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실천연구소

[특집] 신자유주의의 본질과 모순 본문

실천지 (2007년)/2007년 4월호

[특집] 신자유주의의 본질과 모순

사회실천연구소 2014. 11. 7. 17:00

신자유주의의 본질과 모순(The Nature and Contradictions of Neoliberalism)1)

제라드 뒤메닐과 도미니크 레비(Gérard Duménil and Dominique Lévy) 


1970년대에 갑자기 자본주의를 지배하는 작동 법칙이 바뀌었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1970년대 이래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이 얻은 경제적 성과의 저하, 그리고 이를 막으려고 채택된 일련의 초기 정책들의 실패와 관련 속에서 알 수 있다. 노동 생산성의 증가가 점점 둔해지고, 축적률과 성장률이 떨어졌으며, 실업률이 높아졌고 인플레이션과 거시적 불안정성(호황과 경기후퇴)이 늘어났다. 이는 대체로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일어난 구조적 공황의 윤곽을 이룬다. 처음에는 1960년대에 호황을 불러왔던 케인즈주의 정책들이 다시 시도되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이 더욱 빠르게 늘어나자, 케인즈주의 정책은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와 함께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들이 겪는 곤경이 점점 더 커지자, 자본주의 국가들의 지배계급은 그들의 근본적인 정치적 관심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변화들은 1970년대 말에 이루어진 정책이 급격히 선회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냈다. 여기에서 중요한 요소가 바로 1979년의 통화정책 변화이다. 그것은 우리가 1979년의 쿠데타라고 한 카터 행정부가 마지막 해에 이자율을 갑작스럽게 상향조정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영국에서는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가, 미국에서는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이 당선되면서 새로운 경로는 금방 뚜렷해졌다. 새로운 경로란 좀 더 나은 생활수준과 노동조건을 위한 노동자들의 주장에 대한 억압, 복지국가에 대한 공격, 실업의 수용, (특히 금융 활동에 대한) 탈규제화 등이다. 좁은 뜻에서 ‘정책’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본주의의 작동에 대한 이 새로운 법칙 체계는 오늘날 새로운 방식으로 자유주의로 되돌아가는 것을 뜻하는 신자유주의라고 알려져 있다. 


신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가동된 지 20년이다. 우리는 그 성과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실업과 관련해서 신자유주의는 너무 많은 비용을 썼다. 처음에 실업은 구조적 공황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생각되었다. 미국에서 실업률은 1980년대 중반에 가장 높았다. 유럽에서 실업은 더욱 오랫동안 영향을 끼쳤다. 제3세계는 잇달아 일어난 부채공황 때문에 황폐화되었다. 심지어 미국에서도 통화․금융 제도들이 흔들렸다. 대규모 통화․금융 공황은 새로이 세계 경제에 금융 불안정을 예고했다. 투기는 금융 붕괴의 위협을 낳았으며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의 주식시장에서 늘었다. 그러나 오늘날 인플레이션은 떨어졌다. 미국에서 실업률은 점점 낮아져서 마침내 1960년대 수준으로 회복되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유럽에서도 미국에서 일어난 것과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경기가 후퇴할 것이라고 하는 위협이 있긴 하지만, 21세기로 넘어올 때까지도 성장은 미국에서 자부심의 대상이었고 다른 나라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투기 거품은 줄어들고 있으며 대규모 붕괴의 위험은 아직까지 구체화되지 않은 상태이다.


여러 나라들 특히 미국, 유럽, 일본과 주변국들이 얻은 성과가 아주 다르다는 것 때문에, 신자유주의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훨씬 더 복잡해진다. 왜 실업은 미국보다 유럽에서 더 심했는가. 1990년대 후반 미국 경제의 성장에서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신자유주의의 효력인가, 미국의 헤게모니인가. 또는 질문을 달리 해 본다면, 미국의 ‘성과’는 좀 더 많은 국가들에도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가. 


이 글은 신자유주의, 즉 미국의 헤게모니 하의 신자유주의를 다룬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신자유주의가 어떠한 위치를 점하는가. 신자유주의가 자본주의에 부과한 새로운 법칙들이 지닌 사회적 함의는 무엇인가. 신자유주의는 얼마나 많은 사회적 비용을 필요로 하고 얼마나 커다란 위험을 낳았는가. 신자유주의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이미 다른 곳에서 신자유주의의 비용과 편익을 논했다.2) 신자유주의가 지닌 생명력은 분명히 가장 다루기 힘든 주제이다. 우리가 신자유주의 안에서 신자유주의가 지닌 경제적․정치적 생명력을 없애버릴 수 있을 내적 모순을 찾아내는 것은 가능할까. 달리 말하면, 자본주의의 새로운 질서는 어떤 본질을 갖고 있는가. 신자유주의는 공황과 노동운동의 패배 때문에 가능했던 단순한 이행인가, 아니면 새로운 시대가 찾아온 것인가. 이와 같은 질문들은 케인즈주의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케인즈주의 시대는 대공황이 끝난 뒤에 찾아온 하나의 예외적 시기인가, 또는 또 다른 자본주의의 가능한 형태인가, 아니면 케인즈주의 시대는 자본주의가 그 자체의 법칙들을 넘어서는 첫 걸음인가. 따라서 이 글에서는 케인즈주의와 신자유주의라는 두 측면에서 자본주의가 어떻게 정의될 것인지의 문제도 제기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글은 광범위하고 아주 야심찬 논쟁에 대한 기고문으로 이해되어야 마땅하다. 여기에서 두 가지 유형의 쟁점이 제기될 것이다. 글의 앞부분은 자본주의의 동학과 시대구분,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해석 문제를 다룰 것이다. 우리는 역사 유물론이라고 하는 맑스주의적 역사 분석(생산관계와 생산력, 계급과 계급투쟁, 국가)의 관점과 [자본]에서 나타나는 맑스의 경제 분석(역사적 경향, 공황, 통화와 금융 등)의 시각을 채택한다. 이 연구에서 전제하는 자본주의의 시대구분은 세 가지 분석틀을 결합시킨다. 그것은 (1) 생산관계(생산수단의 소유와 통제)의 변형과 (2) 기술과 분배의 역사적 경향(특히 이윤율의 추세), 그리고 (3) 특정한 권력지형의 계승(지배계급의 여러 분파들의 지배와 다른 계급들과 타협)이다.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하나의 특정한 권력지형, 한동안 금융을 통제한 다음 자본가가 권력을 다시 장악하려는 것, 즉 다른 모든 계급들(생산직 노동자들은 물론, 관리직, 사무직 직원들)에게 부과되는 새로운 규율, 그리고 새로운 사회적 타협을 이루려는 시도라고 폭넓게 정의할 것이다.


두 번째, 신자유주의 질서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을 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이는 신자유주의가 갖는 다음과 같은 능력들에 달려있다. 그것은 (1) 실질적으로든 가상적으로든 폭넓은 사회계층들을 소수만의 번영과 연결시키면서 불평등이 차츰 늘어나는 가운데 새로운 사회적 타협을 수립하고 (2) 다양한 형태의 위기들, 즉 경기후퇴, 통화․금융 공황을 피하면서 경제의 안정을 보장하며, (3) 상당한 축적과 성장을 보장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 가운데 마지막 것은 이윤이 주로 이자와 배당의 형태로 부유한 가계들에 분배되어 비금융부문에 재투자되지 않는 경제체제 안에서도 충분한 축적을 달성하는 능력, 이 새로운 사회질서의 이점들을 미국 밖으로 퍼뜨리거나 또는 최소한 이 이점들이 전적으로 미국의 지구적 헤게모니의 결과는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능력, 점진적인 디플레이션 또는 1990년대의 금융 버블의 붕괴를 극복하면서 꾸준한 성장률을 유지하는 능력을 뜻한다. 신자유주의의 장기 지속 가능성은 또한 (4) 1980년대 중반 이래 눈에 띄게 진행되어 온 기술변화의 좀 더 긍정적인 추세를 연장시키는 것에도 달려있다. 


결론에서는 신자유주의의 가능한 미래상을 간략히 묘사할 것이다. 그것은 신자유주의의 영속화 내지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들, 이를 테면 점진적 또는 갑작스런 소멸로 이어질 수 있는 조건들의 어느 정도 가능한 형태들, 그리고 계속해서 변형되는 생산관계와 신자유주의가 공존할 수 있는가 이다. 


여기서 다루고 있는 범위가 넓다고는 해도, 이 글이 자본주의에 대한 전반적인 비판을 담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범위는 한정되어 있다. 우리는 성장과 기술변화의 추구를 지구의 보존과 관련짓지도 않을 것이며, 자본 소유자에 의한 지배를 여러 주변국들의 참상이나, 성적․인종 착취, 실현하기 어려운 이데올로기를 전하는 것과 관련시킬 의도도 없다. 


Ⅰ. 역사적 분석3)

1.1 맑스주의 분석틀


맑스와 엥엘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분석한 역사 해석의 중심에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변증법이 근본적으로 자리한다. 생산관계는 생산력의 발전을 촉진시킬 수도 억제할 수도 있다. 그리고 생산력의 발전은 생산관계의 변형을 불러온다. 이러한 틀은 두 번에 걸쳐 적용된다. 한 번은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이행에, 그 다음에는 사회주의로 이행을 예고하는 자본주의의 발전 그 자체에 적용된다. 


생산관계의 각각의 형태는 특정한 계급 양태에 조응한다. 이는 봉건제와 자본주의를 비교할 때는 물론이고, 주어진 생산양식의 다양한 국면들에서도 마찬가지다. 보기를 들어, 은행 제도, 좀 더 일반적으로는 금융자본의 부상은 지배계급의 특정 분파의 성장을 반영한다. 


이와 같이 지배계급이 여러 분파로 분할되는 것은 [브뤼메르 18일]에 명확히 제시된다. 이 책에서 맑스는 지주, 금융귀족, 대규모 산업자본가를 구분한다. 그들은 다양한 체제 하에서 지배 세력을 나눠 갖는다. 우리는 이를 권력지형이라고 할 것이다. 즉, 왕정복고, 7월 왕정, 공화정, 제정 등이 그것이다. 그들은 공화정이나 제정에서처럼 연합해서 지배하기도 하고, 그들의 모순을 드러내놓고 표현하는 데 공화정에서처럼 높거나 제정에서처럼 낮은 수준의 자유를 갖는다. 특정한 한 집단의 헤게모니가 왕정복고와 7월 왕정에서와 같이 좀 더 명확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더 일반적으로는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이행과 같은 생산양식들 사이의 이행이 언제나 지니는 점진적 성격 때문에, 구체제에서 그랬던 것처럼 연속된 생산양식들의 지배계급은 공존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한 형태들 속에서 다양한 집단들의 본질은 변화하기 마련이며 혼합 형태들이 있을 수도 있다. 


이러한 역사적 동학 속에서 계급투쟁은 참으로 중요하다. 포괄적으로 말하면 이 용어는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사이의 적대와 지배계급 내의 여러 분파들 사이에 있는 긴장을 포함한다. 국가란 권력 형태들의 조직화된 표현이자 아울러 그것들의 성립과 보존의 장소이며 이러한 권력에 수반되는 압제의 수단이다. 


자본주의의 경제학에 관하여, 맑스는 [자본]에서 자본주의하에서 기술과 분배방식이 특정한 진행 패턴에 따라 달라진다는 명제를 제시했다. 우리는 이를 맑스식 궤적(trajectories à la Marx)이라고 할 것이다. 이 궤적에서는 (1) 생산․자본․고용의 증가와 (2) 노동생산성․실질임금․자본-노동비율(다양한 자본의 구성들)의 상승과 이윤율의 저하가 나타난다. 이런 경향들은 자본투자의 증가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데 어려움(우리는 이를 혁신의 어려움이라고 한다)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윤율의 하락은 대규모 공황을 위한 조건들, 이를 테면 경기후퇴, 실업, 투기 등을 창출해낸다.4)


이러한 경제 분석틀은 위의 역사적 분석틀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비록 맑스가 엥겔스와 함께 [공산주의자 선언]을 쓸 때는 이러한 분석도구를 도입하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역사적 경향의 존재야말로 자본주의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주기적인 구조적 공황과 경기순환을 설명해줄 수 있다. 여러 측면에서 맑스의 [자본론]은 [공산주의자 선언]에서 개진되는 직관들과 자본주의의 파국적 미래를 솔직히 평가한 것이다.


1.2 자본주의의 동학

1.2.1 생산수단의 소유, 경영, 근대적 금융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는 자본주의 생산관계에서 핵심이다. 이는 두 요소를 함께 포괄한다. 그것은 (1) 좁은 뜻의 소유권, 즉 노동력을 포함한 생산수단을 사고 팔 수 있는 힘과 (2) 생산수단을 운영할 수 있는 권리와 능력이다. 이 기본적인 관계는 19세기말에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이미 맑스는 이 변화의 초기 형태를 분석했다. 가장 큰 변화는 생산수단의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고, 소유권이 금융기관에 집중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변형은 근대적 금융의 출현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자본주의적 소유의 변형은 1890년대에 일어난 구조적 공황에 뒤이어 미국에서 새로운 절정을 맞이했다. 그 공황은 이윤율 저하가 일어난 다음 발생했다. 기업들은 다양한 형태의 수평적 연대를 통해 이윤율 붕괴를 저지하려고 했다. 그동안 그러한 수평적 연대는 경쟁전(戰)으로 변질되었다. 이때가 바로 카르텔과 트러스트의 시기이다. 반독점 법안은 기업들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면서도 시장이나 이윤 등을 공유하자는 어떠한 형태의 담합도 금하였다. 그와 함께 회사법은 합병과 지주회사의 설립을 허용하도록 법제화되었다. 세기가 바뀌는 동안에 대규모 합병이 줄을 이었다. 미국에서는 이를 기업혁명(corporate revolution)이라고 한다. 


기업 내에서는 관리 업무가 대규모 피라미드 구조의 관리․사무직 직원들에게 위임되었다. 그들은 맑스가 자본가들이 수행하는 기능들이라 불렀던 업무, 즉 오늘날의 용어로 한다면 넓은 뜻의 경영(사실상 모든 비생산적 노동)을 떠맡았다. 이는 이윤율을 극대화시키는 데 필요한 기능들로, 이 같은 두 번째 변형은 경영자혁명(managerial revolution)이라고 한다. 


대규모 기업들은 금융을 통제하면서 형성되었다. 아울러 그 근대적 형태는 나타나고 있었다. 그것은 비금융적 기업들과 밀접히 연결된 금융기관들로 이루어진 것이다.5) 여기에는 금융 메커니즘의 극적인 발달, 즉 ‘금융혁신’의 거대한 물결이 뒤따랐다. 신용 메커니즘의 출현과 더불어, 단순히 거래에 자금을 공급하는 것을 훨씬 넘어서는 정도로 화폐의 양, 특히 은행 예금 잔고는 어마어마하게 늘어났다.6) 실제로 그 말을 썼던 것은 아니지만, 이를 일컬어 금융혁명(financial revolution)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20세기 자본주의의 새로운 모습은 자본주의 생산관계에 중요한 변형이 있었음을 뜻한다. 이는 맑스가 생산의 사회화(개인들 속에서 형상화되는 생산관계, 이를테면 한 사람에게 소유와 경영이 집중되는 것과는 반대로)라고 일컬었던 새로운 양상이기도 하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사회적 성격은 20세기를 지나오면서 끊임없이 강화되었다. 뮤추얼펀드나 연기금 같은 거대 금융기관의 발달과 자본주의 업무가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사원들에게 점진적으로 이전되는 것과 더불어, 신자유주의 하에서 자본주의는 새로운 절정기를 맞았다. 경영자혁명은 이제 자본주의의 핵심, 즉 금융에 까지 닿아있는 것이다.


1.2.2 축적, 노동력의 구매, 그리고 거시경제


소유(법률적 뜻에서)와 경영 말고도, 생산수단의 사적소유가 자본주의적으로 작동되는 데에는 ‘거시경제적’ 요소들도 있다. 이에 대하여 두 가지 측면을 명확히 해야 한다. (1) 자본주의 경제에서 자본축적은 이윤의 일부를 저축해두는 것을 필요로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본은 은행제도, 즉 신용 메커니즘과 화폐의 발행을 통하여 ‘창출’될 수도 있다. 이 같은 자본창출의 총액수는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신용과잉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도 있고 주식이나 현금 형태의 자본이 평가절하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7) 더 일반적으로는 그 목적이 축적이든 소비이든 상관없이, 신용과잉은 인플레이션과 금융제도의 불안정화를 야기함으로써 기존에 축적된 자본에 위협이 된다. (2) 자본의 가치실현과정을 제어하는 과정에서 노동력의 구매는 특히 중요하다. 맑스가 분석했듯이, 산업예비군의 주기적인 보충은 노동력의 가격, 따라서 이윤을 결정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즉 임금에 강력한 압박을 가하여 경기과열(과잉축적)의 시기동안 일어난 임금의 상승을 만회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거시경제를 제어하고 화폐발행, 경제활동수준, 실업에 대해 중요성을 갖는 중앙 집중화된 제도와 메커니즘을 점진적으로 발전시켰다. 소유와 경영의 법률적 형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실제로 중앙 집중화된 거시경제 정책들은 생산수단의 사적소유가 사회화를 늘리는 쪽으로 작동하도록 바꾸어놓았다. 그런 메커니즘이 나타나자, 그런 거시경제정책이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논란을 불러왔다. 과연 그런 정책은 누구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인가? 


19세기 후반에, 대규모 민간 금융기관들(미국에서는 대체로 국가은행체계에 속해 있는 뉴욕의 대형 은행들)은 이러한 통제를 주도했다. 금융기관들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금으로 표시되는 화폐의 구매력과 금융제도의 안정성이다.8) 거시경제의 안정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점차 목적이 되어갔던 것이다.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의 충격으로 국가(중앙은행)의 개입과 새로운 목표를 지향하는 케인즈주의 시대가 열렸다. 자본가계급은 이를 자신들의 권력을 침해하는 것이라 보았다. 왜냐하면 이 목표들이 완전고용을 포함하고 있었고 가격의 안정성, 즉 축적된 자본의 보존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뒤 일할 권리가 자각되고 복지국가가 수립되면서 임금관계에서 큰 변화가 생겼다. 노동력은 더 이상 ‘다른 상품과 같은 상품’이 아니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에서 실업 문제가 별로 중요하지 않고 가격 안정성의 문제가 관심의 대상으로 다시 떠오르면서 아울러 금융의 초기 목표들도 다시 세워졌다.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에 대한 이 ‘거시경제적’ 요소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저 그 안에서 설정되는 특정한 거시경제 정책들만이 문제될 뿐이다. 


1.2.3 이윤율 극대화


이윤율은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데에 중요한 변수이다. 이윤율을 결정하는 메커니즘은 커다란 변화를 겪는다. 이윤율의 극대화는 그 자체의 방식대로 많은 경제적 역할을 해낸다. 그것은 투입물과 자원 사용의 효율성 여부를 결정하고, 가장 효율적인 기술이 무엇인지, 그리고 여러 투자분야들(기업들과 산업들)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지침을 제공한다. 이윤율은 또한 개별기업이 수요를 자극할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부추긴다. 


이러한 기능을 해내는 데에는 중요한 정치적 요소가 깔려있다. 특히 첫 번째 기능, 즉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다음을 뜻한다. (1) 노동자들에 가해지는 압력의 형태와 정도(노동자들의 저항과 그에 대한 규제의 존재 가정) (2) 환경과 환경의 보존을 조절하는 규칙들에 대한 위와 비슷한 충격(여러 방면에서 저항이 있을 것이라 가정).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이윤추구에는 국제적 측면도 있다. 이윤추구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제국주의(그들의 경쟁관계와 주변국들에 대한 지배)로 나아가고 있는지 잘 설명해준다. 


이윤율의 극대화는 생산관계의 자본주의적 성격의 표현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본주의적 성격은 다음을 통해 결정되기도 한다. (1) 부분적으로 수익성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여러 영역들(보기를 들어 국방, 교육, 보건, 연구) (2) 유산계급의 잉여에 대한 사적 전유(轉有) (3) 소수가 부를 독점하는 것 (4) 규제와 정책 (국가의 일반적 기능의 특수한 요소로서), 거시경제 정책, 과세(기업과 상위소득집단에 대한 과세) 등등. 


1.2.4 계급과 권력지형


앞의 세 절에서 설명된 생산관계의 변형은 계급형태의 변화와 나란히 진행된다. 


경영자혁명이 일어나자, 중간계급이 나타났다. 이들은 기존의 쁘띠 부르주아지와 구별되면서 관리․사무 업무를 도맡아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기능이 임금직 노동자들로 옮겨가는 것은 지나치게 ‘양극화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기획권․주도권․권위는 위계의 가장 높은 곳(관리직)에, 과업의 수행은 가장 밑바닥(사무직)에 집중되었다. 이 양극화는 새로운 계급관계를 뜻한다. 이와 같은 대립은, 맑스가 [자본론]에서 분석한 틀 안에서 드러나는 자본가와 생산적 노동자의 분리와는 다르다. 생산수단을 마주 대하는 생산적 노동자들의 태도에도 변화가 생겼다. 자본주의 기능이 점점 더 위임될수록, 노동과정에서 생산적 노동자들에 대한 통제는 더욱 줄어들었다. 


오늘날 자본주의가 지닌 계급형태의 복잡성은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계급모순이 표현된 것이다. 그것은 (1) 자본가와 생산적 노동자 사이에 있는 전통적인 자본주의적 관계와 (2) 관리직과 모든 ‘관리되는’ 노동자들(생산적이든 비생산적이든) 사이에 나타나는 새로운 계급모순이다.9) 


따라서 지배계급에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서로 협력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는 두 분파가 있다. 마치 맑스가 묘사했던 구체제에서 귀족과 부르주아지와 같이, 사회적 위계의 맨 꼭대기에는 자본가들과 관리자들이 있다. 


지배계급의 세력은 대개 타협을 통해 강화된다. 이 타협에서는 두 가지 측면이 구별될 수 있다. 하나는 여러 국가․준(準)국가 기구들 안에서 관리자나 자본가와 같은 지배계급의 분파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협력 내용과 범위이다. 이들 사이에도 접촉면이 있다. 그것이 바로 이사회이다. 이사회에서 기업 소유주는 일정한 관리업무도 해내면서, 기업의 일정 지분을 갖고 있는 최고 경영자들과 일을 나눈다. 이 접촉면은 소유와 경영이 기본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형태의 자본주의를 보존하는 데 중요하다. 또 다른 측면은 더욱 폭넓은 인구 분파들과 타협이다. 여기에서는 더 많은 임금 노동자들의 참여와 그들에 대한 규율의 엄격함 등이 쟁점이 된다. 


[그림 1] 자본 생산성의 추세 (생산된 금액/고정 자본금액) : 미국(민간부문) 



1.1절에서 논의된 것처럼, 국가는 권력지형들이 만들어지고 보존되는 장소이다. 마찬가지로 지배계급 분파들 사이의 협력이나 좀 더 폭넓은 인구 분파들과 타협하는 가운데에서도 권력지형들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자본의 소유자들이 행사하는 헤게모니와 타협의 정도는 권력지형을 정의하는 데 일차적 중요성을 지닌다. 20세기가 시작될 때부터, 근대적 금융의 출현과 임금직 사원에게로 관리업무의 위임과 더불어 자본가들의 헤게모니는 금융, 거대한 금융 자산을 지닌 개인들과 금융기관들10)의 헤게모니라고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헤게모니는 최고 경영층과 맺은 동맹을 통해 강화된다. 그러한 헤게모니 속에서 주로 자본가의 규율이 상층 경영자의 일방적인 지지를 받는다. 도식적으로, 그와 같은 헤게모니의 시기는 두 번 있었다. 그것은 20세기 초반과 1980년대에서 지금까지이다. 이 두 시기가 나누어진 까닭은 케인즈주의적 타협 때문이다. 이 때 금융은 어느 정도 ‘억압’을 받았고 최고 경영층은 사적․공적으로 여타 관리 부문들과 ‘재결합되어’ 있었다. 우리가 위에서 자본주의 소유의 ‘거시경제’ 측면이라고 한 것과 관련하여 케인즈주의는 금융의 특권을 제한하였다. 이는 경영자들의 부문적 행위를 장려했으며 임금직 사원들 사이에 좀 더 폭넓은 타협을 수립하였다. 이는 이윤율(즉 ‘시장’)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에서 자유로운 활동의 영역을 확장시켰다.11)


사실상 최고 경영자들과 자본 소유자들의 상호수렴, 즉 타협 내용의 변화가 없었더라면 신자유주의의 출현과 안정화는 불가능했었을 지도 모른다. 퍼거슨(Thomas Ferguson)과 로저스(Joel Rogers)가 분석했던 1980년대의 우경화12)와 신자유주의의 공고화 때문에 처음부터 레이건은 자신을 지지했던 반동 세력을 출현시킨게 아니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단지 자신의 정책들을 다른 경제 집단들에 맞게 조정한 것뿐이었다. 


1.2.5 역사적 경향과 공황


맑스가 [자본] 3권에서 행한 분석의 핵심은 우리가 1.1에서 맑스식 궤적이라고 했던 변화 유형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핵심은 이윤율의 저하이다. 이윤율 저하 때문에, 구조적 위기가 일어난다. 그 구조적 위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무너진다고 했다. 그러나 그 대신 구조적 위기는 자본주의가 변형되도록 자극함으로써 이윤율이 회복될 수 있다는 단서만 붙는다면, 우리가 보기에 맑스가 내놓은 이러한 분석틀은 자본주의를 연구하는 데 여전히 참으로 쓸모 있다.13) 


[그림1]에서 나타나듯이, 남북전쟁이 끝난 뒤 미국에서 여러 국면들의 연쇄는 자본생산성 도표에서 특히 뚜렷하다. 점선은 경기순환의 영향을 받지 않는 평균적인 기술수준을 특징짓는 추세를 나타낸다. 이 추세를 둘러싼 변화는 경기 순환 활동의 평균수준의 운동을 반영한다. 그 운동이 대공황 기간의 하락과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급상승에 주목하라. 특별히 표시되지 않는다면 그림 속의 숫자들은 저자들이 국민계정에 바탕을 삼아 계산한 결과이다.14) 첫 번째 하강국면은 19세기 후반에 나타난다. 이는 1890년대에 일어난 구조적 위기로 이어진다. 그 뒤 차츰 회복되고 있는 것이 관측된다. 회복은 1920년대에 와서 명백해진다. 경제활동의 갑작스럽고도 오랜 기간 이어진 위축의 결과로서 대공황은 이 움직임을 방해하였지만, 사실상 생산체계 안에서 후진적 요소들을 잇달아 없애 버렸다. 맑스식 궤적의 두 번째 시기는 196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까지이다. 1982년의 대규모 경기후퇴 기간에 경제는 바닥에 다다르고, 끝으로 새로운 상승추세가 나타난다. 


이와 같은 움직임은 앞서 설명된 생산관계의 변형과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20세기 전반기에 일어난 상승을 경영혁명의 결과로 해석한다. 그 혁명은 자본 사용에서 효율성을 늘린 것이다. 활동의 모든 요소에서, 즉 테일러리즘(Taylorism)과 조립라인이 도입된 작업장 내에서 뿐만 아니라, 상업 활동과 재고 및 유동성 관리에서 모두 증가시킨 경영자혁명의 결과로 풀이한다. 우리가 보기에 관리의 영역에서 새로운 혁명이 진행되고 있고, 그 결과가 1980년대 중반부터 눈에 띄기 시작했다. 경영혁신의 ‘한계 효율성’은 그 비용 때문에 아마도 떨어졌을 것이다. 새로운 혁명은 경영 자체 안의 혁명으로 묘사될 수 있을 것이다. 정보기술(information technology)이 효율성의 점진적 개선과 비용절감을 허용하겠지만, 다른 조직적 요소들 또한 개입될 것이 분명하다. 점점 더 복잡해지는 경영은 어떠한 것이든 관료적 편향을 피해야만 한다. 


1.2.6 제국주의와 미국 헤게모니


우리가 생각하기에, 제국주의란 정도와 형태의 차이는 있었지만 지금까지 계속적으로 자본주의의 특성이었다. 제국주의가 이어지고 있는 국면을 시대순으로 설명해야 한다. 1960년대와 1970년대, 그리고 식민제국주의가 해체된 이래, 제국주의는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의 집단지배의 형태로 살아남아 있다. 이들 가운데 한 나라가 지배적이다. 그것은 바로 미국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미국 헤게모니라는 개념은 다음과 같은 세력관계를 뜻한다. 즉 미국의 통솔아래, 중심부에 있는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이 집단적으로 주변부를 제국주의적으로 지배하는 것이다.


1.2.7 20세기 자본주의의 시대구분


자본주의의 시대구분에서 제기되는 근본 문제는 시대 구분의 기준이 여러 가지라는 점에 있다.15) 생산관계․계급형태․권력지형․기술발전․위기․제국주의 국면의 변형 등이 각각 시대구분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이들은 여러 측면에서 상호 연관되어 있지만, 적용되는 메커니즘이나 구분 시점과 관련하여 꽤 자율적이다. 이를테면,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거시 정책의 변형과 케인즈주의 타협의 성립은 기술과 분배가 좋은 추세를 유지하고 있던 시기에 발생하였다(위 1.2.5를 보라). 불황은 한편으로는 급속한 기술변화 때문에, 다른 한편으로는 거시 정책과 제도의 느린 적응 때문에 일어난다. 다양한 기준들은 서로 다른 시대구분을 가능케 하고, 여러 기준들을 조합한다면 하위시기들만 많이 생겨날 뿐이다. 구조적 위기와 전쟁은 자주 사용되는 기준들이다. 


1.3 신자유주의와 새로운 자본주의 


자본주의의 변형이라는 맥락에서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 


좀 더 기술적인 분석을 하기 전에, 신자유주의의 본질과 내용에 대하여 몇 가지 언급해보자.16) 


(1) 생산관계와 관련하여, 신자유주의는 사회화와 관리업무의 임금직 사원에 위임이라는 전반적 과정과 동떨어져 진행되는 운동으로 분석되어서는 안 된다. 실제로 그것은 그러한 변형을 방해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측면에서 보면 가속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전의 추세들이 어떻게 변했느냐는 것이다. 첫째, 금융 헤게모니의 첫 번째 기간인 20세기 초반에서처럼, 신자유주의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강화시켰다. 그것은 대규모의 비금융기관들(뮤추얼펀드나 연기금과 같은)의 발달을 촉진시켰다. 정부의 새로운 친(親) 합병적 태도도 이러한 발달을 도왔다. 둘째, 여기에서는 경영자들과 공무원들의 행태적 ‘편이’가 중요하다. 이는 기업지배, 규제, 정책의 새로운 친금융적 모델(기업내부의 자율적 관리로부터, 그리고 케인즈주의적 타협과 국가로부터 탈피)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신자유주의는 모든 차원의 활동에서 이윤율의 극대화 주장을 명확히 재개하는 것을 뜻한다(위 1.2.1을 보라). 

(2) 금융업무가 주로 관리직, 사무직에게 맡겨지게 되긴 했지만, 신자유주의가 특정한 계급형태의 측면에서 정의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반적 관찰은 다른 측면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예전에 있었다 하더라도, 이제는 “금리, 배당 등으로 살아가는 불로소득 생활자에 대한 안락사(euthanasia of the rentier)”는 없을 것이란 점이다. 또한 극단적인 사회적 불평등에 의존하게 되면, 생산적 노동자들에 대한 가장 극심한 착취가 연장 또는 확대됨과 아울러 개인 서비스직에 고용된 사람들의 비율이 높아질 수도 있다. 신자유주의는 저임금층을 좀 더 높은 계층으로 나아가게 하기보다는 그 자리에 묶어두는 자본주의의 경향을 강화시킨다. 

(3) 전통적으로 자본주의에서 그랬듯, 실업은 노동비용을 통제하고 임금노동자들을 규율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것이다. 물가의 안정성은 화폐․금융적 자산의 보유자들이 지닌 부의 보존을 보증해줄 것이다. 그리하여 신자유주의는 ‘공세적’ 자본주의의 한 형태이다. 

(4) 최근의 좀 더 호의적인 기술변화 패턴들이 지속될 수 있다면, 이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경로를 열어줄 수 있을 것이다. 이 경향들은 신자유주의 하에서 눈에 띄게 되었지만 그것의 내재적 특성은 아니다. 이는 상당부분 관리의 산물이다. 그것들의 지속가능성이 관건이다. 더욱이 신자유주의적이든 아니든, 미래의 자본주의는 새로운 맑스식 궤적과 그에 따르는 구조적 위기들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다. 이 점은 정치적으로 중요하다. 왜냐하면 현대 자본주의의 모든 ‘호의적인’ 측면들이 신자유주의의 특성으로 선전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시대구분에 대한 조심스런 접근의 중요성을 드러내놓고 보여준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는 두 가지로 정의될 수 있다. 

(1) 좁은 뜻으로,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는 새로운 발전국면으로 이끌 잠재성을 가진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발생했던 사건들, 즉 일련의 ‘정책들’의 추이를 나타내는데 쓰인다. 이는 1980년대에,  몇 십 년 동안 침체기를 겪은 자본의 소유계급이 최고 경영층과 연합하여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되찾으려는 시도로 풀이될 수 있다. 위에서 설명된 몇 가지 특성들은 19세기의 자본주의와 일치하기도 하지만, 회복이라는 말이 자본주의의 새로운 경로가 과거의 경험과 일치한다는 뜻이 아님은 말할 필요도 없다. 

(2) 넓은 뜻에서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는 몇 가지 지속 가능성의 특성들을 갖는 새로운 자본주의를 지칭하는 데 쓰일 수 있다. 즉 그것은 진전된 경영자 자본주의라는 맥락 안에서 자본의 소유계급에 의한 부와 권력의 회복이 제시하는 역사적 결과이다. 


이 둘 사이의 차이는 중요할 수도 있다. 그 격차는 너무 큰 나머지, 신자유주의라는 용어가 좀 더 장기적 발전을 지칭하기에는 부적절해 보이게 만들 수도 있다. 


Ⅱ. 모순들.


지난 20년 동안 특성들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할 수 있을까? 우리가 그로부터 내적 모순을 발견할 수 있을까? 2절에서 우리는 기본적으로 미국 경제를 고찰하면서, 이를 유럽 3국(프랑스, 독일, 영국)의 평균17) 및 프랑스18)와 견줄 것이다. (좀 더 면밀한 연구에서는 일본도 고려대상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2.1 지배와 타협

2.1.1 가장 부유한 계층이 지닌 부


커지는 불평등은 종종 신자유주의의 특징으로 묘사되곤 했다. 여기에는 분명 국제적 요소도 자리할 것이며, 가장 발전된 국가들과 주변부의 가난한 국가들 사이에서 생긴 차이는 잘 알려진 바이다.19)


[그림 2] 최고 부유층 1%가 소유한 전체 부의 비율(%): 미국, 가계 



         부에는 부동산(주택), 주식, 현금, 내구소비재가 포함된다.  

         출처: E. Wolff, Top Heavy, The New Press: New York, 1996 (최근 통계치 추가).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중심부에서조차 저소득층은 신자유주의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 미국에서 통화정책이 바뀐 뒤 실업은 두 배에 달했고, 유럽도 15년 동안 이와 거의 비슷한 수준에 머물렀다. 아울러 최고 부유층의 부와 소득에는 상당한 개선이 있었다. 이러한 부와 소득이 부유층으로 흐르는 것에는 특히 금융적 측면이 있다. 이는 비금융 기업, 가계들, 국가에 의해 금융기관, 기본적으로는 다른 가계들로 지불되는 거액의 이자와 배당의 형태로 나타난다. 1980년대 중반부터 주식시장의 급부상은 이에 더하여 불평등한 부의 분배를 심화시켰다.20) 최고 경영자들에 대한 어안이 벙벙할 정도의 ‘보상’은 이미 여러 번 강조된 바 있다. 


이 같은 미국 최부유층의 소득과 부의 증가는 한동안 좌절기를 겪은 뒤에 이루어진 것으로, 어느 정도는 이전에 그들이 지니고 있던 부의 회복으로 볼 수도 있다. 1970년대의 구조적 위기의 첫 번째 국면이 진행되는 동안, 낮은 이윤과 낮은 배당, 그리고 낮은 이자율은 높은 인플레이션과 결합되어 지배계급들의 부를 상당부분 감소시켰던 것이다. [그림2]에서 볼 수 있듯이, 소득 상위 1%인 가계들이 지닌 미국 전체 부의 비중은 전쟁이 끝난 뒤 10년 동안 30~35% 사이를 맴돌았는데, 1976년에는 22%로 하락하였다. 신자유주의가 이를 뒤집은 것이다. 


이러한 관찰들로부터 앞서 언급된 ‘공세적 자본주의’라는 개념의 일면들을 엿볼 수 있다. 자신들의 소득과 부의 감소에 직면한 지배계급들은 자본주의의 경로에 정치적 변경을 가한다. 1980년대 중엽부터 그들은 임금비용의 상승에 대해 엄격한 통제를 가하고 놀라울 정도로 이윤의 ‘착취’를 확대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이윤율의 새로운 상승경향이 나타나기도 전에 기존 자신들의 지위를 극적으로 회복할 수 있었다. 


혹자는 이와 같은 발전 경로의 장기적 존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임금의 정체(노동생산성 증가가 떨어졌지만, 이윤 몫이 증가한 것에서 명백히 드러난다)가 최근의 이윤율 회복에 중요한 이바지를 했으며, 노동자들의 편익에 들어가는 비용의 증가세는 점점 둔화되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기본적인 상충관계가 결부된다. 즉, (1) 임금비용과 이윤 사이에서, 그리고 (2) 자금조달에 유리한 소득이전과 축적 사이에서. 


두 번째로, 더 나은 노동조건과 생활수준을 위한 임금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 가운데 타격을 받았다. 구조적 위기 동안의 패배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옹호;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이러저러한 대안들의 붕괴(실상은 오랜 기간에 걸친 점진적인 환멸)와 모든 사회민주주의적 또는 케인즈주의적 개혁 경로들의 실패. 이 같은 패배의 시원찮은 결과들은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의 기술진보가 연장되어 이러한 교환관계를 완화시킬 수 있는 영속성 있는 조건들을 창조하지 못한다면, 노동을 억압하는 것은 더욱더 어려워질 것이다.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려고 지배계급은 두 가지 선택권을 갖는다. 즉 새로운 사회적 타협(인구의 대다수와 부유층의 번영을 제휴시키는 것)을 이루거나 계속해서 더욱더 권위적인 체제로 이행하는 것이다.21) 


2.1.2 ‘모든 자본가들’


신자유주의에 의해 임금 노동자들의 연대는 파괴되었고 케인즈주의 기간 동안 금융 권력에 제한을 가했던 타협은 붕괴되었다. 과거의 권력지형 속에서는 주요한 사회적 역할이 사기업 및 국영․준(準)국영 기관 내의 관리직 인사(경영자, 기술자, 전문인)에 의해 수행되었다. 이들은 완전 고용, 교육기회 확대, 그러니까 일반적으로는 복지국가에 대한 공약(公約)을 매개로 임금 노동자 일반에게 영향을 미쳤다. 금융에 대한 일방적인 통제가 실시되었지만, 금융과의 관계는 타협의 일부였다. 예전에 금융의 우위에 대한 첫 번째 제한은 규제와 새로운 통화정책목표들에 의한 신용통제에 관한 것이었다(위 1.2.2를 보라). 반면 금융활동의 다른 측면들(특히 자본의 배분)은 영향을 덜 받았다. 수평적 합병, 상업은행의 금융활동과 자본의 국제적 이동에 대한 제한들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이는 케인즈주의 시대의 것을 대체할 새로운 타협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그림 3] 폐쇄되거나 FDIC의 지원을 받은 FDIC에서 보증하는 상업은행(―)과 저축대부조합(--) : 미국 


          FDIC: Federal Deposit Insurance Corporation (연방예금보험조합) 


자본 소유자들의 권력과 금력(金力)을 경영자 자본주의의 내부로 다시 확보하려는 신자유주의적 기획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자본가들이 경영자들과 맺는 관계이다. 소유와 경영의 접촉면이라고 하는 것에서 시작한다면 최고경영자가 핵심적 요소이다. 이미 언급되었듯이, 최고경영자에 대한 의존은 애초부터 신자유주의가 갖는 두드러진 특성이었다. 이는 소득이 금융으로 새로이 유입되는 현상과도 강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러한 특성은 신자유주의와 너무도 잘 어울려서 그것이 사회적 타협이 아닌 것처럼 보게 할 정도이다. 여하튼 그러한 ‘타협’은 1.2.4에서 제시된 첫 번째 범주,  즉 지배계급의 여러 분파들 간의 협동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중간 계급을 포함하여 좀 더 폭넓게 타협이 이루어지는 것은 신자유주의가 살아남는 데 결정적인 조건이다. 이에 대한 슬로건은 바로 ‘모두가 자본가’이다. 그것의 주요 실질적 요소들이란 (1) 임금노동자들에게 그들의 소득에 덧붙여 주식 배분, (2) 스톡옵션, (3) 연기금 등이다. 이러한 장치들의 효율성은 조세감면(tax incentives)에 의해 제고된다. 신자유주의 이전부터 발달한 연기금이나 뮤추얼펀드와 같은 제도들은 보기 드문 수준으로 팽창하였다. 그것은 신자유주의적 체계에서 상위 50%의 가구들을 자본주의와 공동의 운명체로 연결시키는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요소로 남아있다. 이러한 타협이 세워지는 과정에서, 1980년대 중반부터 계속되어온 주식시장의 극적인 부상은 뜻밖의 횡재와 같은 것이었다. 얼마간 금융자산을 가지고 있던 중간계급은 자본주의적 지배의 가장 미온적 형태를 통해 자신들의 삶의 수준이 향상되었고, 계급장벽들이 차츰 극복될 수 있다는 견해에 실질적으로 찬성하였다. 이런 호의적인 시대는 이제 끝났다. 


[그림 4] 각 분기별 연간 성장률(%): 미국 



2.2 경제의 (탈)안정화


이 절에서는 신자유주의에 의해 지배되는 자본주의의 (불)안정성이 논의될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통화금융 위기에 특히 쉽게 노출되는 체제인가. 그러한 경향이 신자유주의의 생존 여부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국내 쟁점과 국제 쟁점을 나누어 볼 것이다.


2.2.1 국내적 쟁점: 금융위기와 거시적 안정성


미국에서 신자유주의의 등장은 1980년대 극심한 금융위기를 불러왔다. 금융위기가 어떻게 전개되었고 그것의 여러 국면을 설명하는 것22)은 이 절의 논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위기의 규모는 도산하거나 구제된 은행과 저축조합(savings association)의 수를 보여주는 [그림 3]에 나타나 있다. 그 수치들이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위기는 1980년대 초 갑작스런 이자율 증가와 탈규제화, 채무불이행(default)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른바 저개발국들(Less Developed Countries)의 부채위기가 미국 은행에 미친 영향은 아주 컸다. 다른 대부분의 선진국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금융위기는 심화된 구조적 위기의 표현임과 함께 신자유주의의 작용이었으며, 이행기에 나타나는 하나 현상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우리가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일차적인 교훈은, 위기 초기에 ‘시장’이 상황을 타개할 것이라며 레이건 행정부가 개입을 꺼렸지만, 결국은 미국 정부와 통화당국이 금융 시스템이 낳은 문제들이 현실경제로 퍼져나가지 않게 하려고 많은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중심부에서 금융기관들의 역할에 대한 이 같은 급격한 동요는 1980년대 중반 이래 계속되어온 거시경제의 상대적 안정성(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성장률)과 견주어보아야만 한다. [그림 4]는 1975년부터 분기마다 산출량이 늘어나는 비율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는 이로부터 1980~1982년 사이의 경기후퇴기 동안 산출량의 증가율이 음(-)의 값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고, 신자유주의가 등장하기 시작했을 때인 1983년에 산출량의 증가율이 가장 낮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993년 경기가 후퇴했을 때를 빼고 난 나머지 기간 동안 성장률은 두드러지게 안정세를 보였다. 따라서 처음 심한 동요기(이행기)를 지난 다음부터는 신자유주의가 거시경제적 안정에 이바지했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2000년부터 하강국면이 시작되었지만, 이는 미국에서는 하나의 자랑거리이다.23)


이러한 발전과정에 대한 분석은 기본적인 거시경제적 메커니즘에 따른 것이다. 거시경제 메커니즘에서 결정적인 쟁점은 안정성의 문제이다(상자 글을 보라). 24)


대공황이 끝난 다음 제정된 몇 가지 규정이 폐기되었지만, 1980년대 초에 제도적 틀을 변형시킴으로써 중앙은행의 힘은 더욱 강화되었다는 점을 기억해두어야 한다. 그 이름에서도 암시되듯이, 미국의 「금융기관 규제철폐와 통화관리법」(Deregulation and Monetary Control Act)(1980)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중앙은행은 새로운 특권을 지녔다. 왜냐하면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면 경제에 강한 압력을 행사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좀 더 극적인 환경에서 경제에 개입하겠다는 공약 또한 강력하게 유지되었다(1980년대의 은행․저축대부조합 위기에 대한 정부의 반응에서 볼 수 있듯이). 거시정책과 관련해서, 신자유주의는 케인즈주의의 제도를 파괴한 것이 아니라 강화하였다. 그저 정책의 목표만이 바뀐 것이다 ― 완전고용에서 물가안정으로.25)


경기순환 : 화폐금융적 (불)안정성


  ‘정상적’ 조건하에서, 이를테면 예외적인 충격이나 통화금융 제도의 동요가 없는 상황에서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수요수준은 경기순환의 여러 국면을 거치는 과정에서 통화정책에 의해(미국에서는 특히 주택구입에 대한 저당대출에 의해) 통제된다.23) 일반적인 경제활동 수준의 안정성은 이러한 메커니즘이 여전히 아주 강력하며 전에 없이 효율적임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인플레이션도 거의 없고, 설비가동률은 보통 ‘정상’수준이다(즉, 80%를 약간 넘는 수준에서 변동한다). 좀 더 어려운 말로 한다면, 국지적 안정성(local stability)이 일반적으로 확보된다고 할 수 있다.

  ‘정상적’ 조건들이 언제나 있는 것은 아니다. 주식시장의 붕괴, 부실채무 불이행의 누적 등과 같은 갑작스럽고 커다란 충격은 가계의 수요행위와 기업의 수요․공급행위에 영향을 주어 경제를 동요시킬 수 있다. 여기에는 경기침체가 뒤따를 수도 있다. 경기침체는 수요․공급 수준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1930년대와 1980년대 초(통화금융 공황기간) 미국이나 지금 일본에서처럼, 그러한 충격은 통화정책의 메커니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은행 시스템의 기능에 영향을 준다. 이 때문에 통화정책은 얼마 동안 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경기변동이 급격히 일어나며, 경제활동이 붕괴되기도 한다. 경제활동수준이 떨어질 때, 재정적자 정책(정부에 의한 대출. 화폐의 발행도 한 방법이다.)을 쓰지 않을 수 없지만, 그 효과는 확실치 않다. 

 

전반적으로 금융 헤게모니의 두 시기를 비교한 것은 시사적이다. 둘의 정책 목표에는 연속성이 있다. 그것은 (1) 통화금융 제도들의 안정적 존속과 (2) 일반적 수준의 물가의 안정성이다.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나중의 시기, 즉 신자유주의적 헤게모니의 기간 동안에 케인즈주의적 거시경제정책의 수단들이 금융에 의해 그리고 금융을 위해 전승되고 또한 효과적으로 이용되었다는 점이다. 


2.2.2 국제적 쟁점 : 불안정성과 미국 헤게모니


신자유주의가 낳은 가장 극적인 위기는 1980년대와 1990년대의 국제 통화금융 위기이다. 이는 1982년 저개발국들의 부채위기에서 시작되어, 1994년의 멕시코 경제위기, 1997년의 동남아시아 위기, 1998년의 남미와 러시아 위기, 그리고 가장 최근 것으로는 2000년~2001년의 터키 위기까지 이어진다. 실질 이자율의 상승과는 별도로, 1990년대 위기의 주요 통화금융적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1) 자본의 국제적 이동성(이는 차츰 새로운 신자유주의 질서의 두드러진 요소로 자리 잡아 갔다). (2) 국제통화시장에 팽배한 변동환율제와 (환율의) 변동성과 경직성의 기묘한 결합(미국 달러에 연동된 몇몇 통화들). 


케인즈주의에 바탕을 두고 설립된 국제기구들, 즉 IMF와 World Bank 또한 신자유주의로의 이행에서 살아남았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들의 중앙은행들처럼 활동의 목표는 수정되었다. 이들은 신자유주의 질서를 전지구적으로 확산시키는 중개기관이 된 한편, 주변지역의 불안요인들이 중심부를 혼란에 빠트리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림 5] 축적률(%): 프랑스․독일․영국(-․-), 미국(―) 

         분석단위는 민간경제 전체이다. 축적률은 감가상각을 제외한 고정자본스톡의 증가율을 뜻한다. 단기간의 변동을 없애기 위해 자료에 약간의 변경을 가하였다.  


이미 브레튼우즈 (Bretton Woods) 협정은26) 그 자체의 독립적인 통화를 갖는 진정한 국제은행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최종 협정에서 잠재적으로 ‘금과 다름없는’ 통화, 즉 달러에 특수한 역할을 주기로 했을 뿐이다. 1960년대 말엽에 미국의 권위가 처음으로 도전받았을 때, 브레튼우즈에서 맺어진 규약들은 풀어지기 시작했다. 이른바 ‘달러의 위기’는 기존에 달러가 가지고 있던 우위를 회복시켜주지 않았다.27) 반면 그것의 헤게모니는 새로운 제도적 맥락, 즉 변동환율제와 차츰 자유화되는 자본의 이동성 속에서 유지되었다. 미국 헤게모니의 가장 이채로운, 거의 희화적인 점은 세계경제의 점진적인 달러화이다. 


이와 같이 비슷하긴 하지만, 상황은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 특히 미국의 일반적인 국내적 문제와는 중요한 점에서 차이가 난다. 이들 국가의 내부에서와는 달리, 국제적으로는 세계경제의 통화금융적 안정성을 책임질 어떠한 강력한 틀도 생겨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 원인들이 갖는 계급적 내용과는 별도로, 이는 국제적 안정성에 커다란 위협이 된다. 또한 이는 신자유주의가 갖는 심각한 내적 모순으로, 브레튼우즈 협정의 제요소(주기적으로 조절 가능한 환율, 위기동안에 자본이동의 규제 등)로부터 멀어져가는 과정과 연관되어 있다. 여기에서 가장 위협적인 측면은 필요하면 언제 어디서든 자본의 이동을 제한하는 규제 틀을 만들지 못했다는 것, 좀 더 일반적으로는 국제 통화금융 제도와 메커니즘들을 통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림 6] 순저축률(―)과 순투자율(--)(%): 미국 

         투자는 기업이 행한 것을 기준으로 했다. 여기에서 순net이란 고정자본의 감가상각을 제했다는 뜻이다. 저축은 총순생산에서 구매된 재화와 용역―가계의 주택구입은 포함시키고 기업의 투자분으로 구입된 것은 제외―을 뺀 값이다. (자본이익은 소득에 포함시키지 않았음.)  


독립된 국제기구를 세우지 못한 것은 미국이 자신의 헤게모니를 유지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거시경제 안정성을 위한 적절한 메커니즘이 나타난 것에 민간 금융이 저항했던 점과,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그와 같은 국제적 틀을 세우는 것과 더불어 달러 위기의 결과로 통화금융 제도들을 변형시키자는 것에 미국이 반대했던 것 사이에는 아주 비슷한 점이 있다.


[그림 7] 이자와 배당을 지급하기 전의 이윤율(―), 이자와 배당을 제외한 이윤율(--), 축적률(…)(%): 프랑스, 비금융기관.  


         축적률이란 감가상각을 제외한 고정자본스톡의 증가율이다. 두 종류의 이윤율은 이윤을 순가치로 나눈 값이다. 수직축은 로그로 표시된 값으로, 따라서 주어진 시점에서 곡선들 사이의 수직 거리는 각각의 값들 사이의 비율과 비례한다. 이자와 배당의 부담은 (…)과 (―) 사이의 거리로 측정된다. 


2.3 자본의 축적

2.3.1 느린 축적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곳에서 자본의 축적은 느리게 진행된다. 자본의 ‘느린’ 축적 과정은 소득이 금융으로 전환되는 것을 위협한다.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의 성장률에 대한 정량적 분석을 해 보면 나오는 결과로, 빠른 축적과 신자유주의의 특징인 소득의 금융기관과 부유한 가계로 대규모 이동이 나란히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지금으로서는 정반대의 견해가 지배적임을 주목하라. 신자유주의의 교리는 다음과 같다. 


(1) 미국은 신자유주의를 선도하는 국가이다. 

(2) 미국의 경제성장은 다른 어떤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보다도 빠르다. 따라서 

(3) 신자유주의는 투자(자본축적)와 성장을 뜻한다. 유럽에서는 한 가지가 첨부된다. 

(4) 유럽은 미국을 모방해야 한다. 


그러나 조금만 관찰해보면 이러한 믿음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그림 5]는 1960년대 이래 미국의 축적률과 유럽 3개국의 평균 축적률을 보여주고 있다. 두 곡선들은 모두 하강 추세를 보이는 한편,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서로 다른 발전 형태를 보이고 있다. 1990년대 들어 미국에서 상승국면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축적을 유도하는 어떠한 신자유주의적 기적도 눈에 띄지 않는다. 축적률은 주기적으로 운동한다. 미국의 축적률 곡선의 마지막 부분의 점들은 정점인 듯 보이며, 이윤율의 증가에 뒤이어 나타나야 할 상승추세는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 [그림 6]은 미국의 순투자율을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1990년대 후반 투자는 그저 신자유주의 이전 수준을 회복했을 뿐이다.28) 


이윤의 상당 부분이 이자와 배당으로 지급된다는 점은 미국과 유럽 모두에서 신자유주의의 공통된 특성이다. 그 결과 1980년대 중반 이래 이윤율이 회복되었지만, 이자와 배당을 포함한 모든 비용을 뺀 유보이윤의 비율은 유보이윤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 축적률과 마찬가지로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이에 대한 프랑스의 보기가 [그림 7]에 나타나있다. 이로부터 우리는 다음을 발견할 수 있다. 


(1) 이자와 배당보다 먼저, 특히 1970년대 초반 수준 이상으로 이윤율이 강력히 회복되는 추세 

(2) 이윤이 금융으로 이전하는 비율이 점점 늘어나는 것 (이는 유보이윤율을 1970년대 수준으로 묶어두는 결과를 초래) 

(3) 유보이윤율과 축적률의 밀접한 상관관계.29) 


신자유주의의 중심적인 특성은 비금융기관의 투자가 자체 재정 부담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이는 2차 세계대전이래 흔한 일이었고, 지금까지 그러하다. 프랑스에서는 신자유주의의 출현과 함께 종래의 대부에 대한 강한 의존도 사라졌다. 실제 경로의 복잡성이야 어떻든 간에, 신자유주의 안에서 상황은 경제의 생산적 부문에서 발생하는 이윤이 재투자되지 않는 것처럼 전개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실제로 존재하는 신자유주의’의 중심모순이다. 즉 강력한 축적을 장려하지 못한다는 것. 그러나 이것이 여러 부문의 활동들 사이로 자본을 배분함에 있어서 금융의 역할(즉 가능한 한 적정수준 이상의 혁신을 보장해주는 경향)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신자유주의의 이와 같은 특성은 사람을 당황스럽게 만든다. 이자와 배당의 지급을 통해 이윤의 많은 부분이 자본소유자들에게로 흘러 들어가서는, 새로운 대출과 신규 발행된 주식을 통해 비금융부문으로 되돌려지는 자본주의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실제로 가능하다. 그러나 이제까지 역사는 그렇지 않았다. 높은 실질이자율이 대출을 감소시켰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직관적인 것이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추세들에 의한다면 생산적 부문과 주식시장의 관계 속에서, 자본축적에 대한 재정을 부담하기 위해 금융시장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기업의 시장가격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지금까지는 좀 더 중요했고, 또는 적어도 성공적이었다. 물론, 기업들에 의한 자사주 매입은 음(-)의 자본축적이다. 신자유주의의 다른 어떤 특성들도 이보다 더 명확히 그 지배계급들의 기생성을 보여주지는 못하며, 장기적으로는 축적의 필수요건들을 충족시키는 신자유주의의 수완이 중요해질 것이다.30)


2.3.2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 : 미국 헤게모니 하에서 성장


두 번째로 언급할 것은 신자유주의적 교리(위 2.3.1을 보라)의 기본적인 결함이다. 즉 미국과 유럽과 일본 사이의 성장률 차이. 이를 신자유주의의 긍정적 효과로 돌리는 것은 미국 헤게모니의 장점들, 특히 이른바 주조이익(seigniorage)이라고 하는 달러의 우위를 지나쳐버리는 것이다.31) 


잘 알려진 바와 같이, 1980년대 초반 이후 미국의 자본축적은 국내저축이 아니라 해외저축에 의해 충당되었다. [그림 6]에 나타난 대로, 미국의 전체 저축률은 그 시기, 즉 정확히 신자유주의의 출현과 함께 거의 영으로 갑작스럽게 떨어졌다. 어떤 나라도 국내투자와 저축의 격차에서 야기되는 국제수지 적자(external deficits)와 그에 상응하는 자본의 수입을 충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32) 


미국이 처한 이러한 흔치 않은 상황을 설명할 때 국내적․국제적 결정요인들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쉽지 않다. 보통 이윤율은 유럽에서보다 미국에서 더 크지는 않으며,33) 해외자본이 미국의 이윤획득성이 더 높다는 점에 끌렸던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헤게모니에 수반되는 특권들이 갖는 매력을 생각해볼 때, 미국으로의 자본의 유입은 미국의 국내정책의 결과라는 측면이 강해 보인다. 


미국 경제가 보이는 한 가지 국내적 특성은 가계 대출이 1990년대 내내 계속해서 증가해왔다는 점이다.34) 이 사실은 분명히 미국에서 가계에 의한 소비와 주택구입비용 등 소비수준이 아주 높아진 것, 달리 말하면 아주 낮은 국내저축을 설명할 때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이 지점에서 외부의 제약 없는 국제수지 적자에 대한 의존이 중요성을 갖는다. 


따라서 주변국들을 고려하지 말고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의 관점에서만 평가할 때, 신자유주의는 아주 위계화된 체계인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선도적 보기로서, 미국이 보여주고 있는 미덕은 상당부분 지금 미국이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는 사실에서 나온 것이다. 새로운 세력 균형, 곧 일본에 좀 더 많은 권한을 주고 그보다는 적은 권한을 유럽에도 부여하는 것은 자본축적 및 성장과 관련하여 신자유주의가 가지고 있다고 주장되는 미덕들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사례는 신자유주의가 성장을 달성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첫째, 미국의 자본축적이 그리 대단치 않기 때문이며(위의 2.3.1을 보라), 둘째, 미국이 거둔 성과는 대부분 미국이 갖고 있는 세계적 헤게모니에서 나온 것이지, 신자유주의 경로에서 미국이 처한 상대적으로 앞선 위치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3.3 번영과 거품


경제성장을 분석하면서, 특히 미국의 경우 1990년대 후반 주식시장의 호황이 가끔 강조된다.35) 우리는 이를 신자유주의가 수요수준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킬 능력이 있는지에 문제를 제기할 근거로 볼 수도 있다.36) 만약 이러한 견해가 적절한 것이라면, 이는 진정 신자유주의 하에서 자본주의의 작동이 보이는 중요한 모순임을 알리는 신호가 될 것이다. 


지난 20년과 20세기 초의 상황이 비슷하다는 점, 그리고 대공황의 발생은 여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1920년대와 20세기의 마지막 15년 사이에는 많은 공통점들이 있다. 이를테면, (1) 기술과 분배의 새로운 경향, (2) 과감한 통화금융 정책의 혁신, (3) 합병의 물결, 그리고 어쩌면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4) 주가지수의 갑작스런 상승. 케인즈주의 경제학자들은 수요의 수축이 1929년 말 월스트리트의 붕괴에 뒤이어 발생했다고 주장하면서, 수요와 주가지수 사이의 연관성을 대공황과의 관련 속에서 파악한다.37) 이러한 주장은 전에는 경제활동이 주식시장의 호황, 즉 부의 효과(wealth effect)의 결과로서 자극을 받았었다는 것을 뜻한다.38) 생각건대 이는 적어도 최근의 미국의 번영에 대해서도 1990년대까지는 유효한 주장일 수도 있다. 


미국의 최근 소비수준에 대한 이와 같은 해석이 유효하려면, 투기적 붐이, 일본이라는 명백한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공통된 것이며 미국에서 특별히 더 강하다고 볼 수는 없다는 문제점이 풀려야 한다. 보기를 들어 프랑스에서도 규모나 시기상으로 미국과 완전히 같은 거품이 있었지만, 수요가 미국과 같은 수준만큼 자극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을 달리하는 것은 좀 더 근본적인 이유 때문이다. 


일부 가계가 소유하고 있는 주식의 가치가 상승한 것이 그들의 소비와 대출행위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통화정책은 여전히 강력할 뿐만 아니라(위의 2.2.1과 [상자글]을 보라) 다른 결정요인들의 압박에 대하여 수요수준을 조정할 수도 있다(사후적으로). 주식시장의 호황이 없었더라면, 통화당국은 자신의 과업을 훨씬 더 쉽게 수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통화금융의 틀이 그 과정에서 동요하지만 않는다면,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시장조정(market adjustment)도 쉽게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미국에서 주식시장의 거품, 즉 가계 신용대부의 증가와 국제수지 적자가 공존하면서 많은 혼란이 야기되었다. 다음과 같이 극히 비정상적인 사건의 연쇄가 진행되고 있다. 즉, (1) 대출이 가계의 지출(소비와 주택구입)을 자극한다. 아마도 인구의 일부는 주식시장의 호황에 자극 받았을 것이다. (2) 총지출, 즉 가계지출과 기업투자의 합의 증가분은 국내가격에 별다른 인플레이션을 야기하지 않고 해외로부터 구매된다. (3) 통화정책에 의해 가격 안정성이 통제됨으로써, 생산 잠재력의 정상적 가동이 매우 세심하게 보증된다. 


전반적으로 합병의 물결, 경제의 한 부문에서의 수익성 회복, 그리고 금융 메커니즘의 탈규제화라는 맥락 속에서 투기적 거품은 예측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믿을 수 없는 것은 그것이 특히 신자유주의 하에서 수요 일반의 형성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였는가 여부이다. 만약 필요한 거시적 정책들이 시행되지만 않았더라면, 그러니까 충격이 은행제도의 안정을 급격히 해쳤거나 공황이 점점 국제적으로 발전했더라면, 거품의 붕괴 이후에 커다란 공황이 뒤따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과정들은, 1990년대 후반기의 경우에서처럼 안정의 조건이 보장될 때 수요의 형성을 지배하는 메커니즘들과는 구별된다. 거품은 신자유주의의 생존을 위한 조건이 아니다. 거품이 없었더라면, 신자유주의는 자본축적과 경제성장을 달성하기에 더도 덜도 없이 적합했을 것이다. 


2.4 기술 진보


대략 1980년대 중반부터 기술변화를 위한 우호적인 조건들이 형성되기 시작했음은 점점 더 자명해진다(1.2.5를 보라). 미국에서와 같이 유럽에서도 자본생산성의 하향 추세가 저하되었을 뿐만 아니라 역전되기까지 했으며([그림 1]을 보라), 이윤율은 상승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추세들의 확산과 지속은 신자유주의,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해 아주 가운데요한 뜻을 갖는다. 기술의 점진적 효율화는 꾸준하고 지속적인 성장은 물론 그것의 국제적 확산(물론 자본주의에 내재하는 한계들을 포함하여)과 새로운 사회적 타협의 시행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따라서 문제는 신자유주의와 기술진보의 성격들 사이의 가능한 연관성에 대하여 제기되어야 한다.39) 


우리는 20세기 초기와 같이 또 한 번의 경영자혁명이 구조적 위기를 따라 현재 진행 중이라고 믿는다(1.2.5를 보라). 이 둘 사이에는 비슷한 점은 아주 크다. 20세기 초의 경영자혁명은 그 이전에 진행된 합병물결(‘기업혁명’)과 긴밀하게 연관된 것이었다. 금융과 경영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맥락에서 서로 연관된 것이었다. 20세기말 2,30년 동안 일어난 변화에 대해서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명백히 새로운 기술들은 이전의 R&D의 혜택을 받고 있으며 기본적으로 기술자들과 전문가들의 작품이랄 수 있는 일종의 경영 성과로 보인다. 이전의 합병물결, 즉 복합기업체(conglomerate) 물결은 그때 풍미하던 독점금지법과 관련하여 경영자 혁명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나, 신자유주의 하에서 금융은 법을 바꿔놓았고 친(親)합병적 견해가 채택되었다.40) 금융은 경제의 구조조정을 위해 법률구조와 그 적용에 변화를 가하였고, 여기에 필요한 적절한 역할을 수행하고 자금을 공급하였다. 덧붙여 좀 더 엄격한 이윤율 기준을 부과하였다. 이러한 작업은 사후적으로는 다수의 대중에게 높은 비용을 부과하면서 이윤율 위기의 압력 하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이는 자본주의에 전형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금융은 이를 자신의 업적이라 주장하는 것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금융은 경제의 구조조정에 이바지했다. 그렇다고 해서 금융이 이러한 추세를 연장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추세가 이어지는 것은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일반의 미래에 대해 중요한 뜻을 갖는다. 이러한 측면에 대하여 우리는 어떠한 예측도 할 수 없다. 20세기의 경험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대공황의 보기에서 볼 수 있듯이, 특정한 위기들이 늘 급속한 기술변화를 수반하는 한편, 기술적․조직적 혁명의 이익이 몇 십 년 동안 지속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Ⅲ. 신자유주의를 넘어서? 


이 마지막 절에서 앞서 소개되었던 구별들, 즉 생산관계의 변형, 경향과 위기, 그리고 권력지형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구별을 이용하여 신자유주의의 미래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3.1 경향과 위기


이 글이 다루고 있는 기간 동안 일어난 모든 중요한 변화가 지닌 공통된 특성은 그것들이 위기와 갖는 관련성이다. 경제적 ‘폭력’의 이 같은 기본적 기능은 자본주의의 핵심적 특성으로 남아있다. 


첫 번째이자 매우 극적인 발전, 이를테면 어쩌면 이는 신자유주의의 꿈과 상충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바로 역사는 스스로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첫 번째 이행 시나리오는 엄청난 불안정의 시나리오이다. 20세기의 초기에 그랬듯이, 자본주의와 금융 헤게모니의 새로운 국면을 여는 기술변화의 바람직한 경로는 1930년대의 대공황과 같은 대규모의 불황에 의해 갑작스럽고도 잠정적으로 방해받는다. 대공황은 중요한 통화금융적 요소를 지닌, 19세기 후반 금융 헤게모니 하에서 구조적 공황으로부터 회복의 위기였다. 전반적인 사건의 전개과정을 다음과 같이 재구성할 수 있겠다. (1) 1970년대의 구조적 공황 (2) 지금 진행되고 있는 새롭고 바람직한 경향들과 또한 지금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금융 헤게모니 (3)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대규모 공황 (4) 두 번째 금융규제와 새로운 사회적 타협의 시기. 


만약 기술변화의 경로가 더디거나, 지난 15년 동안 관찰된 바람직한 경향들이 종료되거나 역전된다면, ‘중요한’ 공황들을 통하여 여러 난점들이 감지될 것이다. 이 공황들은 사회적 긴장들, 보기를 들어 임금의 정체나 퇴직연금에 대한 자금압박 때문에 일어난 긴장들과 새로운 통화 금융적 규약들을 내놓을 수도 있는 국제적 대립 때문에 악화될 것이다. 기존의 특권을 유지하지 못하는 금융은 차츰 후퇴해야만 할 것이다. 금융 측에 귀속되는 이윤은 줄어들 것이고 새로운 규제들이 부과될 것이다. 중기적으로 신자유주의는 이와 같은 잠재적 시나리오에 부딪히고 있다. 


좀 더 극적인 발전으로는 1890년대 또는 1970년대와 같이 구조적 공황이 새로 터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역사는 또 한 번 되풀이되는 셈이고 그러한 위기를 좇아서 1970년대와 1980년대 사이의 이행기에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권력지형이 형성될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요소는 금융이 억압된다는 것이 아니라 지배적으로 된다는 것이다. 


3.2 생산관계들


분석수준을 좀 더 깊이 있게 잡아본다면, 생산관계가 주된 이슈로 떠오른다. 자본주의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것이 사회화가 점진적으로 확대되는 방향으로 변형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1) 개별 생산단위들의 규모 확대와 그것들 사이의 상호의존성 증가, 거시정책들의 중앙에서 조정과 규제 틀의 확립, 소유의 집중과 자본배분, 교육․연구에 대한 사회적 통제 등, 그리고 (2) 금융․비금융 기업들 안에서 위와 같은 업무들의 수행으로 상징되는 기능들을 전문가에 위임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위와 같은 발전들을 방해하지 않고 강화시켰기 때문에 발전할 수 있었다. 모든 보기에서, 문제는 목표의 설정이다. 바로 자본가들의 편에 서서, 다른 계급들 또는 국가들에 의해 양산되는 비용을 혐오하면서 기업과 거시경제를 운영하는 것. 


신자유주의가 앞서 열거된 모든 요소들 속에서 사회화를 지속해나갈 수 있을지는 명확하지 않다. 따라서 이러한 역사적 과업과 자본 소유자들의 이익이라는 좁은 관점 사이에 근본적인 모순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이 글에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한계를 기술하였다. (1) 자본주의적 소유제의 현재 형태들은 여전히 금융에 대한 주도권을 상당정도 보장하고 있다. 그것은 통화금융적 안정성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첫째, 이 형태들은 국제적 금융공황이나 주식시장의 붕괴에서 명백히 드러나듯이 여전히 금융투자자들로 하여금 잠재적 손실에 부딪힐 때면 언제든 일괄적인 투자 철회를 허용하고 있다. 거시정책들은 오직 ‘정상적인’ 상황에서나 효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통화금융상의 동요는 정책의 효율성을 위태롭게 한다. 둘째, 소유제의 또 다른 일면, 즉 산업과 기업들 사이에서 자본의 배분은 여전히 연기금이나 보험기금과 같은 주요 금융기관들의, 오직 그들의 고객들의 이익에 따라 아주 쉽게 변화하는 기대와 그 결과로 양산되는 부정적인 거시적 결과들에 극도로 좌우된다는 점이다. (2) 첫 번째 국면에서 바람직한 기술변화의 새로운 경로를 세우는 데에 금융이 개입했지만,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주요 모순들 가운데 하나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그 모순이란 꾸준한 기술변화의 경로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 수준의 R&D 사회화와 혁신의 단행을 요한다. 즉 개별기업들 또는 기업연합(corporate alliances)의 기본적인 이윤극대화 요구를 넘어서는, 생산관계의 좀 더 근본적인 변형을 요구하는 것이다. 


3.3 권력지형 : 대안적 쟁점

3.3.1 신자유주의 : 역사의 종말?


지난 20년 동안의 사건들 및 그와 관련된 선전을 보면 신자유주의 하에서 지배계급들의 자본주의적 꿈의 윤곽들을 쉽게 그릴 수 있다. 자본주의는 역사의 종말이다. 자본의 소유자들은 그들의 지위와 소득을 영속화시키고 최고 경영자들과의 긴밀한 협조 속에서 지배력을 유지해나간다. 천천히 상승하는 구매력과 건강보험, 연기금으로부터 이익을 얻는 상층 중간계급들과 보다 폭넓은 타협이 수립된다. 이들은 (‘연착륙’이 이루어진 다음) 주식시장 호황과 높은 이자율에서 나오는 이익을 지배계급들과 함께 나눈다. 축적률은 어느 정도로 유지되고 위기의 규모는 제한된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기술변화가 바람직한 형태로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임금소득자들의 위계는 강력하게 유지되고 있지만, 상황은 통제할 수 있다. 주변국으로 자본수출 덕분에, 주변국들의 인구의 일부가 차츰 중심국의 저임금 계층과 비슷한 지위로 이동하게 되고, 소수의 엘리트들은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의 지배집단들과 결탁한다. 미국이 상황을 주도하고 유럽과 일본이 그 뒤를 따르며,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그들에 협조적인 국가들이 대열을 이어나간다. 


그러나 상황은 이보다는 많은 갈등을 일으키며 일어날 수 있다. 가장 통찰력 있는 신자유주의 옹호자들은 그렇게 내다보고 있다. 분배에 따른 갈등은 계속해서 결정적인 요소가 될 것이며, 사회적 대립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이 벌이는 경쟁과 주변국에서 힘에 의한 반제국주의 투쟁도 중요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안정은 기본적으로 보장될 테지만, 주기적 공황이라는 대가가 필요할 것이다.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스스로를 변형시켜나갈 것이지만, 권력지형의 기본적 특성들은 유지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어떻게 국제적 경쟁을 이끌어나갈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지배계급들의 우위를 안정적으로 유지시킬 것인가가 문제로 떠오를 것이다. 


3.3.2 신자유주의를 넘어 역사가 지속될 수 있는가 


앞서 제시된 대안적 시나리오들 가운데 하나를 따라서, 신자유주의 권력지형이 안정되지 못하는 결과가 일어날 수도 있다. 1970년대에 일어난 구조적 공황이 자본소유자가 되돌아 올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듯이, 우리가 한 분석의 논리적 귀결도 경영자 계층과 나머지 노동력 또는 적어도 그 일부 사이에 새로운 타협이 마련되어야만 할 것이다. 계급투쟁의 형태와 정도에 따라, 경영자와 대중 사이에 놓인 역관계의 비중은 더할 수도, 덜할 수도 있다. 즉 새로운 형태의 케인즈주의에서 급진적 이행에 이르기까지, 어떤 형태라도 있을 수 있다. 


새로운 타협이 정확히 어떤 사회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든지 간에 그것과 관계없이 타협을 통해 해내야 할 꼭 필요한 과업은 자본주의에 있다. 금융에 대한 첫 번째 역사적 패배를 겪으며, 경기순환을 안정화하고 금융 메커니즘과 제도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넓은 뜻에서 거시경제를 규제하는 사회화가 도입되었다. 이와 같은 수단들을 새로운, 어떤 뜻에서는 ‘이미 있어왔던’ 목표물로 나아가게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포스트 신자유주의’를 위한 의제에는 좀 더 효율적인 기술진보와 축적을 이뤄내려는 사회화의 새로운 단계들이 자리한다. 이를 위한 있을 수 있는 방향은 케인즈주의적 타협의 시대에 이미 제안되었다. 그것 가운데, 이를테면 기술변화의 바람직한 경로를 보존하는 것에서부터 강력한 축적에 이르기까지 성공적으로 시행된 것은 하나도 없다. 새로운 타협의 경제(학)는 타협의 정치(학)를 통해 대부분 결정될 것이다. 자본주의는 역사의 종말이 아니다. 


옮긴이 김 민 





1) 이 글은 Leo Panitch & Colin Leys ed.,  Socialist Register 2002 : A World of Contradictions, (London : Merlin Press), pp. 43-72에 있다. 


2) G. Duménil, D. Lévy, 2001, “Costs and Benefits of Neoliberalism. A class analysis,” Review of International Political Economy, 8. 4. 2000, Crise et sortie de crise. Ordre et désordres néolibéraux,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Paris.  

 

3) 좀 더 심도 있는 분석은 다음을 참고할 것. G. Duménil & D. Lévy, “Periodizing Capitalism. Technology, Institutions, and Relations of Production,” in R. Albritton, M. Itoh, R. Westra, A. Zuege, Phases of Capitalist Development: Booms, Crises, and Globalization, London: Palgrave, 2001. 

 

4) 우리는 이전 저작에서 이러한 메커니즘, 특히 기술변화의 패턴, 이윤율 하락과 공황의 관계 따위를 분석했다. 아래의 글을 참조할 것. G. Duménil & D. Lévy, The Economics of the Profit Rate: Competition, Crises, and Historical Tendencies in Capitalism, Aldershot: Edward Elgar, 1993과 “Technology and Distribution : Historical Trajectories à la Marx,” Journal of Economic Behavior and Organization, 2000(근간). D. Foley, 2000, “Endogenous Technical Change with Externalities in a Classical Growth Model,” Department of Economics, Graduate Faculty, New School University, New York, Journal of Economic Behavior and Organization (근간)  

 

5) 힐퍼딩은 그것의 가능한 형태들 가운데 하나를 분석했다. R. Hilferding, Finance Capital: A study of the Latest Phase of Capitalist Development, London & Boston : Routledge and Kegan Paul, [1910] 1981.  

 

6) G. Duménil & D. Lévy, La dynamique du capital. Un siècle d'économie américaine, Paris: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1996, 22장.  

 

7)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자본을 자본가들 사이에서 배분하는 것과 관련된 문제도 있다.  

 

8) 파산, 금융공황, 지불유예 등을 막으려고.  

 

9) 우리가 말한 맑스주의적 분석틀이란 근본주의fundamentalism와 수정주의revisionism의 결합으로 생각될 수 있다. 새로운 계급형태에 대한 고려는 바로 이런 수정주의의 핵심이다. 착취와 생산직․사무직 노동자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분석은 현대 맑스주의가 부딪히고 있는 문제들의 전형적인 일면이다.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태도가 구별될 것이다. (1) 맑스의 분석틀에 대한 엄격한 고수 ― 잉여가치는 생산직 노동자들로부터 나온다. (이러한 난점이 쉽게 무시되지만 않는다면 다른 집단들은 쁘띠부르주아지로 분류된다.) (2) 암묵적인 수정 ― 생산직․사무직 노동자를 두루 포괄하는 새로운 프롤레타리아트 또는 노동계급이 정의된다. 우리의 관점은 두 번째 것과 가깝지만, 우리는 그것이 뜻하는 개념적 도약을 분명히 한다.  

 

10) 이는 금융에 대한 ‘제도적’ 정의이다. 이는 계급으로서 더욱 엄밀히 정의될 수도 있다. 금융자본이라는 개념은 산업자본과 은행자본 사이의 빈틈없고 위계적인 결속을 뜻하는 것으로, 힐퍼딩Rudolf Hilferding([금융자본Finance Capital])이 만든 용어이다. 미국 사회학자들은 전쟁이 끝난 뒤 미국의 자본가들(주주들과 이사회 임원들) 사이에서 금융과 비 금융권 기업에 이르는 소유권과 영향력을 지닌 금융자본가라는 부분집합을 구별해 내려고 시도했다. M. Soref & M. Zeitlin, “Finance Capital and the Internal Structure of the Capitalist Class in the United States,” in M. Mizruchi & M. Schwartz, Intercorporate Relations. The Structural Analysis of Business, Cambridge :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7. K. van der Piji, The Making of an Atlantic Ruling Class, London & New York : Verso, 1984을 참조할 것. 

 

11) 어떤 나라에서는 생산체계의 대부분이 국가 관리의 통제 하에 있기도 한다.  

 

12) T. Fergurson & J. Rogers, 1986, Right Turn. The Democrats and the Decline of American Politics, New York: Hill and Wang, 1986. 

 

13) 이는 근본주의(이윤율 저하라는 측면에서)와 수정주의(회복국면들의 구별이라는 측면에서)의 결합에 대한 두 번째 보기가 될 것이다. 이에 대하여 우리는 만델(Ernest Mandel)과 견해가 같다. E. Mandel, Long Waves of Capitalist Development. The Marxist Interpretation, Cambridge and Paris: Cambridge University Press & Éditions de la Maison des Sciences de l‘Homme, 1980.  

 

14) 좀 더 가까운 시기에 나온 시계열 분석은 G. Duménil & D. Lévy, Crise et sortie de crise. Ordre et désordres néolibéraux, Paris :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2000에 있다.  

 

15) 본 논문에서는 경쟁의 형태변화와 같이 자본주의의 시대구분의 지표로 종종 이용되는 현상들, 특히 경쟁자본주의와 독점자본주의를 배제한다. 이러한 선택은 의도적인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구분의 타당성에 의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의 형태변화는 다른 현상들과 결합하여 생각할 수도 있고(레닌의 제국주의 분석에서처럼),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도 있다.  

 

16) ‘자유주의’라는 말 자체가 이미 아주 모호한 개념이다. 예컨대 J. Weinstein, The Corporate Ideal in the Liberal State, 1900-1918, Boston: Beacon Press, 1968의 서문을 보라.  

 

17) 1995년에 이들 세 나라의 산출량은 미국의 70%에 달했다.  

 

18) 이 분석은 Duménil & Lévy, “Costs and Benefits of Neoliberalism,” Crise et sortie de crise, 2001에서 빌려온 것이다.  

 

19) UNDP, Human Development Report, Bruxelles : De Boeck, 1999.  

 

20) 금융소득(이자, 배당, 자본이득)을 측정할 때,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21)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은 민주화에 대한 점증하는 요구 속에서 (값싼 노동과 자연자원의 소진과 함께) 한 가지 모순을 발견했다. 그에 의하면 이는 자본주의의 마지막 폭발을 일으킬 것이며, 현재 자본주의는 마지막 콘트라티예프 장기파동에 진입하고 있다. I. Wallerstein, “Globalization or the Age of Transition? A Long-Term View of the Trajectory of the World-System,” International Sociology, Vol. XV(2), 2000.  

 

22) Federal Deposit Insurance Corporation, History of the Eighties. Lessons for the Future, Washington : FDIC, 1997.  

 

23) 우리는 2000년부터 시작된 미국 경제성장의 둔화([그림 4])는 고려하지 않았다. 지금 금융의 불안정성을 위협하는 맥락 속에서 언제나 실현 가능하고 세계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좀 더 극적인 여타의 국면들과는 상관없이, 미국은 새로운 침체기로 빠질 수도 있다. (유럽은 아직 아니지만.) 

 

24) 이론적 설명과 모델은 G. Duménil & D. Lévy, La dynamique du capital. Un siècle d'économie américaine, Paris :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1996의 세 번째 부분에 소개되어 있다.  

 

25) 유럽에서는 대외계정의 균형이 정책의 목표이지만 미국에선 그렇지 않다(2.3.2를 보라).  

 

26) 브레튼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 : 1944 년 7월 미국의 브레튼 우즈에서 1930년 이래 각국 통화가치 불안정, 외환관리, 평가절하경쟁, 무역거래제한 등을 시정하여 국제무역의 확대, 고용 및 실질소득증대, 외환의 안정과 자유화, 국제수지균형 등을 달성할 것을 목적으로 체결된 브레튼 우즈 협정에 의하여 발족한 국제통화체제를 말한다. 동 협약의 기본이념은 고정 환율과 금환본위제를 통하여 환율의 안정, 자유무역과 경제성장의 확대를 추구하는 데에 있다. 이를 실현하려고 각 국에 필요한 외화를 공급하는 국제통화기금과 전후부흥과 후진국개발을 위한 세계부흥개발은행이 창설되었다. 그러나 브레튼 우즈 체제는 1960 년대 이후 지속된 국제유동성 문제와 기축통화인 달러화 신용의 계속적인 실추로 붕괴의 과정에 들어섰고 마침내 1971년 미국이 달러화의 금 태환을 정지하자 와해되었다.  

 

27) L. Panitch, “The New Imperial State,” New Left Review, March-April 2000. 

 

28) 고정자본의 수명 단축 때문에, 통상적으로 행해지듯 총투자율보다는 순투자율을 고려하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29) 1990년대 동안 작은 차이는 부채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기업들의 필사적인 시도를 반영하고 있다. 이는 자기금융 비율이 100%를 초과하는 것을 보면 잘 드러난다.  

 

30) 앞으로 은퇴한 뒤 생활보장(retirement plan)에 자금을 공급하는 것은, 그것의 제도적 형태나 임금 생활자들 사이에서 재분배, 또는 연기금보다는 경제성장(그리고 기술진보)에 의존한다는 것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연기금이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으려면 저축률과 경제성장률을 제고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그렇지 못하다. 재분배냐 연기금이냐를 선택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어느 정도 평등주의적 틀이다.  

 

31) P. Gowan, The Global Gamble. Washington's Faustian Bid for World Dominance, London: Verso, 1999. 이번 절에서 우리는 미국의 지배의 다른 측면들, 그러니까 국제무역, 국제적 금융협약, 정치적 압력, 군사적 개입 등에서 미국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느냐에 관한 문제들은 다루지 않을 것이다.  

 

32) 분명 달러의 교환비율도 문제가 된다. 1980년대 초의 갑작스러운 상승이라는 예외가 있지만, 달러의 실질 환율은 특히 엔화에 대하여 비교적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약세가 무역적자를 상쇄시켜주진 못했다.  

 

33) 노동 비용이 유럽보다 미국에서 더 높고, 기술격차가 이러한 차이를 상쇄한다는 견해도 실제와 맞지 않는다.  

 

34) 프랑스와 비교해보면 중요한 차이점이 드러난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까지 양국의 가처분 소득에 대한 가계의 총부채는 60~70% 주변에서 거의 비슷했다. 이러한 부채율은 1990년에 증가하지만, 이후 프랑스의 경우 그 수치가 하락한 반면 미국에서는 계속해서 증가하여 95%라는 보기 드문 수준에까지 올랐다.  

 

35) R. J. Gordon, “Technology and Economic Performance in the American Economy,” Working Paper, Conference of the Centre Saint-Gobain pour la Recherche en Économie, 2000.  

 

36) F. Chesnais, “La ‘nouvelle économie’ : Une conjoncture propre á la puissance hégémonique américaine,” in Séminaire Marxiste, Une nouvelle phase du capitalisme?, Paris: Syllepse, 2001.  

 

37) 우리가 보기에 이러한 해석은 모호하다. (1) 주식시장은 산업생산 이후에 폭락했고; (2) 불황은 주식시장의 회복 이후에도 한동안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38) 그러한 모델에서는 최종소비자의 부―그들의 소득과는 별도로―가 그들의 수요함수에서 하나의 변수가 된다.  

 

39)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다음과 같이 다양한 분석수준들이 지니는 상대적 자율성이다: 생산관계들, 경향과 공황, 권력지형.  

 

40) G. Duménil, M. Glick, & D. Lévy, ‘The History of Competition Policy as Economic History’, The Antitrust Bulletin, Vol. XLII(2), 1997. 법률에 의해 비슷한 활동을 하는 기업들 사이의 합병이 제한되었으므로 복합기업체는 기본적으로 사업다각화(diversification)라는 특성을 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