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실천연구소

[정세분석] 몇 백만이 이주노동자의 권리 확보를 위해 행진하다 본문

실천지 (2007년)/2007년 4월호

[정세분석] 몇 백만이 이주노동자의 권리 확보를 위해 행진하다

사회실천연구소 2014. 11. 7. 18:14

몇 백만이 이주노동자의 권리 확보를 위해 행진하다 ― 모든 반이민법을 반대하라!

2006년 4월 21일

혁명정당추진동맹 (LRP)


지난 몇 십 년을 통틀어 가장 거대한 노동자들의 분출이 미국에서 전개되고 있다. 올 봄의 거대한 시위는 의회에서 진행 중인 사악한 반이민 입법에 저항하면서 모든 이주노동자들의 합법화를 요구하고 있다. 3월 25일 LA에서 벌어진 행진에는 1백만 여명이 참여하였고, 시카고와 댈러스에서는 거의 50만 명이, 그리고 여러 다른 도시들에서는 각각 몇 십만 명이 참여하였다. 4월 10일에만 전국적으로 2백만 명이 참여하였다.


시위자들은 주로 멕시코, 라틴아메리카, 카리브해 연안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거대한 숫자와 경제에서 필수적인 역할이 갖는 힘을 느끼고 있다. 그들은 또한 라틴아메리카에서 노동계급 투쟁과 반제국주의 투쟁의 위대한 전통을 통해 영향을 받았다.


이주노동자들이 벌인 거대한 시위는 아주 인종차별적이고 반노동자적인 센센브레너 법안(하원 4437)을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있었다. 이 법안은 지난해(2005년) 12월 하원을 통과했다. 이 법안은 1천 2백만 명에 달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중죄인으로 낙인찍고 그들을 돕는 모든 이들을 범죄자로 취급하려 했다. 또한 멕시코 국경을 따라 700마일에 이르는 장벽도 세울 예정이었다. 행진은 의회가 그 악몽 같은 입법을 철회하도록 결정적으로 강제하였다.


이러한 부분적 승리는 억압받는 이주노동자들의 의식에 이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중대한 교훈, 즉 그들 자신의 힘을 깨닫고 있다. 최근 프랑스 노동자들과 학생들의 용솟음처럼, 미국에서 일어난 이주노동자들의 행진은 지배계급의 공격을 저지하는 것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몇몇 도시들에서는 몇 만 명의 노동자들이 행진에 참석하려고 그들의 일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의존하고 있는 몇 백 개의 업체들이 문을 닫아야 했다. 다음 번 시위가 예정된 5월 1일에는 많은 이주노동자 조직들이 “위대한 전미 보이코트,” 즉 “일하지 않고, 학교에 가지 않고, 팔지도 않고, 사지도 않는” 날을 호소하고 있다. ‘멕시코계 미국인 정치연합’을 포함한 일부는 심지어 그것을 “총파업”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에 맞서서 LA 추기경 로저 마호니 같은 저항 지지자들과 세계서비스노조(SEIU) 같은 노동조합들은 이러한 움직임이 너무 전투적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그들은 선거주의에 의지하기를 더 좋아하며, 지배계급에게 호소하는 것에 길들여져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투쟁에 박차를 가한 것은 강력한 대중 행동이며, 오직 훨씬 더 도전적인 대중 행동만이 미래의 승리를 획득할 수 있다.


하지만 보이코트와 파업을 호소하는 것에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판매 보이코트로는 단지 순간적인 성공만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대중파업은 이 사회를 경영하는 자본가들의 이윤을 침해할 수 있다. 하지만 노동조합 같은 대중적인 노동자 조직들의 지원이 없는 파업이나 “노동 보이코트”는 가장 취약한 노동자들에게 그들의 사장들이 가할 보복을 감수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은 노동조합들이 거리에서만이 아니라 직장에서 대중 행동으로 그들을 방어하도록 요구하라고 자신의 지도자들을 압박해야 한다. 모든 노동조합 투사들도 이러한 연대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 이주노동자들은 투쟁을 효과적으로 전진시키려면 직장에서 그리고 그들의 공동체 속에서 새로운 조직을 건설하는 일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제국주의와 강제된 이민


모든 피부색이 다른 이주노동자들을 추방하고 싶어 하는 인종차별주의 ‘애국자’들이 간절히 바랐지만, (등록된 또는 미등록된) 이주노동자들은 미국에 머물러 있고 다가올 계급투쟁에서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미니트멘(Minutemen) 같은 자들이 “미국의 갈색화”에 경악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멈출 수는 없다. 20세기가 시작될 무렵에, 그들의 정치적 선조들은 확장되는 산업 도시들로 쏟아져 들어온 몇 백만 이주노동자들을 놓고, “럼주, 로마 가톨릭, 혁명”이 미국을 장악하려 한다며 몹시 불평하면서 입에 거품을 물었었다. 이제 그들은 인종차별주의가 가톨릭과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보다 더 효과적으로 작동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시위자들의 규모는 예상치 못한 것이었지만, 그들이 표현한 분노는 마땅했다. 이주자들 대다수는 미국에서 비참한 일자리와 살인적인 저임금 아래 끝없는 노동에 부딪히고 있지만, 고국에서 겪은 절망적인 빈곤 때문에 미국으로 왔다. 세계 자본주의, 특히 미국 제국주의가 고국에서 대중들을 너무 철저하게 착취하고 굶주리게 하고 황폐화시켜 왔기 때문에, 미국에서 삶이 아무리 고단하고 편협할지라도 그들은 떠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제국주의는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의 아주 가난한 나라들을 NAFTA 같은 “자유 무역” 정책, 세계은행과 IMF의 “구조조정” 정책, 국유산업의 사유화를 통해 착취해 왔다. 제국주의는 셀 수 없는 노동자들을 실업 상태로 내몰았고, 셀 수 없는 농민들을 쓸어내 땅 없는 난민으로 만들어 버렸다. 고국을 떠나도록 강제당한 그들은, 어디든 특히 미국 같은 제국주의 국가에서 피난할 수 있고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을 모든 권리를 갖고 있다.


미국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수입하게 되어 행복하다. 적절한 서류를 갖추지 못한 이주노동자들은 열악한 임금에 수당도 없이 일하도록 강제당하며 감히 불만을 제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본가들은 이러한 저임금을 나머지 노동자 계급의 생활수준을 하락시키는 데 사용한다. 또한 사장들은 앞서의 식민지와 반식민지 나라들에 있는 공장에 투자했다. 그 결과 이곳에서 자본가가 지급하는 아주 낮은 임금은 미국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을 낮추는 데 쓰인다. 


자본가들은 노동자 집단들이 줄어드는 일자리와 떨어지는 임금 때문에 훨씬 더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서로에게 적대하도록 만들려고 노력한다. 백인들은 흑인, 라티노, 외국에서 태어난 노동자들에 맞서고, 또 후자는 서로에게 맞서는, 모두가 모두에게 맞선 전쟁 속에서 말이다. 각 나라의 노동자들은 모든 곳에서 임금을 낮추기 위해 서로 경쟁하도록 강요당한다. 노동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둘 가운데 하나다. 하나는 우리가 바닥을 칠 때까지 사장들이 우리들 각각을 갖고 놀도록 방치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모두가 혜택 받는 적절한 임금과 사회보장을 위하여 단결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그러한 투쟁은 자본가들의 이윤을 위협하며,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함으로써만 성공할 수 있다.


시위자들을 잘못 이끄는 지도부


시위자들이 압도적으로 센센브레너 법안에 반대하긴 했지만, 대다수 지도자들과 다수 시위자들은 경쟁법안인 매케인-케네디 법안을 지지했다. 그 법안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많은 벌금을 내고 고분고분하게 처신할 경우 합법적 지위를 얻을 수 있는 제한된 경로를 열어줄 거라는 점 때문이었다. 즉 몇 십만 이주노동자들이 미국에서 임시로 일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초청 노동자” 제도 때문인데, 하지만 그들은 연수생 지위로 사장에게 매어 있으며, 해고와 추방에 대한 항상적인 위협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그들은 파업, 항의, 또는 심지어 과격한 말투조차 감히 하기 두려워하는 사실상 계약된 노예가 될 것이다. 게다가 매케인-케네디 법안은 센센브레너 법안처럼 (“라 미그라”로 불리는) 가증스러운 이민경찰을 증원하고 연방·주·지역 차원에서 국경순찰 기관을 강화하도록 하고 있다.


시위 지도부는 가톨릭교회, 전도사와 성직자들, 다양한 민주당 정치인들, 중간계급이 이끄는 이주자 방어와 사회복지 단체들, 그리고 일부 노동조합들의 수중에 있다.


가톨릭교회는 라티노들 사이에서 기반을 굳히려고 하는데, 라티노들은 가톨릭 신자들 가운데 40%를 차지하고 있다. 하나의 제도로서 교회는 착취하는 자본가 계급과 값싼 노동에 대한 그들의 열망에 깊이 연결되어 있다.


노동조합들은 분열되어 있다. (미국의 오래된 노총인) AFL-CIO는 두 개의 법안에 모두 반대하지만 운동에서 별 역할을 못하고 있다. 새로 만들어진 노총인 승리혁신연맹(Change to Win) 설립을 주도했고 다수 이주노동자들을 조합원으로 갖고 있는 세계서비스노조(SEIU)는 큰 역할을 하고 있지만 매케인-케네디 법안 지지에 결합되어 있다.


부르주아들의 한 분파는 사악한 억압을 요구하고 인종차별주의를 자극하고 있다. 다른 한 분파는 (운동 안에서의 그 동맹자들을 포함하여) 억압받는 자들에게 시민권이라는 약속을 던지면서 착한 처신을 호소하고 있다. 공화당 의원이든 민주당 의원이든 모든 지배계급은, 기꺼이 초과착취 당하려고 하는 가난하고 절망적인 노동자들의 저수지를 건설하고자 한다. 양측은 이주노동자들의 지도부에게 조용히 하라고 위협하기를 원하며, 모든 노동자들의 임금과 근로조건을 침식하고자 한다. 그들은 또한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이주노동자들이 그들의 일자리를 위협한다고 말하면서 노동자 계급의 부문들 사이를 갈라놓고 싶어 한다.


노동자 계급의 응답


노동자 계급의 해답은 전혀 다르다. 그것은 (미국 시민이 되는 것을 선택하든 안하든) 모든 노동자들의 완전하고 등등한 권리, 인종차별주의와 국수주의적 차별대우의 철폐, 원하는 나라에서 자유롭게 생활하고 노동할 수 있는 민중들의 민주적 권리, 질 좋고 무상인 교육·의료·연금, 모두를 위한 일자리를 만들어 낼 거대 공공노동 프로그램 등을 포함한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휩쓴 이후 재건에 들어간 막대한 수요는, 만들어져야 할 일자리가 부족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하지만 이윤의 관점에서 경제적 결정이 이루어질 때, 인간의 요구는 존중되지 않는다. 오로지 노동자 계급이 운영하는 혁명적인 사회만이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


시위 대중들은 아직 그들의 현 지도부와 그 정강에 대한 대안을 보지 못했다. 이주자들이 성조기를 펄럭이며 휘두르는 것은 그들이 위협하려는 게 아니며 좋은 대우를 받을 만하다는 메시지를 보내려는 하나의 시도다. 하지만 워싱턴 정부가 뒤로 물러서게 만든 것은 깃발의 물결이나 구걸이 아니라 시위자들의 도전이었다.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 해 연안에 있는 많은 나라들의 국기가 또한 펄럭였다는 것은 다른 성격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자부심의 과시이자, 편협함과 국수주의에 대한 도전이었다. 부르주아 정치인들에게 떡고물을 호소하는 데 익숙한 중간계급 지도자들은 다음에는 오로지 성조기만 가져와야 한다고 말했지만, 다수의 시위자들은 이러한 비겁한 “전술적” 요청을 무시했다.


대중적인 투쟁의 분출이 갖는 힘이 이미 노동자들의 자신감에 덧붙여졌다. 투쟁이 더 강렬해질수록, 그들은 잘못된 지도부를 간파해 내고 급진화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미국의 흑인 노동자들처럼 이주노동자들은 억압받은 경험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에 별로 환상을 갖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노동자 계급 내 정치적으로 가장 진보적인 부문을 대표하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미국에서 태어난 노동자들의 의식은 오늘날 매우 혼란스럽다. 노동자 계급은 오래도록 노동관료들의 수중에 묶여 있다가 다시 한 번 각성하기 시작하고 있다. 자동차 노동자들, 운송 노동자들, 그리고 다른 노동자들은 그들의 고용·임금·의료·연금에 대한 공격에 맞서 반격해 왔다. 이주노동자들 사이에서 힘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은 자본가들의 공격에 맞선 투쟁에 모든 노동자들이 결합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혁명적 노동자들은 이주노동자들의 성장하는 투쟁을 열정적으로 지지하고 결합한다. 우리는 노동자 계급의 요구를 위해 가장 거대하게 단결된 행동을 촉진시키려고 참여한다. 하지만 우리는 동료 노동자들에게 주요 지도자들이 자본주의 체제에 결부되어 있다고 경고한다. 그들은 투쟁이 체제 내에서 그들의 정치적 힘을 강화하는 한, 투쟁을 조심스럽게 지지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체제가 위협받자마자, 투쟁을 배신할 것이다.


그러한 지도력의 위기와 마주하여, 가장 계급의식적인 노동자들은 해답을 주는 유일한 정강을 가진 당, 즉 혁명적인 국제 사회주의당을 건설하기 위해 함께 해야 한다. 투쟁의 과정에서 점점 더 많은 노동자들이 자본주의를 혁명적으로 전복하고 계급 없는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통해 세계의 노동자들이 빈곤과 차별 없는 적절한 삶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될 것이다.


(옮긴이 양준석.)





민주당과 공화당은 이주노동자들의 적이다!

<프롤레타리아 혁명> 78호 (2006년 가을)

혁명정당추진동맹 (LRP)


몇 백만의 이주노동자들이 2006년 봄에 LA와 시카고, 그리고 다른 주요 도시들에서 행진에 나서 미국과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부분파업과 출근거부, 학생들의 동맹휴업이 대중운동 흐름 속에 포괄되었다. 멕시코와 중남미의 여러 나라들에서 온 미등록 노동자들이 마침내 “어둠을 걷어내고 모습을 드러냈다.”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모든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며 강력한 자부심을 불어넣는 대담한 운동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3월 25일 LA에서 1백만 명이 참여한 “대행진”과 5월 1일 미국 전역에서 벌어진 거대한 분출은 미국에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 결과 의회는 2005년 12월 하원을 통과했던, 노골적으로 인종적이며 반노동자적인 센센브레너 법안(하원 4437)으로부터 물러섰다. 공화당 하원 지도부가 지원한 이 법안은 모든 미등록 이주노동자와 그들을 돕는 모든 사람들을 중죄인으로 낙인찍는 것이었다. 이와 달리 상원은 이주노동자들의 비위를 다소 맞추는 “포괄적인 이민개혁법안”(상원 2611)을 채택했는데, 조지 부시는 그 기본 골격을 지지했다.


그런데 센센브레너 법안이 밀려나자, 이주노동자 권리 운동의 주류 지도부는 사람들에게 거리로 나서지 말라고 말했다. 대중적 분출이 중대한 성과를 가져왔지만, 지도자들은 대중행동으로부터 우호적인 민주당 정치인들의 선출을 목표로 하는 (민중주의의 오랜 개념인) 유권자 등록운동으로 돌아섰다. 상원 법안에 가깝게 될 것으로 보이는 하원-상원 절충과정을 상대로 로비를 하는 것이 그들의 계획이었다.


민주당은 무엇을 했는가?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대중 저항이 부재한 가운데, 의회가 다룬 모든 것은 다수의 “단속 일변도” 법안이었으며, 그 가운데는 주 경찰과 지방 경찰이 이민법을 집행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것도 포함되었다. 9월 26일자 시카고 선타임즈에 미구엘 페레즈가 썼듯이, 그 법안들은 “지난 봄 미국 전역을 휩쓸었던 이주자 권리 시위를 촉발시킨 하원의 극단적인 입법의 일부였다. 다른 말로, 그것은 모두 다시 포장된 억압이었다.”


9월에 의회를 통과한 법안은 전면적인 퇴보였다. 공화당 의원의 거의 모두와 민주당 상원의원의 다수가 지지한 그 법안은 멕시코 국경의 상당 부분에 장벽을 세우라고 요구했다. 9월 29일자 AP 통신에 따르면, “하원과 상원은 라틴아메리카 사람들과 범죄자들이 불법적으로 입국하는 것을 막기 위해 남부 국경을 따라 700마일의 장벽 건설을 서두르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을 범죄자와 테러리스트로 낙인찍는 것은 두 당에 공통된 인종차별주의 방법론이다. 그러한 벽은 훨씬 더 많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사람들이 많은 지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사막이나 산악 지역을 통해 입국하도록 강제할 것이며, 이미 끔찍한 수준인 (입국 과정에서) 사망자 수를 더욱 늘릴 것이다.


심지어 부시와 친한 멕시코 정부조차 그 국경장벽을 적대적인 행위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법안 찬성자 중에는 뉴욕 주의 힐러리 클린턴이나 일리노이 주의 바라크 오바마처럼 지난 봄 이주노동자 권리를 요구하는 대중 집회에 모습을 나타냈던 위선적인 민주당 의원들이 포함되어 있다. 민주당을 믿는다는 것이 대중투쟁에 얼마나 큰 해악인지 다시 한 번 입증된 것이다.


정곡을 찌르자면, 민주당이 추진한 “포괄적인” 상원 2611 법안은 사실 아무 내용이 없었으며, 이주노동자 권리를 위해 싸우는 투사는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 법안은, 행진에 나선 대중들이 최소한의 즉각적인 요구로 분명하게 원했던 모든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포괄적인 사면도 권고하지 않았다. “시민권을 얻는 경로”가 가능할 듯이 약속되었지만, 그것은 커다란 몽둥이에 매달려 있는 당근일 뿐이었다. 그 법안은 매우 무거운 형벌을 담고 있었으며, 좁은 틈을 뚫고 튀어오를 수 있는 이주노동자들만 시민권을 얻도록 되어 있었다.


오히려 상원 2611 법안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분할지배 정책을 대표했다. 그 법안은 미국에 머문 지 2년이 안된 모든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추방을 요구하였으며, 미국에 머문 지 2년에서 5년인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그들이 시민권이나 비자를 신청할 수 있기 전에 나라를 떠나도록 요구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5년 이상 고되게 일한 사람들에게만 행운이 돌아가는데, 그들은 시민권을 신청하기 위하여 몇 천 달러의 벌금과 추징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상원 2611 법안은, 이 “포괄적인” 법안에 들어있는 강제 조항들을 통해, 미국-멕시코 국경의 (“장벽” 설치를 포함한) 군사화를 증강하도록 규정했다. 그 법안은 또한 초청 노동자 프로그램을 주창했는데, 이는 이주노동자들이 6년까지 미국에서 일한 후 1년 내에 그들의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1940년대, 50년대, 60년대에 악명 높게 남용된 “브라세로”(bracero) 프로그램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브라세로” 프로그램이 종결된 이후 그 프로그램을 맡았던 노동부 당국자들은 이를 “합법화된 노예제”로 불렀었다.


이러한 모든 법안이 제기되는 이유는 미국의 이주노동자들이 2류 인간으로 남기를 거대 자본가들이 원한다는 점이다. 열악한 노동조건과 최저기준 이하의 임금에 놓여도 저항하기가 쉽지 않은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자 계급 가운데 아주 쉽게 착취당하는 계층을 형성하게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처럼 노동자들 가운데 비참한 조건에 결박당한 한 층이 만들어지는 것은 전체 노동자 계급을 약화시킨다. 다른 노동자들 또한 이러한 저임금 노동자들로 대치될 수 있다는 위협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잘못된 주류 지도자들


논쟁중인 법안들을 아무리 진지하게 읽어보아도, 이민법 개혁을 둘러싼 의회 내 “투쟁”은 결코 친이주자법 대 반이주자법의 논쟁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 반이주자법과 반노동자법을 어떤 형태로 법제화할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일 뿐이다. “친이주자” 조직들의 지도자들이 상원 2611 법안이나 그 모태가 되었던 매케인-케네디 법안 같은 양당의 “포괄적인” 법안들을 지지할 때, 그들은 반이주자 정책들에 정치적 외피를 빌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주자 권리 운동의 일부 주류 지도자들은 조금 더 비판적이었다. <중남미인 전국회의>(NCLR)는 상원의 법안을 찬양하며 “역사적인 이민법 투표를 위하여”라는 큰 헤드라인을 달았다. 자신들은 “법안이 어떻게 되는지에 따라 유보적”임을 알리는 작은 단서와 함께. NCLR의 의장 자넷 머르귀아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 법안의 일부 단서들을 깊이 우려했다. 하지만 마침내 상원은 오늘 몇 백만 이주자들에게 미국 시민이 되는 길을 주기로 표결했다. …… 이것은 우리 공동체와 국민들에게 중대한 문제가 되는 토론에서 큰 전진의 발걸음이다.”


주류 이주자 조직들 가운데 민주당과 관련된 법안에 직접적으로 반대하기를 원하는 곳은 없었다. 이주노동자들을 옹호하고자 한다고 주장하는 노동조합들도 비슷하게 행동했다. 그들은 틀림없이 민주당 의원들에게 비판적인 생각을 갖고 있지만, 그들이 가장 원하지 않는 것은 민주당과 그 이민법안의 반노동자적 성격을 폭로하는 것이다.


(이주자) 공동체 지도자들과 노동조합 관료들은 자본주의 체제를 지지하기 때문에, 그들은 불가피하게 “덜 나쁜 악”을 지지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늘 민주당 의원들이다. 지난 봄 대중 행진에서 가장 흔한 슬로건은 “오늘 우리는 행진한다. 내일 우리는 투표할 것이다”였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 가운데 일부는 이미 의회 내 양당 모두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이것은 분명히 가까운 미래에 더 많은 수로 늘어날 것이다.


현재의 잘못된 지도자들과 그들의 전략에 대해 앞장서 진실을 폭로하는 것, 노동자들을 정치적으로 각성시킬 대안을 제기하는 것은 혁명을 지향하는 노동자들의 책임이다. 그 법안을 후원하는 것이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또는 둘 다든 상관없이,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을 포함하는 어떤 법안에도 맞서는 대중투쟁을 건설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본주의의 분할지배 전략


노동자 계급과 억압받는 민중의 단결이라는 하나의 기본 개념은 매우 결정적인 것이다. 모든 자본주의 사회에는 한 줌의 지배계급이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노동자들의 노동을 착취함으로써 이윤을 얻고 있다. 노동자 계급이 단결한다면, 그것은 압도적으로 모든 이들이 누리는 적절한 삶을 향한 투쟁을 지향하게 될 것인데, 이는 자본주의와 맞지 않는 것이다. 강력하게 단결된 노동자 계급의 투쟁은 필연적으로 자본주의를 완전히 뒤집어엎으려는 강렬한 욕구를 드러낼 것이다. 노동자 계급은 자본주의를 뒤엎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유일한 계급이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이러한 사태전개를 막기 위하여 항상 가능한 한 분할지배 전술을 사용한다.


인종차별주의는 미국에서 지배계급의 주요한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 ‘흑인’은 태생적으로 열등하다는 개념은 노동자 계급을 일반적으로 보다 유복한 백인 노동자와 ‘흑인’ 노동자로 분할하는 데 사용된다. 역사적으로 미국 자본주의는 노예제 시기와 그 이후에 걸쳐 흑인에 대한 초과착취를 바탕으로 건설되었다. 20세기에,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주의 국가가 되었다. 이제 미국의 분할지배 방식은 해외 피억압 민족들에 대한 잔인한 초과착취 또한 포함하였다. 게다가 제국주의가 세계 대부분으로부터 자원을 약탈한 것은 엄청난 규모의 이주노동자들이 미국을 향해 이주해 오게 만들었다. 이제 제국주의는 미국 내 다른 유색인종들에게도 적용하려고 인종차별주의를 확대하고 있다. 인종차별주의와 배타적 민족주의 이데올로기가 서로 뒤엉켰다. 때론 공공연하게 때론 미묘하게.


그러나 이 그림의 다른 면이 있다. 제국주의는 피억압 민족의 광범한 대중들 사이에서 저항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동시에 미국 내에서 프롤레타리아트를 강화하고 있다. 자본가들의 공격에 맞서 반격에 나서도록 내몰리게 될 전체 노동자들의 계급투쟁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칼 맑스가 자본주의에 대해 일반적으로 언급한 것처럼, 제국주의는 스스로 자신을 무덤에 파묻을 자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단결은 자동적인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많은 부분, 우리의 적은 제국주의이며 노동자들은 인종차별주의와 배타적 민족주의를 패퇴시키기 위해 단결해야 한다는 점을 동료 노동자들에게 항상 확신시킬 수 있는 혁명적인 노동자 전위 정당의 건설에 달려 있다. 그러한 전위는 모든 투쟁에서 동료 노동자들과 나란히 투쟁해야 하며, 노동자 계급의 가장 거대한 단결과 혁명적인 전략을 옹호해야 한다. 우리의 동료 노동자들이 각성하게 하려면, 체제가 만들어 내는 인종차별주의와 배타적 민족주의에 맞서 전면적인 투쟁으로 나아갈 잠재적 가능성을 억압하고 있는 지금의 잘못된 지도부와 투항적인 전략을 폭로해야 한다.


실업자 예비군


자본주의가 존재하기 위해서 필요로 하는 물질적인 요소들 가운데 핵심적인 것이 구조적인 실업이다. 실업은 맑스가 표현한 노동 예비군을 만들어 내며, 저임금 노동의 광범한 층을 포함한다.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카리브해, 아시아로부터 온 미국의 저임금 이주노동자 대중들은 대개 국제적인 예비군(실업자) 출신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노동자들 또한 종종 저임금 일자리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러지 않을 경우 당장에는 실업 상태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인들 가운데 백인들은 다른 인종들보다 더 대우받을 자격이 있다는 이데올로기는 체제의 작동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된다. 노동자들 가운데 특히 보다 유복한 백인 노동자들 가운데 일부가 인종차별주의와 배타적 민족주의에 동조하고 있지만, 그것은 전체 노동자 계급을 공격하는 데 사용되는 수단일 뿐이다. 미국과 다른 제국주의 국가에서 이처럼 보다 유복한 부분, 즉 노동귀족들은 미국이 세계에서 중심적인 제국주의 국가라는 사실로부터 실질적으로 이득을 얻고 있다. 즉 세계의 나머지 피억압 민족들로부터 수탈한 이윤에 많은 부분 기반하면서, 중간계급과 귀족 노동자들은 다른 어느 곳보다 나은 삶을 제공받고 있다.


이제 멕시코와 다른 나라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의 전투적인 반격이 전면에 부각되자, 피억압 민족 출신의 이주노동자들보다 백인과 미국인이 우월하다는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려는 캠페인이 고조되고 있다. 미니트멘(Minutemen) 같은 우익 준군사조직들은 대중적 “침략”에 맞서야 한다고 공공연히 떠들고 있다. 그러한 흐름들에 대해 가능한 모든 곳에서 대중적인 전투적 방어 행동으로 맞설 필요가 있다. 하지만 미니트멘 같은 준군사조직들만이 아니라 모든 범위의 정치인들과 이른바 전문가들이 이주노동자들의 대중적 “침략”에 맞서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떠들어 왔다. 공공연하게 또는 은밀하게, 우익은 “미국의 갈색화”(browning of America)에 맞선 반동에 불을 지피고 있다.


모든 노동자들은 인종을 초월하여 단결할 필요가 있다


지배계급은 단지 백인 노동자들과 유색인 노동자들 사이의 분할에만 의존할 수 없다. 사장들은 흑인, 라티노, 그리고 다른 이주노동자 등 가장 열악한 영역의 노동자들이 모두가 누리는 적절한 삶을 위해 투쟁하고 단결하기 보다는 작은 빵의 줄어든 조각을 둘러싸고 서로 싸우는 상태가 유지되기를 희망한다. 최근 언론은 저임금 일자리를 둘러싸고 흑인 노동자들과 이주노동자들 사이에 벌어지는 경쟁을 특별히 부각시켜 다루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두려움과 적대감을 특히 흑인들 사이에서 조장하기 위한 것인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을 희생양으로 만드는 일에 흑인들이 노리개로 전락한다면, 특히 흑인 노동자들은 아무 것도 얻을 것이 없다.


사실 흑인, 라티노,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이 현 체제에서 가장 억압받아 온 존재이기 때문에, 또한 이들이 겪어온 특별한 투쟁의 역사 때문에, 그들의 단결은 전반적인 상황을 전환시키는 데 있어 핵심이 된다. 인종차별주의와 대결하면서, 유색인 노동자들은 일반적으로 보다 빨리 나아갈 길을 깨달으며 제국주의의 위선을 간파해 낸다. 단결된 반격으로 나아가는 길은 확실히 흑인, 라티노,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이 선구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에 바탕을 두게 될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자본가들의 공격에 맞서 모든 노동자들이 인종을 초월하여 단결하는 투쟁을 필요로 한다. 어떤 인종차별주의 또는 반이주노동자 선동에 대해서도 비타협적인 자세를 견지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노동자 계급을 합법과 비합법으로 분할하는 모든 법률을 거부해야 하며, 그러한 법률 대신 부대조건 없는 즉각적인 포괄적 사면을 위해, 모든 이주노동자들의 동등한 시민권 부여를 위해,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모든 억압의 철폐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


이주노동자 권리를 요구하는 다양한 조직들에 속한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노동자계급 조직인 노동조합에 속한 노동자들이 이러한 정책을 향한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민중주의 지도자들은 항상 노동자들의 투쟁을 제한하려고 하며, 본질적으로 투항적인 자들이다. 일정한 상황이 되면 우리의 생각에 우호적인 대중들이 그러한 지도자들을 밀어낼 수 있을 것이며, 그러한 요구를 제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말로 필요한 것은 궁극적으로 현재의 지도부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으로 노동자 계급의 혁명정당을 건설하기 위하여 투쟁을 전진시켜 나아가는 것이다.


다가오는 선거가 긍정적인 결과를 얻게 될 것이라는 환상은 머지않아 깨지게 될 것이다. 노동자 계급의 대중적 행동이 곧 다시 의제로 오를 것이다. 혁명을 지향하는 노동자들은 새롭게 전진하는 저항운동을 지지할 뿐만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의 필요를 충족하는 요구들을 제기하기 위하여 단결할 필요가 있다. 모든 이들에게 좋은 일자리와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모두에게 일자리를 달라!”와 “대규모 산업화·공공노동 프로그램 실시”를 무엇보다 요구하면서.


그처럼 진정으로 포괄적인 요구와 이를 위한 대중투쟁의 필요성은 또한 노동조합들과 다른 이주자 조직들이 오늘날 각각의 모든 파업과 노동자 투쟁 주위로 결속하도록 만들기 위하여 투쟁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지체되어 온 노동자 계급의 반격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그러한 투쟁 속에서 혁명가들은 자본가들의 공격에 맞선 모든 노동자들의 총파업 운동을 만들어 갈 것이다. 이미 운동이 상당히 전투적이기에, 다음 번 용솟음에서는 몇몇 노조들에서의 파업 행동을 내걸고 혁명가들이 개입해 들어갈 기회가 있을 것이며, 이주노동자 총파업이라는 주장이 구체화될 수 있을 것이다.


혁명정당추진동맹은 모든 노동자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우리가 제기하는 요구들이 자본주의 아래서는 완전히 또는 영구적으로 성취될 수 없다는 점을 단언한다. 정치적으로 가장 앞서있는 노동자들의 결정적인 과제는 당면한 투쟁으로부터 체제 전반의 전복까지 우리의 계급을 이끌어 나갈 혁명적인 사회주의 전위 정당을 건설하는 것이다. 우리는 동료 노동자들이 자본주의에 대한 우리의 관점에 동의하든 아니든 상관하지 않고 노동자 계급의 이해를 방어하는 모든 노력에 함께 할 것이다. 우리 앞에 놓인 길은 더 많은 노동자들과 청년들이 혁명적인 전망으로 확신하게 만들 것이다.


전 세계 노동자와 피억압 민중이여, 단결하라!


이주노동자들에게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라! 

이주자들에 대한 모든 억압을 철폐하라!

인종차별주의와 배타적 민족주의를 혁파하라!

모두에게 일자리를 달라! 대규모 공공노동 프로그램을 실시하라!

세계 사회주의 혁명만이 유일한 해답이다!

노동자 계급의 혁명정당을 건설하라!

제4인터내셔널을 재건하라!


(옮긴이 양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