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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지 (2007년)/2007년 7월호

소개_[ICU]Theprogrammaticfoundationsofourpolicy

사회실천연구소 2014. 12. 15. 13:47

[노동자 투쟁]에 대한 소개

 

[노동자 투쟁](Lutte Ouvrière)은 프랑스의 혁명적 사회주의 정치조직이다. 정식 명칭은 [트로츠키주의 공산주의 연합](Union Communiste Trotskyste)이지만, 그들이 발행하는 신문의 이름인 노동자 투쟁으로 흔히 통하며 우리나라에도 그 약칭인 LO로 주로 알려져 있다.

 

[노동자 투쟁]은 멀리 1939년에 결성된 작은 [트로츠키주의 그룹]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이들은 1947년 당시 매우 중요한 노동자 투쟁이었던 르노자동차 파업의 주도세력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으나 그 과정에서 모든 에너지가 고갈된 탓에 1952년 붕괴했다. 이후 1956[노동자의 목소리](Voix Ouvrière)라는 그룹으로 재건되었다가, 19685월 봉기에 대한 탄압 속에서 활동이 금지되자 [노동자 투쟁]으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노동자 투쟁]은 몇 십 년 동안 현장 노동자들 속에 활동을 집중해 온 전통을 갖고 있다. 특히 그 조직은 많은 사업장에서 정기적으로 꾸준히 공장신문을 배포해 왔다. 그래서 아마도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 있는 어떤 혁명적 사회주의 세력보다도 튼튼한 현장 기반을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런 강력한 현장 기반에도 2006년 봄 프랑스를 뒤흔들었던 CPE 철폐 투쟁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해내지 못하면서 역으로 일정한 문제제기를 받기도 했다.

 

[노동자 투쟁]1974년부터 대통령 선거에 여성 노동자 후보 라귀에르를 꾸준히 내세웠다. 라귀에르는 1995161만 표(5.30%), 2002163만 표(5.72%)를 얻으며 상당히 약진했으나, 여섯 번째 출마한 20074월 대선에서는 48만 표(1.33%)로 역대 최저 득표에 머물렀다.

 

한편 [노동자 투쟁]을 중심으로 [국제주의 공산주의 연합](Internationalist Communist Union)이 구성되어 있으나, 10개에 못 미치는 지부 가운데 프랑스를 제외하면 두드러진 활동이 크게 보이지는 않는 것 같다.

 

 

 

 

 

 

 

 

우리 정책의 강령적 기초

 

 

프랑스 <노동자 투쟁>

20031020

 

 

1848공산주의자 선언에서 맑스와 엥겔스는 이렇게 썼다. “하지만 우리 시대, 즉 부르주아 시대는 뚜렷한 특징을 갖고 있다. 부르주아 시대는 계급대립을 단순화시켰다. 사회 전체가 두 개의 커다란 적대진영, 즉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으로 점점 더 분열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가들의 강령과 실천은 이러한 근본 주장을 바탕으로 한다. 이 주장은 150여 년에 걸친 역사의 발전과정에서 검증되어 왔다.

 

16세기가 시작될 무렵부터 부르주아지가 성장하고, 산업이 성장하고,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그리고 인도와 교역이 늘었다. 이것은 주로 약탈 형태를 띤 국제무역의 팽창을 낳았으며, 국내시장과 세계시장을 확립시켰다.

산업화에 따라 농촌에서 도시로 대이동이 이루어졌다. 도시화가 진척되었고, 산업 프롤레타리아트가 나타났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비위생적인 빈민가에 있는 생산지대에 몰려 살았으며, 끔찍한 노동조건에 종속되었다.

산업혁명의 결과로 19세기 초반에 세계시장이 거대하게 성장했다. 서유럽과 그에 뒤이어 미국 동부 연안의 산업화는 국제적인 노동 분업과 프롤레타리아트의 탄생으로 귀결되었다.

부르주아지의 발전과 결부되어 공업과 농업 양자에서 생산수단이 발전하면서, 육체적·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세계 모든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경제적 토대가 만들어졌다.

오늘날 굶주림, 가난, 착취, 소외로부터 자유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것은 이미 가능하다. 우리는 그러한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

몇몇 경제학자가 주장하는 것과 달리 대다수 저발전 나라들에 존재하는 높은 출산율은 장애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이 나라들의 저발전이 높은 출산율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 서구 나라들에서 본 것처럼 생활과 문화의 수준이 발전함에 따라 출산율은 안정화되거나 오히려 줄어든다. 부유한 나라들의 인구가 여전히 증가세를 보이는 것은 가난한 나라들에서 이주한 주민들 때문이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은 일국적인 제한된 테두리 안에서 사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국제적인 투쟁이며, 세계적 차원에서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분쇄하고 노동자 계급을 경제적이며 정치적인 지배계급으로 조직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국제주의는 단순한 연대가 아니라 이처럼 근본적인 이해관계와 목표의 일치를 표현하는 것이다. 공산주의자 선언이 말하듯이 국제주의는 정치적으로 다음을 뜻한다. “여러 나라의 프롤레타리아들이 벌이는 일국적인 투쟁들 속에서, 공산주의자들은 모든 일국성과 독립적으로 전체 프롤레타리아트의 공통된 이해관계를 지적하고 전면에 내세운다.” 러시아혁명이 스탈린으로 대표되는 끔찍한 관료적 쇠퇴를 겪었던 것은 바로 이 혁명이 국제적으로 고립되었기 때문이다.

이곳 프랑스에서 혁명적 공산주의 정당을 건설하려고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착취당하는 노동자 계급과 그 밖의 프롤레타리아 계급들의 일부를 혁명적 공산주의 사상으로 획득하는 것은,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세계정당 건설의 한 부분으로서만 또는 적어도 그러한 정당을 건설하려는 전망 속에서만 사고될 수 있다.

바로 이 때문에, 그러한 인터내셔널이 없지만, 우리는 프랑스 프롤레타리아트가 마주치는 정치적 문제를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사회정치적 이해관계와 관련지어 다루려고 늘 애써야 한다.

 

우리의 강령은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정치적 전통, 공산주의자 선언, 코민테른 초창기의 1~4차 대회, 4인터내셔널의 이행 강령에 기초하고 있다.

 

공산주의자 선언은 사회변혁에서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명시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지로부터 모든 자본을 차례차례 빼앗고 모든 생산수단을 국가, 즉 지배계급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의 손아귀에 집중하려고 그 정치적 패권을 쓸 것이다.”

이러한 진술은 또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참된 의미를 알려준다. 1852년 맑스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지배계급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의 민주적인 권력으로 규정했다. 이는 스탈린주의자들이 소련의 관료 독재를 정당화하려고 이 개념을 기만적으로 왜곡한 것과 아무 관련이 없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생산양식을 전면적으로 혁신하려고 부르주아적 소유권과 생산조건에 대한 전제적인 침해를 조직하는 데 그 주된 기능이 있을 것이라는 차원에서 독재일 뿐이다.

노동자 권력은 부르주아 국가와 정반대가 될 것이다. 부르주아 국가는 겉으로 가장 민주적인 옷을 걸쳤을 때도 부르주아 소유권과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방어한다는 근본적인 역할 때문에 독재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민주적인 독재는 처음부터 모든 부르주아 체제 가운데 가장 민주적인 경우보다도 훨씬 더 민주적일 것이다. 모든 부르주아 체제에서는 선거제도라는 덮개 아래서 거대 기업이 자신의 고유한 독재를 강요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민주적인 독재는 스스로 소멸하여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두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조건이 되는 연합체에 의해 대체되도록 설계된 형태의 정치권력이 될 것이다.

 

레닌은 19178, 즉 차르 체제를 타도한 2월 혁명과 부르주아지를 타도한 10월 혁명 사이에 오늘날 부르주아 국가와 미래의 프롤레타리아 국가가 갖는 역할과 본질 그리고 사회 발전에 따른 국가 소멸에 대한 맑스주의 개념을 체계화하고 강력히 주창했다.

레닌은 19178월에 쓴 팸플릿 국가와 혁명에서 맑스의 사상에 대한 왜곡을 바로잡았다. 레닌은 1905년 혁명과 1917년 혁명 그리고 글을 쓸 당시 전개되고 있던 혁명적 위기의 경험을 활용하여 맑스와 엥겔스의 사상을 새롭게 조명했다. 이 작업은 겉으로는 맑스와 엥겔스의 사상을 대변하는 척 하지만 사실은 망가뜨렸던 기회주의자들에 맞서는 것이었다.

 

코민테른의 초기 네 차례 대회에서 우리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하려면 정당이 꼭 필요하다는 확신을 끌어냈다. “명확한 목표를 갖고 있으며 또한 국내정책과 대외정책 양 분야에서 구체적인 당면 행동강령을 갖고 있는 조직적이고 노련한 당에 의해 프롤레타리아트가 이끌릴 때에만, 권력 장악은 단순히 우연적인 에피소드가 아니라 장기간의 공산주의 건설로 나아가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코민테른 2차 대회)

그러므로 우리는 무정부주의자와 선을 그을 뿐만 아니라, “사회운동을 대안으로 거론하면서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계급들을 위한 정치조직이라는 바로 그 사상에 반대하는 오늘날 모든 경향과도 선을 긋는다. 사실 이러한 경향들은 늘 정치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만일 반동적이지 않다면] 개량주의적인 정치적 목적을 감추고 있다.

그와 함께 이는 우리를 대중적 노동자당의 지지자들과 구분시킨다. 혁명적인 사회 변혁을 추구하는 정당은 오직 혁명적 시기라는 배경 속에서만 대중정당이 될 수 있다. 그 때야말로 노동자 계급의 거대한 다수가 스스로 정치권력을 획득해야 할 필요성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대중적 노동자당이라는 사상은 일반적으로 개량주의 정책을 방어했던 자들을 위한 위장막으로 사용된다. 일상적 시기에 대다수 노동자들은 혁명적이지 않다. 반대로 대중은 개량주의적이다. 대중은 오직 격변의 시기에만 급진적인 정치적 변화의 필요성을 확고하게 받아들인다. 그런 시기를 빼면 노동자들 가운데 아주 소수만이 혁명적 사상에 이끌릴 수 있다.

 

19389월의 이행 강령은 이전의 강령적 문서들에 기초하여 첫 번째 노동자 국가의 관료적 퇴행을 분석하고 스탈린주의적 왜곡에 맞서 공산주의 강령을 지켜냈다.

이행 강령은 부르주아 사회 내부에서 개량으로 스스로를 제한했던 최소 강령과 막연한 미래에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대신할 것이라고 약속했던 최대 강령사이의 괴리를 뛰어넘는 개념으로 이행 요구들을 규정한다. 이행 요구들은 오늘날 노동자 계급의 광범한 층들이 가진 조건들과 의식에서 나온 것이면서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권력의 장악이라는 하나의 최종 결론으로 반드시 이끄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이러한 강령적 접근을 바탕으로 오늘날 경제적사회적정치적 조건 속에서 특히 비웃듯이 자랑스럽게 이윤을 내는 기업들에게 국가의 보상 없는 몰수라는 위협 아래 모든 정리해고를 금지한다는 요구를 내세운다. 이것은 자본주의적인 사적 소유를 문제로 제기할 수 있을 만큼 계급투쟁이 높은 수준에 이르러야 실행될 것이라는 관점에서만 이행 요구가 된다.

마찬가지로 상업적재정적 비밀이 폐지되어야 한다는 요구 역시 프롤레타리아트가 실제로 실행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만 이행 요구가 된다. 실제로 만일 이러한 목표가 법에 의존하여 회계 공개와 기업 투명성을 이루는 것이나 기업 회계 조사를 노동평의회 같은 계급협조 기구에 넘기는 것으로 축소된다면, 이는 혁명적인 것이 아니라 한낱 개량주의적인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만일 프롤레타리아트가 결집된 상태에서 이러한 목표를 추구하게 된다면, 이는 노동자들이 기업과 은행 회계에 대한 통제를 실행하고, 그 경영에 개입하며, 마침내 돈 많은 부르주아지가 산업자본·상업자본·은행자본에 행사하는 독점에 의문을 던지도록 이끌 것이다.

이행 강령은 또한 첫 번째 노동자 국가의 관료적 퇴행을 이해하는 데서, 또한 노동자 계급 운동의 강령과 기본 가치들에 스탈린주의가 불러온 왜곡을 이해하는 데서 핵심적인 것이다. 트로츠키가 죽기 전에도 존재했지만 대다수는 그 뒤에 존재했던 다른 많은 경향들에 맞서 트로츠키의 분석을 옹호하려고 우리는 언제나 투쟁해 왔다. 그들은 소련의 성격을 타락한 노동가 국가로 바라보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노동자 국가라는 바로 그 개념을 포기했다.

비록 소련이 해체되고 사실상 그 지도자들 모두가 자본주의의 복고를 추구하며 일하고 있지만, 우리는 소련에 대한 이러한 이해를 계속 견지하면서 정치적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실제로 오늘날까지도 소비에트 사회의 몇몇 측면들은 트로츠키주의의 분석을 바탕으로 삼아 논증하지 않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 게다가 부르주아지의 전면적인 사회경제적 지배를 향한 전개과정이 완성되려면 아직도 한참 멀었다.

 

1938년 트로츠키가 세운 제4인터내셔널은 1940년 트로츠키가 죽을 때까지, 맑스와 엥겔스가 이끈 국제노동자협회, 1차 대전 이전의 제2인터내셔널, 1919~23년 사이의 코민테른이 먼저 대표했던 운동을 유일하게 정치적으로 계승하였다. 4인터내셔널은 2차 대전을 거치며 국제운동의 지도부로 살아남지 못했다. 다만 그 설립 강령인 이행 강령은 그것이 쓰일 당시 상황이 두드러지긴 하지만,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한 현존하는 가장 훌륭한 지침으로 남아 있다. 근본적인 과제는 혁명적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을 재건하는 것이다.

 

우리의 정치 강령

 

인터내셔널을 재건하려면 모든 나라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역할에 복무하는 프롤레타리아 당들을 건설해야 한다. 이것은 그 당들이 프롤레타리아트의 당면 이해관계에 복무하기를 삼가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정반대로 그 당들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일반적 이해관계, 즉 사회 전체의 이해관계에 복무하는 한 부분으로서 프롤레타리아트의 당면 이해관계에 복무한다.

이것은 우리의 노동자 계급 동지들이 노동자들 나아가 일반적으로 착취당하는 자들이 그들의 생활조건을 방어하려고 벌이는 크고 작은 모든 투쟁에 참여한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이 동지들이 어떤 유형의 노동조합 활동에 개입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부르주아지와 그 국가에 맞선 크고 작은 투쟁들 속에서, 이를테면 노동조합 활동 속에서, 혁명적 공산주의자들은, 공산주의자 선언의 정식을 사용하자면, “언제 어디서나 전체 운동의 이해관계를 대표해야한다.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당들을 건설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투쟁하는 것은 혁명가들이 선택하는 계급 기반의 경계선을 정치적으로나 조직적으로나 엄격하게 요구한다. 특히 노동자 계급이 부르주아 조직과 이해관계에 끌려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다양한 유형의 전선들에 대응하여, 혁명가들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자적인 조직과 정책의 필요성을 방어해야 한다. 그것의 목표는 다수의 혁명 정당들에 의해 대표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민주적 권력을 수립하는 것이다.

부르주아 사회는 여성, 소수민족, 소수인종, 그리고 다른 소수자들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억압과 배제를 유지하고 재생산한다. 사실 부르주아 사회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노숙자 같은 다양한 소수자들을 늘 새로 만들어 내며 그로부터 우발적이든 영구적이든 저항을 격발시킨다. 마치 자본주의 체제가 작동한 결과 때문에 다른 많은 저항들을 격발시키는 것처럼.

혁명적 공산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사회체제에 대한 모든 도전을 그것이 얼마나 제한되고 부분적인가에 상관없이 지지한다. 하지만 혁명가들은 그러한 도전들이 혁명적인 내용을 갖고 있다고 저절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대부분의 경우에 그러한 도전들은 혁명적인 내용을 갖고 있지 않다.

노동자 계급 운동의 목표들 대다수는 스탈린주의에 의해 그 내용이 왜곡되거나 제거되어 왔다. “()제국주의”, “()자본주의”, 심지어 국제주의마저 그렇게 되었다. 이 때문에 오늘날 예나 지금이나 노동자 계급 운동과 아무런 연계를 갖고 있지 않은 다수의 정치적 경향들이 이러한 단어들을 가로채서 그로부터 모든 의미를 제거해 버린 채 오히려 소리 높여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세계화 경향은 그러한 경향들 가운데 가장 최근의 사례일 뿐이다. 그들은 노동자 계급 운동으로부터 이어받은 개념들을 어떤 내용도 없이 사용한다. 자본주의 경제의 가장 뻔뻔한 부당함 또는 혼란스런 결과들에 의해 야기된 분노 또는 폭동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서.

우리는 이러한 경향들로부터 명확하고 단호하게 거리를 두어야 한다. 그들의 언어가 갖는 모호함을 쫓아버리고, 겉보기에는 체제에 도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존 사회질서에 가장 공손한 그들의 정책을 폭로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스탈린주의는 코민테른이 보존했던 혁명적 공산주의 정당의 볼셰비키 전통을 왜곡시켜 왔다. 규율과 민주주의를 함께 갖추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가장 철저하게 헌신하는 당 대신에, 스탈린주의는 규율이 독재 체제로 대체된 당을 도입했다. 이것은 그 당이 일차적으로 소비에트 관료화에 봉사하고 그리고 나서 다른 모든 나라 부르주아지의 이해관계에 봉사하려고 노동자 계급의 이해관계 방어를 포기하였다는 점을 폭로하게 될 어떤 비판도 막기 위해서 고안되었다.

스탈린주의 정당들은 정치적으로나 조직적으로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로 변모함으로써 그들의 진화과정을 완성했다. 공산당들은 (특히 프랑스 공산당은) 자신들의 스탈린주의적 과거에 이의를 제기한다는 핑계를 대며 공산주의 전통과 어떤 관련도 포기했다. 공산당들은 스스로 진화하여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해방을 성취하려고 중앙 집중적이고 규율 잡힌 민주적인 정당을 필요로 한다는 바로 그 사상을 거부하게 되었다. 많은 사이비 혁명조직들이 이것을 따라 사회혁명에서 정당이란 더 이상 중요한 논점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자신을 광범한 전선들로 해소시키기를 거부하는 혁명적 공산주의 정당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과제가 완성되었고 프롤레타리아트가 매우 거대한 계급을 형성한 산업화된 나라들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과제가 완수되지 않았고 제국주의적 약탈이 벌어지며 프롤레타리아트가 주로 소규모이고 늘 초과착취당하는 저개발나라들에서도 필요하다. 세계의 가난한 나라들 대다수가 더 이상 직접적인 식민지 억압에 종속되어 있지 않지만, 그들은 여전히 제국주의의 경제적정치적 지배에 실제로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종속되어 있다. 탈식민화로 이루어진 주요한 변화는 식민 권력이 수행했던 억압적 역할을 지역 엘리트가 장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가난한 나라들의 국가는 제국주의가 원하는 만큼 가져가고 남은 작은 찌꺼기들을 쥐어짜려고 제국주의의 요구에 덧붙여 주민들을 압박하는 부패한 독재이다. 이러한 나라들의 대중이 겪는 빈곤은 한계선이 없다.

따라서 가난한 나라들에서 계급 모순은 여전히 폭발적이다. 탈식민화 기간과 탈식민화 이후의 모든 역사적 시기를 통틀어서, 민주적 권리와 특히 좀 더 나은 삶을 향한 대중의 열망은 쁘띠부르주아 민족주의 조직들의 영향으로 엉뚱한 곳으로 돌려졌다. 그 조직들은 대체로 진보적이었고 때때로 맑스-레닌주의라고 주장되곤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제국주의적 약탈은 이 나라들에서 돈만 뜯어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이 나라들에 정치의식의 퇴보를 강요한다. “진보적인민족주의, 범 아프리카주의 그리고 다른 제3세계주의는 일부 나라들에서 근본주의와 다른 나라들에서 인종주의라는 반동적 세력들이 떠오르면서 자리를 내주고 있다. 제국주의 지배는 많은 가난한 나라들이 야만적인 중세적 상황, 끝없는 전쟁, 군벌들의 지배로 되돌아가도록 밀어붙이고 있다.

모든 가난한 나라들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가들은 대중의 반()제국주의 열망을 민주적 권리와 자유에 대한 열망과 함께 대변해야 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당은 투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오직 하나의 세력임을 자신의 정책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이 투쟁에서 맨 앞에 서려고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이 때 프롤레타리아 당은 반드시 계급적 토대 위에 서야 하는데, 이는 계급적 관점에서 엄격한 독립성을 견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프롤레타리아 당은 도시와 농촌 노동자들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늘 강조해야 한다. 또한 그 대표자들이 ()제국주의언어를 줄곧 사용하는 다른 사회계층들과 노동자들을 다르게 또는 맞서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늘 강조해야 한다. 이것은 이 당들이 근본주의 경향이나 인종주의 경향, 뿐만 아니라 자칭 진보세력을 포함한 쁘띠부르주아 민족주의 조직들에 명확하게 맞서도록 만들 것이다.

4인터내셔널이 세워졌을 때에도 우리는 결코 인터내셔널 놀이를 하지 않았다. 그때 제4인터내셔널은 하나의 조직으로서는 극히 허약했지만 트로츠키가 이끌고 있었다. 트로츠키는 러시아 혁명의 경험으로부터 그리고 코민테른으로부터 이어받은 그만의 정치적 자산을 체현하고 있었다. 그 자산은 트로츠키가 죽으면서 사실상 사라졌다. 다양한 트로츠키주의 경향들이 인터내셔널인 척하는 게임에 탐닉했다. 하지만 이 게임들은 부적절한 것이었으며, 덧붙여 이 경향들이 자기 나라 노동자 계급들 속에 스스로 뿌리내리려는 노력을 거부하고 따라서 사실상 혁명적 공산주의 정당 건설을 포기하고 있음을 감출 뿐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늘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이해관계에 서서 생각하려고 애쓴다. 우리가 이를테면 인민 민주주의나 중국 혁명처럼 트로츠키의 죽음 이후 일어났던 사태들을 분석했던 것은 이러한 관점에서였다. 그 결과 우리의 입장은 다른 트로츠키주의 경향들이 채택했던 입장과 자주 달랐고 때때로 맞서는 것이었다. 인민 민주주의가 붕괴하면서 이러한 차이들의 대상은 사라졌다. 하지만 그들의 역사는 사라지지 않았으며, 사회적 과정을 분석하는 데 사용하는 방법들의 차이도 사라지지 않았다. 이러한 차이는 가난한 나라들의 급진적인 민족주의 경향들에 대한 각자의 평가 속에서, 또는 사회민주주의와 그 부산물들에 대한 각자의 태도 속에서 여전히 찾아질 수 있다.

아울러 우리는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다른 나라들에서 온 활동가들이 혁명적 공산주의 사상의 토대 위에서 활동하도록 지원하는 것 또한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해 왔다.

노동자 계급 속에 갖고 있는 우리의 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할 만한 성공들이 선거에서 몇 번 있었지만, 우리의 근본적인 과제는 여전히 20년 또는 30년 전과 같다. 우리의 선거 영향력이 별 것 아니기도 하지만, 그것 자체로는 혁명 정당을 대신할 수 없다. 우리는 다른 나라 민중 또는 특히 프랑스의 억압받는 민중을 지지하는 많은 시위에 참여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혁명적 공산주의자들이 선거에 나서는 것을 하나의 의무라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활동들은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공산주의 정당 건설이라는 전망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그에 종속되어야 한다.

물론 그러한 정당의 출현은 단지 우리에게만 달려 있지 않다. 그것은 또한 주어진 상황에 달려 있으며, 프랑스와 다른 모든 곳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본질적으로 자신감을 되찾는 것에 달려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은 지난 150년 동안 혁명적인 노동자 계급 운동의 역사로부터 이어받은 사상과 강령을 유지하는 것이다. 또한 이 사상을 기껏해야 단기간의 성공을 위해서 모종의 전선이나 연합으로 해소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사상을 중심으로 노동자를 조직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내일이면 오늘 뿌려진 씨앗들이 활짝 필 수 있는 우호적인 상황들이 펼쳐질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역사의 전개가 혁명적인 노동자 계급 운동의 목표를 정당화할 것이라 확신하는 까닭이다. 자본주의, 착취, 억압, 전쟁이 인류의 미래를 대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옮긴이: 양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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