 그것도 완전무결한 도구로 쓰자면, 또한 100년 동안 노동자 계급투쟁의 경험을 모을 수 있으려면, 이러한 맑스주의에 동화는 꼭 필요하다. 지식과 정보의 이와 같은 커다란 종합이 선반기계나 계산기 돌아가듯 자동적으로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과학으로서 맑스주의가 노동자 계급의식 발전의 가장 높은 단계의 표현이라는 사실은 오직 개인적인 선별과정을 통해서만 노동자계급의 가장 뛰어나고, 가장 노련하고, 가장 총명하고, 가장 전투적인 구성원이 가장 효과적인 형태로 이러한 계급의식을 직접적으로, 그리고 독자적으로 얻을 수 있음을 뜻한다. 이러한 획득은 개별적인 것이므로 다른 사회계급이나 계층(특히, 혁명적 지식인과 학생)들도 이에 쉽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 밖의 접근방법은 노동자계급의 이상화, 결국에는 자본주의 자체의 이상화에 이를 뿐이다.


물론 맑스주의가 부르주아 사회의 실제적 발전과 그 속에서 필연적으로 전개되는 계급투쟁과 상관없이 일어날 수 없었음은 늘 마음에 새겨야 한다. 투쟁하는 노동자계급의 집단적․ 역사적 경험과 이것의 가장 효과적 형태인 집단적․역사적 계급의식으로서 맑스주의의 과학적 작업 사이에는 결코 유리될 수 없는 관계가 있다. 그러나 과학적 사회주의가 노동자 계급투쟁의 역사적 산물이라는 주장은 이 계급의 거의 모든 구성원이 다소 손쉽게 이러한 지식을 재생산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맑스주의는 계급투쟁이나 계급적 경험의 자동적 산물이 아니라 과학적․이론적 생산의 결과이다. 이러한 맑스주의에 동화는 오직 이론적 생산과정에 참여함으로써만 가능해진다. 그리고 이 과정은 자본주의 하에서 계급모순과 사회적 생산력의 발전을 통해서만 가능해진다고할지라도 분명히 개인적인 과정인 것이다.


2. 노동자 계급투쟁과 노동자 계급의식


노동자대중, 노동자전위, 혁명정당이 결합되는 과정은 혁명적 계급투쟁 -노동계급혁명 - 으로 성장하는 초보적인 노동자 계급투쟁과 이것이 임금노동자 대중에게 미치는 효과에 달려 있다. 계급투쟁은 투쟁에 참여한 사람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인식하지 못한 채 수천 년 동안 계속되어왔다. 과학적 사회주의는 말할 것도 없이 사회주의운동이 있기 훨씬 전부터 노동자 계급투쟁이 수행되어왔다. 초보적인 계급투쟁 - 임금인상이나 노동시간 단축, 기타 노동조건의 개선을 둘러싼 조업중단, 파업 등 - 은 비록 그 수명이 짧을지라도 계급조직의 초보적인 형태(상호부조기금, 맹아적 노동조합)를 낳는다. (또한 많은 노동자들에게 일반적인 사회주의적 이상을 불러일으킨다.) 따라서 초보적 계급투쟁, 초보적 계급조직, 초보적 계급의식은 행동에서 직접 생성되며, 이러한 행동에서 기인하는 경험만이 의식을 발전시키고 촉진시킬 수 있다. 오직 행동을 통해서만 광범한 대중이 자신의 의식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은 역사의 일반법칙인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하에서 임금노동자들의 자생적인 계급투쟁은 심지어 가장 초보적인 형태에서조차도 지속적인 조직화 과정 속에서 응결된 의식의 형태로 그 자취를 남긴다. 대부분의 대중은 투쟁 중에만 적극적이다가 투쟁 뒤에는 조만간 사생활(즉, ‘생존경쟁으로’)로 후퇴하고 만다. 노동자전위가 이러한 대중과 구별되는 것은 투쟁이 소강상태에 있을 때라도 계급투쟁의 최전선을 포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말하자면, ‘다른 수단’으로 투쟁을 계속한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투쟁 중에 생긴 저항기금을 지속적인 저항기금 즉, 조합으로 통합하려고 시도한다. 즉, 노동자신문을 발간하거나 노동자를 위한 교육단체를 조직함으로써 투쟁 중에 생긴 초보적인 계급의식을 향상시키고 구체화시키려고 시도한다. 따라서 이것은 부득이하게 단절되는 대중의 행동에 대립하는 지속성이라는 요인과 대중운동 본래의 자생성에 대립되는 의식이라는 요인을 만들어내는데 기여한다.


그러나 선진 노동자는 이론, 과학 또는 사회 전체에 대한 지적인 이해보다는 투쟁을 통해 얻은 실제적인 지식에 의해서 지속적인 조직화와 계급의식의 성장에 이르게 된다. 파업이 끝날 때마다 저항기금이 없어짐으로써 파업의 효율성과 활동자금이 줄어든다는 것을 투쟁을 통해 알게 되고 나서는 영구적인 파업기금을 마련하려는 시도가 나타난다. 또한 경험을 통해서 비정기적인 인쇄물이 정기적인 신문보다 효과가 적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는 노동자신문이 탄생한다. 투쟁의 실제적인 경험으로부터 직접 생기는 의식은 경험적이고 실용적인 의식이다. 이것은 행동을 어느 정도 풍부하게 할 수는 있지만 체계적으로 포괄적인 의식 즉, 이론적 이해의 유효성보다는 훨씬 열등한 것이다.


일반적인 이론적 이해에 입각한 혁명적 전위조직이 계급투쟁과 결합할 수 있다면, 즉, 이론을 실천적으로 검증하고, 이론과 실천을 재결합하는 힘겨운 검증을 꺼리지 않는다면, 이러한 고차원의 의식을 풍부히 하고 견고히 할 수 있다. 성숙한 맑스주의 - 마르크스 자신은 물론 레닌의 맑스주의 - 의 관점에서 볼 때, 실천과 분리된 ‘참된’ 이론이란 과학적 이론에 근거하지 않은 ‘혁명적 실천’ 만큼이나 부질없는 소리이다. 이것이 이론적 생산의 결정적 중요성과 절대적 필요성을 감소시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임금노동자 대중과 혁명적 인자들은 모두 각기 출발점이 달라서 다른 경험을 했더라도 이론과 실천의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위 표를 일정한 결론이 도출될 수 있도록 다시 구성한다면, 다음과 같다.


이 도식적 표는 이미 분석적으로 예상되기는 했으나 이제 비로소 충분한 가치를 획득한 계급의식의 역학에 대한 일련의 결론들을 보여준다. 선진 노동자(작업장에서 노동자계급의 ‘자연스러운 지도자들’)의 집단행동은 상대적으로 순수한 신념(혁명중핵의 경우)이나 순수하게 자생적인 폭발(광범한 대중의 경우)을 통해서는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 이루어지기가 더 어렵다. 이들이 광범위한 규모의 행동에 착수하기까지 이들을 더욱 더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투쟁의 경험, 즉 선진 노동자의 행동에서 동기가 되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들은 이미 과거의 행동에서 교훈을 얻었으며, 단순한 폭발만으로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들에게는 적의 힘이나 대중운동의 지속성에 대한 환상이 거의 없다. 바로 이 점에서 경제주의의 가장 큰 ‘유혹’이 밝혀질 수 있다.


요약하면, 혁명적 계급정당의 건설은 혁명중핵의 의식이 선진 노동자의 의식에 녹아드는 것이다. 혁명적 폭발이 있을 수 있는 전(前)혁명적 상황의 성숙은 폭넓은 대중의 행동이 선진 노동자의 행동에 녹아드는 것이다. 혁명적인 권력획득은 전위와 대중의 행동이 전위와 혁명적 계층의 의식에 녹아들 때 이루어질 수 있다. 많은 대중에게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모순 때문에 생기는 초보적인 계급투쟁은 늘 닥친 문제를 통해 일어난다. 모든 대중행동, 심지어 정치적 행동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폭넓은 대중투쟁이 혁명투쟁으로 발전하는 문제는 양적인 요인뿐만 아니라 질적인 요인을 통해서 좌우된다. 대중투쟁이 혁명투쟁으로 발전하는 문제는 이미 다다른 의식의 단계에 근거하여 많은 대중을 부르주아 사회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존속에 맞서는 목표에 서서 행동할 수 있게 만드는 대중들이나 대중운동 안에 선진화된 노동자들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또한 이는 이행기 요구의 중심적 중요성, 이러한 이행기 요구를 선전하도록 이미 훈련된 선진 노동자의 전략적 위치와 가장 넓은 계급대중의 주관적 요구와 객관적인 역사적 조건에 일치하는 이행기 요구라는 포괄적 강령을 작성할 수 있는 단 하나뿐인 혁명조직의 역사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노동계급혁명은 이런 모든 요인들이 성공적으로 결합될 때에만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는 결국 레닌주의 조직론이 무엇보다도 혁명의 이론임을 이미 말했다. 레닌에 반대하여 1903~04년에 레닌에 맞서 논쟁을 벌인 룩셈부르크는 바로 레닌주의 조직론이 혁명 이론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룩셈부르크는 레닌보다 더 많은 약점을 지닌 듯이 보였다. 주의 깊게 읽어보면 나타나겠지만, ‘러시아사회민주당의 조직문제’라는 글에서 룩셈부르크가 공격했던 중앙 집중주의 개념은 순전히 조직적인 개념이다. (아직도 공격받기는 하지만 이 점 또한 확인된 것이다. 이 점에서 지금의 ‘룩셈부르크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로자’를 더욱 주의 깊게, 그리고 더욱 철저하게 읽어야 한다!) 레닌은 ‘초중앙집중주의’ 노선을 옹호하고, 지역 당위원회 구성을 지시했으며, 당 하부단위의 주도권 행사를 좌절시키고 싶어 했다는 점에서 비난받았다.


그러나 레닌 자신이 발전시킨 레닌주의 조직론으로 주의를 돌려보면, 그 강조점이 중앙 집중주의의 형태적․조직적 측면이 아니라 그 정치적․사회적 기능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의 핵심에는 안팎의 계급관계에 대한 모든 문제를 제기하고, 맑스주의의 관점에서 이에 답하는 포괄적인 정치활동으로 노동자 계급의식을 정치적 계급의식으로 전환시킨다는 개념이 자리하고 있다.


실제로 ‘노동자 대중의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이 행동이 ‘경제적 밑바탕에 대한 정치선동’에 제한되지 않을 경우에만 있을 수 있다. 정치선동의 필수적 확대를 위한 기본적인 조건은 포괄적인 정치폭로의 조직이다. 이러한 폭로를 통하지 않으면, 대중들이 정치의식과 혁명 활동으로 훈련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


더 나아가 그는 이렇게 말한다.


노동자들이 구체적이고, 무엇보다도 시사문제, 정치적 사건과 사실들에서 그 지적․윤리적․ 정치적 삶이 드러나는 모든 모습 속에서 다른 모든 사회계급들을 관찰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노동자들이 모든 계급, 계층, 집단들의 삶과 행동의 모든 양상에 대한 유물론적 분석과 평가를 실제로 적용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노동자대중의 의식은 진정한 계급의식이 될 수 없다. 오직 노동자계급의 주의력, 관찰력, 의식에만 집중한다거나 주로 그 자체에만 집중하려는 사람은 사회민주주의자(혁명적 사회주의자 - 옮긴이)가 아니다. 왜냐하면 노동자계급의 자각은 현대사회의 모든 다양한 계급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아주 명확한 이론적 이해(이론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실천적인 이해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할 것이다.)만이 아니라 정치생활을 통해 얻은 경험과 떼어 놓을 수 없이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레닌, 『무엇을 할 것인가?』 가운데에서]


레닌이, 혁명정당이 모든 피억압 사회계층과 계급들의 모든 진보적 요구와 운동을 (‘순전히 민주주의적인’ 것까지도)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절대적 필요를 강력하게 강조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레닌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발전시킨 중심적인 전략적 계획은 모든 초보적이고, 자생적이고, 분산되어 있으며, ‘단지’ 지역적이고 국지적일 뿐인 항의, 반란, 저항운동을 통합시키는 당의 선동계획이다. 중앙 집중주의를 강조한 것은 형태적이고 조직적인 측면이 아니라 정치적인 측면에 있음이 틀림없다. 형태적․조직적 중앙 집중주의가 지닌 목적은 단지 이러한 전략적 계획을 실현시키는 것일 뿐이다.


룩셈부르크는 레닌의 이러한 ‘중앙 집중주의’의 본질을 알지 못했지만 논쟁에서 간접적으로 정치적 계급의식의 형성과 혁명적 상황의 준비라는 다른 개념을 중앙 집중주의 개념에 대립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행위는 그녀가 논쟁에서 완전히 틀렸음을 한층 더 도드라지게 할 뿐이다. “노동자군대는 투쟁 가운데 기운을 회복하며, 자신의 목표를 깨닫게 된다.”는 룩셈부르크의 개념은 역사적으로 완전히 거부되었다. 가장 광범위하고, 가장 오랫동안 계속되고, 가장 활발한 노동자투쟁에서조차도 노동자대중은 투쟁 과업을 뚜렷이 알지 못했거나 알았더라도 충분하지 않았을 뿐이다. (1936년과 1968년의 프랑스 총파업, 1918년~1923년 독일 노동자들의 투쟁, 1920년, 1948년, 1969년의 이탈리아 노동자들의 대투쟁, 1931년~1937년 스페인의 경이적인 계급투쟁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넉넉하다.)


광범위한 전(前)혁명적 대중투쟁, 아니 심지어 혁명적 대중투쟁의 경험조차도 성취되어야 할 과업을 뚜렷이 하기에는 결코 넉넉하지 않다. 물론 이러한 과업은 투쟁을 불러온 직접적인 동기와 관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사회발전,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그 내적 모순을 통해 얻어진 역사적 지위와 계급들 사이의 국내외적 역관계 등에 대한 종합적 분석을 통해서만 파악될 수 있다. 지속적이고 장기간에 걸친 준비 없이, 수많은 선진 노동자를 혁명 강령의 정신으로 교육시키지 않은 채, 그리고 이 강령을 광범한 대중에게 제시하려는 노력을 통해 몇 년 동안 쌓인 선진 노동자의 실제적 경험 없이 갑자기, 말하자면, 하룻밤 사이에 대중행동의 단순한 도움으로 역사적 상황의 요구에 알맞는 의식이 폭넓은 대중들 사이에서 생기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완전히 환상이다.


그런데 룩셈부르크의 명제를 바꿔서 말할 수 있다면 이렇다 : 노동자전위를 단련시키는데 필요한 교육, 훈련, 시험과 투쟁을 통한 혁명 강령의 선동적 적용이 가장 폭넓은 대중투쟁이 발생하기 전에 일어나지 않는다면, 노동자군대는 자신의 역사적 목표를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훈련된 전위가 없었기 때문에,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 일어난 독일혁명은 패배라는 비극적 교훈을 남겨 준 것이다.


레닌이 마음에 두고 있는 전략적 계획의 목표는 개별적인 혁명중핵과 노동자전위를 유기적으로 결합시킴으로써 훈련된 전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어울림은 노동조합이나 공장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선진 노동자를 밖으로 끌어내는 포괄적인 정치활동 없이는 있을 수 없다. 오늘날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경험적 자료는 1905년 혁명 시기까지, 그리고 1912년에 다시 힘을 얻기 시작한 대중운동이 일어난 뒤 레닌의 당이 사실상 이러한 정당이었음을 확증한다.


레닌의 전략적 계획이 지닌 깊은 혁명성을 충분히 파악하려면 또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필연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그다지 멀지 않은 장래에 일어날 혁명의 개연성에 따르고 있는 모든 개념들은 어쩔 수 없이 국가권력과 직접적 충돌, 즉 국가권력의 장악이라는 문제를 다루어야만 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곧바로 중앙 집중주의에 대한 또 하나의 논의를 낳는다. 레닌과 룩셈부르크는 자본주의 자체와 부르주아 국가는 현대사회에 강력한 중앙 집중주의적 영향을 미치며, 이번에는 이 중앙집중화된 국가권력이 보기를 들면, 담장이 벽돌들로 쪼개질 수 있는 것처럼, 점차로 해체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적으로 환상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한다.


결국, 레닌과 룩셈부르크가 똑같은 열정으로 거부한 개량주의와 수정주의의 이데올로기적 본질은 이것이 가능하다는 환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다. 그러나 국가권력의 장악이라는 문제가 더 이상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까운 또는 그다지 멀지 않은 장래의 목표라는 것이 인정되면, 혁명은 즉각 권력의 혁명적 장악을 이루는 데 꼭 필요한 수단의 문제에 부닥치게 된다. 이 점에서 룩셈부르크는 다시 한 번 레닌이 순전히 논쟁적으로 사용했던 “계급의식적인 노동자계급의 조직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는 자코뱅”이라는 개념의 뜻을 잘못 해석했다. 레닌이 이 개념에 준 뜻은 블랑키주의적 음모자들이 아니라 자코뱅처럼 끈기 있게 혁명과업을 해내려고 하는 선진적 그룹이었음에 틀림없다. 대중운동이 어쩔 수 없이 부침하기 때문에 이러한 임무에서 관심을 돌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레닌의 속내였다.


그러나 룩셈부르크를 올바로 평가하려면 다음과 같은 점을 덧붙여야 한다. 첫째로, 그녀는 1904년까지는 러시아나 폴란드보다는 독일의 현실에 더 많이 영향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이 문제를 다른 역사적 관점에서 다루었다는 점이다. (사실은 이렇게 다루지 않을 수 없었다.) 둘째로, 독일에서도 가까운 장래에 혁명이 도래할 가능성이 분명해지자마자 그녀는 레닌주의적 뜻의 필연적 결론을 완벽하게 도출했다는 점이다.


젊은 시절 트로츠키도 레닌과 논쟁에서 노동자계급의 주도권을 당만의 주도권으로 바꿔버리는 ‘대리주의’를 옹호한다고 레닌을 비난하는 중대한 잘못을 범했다. 이러한 비난의 논쟁적 외피에서 그 핵심으로 들어가면, 여기서도 노동자 계급의식의 발전에 대한 이상적이고 부적절한 개념을 발견하게 된다. 즉 “맑스주의는 노동자계급의 이해관계가 삶의 객관적인 조건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이러한 이해관계는 매우 강력하고 어쩔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노동자계급을 계급의식의 영역에 이르게 하지 않을 수 없다. 즉, 객관적 이해관계를 주관적 이해관계로 실현시키지 않을 수 없다.” [트로츠키, 「우리의 정치적 임무」가운데에서] 요즘에는 이 부적절한 분석 속에 매우 순진한 숙명주의적 낙관주의가 숨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여기에서 닥친 이해관계는 역사적 이해관계, 즉 정치적 전략전술의 가장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같은 수준에 놓이게 된다. 노동자계급이 ‘결국’ 자신의 역사적 이해관계를 알게 될 것이라는 바람은 이전에 적절한 혁명지도부가 없는 상태에서 노동자계급이 닥친 혁명과업을 해낼 수조차 없었기 때문에 비롯되었던 역사적 재앙과 견주어 보면 차라리 천박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똑같이 천진난만하기 짝이 없는 낙관론이 같은 논쟁에서 따온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는 한층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는 노동자계급 정당의 필연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노동자계급 정당 내부에서 혁명적 사회주의 사상의 필연적인(!) 승리를 확신한다. 그 첫째 증거는 부르주아사회의 발전은 자연발생적으로 노동자계급을 정치적으로 구별하도록 이끈다는 사실에 있다. 둘째 증거로는 이러한 구별의 객관적 경향과 전술적 문제는 혁명적 사회주의 즉, 맑스주의에서 가장 잘, 가장 완전하고 심원하게 표현된다는 사실에 있다. [트로츠키, 「우리의 정치적 임무」가운데서]

  

이 인용문은 트로츠키가 레닌과 논쟁에서 옹호하고 있었던 것이 맑스가 죽은 뒤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 국제사회민주주의에 널리 퍼졌던 베벨과 카우츠키 류의 ‘노련한, 검증된 전술’, 순진한 ‘진보의 필연성에 대한 믿음’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해준다. 레닌의 계급의식 개념은 (‘종국의 어느 날’이 아니라 곧 도래할) 현재로서는 정확히 혁명의 적합성에 대한 빈틈없는 이해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견줄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하고 한층 모순적이며, 변증법적이었다. 역사의 발전을 상세히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이 덧붙여져야 한다. 트로츠키는 1917년 러시아혁명 뒤에 레닌이 한 노동자 계급의식의 형성에 대한 분석, 따라서 레닌의 조직론도 완전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모든 회의론자와 주요 염세주의자들 (레닌에게서 스탈린주의의 ‘싹’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자들)에 맞서 완강하게 레닌을 감쌌다. 그 한 보기로, 트로츠키는 자신의 마지막 미완성 수고에서 이렇게 말했다.


1917년 2월이나 3월에 러시아 노동자계급이 성숙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레닌 때문이었다. 그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러시아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전통을 체현하고 있었다. 레닌의 구호가 대중에게 이르기 위해서는 처음에 비록 그 수가 작더라도 중핵이 있어야 했다. 중핵과 지도부 사이에는 신뢰가 있어야 했다. 이 신뢰관계는 과거의 경험 전체에 근거했다. 이런 요소를 미래를 생각해볼 때 빼버리는 것은 정말로 살아있는 혁명을 묵살하고, ‘세력관계’를 추상으로 바꿔놓으려는 것이다. 왜냐하면 혁명은 바로 노동자계급의 의식이 변화하는 가운데 세력관계가 끊임없이, 재빠르게 달라지고, 후진적 계층이 선진적 계층으로 상승하며, 계급이 자신의 힘을 점점 더 믿게 될 때 발전하기 때문이다. 당의 구조에서 결정적인 추진력이 지도부인 것과 꼭 마찬가지로 이 과정의 결정적 추진력은 당이다.[트로츠키, 「계급, 당, 지도부 ― 스페인 노동자계급은 왜 패배했는가?」가운데에서]


3. 혁명전위와 자생적인 대중행동


룩셈부르크나 트로츠키가 자생적인 대중행동의 중요성을 ‘인정’한 것과는 달리 레닌이 계획적으로 ‘과소평가’한 것으로 그의 필생의 사업을 규정하는 것은 레닌에게 아주 억울한 일이다. 논쟁적인 구절들은 따로 떼어 놓고 전후맥락을 살펴볼 때에만 레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레닌은 룩셈부르크나 트로츠키와 마찬가지로 거대하고 자생적인 대중파업이나 시위의 발발을 드러내놓고 열정적으로 환영했다. 오직 스탈린주의 관료집단만이 자생적 대중운동에 대한 불신을 키움으로써 레닌주의를 왜곡시켰다. 어찌되었건 이것은 모든 관료집단의 특징이다.


룩셈부르크가 노동계급 혁명의 발발이 시간표에 따라 ‘미리 결정될’ 수는 없다고 말한 것은 전적으로 올바르며, 레닌이 이와 반대로 말했다는 증거는 전혀 찾을 수 없다. 룩셈부르크와 마찬가지로 레닌은 이러한 초보적인 대중폭발(이것이 없다면 혁명은 감히 생각도 할 수 없다.)이 규칙에 따라 ‘조직되’거나 일련의 훈련받은 하사관들이 ‘지휘할’ 수도 없다고 굳게 믿었다. 룩셈부르크처럼 레닌은 창조적 에너지와 비상한 수완, 그리고 주도성의 중대한 보고인 진정으로 광범위한 대중행동이 전개되고, 또 언제나 전개될 것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레닌의 조직론과 이른바 (중요한 유보조건을 다는 경우에만 룩셈부르크의 덕분으로 여겨질 수 있는) 자생성론 사이의 차이는 대중의 주도성을 과소평가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한계를 이해하는데 있다. 대중의 주도성은 훌륭한 성과를 많이 거둘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투쟁을 통해 모든 사회문제를 다루는 사회주의 혁명의 완벽하고 포괄적인 강령(사회주의적 재건은 말할 것도 없고)을 작성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이것만으로는 ‘내부 연락선’의 이점을 충분히 이용하는 억압기구를 가진 중앙 집중화된 국가권력을 뒤엎을 수 있는 충분한 세력을 불러모을 수 없다. 바꿔 말하면, 대중이 지닌 자생성의 한계는 사회주의 혁명의 승리가 급조될 수 없음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요컨대, ‘순수한’ 대중의 자생성은 언제나 즉흥적으로 만들어진다.


게다가 ‘순수한’ 자생성은 실제 역사 속에서가 아니라 단지 노동자운동에 대한 거짓말을 담고 있는 책 속에만 존재한다. ‘대중의 자생성’으로 이해되는 것은 어떤 중심적 권위가 미리 치밀하게 계획하지 않은 운동이다. ‘외부에서부터 정치적 영향’ 없이 발생한 운동이 ‘대중의 자생성’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겉으로 보기에 ‘자생적 운동’의 푸른색 칠을 긁어보면, 틀림없이 선명한 붉은색 베니어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자생적’ 파업을 촉발시킨 사람은 바로 ‘전위’ 그룹의 일원이다. ‘자생적’ 파업이 벌어지는 폭발적 정세 속에서 익명의 대중은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던 반면에, 한때 ‘좌편향 그룹’에 속했던 다른 일원은 전위 그룹을 탈퇴한 지 오래지만 번개같이 대응할 수 있는 충분한 정신적 능력이 있었다.


우리는 노동조합 반대세력이나 평 조합원 그룹에서 이루어진 오랜 ‘비밀활동’이 결실을 맺는 ‘자생적’ 행동 사례나, 상당히 오랫동안 접촉한 결과이자 ‘좌익’이 득세한 인접 도시(혹은 인근 공장)의 공장 동료들이 끈기 있게, 겉보기에 성공 없이도 길러진 ‘자생적’ 행동 사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자생적’ 행동을 ‘전위의 개입’과 구별하는 것은 후자에서는 ‘전위’가 ‘대중’과 구별되는 반면에, 전자에서는 투쟁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동등한 의식 수준에 도달해 있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또한 ‘자생적’ 행동에서는 노동자계급을 ‘외부’에서 끌어들일 해법이 없는 반면에, 조직화된 전위는 강령을 ‘강요하는’ ‘엘리트주의적 방식으로’ 대중의 기본적인 요구와 관계를 갖는다는 식의 얘기도 이 두 가지 행동 형태를 구별 짓는 것은 아니다. 전위분자가 일정한 영향을 미치지 않은 ‘자생적’ 행동은 한 번도 없었다. ‘자생적’ 행동과 ‘전위의 개입’에 의한 행동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는 ‘자생적’ 행동에 전위분자가 개입하는 것이 비조직적, 즉흥적, 간헐적, 비계획적인 성격을 띠었던 반면에, 혁명조직의 존재는 ‘자생적’ 대중투쟁에 전위의 개입을 조정하고 계획하며 의식적으로 일치시키고 계속해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레닌주의의 ‘초중앙집중주의’가 내건 모든 요구는 이것에, 오로지 이것에만 따르고 있다.


구제불능의 운명론자(즉, 기계적 결정론자)만이 모든 대중폭발은 그날 일어났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정해진 날에 일어나야만 했다. 거꾸로 말하면, 대중폭발이 일어나지 않은 경우는 모두 대중폭발이 일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이러한 운명주의적 태도(카우츠키와 바우어 학파에 공통적인 사고방식)는 실제로 레닌주의 조직론을 희화화하는 것일 뿐이다. 어쨌든 ‘대중의 자생성’에 대해서 많은 말을 한 레닌의 반대자들은 동시에 이것이 ‘대중의 자생성’에 대한 자신들의 ‘높은 평가’와 얼마나 모순되는지를 인식하지 못한 채 비속한 기계적 결정론에 빠진다. 이것이 레닌주의의 수많은 반대자들의 특징이다.


반면에, 주기적인 자생적 대중폭발(이는 결국,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전(前)혁명적 위기를 주기적으로 낳을 수밖에 없는 시점까지 사회경제적 모순이 성숙되었을 때 발생한다.)의 불가피성에서 논의를 진척시킨다면, 대중폭발이 일어날 정확한 시간을 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수많은 사소한 사건들, 부분적인 갈등과 우연한 사건들이 이 시간을 결정하는 데서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힘을 ‘가장 약한 고리’에 집중할 수 있는 혁명전위는 자신의 힘을 집중할 능력이 부족한 수많은 선진 노동자들의 분산된 행동보다는 비교도 안될 만큼 더 효과적이다.


서구에서 발생한 가장 거대한 두 노동자투쟁, 즉 프랑스의 1968년 5월과 이탈리아의 1969년 가을은 이러한 견해를 전적으로 뒷받침해준다. 이 두 ‘자생적’ 투쟁은 모두 노동조합이나 거대 사민당 또는 ‘공산’당의 의해 준비되지 않았다. 두 경우 모두 개인, 급진적 노동자와 학생 또는 혁명중핵들이 여기저기에서 첫 폭발을 일으키고, 노동자대중이 ‘훌륭한 경험’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두 경우 모두 몇 천만 명이 투쟁에 참여했다. 프랑스에서는 천만, 이탈리아에서는 천오백만 명까지 이르렀다. 이는 일찍이, 심지어 제1차 세계대전 뒤 가장 거대한 계급투쟁 가운데 보기 드문 것이었다.


두 경우 모두 노동자들의 자생적 경향은 단지 경제파업일 뿐이라는 ‘경제주의’를 훌쩍 뛰어넘어버렸다. 이것은 프랑스에서는 공장점거와 수많은 불완전한 국지적 주도권 행사로, 이탈리아에서는 거대한 가두시위와 정치적 요구의 증대, 생산지점에서의 자기조직화를 위한 맹아적 경향의 출현, 즉 이중권력 수립을 위한 첫 조치, 다시 말해 단위별 대표자 선출을 취하려는 시도들로 입증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탈리아 노동자계급의 전위는 프랑스보다 더 선진적이었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프랑스에서 일어난 5월 투쟁에서 중요한 역사적 교훈을 끌어냈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도 이런 강력하고 자생적인 대중행동은 부르주아 국가기구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전복이나 심지어 단 기간 안에 이러한 전복을 가능하게 하는 목표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증진시키는 데서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러시아혁명사』에 나오는 트로츠키의 비유를 상기해보자.


강력한 증기는 결정적인 순간에 그것을 압축시킬 수 있는 피스톤이 없기 때문에 증발되어버렸다. 결국 추진력은 증기, 즉 대중동원과 대중투쟁의 에너지이지 피스톤은 아니다.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증기가 없다면, 피스톤은 속빈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피스톤이 없다면, 아무리 강력한 증기라도 소모될 뿐이며,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이것이 레닌주의 조직론의 정수이다.


4. 조직, 관료주의, 혁명적 행동


레닌이 멘셰비키와 가장 격렬하게 논쟁을 벌이는 동안 전혀 인식하지 못했거나(1903~05년) 충분하지 않았을지라도 (1908~14년)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곤란한 점이 있다. 바로 이 점에서 ‘노동자계급 - 선진 노동자 - 노동자정당’이라는 변증법적 정식을 쉽게 알게 하는 트로츠키와 룩셈부르크의 역사적 저작이 지닌 충분한 가치가 뚜렷해진다.


아무래도 수준이 떨어지는 광범한 노동자대중의 계급의식 때문에 전위정당과 당과 대중 사이의 일정한 분리는 어쩔 수 없다. 레닌은 이러한 분리가 사회주의혁명을 위한 혁명투쟁의 역사적 특수성에 전적으로 부응하는 복합적인 변증법적 관계, 즉 분리와 결합의 통일이라고 되풀이해서 강조했다. 그러나 이 이질적인 정당은 보편적 분업과 상품생산이라는 고유의 특성 때문에 모든 인간관계를 물화시키는 경향이 있는 부르주아 사회 안에서 나온다. 이것은 노동자대중과 떨어진 당 기구를 만드는 것은 이 기구가 자주화될 위험성을 안고 있음을 뜻한다. 이 위험이 맹아적 단계를 넘어서 발전할 경우, 목적(성공적인 노동자 계급투쟁) 달성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수단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기구의 자기보존을 지지하는 경향이 생기게 된다. 이것이 제2, 제3 인터내셔널이 타락한 근원이다. 다시 말해, 서유럽 대부분의 사민당과 공산당들은 일상적인 실천에서 현상유지적인 보수적이고 개량주의적인 관료집단에 종속되었다.


노동자조직의 관료집단은 사회적 분업의 산물이다. 자본주의 하에서 생산의 이론적․문화적 과정에서 대부분 배제된 노동자대중은 자기 조직의 틀 안에서 대처했어야만 하는 모든 과제를 스스로 규칙적으로 돌볼 수 없다. 노동자운동의 시작 단계에서 때때로 그랬던 것처럼, 노동자들은 어떻게든 이렇게 해보려 한다. 그러나 이 같은 분업은 물적 조건들에 완벽히 부합하기 때문에 아무런 해결책도 마련되지 않는다. 또한 이 분업은 결코 사악한 출세주의자가 만들어낼 수도 없다. 이러한 조건들이 간과된다면, 원시성, 무지, 언쟁을 낳을 것이고, 이는 다른 점에서 관료집단이 중시하는 것과 똑같이 운동을 제약한다. 이 점에서 출발점이 달랐기 때문에 우리는  의식의 수준이 아니라 조직기술의 수준에서 이전에 이미 분명히 했던 똑같은 문제와 부딪치게 된다. 즉,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활동을 준비하는 완벽한 교습소로 간단히 믿어버리는 문제나, 자기 해방의 조직적 형태와 모든 목표를 자생적으로 인식하고 성취하는 노동자대중의 능력을 자동적으로 낳는다는 문제와 부딪치게 된다.


레닌은 멘셰비키와 첫 번째 논쟁에서 당 기구의 자주화와 노동자 정당의 관료화라는 위험을 아주 업신여겼다. 그는 근대 노동운동에서 기회주의가 판칠 위험은 대개 소부르주아 지식인과 소부르주아 ‘순수 노동조합주의자들’에서 나올 것이라는 전제에서 논의를 시작했다. 그는 ‘관료주의’의 위험에 맞선 많은 동지들의 투쟁을 비웃었다. 실제로 역사는 제1차 세계대전 전의 사회민주주의 안에 기회주의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 지식인이나 ‘순수 노동조합주의자들’이 아니라, 사민당의 관료주의 자체에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즉 한편으로는 선거와 의회활동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와 노동조합의 성격과 관련해서 눈앞에 닥친 개량투쟁에 한정된 ‘합법주의’ 실천에서 나왔음을 보여주었다. (이런 실천을 단지 말로 설명만하더라도 이것이 오늘날의 서유럽 공산당의 실천과 얼마나 비슷한 지 확인된다!)  


트로츠키와 룩셈부르크는 이 위험을 레닌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그리고 더 일찌감치 알았다. 이미 1904년에 룩셈부르크는 “공격하고 싶어 하는 대중과 사민당의 [지나치게] 신중한 태도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밝혔다. 이 생각은 표명되자마자 곧 잊혀져버린다. 오직 레닌주의 노선에 따라 당의 ‘초중앙집중주의’를 상상하는 경우에만 그 타당성이 입증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0년이 지난 뒤, 트로츠키는 이를 좀 더 정확하게 표현했다.


유럽 사회주의 정당들,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가장 큰 독일사민당은 대중들이 사회주의를 받아들이는 것에 비례하여, 그리고 이들이 조직되고 훈련되는 것에 비례하여 자신의 보수주의를 발전시켰다. 그 결과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경험을 체현하는 조직으로서 사민당은 어느 순간에 노동자와 부르주아 반동 사이의 갈등을 드러내는데 직접적인 방해물이 될 수도 있다. 바꿔 말하면, 노동자정당의 선전주의적-사회주의적 보수주의는 어느 순간에는 노동자계급의 직접적 권력투쟁을 제지할 수도 있다.[트로츠키, 「평가와 전망」가운데에서]


이 예측은 역사가 비극적으로 증명했다. 독일의 좌익은 훨씬 전에 사민당 집행부에 대한 환상을 버린 반면에, 레닌은 제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5. 조직론, 혁명 강령, 혁명적 실천


그러나 1914년 8월 4일에 정신적 충격을 받은 뒤로 레닌은 이 문제에 대해 결정적인 진전을 보게 된다. 이때부터 조직문제는 기능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내용적인 문제가 되었다. 이 문제는 더 이상 『무엇을 할 것인가?』와 「일보전진, 이보후퇴」에서처럼 단순히 ‘자생성’ 일반과 ‘조직’ 일반을 대비시키는 차원이 아니었다. 이제 문제는 객관적으로 보수적인 조직과 객관적으로 혁명적인 조직을 신중히 구별하는 것이다. 이 구별은 객관적인 기준(혁명 강령, 대중에게 혁명 강령을 제출하는 것, 혁명적 실천 등)에 따라서 이루어진다. 대중의 자생적인 전투성은 의식적으로 보수적인 개량주의적 행동이나 대중조직의 존재까지도 선호하는 편이다. ‘천진난만한’ 조직물신주의자들은 1914년 뒤에 레닌이 ‘비조직적인 대중’과 사회민주주의 조직 사이의 갈등에서 후자에 비해 전자를 체계적으로 옹호하거나 후자의 전자에 대한 배신을 비난함으로써 룩셈부르크주의의 ‘자생성론’적 견해로 전향했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이제 레닌은 심지어 보수화된 조직을 부수는 것을 노동자계급의 해방에 피할 수 없는 전제조건으로 여긴다.


그러나 1914년이 지난 다음 레닌은 그의 조직론을 수정하거나 좀 더 분명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행위는 ‘순수한’ 자생성에 대한 숭배로 퇴보가 아니라 오히려 혁명정당과 조직 일반 사이의 구별을 향한 전진이었다. 이제 당의 목적은 노동자계급이 지닐 정치적 계급의식을 발전시키는 것에 있지 않다. 그 대신 당의 목적은 혁명전위의 역할을 노동자계급 전위의 혁명적 의식을 발전시키는데 있다고 훨씬 더 정확하게 정식화되었다. 혁명적 계급정당의 건설은 사회주의혁명 강령이 대다수 선진 노동자들이 투쟁 속에서 쌓은 경험과 어울리는 과정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다음 이러한 레닌주의 조직론의 정교화와 발전은 혁명의 적합성이라는 레닌주의 개념의 현재로의 확대와 관련되어 있다. 1914년 이전의 레닌에게 이것은 대체로 러시아에 한정되었지만 1914년 뒤에는 유럽 전체로 확대되었다. (1905년 러시아혁명 뒤 레닌은 식민지와 반(半)식민지에서 당면한 혁명의 잠재력을 이미 인식했다.)


결과적으로 오늘날 서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에 레닌주의의 ‘전략적 계획’이 타당한가 하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역사적 시기의 성격 문제와 긴밀히 관련되어 있다. 역사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볼 때, 제1차 세계대전에서 10월 혁명까지 세계자본주의체제가 주기적으로 혁명적 상황에 이를 수밖에 없는 (우리가 보기에는 올바르고 거의 확실한) 역사적인 구조적 위기의 시기에 접어들었다는 전제에서 출발할 때에만 ‘혁명의 현실적 가능성’에서 당 개념을 끌어내는 것이 정당화된다. 반면에, 세계체제로서 자본주의가 아직도 상승국면에 있다고 가정한다면, 이러한 생각은 전적으로 ‘주의주의(主意主義)적인’ 것으로 거부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레닌주의의 전략적 계획에서 결정적인 것은 혁명가들이 비(非)혁명적인 시기에도 해내야 하는 혁명적 선전이 아니라, 가까운 때에 또는 그리 멀지 않은 장래에 일어날 혁명적 행동을 강조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상승기에도 혁명적 행동이 있을 수는 있지만, 보기를 들면, 파리 코뮌처럼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의 상승기에는 혁명적 행동에 꼭 참여하는 일에 집중함으로써 당을 건설한다는 것은 거의 아무런 뜻을 지닐 수 없다.


일반적 ‘노동자정당’(구성원이나 심지어 선거 지지자까지도 가리키는)과 혁명적 노동자정당(또는 이러한 정당의 중핵들) 사이의 차이는 강령이나 객관적인 사회적 역할(객관적으로 혁명적인 모든 대중행동 즉, 부르주아 국가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본질을 공격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모든 도전과 행동 형태들을 진정시키지 않고 촉진하는 역할)에서 뿐만 아니라 이 강령을 수적으로 증가하기만 하는 노동자들에게 제출할 수 있는 적합한 교육방법을 찾아내는 능력에서도 발견된다.


그러나 더 나아가면 문제를 좀 더 선명하게 정식화할 수 있다. 즉 당 기구가 자주화될 위험은 단지 기회주의적이고 개량주의적인 ‘노동자’ 조직에만 한정되는가? 아니면 혁명 강령과 혁명적 실천에 찬성하는 조직을 포함한 모든 조직을 위협하는가? 관료주의의 발전은 심지어 혁명 그룹에서조차도 ‘지도부와 구성원’ 사이의 분업을 포함한 모든 분업의 피할 수 없는 결과 아닌가? 따라서 모든 혁명조직이 일단 초라한 환경을 벗어나면, 조직 발전과 대중투쟁 발전의 일정 시점에서 해방을 위한 노동자 대중투쟁에 브레이크를 걸게 된다고 비난받는 것은 아닌가?


이러한 논의가 나아가는 방향이 옳다고 인정된다면, 한 가지 결론이 어쩔 수 없이 나온다. 즉 노동자계급과 인류사회의 사회주의적 해방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추측컨대, 모든 조직이 어쩔 수 없이 ‘자주화’되고 ‘타락’한다는 것이 딜레마의 한 부분으로 확인될 수밖에 없다면, 딜레마의 다른 부분은 조직되지 않은 모든 노동자들, 부분적으로만 행동에 관여하는 모든 지식인들, 보편적 상품생산에 말려든 모든 사람들이 소부르주아적 ‘허위의식’에 빠지는 경향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총체적 의식과 이론적 충실함을 지향하는 포괄적이고 혁명적인 실천만이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가 심지어 개개의 혁명가들에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것은 집단적으로, 조직적으로 실천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위 주장이 옳다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즉 조직이 있건 없건 간에, 선진 노동자는 정치적 계급의식에 이르지 못하거나 한순간에 잃는다고 비난받아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논의의 진행방향은 시작과 그 최종적 결과를 동일시하기 때문에 틀렸다. 요컨대, 혁명조직조차도 자주화될 위험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정태적이고 운명론적으로 이 자주성은 필연적이라고 추론한다. 이것은 경험적으로나 이론적으로도 증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혁명적 전위조직(과 대부분의 혁명정당까지)도 관료주의적으로 타락할 수 있는 위험 정도는 결국 부르주아사회의 모든 제도들을 괴롭히는 자주화 경향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반대경향에도 좌우되기 때문이다. 늘 (기구가 아니라 정치적 비판을 통해서) 이론에서 눈을 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국적’ 조직에 영향을 받지 않는 국제운동으로 혁명 조직을 통합하는 것, 실천을 통해 중핵들을 끊임없이 선발할 수 있게 하는 실제 계급투쟁과 실제 혁명투쟁에 긴밀하게 참여하는 것, 공장과 대학과 상근 당 관료들 사이의 지속적인 교체를 통해 분업을 없애려고 체계적으로 시도하는 것, 제도적인 보장책들(상근자의 수입 제한, 내부민주주의의 조직적 규범 옹호, 경향과 분파 구성의 자유 등)이 이러한 반대경향이다.


이러한 모순적인 경향들의 결과는 이들 사이의 투쟁에 달려 있다. 이것은 결국 ‘자주적 조직’에 의해서 느슨해진 특정한 사회적 이해관계의 정도와 노동자계급 전위의 정치활동 수준이라는 두 가지 사회적 요인을 통해 결정된다. 후자가 결정적으로 줄어들 때에만 전자가 결정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따라서 위 주장 전체는 지루한 동어반복이나 마찬가지다. 즉 수동성이 늘어나는 시기에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해방을 위해 능동적으로 투쟁할 수 없다. 이것은 선진 노동자의 활동이 증대되는 시기에 혁명조직의 ‘자의성’이 계급 (또는 계급의 선진부위)의 독자적 행동 때문에 제약될 수 있고, 또 제약되어야 한다고 하더라도 혁명조직은 해방을 불러올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가 아님을 전혀 입증하지 못한다. 혁명조직은 혁명을 이루기 위한 도구이다. 또한 광범한 노동자대중의 정치활동이 증대되지 않는다면, 노동계급 혁명은 결코 있을 수 없다.


6. 조직론, 민주집중제, 소비에트민주주의


레닌의 조직론에 반대한 이유는 비정상적으로 확대된 조직의 중앙 집중화가 당내 민주주의의 발전을 막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반대는 흐릿하다. 왜냐하면 레닌주의의 조직원리가 조직을 집단적인 통제 하에서 활동하는 능동적인 구성원으로 제한하는 것인 한, 이것은 실제로 당내 민주주의의 영역을 축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확장시키기 때문이다.


노동자조직이 수적으로 일정 규모를 넘어서면, 기본적으로는 두 가지 조직모델만이 있을 수 있다. 즉 하나는 보수를 지불하는 선거인 클럽(또는 지역적 조직)이다. 이는 오늘날의 독일사민당이나 프랑스공산당의 조직형태에 상응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오직 능동적이고 의식적인 구성원들의 선발에만 토대한 전투부대 조직이다. 물론 첫 번째 모델은 이론상으로는 빈둥거리는 불평가들이나 반대자들에게 일정한 자유를 허용한다. 그러나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 관련해서만 그렇다. 정치에 무관심한 대부분의 대중과 수동적인 구성원은 다른 상황에서는 언제나 동원할 수 있는 선거기반 조직을 위해 일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계급의식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이들 가운데 많은 수는 이 기구에 실질적으로 의존하기까지 한다. - 지방자치체와 행정부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노동자와 고용인들, 노동자조직 자체의 피고용인들 등) 그러나 최소한의 의식만이라도 밝혀야 하는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전투조직은 실제로 독자적으로 사고할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순수한 관료들’이나 순수한 출세주의자들은 직속의 선거인 클럽에서처럼 쉽게 임무를 떠맡지 않는다. 그래서 의견 차이도 실제적인 내용에 따르기보다는 물질적 의존이나 추상적 ‘충성’에 의해 해결될 것이다. 물론 이런 방식으로 구성되는 조직은 조직이 관료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자동적인 보장책이 없다. 그러나 적어도 조직의 관료화를 막는 데 꼭 필요한 조건을 준비한다. 혁명 조직(당의 중핵들이나 당)과 노동자 대중의 관계는 실제로 혁명적 폭발이 일어나자마자 갑자기 변한다. 이 순간에 혁명적이고 의식적인 사회주의자들이 수년 동안 뿌린 씨앗이 싹트기 시작한다. 광범한 대중은 즉시 혁명적 계급의식을 획득할 수 있다. 광범한 대중의 혁명적 주도성은 수많은 혁명적 그룹들의 주도성을 훨씬 앞지를 수 있다.


트로츠키는 [러시아혁명사]에서 혁명의 특정 국면에서 러시아 노동자대중이 볼셰비키당보다도 앞서 있었음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특히 레닌의 4월 테제가 나오기 이전에 러시아혁명의 성격과 목적에 대한 볼셰비키당의 전략적 개념은 실효성이 떨어졌다는 사실과 분리시켜서도 안 된다. 볼셰비키 당은 레닌의 4월 테제에 따라 결정적인 행동을 취할 때까지 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위험을 무릅썼다. 그러나 레닌이 그토록 용이하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단련된 노동자 볼셰비키들이 그를 바로 이런 방향으로 밀어붙였으며, 이들 스스로가 러시아 노동자계급의 강력한 급진화를 반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혁명에서 볼셰비키당 조직의 역할에 대한 객관적이고 포괄적인 견해는 어느 정도 다르게 정식화되어야 한다.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당의 지도적 중핵들이 노동계급독재(소비에트 권력)를 위한 투쟁이라는 트로츠키의 입장을 당이 채택하지 못하게 방해한 보수적 세력임이 여러 차례 입증되었다. 그와 더불어 20년 동안 혁명조직과 혁명 활동으로 단련된 혁명적 노동자 중핵들의 결정체가 이 결정적인 전략을 성공시키는 수단이었음도 명백하게 드러났다. 스탈린주의 관료집단과 ‘레닌주의 당 개념’ 사이의 상호관계를 고안해내고자 한다면, 적어도 이러한 매개를 결정짓는 요소를 감안해야 할 것이다. 스탈린의 승리는 레닌주의 조직론의 결과가 아니라 이 개념의 결정적인 구성요소, 즉 대중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혁명을 통해 단련되고 높은 활동력을 유지하는 광범한 노동자 중핵 층의 존재가 없어진 결과였다. 이러한 요소가 없을 때는 레닌주의 당 개념도 결국 정반대의 것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레닌 자신도 결코 부정치 않을 것이다.


소비에트체제는 혁명의 와중에서, 그리고 혁명 뒤 자신의 독자적 활동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하는 의문에 대해 노동자계급이 발견한 유일 보편적인 해결책임에 틀림없다. 이것은 계급, 그리고 사회일반의 모든 진보적 계층과 근로계층 안의 모든 세력들이 계급 자체 속에 있는 여러 가지 경향들 사이에서 공개적이고 동시적으로 대결하게 한다. 이런 이유에서만 (실제로 노동자대중에 의해서 선출되고, 이런저런 엄선된 권력기구에 의해서 강요되지 않는) 모든 진정한 소비에트체제는 앞에서 강조했던 사회적, 이데올로기적으로 갖가지인 노동자계층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계급의 적에 맞서 혁명을 공동으로 방어하는) 노동자의회는 하나의 구심점으로 의견이 같은 여러 가지 정치적 경향들의 공동전선인 것이다. (같은 식으로, 파업위원회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크게 다른 경향들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때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경향들만을 포괄한다는 한 가지 예외가 있다. 파업파괴자들은 파업위원회에 참여할 수 없다.)


레닌주의 혁명조직 유형과 진정한 소비에트민주주의, 또는 소비에트 권력 사이에는 어떠한 모순도 없다. 이에 반하여 소비에트체제는 혁명전위의 체계적인 조직 활동이 없다면, 개량주의나 준(準)개량주의 관료집단에 의해 쉽게 제압되거나(가령, 1918~1919년 독일의 소비에트체제), 중심적인 정치적 과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정치적 효력을 잃게 될 것이다(이를테면, 1936년 7월~1937년 봄 사이 스페인의 혁명위원회).


소비에트체제가 정당 없이도 기능한다는 가설은 한두 가지 전거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소비에트의 도입은 노동자계급을 하룻밤 사이에 동질화시키고, 모든 이데올로기와 이해관계의 차이를 해소시키며, 전체 노동자계급에게 혁명의 모든 전략적, 전술적 문제들에 대한 ‘혁명적 해결책’을 기계적으로, 저절로 제시한다는 천진난만한 가정에서 비롯된다. 아니면, 광범위하고 말주변이 없는 대중을 통하기보다는 소규모 그룹의 자칭 ‘지도자들’에게 소비에트를 조종할 기회를 주는 것은 단지 핑계일 뿐이라는 가정에서 나온다. 이러한 대중은 혁명의 전략적, 기술적 문제점들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즉 독자적으로 자유롭게 토론하고, 정치적으로 구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유고슬라비아에 있었던 이른바 자주관리체제가 이 같은 경우의 눈에 띄는 보기이다.)


따라서 혁명조직은 획일적일 수 있는 대표체제보다는 소비에트체제에서 노동자대중에게 훨씬 더 큰 정도의 독자적 활동과 자각, 때문에 혁명적 계급의식을 보장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이 목적을 위해서는 당연히 노동자대중의 독자적 행동을 제지하지 않아야 할 뿐만 아니라 자극해야 한다. 소비에트체제에서 가장 완전하게 발달한 것은 바로 이러한 대중의 독자적 주도권이다. 다시 한 번 우리는 비슷한 결론에 이른다. 즉 올바른 혁명전략(다시 말해, 객관적인 역사발전에 대한 올바른 평가)을 세운 레닌주의 조직 개념은 시간, 공간, 의식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확대되는 불연속성 대신에 대중들의 활동, 대중들의 집단적 기억, 대중들이 소화해낸 경험의 집단적 조정자인 것이다.


역사는 이 점과 관련해서도 당 그 자체를 혁명적이라고 부르는 것과 실제로 혁명정당인 것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관료집단이 대중들의 주도권과 활동에 반대할 뿐만 아니라 군사력을 포함하여(1956년 10월-11월의 헝가리나 1968년 8월 이후의 체코슬로바키아를 생각해보라.) 갖은 방법을 써서라도 대중들을 방해하려 한다면, 관료집단이 대중투쟁에서 자생적으로 우러나온 소비에트체제와의 공통언어를 발견하지 못하고 ‘당의 지도적 역할’을 옹호한다는 핑계 아래 이 체제를 질식시키고 파괴하려 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노동자계급 혁명정당에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의 독자적 행동에 철저히 적대적인 특권층의 특정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기구(관료집단)에 관계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혁명정당이 관료집단의 정당으로 타락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지 않고 죽이는 것이 의학에 대한 반론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이 레닌주의 조직 개념에 대한 반론도 아닌 것이다. 레닌주의 조직 개념을 버리고 ‘순수한’ 대중의 자생성으로 나아가는 일체의 시도는 의학에서 엉터리 치료로 되돌아가는 것에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7. 경제주의, 관료주의, 그리고 자생성의 사회학


레닌의 조직 개념이 실제로 노동계급 혁명의 현재적 가능성을 뜻한다고 강조했을 때, 우리는 이미 노동자 계급의식에 대한 레닌주의 이론의 중심적 요소, 즉 자본주의 하에서 혁명 주체를 규정하는 문제를 다룬 셈이다.


맑스와 레닌에게(1914년 이전까지는 이 사실로부터 필연적인 결론을 모두 도출하지 못했지만 룩셈부르크와 트로츠키에게도) 혁명 주체는 사회적 존재의 총체성으로서, 자본주의하에서 노동하고 생각하고 생활하는 잠재적으로만, 주기적으로만 혁명적인 노동자계급이다. 레닌주의 조직론은 혁명 주체의 상태에 대한 이러한 평가에서 곧장 시작한다. 왜냐하면 이렇게 규정된 주체는 모순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음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편으로는 임금노예 상태, 소외된 노동, 모든 인간관계의 물화, 부르주아와 소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영향에 노출되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부르주아 국가기구에 맞서 주기적으로 급진적으로 되는 계급투쟁이나 심지어 공공연한 혁명투쟁까지도 경험한다. 최근 150년 동안의 실제 계급투쟁의 역사가 보여주는 것은 이러한 주기적 파동이다. 지난 백 년 동안 프랑스나 독일노동운동의 역사를 ‘증대되는 수동성’이나 ‘중단되지 않고 계속된 혁명 활동’이라는 정식으로 요약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이것은 분명히 어느 한쪽이 교대로 강조되는 두 요소의 통일이다.


이데올로기적 경향으로서 기회주의와 종파주의는 혁명 주체에 대한 비변증법적인 규정에 이론적으로 가장 깊숙이 뿌리박고 있다. 기회주의자들에게 이 혁명 주체는 일상적 노동자이다. 이들은 모든 점에서 일상적 노동자의 태도를 모방하고, 플레하노프가 매우 적절하게 표현한 것처럼, ‘그의 후진적인 양상을 우상화하는’ 경향이 있다. 만일 노동자들이 작업장에 한정된 문제에만 관심을 가진다면, 이들은 ‘순수한 노동조합주의자들’이다. 만일 노동자들이 호전적 애국주의의 물결에 휘말린다면, 이들은 사회애국주의자나 사회제국주의자가 된다. 노동자들이 냉전적 선전에 굴복한다면, 이들은 “대중은 언제나 올바르다.”고 믿는 냉전의 전사가 된다. 이러한 기회주의의 가장 최근의, 가장 비참한 표현은 강령 - 선거강령은 내버려두자 - 을 결정하는 방식인데, 기회주의는 이미 사회의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서가 아니라 여론조사의 도움을 빌려 강령을 결정하고 있다.


그러나 기회주의는 해결할 수 없는 모순에 이른다. 다행히도 대중의 정서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제법 짧은 시간 안에도 극적으로 변할 수 있다. 오늘은 노동자들이 작업장 내부 문제에만 관심을 두고 있지만, 내일은 정치적 시위로 거리를 메울 것이다. 오늘 이들은 ‘외부의 적’에 맞서 제국주의 조국의 방어를 ‘위해’ 싸울 것이지만, 내일 이들은 전쟁에 신물을 내고 주적인 자신의 지배계급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오늘 이들은 고용주와 협력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만, 내일은 비공인파업을 통해서 고용주에 대항할 것이다. 기회주의의 논리는 일단 부르주아사회에 적응하면, ‘대중’의 태도를 언급하며 변명을 늘어놓는다. 이들이 부르주아사회에 대항하는 행동을 취하는 척하다가 갑자기 번복하는 그 순간 바로 이런 대중에 대한 저항으로 나아간다.


종파주의자들은 정반대의 의미에서 기회주의자들과 꼭 같이 혁명 주체를 단순화한다. 기회주의자들에게 일상적 노동자만이, 즉 부르주아적 관계에 적응하고 동화된 노동자만이 가치가 있다면, 종파주의자들에게는 혁명가처럼 행동하는 ‘이상적’ 노동자만이 가치가 있다. 노동자가 혁명적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는 혁명 주체가 되기를 집어치운 것이다. 즉, 그는 ‘부르주아’로 격하된 것이다. 만일 노동자들이 논쟁하는 가운데 개개의 종파적인 이데올로기를 완벽하게 받아들이기를 주저한다면, 극단적 종파주의자들은, 즉 약간의 초좌익 ‘자생성론자’, 스탈린주의자들과 모택동주의자들은 노동자계급을 심지어 자본가계급과 같게 다루기까지 할 것이다. 


한편의 극단적 객관주의(‘노동자들이 하는 것은 모두 다 혁명적이다’)와 다른 한편의 극단적 주관주의(‘우리의 교의를 받아들이는 자만이 혁명적이거나 노동자계급적이다’)는 모순적 의식을 지닌 대중들에 의해 지도된 거대한 대중투쟁의 객관적으로 혁명적인 성격을 부인함으로써 결국에는 제휴한다. 기회주의적인 객관주의자들에게 이러한 투쟁은 혁명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다음 달에는 대다수가 소리 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 서독사민당이나 드골에 투표할 것’이기 때문이다. 종파주의적 주관주의자들에게는 ‘(우리) 혁명 그룹이 아직도 너무 취약하기 때문에’ 이러한 투쟁은 혁명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 두 경향의 사회적 성격은 쉽게 확인될 수 있다. 이것은 소부르주아 지식인의 성격과 일치한다. 즉, 대부분의 기회주의자들은 대중조직이나 부르주아 국가기구의 노동관료와 제휴한 지식인을 대표하는 반면에, 종파주의자들은 실제 운동의 외곽에 머물면서 방관적 입장에서 단순히 사태를 관찰하거나 탈계급화된 지식인을 대표한다. 두 경우가 다 혁명 주체에 작용을 미치는 모순적이지만 분할되지 않는 객관적 요소와 주관적 요소를 분리시키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단지 기회주의적 실천과 ‘허위의식’을 구체화하는 이상화된 ‘이론’으로 이끌 뿐인 이론과 실천의 분리에 상응한다.


그러나 많은 기회주의자들(특히 노동조합 관료들)과 종파주의적 지식계급의 특징은 혁명적 맑스주의자들이야말로 노동자계급을 ‘복종시키고’ 싶어 하는 소부르주아 지식인들이라고 비난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또한 혁명적 학생운동 내의 토론에서도 일정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관료주의, 경제주의, 자생성(즉, 조직문제에 대한 ‘수공업자적 접근방법’)의 사회학이라는 문제를 보다 자세히 분석해야 한다.


부르주아사회에서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생산과 축적 사이의 중개는 이를테면, 수준이 다를망정 공장의 여러 지점에서 일어난다. ‘지식인’이나 ‘지적인 소부르주아 계급’ 또는 ‘전문 지식인’ 등의 일반적 개념이 뜻한 것은 실제 계급투쟁과 견주어 전혀 다른, 실제로 매우 다양한 중개활동과 일치한다. 본질상 다음의 범주들을 구별할 수 있다(완벽한 분석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1) 생산과정에서 자본과 노동 사이의 성실한 중개자, 즉 자본의 이차적 관리인, 십장(foremen), 계시원(time-keepers), 자본의 이익을 위해 공장 내의 노동규율 유지가 임무인 자들 가운데 공장의 다른 기타 핵심직원

(2) 과학과 기술 혹은 기술과 생산 사이의 중개자 : 실험실 조수, 연구원, 발명가, 기술자, 기획자, 설계기사, 도안사 등. 범주 (1)과 달리 이들 계층은 생산자로부터 잉여가치를 추출하는 과정에 참여하지 않는다. 이들은 생산 자체의 물질적 과정에 참여하기 때문에 착취자가 아니라 잉여가치의 생산자이다.

(3) 생산과 잉여가치 실현 사이의 중개자 : 광고책임자와 광고회사, 시장조사기관, 분배 부문에 종사하는 간부나 과학자, 마케팅 전문가 등

(4) 노동력 상품의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의 중개자 : 특히 노동조합의 관료들, 넓은 의미에서 노동운동의 관료주의화된 대중조직의 모든 관료들.

(5) 상부구조 영역에서의 자본과 노동 사이의 중개자, 이데올로기 생산자(즉, 이데올로기 생산에 전념하는 자) : 부르주아 정치인(‘여론 형성자’), 소위 인문과학을 연구하는 부르주아 교수, 저널리스트, 일부 예술가들 등.

(6) 과학과 노동자계급 사이의 중개자이자 직업적으로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생산에는 편입되지 않은 이론적 생산자. 이들은 이데올로기 생산에 물질적으로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르주아적 관계 비판에 종사할 수 있다.


부분적으로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범주에 포함되는 일곱 번째 그룹을 추가할 수도 있다. 전통적 안정적 부르주아사회에서 직업으로서 교직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무제한적인 지배와 모든 전문적 강의가 갖는 대체로 추상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성격이라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범주 (5)에 속한다. 그러나 신자본주의 고등학교나 대학에서 구조적 위기가 증가하면서 객관적 기준의 변화가 생긴다. 한편으로, 자본주의의 일반적 위기는 신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일반적 위기를 촉진한다. 이것은 점점 더 이의를 제기하게 한다. 다른 한편으로, 강의의 추상적이고 이데올로기적 주입으로서 역할은 적어지고, 미래의 지적 노동자들(범주 (2)와 (3))이 생산과정으로 편입되는 직접적이고 전문 기술자적 준비 작업으로서 역할은 증대한다. 이것은 강의 내용을 개인의 소외에 대한 재인식, 관련 분야(와 사회적 비판 일반에 대해서까지도)의 사회적 비판에 점점 더 의존하게 한다.


이제 어느 부류의 지식인이 노동자 계급의식의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인지 분명해졌다. 특히 (3)(4)(5) 그룹이 그렇다.((1) 그룹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전혀 없다. 어쨌든 이 그룹은 일반적으로 노동자 조직과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계급의 주도권과 자신감을 위협하는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민주주의 대중조직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났으며, 오늘날에는 이미 모스크바 지향적인 서구의 공산주의 대중조직에서 부분적으로 나타난 것처럼, (4)와 (5) 그룹의 공생 내지는 혼합이다.


반면에, (2)와 (6) 그룹만이 노동자계급과 혁명조직의 영향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 왜냐하면 이 그룹은 부르주아사회를 가차 없이 비판하고, 성공적으로 전복시키며, 더욱이 생산자연합에 의한 생산수단의 성공적인 접수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지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조직과 (2)와 (6) 그룹 지식인과의 결합 증대를 맹렬히 비난하는 자들은 노동자계급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3), (4), (5) 그룹을 객관적으로 돕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데올로기 투쟁이 수반되지 않은 계급투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요컨대, 어느 이데올로기가 노동자계급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는가 즉, 좀 더 완전하게 말하면, 노동자들 사이에서 발전할 이데올로기는 부르주아와 소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인가 맑스주의의 과학적 이론인가 여부를 결정하는 문제이다. 투쟁 중인 노동자계급 내에 미치는 ‘모든 외부의 지적 영향’에 반대하는 자들은 누구나 (1), (3), (4), (5) 그룹이 노동자계급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부르주아사회와 자본주의 경제의 전체 메커니즘을 통해 노동자계급에게 영구히, 그리고 끊임없이 작용한다는 사실, 그리고 초좌익 ‘자생성론자들’은 이러한 과정을 끝내기 위해 임의로 쓸 수 있는 만병통치약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무시하거나 제쳐놓는다. 노동자계급에 맑스주의 지식인이 미치는 영향을 격렬하게 비난하는 것은 단지 부르주아 지식인의 영향력 확대를 아무런 반대 없이 허용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더욱 나쁜 것은 멘셰비키와 ‘자생성론자들’이다. 이들은 혁명조직의 형성과 직업적 노동자계급 혁명가들의 교육을 방해함으로써 육체노동과 지적 노동의 구분 즉, 지식인에 대한 노동자들의 정신적 복종과 노동자조직의 상당히 빠른 관료주의화가 영속되는 것을 객관적으로 돕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자본주의 생산과정에 계속 머물러 있는 노동자는 대개 이론을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없으며, 따라서 ‘소부르주아 전문가들’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적어도 가장 선진적인 노동자들의 지적 해방을 위해, 그리고 공장에서 노동자들의 간헐적인 이동을 통한 노동자운동 자체 안에서 분업에 대한 최초의 승리를 위해 혁명조직 안에서 결정적인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이것은 아직 자생성론의 사회학에 대한 최종 결론이 아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자문해야 한다. 즉 지식인에 대한 ‘반감’과 ‘불신’이 노동자계급의 어느 층에서 가장 영향을 미칠 것인가? 분명히 이 계층의 사회적․경제적 생활양식은 이들을 지적 노동과 실제 충돌에 아주 확연히 노출시킨다. 대체로 이 계층은 기술발전 때문에 위협 받는 중소규모의 공장노동자들, 개인적인 노력을 통해서 자신을 대중과 구별 짓는 독학의 노동자들, 관료주의 조직의 정상까지 올라간 노동자들, 낮은 교육과 문화적 수준 때문에 지적 노동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따라서 가장 커다란 불신과 적대감을 가지고 지적 노동을 대하는 노동자들이다. 바꿔 말하면, 조직문제에 대한 경제주의, 자생성론, ‘수공업자적 접근방법’과 노동자계급 안의 과학에 대한 적대감의 사회적 기반은 노동자계급의 수공업자 계층이다.


반면에, 대공장과 도시의 노동자, 기술발전의 첨단 산업부문에 종사하는 노동자, 지식욕이 강한 노동자, 기술적․과학적 발전에 더욱 더 정통한 노동자와 공장과 국가 모두에서 권력 장악을 계획하는 더욱 더 대담한 노동자들은 혁명적 이론가와 혁명조직에 꼭 필요한 역할을 객관적으로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노동운동에서 자생적 경향들은 늘 그렇지는 않더라도 많은 경우 이러한 사회적 기반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것은 제1차 세계대전 전 라틴 국가들의 무정부주의적 조합주의가 특히 그랬다. 또한 대도시 공장에서는 볼셰비키주의에 철저히 패배했지만 대체로 소도시 광산촌이나 남부 러시아의 유전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노동자 기반을 마련했던 멘셰비키주의도 그랬다. 그러나 제3의 산업혁명 시기인 오늘날 ‘노동자들의 자주성’을 보장한다는 핑계 아래 이러한 수공업자적인 접근방법을 부활시키려 한다면, 과거와 같은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진보적이고 잠재적으로 혁명적인 노동자계급을 분해하고,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지속적인 영향 아래 놓여 있는 반(半)숙련층과 관료주의화된 부위를 격려하는 결과를 낳게 될 뿐이다.


8. 과학적 지식인, 사회과학, 노동자 계급의식


제3의 산업혁명이 낳은 지적 노동의 생산과정으로 대대적인 재이입(이것은 마르크스가 예견했으며, 그 기반은 제2의 산업혁명을 통해 이미 놓여 있었다.)은 훨씬 더 광범위한 과학적 지식인 계층이 직접적인 잉여가치의 생산과정에서 배제되어 잉여가치의 직간접적 소비자들로 전환됨으로써 잃어버렸던 소외감을 다시 인식하게 되는 전제조건을 창출했다. 과학적 지식인 계층도 부르주아사회에 널리 퍼진 소외 때문에 맥을 못 추고 있다. 이것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학생반란뿐만 아니라 수가 늘고 있는 과학자와 기술자들을 혁명운동에 참가시킬 수 있는 가능성의 물질적 밑바탕이 된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고전적인 사회주의운동에의 지식인 참여는 대체로 쇠퇴하는 경향이었다. 처음에는 상당수의 지식인이 운동에 참여했지만 노동자계급의 조직적인 대중운동이 강해질수록 점점 더 작아졌다. 트로츠키는 1910년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막스 아들러와 논쟁에서 이 과정의 원인이 대체로 물질적임을 폭로했다. 즉 대자본가계급과 부르주아국가에 대한 지식인의 사회적 의존, 따라서 이들의 계급이해에 봉사하는 이데올로기적 공명(共鳴), 대당세력과 경쟁하는, ‘대응사회’를 조직하는 노동자운동의 무능 등이 그것이다. 트로츠키는 이것들이 노동계급혁명이 임박한 혁명적 시기에는 매우 빠르게 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트로츠키, 「지식인과 사회주의」 가운데에서]


그러나 이런 올바른 전제로부터 트로츠키는 이미 그릇된 전략적 결론을 도출한 상태였다. 보기를 들면, 그는 레닌이 1908~09년에 학생운동(승리한 반(反)혁명이 한창일 때 재출현했다.)에 부여했던 중요성을 알지 못했다. 레닌은 학생운동을 1905년 혁명 뒤에 일어난 혁명적 대중운동(1912년에 나타난)의 새로운 고양에 대한 장애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학생운동의 전반적인 사회적 특성, 즉 종파주의 정신, 지식인 특유의 개인주의와 이데올로기적 물신주의(fetishism)”가 확산된다면, 이는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의 지도적인 혁명적 지식인들의 ‘책임’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나중에 트로츠키도 인정했듯이, 그때 그는 예전부터 전개된 볼셰비키와 멘셰비키의 투쟁이 확대된 것에 지나지 않았던 볼셰비키와 청산주의자들 사이의 분파투쟁이 지니는 정치적․사회적 뜻을 너무 얕잡아 보았다. 역사는 이 투쟁이 ‘지적인 종파주의’의 소산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을 뿐만 아니라 소부르주아적 개량주의적 의식에서부터 사회주의적 혁명적 의식이 분리되었음을 보여주었다.


러시아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계급정당 건설에 혁명적 지식인이 참여한 것은 어떠한 사회적 근원도 없는 순수한 개인적 선택의 결과일 뿐이었다. 그러나 10월 혁명 뒤에 이들은 본질적으로 노동계급 혁명에 반감을 품게 되었다. 왜냐하면 전문 지식인 대중은 혁명진영으로 넘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이들은 경제적 생산과 사회적 조직 방식을 대대적으로 사보타쥬했다. 그 다음 이들의 협력은 높은 임금을 통해 ‘사야’만 했다. 결국 이들은 노동계급혁명의 관료주의화와 타락을 배후에서 추동하는 세력으로 탈바꿈했다. 오늘날에는 생산의 물적 과정에서 차지하는 전문 지식인(특히 앞의 범주 (2))의 위치가 결정적으로 바뀌었으며, 이들도 서서히 임금노동자계급의 한 부문으로 전화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혁명과 사회를 다시 조직하는 과정에 대규모로 참여할 가능성은 과거보다 훨씬 더 단단한 토대 위에 있다. 엥겔스는 이미 전문 지식인이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에서 역사적으로 결정적인 역할을 해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생산수단을 접수하고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전문적으로 훈련된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이런 사람들이 없다. …… 나는 당의 동지들이 공장 경영과 국가의 필수품 조달을 맡길 수 있는 젊은 기술자, 의사, 법률가, 교사를 앞으로 8-10년 사이에 충분히 충원할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우리의 권력 획득은 아주 자연스럽고 비교적 부드럽게 수행될 것이다. 반면에, 우리가 전쟁을 통해서 조급하게 권력을 장악한다면, 전문가들은 우리의 주요한 반대자들이 될 것이며, 우리를 속이고 배반하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이들에게 테러를 행사해야 할 것이고, 이들은 우리에게 거짓말만 늘어놓을 것이다.[아우구스트 베벨,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서신 교환」 가운데에서]


물론 제3의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오늘날의 노동자계급은 1890년대의 노동자계급에 비해서 훨씬 더 우수한 자격을 갖추고 있으며, 엥겔스의 시대보다 공장을 직접 운영할 훨씬 더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다는 점을 덧붙여야만 한다. 그러나 결국 광범한 대중들이 ‘전문가들’(1918년에 레닌은 이들이 관련된 문제에 대해 너무 많은 환상을 가졌었다.)에게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기술적 능력이다. 전문 지식인과 산업 노동자계급의 결합, 혁명적 지식인의 혁명정당에의 참여가 증가할 때에만 이러한 통제는 용이해질 수 있다.


생산과 노동의 객관적인 사회화와 사적 전유 사이의 모순이 심화될수록(즉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위기가 심화될수록),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모순의 새롭고 더 첨예한 형태를 경험하고 있는데, 이것이 1968년 프랑스 5월 혁명과 1969년 이탈리아 대중투쟁의 밑바탕에 놓여 있다.) 신자본주의가 노동자계급의 소비수준을 상승시킴으로써 수명을 연장시키려 할수록, 과학은 자동화와 상품생산의 거대한 증가라는 두 가지 점에서 점점 더 대중들에게 혁명적이고 생산적인 힘이 될 것이다. 자동화와 상품생산의 거대한 증가로 과학은 일반화된 상품관계에 기반하고 있는 자본의 생산과 분배과정에서의 위기를 증가시킨다. 뿐만 아니라 과학은 노동자들이 이반되어있던 의식을 되찾아 소외를 끝장낼 수 있게 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일상적인 신화와 가면을 벗겨냄으로써 대중들의 혁명의식 증대를 낳는다. 오늘날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계급의식 획득을 제지하고 있는 결정적인 장벽은 대중들의 궁핍이나 이들의 운신 폭이 극도로 좁다는데 있다기보다는 부르주아와 소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소비와 신비화가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는데 있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괄목할만한 비판적 사회과학의 목적은 대중들이 계급의식을 새롭게 깨닫는데 있어서 진정으로 혁명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노동자대중과의 구체적인 결합을 필요로 한다. 그 필요조건은 오직 선진 노동자와 혁명조직이 결합되는 것뿐이다. 또한 이것은 혁명적․과학적 지식인이 초라하게 임금인상투쟁 지지로 제한하는 온건한 대중주의적 자기학대(masochism)에 따라 ‘대중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각성되고 비판적인 층에게 파편화된 의식 상태로 인해 이들 스스로 이룰 수 없는 것 즉, 은폐된 착취의 추문과 어떤 것인지 모르고 있는 위장된 억압을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과학적 지식과 인식을 상기시켜 줄 것을 요구한다.


9. 역사교육(pedagogy)과 계급의식의 전달


레닌주의 조직론이 혁명의 현재적 가능성과 혁명 주체라는 문제에 답하려는 시도로 이해된다면, 이번에 이 이론은 곧바로 역사교육이라는 문제, 즉 잠재적인 계급의식을 실제적인 계급의식으로, 노동조합적인 의식을 정치적․혁명적 의식으로 전화시키는 문제를 들이민다. 이 문제는 앞에서 서술했던 것처럼, 노동자계급을 노동자대중, 선진 노동자, 조직된 혁명중핵으로 분류한 관점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노동자계급의 증대되는 계급의식을 빨아들이려면 각 계층에 대한 고유한 교육방법과 습득과정이 꼭 필요하고, 계급 전체, 그리고 이론적 생산 부문과 특정한 의사소통 형태가 있어야 한다. 레닌이 염두에 두었던 혁명적 전위정당의 역사적 역할은 이러한 세 가지 교육형태가 함께 표현되는 형태로 요약될 수 있다.


대중은 행동을 통해서만 배운다. 이들에게 선전을 통해서 혁명의식을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시지프스에 어울리는 헛된 노력이다. 그러나 대중이 행동을 통해서만 배운다고 하더라도 모든 행동이 반드시 혁명적 계급의식의 대거 획득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질서의 틀 안에서 완벽히 얻어질 수 있는 즉각적으로 실현가능한 경제적, 정치적 목표를 둘러싼 행동은 혁명적 계급의식을 낳지 않는다. 이것은 19세기말과 20세기 초 엥겔스를 포함한 ‘낙관적인’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커다란 환상 가운데 하나였다. 이들은 선거투쟁의 부분적 승리와 파업에서부터 혁명적 의식과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전투성의 증대로 나아가는 똑바른 길이 있다고 믿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틀렸음이 입증되었다. 이러한 부분적 승리는 분명히 노동자계급대중 일반의 자신감과 전투성을 강화시키는데서 중요하고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무정부주의자들은 이러한 부분적 투쟁을 즉시 거부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나 이들은 노동자대중에게 혁명투쟁을 준비시키지 않았다. 혁명투쟁의 경험이 부족했던 독일 노동자계급과 이런 경험이 있었던 러시아 노동자계급은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 의식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이것은 러시아와 독일의 1917~19년 혁명이 다른 결과를 낳는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했다.


대중행동의 목표는 대체로 즉각적인 필요의 충족이기 때문에 이러한 즉각적인 필요를 자본주의 사회질서의 틀 내에서는 객관적으로 획득될 수 없거나 선취(先取)될 수 없는 요구, 그리고 권력문제를 둘러싼 결정적인 두 사회계급 간의 세력 검증에 이르게 되는 객관적으로 혁명적인 역학을 보여주는 요구와 결합시키는 것이 혁명 전략의 중요한 측면이 된다. 이것은 레닌의 노력으로 제4차 대회에서 코민테른의 강령에 편입되었으며, 나중에 트로츠키에 의해 제4 인터내셔널 강령의 주요 내용으로 정교화된 이행기 요구 전략이다.


광범한 대중의 혁명적 계급의식의 발전은 이들이 자본주의 틀 내의 부분적 요구 획득에만 국한되지 않는 투쟁 경험을 축적할 때에만 가능하다. 이러한 요구를 대중투쟁에 점진적으로 주입하는 것은 대중과 긴밀히 결합되고, 공장에서 이러한 요구(통상 자생적으로가 아니라 계급의 일상적 경험으로부터 비롯된다)를 퍼뜨리고 선전하는 광범위한 선진 노동자층의 노력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선진 노동자는 이러한 요구의 실현이 대규모 파업, 시위, 선동적 캠페인 등의 실제적 목표가 되게 할 주관적, 객관적 조건이 유리하게 수렴될 때까지 대중들과의 다양한 논쟁을 통해서 실험해보고, 선동을 통해 확산시킨다.


광범한 대중의 혁명적 계급의식은 오직 객관적으로 혁명적인 투쟁 경험에서만 발전하지만 선진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생활, 일, 투쟁 일반의 경험에서 나온다. 이러한 경험이 꼭 혁명적이어야만 하지는 않는다. 계급갈등의 일상적 경험으로부터 이 선진 노동자들은 계급연대, 계급행동, 계급조직의 필요성에 대한 기본적인 결론을 끌어낸다. 이러한 행동과 조직을 통한 계획적, 조직적 형태는 객관적 조건과 구체적 경험에만 의지하는 것과는 크게 다를 것이다. 그러나 선진 노동자들의 생활, 일, 투쟁의 경험은 기존사회를 철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개혁만 하려는 활동의 불완전함을 이해하게 되는 문턱까지 이들을 이끈다.


혁명전위의 활동은 선진 노동자의 계급의식이 이 문턱을 넘어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촉매 역할은 자동적으로 혹은 객관적 조건과 무관하게 수행될 수도 없다. 혁명전위 스스로가 이 임무를 감당할 수 있을 때에만 즉, 전위의 이론적, 선전적, 그리고 저술활동의 내용이 선진 노동자들의 요구와 일치할 경우에만, 그리고 이러한 활동 형태가 교육의 원칙(비타협적 체계화를 막는)을 무시하지 않을 경우에만 촉매 역할을 다할 수 있다. 동시에 이런 종류의 활동은 실천적 성격의 활동과 정치적 전망과 결부되어야 하며, 따라서 혁명 전략과 이를 제안하는 조직 모두에 대한 신뢰를 높인다.


계급투쟁이 가라앉고, 노동자계급의 자신감이 일시적으로 떨어지고, 적대계급의 안정성이 일시적으로 보증되는 시기에 혁명전위의 활동이 선진 노동자들의 가장 광범위한 층 사이에서 혁명적 계급의식을 촉매 하는 임무를 완벽하게 감당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은 자신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 계급투쟁이 쇠퇴하는 시기에도 ‘올바른 전술’이나 ‘올바른 노선’을 옹호하는 것만이 혁명세력을 기적적으로 성장시키는데 충분하다고 믿는 것은 유물변증법이 아니라 부르주아 합리주의에서 비롯된 환상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이 환상은 혁명운동 내부의 가장 큰 분열을 불어온다. 왜냐하면 분열론자들의 조직적 종파주의는 ‘올바른 전술의 적용’은 이미 조직화된 혁명가들보다는 이제껏 언급되지 않은 주변 사람을 더 많이 획득할 수 있다는 천진난만한 견해에 따르기 때문이다. 객관적 조건이 계속 불리하게 진행될 때, 이러한 이유로 분열하는 것은 통상 처음부터 ‘잘못된 전술’을 채택한 것보다도 훨씬 더 떨어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이것은 객관적 사정이 불리할 때에는 선진 노동자들 사이에서 혁명전위의 활동이 무익하거나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혁명전위의 활동이 즉각적인 성공을 불러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렇지만 이것은 계급투쟁이 또 다시 개시되는 전환기를 위한 엄청나게 중요하고 심지어 결정적인 대비이기도 하다!


혁명투쟁의 경험이 없는 광범한 대중이 혁명적 계급의식을 발전시킬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행기 요구에 대해서 들어본 적도 없는 선진 노동자들은 이를 다음 계급투쟁의 파동에 끼워 넣을 수 없다. 꾸준하고 상세한 고려에 따라 혁명적 전위조직에 의해 실행된 끈기 있고 꾸준한 대비(때로는 몇 십 년이 걸리는)는 ‘계급의 자연스러운 지도자들’이 아직 적대세력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주저하다가도 대규모 파업이나 시위가 일어나는 가운데 갑자기 노동자통제 요구를 지지하며 이를 투쟁의 전면에 내미는 터무니없는 짓을 못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혁명적 전위조직이 선진 노동자와 급진 지식인들에게 광범위한 대중투쟁이 닥친 요구의 수준을 넘어 이행기 요구로 확대되어야 함을 확신시킬 수 있기 위해서는 레닌과 트로츠키에게서 추려낸 이행기 요구 목록을 그저 암기하는 것으로는 모자라다. 이원적인 이해와 양면적인 습득방법을 배워야만 한다. 한편으로는, 1세기 넘어 이루어진 혁명적 계급투쟁의 역사에서 국제노동자계급의 주요 경험들을 흡수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의 국내외의 전반적인 사회현실에 대한 지속적이고 진지한 분석을 해야 한다. 이것만이 가까운 장래 현실에 역사의 교훈을 적용할 수 있게 한다. 맑스주의 인식론에 근거하자면, 오직 실천만이 궁극적으로 현실에 대한 이론의 실제적 적합성을 측정하는 기준을 제공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국제적인 실천은 맑스주의 국제 분석의 절대적인 필요조건이며, 국제조직은 이러한 실천의 절대적인 필요조건이다.


1848년 혁명으로부터 현재까지의 국제노동자운동의 역사적 경험 전체를 진지하게 흡수하지 못했다면, 과학적 정밀성으로 현재의 신자본주의사회의 모순(개별국가들 내의 모순뿐만 아니라 세계적 규모의 모순)이나 노동자 계급의식의 형성을 수반하는 구체적인 모순 혹은 전(前)혁명적 상황에 이를 수 있는 투쟁의 종류 등을 결정할 수 없다. 역사는 사회과학에게는 유일한 실험실이다. 역사의 교훈을 흡수하지 않으면, 오늘날의 사이비 혁명적 맑스주의는 해부 실험실 안에 발을 들여놓지 않는 ‘의과대생’보다 나을 것이 없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즉, 새로 나타나고 있는 혁명운동을 ‘과거와 분리된 것’으로 보고자 하는 모든 시도들은 국제노동자운동 내의 이러한 분화의 사회정치적 성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분화에 포함된 불가피한 개인적․우연적 요소를 논외로 한다면, 노동계급혁명과 혁명적 계급투쟁의 전략과 전술에 관한 근본적 문제를 다룬 제1 인터내셔널 창립 이후의 국제노동자운동 안의 주요한 논쟁들(맑스주의와 무정부주의, 볼셰비키주의와 멘셰비키주의, 국제주의와 사회애국주의, 노동계급독재의 옹호자와 부르주아민주주의의 옹호자, 트로츠키주의와 스탈린주의, 모택동주의와 흐루시초프주의 사이의 논쟁들)의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기본적 문제들은 자본주의의 본성 자체, 노동자계급과 혁명투쟁의 산물이다. 따라서 전 세계적 규모의 무계급사회를 건설하는 문제가 실천적 견지에서 해결되지 않는 한, 긴급한 문제는 계속될 것이다. 아무리 수완이 좋더라도 ‘기지’가 없으면, 아무리 아량이 있더라도 ‘우호관계’가 없으면, 결국은 각각의 새로운 세대의 혁명가들이 직면하는 이러한 문제들이 실천 자체에서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토론을 회피하려는 모든 시도들은 이 문제들을 방법론적이고 과학적인 방식으로 제기하고, 분석하고, 해결하는 대신에 계획도 없고 충분한 훈련과 지식도 없이 닥치는 대로 비체계적으로 다룬다.


그러나 맑스주의 이론의 역사적 본질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일지라도 그 자체만으로는 선진 노동자와 급진 지식인들에게 혁명적 계급의식을 전달하는 필요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여기에 더해 현재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이 요구된다. 이것이 없다면 이론이 노동자계급의 즉각적인 투쟁 역량이나 신자본주의 생산양식과 부르주아사회의 ‘약한 고리’를 밝혀내는 수단을 제공할 수 없다. 즉, 적절한 이행기 요구들(이를 제기하는 적절한 교육적 접근방법도)을 정식화하는 수단을 제공할 수 없다. 현재에 대한 진지하고 완벽한 사회적, 비판적 분석과 노동자운동의 역사적 교훈에 대한 이해의 결합만이 혁명전위의 과업에 대한 이론적 성취를 가능하게 하는 효과적 수단을 만들어낼 수 있다.


광범한 대중의 혁명투쟁 경험이 없다면 이들의 혁명적 계급의식은 있을 수 없다. 이행기 요구를 노동자투쟁에 주입하는 선진 노동자들의 의식적 개입이 없다면, 광범한 대중의 혁명투쟁 경험은 거의 있을 수 없다. 혁명전위가 이행기 요구를 전파시키지 않는다면, 선진 노동자들이 진정으로 반(反)자본주의적인 의미의 대중투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 혁명 강령이 없다면, 혁명적 노동자운동의 역사에 대한 철저한 연구가 없다면, 이 연구를 현재에 적용시킬 수 없다면, 그리고 적어도 몇몇 부문과 상황에서 성공적으로 지도적 역할을 수행한 혁명전위의 능력에 대한 실천적 증거가 없다면, 선진 노동자들이 혁명조직의 필요성을 확신할 가능성은 없다. 따라서 객관적 상황에 대한 적절한 이행기 요구가 선진 노동자들에 의해 성취될 수 있는 가능성(아니면 가능성 같지도 않은 것일 수밖에 없는)은 없다. 이렇게 계급의식 형성에서의 다양한 요소들은 서로 얽혀 있으며, 레닌주의 조직 개념의 시의적절성을 지지해준다.


혁명정당을 건설하는 과정은 행동을 통한 대중의 습득, 실천 경험을 통한 선진 노동자의 습득, 혁명적 이론과 실천의 전달을 통한 혁명중핵의 습득이 함께 표현되는 것을 통해 통일성을 획득한다. 이 과정은 습득과 교육 사이의 끊임없는 상호관계이다. 심지어 이론적 인식의 결과, 일체의 오만을 벗어던질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혁명중핵들조차도 그렇다. 이러한 능력은 이론은 현실 계급투쟁과 관련을 통해서만, 그리고 광범한 노동자계층의 잠재적으로 혁명적인 계급의식을 실제적인 혁명적 계급의식으로 전화시키는 능력에 의해서만 그 존재권리가 입증된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에서 생긴다. 교육자는 스스로 교육되어야 한다는 마르크스의 유명한 발언은 정확히 이것을 뜻한다. 이것은 의식적인 사회의 혁명적 전환은 혁명적 교육 없이도 가능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또한 “환경의 변화와 일치하는 자기 자신의 변화는 혁명 활동을 통해서이다.”라는 맑스주의 명제에서 더 완벽하게 표현된다.


옮긴이 : 정민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